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서 가장 바쁜 일과 시간은 4시에서 6시 사이다.

주로 유럽 회사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유럽의 아침이 되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독일에서,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에서 전화가 온다.
회사전화가 통화 중이면 성격 급한 바이어들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정신이.....없다. 헉헉!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6시 30분에 퇴근, 한겨레 문화센터로 달려 갔다.
강유원의 강의 <서구 고전 읽기 : 정치사상편>.

현충일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강유원의 강의가 있다는 한겨레 문화센터 광고에 제대로 "필" 받아
"충동적"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한겨레 문화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온라인 결제까지 해 버렸다.

커리큘럼은
플라톤 <<국가>> (박종현 옮김, 서광사)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이병길 옮김, 박영사)
마키아벨리 <<군주론>> (강정인 옮김, 까치)
로크 <<통치론>> (강정인 옮김, 까치)

내친 김에 책까지 한꺼번에 다 주문했다.

그런데... 성격상 일은 저질렀으나...
700 페이지 넘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안 그래도 저질러 놓은 일이 많은데
이 수업까지 들을 수 있을까?
이 텍스트들을 제대로 읽을 수나 있을까?

그래도 어쩌랴...
벌써 저지른 일인데...

한편으로는 궁금함과 기대로 설레이기도 했다.
강유원은 어떤 사람일까?
강유원의 강의는 어떨까?

어제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앞에 서서 수강생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강유원 선생님(이제 저자가 아니라 나의 선생님이다!) 을 처음 봤을 때,
난 너무 놀라 쌩뚱 맞은 질문을 해 버렸다.

"선생님..... 강유원 맞아요?"
( 강유원 선생님 맞으세요? 라고 했어야 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질문이 꼬였다. ㅠㅠ)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학교 청소부 아줌마들도 내가 선생 아닌지 아는데....하하."

질끈 묶은 긴 파마 머리,
더 이상 편할 수 없을 것 같은 티셔츠와 볼링화 같이 생긴 운동화,
사람 좋아 보이는 쾌활한 말투와 웃음소리...

"회사원 철학자"라고 해서 "회사원" 스러운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기억 속의 록 밴드 같기도 하고,
사주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도인 같기도 했다.

무엇 보다도...
"시니컬"해 보일 꺼라고 생각했는데
농담 따먹기도 너무 잘하고
능글능글하게 말도 잘해서 굉장히 놀랐다.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앞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끊임 없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지금 외출을 해야 해서 글을 마쳐야 한다. 강의후기는 다음에 써야지.)

끊임 없는, 지치지도 않는 나의 삽질에 스스로 경의를 표하며. 홧팅!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팀전 2007-06-1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배워서 남주세요...^^ 꼭이요.
어제 글샘,달팽이님하고 술먹어서 힘들어 죽겟네..헤

마법천자문 2007-06-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삽질' 이란 두 글자를 보니 댓글을 안 남길 수가 없군요. 강유원씨는 토속에로영화에 나오는 마당쇠 같은 분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저런 강의에 돈 받으면서 다니라고 해도 못 다닙니다. 책 제목들만 봐도 골이 빠개지려고 하는군요. ㅎㅎ

2007-06-16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7-06-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오!!! 부산 모임이 있었나봐요? 잼 있었겠당^^
저도 어제 과음으로 숙취가...ㅋㅋ

분노의 삽질님, 마당쇠 보다는 변강쇠 같아요. ㅋㅋ
강의 재미있어요.^^ 숙제도 있어요. 해야 되는데..언제 할지 모르겠어요. ㅎㅎ

속삭이신님, 학구열이 아니라 삽질이예요. ㅋㅋ
일은 쉽게 저지르는데 수습을 잘 못해요. 돈키호테 스타일 이랄까요? 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