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까, 보관할까 '애물단지' 책 띠지의 비밀]

뉴스원 (2015년 7월 25일)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띠지다. 이제 띠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띠지 디자인이나 모양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표지 하단에 두른 가로 띠지가 대부분이지만 책 표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띠지도 있다. 띠지가 다양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성이 커졌다는 말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띠지는 무척이나 유용한 광고다. 반면, 독자에게는 띠지가 성가시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벗겨내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 많다. 띠지는 책을 잘 읽을 줄 안다는 책 전문가들에게도 외면을 받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어느 다독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좋은 책을 고를 때는 띠지의 유혹에 이끌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분의 생각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은 유명인이나 공신력 있는 언론사의 추천 평을 적는 띠지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유명인 후광 효과만을 바라는 홍보 전략은 독자가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시야를 좁게 한다. 유명인이 읽은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이 아니다. 서문과 목차를 훑어보면서 간략하게 책의 내용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해야 한다. 띠지에 속아서 형편없는 책을 사게 되면 곤란하다.

 

띠지의 또 다른 단점은 쉽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종이로 만들어진 거라서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꾸깃꾸깃해지고, 잘려나간다. 서점에 가면 띠지만 훼손되고, 책은 멀쩡한 것이 진열대에 있는 것을 보곤 한다.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책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만지게 되니까 띠지가 훼손된다. 너덜너덜해진 띠지가 달린 책을 누가 사겠는가. 딱 봐도 여러 사람의 손길이 거친 책이라는 걸 안다. 띠지가 깨끗해야 ‘새 책’ 느낌이 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훼손된 띠지가 달린 책을 고르지 않는 심리가 우습다. 어차피 새 책을 사더라도 깨끗한 상태의 띠지를 버릴 텐데. ‘새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른 책이 겉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이미 수많은 손님은 그 책을 만졌다. 띠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추가로 만들어서 다시 책에 씌우는 일은 비용과 인력 면에서 낭비에 가깝다. 심하게 훼손된 띠지는 버리고, 책은 진열대에 그대로 놔뒀으면 한다.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 손님들이 띠지 없는 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띠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책을 사서 모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띠지를 버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띠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띠지 또한 책 표지의 일부로 보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땐 띠지를 벗기고, 다 읽으면 다시 띠지를 씌운다. 책을 깨끗하게 읽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결벽 증세가 있어서 띠지가 조금이라도 접히거나 째지면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띠지를 책갈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아폴리네르의 소설집 《일만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의 띠지를 실수로 훼손한 적이 있었다. 상당히 야한 묘사가 많은 이 프랑스 소설은 절판된 지 꽤 오래돼서 운 좋게 알라딘 회원 중고로 나온 걸 주문했다. 책을 담은 종이 포장지를 칼을 뜯다가 그만, 띠지 일부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포장지를 개봉하고 책 상태를 확인해보니까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라고 믿을 정도로 아주 깨끗했다. 칼질 한 것이 후회되었다. 칼에 잘려나간 흔적이 남아 있어도 띠지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이제는 책을 사면 띠지를 버리지 않는 것이 나만의 특이한 원칙이 되어버렸다. 이렇다 보니 띠지가 있는 초판본을 가지고 싶다는 집착이 생기고 말았다. 1판 1쇄, 처음 나왔을 당시에 나온 띠지가 완벽하게 있는 초판본.

 

며칠 전에 모 알라딘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책 수집가에 대한 내용의 글이었다. 엘러리 퀸은 책 수집가의 진화 단계를 ‘애호가’, ‘감식가’, ‘수집광’, ‘서적광’으로 구분했다. ‘애호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책을 모으는 평범한 수준이고, ‘감식가’가 되면 자신의 수집한 책을 초판본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그다음 단계인 ‘수집광’은 인쇄소에서 나오자마자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상태의 책을 수집한다. 마치 새벽에 빵집에 금방 구워서 나온 빵을 사는 손님들처럼 말이다. ‘서적광’은 저자 사인이 있는 초판본을 수집한다. 필자는 띠지가 없으면 안 되는 ‘감식가’였다.

 

 

 


댓글(22) 먼댓글(1)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띠지 활용 팁
    from 突厥閣 2015-07-28 13:30 
    띠지에 책에 관한 정보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보(홍보)글이 꽤 괜찮을 때가 있어요. 또 글이 그냥 그렇더라도 나름 출판 당시 책을 어떻게 홍보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에 저는 될 수 있으면 보관합니다. 보관하는 방법은 앞 뒤 두 군데에 적힌 글들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하여 띠지를 두 개로 잘라 책갈피로 씁니다. 가름끈이 있을 경우도 있지만 가끔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거기다가 이 책갈피를 꽂아두지요. 음... 아무래도 사진과
 
 
북다이제스터 2015-07-2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님을 진정한 책 애호가 아니 서적광 아니 감식가로 모십니다. 저와 같은 사람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끝판왕이세요. 책 띠지까지 애지중지 여기시니. 부럽고 반성도 됩니다.

cyrus 2015-07-28 17:20   좋아요 0 | URL
띠지 모으는 행동에 대해서 반성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정말 별난 습관이에요.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5-07-28 20:26   좋아요 0 | URL
전 띠지가 아니라 이웃님의 책 사랑 마음이 부럽고 반성된다는 의미였습니다. ㅎㅎ

AgalmA 2015-07-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아폴리네르 <이교도회사> 가지고 있어요. 게으름 피우다 <일만일천 번의 채찍질> 못 산 걸 안타까워했지만, 그러기엔 못 산 책이 얼마나 더 많은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여기서 보게 될 거란 생각했는데, 오늘 보네요ㅎ~
띠지는 특별하지 않으면 버려요~ 걸리적 거리고 그 부분만 변색되는 경우도 있어서...

cyrus 2015-07-28 17:23   좋아요 0 | URL
한 번은 헌책방에서 띠지가 그대로 있는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정말 띠지 색깔이 변색되었어요. 사실 책 읽을 때 띠지 때문에 불편해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띠지를 벗깁니다. 다 읽었으면 다시 띠지를 씌웁니다. ^^

저도 <이교도 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용이 정말 초현실주의풍이라서 한 번 읽으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갈마님은 <이교도 회사>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붉은돼지 2015-07-2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띠지가 바로 애물이에요
버리자니 아깝고 간직하자니 걸리적거리고 ...^^

cyrus 2015-07-28 17:24   좋아요 0 | URL
책을 읽을 땐 띠지를 벗깁니다. 붉은돼지님 말씀대로 책을 읽을 때가 띠지가 걸리적거려요. ^^

지금행복하자 2015-07-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띠지~ 무조건 버려요~~ 걸리적.. 결국 다 찢어지고~~
북디자인하시는 분한테 야단 맞았어요~ 그것도 디자인인데 버린다고 ㅎㅎ
그래도 버려요~ 벗겨서 너무 썰렁하거나 간혹 제목이 없어지는 그런 경우만 빼고~ 그런건 띠지가 아닌가요? ㅎㅎ

cyrus 2015-07-28 17:26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디자인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작은 띠지도 나름 공들여 만들었을 테니까요. 혹시 행복하자님이 말씀하시는 띠지가 양장본에 있는 커버를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양장본 같은 경우, 책 전체를 덮어씌우는 종이 커버가 있어요. 사실 저는 그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종이 커버가 없는 양장본은 헐벗은 사람 같이 보여요. ^^;;

지금행복하자 2015-07-28 18:07   좋아요 0 | URL
양장본 커버 말구요~ 그래서 양장본 안 좋아하거든요. ㅎㅎ
절반이 덮혀있고 그 덧댄 곳에 제목 써있다던지~ 디자인해서 벗기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던지 그런경우요~ 띠지라고 하기엔 과하고 표지라고 하기엔 좀 거시기한 그런거요~~ 결국엔 손타서 지저분해지던데~~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띠지없이.. 커버없이 그렇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saint236 2015-07-2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띠지를 고이 모셨다가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끼워서 책을 진열합니다 책도 살짝 펴서 때론 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새책으로 보관하지요

cyrus 2015-07-28 17:27   좋아요 0 | URL
세인트님도 저처럼 책을 깔끔하게 읽는 습관이 있군요. 이런 분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습니다. ^^

라스콜린 2015-07-2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띠지 있는 그대로 들고 봅니다^^

cyrus 2015-07-28 17:28   좋아요 0 | URL
책 읽을 때 띠지 때문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저는 책을 읽을 때만 띠지를 벗겨서 따로 보관합니다. 다 읽으면 다시 띠지를 씌우고요. ^^

stella.K 2015-07-28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띠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끔 책갈피로 사용하고 있긴 하는데
띠지도 그렇게 책갈피로 쓰고 싶을만큼 진화하면 모를까
정말 필요없는 것 같아.
그리고 서점 진열장에서 훼손된 띠지 어차피 버릴 건데도 손이 안 가긴 하지.
그맘 이해해. 그래서 두 가지로 준비하면 좋을텐데...
띠지가 없는 것과 있는 것. 손님이 취향 껏 고를 수 있게 말야.^^

cyrus 2015-07-28 17:30   좋아요 0 | URL
요즘 책을 사면 책갈피를 사은품으로 주게 되니까 띠지가 홍보용 이외에는 특별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에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모이면 띠지를 주제로 얘기하면 띠지가 좋다, 불편하다 식으로 입장을 나누어서 논쟁도 할 수도 있겠어요.

2015-07-28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8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5-08-01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띠지에 적힌 좋은 글은 옮겨 적고, 과감히 버립니다.
책도 읽고나면 지인에게 선물로 준답니다.
존재감이 없나요?ㅎ

붉은돼지 2015-08-01 11:09   좋아요 0 | URL
세실님~ 이건 뭐 조큼 엉뚱한 얘긴데요. 짐바브웨의 세실이야기 들으셨죠. 세실도 안됐지만 그 새끼들도 다 죽게되었대요 글쎄 너무 안타까워요ㅜㅜ
사자 이름이 세실님과 같아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세실님의 세실은 무슨 뜻인가요?

cyrus 2015-08-01 20:19   좋아요 0 | URL
내가 읽은 책이 지인도 읽어본다면 전 책주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잡지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눈꺼풀을 빼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수만 번 깜빡거리는 노동으로 글을 썼다. 도우미가 알파벳을 순서대로 제시하면 눈 깜빡임으로 철자를 골라 문장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동문선, 1997). 잠수복을 입고 심해에 갇혀 있지만, 나비를 희구하는 저자를 상징한다.

 

뇌는 여러 구조물을 부품으로 한 조립품이 아니라 수백억의 신경세포가 연결된 통신망에 가깝다. 뇌 속의 뉴런은 1천억 개에 달한다. 한 개의 뉴런이 뇌 속에서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된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과정은 사실 이 뉴런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마비는 뇌의 명령을 근육에 전달하는 신경 경로가 차단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세포는 남아 있어서 여기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근육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뇌 활동을 읽어내 전기 자극으로 자동 변환시킨다.

 

국내에서도 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뇌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를 뇌공학이라고 한다. 과학 분야에 생소한 독자라면 뇌과학과 뇌공학의 차이점이 궁금할 수 있다. 뇌과학은 뇌의 작용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뇌공학은 뇌를 포함한 신경계의 기능과 행동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제반 공학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학문 용어를 둘러싼 독자의 혼동을 피하고자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뇌공학을 뇌과학과 공학기술이 만난 학문으로 보면 된다. 그만큼 뇌공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분야를 융합하고 창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뇌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에 대한 연구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시냅스와 뉴런이 뇌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은 컴퓨터의 연산처리 기능과 유사하다.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의 뇌 신경 연결지도를 만드는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켰다. 휴먼 커넥톰은 뇌 회로에 신호를 보내고 자극할 때 회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목표는 뇌 동작 원리 전체를 밝히는 데 있다. 뇌가 어떻게 기억을 형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지, 또 팔다리나 시청각 등과 관련된 인체 기관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밝혀낸다. 이게 가능하다면 영화 <아바타>와 같이 뇌의 기억을 읽어 내거나 조작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

 

매튜 네이글이 참여한 브레인게이트(BrainGate)’ 프로젝트는 BCI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있다. 칼에 찔려 척수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매튜 네이글은 유타 대학교에서 개발한 미세 전극 배열 칩을 두뇌의 운동 피질 표면에 이식됐다. 기기 오작동으로 인해 한 차례 실패가 있었으나 두 번째 재이식은 성공했다. 전극은 주위의 뉴런으로부터 전기신호를 포착해 환자의 두뇌에 있는 칩으로 전송한다. 전송된 신호는 복잡한 케이블을 타고 컴퓨터에 연결돼 원하는 동작을 이끌어낸다. 매튜 네이글은 원하는 움직임을 상상만 하면 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늘 염려와 경계가 따른다. 인공심장 박동기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땐 인간성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에는 두뇌와 기계와의 만남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고, 공학은 불편함에서 시작되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뇌공학은 우리의 뇌가 질병으로 야기된 문제 또는 태생의 한계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뇌공학이 발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부분적인 기술들이 융합되지 못하면서 장애인들의 바람을 희망 사항에 머물게 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거나 군사적 활용도가 높은 곳에 치우친다면 윤리적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자아, 능력, 성격 등 인간 본연의 실체이므로 이에 대한 윤리적 측면의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jung 2015-07-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뇌과학에 관심이 많아요...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cyrus 2015-07-27 18:00   좋아요 0 | URL
내용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과학 용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나라를 보면 이슬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 대구북부정류장 인근에 가면 방글라데시,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 온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유동 외국인만 해도 하루에 수백 명에 달한다.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북부정류장에 들어선 식당 또는 식료품 가게를 많이 찾는다. 이곳이 이들의 주된 생활공간. 어려운 현실이지만 강한 유대감으로 대구의 한쪽에서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작 돈이 아니다.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다. '테러 집단'과 거의 유사한 뜻으로 이해한다.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이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나오는 화면은 늘 화약 냄새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비명이 넘친다. 우리는 화면에 비친 이슬람을 자주 보면서 저곳은 테러리스트가 판치는 아수라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의 위협과 공격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IS를 비롯한 테러 단체와 전면전에 나선 이후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반 무슬림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는 꾸란’, 이슬람의 폭력성을 말할 때 흔히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슬람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3세기 기독교의 십자군이 중동 원정에서 이슬람군에 패배하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을 심어주기 위해 처음 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왜곡된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지금껏 이슬람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현재의 중동 분쟁을 만든 이슬람과 적대적 이해국인 서구의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는 ‘이슬람=테러’라는 생각을 전 세계 사람들이 갖게 하였다.

 

이슬람주의의 요체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 샤리아(이슬람법)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다. 대표적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 반나는 서구의 가치들이 무슬림들에게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초기엔 온건한 사회운동을 펼쳤으나, 주요 이론가였던 사이드 쿠틉 등 많은 조직원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급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성전을 옹호한 과격 이슬람주의의 아버지다.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와 과격 이슬람주의, 두 개념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무슬림들을 모조리 과격한 사람으로 봐선 안 된다. 이슬람교는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 종교적 제도를 의미하지만, 과격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IS는 자신들의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란의 일부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테러 행위를 위대한 ‘성전(聖戰, 지하드)’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성전을 원래 적에게 향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의미가 아니다. 알라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불신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알라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다. 또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자살은 금기사항이다. 무장 세력들이 무슬림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하드를 선포하고 자살테러를 시키는데, 정치적 수단일 뿐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IS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 테러를 감행해 존재감을 확산시키고 수니파 과격세력을 결집한다. 그러므로 중동이 혼란에 빠진 원인을 그저 종파적 갈등으로만 보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종파 갈등 이면엔 정치적 목적과 이득을 위해 종파 간 대립을 조장한 집단이 있다. 서방국도 중파 갈등을 부추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도 냉전 시대부터 중동과 아랍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간 갈등을 이용했고,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지원한 무장 세력 단체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알 카에다였다. 이런 사실로 비춰볼 때, 수니와 시아의 반목은, 서구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조장이 원인이며, 지금의 유혈충돌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과격 세력들이 행하는 테러를 ‘테러리즘미즈(Terrorism+ism)’와 ‘알 카에디즘(Al-Qaeda + ism)’의 대결 구도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테러리즘미즈’는 미국이나 서방국이 중동의 테러를 ‘적의 소행’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뜻한다면(예를 들면, 이란과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인식), ‘알 카에디즘’은 IS처럼 자생적으로 세력을 확산하고, 테러를 꾸미는 무장단체를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아마도 이 두 단어는 저자가 직접 만들었을 것이다.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적으로 보는 편견을 표현하기 위해서 굳이 ‘테러리즘’에 ‘ism’이 더 붙는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의미상 이런 단어는 성립할 수 없다. 학계에서 공인된 단어가 아니라 저자가 만든 것이라면 이 사실을 본문에 명시해줘야 한다. IS 관련 소식 이후로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도 출판 열풍 속에 나온 신간이다. 분량이 제법 두꺼운 책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과격 이슬람주의 형성의 역사에서 오늘날 IS에 관한 최신 정보까지 소개하고 있다. 다만, 중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아랍인들은 이슬람 이전의 시대를 자힐리야(Jahiliyya), 즉 무지의 시대라고 말한다.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는 중동의 상황은 자힐리야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종파 분쟁이 이제는 목적과 이유는 사라진 채 오로지 반목과 갈등, 대립을 위한 존재로 남아 있다. 그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이슬람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한 손에 폭탄을, 한 손에는 총’이 더 어울린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수니와 시아파는 지금 자신들이 왜 서로를 죽이려 하는 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믿는 신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결국 당시 수상이었던 마흐무드 알 누크라시 파샤가 무슬림형제단 조직원에 의해 됐다” (86쪽) → ‘살해’가 빠진 채 인쇄되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서치 201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팔레스타인 원혜진 저..책이 아주 쉽고 명확하게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서구의 프레임으로 중동의 문제를 인식해왔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편견을 깨려면 한발.. 앞으로 나가고 손을 내미는.. 일들을 계속해나가야겠어요. 읽고 싶은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7-26 15:46   좋아요 0 | URL
중동 문제에 관한 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과 같이 읽어보고 싶군요.

csp 2015-07-2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읽은 your fatwa does not apply here 이란 책이 생각나는군요. 알제리 출신의 미국 법학교수인 저자가 수년간 이슬람 국가들을 오고가며 이슬람 근본주의와 싸우는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책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슬림 근본주의의 대두와 연이은 테러행위를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 내부의 충돌이라고 설명했는데 눈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cyrus 님이 소개하신 이 책의 `테러리즘미즈` vs. `알 케에디즘` 프레임과는 전혀 대치되네요. (둘 다 좀 괴상한 조어라 느껴지는군요-_-;;)반-무슬림 어젠다를 생산해내는 미국 우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할례나 부르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리버럴한 서구 인텔리들에 대한 쓴소리도 가득 담겨져 있었는데 요즘과 같은 시대에 여러가지로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국내 저자가 쓴 양질의 이슬람 관련 서적이 부족하다고 늘 느끼는데 소개하신 책을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cyrus 2015-07-26 15:50   좋아요 0 | URL
슈퍼맨님이 읽으셨던 책은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거지요? 혹시 책의 저자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저자의 이름이라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저는 처음에 테러리즘미즈와 알 카에디즘이 학계에 공인된 용어인 줄 알았어요. 사실 이 책을 중동에 모르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책입니다. 아마도 슈퍼맨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csp 2015-07-26 19:47   좋아요 1 | URL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 같지 않습니다. 저자 이름은 Karima Bennoune 고 테드에서 강연도 했어요. 관심이 가시면 한번 영상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다가 본문에 있는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혹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책 55쪽을 펴보시라. 여성의 강간을 옹호하는 미국 공화당 정치인 다섯 명의 망언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올 것이다. 이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2012년 선거에서 모두 낙선되었다. 몰상식한 발언을 한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의 이름을 소개해보겠다. 토드 어킨, 리처드 머독, 린다 맥머혼, 톰 스미스, 존 코스터. 이 다섯 명 중에 한 사람만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린다 맥머혼. 놀랍게도 다섯 명의 공화당 정치인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다섯 명이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몰라도 이름만 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역자는 ‘린다 맥머혼’이라고 썼지만, 원어민의 발음대로 하면 ‘린다 맥마흔(Linda McMahon)’으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린다 맥마흔’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네이버 검색창에 ‘린다 맥마흔’이라고 치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WWE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린다 맥마흔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미국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회장 겸 CEO인 빈스 맥마흔이다. 필자는 WWE라는 이름으로 변경하기 전이었던 WWF 시절부터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를 즐겨 봤다. (WWE는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약칭이며 WWF는 ‘World Wrestling Federation’의 약칭이다. 2002년에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명칭 관계로 소송에 휘말려 패소하는 바람에 지금의 WWE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WWE는 프로레슬링에 오락적인 요소가 더해진 세계 최대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단체이다. WWE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화려한 기술을 역동적으로 구사하는 레슬러들의 경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레슬러 간의 신경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1970년대 한국레슬링의 에이스였던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쇼다’라고 외친 이후로 국내 레슬링의 위상은 한순간에 떨어졌지만, WWE는 여전히 건재하다. 마치 생방송 드라마처럼, 때로는 돌발 상황마저 그다음 주의 스토리라인에 이용할 정도로 치밀하게 각본을 진행한다. 실제로 WWE에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각본진이 따로 있으며 종종 선수들도 각본을 만드는 일에 개입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WWE에 관한 부연 설명이 조금 길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린다 맥마흔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녀와 WWE의 관계를 지나치면 안 된다. 내용이 너무 길다고 느껴진다거나 현재 북플로 글을 읽고 있다면 안 읽어도 된다.

 

 

 

 

 

 

WWE가 WWF였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 중반에 TV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극단적인 스토리라인이 나왔다. 빈스 맥마흔은 당시 CNN 창립자 테드 터너가 운영하는 또 다른 레슬링 단체 WCW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려고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가족을 링 위에 등장시킨다. 아들 셰인 맥마흔, 딸 스테파니 맥마흔 그리고 아내 린다까지 각본에 투입되었다. 빈스는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틈만 나면 가운뎃손가락(‘Fuck you’)을 들어 올리는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괴롭히다가 끝내 불쌍하게 얻어터지는 악덕 회장으로 링 위에 등장했다. 또한 빈스와 셰인 간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여 아버지와 아들 간의 레슬링 경기가 실제로 펼쳐지기도 했다. 린다는 섹시한 여성 레슬러를 애첩으로 둔 바람기 많은 남편을 철저히 응징하는 사모님으로 등장했다. 이제 곧 손자, 손녀를 봐야 할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도 린다는 레슬러의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온몸으로 맞아주는 살신성인의 연기를 보여줬다. 이렇듯, 진정한 막장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과거 WWF를 보면 된다.

 

현재 WWE의 최고경영자는 빈스 맥마흔이지만, 원래는 린다가 그 자리에 있었다. 린다는 정계 진출을 위해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물러났다. 2009년, 그녀는 코네티컷 주 교육위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교육위원 임명 과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꽤 많았다. 반대자들은 그녀가 WWE에서 활동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WWE의 본사가 코네티컷에 있어서 린다 입장에서는 지지 세력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역시나 WWE에서의 활동은 그녀의 정계 입문에 제약되었다. 그러나 린다는 반대 여론에 개의치 않았고, 그해 9월에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발표를 했다. 아내의 상원의원 당선을 위해서 빈스 맥마흔은 WWE의 방송 등급을 14세 이상 연령이 시청 가능한 PG 등급으로 조정했다. 이로써 성인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자극적인 각본과 여성 레슬러들의 과도한 신체 노출 장면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린다는 2010년, 2012년 상원의원 선거에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비록 각본에 따른 ‘쇼’의 일부였지만, 린다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면서도, 결국에는 남편의 뺨을 날리고, 그의 급소를 향해 발로 차는 여장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악덕 회장에게 복수하는 린다의 사이다 같은 퍼포먼스에 팬들은 통쾌했다. WWF 시절 여성 레슬러들은 남성 레슬러를 보조하는 매니저 역할로 국한되었고, 남성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성 상품에 불과했다. 린다 맥마흔은 남성 위주의 프로레슬링단체 속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녀가 과거에 WWE 최고경영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WWE 내 그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발언을 한 린다의 태도가 유감스럽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린다가 정치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본심을 밝히자면, 절대로 정치인이 돼선 안 된다. 이 말이 여성 정치인의 한계를 겨냥하기 위한 것임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필자는 여성 정치인의 진출 기회가 많아져서 정치력 신장이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필자가 정치인으로서의 린다를 반대하는 이유는 강간의 심각성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낙태를 반대해온 공화당 소속이라고 해도 보수적인 남성처럼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은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같은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토드 어킨은 “진짜 성폭행(legitimate rape)을 당한 여성이 임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막말을 하는 바람에 당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승리를 민주당 후보에게 헌납했다. 참고로 공화당 내 여성 의원들과 중도파 의원들도 낙태금지법에 반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빈스 맥마흔은 아내의 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대준 엄청난 금액의 정치 자금을 무척 아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린다 맥마흔이 세 번째 상원 의원 출마 도전에 성공하더라도 제2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화당 지지자치고 제대로 된 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 ?!

cyrus 2015-07-25 16:56   좋아요 0 | URL
공화당 의원 중에 정말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의원이 많지 않습니다. 공화당 측에서는 린다 맥마흔을 적극적으로 밀어 줄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07-2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시는 분야가 있으세요? 미국프로레슬링까지.....

cyrus 2015-07-25 16:57   좋아요 0 | URL
예전에 프로레슬링에 관한 역사를 다룬 글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어서 레슬링에 종사했던 선수나 관계자 이름 정도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요즘은 레슬링 경기를 잘 보지 않습니다. ^^
 

 

 

 

 

 

 

 

 

 

 

 

폴 고갱은 나이 서른다섯 살까지만 해도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일했다. 증권거래소에 다니면서 저축한 돈으로 경제적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주말 화가’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식으로 흥한 자는 주식으로 망한다. 주식이 크게 폭락하고 증권거래소가 문을 닫으면서 고갱은 실직자가 되고 만다. 1882년의 주식 폭락은 1929년의 블랙 튜스데이(Black Tuesday)와 1987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에 비할 만큼 경제사의 암울한 날로 기억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백수 고갱은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이 마흔둘에 남태평양의 타히티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렸다. 가족들과 주변 동료들은 고갱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전에 그림 한 점만 팔렸다는 반 고흐보다는 조금 더 나은 형편이었지만, 고갱의 그림 또한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생전에는 상업적으로도 실패면서 남들이 보기엔 말년에 꼬인 실패한 인생이라고 볼지 모르겠지만, 그는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병마와 고독 속에서 끝까지 붓을 놓지 않는 모습에 연민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반 고흐에게는 ‘광기의 화가’, 고갱에게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들의 삶을 총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은 이 수식어만 믿고 그들의 그림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결과를 볼 뿐, 우여곡절 많은 삶의 과정을 아는 사람은 적다. 고갱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를 원시의 화가로만 기억하는 것은 고갱의 삶 반쪽만 보는 것과 같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고갱의 진실을 아는 순간, 그동안 미디어가 부추긴 예술가를 향한 맹목적인 열광과 평가가 허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Scene #1  <아방 에 아프레>와 <노아 노아>

 

 

 

 

 

 

 

 

 

 

 

 

 

 

 

 

 

 

 

 

 

 

 

 

 

 

 

 

 

 

고갱은 생전에 글을 많이 남겼다. <아방 에 아프레(Avant et apres, 우리말로는 ‘전과 후’)>는 고갱이 사망한 후에 나왔다. 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자서전에 가깝다. 여기에 반 고흐와 함께 살았던 일과 반 고흐가 귀를 자르기 전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고갱은 반 고흐가 면도날로 자신을 위협했다고 증언한다. <노아 노아(Noa Noa)>는 타히티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수기다. ‘노아 노아’는 ‘향기’ 를 의미하는 타히티 어다. 타히티 생활을 뒤로하고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타히티의 풍속과 신화를 소개하는 <마오리의 고대 신앙>과 <노아 노아>를 펴낸다. <노아 노아>는 고갱이 생각하는 원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하지만 이 책에 사실보다는 허구가 많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본 것은 태초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문명의 손아귀에 들어간 식민지 섬의 모습이었다. <노아 노아>에서는 타히티 신화 일부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 내용 또한 고갱이 조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프랑스 식민지가 된 타히티에서 기독교가 타히티 민간 신앙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타히티 신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성을 강조하여 유럽 독자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일부러 윤색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아 노아>에 나오는 일부 이야기는 피에르 로티의 소설 <로티의 결혼>과 거의 비슷하다. <로티의 결혼>은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이며 고갱은 이 소설을 읽었다.


 

 

 

 Scene #2  바느질하는 쉬잔

 

 

 

 

폴 고갱 누드 습작또는 바느질하는 쉬잔」 (1880년)

 

 

앞으로 이 그림을 소개할 땐 ‘「누드 습작」 또는 「바느질하는 쉬잔」’ 으로 불러야 한다. 그림 속 모델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고갱은 1881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누드 습작」을 출품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벌거벗은 모델은 고갱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쉬잔이다. 그런데 고갱의 아내 메테는 그림에 푹 빠진 남편에 못마땅했다. 당연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누드화를 그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메테가 직업 모델을 부르지 못하게 하자, 고갱은 하녀를 누드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이 성공하자, 메테는 쉬잔을 해고했다.

 

 

 


 Scene #3  친구의 여동생을 사랑했네

 

 

 

 

 

폴 고갱 「마들렌 베르나르」 (1888년)

 

 

고갱은 에밀 베르나르, 샤를 라발, 메이에르 드 한 등과 함께 퐁타방 파를 결성한다. 이들은 퐁타방 지방에 거주하면서 함께 그림 작업을 했다. 에밀 베르나르의 여동생 마들렌은 퐁타방 파의 홍일점이었다. 그녀는 샤를 라발과 약혼한 사이였다. 고갱은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마들렌에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고갱은 노골적으로 그의 여동생에게 관심이 있다고 썼으며 심지어 그녀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에밀의 부모의 반대로 고갱과 마들렌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았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년)

 

 

고갱은 자신의 얼굴을 기괴한 형태로 변형해서 만든 도자기 병을 마들렌에게 사랑의 선물로 주었지만, 마들렌은 고갱의 선물을 거부했다. 당시 고갱은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표정이 있는 도자기 병 제작에 열중했다. 마들렌의 눈에는 고갱이 만든 도자기가 예술 작품이 아닌 그냥 괴상망측한 물건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갱의 도자기는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오른쪽 상단에 등장한다.

 

 

 


 Scene #4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다

 

 

 

 

 

폴 고갱 「이브닝 드레스을 입은 메테」 (1884년)

 

 

 

고갱은 아내 메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꼭 파리에서 성공한 화가가 되면 예전처럼 같이 살자고 썼다. 고갱은 메테와 자식들을 아내의 고향이 있는 덴마크에 남겨두고, 아들 클로비스를 데리고 파리에 거주했다. 그러나 고갱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수중에 들어오는 돈만으로 고갱 혼자 아들을 양육하는 것이 무척 버거웠다. 결국, 고갱은 아들을 아내가 있는 덴마크로 돌려보냈다.

 

아내에게 보내는 고갱의 편지를 이중섭의 낭만적인 편지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했고, 닭살 돋는 애정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고갱은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처한 궁핍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내에게 돈을 부쳐 달라고 부탁한다. 경제 형편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아내의 불만을 다그치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낫다고 합리화한다. 한 번은 아내가 가슴에 종양이 생겼다는 소식을 편지로 접하자, 수술을 무조건 받으라고 썼다.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태도에 서글펐을 것이다. 고갱은 편지로나마 아내와 아이들을 항상 생각한다고 썼지만, 몸과 마음이 멀어질수록 예전의 화목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고갱은 화가로서의 성공에 눈이 먼 나머지,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는 태도로 돌변한다. 고갱은 삼촌으로부터 유산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삼촌의 유산을 양분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고갱은 그 돈으로 자신의 새 작업실을 마련하는 데 써버렸다.


 

 

 

 Scene #5  고갱이 만난 여자들

 

고갱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수도 파페에테에 정착했을 때, 티티라는 이름의 여인을 정부로 삼았다. 그러나 고갱은 티티가 완전한 타히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른 섬으로 떠나면서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다. 티티의 아버지는 영국인이었고, 티티는 서양식 생활에 관심이 많은 여자였다. 문명인이 되고 싶은 여자를 고갱은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처녀였다. 고갱은 외롭다는 핑계로 원주민 여자를 만났다. 그는 열세 살 혹은 열네 살로 추정되는 테하마나와 동거했다. 고갱은 테하마나와의 만남을 타히티의 전통 풍습이라고 둘러대면서 정당화했다.

 

 

 

 

폴 고갱 「자바 여인 안나」 (1893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화상 앙부르아즈 볼라르의 소개로 ‘자바 여인 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안나와의 만남은 고갱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악연이 되었다. 안나와 함께 콩카르노 항구 주변에 산책하다가 동네 건달들과 시비가 붙었다. 고갱은 건달들과 맞서다가 그만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발목 부상은 고갱이 죽을 때까지 낫지 않았다. 고갱이 발목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사이에, 안나는 고갱의 작업실에 있는 귀중품만 훔치고 달아났다.

 

 

 

 

폴 고갱 「테 타마리 노 아투아 : 그리스도의 탄생」 (1896년)

 

 

파리에서의 굴욕적인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타히티로 돌아왔을 때도 고갱은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할 동반자가 필요했다. 열네 살의 파후라를 만나 부부처럼 생활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비록 첫딸은 태어나고 며칠 만에 죽었지만, 고갱은 출산의 기쁨을 「테 타마리 노 아투아 :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남겼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행복하자 2015-07-23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그림 그리는 분이 달과 6펜스를 읽을때 고갱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기주의의 절정을 달리는 사람이라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저런 횡포와 방종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면서..
예술가는 저래도 되는 어떤걸 가지고 있어도 된다는 인식이 너무 불편하다고 열변을 토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한편에서는 예술가는 저런 면 이해해야되는거 아니냐고~ 본인이 예술가면서 저런것을 도덕적으로 매도해버리면 안 되는것 아니냐고~ 반론하고 ㅎㅎ
가치관의 차이이겠지만 글을 읽으면서 드는느낌은 고갱은 그림뿐 아니라 합리화의 천재이기도 하는군요 ㅎㅎ
초기 직업의 영향일까요? ㅎ

cyrus 2015-07-23 21:36   좋아요 0 | URL
고갱은 참 재미있는 화가예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데, 국내에서 고갱은 인기가 없어요. 고갱도 은근히 반 고흐 못지않게 자존심이 세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성향이 있어요.

오후즈음 2015-07-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의 삶을 보니 고흐의 삶이 왜 이렇게 더 슬프게 느껴지는걸까요?

cyrus 2015-07-23 22:12   좋아요 0 | URL
제가 몇 주 전부터 반 고흐와 고갱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까 고갱의 삶도 슬퍼요. 공교롭게도 반 고흐와 헤어지고, 그가 자살한 후부터 고갱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따랐던 동료 화가들은 고갱의 곁을 떠났고, 고갱은 죽을 때까지 매독에 시달렸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둘째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자살을 시도했어요. 고갱은 말년이 좋지 않았어요.

syo 2015-07-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갱의 그림은 그렇게 색채가 강렬한데도 어쩐지 슬퍼보여요. 슬픈 반 고흐가 무얼 그려도 자기 안의 것이 뛰쳐나와서 슬프다면, 고갱은 무얼 그려도 자기가 원하는 자기 밖의 것을 그릴 뿐 결국 가 닿지 못한다는 느낌이라 슬프고 막 그렇더라구요.

cyrus 2015-07-24 18:49   좋아요 0 | URL
고갱의 그림 중에 슬프게 느껴졌던 것이 <황색 그리스도>였습니다. 온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단순하게 그린 예수인데도 표정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그림을 좋아합니다.

꽃핑키 2015-07-2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보니 갑자기 <달과 6펜스> 다시 읽고 싶어져요!! ㅋㅋㅋ

cyrus 2015-07-24 18:4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