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숭배하는 대상을 그리고 풍경을 그리고 욕망을 형상화하고 관계와 입장을 정의한다. 마침내 내면의 풍경인 자화상을 그린다. 타인의 얼굴을 보듯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며. 동서고금의 많은 미술가는 자신에 대한 궁금증,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를 자화상에 반영해왔다. 화가의 자화상은 예술가로서 자아를 확보하기 위한 자기탐구의 과정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또한, 화가가 사는 그 시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화상이라는 장르가 정착되기 전까지 화가들은 종종 자신의 그림 속에 본인의 얼굴을 몰래 그려 넣곤 했다. 화가의 시선은 그림 밖의 관람객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 연구가들은 군중이 가득한 그림 속에 숨어 있는 화가의 모습을 미니(Mini) 자화상인 동시에 화가의 서명으로 본다. 비록 그림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이를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화가라는 사실을 관람객에 넌지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화가가 지녀야 할 자긍심을 표출한다.

 

 

 

 

 

그렇지만, 화가가 자의식이 강한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자화상 한 점 남기지 않은 화가들도 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추한 외모를 인식해서였는지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다빈치의 자화상은 긴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의 자화상으로 추정한 것뿐이다. 일부 연구가는 다 빈치의 자화상이 아니라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스승의 초상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다빈치의 자화상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그림이 없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의 모델이 다 빈치라는 가설이 하나의 신화처럼 전해지기도 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가들은 동성애자였던 다빈치가 자신을 여성으로 그렸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이용해 다빈치의 자화상과 모나리자를 비교했는데 여러 가지의 유사한 부분이 발견되었다 한다.

 

당신이 무심코 보면서 지나쳤을 수많은 그림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화가의 얼굴이 숨어있다. 이제부터 소개할 그림 중에는 대중적으로 친숙한 것도 있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리고 컴퓨터 사양에 따라 그림 이미지의 명암과 색상에 약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림 속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마트폰 화면에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그냥 재미로 봤으면 한다. 정답은 글 마지막에 있는 접힌 부분 펼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총 7점의 명화들을 보게 되면  월리를 찾아라시리즈를 만든 영국의 삽화가 마틴 핸드포드의 아이디어가 이미 미술의 대가들이 쓰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 오른쪽 패널  1506년경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5~1541년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1575년경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1510년 

 

 

 

 

 

 

피터르 브뤼헐  「세례자 요한의 설교」 1566년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랑루주」  1892~1895년

 

 

 

 

 

 

 

에두아르 마네  「튈르리에서의 음악회」  1862년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1807년

 

 

 

 

 

 

 

 

※ 정답

 

 

 

1. 히에로니무스 보스

 

 

 

 

 

 

 

2. 미켈란젤로 (성 바르톨로메오는 살가죽이 벗겨지는 벌로 순교했다. 그가 들고 있는 자신의 살가죽에 나타난 얼굴이 미켈란젤로다. 회개의 의미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3. 보티첼리

 

 

 

 

 

 

4. 라파엘로 (관람객 쪽으로 바라보는 젊은 인물)

 

 

 

 

 

 

5. 브뤼헐

 

 

 

 

 

 

6. 로트렉 (소년시절에 다리를 크게 다쳐 짧은 체형의 불구자가 되었다)

 

 

 

 

 

 

7. 마네

 

 

 

 

 

 

8. 다비드

 

 

 

 

 

 

 

※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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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1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절한 당대의 천재화가 라파엘로는 꽤 아름다운 청년이었군요..미켈란젤로나 다빈치 정도 살았다면 엄청난 작품들을 남겼을텐데...

cyrus 2015-03-16 15:55   좋아요 0 | URL
라파엘로가 미남이라서 짧은 인생을 살았음에도 여러 명의 여인들과 사귀었다고 해요. 비록 작품 수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보다 적지만, 연애 횟수로서는 단언 라파엘로가 최곱니다. ^^

만병통치약 2015-03-1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아 놓고 보니 멋지네요! / 그래서 제가 그림을 그리면 사람얼굴이 그렇게....

cyrus 2015-03-16 15:56   좋아요 0 | URL
예전에 중학생 때 미술시간에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어요. 그 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려요. 이상하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낯설어요.

해피북 2015-03-1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너무 재밌어요 ㅋㅡㅋ
마치 영화에서 감독들이 까메오로 출연하는것 처럼 그림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네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요^~^

cyrus 2015-03-16 15:59   좋아요 0 | URL
제가 알아본 그림 이외에도 더 있는데 너무 많아서 패스했어요. ^^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자와 단둘이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상황과 그토록 사고 싶었던 절판본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되는 상황 중에 딱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지금까지 살았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절판본을 운 좋게 발견하는 성공률이 짝사랑하는 여자와의 데이트가 성사되는 성공률보다 월등히 높았다. 관심 있는 여자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거(?)는 내 삶에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지금은 여자보다는 책 읽는 시간이 좋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절판본을 찾는 것도 기적이 필요하다. 책방이나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책이나 비싸서 못 사는 책을 싸게 살 때가 있다. 지금까지 책방과 온라인 중고서점을 애용하면서 수차례의 기적을 경험했다. 특히 지난 주말에 절판본을 발견했던 기적 같은 일은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적의 발단은 책을 주제로 한 글이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시사IN>에 게재된 박태근 인문MD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글의 제목은 「그때 그 시절의 ‘베스트셀러’들」.(글 제목을 클릭하면 박태근 MD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 토토가’로 1990년대 유행가를 따라 불러보는 추억에 공감했듯이 1990년대 베스트셀러가 진열대를 차지했던 서점의 풍경을 되돌아보면서 출판 및 독서문화의 향수를 느껴보는 글이었다. 박태근 MD는 1990년대에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독특한 성격의 베스트셀러로 《월리를 찾아라》를 언급했다.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월리를 찾아라》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수준 높은 외국 그림책이 많이 나오지만, 19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그림책을 꼽으라면 단언 《월리를 찾아라》가 되겠다. 책을 멀리하는 아이의 책장에 한 권쯤은 꽂혀 있을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월리를 찾아라》를 펼치는 순간, 공부할 때 생기지 않았던 집중력이 갑자기 생겨난다. 요즘 아이들은 각종 게임과 어플이 가득한 최첨단 장난감 스마트폰이 없으면 하루라도 못 산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 눈과 머리를 모으고 월리를 찾아대던 시절이 있었다. 《월리를 찾아라》 는 단순히 숨은 그림을 찾는 그림책이 아니다. 아이들의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해주는 멋진 장난감이었다.

 

월리는 1987년에 영국의 삽화가 마틴 핸드포드의 펜에 의해 탄생했다. 대교출판을 통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다,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대교출판에서 나온 《월리를 찾아라》를 읽었다. 2008년에 예꿈이라는 출판사에 재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월리로 알려졌지만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왈도, 우리나라와 노르웨이는 윌리라고 부른다. 대교출판에 처음 나왔을 때는 ‘월리’라고 표기했는데, 예꿈출판사에 재출간되면서 ‘윌리’로 개명되었다. 사실 예전에 월리를 윌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월리라는 발음이 지금도 여전히 생소하다. 

 

월리 열풍에 힘입어 TV 만화 시리즈로도 나왔는데 이십년 전에 KBS 2TV에 만화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만화 에피소드 중간에 월리가 숨겨진 그림이 나오는데 시청자들도 월리를 찾아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시간 관계상 그림을 잠깐 몇 초만 공개했는데 월리를 찾으려고 TV 브라운관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다가 어머니한테 혼나기도 했다. 그 당시 TV는 요즘처럼 거대한 HD 화면이 아닌 아날로그 화면이라서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월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화가 끝나고 나면 월리가 있는 곳을 알려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월리는 숨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월리를 찾아라》에 관해서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어렸을 때 《월리를 찾아라》를 사지 못했다.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졸랐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끝내 사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림만 있는 책이 학습 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서 《월리를 찾아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친구와 로봇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노는 것보다는 《월리를 찾아라》를 보는 것이 좋았다. 친구의 집에 가면 친구가 가진 장난감을 탐내는 것이 당연한 건데 나는 《월리를 찾아라》를 갖고 싶었다.

 

 

 

온라인 중고서점에 판매되는 월리 시리즈의 최저 가격이 15000~20000원대이며

제일 비싼 가격으로 40000원을 넘는다.

 

 

내 마음속에 잔불로 남아있던 어린 시절 책에 대한 소유욕이 다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월리를 찾아라》의 중고가가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라딘 중고샵에 검색을 해봤다. 세상에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그것도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 두 권이 중고샵에 있는 것이다. 두 권의 책 상태가 ‘최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주문했다.  

 

 

 

 

 

 

어제 주문한 책을 받았다. 15년 만에 추억의 책을 만져보게 되었다. 비록 내가 어렸을 때 즐겨 보던 책은 아니었지만, ‘날 찾아봐라!’라고 말하듯이 해맑게 웃는 월리의 얼굴이 무척 반가웠다. 눈 빠지도록 월리를 찾았을 땐 실실 웃는 월리의 얼굴이 얼마나 밉상이었던지. 깨알같이 그려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월리만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월리는 얄밉게도 어린 독자에게 적지 않은 미션을 부여한다. 월리의 여자친구 웬다, 마법사 할아버지, 강아지 우프, 월리를 괴롭히는 우드로를 찾아야 하고, 월리가 여행 중에 잃어버린 소지품들도 찾아야 한다. 이걸 다 찾으려면 족히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월리보다 제일 참기 힘든 캐릭터가 강아지 우프다. 우프는 빨간 줄무늬 꼬리만 드러낸 채 숨어 있다.

 

 

 

 

 

 

만약에 월리 시리즈가 다시 나온다면 아이들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의 자리를 뺏을 수 있을까? 서글프지만 월리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집중력을 쏟아낸다. 학습 능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시력을 떨어뜨린다. 안구가 움직이는 횟수가 적고, 너무 한곳에만 향하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벌써 시력이 나빠서 월리처럼 안경을 쓰고 다닌다. 《월리를 찾아라》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눈이 피로해서 시력에 안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내심, 관찰력을 높이는 데 도움 된다. 나는 월리 시리즈가 아이들보다는 시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는 중장년층이 많이 애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력 저하를 예방하려면 안구 운동을 자주 해야 한다. 즉, 안구를 상하좌우로 자주 움직여야 한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월리를 찾아보니까 눈에 힘이 들어간다. 스마트폰의 존재가 잊힐 정도로 몇 시간동안 월리를 찾으러 그림 여행을 했다. 눈이 피곤해도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월리 덕분에 이십 년 전의 시간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림에 푹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이 잡문을 보는 이웃님들도 방 한 구석에 먼지 쌓인 채 잠들어 있을 월리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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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3-1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찾다가 인내심 폭발해서 막 난리치곤 했는데 ㅋㅋㅋ 그리고 나라면 책 말고 남자를 택하겠어!!

cyrus 2015-03-12 22:31   좋아요 0 | URL
역시! ^^

[그장소] 2015-03-11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그 남자랑..같이 한정판 내지 절판본 그 책을 사러가면 안되는 건가요? ㅎㅎㅎ

앤의다락방 2015-03-12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옛날 생각나네요^ ^

새아의서재 2015-03-12 0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야나님이나 그장소님에게 한표. 저도 남자욧!

붉은돼지 2015-03-12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자는 성공률이 높다고 하셨으니 앞으로는 전자를 한번 선택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ㅋㅋㅋ

cyrus 2015-03-12 22:34   좋아요 0 | URL
전자의 성공률이 너무 저조해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sslmo 2015-03-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과 더불어 눈의 초점을 애매하게 맞춰 숨겨진 숫자나 그림따위를 찾아내는게 있었는데, 전 그걸 하는 요령을 아직도 모른다는~ㅠㅠ
때문에 아직도 이 책이 왜 날개돋힌듯 팔렸었는지 모른다는~ㅠㅠ

새아의서재 2015-03-12 09:25   좋아요 0 | URL
매직아이맞죠? ㅋ 저도 아직도 그거 어뎧게하는지몰라요. .

sslmo 2015-03-12 09:30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그동안 적조하셨어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달걀부인님?^^

cyrus 2015-03-12 22:39   좋아요 1 | URL
매직아이도 90년대에 많이 나왔어요. 저도 월리 시리즈가 유행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신기해요. ^^

새아의서재 2015-03-12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안일들하느라구요. 다시 중국에 왔거든요. ^^ 이제서야 정리하고 어제부터 책 잡았어요.

sslmo 2015-03-12 09: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자주 아껴 뵈여~^^

수이 2015-03-12 10:00   좋아요 0 | URL
컴백하셔야죠 얼른~ ^^

transient-guest 2015-03-13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사랑 데이트는 말 그대로 데이트일 뿐이지 사귀게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저도 절판본 구입기회를 선택하겠습니다!!! 참 현실적이지요??ㅎㅎㅎㅎ

cyrus 2015-03-13 20: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아요. 현실적인 선택은 맞는데... 쪼금은 슬프네요.. ^^;;

[그장소] 2015-03-13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트도 첫..하루가 ..한번이 있어야 다음도 그다음도 있죠..꼭 될 거란 보장이 되어있는 만남은 정략결혼뿐 아닌지ㅎㅎㅎ그건 어쩐지 거래같잖아요.^^ 살면서 가슴떨며 누군가의 그림자만 따라 걷던 기억조차 없이..아니면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 사람조차 없다..여겨지면 참 사막같을것 같아요.추억만들기..란 노래 도 있죠..왜~^^
넘..꿈 같은 소리만 하죠..ㅎㅎㅎ 제가 잘 그래요.균형을 많이 깨뜨리곤 하는 편인지도 모르겠어요..

cyrus 2015-03-13 20: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연애도 일단 직접 해보고 경험이 많아야 느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짝사랑은 많이 해봤는데 다음 단계로 발전한 경험이 없어요... ^^;;

[그장소] 2015-03-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상처받기 싫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트라우마같이)안전한 길로만 다니는 일종의 습관이실지도요..^^
짝사랑에 빠진 자신을 더 사랑하시는 걸까나..?!ㅎㅎㅎ
계단이 없는건지..아님..길없는 곳의 것만 보시던가요..내 연애 말고 타인의 연애만이 이상적으로 보이는..^^

cyrus 2015-03-14 21:30   좋아요 0 | URL
상처받기 싫은 것도 있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연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
 
뭉크 뭉크 다빈치 art 1
에드바르드 뭉크 지음, 이충순 옮김 / 다빈치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에 욕심을 부린다. 부, 명예, 건강 그리고 행복한 삶 등 여러 가지를 누리고 싶어 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사람 욕심은 한없지만, 그중 가장 큰 욕심은 무병장수.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이 건강이다 보니 의학 수준은 높아졌다. 그렇다고 모든 질병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것은 아니다. 소음과 공해 그리고 전자파가 가득한 도시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본능적으로 많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기아와 질병 또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지금 우리에게 기아와 전쟁의 두려움보다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건강에 대한 불안에서 매 순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뭉크의 그림은 무의식 속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뇌를 현실보다 어두운 색채 속에 일그러진 선으로 그렸다. 뭉크의 예술 세계에는 항상 불행했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림이 바로 일기이며, 자전이고 삶의 고백이다. 뭉크는 노르웨이에서 군의관 아버지와 독실한 신앙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크게 의지가 되었던 누이마저 잃게 되자 자신도 늘 죽음의 환각에 시달렸다. 그 자신 어린 시절을 병과 정신착란,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 찼었다고 회상했을 정도였으니, 그의 그림의 중심주제가 죽음이었다는 해석도 일리가 있다.

 

뭉크는 미술의 길에서 자기를 발견했고, 자신의 불행한 심정을 가장 진실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으로 새로운 삶의 통로를 찾았다. 그러나 불행은 그를 떠나지 않았으니 그의 그림이 과격하다 하여 전시장이 폐쇄되기도 했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 착란으로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뭉크의 삶은 끊임없는 의문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미술이 유일한 위안일 뿐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편안함을 얻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성격이상자였다. 애증이 엇갈리는 이들 부자의 관계는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뭉크는 아버지의 자살로 우울증에 빠져 괴로워한다. 아버지 사망 소식을 알게 된 날에 쓰인 뭉크의 일기에 당시 심란했던 뭉크의 정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뭉크의 정신 상태는 길에 지나가는 늙은 남자를 죽은 아버지와 닮았다고 착각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드바르트 뭉크  「담배를 들고 있는 자화상」 1895년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책상 옆에 앉아 있던, 입 언저리의 담뱃대에서 회색 연기를 뿜어내고, 등은 굽고 낡은 잠옷 차림이던, 사람들이 말을 건네면 항상 친절한 미소를 보내던 그가. 짙은 담배연기 사이로 미소를 짓던 바로 그가. 다시는 그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44쪽)

 

 

뭉크 연구가들은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이 상처받은 유년기의 기억이 되었고, 뭉크 예술세계의 우울한 색조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뭉크가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쓴 미공개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버지의 죽음 역시 정신적으로 연약한 뭉크를 괴롭히게 한 불행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뭉크는 반으로 갈라져 버린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던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버려 상실되었다는 사실에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뭉크는 늘 죽음이 자신 곁에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뭉크는 「담배를 들고 있는 자화상」을 통해 회색 연기가 나는 담배를 피웠던 아버지의 영혼을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캔버스에 잠시 불러들인다. 아직도 아버지의 표정을 잊지 못한 것일까. 죽은 아버지를 떠올릴수록 뭉크는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죽음의 얼굴은 미소 짓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뭉크 앞에 나타난다. 어두컴컴한 배경에 시나브로 사라지는 담배연기를 눈으로 따라가면 무언가를 주시한 채 불안감에 떠는 뭉크의 동공을 마주친다. 틀림없이 뭉크가 두려움 짙은 눈으로 바라본 것은 죽음의 얼굴이었으리라.

 

《뭉크뭉크》는 미공개 일기와 자신을 후원해준 구스타프 쉬플러에게 보낸 편지들 그리고 뭉크가 직접 쓰고, 삽화가 있는 짤막한 이야기 세 편이 담겨 있다. 회화, 드로잉,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방식을 이용하여 주로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흔적들과 아픔을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하는데, 그와 같은 형상을 좀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설명적인 텍스트를 작품에 덧붙이기도 한다. ‘자유도시의 사랑’과 아담과 하와를 패러디한 ‘알파와 오메가’는 분열증에 가까운 뭉크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뭉크는 ‘알파와 오메가’에서 오메가를 뱀의 유혹에 굴복하는 하와보다 더 악랄한 여자로 묘사했다. 오메가는 알파 몰래 짐승들과 부정한 관계를 맺는다.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고뇌에 시달렸던 뭉크는 여성에 대한 악의적 감정을 ‘알파와 오메가’에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뭉크는 죽음 다음으로 여성을 두려운 존재라고 봤다.

 

뭉크의 일기는 뭉크의 내면에 투영된 불안과 절망, 자연의 절규 자체다. “핏빛으로 물드는 하늘 아래 검푸른 해변과 도시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는 저 유명한 「절규」의 착상 이미지뿐만 아니라 일기 속에서도 온통 기괴한 비명으로 넘쳐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 덮쳐올 죽음의 거대한 손길에 대한 예견이라고나 할까. 앙드레 말로는 “예술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덧없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삶에 대한 열망을 담아낸 게 예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예술가는 가도 예술은 살아남아 언제까지나 그 영혼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뭉크는 살아 있는 영혼을 그대로 캔버스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살아 있는 생생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숨 쉬고, 느끼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뭉크는 사랑, 죽음, 고통, 불안 등의 감정을 거친 붓질로 그린다. 그것은 불행한 개인사에 기초한, 뼈아픈 영혼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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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3-1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크는 그림이 의외로 익숙(?)해서 관심이 많이 가는 화가예요.불행한 개인사라... 읽어보고싶습니다

cyrus 2015-03-11 16:14   좋아요 0 | URL
혹시 익숙한 그림이라면 ‘절규’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 저는 처음에 ‘절규’ 같은 뭉크의 그림을 봤을 때 불쾌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뭉크의 생애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림이 어두워서 여러 번 볼수록 슬픈 느낌도 나요.

붉은돼지 2015-03-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아담이 눈 뜰때의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한 물건이 아마 턴테이블, 타자기 그리고 뭉크화집이 아니었던가요

cyrus 2015-03-11 22:2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는 이 주인공을 보면서 화보, 타자기, 절판본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

나와같다면 2015-05-1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크의 `절규`를 보면 그가 느낀 극한의 공포. 공황상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것 같아요. 그 작품은 극 사실주의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분명히 그 하늘 색을 봤고.. 그 적멸감을 느꼈을거예요....
 

 

 

 

 

 

 

 

 

 

 

 

 

 

 

 

 

 

 

 

 

 

 

 

 

 

 

 

 

 

 

고흐는 노곤한 일상에 지친 영혼을 카페에서 위로받았다. 카페는 그에게 생의 활력을 주는 비타민이었으며 미적 감성을 일깨우는 각성제였다. 카페는 문을 여닫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원하는 시간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어떤 구속도 없었다. 그곳은 법이 없는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낮이고 밤이고 술을 마셨고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술잔은 끝없이 채워졌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고흐는 삼시세끼를 거르더라도 커피만큼은 꼭 마셨다고 한다. 그가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화실을 옮긴 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커피를 끓이는 도구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커피에 의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술과 더불어 진하디진한 커피는 유약했지만, 열정적인 젊은 예술가에게 힘을 쏟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아를에 머무는 동안 카페에 관한 그림도 여러 점 남겼다.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야외 카페의 밤의 풍경을 파랑, 초록, 노랑으로 밝고 화려하게 표현한 「밤의 카페 테라스」가 대표적 작품이다. 지금도 프랑스 아를에 가면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됐던 카페를 찾을 수 있다.

 

 

 

 

 

이 그림 속에 예수와 열두 제자 그리고 십자가를 찾으셨습니까?

 

 

최근 「밤의 카페 테라스」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 연구가 제어드 박스터는 「밤의 카페 테라스」속에 종교적 상징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석을 따르면 카페 내부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종업원은 예수, 그 옆에 테이블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은 열두 제자, 카페에서 걸어 나가는 사람은 유다를 상징한다. 노란색은 고흐가 즐겨 사용하는 색상이다. 박스터는 노란색을 천국을 의미하는 색상으로 해석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 위에는 카페 내부를 밝히는 노란 불빛이 있는데 예수의 후광이라고 주장했다. 또 카페의 창틀에 십자가 형태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박스터의 해석대로라면 고흐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 ‘최후의 만찬’을 그려 넣은 셈이다.

 

고흐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에는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종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고향에 돌아와 선교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성서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할 정도로 종교적 욕구가 강렬했던 고흐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테오야, 지난 일요일에 네 형이 처음으로 하느님의 성전에서 설교를 했어. “이 자리에서 내가 평화를 주겠노라.” 라고 쓰여 있는 자리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복사해서 동봉한다. (중략) 설교단에 서 있을 때, 나는 지하의 어두운 궁륭에서 따사로운 한낮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오는 기분이었고, 이날 복음을 전하려는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좋았어. 그렇게 잘하려면 마음속에 복음을 담고 있어야 해. 그래야 그분도 기꺼워할 거야.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잖아.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명하면 확고히 자리 잡겠지. 우리를 부른 그분은 신실하니까, 그것을 성취할 거야. (1876년 10월 31일에 쓴 고흐의 편지 중에서, 《고흐의 편지 1》 64~65쪽)

 

박스터의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예전에도 고흐가 그림에 종교적 상징을 그려 넣는다는 미술 연구가의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인 허핑턴포스트에서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해석에 관한 기사가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로 국내 일간지에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있는 내용 그대로 전달했다. 그렇지만, 박스터의 해석을 하나의 가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면 고흐의 그림을 종교적 상징과 결부시켜 보는 가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나는 박스터의 해석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노란색이 천국의 색이라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시대별 유행과 환경에 따라 색채감정, 색상의 의미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래서 색은 인간의 문화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색에는 여러 가지 상징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노란색은 모순의 색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이 연상되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녀서 권력을 상징하면서도 경고, 메마른 황무지, 상황에 따라서는 멸시의 색으로 인식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품들은 대체로 황금의 금박이 많이 들어가 있다. 실제로 이 당시에는 그림 가격의 절반 정도를 금박을 입힐 정도로 물감보다 금을 많이 사용했다. 당시 금은 고가의 상품이다. 당연히 금박을 입힌 그림의 가격은 천청부지로 솟아오른다. 그림에 들어간 황금은 감각을 초월하는 기독교 세계에 대한 찬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풍요를 예찬하는 세속적인 취향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중세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호했던 노란색은 ‘황금색’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노란색은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는 이단자를 가리키는 색이었다. 독일의 창녀는 노란 머릿수건이나 망토를 착용해야 했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옷은 노란색으로 그려졌다. 사실 기독교 전통에서는 노란색을 절대로 사용되어선 안 되는 금기의 색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나 이단자를 차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무조건 노란색이 들어간 복장이나 모자를 착용하도록 강요했다.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년 

 

 

의학자 문국진은 의학의 힘을 빌려 고흐의 노란색에 대해서 색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사용했고, 유독 그의 그림에 노란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를 지병으로 앓고 있던 황시증(黃視症)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압생트라는 독한 술을 즐겨 마신 고흐는 이 술의 독성으로 인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앓았다. 이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고흐는 노란색을 좋아했다. 고흐에게 노란색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그저 칙칙하기만 했던 자신의 그림을 더욱 화려하게 빛내주게 만드는 구원의 색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색상에 지나치게 탐닉할수록 고흐의 건강은 더욱 악화하였다. 고흐는 크롬(Chrom) 성분이 있는 노란색 물감을 자주 사용했는데 당시 시장에 나온 카드뮴 노란색 물감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궁핍한 생활을 보내는 고흐는 가격이 싼 크롬 물감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크롬 물감은 카드뮴 물감보다 독성이 많은 물질이었다. 고흐의 크롬 물감 사용이 발작과 환각 증세를 일으키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경제 전문 일간지의 모 논설위원은 박스터의 해석을 글감으로 삼아 열두제자를 주제로 오늘 자 칼럼을 기고했다. 논설위원은 박스터의 해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노란색을 천국의 색이라고 언급하면서 고흐의 종교적 열망을 강조한다. 기독교에 심취했던 고흐의 새로운 면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은 좋으나, 타당성이 떨어지는 해석을 일종의 지식처럼 여겨서 전달해선 안 된다. 흥밋거리에 불과한 엉터리 정보를 인용하기보다는 고흐의 편지를 인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다만 이현령비현령에 가까운 자의적인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정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그럴듯한 내용의 가정은 쪼가리 지식으로 포장되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유포되기 쉽다. 대중은 그걸 침된 지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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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3-1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삼시세끼 굶고 커피마시는 사람. ^^

cyrus 2015-03-11 16:15   좋아요 0 | URL
실험 결과마다 차이가 있는데 하루에 커피 두 세 잔이면 건강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 대신 삼시세끼 식사를 하고난 뒤에 커피를 마셔야 됩니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요. ^^

마녀고양이 2015-03-1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까지 가본 미술전시회 중에 고흐 작품은 정말 발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실물과 사진이 가장 차이나는 작품들이었고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움이었어요.

노란색, 모순의 색이라는 표현 정말 공감해요. 전 노란색을 참 좋아해요, 그리고 커피도.. 주전자 째로 ^^

cyrus 2015-03-11 16: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2년 전에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고흐 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책에서 보던 것과 느낌이 달랐어요. 그림을 좀 더 가까이 보면서 고흐 특유의 굵은 붓 터치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저도 노란색이 좋아요. 신맛을 좋아해서 그런지 노란색을 보면 상큼한 레몬 느낌이 들어요. ^^

transient-guest 2015-03-11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해석(?)에 따라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네요. 저는 고흐의 후기작들에서 보이는 빛이 일렁이는 듯한 작법을 좋아합니다. 그게 정신분열의 한 증상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그것은 고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불빛을 바라보는 듯한...

cyrus 2015-03-11 16:26   좋아요 0 | URL
guest님, 고흐의 그림을 표현하는 댓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저는 불꽃이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면서 타오르는 것처럼 그려진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을 보면 눈물과 고통 속에 가려진 고흐의 강인한 정신이 떠오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이 글이 그 신문 칼럼에 쓰여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ㅎㅎ

cyrus 2015-03-11 16:28   좋아요 0 | URL
이런 글로 신문사에 투고해달라고 보내면 퇴짜 맞을 겁니다. ㅎㅎㅎ

만병통치약 2015-03-1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아프거나 어지러우면 하늘이 노래지는군요 ^^

아무개 2015-03-11 08:29   좋아요 0 | URL
아하!

cyrus 2015-03-11 16:2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했어요. ㅎㅎㅎ

해피북 2015-03-11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 말씀에 깊은 공감을!
어떤 미술 책을 읽는것보다 머리에 쏙 들어오네요 ㅎ 이 그림에 예수와 열두제자가 있다는것 고흐가 노란색을 좋아했지만 사용하는 물감성분에 발작과 환각증세가 있었다는것이 인상적 이였어요^~^

cyrus 2015-03-11 16:31   좋아요 0 | URL
평소에 눈여겨봤던 책 내용을 요약한 것뿐인데요. 다시 글을 읽어보니 쓸데없이 길게 썼다는 느낌이 들어요. ^^;;

2015-03-11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2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1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다. 혹시 영국 bbc 제작이던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고흐로 난왔던 다큐멘터리 본적 있니?
그거 진짜 잘 만들었더라. 컴버배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
보는 감동이 남달랐지.
근데 난 고흐가 매독에 걸렸다는 게 궁금해.
왜, 어떻게 걸렸을까? 미스테리야. 저 책들 중 어디에 나와 있을까?

cyrus 2015-03-11 17:42   좋아요 0 | URL
요즘 컴버배치가 대세이긴 하군요. 다큐는 본 적이 없어요. 다큐 제목을 알려주실 수 있어요? 한 번 보고 싶어요.

아마도 고흐가 매독에 걸린 이유가 사창가를 자주 가서 생겼을 겁니다. 고흐와 동시대에 살았던 예술가들도 유곽이나 매음굴을 찾아갔으니까요. 고흐의 연인이었고, <슬픔>이라는 그림 모델인 시엔이라는 여자의 직업이 창녀였어요.

stella.K 2015-03-11 18:38   좋아요 0 | URL
그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목사까지 되려고 했다면서 성적으론 문란했다는 게 좀
이해가 안가. 너무 내 식의 해석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참 불행한 사람이야.

`반 고흐: 페인티드 위드 워즈`일거야.
4부작으로 되있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진짜 잘 만들었더라.
영국에선 세익스피어와 컴버배치는 그 무엇과도 안 바꾼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말이 있어.
글이 좋아서 특별히 가르쳐 준다.ㅋ
말 나온 김에 나도 다시 봐야겠다.^^

stella.K 2015-03-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컴버배치가 나온 건 그냥 49분짜리 필름이고,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이란 게 4부작이더군. 참고하도록!
 

 

 

 

 

 

 

 

 

 

 

 

 

 

 

 

 

 

요즘 《죽이는 책》(존 코널리 외, 책세상, 2015)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품 121편을 선별했고, 여기에 디저트로 비평문까지 곁들였으니 미스터리 마니아를 위한 특별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미스터리 문학 계보에 가까운 작품 목록, 800쪽이 넘는 쪽수. 아주 그냥 죽여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책세상 출판사에서 《죽이는 책》과 유사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책세상, 2005)은 《죽이는 책》 공포 문학(호러 문학)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포 문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고딕 소설부터 현대 공포 소설에 이르기까지 100명의 작가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10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기존에 나온 공포 문학 앤솔로지를 모조리 합쳐 놓은 듯한 작품 수와 분량은 《죽이는 책》과 같이 책장에 꽂으면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터라 일부 작품은 다른 공포 문학 앤솔로지에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있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에서만 볼 수 있는 국내 초역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죽이는 책》 열풍과 비교하면 《세계 호러단편 100선》에 아쉬운 점이 너무나도 많다. 일단 클랙식컬한 공포 문학은 독자들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공포’와 문학에서 언급하는 ‘공포’의 의미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문자보다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존재들이 이야기에 나오더라도 독자의 반응을 이끌기가 어렵다. 특히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독자는 유령 이야기에 콧방귀를 뀐다. 그러므로 작가는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문학적 수사를 동원한다. 애초에 독자가 공포 분위기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낯선 상황의 사건을 전개하여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수준 높은 반전을 구사한다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이것이 공포문학 읽기의 묘미다.

 

그런데 영화와 같은 영상물이 발달하면서 대중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는 공포에 익숙해졌다.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하여 온몸에 붉은 피를 묻히고 다니는 살인마나 괴물, 외계 생명체가 공포물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들의 존재감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특수효과도 날로 향상되고 있다. 대중은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는 공포에 압도된다. 공포 문학은 공포 영화처럼 섬뜩하고 잔인한 장면에 치중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공포 문학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공포 문학은 요즘 나오는 공포 영화를 따라오지 못한다. 고딕 소설과 공포 문학이 유행했던 19세기 중반에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엄청난 인기였지만, 지금은 그때의 감동을 재현할 수 없다. 드라큘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벌벌 떠는 사람은 없다. 만약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라큘라가 <노스페라투>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 나온 거라면 여전히 공포물에 대한 애정과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행에 뒤처진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처럼 인간 친화적(?)인 드라큘라가 대세다.

 

 

 

 Bad scene #1 독서를 방해하는 잘못된 번역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또 다른 단점이라면 독서의 맥을 끊어버리는 번역이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음울한 분위기 연출이 공포 소설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살려서 제2 언어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은 난해한 문장 그리고 원문을 무시하는 번역은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O. 헨리의 단편소설 「The Furnished Room」‘가구 딸린 셋방’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야기가 시작하면서부터 어색한 문장이 눈에 밟힌다.

 

그들은 '집, 아득한 집'을 노래했다. 상자 속에 가정의 수호신을 집어넣고, 화초는 모자와 뒤엉키고, 고무나무를 무화과나무 삼아서.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가구 딸린 방」 중에서, 34~35쪽)

 

상자 속에 넣는 ‘가정의 수호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문장은 이야기 전개에 전혀 상관은 없지만,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인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다. 이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They sing "Home, Sweet Home" in ragtime; they carry their lares et penates in a bandbox; their vine is entwined about a picture hat; a rubber plant is their fig tree.

 

직역하면 가정의 수호신으로 해석하는 ares et penates는 로마의 고대신화에 나오는 집의 신 라레스와 페나테스에서 유래한 단어다. 가정에서 소중히 여기는 물건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문제다. 모자는 왜 화초에 뒤엉켜 있는 것인가? vine은 덩굴 식물 과인 포도나무를 뜻한다. 만약에 ‘포도나무’로 번역했다면 독자는 나무 덩굴줄기에 모자가 뒤엉키는 장면이 연상될 수 있다. 역자 정진영 씨는 왜 포도나무 대신에 화초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나머지 문장마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의 문장을 다른 역자는 어떻게 옮겼는지 궁금해서 김욱동 교수가 번역한 《오 헨리 단편선》(비채, 2012)을 참고, 비교했다. 김욱동 교수는 직역과 의역을 섞었는데 정진영 씨가 번역한 문장보다 한결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즐거운 나의 집>을 재즈 가락으로 부른다. 가정의 수호신을 종이 상자 속에 넣어 모시고 다니는가 하면, 그들에게는 챙 넓은 모자에 꽂혀 있는 담쟁이덩굴이 벽의 담쟁이요, 화분에 심은 고무나무가 곧 무화과나무 정원수와 다름없다. (《오 헨리 단편선》의 「가구 딸린 셋방」 중에서, 197쪽)

 

가구 딸린 셋방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도 역자가 실수한 번역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구 딸린 방의 불그스름하고 초라한 빛은 마치 창녀의 꾸민 웃음처럼 새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퇴색한 가구, 조잡한 무늬의 천으로 감싸인 한 개의 소파와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창문 사이에 있는 폭 삼십 미터 정도의 거울, 한두 개의 금박 입힌 액자 그림과 한쪽 구석의 철제 침대에서 복잡 미묘한 아늑함이 불빛에 빛났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가구 딸린 방」 중에서, 37쪽)

 

보통 건물 한 층 당 2.5m라면 30m은 12층 건물의 높이에 가깝다. 좁은 셋방에 30m의 거울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줄을 친 부분이 창문 사이에 있는 거울을 언급하는 원문이다.

 

The furnished room received its latest guest with a first glow of pseudo-hospitality, a hectic, haggard, perfunctory welcome like the specious smile of a demirep. The sophistical comfort came in reflected gleams from the decayed furniture, the ragged brocade upholstery of a couch and two chairs, a foot-wide cheap pier glass between the two windows, from one or two gilt picture frames and a brass bedstead in a corner.

 

foot는 단위 feet(피트)와 동등하게 사용한다. 1피트는 한 걸음 너비로 약 30cm로 환산한다. 역자는 ‘삼십 센티미터’라고 써야 할 것을 실수로 ‘삼십 미터’로 쓰고 말았다. 

 

 


 Bad scene #2 웰스의 소설 제목이 ‘솔방울’(The Cone)?

 

 

 

 

 

 

 

 

 

 

 

 

 

 

 

 

《세계 호러단편 100선》는 작품이 시작되는 장에 간략하게 작가를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100번째 작품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붉은 방」이다. 그런데 역자는 웰스의 다른 작품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The Cone」‘솔방울’이라고 쓰는 오류를 범했다. Cone이 솔방울을 의미하는 건 맞으나 실제 내용에서는 솔방울 한 개도 등장하지 않는다. 「The Cone」이 웰스의 생소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역자는 이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목을 직역해서 옮겼을 것이다. 내용상 ‘원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The Cone」은 웰스의 단편선집 《허버트 조지 웰스》(현대문학, 2014)에 수록되어 있다.

 

 

 

 Bad scene #3 ‘그레이스 여신’은 누구인가?

 

애너 리티셔 에이킨의 미완성 고딕소설 「버트런드 경」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이다. 아마도 그리스 신화를 아는 독자라면 ‘그레이스 여신’의 정체가 무척 궁금할 것이다.

 

달콤한 음악 소리에 맞추어 문이 열리더니, 눈부신 광채와 그레이스 여신(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미의 여신 중 하나-옮긴이주)보다 아름다운 요정들에 둘러싸인 절세미녀가 등장했다. (118쪽)

 

그리스 신화의 삼미신(三美神)은 헤라, 아테네, 아프로티테다. 역자는 그레이스 여신이 삼미신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버트런드 경」의 원문을 찾을 수 없어서 확인하지 않았지만, 역자는 The Three Graces를 삼미신 중 하나로 잘못 소개한 듯으로 보인다. 

 

 

 


 Bad scene #4 책 속에 있는 엉뚱한 삽화

 

 

 

 

 

《세계 호러단편 100선》을 읽다 보면 간혹 유령이나 악마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사람의 모습이나 어두컴컴한 풍경이 그려진 삽화가 나오곤 한다. 공포 소설 읽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유령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삽입한 것 같은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게다가 작품과 전혀 관련 없는 그림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한 티가 역력하다.

 

 

 

 

 

 

 

 

 

 

 

 

 

 

 

 

크리스토퍼 블레이어의 「냄새나는 것」 279쪽과 아미야스 스노콧의 「故 포크 부인」 732쪽에 있는 그림은 시드니 사임이라는 삽화가가 그린 것이며 로드 던세이니의 판타지 소설 《페가나의 신들》(전 2권, 페가나북스, 2011)에 실려 있다. 페가나에 거주하는 신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윌리엄 호프 호지슨의 「폭풍우 속에서」 526쪽의 삽화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단테의 《신곡》 삽화를 맡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것이다. 돛 기둥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이 그려진 삽화는 에드거 앨런 포《아서 고든 핌의 모험》(황금가지, 2002 / 절판)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림의 출처를 따로 밟히지 않아서 독자는 도레의 삽화가 호지슨의 작품과 연관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삽화의 출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콜리지의 시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을 이틀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순서로 나온 「가구 딸린 방 」 번역 문제에 매달린다고 야심한 밤에 한 시간을 낭비했다.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초반부터 독서의 흥미가 확 떨어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100쪽 넘게 읽었지만, 아직 읽어야 할 작품이 많이 남았다. 더 이상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면 《세계 호러단편 100선》은 많지 않은 독서 시간을 죽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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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07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 가끔 번역 이상하면 책읽기 힘들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조목조목 일목요연하게 말씀하시니 시원한 느낌이..ㅋㅡㅋ

cyrus 2015-03-07 22:20   좋아요 0 | URL
제가 번역에 왈가왈부해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역자의 수준이 의심되는 문장을 발견하면 약간 놀라게 됩니다.. ^^;;

돌궐 2015-03-0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비에서 여자귀신 튀어나오는 말초적인 공포영화 이후로 다 그렇고 그런 시각적 공포에 치중하는 영화가 많이 나온 거 같아요. 그게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긴 해도 좀 식상해진 면이 있죠. 전 그런 영화들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 ^^;;
뭔가 지적인, 이를테면 플롯 자체가 주는 원초적 공포 같은 걸 작품에서 보고 싶어요.

cyrus 2015-03-07 22: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돌궐님이 보고 싶은 공포물이라면 히치콕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