<밀양>을 보면 생각이 넘 많아질 것 같아서
머릿 속이 복잡해 지는 게 살짝꿍 두려워서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었다.

결국... <밀양>에 대한 욕망은 두려움을 이겼고
현충일 오후에 <밀양>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술이 땡겼고,
극장에서 나와 허름한 술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마셔 버렸다.

( 그래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또는 죄책감으로
안주는 손두부를 시켰다. )

<밀양>은 정말...파괴력이 큰 영화다.
영화일기를 쓰려고 했으나,
머리를 빙빙 도는 생각들과 이미지가 넘 많아 포기해 버렸다.

<씨네21>에서 평론가 허문영과 이창동의 두번째 대담을 읽었다.

이창동이 한 말을 읽을 때 마다 소름이 돋게 공감을 했고,
허문영이 한 말을 읽을 때 마다 짜증이 났다.

가끔 평론가들을 보면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영화를 재미 없게 보려고 환장한 것 같기도 하고,
머릿 속에 있는 이론을 어떻게든 다 써먹어 보려고 들이 미는 것 같기도 하고,
쌩뚱 맞은 이데올로기 얘기를 할 때는 무섭기도 하다.

허문영이 말했다.

이 영화는 가부장의 부재와 그 복원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밀양이 죽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것도 그렇고.
종찬이 가부장의 자리를 원하지만, 그 역할 수행에는 실패한다.
신애가 찾는 하나님은 또 다른 가부장일 수도 있다.


가부장의 부재와 복원이라.... 헉!
허문영은 마초일까?
아니면 텍스트가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얘기하는 걸까?
아니면 이창동의 "아니다"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소크라테스처럼 산파술을 쓴걸까?

신애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간 건
가부장의 부재를 복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 속 대사
"난 여기가 좋아.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기가." 대로
남편의 배신, 주위 사람들의 동정,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리모델링"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남편을 사랑해서 남편의 고향에 살러온 순애보적인 여자로,
(동생에게 조차 그렇게 보이기를 원한다!)
은행 이자 얼마 되지도 않는데 좋은 땅 사서 집이나 지으려는 돈 많은 여자로,
그 누구에게도 불쌍해 보이지 않는
사랑했던 기억과 놀고 있는 돈이 넘쳐나는 행복한 여자로.

그런 신애의 발버둥치는 모습에 안스러움을 느꼈고,
그런 신애의 자기방어에 어지러울 만큼 감정이입이 됐고,
그런 신애의 모습에 너무나 술이 땡겼고,
그래서......마셨다.

다이어트가 끝날 때까지는 코미디만 봐야 겠다.

p.s) 영화를 보면서.....종찬 같은 남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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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6-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종찬같은 남친이 있음 좋겠단 생각 했어요. 울 신랑은 결혼하고 나더니 확 돌변했습니다. 뭐 낚은 고기에는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나요. 쳇.
신애에게서 동질감도 느꼈습니다. 왜 약간의 허영심은 부리고 싶잖아요~~
제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이에게서 전화오자 '엄마 금방 갈께~' 하던 거짓말)
자칫 무거움 일색으로 흐를뻔 했던 영화가 송강호로 인해 한결 가벼워 졌지요~~

다락방 2007-06-1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구요, 앞으로 봐야할지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조금 더 고민해야겠어요.

수선님의 말씀처럼, 왜 죄다 재미없게 보려고 환장한듯 한걸까요? 느끼는대로 얘기해줘도 좋을텐데. 그나저나 이왕 드시는거, 맛있는거 드시지 그러셨어요. 헷.

hnine 2007-06-12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문영 이라는 분의 말씀을 비롯해서, 저건 아닌데 하는 말을 듣거나 읽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답답하긴 하지만, 누구나 알고 보면,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의 감정 이입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는 것 같아 그냥 이해해주기로 합니다.
저 지금, 일어나서 사과 먹고 있는데, 밀양에서 전 도연이 사과를 베어먹다가 눈물을 지금지금 흘리고 말던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마늘빵 2007-06-12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찬 같은 남친이라면 전 아니군요. 크크.

저도 밀양 보고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내가 뭘 느낀건지 아무 것도 모르겠더군요.

프레이야 2007-06-12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외연을 확대하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개인의 스키마와 보는 관점에
따라 작품은 여러 갈래로 해석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허문영 평론가라는 사람의
확대해석은 영화의 의도와는 너무 멀어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전문평론가
들의 글을 안 읽지요.. 그나저나 수선님 다요트 계속 성공길로 가시기 바래요^^

2007-06-12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6-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텍스트를 해석하는 눈은 여러가지 일 수 있다고 봐요....창작자가 그걸 의도하지 않았어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고봐요.물론 과도한 해석의 가능성도 있지만요.아무데나 가도 되는데 굳이 남편의 고향으로 간 상황이 그런 해석을 가능케하지 않았을까요....'난 여기가 좋아'면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는건가요? 그렇진 않겠지요^^...

kleinsusun 2007-06-1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정말 송강호랑 양장점 아줌마 및 그의 친구들이 없었으면 영화가 너무 무거울 뻔 했어요. ㅋㅋ 외국어 자막으로는 사투리가 주는 어감을 전달할 수 없으니 넘 안타까워요. 송강호의 느글느글한 대사들 정말 압권이었는데....^^

다락방님,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부쩍 짜증이 심해진 것 같아요. 이러면 안되는데...ㅠㅠ <밀양>은 후유증이 심하긴 하지만.....그래도......안보면 후회할 거 같아요.^^

hnine님, 아.......그 사과 깍는 장면!
뜬금 없는 소리지만... 과도 좋은 걸로 샀는데 한번도 안 썼어요.ㅋㅋ

아프님, 네...정말 후유증이 큰 영화예요. 님 같은 꽃미남은 종찬 캐릭터와 안어울려요.ㅋㅋ

혜경님, 네...넘 비약이 심한 해석이죠? 무엇보다...가부장의 부재와 복원이라는 건 가부장의 권위가 인정될 때 가능한 일인데...왠 뜬금 없이 가부장이 나오는지... 신애의 주체적 캐릭터를 부정하는 것 같아요.

속삭이신님, 항상 님은......쵝오!^^

드팀전님, 아무데나 가도 되는데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간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그러니까 남편이 바람 피다 교통사고 나서 죽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뿐만 아니라 남편의 고향으로 살러 갈 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발버둥 같은 거 같아요. 텍스트는 당연히 천길 만길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부장은 정말.....아닌 것 같아요. (아님.....저한테 가부장 알레르기가 있나봐요.ㅋㅋ)

글샘 2007-06-1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부장적이라고 한 건, 오버같네요.^^
남편 고향과 아들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갈 곳' '아는 사람 없는 곳' '피안'의 세상이었겠지요. 비록 그곳이 가봤자 거기서 거기인... 송강호 말대로 거기가 거기인 곳이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