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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 6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명두>에서 김애란의 단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읽은지
거의 1년 만에 김애란의 단편집을 읽었다.
이 책의 끝에 있는 <작가의 말>에 김애란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김애란은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고 느낀 첫번째 감상(?)은
아....정말 소설 많이 읽고, 습작 많이 하고, 소설 작법을 피 터지게 배웠구나! 다.
얄밉다.
꼭 "국영수를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수능 전국 수석의 9시 뉴스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그러니까 벌써 몇년 전, MBA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GMAT을 5번이나 봤는데 매번 똑 같은 점수가 나왔다.
그 비싼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5번이나 봤는데
그 때마다 똑 같은 점수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이라니!
Top 5 MBA 합격자들이 쓴 [TOP MBA로 가는 길]에
합격자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썼다.
TOEFL은 모의고사를 한두번 풀어 보고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좋은 점수가 나왔고,
GMAT은 바쁜 회사 일에 쫓겨 2~3달 주말에 도서관에서
[The Official Guide for GMAT]을 반복해서 봤는데,
다행히 700~75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와 essay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런 수기를 읽었을 때의 좌절감이란!
난 머리가 나쁜 걸까?
그런데...그 합격자 수기 중에는 학교 선배의 것도 있었는데,
(그 선배도 그렇게 썼다!)
그 선배는 회사까지 휴직하고
온 종일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저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어요!" 라고 하면
쩍 팔린걸까?
평론가들은 김애란의 출현을 "천재 소녀의 강림" 으로 보는 것 같다.
김애란은 분명, 단연코, 유쾌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가다.
하지만... 아직 작품집이 한 권 뿐인 작가를 가지고 너무 오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애란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장편, 또 다음 단편집을 기다려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비난 보다도 더 무서운 "무관심" 속에 힘들어 할
신인 작가들의 소설도 계속해서 "사서" 읽으려고 한다.
그것이... 회사원 나부랭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문학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딴지가 길었다.
그래서...김애란의 단편집은 어땠는가?
이렇게 딴지를 걸 만큼,
동종업계도 아닌데 시기와 질투를 느낄 만큼,
대.단.하.다.
그 유쾌한 상상력과 놀라운 비유들로 가득한 문장들!
김연수 소설의 아버지가 "늙고 추례한 아비"라면
김애란 소설의 아버지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실종된, 사라진 아비"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는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아비의 떠남은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도 않고
자기연민의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김애란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삶의 고통에 빠지는 대신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긍정한다.
아....이 도발적인 유쾌함이라니!
김애란이 단편을 발표하는 여러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김애란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달려라, 김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