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두꺼운 책 두 권이 있다. 이번달 신간평가 선정도서인 <반자본 발전사전>과 작년 말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한하운 전집>이다. 

이번 달 신간평가 선정도서는 분량면이나 내용면이나 어메이징하다.  지금도 [인문/사회] 평가단원분들은 합치면 벽돌 두 개만한 무게의 책 두 권을 마감기한 내까지 읽고 리뷰를 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압박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반자본 발전사전> 리뷰만 올리면 되는데 며칠전에 서재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그만 썼던 글들이 한순간에 날라가버린 좌절감에 가까운 일을 겪어야했다.  한참 잘 쓰다가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버린 것이다.  컴퓨터가 날려버린 잃어버린 내용들의 파편을 찾느라고 요 며칠 내 개고생이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재독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에는 적지 않은 분량을 다시 읽기에는 시간상 너무 아깝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만 보면 저절로 짜증이 나기도 한다.  

 

봄이 되면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기 위해서 새콤하면서도 알싸한 봄 나물 무침을 먹는다. 입 안에 감도는 향긋한 봄 나물의 맛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듯이 요즘과 같이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간결하고 감동의 여운이 감도는 시를 읽으면 감성이 자극 되어서 좋다. 

그래서 나름 시를 읽어보려고 <한하운 전집>을 골랐는데 <반 자본 발전사전>보다 분량이 더 많다.  <한하운 전집>은 무려 800페이지 정도나 된다. 이미 <리영희 평전>을 읽어서 망정이지 만약에 이 책마저 안 읽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한하운 전집>도 읽게 되면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한다. 문둥병 환자로써 살아야했던 한하운 시인의 삶은 그가 쓴 시 못지 않게 안타까우면서도 애처롭기만 하다. 특히 R양과의 러브 스토리는...   

봄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시작하는 시기이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포근하게 해주는 계절이다. 행복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봄 바람을 한하운 시인에게는 자신의 피부를 따끔거리게 하는 무더운 여름 햇볕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조금씩 문둥병 증상이 오고 있음을 인지한 한하운 시인은 그 이후로부터 하루하루를 절망과 비탄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특히 무서운 증상을 발견하기 전까지 짝사랑하고 있었던 R양과의 관계가 무너질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한하운 시인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R양에게 당당히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R이야말로 자신의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진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애인이라고 고백하였고 그동안 마음 속에 억누르고 있었던 회한의 감정을 시로 읊었다. 

 

외톨리 푸른 잎 하나가
심산벽수 시냇물 흰 구름 위로 떠나갑니다.
어느 사랑의 찢어진 화전이라 할까.

천도(天桃)빛 꽃송이 하나가
검은 밤 시냇물에 별 사이로 흘러갑니다.
어느 실연의 주검이 떠나는 것이라 할까.
  

- 한하운 <낙화유수>, 시인이 중학생 때 쓴 시 -


그러나 시인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인의 고백과 시를 묵묵히 듣고 있던 R은 오히려 그의 진심 어린 사랑을 알아주었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을 ' 외톨리 푸른 잎 하나 ' 와 ' 천도빛 꽃송이 하나 ' 로 비유하여 문둥이로 살아야하는 자신의 심적 고통과 R를 향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절실히 표현하고 있다.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는 슬퍼져요.

저는 H씨는 일생의 '허즈' 로서 언약한 이상 H씨가 불운에 처했다고 버리고 가는

그런 값싼 여자가 아닙니다. "
 

(중략)
 

R은 사람의 일생이란 똑같은 과정을 가는 것이 아닌가고 - 다만 자기가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 - 또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참된 행복된 삶이 아닌가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 <한하운 전집> [나의 슬픈 반생기] p 228 -

  

이 때부터 한하운 시인과 R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으며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시인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R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가 있었기에 한하운 시인은 수시로 자신을 덮쳐온 자살이라는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하운 시인에게 R양은 생(生)의 의지와 재생의 용기를 북돋아준 동시에 수많은 작품을 탄생하게 해준 뮤즈(Muse)였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두껍기만한 <한하운 전집>을 틈틈이 읽게 되면 유독 p 228를 자주 들춰 보게 된다.  자기가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R양의 말을 보면서 한 사람에 대한 지고지순한 그녀의 사랑이 한편으로는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힘을 통해서 R이 인생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던 시인의 삶을 구원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대단하다. 

요즘 무척 바쁘다보니 시인과 R양의 러브 스토리의 피날레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슬픈 피날레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그들의 사랑극이 막을 내릴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결말이 좋든 안 좋든 간에 한하운 시인의 글이 읽고 싶어진다.  당분간 봄 기운이 가득한 3월달에는 두꺼운 <한하운 전집>이나 끼고 살아야될거 같다.

  

  

 

 

 

 

 

 

 

 

 

 

P.S> 요즘 봄이 되어서 그런지 단테<새로운 탄생>도 읽고 싶어진다. 작년에 읽었을 때도 단테가 쓴 소네트 구절이 참 좋았는데 시간이 있으면 이번에도 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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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2-2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런 사랑이 있군요.
저도 R양인데 (아니. 이니셜은 그런데 '양'은 아니군요.ㅎㅎ)
저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용기와 사랑이네요.
그나저나 신간평가단 책이 그렇게 두껍고 저렇게 어려운 책이라면(!!)
신간평가단 하시는 분들은 다가오고 있는 봄도 못 즐기고 계시는거 아니예요! 책 읽느라.

cyrus 2011-02-27 18:5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음달 마지막 선정도서가 분량이 얇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 될거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드네요^^;;

마녀고양이 2011-02-2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컴퓨터 날아가면 정말 화나죠, 그걸 다시 쓰려고 하면.. ㅠㅠ
그런데 신간 평가단의 책들이 장난 아니네요, 저는 평생 꿈도 안 꿀랍니다...
아냐아냐, 그러나 사이러스님과 히어나우님을 뵈면 막 욕심이.. 인문쪽으로.. ^^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네요. 나두 그런 책 하나 골라 읽을까..
갑자기 가슴이 흘러내리려는데,, 책임지세요!

cyrus 2011-02-27 19:00   좋아요 0 | URL
신청해보세요. 마고님은 선정될 가능성이 높을거 같습니다.
음,,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는 맞는데,, 엄청난 분량의 양을 감당하셔야
됩니다. ^^;;

꽃도둑 2011-02-2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가 왜 웃음이 나는거죠? 남의 불행에 너무 행복(?)해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받은 책 두 권이 어메이징하다는 표현 재밌어요, 거기다가 800쪽에 이르는 한하운 전집까증? 벽돌 세 장이네요...ㅎㅎ

저도 시 참 좋아하는데...그 생각도 했어요. 서재를 관리할 시간이 된다면 '내 맘대로 시 읽기' 코너를 만들어야지...이긍 리뷰 쓰기도 바쁜 이 망할넘의 생활....ㅜ.ㅜ
사이러스님 덕분에 이 봄, 생의 환희를 느끼게 해 줄 시집을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1-02-27 19:01   좋아요 0 | URL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대학생의 삶을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예전처럼
책을 많이 못 읽을거 같으니 이번 기회에 시집이라도 읽어볼까 생각중이에요.
시간과 내용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까요. ^^

양철나무꾼 2011-02-2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 한번 신간평가단 신청했다가 물먹었었는데...물 먹기를 다행이다 싶네요.
진짜 어메이징하군요~^^
근데 한하운 전집은 심히 땡기네요~

cyrus 2011-03-01 12:34   좋아요 0 | URL
다음 기수 때 나무꾼님이 신청하신다면 당연히 되실거 같아요. 특히 소설, 비문야, 실용/취미 분야에 신청하시면요 ^^

2011-03-02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에 미치다!  이 말이야말로 언어의 중복!  사랑이란 이미 광기인 것!   

 

- 하인리히 하이네 <아타 트롤> 중에서,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p 228 재인용) -

    

  

 

  단편소설 속에 볼 수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단편소설인 <행복한 왕자>는 어린이들을 위한 감동적인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아동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 모음집에서도 <행복한 왕자>를 읽었을 정도이니 어떻게 보면 작품 전개상 어린이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감동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도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유미주의란 ' 예술을 위한 예술 ' 을 강조하며 감각과 형식, 관념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기말에 유행되었던 예술 사조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유미주의를 주창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19세기 말 유행한 유미주의 열풍은 그 당시로서는 퇴폐적이다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를 받았지만 기존에 유지되고 있었던 부르주아적인 문화와 고전적 아름다움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전위적인 예술 활동을 펼쳤다.   

<행복한 왕자> 이야기에는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과 보석을 차례로 물어다 준 제비는 결국 따뜻한 이집트로 가지 못한 채 이미 소진해버린 체력과 추위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죽기 전에 동상에게 남기는 제비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 제가 가는 곳은 이집트가 아니에요.  저는 죽음의 집으로 간답니다.  죽음은 잠의 형제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  

-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중에서, <별에서 온 아이> p 42 -  

  
' 죽음 ' 의 고대 그리스어 표기는 θάνατος  이다. ' 타나토스 ' 라고 부르는데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이 의인화된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용어에서 유래되어 오늘날에도 ' 죽음 ' 을 Thanatos 라고 사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사람이 죽을 때 ‘ 수면(잠, 히프노스 Hypnos) ’ 과 함께 와서 죽은 자의 영혼을 운반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밤에 취하는 수면의 행위를 죽음과 동일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면은 곧 일시적인 죽음이며 결국 죽음은 단지 생(生)의 종말로 영원히 정지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비는 자신이 겪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 단지 죽음을 안락한 집이며 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비가 얼어 죽은 후에 왕자는 예전의 화려했던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낡은 납덩어리로 되어버린다. 쓸모 없어진 왕자는 용광로 속으로 들어갈 처지에 놓여짐으로써 왕자 역시 ' 죽음 ' 을 맞게 된다. 도시 사람들은 낡은 동상이 아름답지가 않다고 말하면서 이제는 쓸모가 없으니 용광로에 녹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느님은 왕자와 제비를 자신의 천국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선행을 위한 이들의 희생을 찬미하면서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 잘 골라 왔노라.  이제 이 작은 새는 내 천국의 정원에서 영원히 노래할 것이며, 행복한 왕자는 내 황금의 도시에서 영원히 나를 찬미할 것이로다. " 

- 같은 책, p 43 - 

 

왕자와 제비는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 죽은 존재이지만 하느님이 있는 천국으로 향하게 되면서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현실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죽음이라는 이미지 자체에 드러나고  있는 공포와 상실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죽음 자체에도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와일드가 강조한 유미주의와 연관성이 있다.  현실에서 추구하는 일반적이면서도 고전적인 기존의 아름다움이 아닌 죽음과 천국으로 대표되는 공상의 영역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적 감각에 대한 와일드의 찬미를 소설 속 하느님의 대사에서 볼 수 있다. 

결국은 <행복한 왕자>는 도덕적 가치를 내세우는 사랑을 위한 자기희생 자체에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으로 상징되는 자기희생은 다른 단편소설들에서도 볼 수 있다.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이라는 단편소설 속에서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는 자신이 연모하는 학생을 위해서 자신의 가슴에 가시를 찌르는 희생을 선택하게 되는데 심장에 가시를 찔러대는 나이팅게일의 묘사 속에서도 사랑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은 몸을 가시에 더 깊숙이 눌렀다. 마침내 가시가 나이팅게일의 심장을 찔렀다. 나이팅게일은 온몸을 관통하는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고통이 커질수록 노랫소리도 더 커져 갔다.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사랑은 무덤 속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중에서, 같은 책 p 51 -  

나이팅게일이 죽어가면서 가슴 속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하얀 장미꽃을 붉은 장미꽃으로 만들어버리는데 학생은 이 붉은 장미꽃을 아름답게 여긴다.  학생은 붉은 장미꽃을 교수의 딸에게 고백하면서 바치게 되지만 되레 퇴짜를 맞게 된다. 교수의 딸은 장미꽃 한 송이보다는 오히려 보석이 낫다면서 학생을 깔보게 된다.  비정한 현실을 깨닫은 학생은 장미꽃을 내다버리고 사랑이라는 것은 쓸모 없는 헛된 것이며 오직 진리야말로 세상에서 유용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여기서 학생은 자신을 향한 사랑을 위한 나이팅게일의 희생의 숭고함을 알지 못하며 교수의 딸은 보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결정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소설 속에서의 학생과 교수의 딸은 진리와 보석이라는 현실적인 아름다움에만 사로잡혀 있으며 유미주의자들을 비판한 보수주의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비록 결말은 현실적인 아름다움의 승리로 끝나게 된지만 이 소설을 통해 와일드는 피와 고통으로 가득한 나이팅게일의 자기희생을 한 차원 높은 사랑을 위한 숭고미로 격상시키고 있다.    

 

    

  진정한 퇴폐적 미(美)를 보여주다 

 

 

 

 

 

                

 

    

 

* 국내에 <살로메>가 온전히 소개된 책은 단 두 권뿐인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에도 오브리 비어즐리의 유명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민음사판에서는 요한을 ' 요카난 ' 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요카난은 요한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는 관능적인 유미주의로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서 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언급되는 세례 요한의 처형 묘사를 오스카 와일드가 새롭게 재구성하였는데유대 왕국의 왕 헤롯의 의붓딸인 살로메는 우물에 갇힌 세례 요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데 그녀는 헤롯 왕 앞에서 아름다운 춤을 춘 대가로 요한의 머리를 줄 것을 부탁하게 된다. 의붓딸의 완고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잡아 처형을 시켰으며 살로메는 잘려나간 세레 요한의 머리를 바라보면서 기묘한 아름다움에 홀리는듯한 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살로메> 삽화 중 일부, 오브리 비어즐리 作 

<살로메> 출판 당시 비어즐리가 일러스트를 담당했는데  

와일드의 유미주의를 한층 더 돋보여 주는 동시에  

살로메 특유의 광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아!  당신은 당신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했지.  요카난.  흠!  이제 나는 당신에게 입 맞출 거야. 잘 익은 과일을 깨물 듯이 내 이로 당신 입술을 깨물 거야. 그래, 당신에게 입을 맞출 거야. 요카난.  내가 그렇게 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말했어. 아! 이제 당신에게 입을 맞출 거야.....   하지만 어째서 나를 보지 않는 거지, 요카난?   

(중략)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어.  나는 당신의 몸에 굶주려 있어.  포도주도 사과도 내 욕망을 달랠 수 없어.   

(중략) 

나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했을 거야. 틀림없이 나를 사랑했을 거야. 사랑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보다 위대하지.  

 

-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 중에서, 민음사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 > p 208~210 -

 

   

 


<살로메> 삽화 중 일부, 오브리 비어즐리 作

 

살로메는 요한에게 쉴새없이 음란적인 구애를 펼쳐보았지만 빈번이 퇴짜를 맞은 살로메는 사랑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요한의 머리을 따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요한의 머리 앞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자신의 광기 어린 사랑의 욕망을 토해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살로메의 광적인 사랑을 수긍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긴, <살로메>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도 상연 중지까지 나올 정도로 오스카 와일드와 비어즐리가 재구성한 살로메의 모습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니 당연지사다.   

이런 살로메의 광기를 지켜보마자마자 두려움을 느낀 헤롯 왕은 살로메를 죽이고 만다. 헤롯 왕은 살인 앞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살로메가 두려운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살로메는 요한을 향한 사랑에 미쳐버린 나머지 요한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잘린 머리에 키스를 퍼부으려고 하고 있으며 사랑은 죽음보다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집착의 모습은 헤롯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결과를 맞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살로메의 묘사를 통해서 퇴폐적인 관능미를 강조하고 있다.  오브리 비어즐리의 인상적인 일러스트까지 더해져서 ' 죽음 ' 이라는 잔혹한 행위 속에서 우러나오는 광기 어린 사랑의 기괴한 아름다움을 강조해주고 있다. 

    

   

  와일드가 바라 본 ' 사랑 '

일반적으로 사랑이란 감정은 이성 간에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 눈에 콩깍지가 씌우기 쉽다고 말하는데 정말 사랑에 빠지게 되면 역경과 한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정신적인 힘이 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눈 앞에 보이는 대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거나 혹은 왜곡, 과장하기가 쉬워진다.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이 차와 신분 차를 극복하여 결혼을 하는 연인들도 있는 반면에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상대방을 24시간 쫓아다니는 스토커가 나올 수도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 중에서는 유독 사랑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깊게 사랑에 빠졌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사랑에 미칠 정도로.

<행복한 왕자>에서 제비는 불행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왕자의 모습에 감복한 나머지 다른 제비 무리들처럼 이집트로 건너가지 못한 채 왕자 옆에서 죽고 만다.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작은 새에 불과하는 나이팅게일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을 사랑하게 되어 자기의 가슴을 찌르는 희생을 자처한다.  <살로메>에서 세례 요한은 성서 속 위대한 성인이며 살로메는 유대 왕국의 공주이다.   

독실한 성인과 공주의 사랑이라,,, ?     

원효 대사 & 요석 공주, 온달 & 평강 공주 커플은 그렇다치더라도 세례 요한과 살로메,,,   신분 차가 많이 날 뿐더러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애초부터 결합할 수 없는 최악의 궁합이다.  

어쨌든 이 세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푹 빠졌으며 그들의 지나친 사랑은 결국 자신마저도 죽음으로 몰아 넣고 말았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사랑을 초월하는 죽음에 대해서 찬미하고 있다. 이들이 겪는 사랑의 감정과 과정 그리고 결말이 우리에게는 기이하고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와일드는 평범하기만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랑의 이면을 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와일드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그의 신봉자들이 생각도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 본질적이며 또한 분명한 이 사실은 바로 와일드가 언제나 옳았다는 것이다.  

- 호르헤 보르헤스 -

 
   

 

이번에 <별에서 온 아이>를 두 번째 읽는 동시에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도 함께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을 평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의 말에 공감했던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랑이라는 감정 뒤에 숨겨진 광기라는 이면을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주장했으며 결국은 그의 말이 옳았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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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3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3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3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02-2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면 읽으려고 했던 시리즈가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여기서 미리보니 반가워요.

cyrus 2011-02-23 19:00   좋아요 0 | URL
무슨 작품 읽으시려고 해요? 저는 아직 <도리언 그레이>는
안 읽어봤는데 단편소설집도 좋아요 ^^

stella.K 2011-02-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로메라는 희곡이 있었군요.
근데 왠지 섬뜩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직 안 읽어봤는데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늘 주저하게 만들죠.
물론 다른 책 때문에 밀려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ㅋ
쓰신 글이 좋아 일단 별찜했네요.^^

cyrus 2011-02-23 19:01   좋아요 0 | URL
사실 살로메 일러스트가 19금이라서,,, 그나마 유명한 일러스트만
포스팅했습니다. 그래도 단편소설집을 읽어볼만해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되나요? 참 좋아요 ^^

꽃도둑 2011-02-2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카 와일드 하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먼저 떠오르죠... 살로메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덕분에 알게 됐네요...^^
데카당 문학의 정수! 라는 글귀에 마음이 화라락~~ 안깁니다. 양성애자인 오스카 와일드의 삶 자체도 유미주의적이지(혹은 데카당적인) 않았나 싶은데요,,, 삶과 죽음의 양날에 키스하는 와일드의 삶은 그야말로 금기를 넘어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cyrus 2011-02-23 19: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와일드의 삶 자체 역시 유미주의적이었죠. 자신의 사상을
행동으로 실천했을뿐인데 당시 주류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죠.

아이리시스 2011-02-2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도둑님 댓글 보면서 생각했는데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늘 고루한 고전같이 느껴져서 주저주저했었는데
<살로메>와 단편집은 왠지 모르게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상념을 확 뒤집어주세요.
섬뜩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예요. 전에도 본 일러스트인데 무섭네요.
뜬금없지만 미술관 가고 싶어요, 루브르면 더 좋겠고, 이제 좀 알 것도 같은데 말이죠!^^

cyrus 2011-02-23 19:04   좋아요 0 | URL
네, <살로메>는 19금, 단편소설집은 어른들도 읽을 수 있는
동화 정도로 보시면 되요. 비어즐리와 같은 아르누보 일러스트도
참 좋은거 같아요. ^^

hnine 2011-02-2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카 와일드 희곡중의 살로메는 그 살로메군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서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오싹함을 느꼈었던 기억이 나요. 오스카 와일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면서도 이 사람은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어쩌면 그 사람 자체가 평정 보다는 광기의 상태로 살았던 사람이 아닐까 하는.

cyrus 2011-02-23 19: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

와일드의 삶 자체가 정말 wild(?)적이기도 하죠, 시대를 앞서갔을뿐인데
말이죠..^^;; 저는 아직 <도리언 그레이>를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2-23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으니
서재 한구석에 있는 오스카 와이들의 단편선을 읽어봐야겠다는 조급증이 도지네요.
동화로 밖에 못 읽었는데, 사이러스님의 글을 읽으니
그의 글 세계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치밀어오르네요.

참 좋은 리뷰예요.

cyrus 2011-02-23 19:07   좋아요 0 | URL
펭귄클래식이란 민음사에서 나온 거 두 권 다 읽으면 좋아요.
<행복한 왕자>만 같은 책에 똑같이 수록되었을뿐 와일드의 단편소설들을 읽을 수 있어요.

마녀고양이 2011-02-23 19:46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책은
이레 출판사의 오스카 와일드 환상 동화예요... ^^
아아, 읽어봐야징.

노이에자이트 2011-02-2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일드 작품은 은근히 잔인한 장면이 많지요.심지어 동화에서도...피흘리고 뜯기고...역시 압권은 살로메! 참수한 모가지를 쟁반에 받쳐들고...으...변태 같았어요.그런데 은근히 끌리기도 하구요.

cyrus 2011-02-23 21: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비어즐리가 살로메를 실감나게 묘사했지요.
그래서 원작보다 삽화가 더 유명해진거 같아요.

blanca 2011-02-2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로메 내용을 처음 제대로 알았어요. 그저 악녀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읽어 보셨어요? 오스카 와일드는 탐미주의를 대중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교묘하게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닌지. 잘 읽고 가요.

cyrus 2011-02-23 21:36   좋아요 0 | URL
사실 살로메를 악녀로 설정한 것은 당시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도 작용한 것도 있었죠. 아직 <도리언 그레이>는 안 읽어봤어요. 유명한 소설인데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2011-02-24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4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벌써 3월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나왔다.  3월 선정도서 역시 만만치가 않다. 하필이면 그 유명하고도 악명 높은(?) 니체의 책이 끼여 있다. 

니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은 단연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 신은 죽었다 ' 라는 유명한 말과 초인(위버멘쉬) 사상 이외에는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 독서모임이 3월 12일인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날 발제를 내가 하기로 한 것이다!!!

발제라고 하는 것은 그 날 모임을 주도하여 사회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모임이 잘 운영되려면 발제자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선정도서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 습득은 필수이며 모임이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해야한다.  

나름 자신 있게 자진해서 발제자로 나서게 된 것인데 , , ,  내심 부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는 먼저 맞아야 한다고 차라리 발제자를 먼저 하는게 낫다는 심산에서 한 것이니 지금 후회를 해봤자 이미 늦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니체의 사상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은근히 학구열이 높아지는 느낌도 마구 샘솟는다.   

오늘을 포함해서 3월 12일 <차라투스트라> 모임까지는 단 20일 남았다.  20일동안 니체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  , , ,   요즘에는 니체에 관련된 책들이 많아서  

       어떻게 보면 국내에 소개된 관련자료가 전무한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를 생각하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다.   

 

       다만, 그 수많은 니체 관련 연구서 중에서 신뢰할 만한  

      내용을 고르되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내가 습득한 내용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발제를 할 때 정확하면서도 쉽게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아무리 니체 관련 책을 100권 읽었다해도 정확하지 않으며 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설명해봤자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하여금 니체의 사상을 더 난해하게 만들 뿐이다. 마음 같으면 저 위에 있는 책처럼 30분만에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고 싶지만 성격상 수박 겉핧기식으로 하기 싫다.   저런 책은 그냥 간단한 입문용으로 부수적으로 읽어보면 좋을거 같다. 

 

 

 

 

 

 

 

 

  

사실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판 둘 다 가지고 있다. 당연히 민음사판 역시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_-;;  

국내에 번역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판본 중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민음사판과 책세상에서 나온 니체 전집 판본일 것이다. 특히 책세상 판본은 2006년 교수신문 선정 최고의 번역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판본이 이전까지 ' 초인 ' 으로 번역했던 개념을 ' 위버멘쉬 ' 로 음역한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역자가 니체로 학위를 받았으면 니체 전문가라고 하는데 책세상 판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펭귄클래식판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펭귄클래식판에도 니체 전문가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서문을 담당한 사람이 레지널드 홀링데일인데 ' 영국 최고의 니체 전문가 ' 라고 불리며 영국 니체학회의 명예 회장에도 역임한 경력도 있다.

그리고 우연히 니체 관련 책을 검색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니체에 관한 레지널드 홀링데일의 책이 예전에 국내에도 번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   

  

일단 현재로써는 <차라투스트라> 위주로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 니체를 이해하기 위한 옳은 발걸음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와 관련된 니체 관련 연구서나 관련 책을 검색해봤는데 그나마 읽어볼만한게 수유+너머 소속 연구원이면서도 니체 전문 연구가로 잘 알려진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뿐이었다.  나머지는 번역본, 축약본이다. 

 

 

    

 

 

 

 

  

(좌) 을유문화사판       

(우) 동서문화사판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독서에도 도전하고 싶지만 민음사 판본 <차라투스트라>마저도 읽으려는 판에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을 수 있을런지 , , ,    니체가 대학생 시절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로 쇼펜하우어는 니체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만약에 니체의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도 섭렵하고 싶다.   단순히 독서모임 발제를 위한 수박 겉핧기식 독서보다는 깊이 있으며 나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거쳐야할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를 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어려운 고전을 공부한다는게 무모한 일이지만 스스로 즐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P.S      

이 책들 이외에도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읽어볼만한 책들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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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2-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어려운 책이 한가득이군요!
이 책들을 다 읽으시게요?
어떤 발제가 될지 무지 궁금합니다!
무척 잘 하실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들어보고 싶어지는데요~ ^^

cyrus 2011-02-22 19:52   좋아요 0 | URL
제가 발제하는 날까지는 다 못 읽을거 같구요,, 일단은
기본적으로 니체의 사상을 간략하게 숙지하고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
관련 도서들을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해요. ^^;;

아이리시스 2011-02-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 란 말이죠, 다음 발제자는 시루스님이고.
저도 니체는 여지껏 못읽어서 많이 부럽네요, 대단하고.^^
개강이 얼마 안남았는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시루스님,
화이팅입니다.^^

cyrus 2011-02-23 18:57   좋아요 0 | URL
요즘 복학 때문에 노는데 정신 없어서,,-_-
과연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2-2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20일만에 차라투스투라를 읽고
발제자까지 하신다구요? 와아........... 대단하시당.
하기사 사이러스의 리뷰 쓰시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하간, 노력하시는 모습 멋지세요.

cyrus 2011-02-23 18:58   좋아요 0 | URL
그냥,, 간략하게 니체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숙지하려고 해요.
그 다음에 천천히 깊게 알고 싶습니다. 천천히~~ ^^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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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천, 그는 누구인가?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정조를 개혁 정책과 탕평책을 통해 대통합을 추진하고자 한 개혁군주로써 평가받고 있으며 24년 재위 기간을 일명 ' 정조 르네상스 ' 라고 일컫으면서 세종 시대와 함께 조선의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다. 

정조 시대와 관련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연암 박지원이다. 정약용은 자신이 개발한 거중기를 통해 화성 건설에 참여, 주도하였으며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실학자로써 정로의 총아였으나 정조 사후에 불거진 천주교 탄압에 의해서 유배 생활을 해야했다.  박지원은 청나라 여행을 통해 보고 듣은 견문들을 <열하일기>에 기록하였으며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듯 정조 시대는 정약용과 박지원이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인재의 등장 그리고 화성 축성을 통해서 문예부흥을 이끌고자 하였으며 중국으로부터 고증학, 천주교 등 다양한 학문들이 성리학으로 견고히 다져진 조선으로 유입되는 등 오늘날에도 수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되는 동시에 양면의 역사적 평가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TV 속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정조 시대의 미시사가 재해석되고 있다. 

올해에도 정조 시대와 관련한 흥미로운 역사책이 발간되었는데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예언서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 유명한 백승종 씨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다.  그런데 이 책이 유독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제목에 있는 ' 불량선비 강이천 ' 이다.  하필 그냥 선비도 아닌 ' 불량 ' 선비다. 그리고 강이천이라는 이름 역시 낯설게 느껴진다. 강이천이라는 자가 정조 시대 때 어떠했길래 불량선비라고 불리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백과사전에 ' 강이천 ' 을 검색해봤는데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68~1801,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은 진주. 자는 성륜(聖倫), 호는 중암(重菴). 아버지는 흔(俒)이다.

1779년(정조 3) 12세 되던 해부터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출입하면서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올렸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을 토대로 하는 당시의 보편적 학문성향을 탈피하여 고증학적(考證學的)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구명(究明)하는 데 전념하여 전도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1797년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정국(金鼎國)에 의하여, 주문모(周文謨)와 접촉하면서 천주교교리를 배우며, 요언(妖言)으로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보고되어 형조의 탄핵을 받아 그해 11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옥사하여 주문모와 함께 효수(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음)되었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는 간략하게 강이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포털 사이트가 운영하고 있는 검색 사전에서는 이보다 더 간략하게, 그것도 단 네 줄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이천 ( ? ~ 1801 )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 진주, 호 중암(). 진사()로서 문명이 높았으나, 1797년(정조 21) 천주교인이라 하여 사학죄인()으로 몰려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문집에 《중암고(稿)》가 있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강이천의 출생연도를 불분명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지만 강이천이라는 사람이 조선 후기 때 활동했던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사전 속 내용을 통해서 강이천이 왜 불량선비라고 불리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교(邪敎)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 사대부들 입장에서는 성리학과 위배되는 사교에 가입한 강이천을 불량 선비마냥 바라봤을 것이다.  

 

  

 

  강이천 - 조선의 이상적 공상주의자 

백승종 씨의 책에서는 수많은 문헌들을 통해 밝혀진 강이천이라는 천주교인의 생애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전 속에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강이천의 삶은 그리 평범하지가 않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후손이라는 강이천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병으로 인해 애꾸눈이 되었으며 심한 종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신체적 불편함을 이겨내고 어린 나이에 정조로부터 재능을 촉망받았으며 박지원도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볼 정도였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강이천이 향하는 곳은 양반 집안 자제라면 거쳐야 할 사대부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성리학적 이념과 정반대인 천주교였다.  당시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주문모 신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천주교에 대해서 관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정조와 박지원으로부터 사대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강이천은 왜 그 당시로서는 사학으로 규정되었던 천주교로 전회했던 것일까?  

정조 시대는 근대화의 물결이 한반도로 밀려 들어왔던 과도기적 시대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선박을 타고 시시때때로 바다에 출현하였으며 이 때부터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성대의 시대 속에서도 혼란의 시류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 떠돌기 시작한 <정감록>은 민중들 사이에서는 조선의 말세예언에 대해서 운운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은 강이천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강이천은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사회로는 조선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전망하였다. 개혁적인 정책 도입한 정조마저도 나날이 불안정과 혼란으로 거듭되는 민생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이천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여 새로운 조선의 모습에 대해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리학적 이념에서 벗어나 단지 가난한 평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의 조선을 만들고자 하였다.    

비록 그가 꿈꾸는 세상은 민속 신앙과 <정감록>의 예언적인 내용이 가미된 이상적인 유토피아였지만 번영을 위해서 민중들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강이천의 유토피아는 빈민 구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백승종 씨는 강이천을 ' 이상적 공상주의자  ' 라고 규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강이천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럽의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구제에 중점을 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강이천의 사상을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계급상으로 힘이 없는 서민들을 구제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강이천은 조선 사회에 걸맞는 이상사회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 - 개혁군주냐 보수군주냐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2> &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전 2권) 

 

이런 강이천의 비전(Vision)을 지켜본 정조가 이를 그대로 방관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전국 방방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정감록>이라는 책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불안정하고 있는 마당에 강이천의 비전 역시 정조의 눈으로 봤을 때는 민심의 불안정에 더욱 부채질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고증학의 등장까지 더해지면서 조선 사회는 성리학 이외에 여러가지 사상들이 존립하고 있는 방향으로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정조는 내심 이런 사상들의 등장 때문에 조선 왕조 성립의 기틀로서 대대로 내려온 성리학적 이념이 붕괴될 것이며 성리학의 붕괴는 곧 조선의 멸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대부 권력을 공고히 확립, 유지하기 위해서 문체반정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정조는 문체반정의 일환으로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관소설과 소품문을 금지하였으며 아예 문체와 문장 작성마저도 전통적인 한문체를 고수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에 반하는 천주교를 ' 서학 ' 이라고 몰아 붙이면서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정조가 아꼈던 인재들, 정약용과 박지원도 정조의 문체반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셋째 형 정약종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  박지원은 <열하일기>가 잡문이라고 규정받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문체반정 때문에 잠시나마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정조는 <정감록>, 천주교, 바다에 자주 등장했던 서양인들 그리고 패관소품을 성리학을 배반하는 하나의 반체제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체적인 사상에 심취하고 있는 강이천이 정조에게는 불량스러운 선비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백승종 씨는 정조를 성리학 이념을 유지하려는 보수군주였으며 반면에 강이천을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상황에 맞선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저자는 조선의 ' 문화투쟁 '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조에 대한 백승종 씨의 평가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를 뒤엎는 새로운 주장이기도 하다.  특히나 문체반정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 <정조와 철인시대의 정치>와 작년에 출간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선 왕을 말하다> 2권의 저자인 이덕일 씨의 평가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이덕일 씨는 당시 지배층이었던 노론 세력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성리학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과 같은 학문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사대부들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를 둘러싼 두 역사가들의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해서 누가 옳다고 판가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 & 박지원 - 지식인의 두 얼굴       

 

 

 

문화의 격동기에 들어선 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 모습을 단순히 정조와 강이천뿐만 아니라 그 시대 속에서 활동했던 정약용과 박지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지만 읽으면서 정약용과 박지원에 대한 언급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비난의 화살로부터 겨냥을 받았던 이 두 인물의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정조와 강이천 간의 문화투쟁으로 인해 정약용과 박지원에게도 충돌의 불똥이 튀어졌다.  정약용은 정조에게 보내는 반성문에서 자신이 천주교와 관계한 점에 대해서  ' 아이들의 장난 ' 과 같은 일이었으며 자신의 입신이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정조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는듯한 내용을 쓰기도 하였다.  정조는 박지원으로 하여금 천주교 탄압에 앞장 설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박지원은 자신이 군수로 부임하고 있는 지역의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두 지식인들은 정조의 문화투쟁의 부메랑이 자신들에게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문헌에 기록된 내용만을 가지고 정약용과 박지원이 벼슬을 통한 정계 진출의 영달을 위해서 정조의 정책에 동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오늘날 실학 사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정약용과 박지원 역시 성리학의 이념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18세기 조선 한반도에서 발생한 문화투쟁으로 인해 강이천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록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사회는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역사의 먼지로 남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가 있다.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서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새의 깃털들을 모아 붙여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뜨거운 태양 가까이 너무 높게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너무 높게 난 나머지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이카로스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전에 대한 기쁨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카로스를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상징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세계에 과감히 한발짝 더 나아가려는 그의 도전 정신은 훗날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태양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이라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이카로스처럼 강이천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사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모한 도전에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조선의 시국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그의 이상사회에 대한 염원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신체적, 사회적 역경 속에서도 희망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강이천의 ' 이카로스 드림 ' 이 단순히 문헌 속으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아쉽기만 하다.  강이천은 불량선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먼저 앞서간 생각을 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대담했던 진정한 선비였다. 그의 시대적 도전 정신은 눈여겨 볼만하며 앞으로도 강이천에 대한 꾸준한 역사적인 연구가 필요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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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연결되면, 머리 속이 복잡하면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단 말이예요. ㅠㅠ
천주교 전파가 순수한 의도만 있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제게는 서양의 시커먼 속을 지나칠 수가 없다는거죠. 그러니
천주교에 헌신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가 복잡해지고, 그로 인해
<공상적 이상주의자>에 대해 무조건 수용이 어렵다는거죠.
물론 제 기질 상으로, 이상주의자나 몽상가가 아닌 것도 한 몫 합니다만.

cyrus 2011-02-21 19:2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에서 설명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강이천과 교류가 있었던
천주교인들도 자신들이 남긴 문헌에 강이천의 사상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지 않더군요. 아마도 천주교인들도 강이천만의
생각에 대해서 수용하기 어려웠을겁니다. ^^

양철나무꾼 2011-02-2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원 관련 부분, 제 생각은 틀려요.
박지원이 강이천의 능력을 눈여겨 봤을지는 모르지만, 강이천의 성품이나 인간성은 폄훼하죠.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을까요?
그러기엔 강이천의 꿈이 너무 크지는 않았을까요?

암튼 확실한 건...리뷰가 엄청 멋지다는 것과,
강이천에게 있어 정감록과 천주교는 종교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었을거라는 생각~

cyrus 2011-02-21 19:25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댓글을 보고나니 당쟁으로 치열한 진흙탕의 정계라는
커다란 사회적 장벽 때문에 강이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나무꾼님
말씀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힘든 현실일 수도 있었구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이천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ㅠㅠ

어느 시대든 세상을 바꾸려는 소수세력은 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놓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인물들에게는 안쓰러움 같은 것들이 깃들어요. 공개적으로 이름 붙여진 천주교 박해 네 번 있을 동안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나갔는데 리뷰 읽으면서 교과서적인 것들의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이해하게 되네요. 팩트 말고 왜 그랬지? 하는 학자정신이 나온다고나 할까.

cyrus 2011-02-21 19:27   좋아요 0 | URL
저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기존에 알려져 있는 역사나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주류 역사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겁니다. ^^

반딧불이 2011-02-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과 나란히 리뷰를 올려주셨네요.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강이천의 글이 있는건가요?

cyrus 2011-02-21 19:3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참고문헌들을 보게 되면 문체반정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글과 책들은 많이 있는데 강이천이 쓴 글은 없는 거 같습니다.
강이천과 관련된 문헌들도 대부분 강이천 사건 당시 기록된
옛 문헌들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책이 백승종 씨의 책이 유일하다고 생각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2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반정에서 정약용은 정조의 편에 섰고 박지원은 제대로 벼락을 맞아버렸죠. cyrus 님의 글이 정약용과 박지원은 문학을 보는 시각에서 정반대 진영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백승종 씨도 정조는 물론 정약용에 대한 세간의 무비판적인 숭배열에도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요.

cyrus 2011-02-21 19: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인데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18세기 조선사에 대해서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부터 시작해서 정민 교수가 쓴 18세기 조선사에
관한 책까지,, 읽을거리거 더 생겼네요. ^^

잘잘라 2011-02-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앞에는 서너번 읽어봐도 잘 모르겠더니,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이라는 설명에는 뭔가 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 제 기억엔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만 남겠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 적절한 비유인듯..

cyrus 2011-02-21 21:37   좋아요 0 | URL
제가 건성으로 책 소개와 관련 없이 썼다보니 읽는데 애먹으셨군요. ^^;; 그래도 책 내용은 읽어보면 좋답니다. ^^

2011-02-23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2-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었네요.
관심도서로 찜해놓고 갑니다.
 
인간, ' 대칭 ' 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 대칭의 역사 승산의 대칭 시리즈 3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 승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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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진리와 아름다움에 관한 공부야.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부야.

- 이언 스튜어트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p 25 -

 

  

 

  불광불급 (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광적으로 덤벼들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불광불급의 열정 없이는 세상에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오랜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를 하든 간에 내가 하는 일에 정신이 나갈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소로 그때, ' 아!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구나 ' 하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광불급의 열정인 것이다.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수학자라고 하면 단순히 수학을 연구하고 어렵기 짝이 없는 수학 문제들을 푸는데 공을 바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라는 책을 읽고나서는 수학자라는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현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찬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 식으로 ' 수학자 ' 라는 인간을 정의하자면 '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 이라고 하고 싶다.

지구상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수학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든 수학자들이 바라는 담대한 꿈이며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도 길이 빛나게 할 수 있는 영광적인 표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법으로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때 얻는 기쁨의 카타르시스는 어려운 문제 하나에 집요하게 매달릴 수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고력의 힘을 발휘하는 정신적인 근원이며 수학자로서의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폴 에어디쉬 (에르디쉬, 1913~1996)

 

아마도 수학벽에 들린 진정한 수학자를 꼽으라면 바로 헝가리의 폴 에어디쉬일 것이다. 에어디쉬는 이론이나 개념의 틀을 짜는데 치중하는 수학자가 되기 보다는 특별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는 일반 수학자들과는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하루 최대 4, 5시간밖에 자지 않았고, 극도로 오랜 시간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그가 수학 해결의 결과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를 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답고 기초적인 풀이를 얻고자 하였으며 그런 수학 문제 풀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방랑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보헤미안이기도 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해결하는 공로로 화려한 수상과 상금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의 대부분의 재산을 학생들을 돕거나, 문제풀이 상금으로 내거는 것으로 썼다. 그렇다보니 집도 가지지 않는 무일푼으로 단촐한 삶을 살았다.  에어디쉬에게 수학 문제 풀이는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증명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유쾌한 지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 본의 아니게 폴 에어디쉬 이야기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사실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는 폴 에어디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폴 에어디쉬 이야기는 같은 출판사(승산)에서 출간되었던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지호에서 출간된 <화성에서 온 수학자>(품절)에 소개되어 있다.  
   

 

  

 

 

  ' 수학자 ' 라는 이름의 독한 사람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서 등장하는 수학자들은 중에는 폴 에어디쉬보다는 더한 사람들도 있다.  에어디쉬의 수학 문제 풀이 앓이를 뛰어넘는 종결자 정도는 아니지만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수학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았으며 에어디쉬의 생애 못지않은 독특한 생의 이력을 남긴 수학자들도 있었다.    

 

 

  1) 기하학을 연구했던 무명씨의 수학자들

 


 

임의의 각 삼등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부피가 주어진 정육면체 부피의 정확히 2배인 정육면체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주어진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고대 그리스 때부터 기하학으로는 풀지 못했던 세 가지의 불가능한 문제가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기 ' , '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만들기 ' , ' 2배의 부피를 가진 정육면체 만들기 ' 이다.   유클리드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는 수많은 기하학 명제들과 해법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되어 후세의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작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하학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기하학에서는 오직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 사용하여 도형을 작도해야한다고 말함으로써 오랜 세월 기하학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자와 컴퍼스만으로도 이 세 가지 작도를 증명하려고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리 똑똑한 현자들마저 해결하지 못하는 나제일수록 오히려 더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며 열심히 연구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수학자들은 비로소 자와 컴퍼스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와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분류할 수 있다고 결론을 지었으며 ' 해법이 없다 ' 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천년동안 수많은 무명씨의 수학자들은 플라톤의 정의에 사로잡혀 불가능한 기하학 문제에 매달려야 했다.    

 

  

  2) 병약한 천재, 닐스 헨리크 아벨   

 

 


닐스 헨리크 아벨 (1802~1829)

 

가난한 형편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병약한 기질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오직 하나의 분야를 해결하기 위해서 끝장 보려는 수학자도 있었다.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은 3세기 동안 수학상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던 5차 방정식의 해법을 탐구하였다. 19세라는 나이에 아벨은 5차 방정식은 기존의 방정식 풀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음을 증명하였지만 그의 증명 방법이 난해한 나머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수학계의 1인자였던 프리드리히 가우스마저 어려운 수식과 증명으로 가득한 젋은 무명 수학자의 연구 논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도이다.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아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증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5차 방정식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기에는 아벨은 너무나 가난했으며 날이 갈수록 병마로 인해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나 아벨은 자신의 수학적 공로를 통해서 고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동료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아벨의 연구 결과는 차즘 인정받기 시작하게 되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은 젋은 아벨을 교수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교수 임명직을 알리는 초대장이 도착되기 이틀 전에 아벨은 26세라는 짧은 나이로 불행한 생애를 마쳤다.  

어떻게 보면 아벨의 생애는 정말 불행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른 나이에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한 수학적 성과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세라는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가 주는 쓴 맛을 맛 본 아벨은 자신의 생활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 연구를 통한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을 구제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강박관념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오직 수학 연구를 위해 소진해버렸다.  그런 아벨의 삶은 젊은 천재의 요절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3) 불운한 혁명가, 에바리스트 갈루아    

 

 


에바리스트 갈루아 (1811~1832)

 

수학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수학자 2명은 앞서 소개했던 아벨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에바리스트 갈루아이다.  아벨은 26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갈루아는 아벨보다 5살 적은 21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아벨보다 더 불운한 경험을 가득찬 삶을 살아야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공통적으로 이 두 사람은 5차 방정식이 분야의 연구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죽고 난 뒤에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연구로 인해 수학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는 점에서 보면 이 두 사람의 생애는 흥미롭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갈루아는 수학적 신동의 기질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학 성적은 동급생들보다 더 뛰어났으며 오히려 수학 공부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7세의 나이로 5차 방정식에 관한 주제로 첫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의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가 논문을 분실한 탓에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신의 능력을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했던 열혈 청년 갈루아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논문 심사에서는 탈락하고 말았고 세 번째로 다른 권위 있는 수학자로부터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논문 제출에 응모했으나 하필이면 심사위원 수학자가 사망하게 되렸기 때문에 갈루아의 세 번째 논문은 또 분실되고 말았다. 

정말 아벨 못지 않게 지독하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 연속된 불행의 좌절 속에서 갈루아는 자신의 혈기왕성한 열정을 새로운 사회로 개선하려는 7월 혁명으로 향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시도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호전적인 기질이 강한 나머지 젋음 특유의 힘을 주체하지 못했던 갈루아는 7월 혁명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잠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그 사이에 연애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자신의 연애 관계가 짧은 수명으로 마감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원인이 될 줄은 그는 알고 있었을까?   

복잡한 연애 관계로 인해 갈루아는 결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 남자들에게 결투는 자신의 자존심을 걸린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결투 전날 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되고 갈루아는 자신과 같은 소속인 공화당원이며 절친한 사이의 친구인 슈발리에에게 유서를 남겨둔 채 결투로 인한 총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갈루아가 죽기 전날에 쓴 유서는 지금도 수많은 역사가들의 연구 대상이며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서에는 단순히 죽기 전에 남기는 보통 평범한 내용만 남겨져 있지 않다.  마무리하지 못했던 연구 내용을 슈발리에에게 논문으로 출판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기 하루 전에 갈루아가 급하게 쓰다보니 유서에는 휘갈겨 쓴 수학적 용어와 수식들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데 그 내용에는 훗날 5차 방정식에 대한 연구에 대한 ' 갈루아의 이론 ' 으로 불리게 될 내용에서부터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군(group)의 이론까지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도 갈루아가 고안한 이론들은 물리학, 우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갈루아는 유서에서 자신이 ' 생각해 낸 ' 이론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의 말대로 실현되었다.   

갈루아의 유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생전에 그토록 인정 받지 못했던 5차 방정식 연구를 혁명 참여 와중에서도 천착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기 하루 전날에 영영 무덤으로 가지고 갈뻔했던 자신의 연구 내용들을 유서를 통해서나마 알리려고 했던 그의 모습은 뼛 속 깊이 ' 수학자 '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들만 느낄 수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적 지식 하나 제대로 건지기는커녕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된 기하학 관련 내용이나 군의 이론 등에 대해서 자세하세 설명하지 못했다.  책의 부제는 ' 대칭의 역사 ' 라고 달고 있는데 정작 ' 대칭 ' 이라는 주제에 대한 내용이 아닌 엉뚱하게도 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폴 에어디쉬에다가 책 속에서 소개된 수학자들의 생애만 열거하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주제와 논지에 벗어난 글이 되었음을 뒤늦게나마 알리려고 한다.  

최근에 같은 출판사에서 마커스 드 사토이의 <대칭>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알고 예비독서 삼아서 읽어봤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 책 역시 이언 스튜어트의 책보다 한층 더 수준이 놓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수학적 개념을 알기 위한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본문 중간에 수식은 당연히 나온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학적 용어와 수식만 보고 막연히 어렵다고 해서 짐짓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언 스튜어트는 대중들을 위한 수학 전문 저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읽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정말 수학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며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수학적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나는 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읽는데 애먹었지만 그렇다고 이번 독서가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수학 지식은 건지지 못했지만 수학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면 오늘날에도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수학적 개념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학의 역사 속으로 남게된 수많은 수학자들의 업적을 확인하면서 이들이 남들보다 수학 연구에 매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다르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얻게 되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으며 고생해선 찾아낸 진리라는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수학자들은 진리라는 빛나는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발견한 수학의 진주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느낄 수 없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집중력을 하나의 수학 문제 해결에 쏟아부었다. 인정을 받는냐 못 받느냐에 떠나서 수학자들은 오직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불광불급의 열정을 발산시켰다.  

수학자가 아닌 나로써는 수학자들이 발견해낸 진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어려웠던 수학 문제를 풀어본 경험을 생각해보면 수학자들이 느꼈던 진리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인고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가 나오면서 느끼게 되는 짜릿한 기쁨, 그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진주가 뿜어내고 있는 수학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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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2-1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자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결과
디자이너=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내는 사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리뷰를 읽었어요. 그랬더니 그렇다면 수학자도 디자이너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데 몰입한 수학자와, 누군가에게 발생한 어떤 문제(또는 필요)를 해결하는데 몰입한 디자이너의 모습이 다르지 않군요. 흠..

cyrus 2011-02-20 11:26   좋아요 1 | URL
수학자를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서 몰입하기도 하죠. ^^

마녀고양이 2011-02-1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자는 약간 미친겁니다 란 에세이를 읽고,
수학자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었죠. 너무 멋지다구요.
무슨 일이든 한가지에 미쳐있고,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행복하다면
그 생애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구요.

수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미학이라잖아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단아한 공식으로 풀어내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사이러스님두 그렇죠?

cyrus 2011-02-20 11:32   좋아요 1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수학 선생님이 폴 에어디쉬 관련 책을 추천하셔서
읽어봤는데 이 사람 참 괜찮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요. 수학 용어와 수식이 있는 책보다는
오히려 수학자들의 생애나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마고님 말씀 듣고보니 아르키메데스가 생각나네요. 자신이 죽고나면
묘비명에 자신이 발견한 수학 원리들을 새기라고 유언을 남겼거든요.
정말 수학자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간결한 공식으로 풀어내는 과정과
결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양철나무꾼 2011-02-20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칭'은 가지고 있어서 설렁설렁 넘겼어요.
(넘 어려워요~)
'대칭'을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랑 엮으시다니...좀 멋지십니다~^^

cyrus 2011-02-20 11:33   좋아요 0 | URL
<대칭>이라는 책,,, 어,, 어렵나요? ^^;;
아무래도 이언 스튜어트의 책의 부제가 ' 대칭의 역사 ' 라서
읽어봤습니다. 여전히 ' 대칭 '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수학의 역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어서 좋았습니다. ^^

2011-02-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0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1-02-20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파란 나비 사진은..제가 오래~전에 어떤 나비박물관에서 찍어온 녀석과 똑같군요.
그걸 자랑한답시고 한 번 어딘가에 인터넷으로 올렸는데..그 이후로 자주 보이는..
설마 그 때 그 사진이 저 사진은 아니겠지이~ㅎㅎ

그나저나, 오랜만에 싸이러스님한테 댓글을 멋지게 달아야지! 하고 왔는데..
수학이라뇨,수학이라뇨...OTL (털썩);;

cyrus 2011-02-20 16:30   좋아요 1 | URL
그래도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시다니 반갑습니다. ^^
제가 독서 취향이 독특하니 엘신님이 이해해주세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학을 엄청 못했어서, 그래도 고등학교 때 이과반으로 갔고, 수학에 대한 책은 이해 못해도 한 번 들춰봐야 속이 시원하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학창시절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책이나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재미조차도 못붙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전 정답없는 사회과학쪽엔 자신 있었지만 수학공부도 답안지 펴놓고 맞춰가곤 했었어요. 말이 안되죠.

이젠 별 쓸때도 없지만 미드 <넘버스> 보고 수학 엄청 못했던 과거가 좀 억울하던데요.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은 이유불문하고 멋져요. 나쁜 일 빼고요. 제목이 멋진 책인 것 같아요. 수학 아니고 미학 책인줄 알았잖아요,ㅋㅋㅋ

cyrus 2011-02-21 19:35   좋아요 1 | URL
죄송해요, 아이리시스님도 제 글 때문에 착각하셨네요.^^;;
저도 솔직히 수학 문제 푸는 건 좋아했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수능 때 수리영역 점수가 개판으로 나왔던거 생각하면,, ㅠ_ㅠ
지금은 수학 문제 푸는 거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학자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