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노곤한 일상에 지친 영혼을 카페에서 위로받았다. 카페는 그에게 생의 활력을 주는 비타민이었으며 미적 감성을 일깨우는 각성제였다. 카페는 문을 여닫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원하는 시간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어떤 구속도 없었다. 그곳은 법이 없는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낮이고 밤이고 술을 마셨고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술잔은 끝없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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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고흐는 삼시세끼를 거르더라도 커피만큼은 꼭 마셨다고 한다. 그가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화실을 옮긴 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커피를 끓이는 도구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커피에 의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술과 더불어 진하디진한 커피는 유약했지만, 열정적인 젊은 예술가에게 힘을 쏟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아를에 머무는 동안 카페에 관한 그림도 여러 점 남겼다.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야외 카페의 밤의 풍경을 파랑, 초록, 노랑으로 밝고 화려하게 표현한 「밤의 카페 테라스」가 대표적 작품이다. 지금도 프랑스 아를에 가면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됐던 카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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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속에 예수와 열두 제자 그리고 십자가를 찾으셨습니까?
최근 「밤의 카페 테라스」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 연구가 제어드 박스터는 「밤의 카페 테라스」속에 종교적 상징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석을 따르면 카페 내부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종업원은 예수, 그 옆에 테이블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은 열두 제자, 카페에서 걸어 나가는 사람은 유다를 상징한다. 노란색은 고흐가 즐겨 사용하는 색상이다. 박스터는 노란색을 천국을 의미하는 색상으로 해석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 위에는 카페 내부를 밝히는 노란 불빛이 있는데 예수의 후광이라고 주장했다. 또 카페의 창틀에 십자가 형태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박스터의 해석대로라면 고흐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 ‘최후의 만찬’을 그려 넣은 셈이다.
고흐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에는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종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고향에 돌아와 선교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성서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할 정도로 종교적 욕구가 강렬했던 고흐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테오야, 지난 일요일에 네 형이 처음으로 하느님의 성전에서 설교를 했어. “이 자리에서 내가 평화를 주겠노라.” 라고 쓰여 있는 자리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복사해서 동봉한다. (중략) 설교단에 서 있을 때, 나는 지하의 어두운 궁륭에서 따사로운 한낮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오는 기분이었고, 이날 복음을 전하려는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좋았어. 그렇게 잘하려면 마음속에 복음을 담고 있어야 해. 그래야 그분도 기꺼워할 거야.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잖아.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명하면 확고히 자리 잡겠지. 우리를 부른 그분은 신실하니까, 그것을 성취할 거야. (1876년 10월 31일에 쓴 고흐의 편지 중에서, 《고흐의 편지 1》 64~65쪽)
박스터의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예전에도 고흐가 그림에 종교적 상징을 그려 넣는다는 미술 연구가의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인 허핑턴포스트에서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해석에 관한 기사가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로 국내 일간지에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있는 내용 그대로 전달했다. 그렇지만, 박스터의 해석을 하나의 가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면 고흐의 그림을 종교적 상징과 결부시켜 보는 가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나는 박스터의 해석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노란색이 천국의 색이라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시대별 유행과 환경에 따라 색채감정, 색상의 의미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래서 색은 인간의 문화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색에는 여러 가지 상징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노란색은 모순의 색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이 연상되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녀서 권력을 상징하면서도 경고, 메마른 황무지, 상황에 따라서는 멸시의 색으로 인식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품들은 대체로 황금의 금박이 많이 들어가 있다. 실제로 이 당시에는 그림 가격의 절반 정도를 금박을 입힐 정도로 물감보다 금을 많이 사용했다. 당시 금은 고가의 상품이다. 당연히 금박을 입힌 그림의 가격은 천청부지로 솟아오른다. 그림에 들어간 황금은 감각을 초월하는 기독교 세계에 대한 찬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풍요를 예찬하는 세속적인 취향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중세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호했던 노란색은 ‘황금색’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노란색은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는 이단자를 가리키는 색이었다. 독일의 창녀는 노란 머릿수건이나 망토를 착용해야 했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옷은 노란색으로 그려졌다. 사실 기독교 전통에서는 노란색을 절대로 사용되어선 안 되는 금기의 색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나 이단자를 차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무조건 노란색이 들어간 복장이나 모자를 착용하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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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년
법의학자 문국진은 의학의 힘을 빌려 고흐의 노란색에 대해서 색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사용했고, 유독 그의 그림에 노란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를 지병으로 앓고 있던 황시증(黃視症)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압생트라는 독한 술을 즐겨 마신 고흐는 이 술의 독성으로 인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앓았다. 이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고흐는 노란색을 좋아했다. 고흐에게 노란색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그저 칙칙하기만 했던 자신의 그림을 더욱 화려하게 빛내주게 만드는 구원의 색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색상에 지나치게 탐닉할수록 고흐의 건강은 더욱 악화하였다. 고흐는 크롬(Chrom) 성분이 있는 노란색 물감을 자주 사용했는데 당시 시장에 나온 카드뮴 노란색 물감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궁핍한 생활을 보내는 고흐는 가격이 싼 크롬 물감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크롬 물감은 카드뮴 물감보다 독성이 많은 물질이었다. 고흐의 크롬 물감 사용이 발작과 환각 증세를 일으키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경제 전문 일간지의 모 논설위원은 박스터의 해석을 글감으로 삼아 열두제자를 주제로 오늘 자 칼럼을 기고했다. 논설위원은 박스터의 해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노란색을 천국의 색이라고 언급하면서 고흐의 종교적 열망을 강조한다. 기독교에 심취했던 고흐의 새로운 면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은 좋으나, 타당성이 떨어지는 해석을 일종의 지식처럼 여겨서 전달해선 안 된다. 흥밋거리에 불과한 엉터리 정보를 인용하기보다는 고흐의 편지를 인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다만 이현령비현령에 가까운 자의적인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정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그럴듯한 내용의 가정은 쪼가리 지식으로 포장되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유포되기 쉽다. 대중은 그걸 침된 지식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