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리뷰' 의 정의가 무엇일까?   지금도 리뷰 또는 서평의 정의와 그 기준에 대해서 담론이 오고가고 있지만 확실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원래 리뷰라고 하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할 수 있게끔 정확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항상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책의 줄거리만 간단하게 요약약해서 소개만 하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로써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 또는 생각 역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작성하고 있는 리뷰나 페이퍼는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형식은 없지만,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 감상문이며 감상보다는 줄거리 중심으로 쓰게 된다면 그저 책의 내용만 소개하는 기록문일 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봄으로써 오히려 책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저 독서 경험의 흔적을 오랫동안 잊지 않기 위한 '독서 앨범' 이다.   

문득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감상이 언급되는 부분을 기록하는데 적잖이 고심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 때문에 오히려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더러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를 초월하면서 모든 독자들이 공통된 공감을 주는 책이 있다고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재미있다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100% 재미있게 느끼는 독자는 없다. 책 읽는 기호와 취향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입소문과 홍보에 혹해 책을 골랐는데 막상 읽어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보통이거나 또 광고나 서평자가 소개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스럽게 된다.  

그래서 항상 책을 소개하는 리뷰나 페이퍼를 소개하게 되면 왠만하면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나 내용은 좋으나 아무도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잊혀져가고 있는 저주받은(?) 책의 경우에는 되도록 신중하게 쓰려고 하는 편이다.  

   

 

  반전의 독서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리뷰를 작성하면서 <사물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소비사회의 속박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뷰에 기록된 주관적인 감상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뒤에 소개된 작품해설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적인 풍요로움 가운데 그랑 부르주아가 누리던 사치와 호사를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되자 마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기만 한 사물들에 대한 갈증 또는 지독한 시기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해서 이 작품을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만 해석한다면 페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페렉 또한 자신의 작품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좌파 성향의 글쓰기로 단정 짓는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 작품해설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다] 김명숙,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143 -

   

어제 글을 작성하면서 작품해설의 저 구절이 자꾸만 마음에 밝혀서 결론 부분에는 결국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에 대한 욕망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어설프게 마무리지었다.      사실 <사물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의 모습을 통해서 페렉이 소비의 욕망으로 가득한 1960년대 프랑스 자본주의 사회 속 절망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제대로 뒷통수 맞아버렸다.   페렉이 원하지 않는 소설에 대한 반응이라니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게 바로 반전의 독서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페렉의 문학적 유희에 당한 것인가? 

 

 

  창조적 글쓰기의 윤리적 의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이 작가가 원했던 의도와는 완전 정반대로거나 심하게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작가에 대한 무례한 결례일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과 같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창조적인 작가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에 빗나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젋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해석에 대해서 아주 멋드러지게 정의내리고 있다.    

 

창조적 작가는 자기 작품의 합리적 독자가 되어 억지스러운 해석에 반박할 권리는 갖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이미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중에서, pp 16, <젊은 소설가의 고백> 움베르토 에코, 레드북스 -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쓴 소설들에 대해서 독자들의 해석에 반론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의도했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윤리적 의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과학적 글쓰기가 아닌 이상 시나 소설과 같은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텍스트 해석을 위한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같은 책, pp 17) 

     

 

  움베르토 에코의 윙크

그리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황당했던 점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은 예민한 독자라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 떠올렸을 거라고 설명한 부분이었다.  작년에 <감정교육>을 읽은 나로써는 (페렉이 실제로 이를 차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읽은지 꽤 오래 된 것도 있고 아니면 내가 교모하게 숨긴 페렉의 문학적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에코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소설 속에 숨겨진 암시를 '윙크'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처녀작이면서도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중코드 기법' 을 예로 들면서 이를 알아차린 독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자들이 <장미의 이름>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방대한 중세의 지식에 비롯된 난해함에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의 결론부에서는 문학은 독자들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도록 도발하고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pp 50)    

 

지금도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마르크스의 격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60년대의 소비 사회 비판에 대한 좌파적 시선의 알레고리인 것일까?   시간만 된다면 또 한 번 읽어봐야겠다.  독자들에게 도발하는 문학적 유희라고 할 수 있는 페렉의 윙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P.S>

 

 

  

 

 

 

 

 

<젊은 소설가의 고백>에 네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 [궁극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책에서는 글에 대한 정확한 출처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 국내에 출간되었던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2010) 출간 전에 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니면 출간 후 책의 내용에 간력하게 요약한 에세이일 수도 있다, 인용문과 설명하는 내용이 중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목록이 소개된 <궁극의 리스트>를 읽기 전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 속 [궁극의 리스트]를 먼저 읽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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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좀 잘 써봤으면 좋겠어요.
리뷰는 아니 시루스님 말하는 독후감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게 리뷰가 아니고 독후감이라면 진짜 잘 쓴 리뷰는 뭔지
그 뒤태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ㅜ
에코의 책은 넘 어려워 늘 열외죠.

cyrus 2011-08-11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딱히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명확한 것은 없지만 저는 항상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해요, 간단하게 초등학교 때 정기적으로
책 읽고 독서기록장 노트에 감상문 쓰는 것처럼요. 어떤 책은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남는게 없다거나 도저히 쓸 거 없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에요.

<고백>은 에세이 형식이라 어렵지 않아요. 에코 본인의 소설에 대한
창작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소설에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

2011-08-11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2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저는 책을 발간했다는 자체로, 작가의 손을 떠난게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도 있을테지만,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 한 무의식적 부분 역시 반영되었을테고.. 그것을 작가 자신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건 저희가 쓰는 페이퍼도 마찬가지일테죠. 물론,, 지나친 곡해는 곤란하고 글에 대한 해석 역시 예의를 잊어버리면 곤란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두어야겠지만요.

그나저나, 제 글은 리뷰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제 푸념? 아하하.

cyrus 2011-08-16 22:12   좋아요 0 | URL
와~~ 이번 마고님 댓글은 저를 공감하게 만드네요 ^^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 부분이라,, 그 점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어요.

위의 이웃분들 댓글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글 (알라딘 서재에서 쓰고 있는 글까지 포함)들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거 같아요. ^^
 
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001-599] 사물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 조르주 페렉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63 -

 

   

  풍요 속의 욕망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부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그 까닭을 이렇게 풀어준다. ' 인간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남들보다 잘살기를 바랄 뿐이다.'  

욕심은 끝없이 자라는 나무와 같다. 사람은 배불러도 만족을 모른다. 살 만해지면, 살림살이가 기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하려는 ‘이웃’의 수준도 점점 올라간다. 처음에는 옆집, 옆 동네에 눈길을 주다가, 눈높이는 마침내 텔레비전에 나오는 재벌들 수준까지 나아가 버린다. 그들의 재산 수준을 비교하면서 본인에 대해서 자탄을 하게 된다.   

    

 

  조르주 페렉의 문학적 유희  

조르주 페렉의 처녀작 <사물들>을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읽고나게 되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의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소설이다.  

일단 첫 장부터 도입부가 독특하다.  소설 외부에 존재하는 화자는 관찰하듯이 방 안에 높인 사물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설명하는 묘사를 따라서 다음 장으로 읽어나가도 사물에 대한 관찰 묘사는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인물 간의 대화가 별로 없다.  이 소설 속에서 제롬가 실비라는 젊은 남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사건 전개와 괸련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인물 간의 대화도 많지가 않다.   제롬과 실비 역시 화자에게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동등한 '관찰' 대상일 뿐이다.  

작품 해설 내용을 제외하면 139쪽이라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 조르주 페렉을 처음 접해 본 독자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이라고 하면 발표되는 소설마다 일반적인 소설 창작 형식의 틀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실험적 글쓰기를 주장한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규칙 없이 나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화자, 즉 페렉이 기록하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묘사들이 결국에는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르주 페렉은 자신의 창작에 대해서 ' 빠져나갈 작정인 미로를 만들어야만 하는 쥐들 ' 이라고 스스로 정의하였다.  결국 인물 간의 대화를 최대한 배제한 채 소설 외부의 화자인 페렉이 유지하고 있는 관찰의 기록은 그가 독자들을 위해서 고안해낸 미로, 즉 문학적 유희인 것이다.  독자는 페렉의 미로에 들어가게 되면서 문학적 유희를 만들어낸 쥐, 즉 작가가 지나간 흔적을 좇아가게 된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혀버린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통해서 미로를 탈출할 수 있었듯이 소설 속 화자로서 개입한 작가의 관찰은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켜주도록 만들고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들>을 완독한다고해서 독자는 페렉이 만들어낸 사물들의 미로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미로를 탈출하고 난 뒤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탈출구가 없는 사회적 미로에 갇혀버린 채 절망하고 안주하는 제롬과 실비 그리고 실제로 체엄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제롬과 실비는 끝없는 소비의 욕망을 갈구하게 되지만 끝내 좌절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지오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  소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주고, 우리에게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우리의 욕망과 기호가 소비행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행태가 우리의 욕망과 기호를 결정한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중략)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富)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만 갖고 있었다.  (중략)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고 달리 기대할 게 없었다.  하지만 바로 곁 주변에, 늘 걸어 다니는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골동품 가게, 식료품점, 지물포에는 매력적이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중략)   

이대로 영원히 취기 어린 상태로 그 유혹에 자신들을 내맡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욕망의 끝은 냉혹하게 꽉 막혀 있다.  커져만 가는 불가능한 꿈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 같은 책,  pp 22~23 -  

  

소비주의에 낚인 사람들은 소비 나르시시즘의 나락에 떨어져 오로지 자기만이 예외적이고 특권적으로 중요하고, 자기만의 권력, 총명함, 성적인 매혹을 지녔다는 망상 속에서 산다.  이런 망상 속에서는 자신이 겪게 된 실패나 실망은 언제나 내가 아닌 외부의 잘못이다. 소비가 주는 기쁨의 유효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결국 삶의 감각이 마비된다. 소박한 즐거움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되어 더 강한 자극을 찾아 구매욕에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물들' 로 가득한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행복은 찾을 수 있을까?  

오늘날 물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풍요로움이 어떤 정형화된 행복을 가져다주었지요.   (중략)   실비와 제롬이 행복하고자 하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려든 겁니다.  행복은 계속해서 쌓아 올려야 할 무엇이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 1965년 [레 레트르 프랑세즈]와의 인터뷰, 같은 책 pp 142 -


 

20:8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전체 결과의 80%는 20%의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의 법칙이다.  전체 부의 80%는 20%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게 그 사례로 흔히 제시된다. 결국 20%만이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들이 끝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행복' 이라는 단어는 헛된 희망이다.  결국에는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만족감에 불과한 '정형화된 행복' 일 뿐이다.

눈을 떠서 주변을 돌아보면,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영화, TV드라마, 광고 등을 이용하여 그 신화적 욕망을 이미지에 담아냄으로써 소유하고 소비하고픈 욕망을 일깨워준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화려한 성공신화를 홍보함으로써 ‘나’도 부르주아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태우게 한다.   하지만 소비의 사회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준다. 그리고 실패한 나머지 모두에게는 ‘너희’가 능력이 안 되거나, 열정을 바치지 않았거나, 아니면 운이 없어서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현대 문명은 늘 ‘위기’ 상태이다. 욕망을 키워야만 버틸 수 있는 문화가 건강할 리 없다. 다스리지 못한 욕망은 재앙을 낳는다.  욕망이 만들어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소설 속 제롬과 실비처럼 튀니지로 도피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간 튀니지 역시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으로 가득한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자본주의 문명 속 우리들도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비상하지 못한 채 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미로 속에서 탈출하여 행복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조르주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소비 행태와 행복과의 관계를 적확하게 묘사할 뿐 아쉽게도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실타래를 독자들에게 건내주지 못했다.  

경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한없이 커져만 가는 우리의 욕심부터 경계할 일이다.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그것이야말로 지금 사치와 욕망으로 채워진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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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지게 페이퍼나 리뷰 뚝딱 써주시니 저야말로 고마울 따름! 그렇잖아도 민음사,펭귄,열린책들 다 검색중인데 이거 신간이네요. 발빠르신 시루스님.ㅎㅎ 주제가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되돌아보게 하네요. 욕심과 사치 때문에 정말 지켜야 할 행복을 많이 놓치고 사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공감!!!^^

cyrus 2011-08-10 21:1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품해설에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래요, 오히려 페렉은 자신의 소설이 그런 쪽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고 하네요,, ^^;; 저는 해설을 읽기 전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해설을 읽으면서 약간 김이 샜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강남 좌파'가 문제가 아니고
'강남 좌파'와 비교하는 '나'라는 존재의 생각이 잘못된거군요... 맞네요 맞아.

cyrus 2011-08-10 21:19   좋아요 0 | URL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강준만의 <강남 좌파>를 말하는거죠?
마고님 서재에 쓴 리뷰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가 본인은 자신의 소설이 좌파 성향으로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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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터쳐블' 이라 불리우는 책들

주말에 알라딘 이벤트 게시판을 확인하다가 재미있는 내용의 구매 이벤트를 발견했다.  정해진 가격 이상에 구입하게 되면 적립금을 주는 일반적인 구매 이벤트였지만 이벤트 대상도서들이 평범하지가 않다.   

책 한 권 분량이 적어야 700페이지 정도에서 많으면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책들이다.    

야구에서 경기 운영 능력이 특출한 선수에게 붙이는 수식어 중에 '언터처블'(Untouchable)' 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타율 성적이 좋은 타자라도 시속 150Km에 가까운 투구를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투수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빠른 공에 안타라도 쳐내지 못하는, 공 끝 하나라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해서 붙여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언터쳐블형 투수라면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오승환 정도면 되겠다. 최소 경기 30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겼고 돌이라고 부를 정도로 묵직하면서 유일하게 빠른 직구를 홈런으로 쳐낼 수 있는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거포 이대호뿐이니 과히 언터쳐블이라고 불릴만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에도 '언터처블' 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완독은커녕 몇 페이지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큰 돈 들여서 구입해도 두꺼운 분량의 책들은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표지도 펼쳐내지 못한 채 서가에 그대로 방치되기도 한다.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단지 두껍게 보이는 시각적인 인식에다가 어마어마한 쪽수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발휘하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가격은 일반적인 책 한 권 가격보다 2배 정도 비싸다보니 구입하는 독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다.  

 

사실 나도 500페이지 넘는 분량의 책을 못 읽는다.  아니, 방대한 분량에 겁먹어 안 읽는다고하는게 낫겠다.   정말로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내용이 아닌 이상 2권 이상 시리즈로 구성된 책들 역시 끝까지 못 읽는 편이다.   독서 습관이 한꺼번에 세 네 권 정도 같이 읽어야 속이 편하는 독특한 성미라서 한 번 읽은 시리즈나 두꺼운 책은 중도에 읽다가 포기해서 끝장을 보지 못한다.   

 

  

  군인들에게 좀 인기가 있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나마 일주일 잡아서 끝장까지 본 책이라면 모두 5권으로 이루어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6권으로 이루어진 <신> 뿐이다.   <개미>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게 되었는데 10분 밖에 안 되는 학교 쉬는 시간에도 <개미>를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에 <개미>를 다시 읽으라면 또 읽을 수 있다.     <신>은 군병원에서 입원했던 시절에 읽어서 그런지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평소에 사회에서는 책을 안 읽던 사람도 군인이 되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인기 많은 작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게 만드는 '맥심' , 'GQ' 같은 시각적으로 즐겁게 만드는 잡지를 제외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책을 집으면 지나가는 군인들은 몇 마디 건넨다.  자신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었다는 등 이 소설의 내용이 재미있다는 등 생각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관심이 많은(?) 군인들이 꽤 있었다.   비록 개인적인 체험을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국내에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보유한 외국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독서와는 거리가 멀듯한 군인들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사족: 참고로 군인들은 장르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주로 판타지를 많이 읽고 내 주변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외에도 군인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장르소설 작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과학 독후감 덕분에 읽게 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내가 읽었던 책들, 그러니까 완독한 책들 하에 정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쪽수의 책이었지만 끝까지 읽은 유일한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뿐이다.   

<코스모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유명한 과학의 고전이라서 인문계열에 속한 독자들도 많이 읽는 과학 도서일 것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느 <코스모스>는 보급판인데 맨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까지 포함하면 총 719페이지다.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코스모스>가 화려한 올컬러 도판으로 이루어진 특별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특별판도 보급판과 판매되고 있는 중인데 정가가 45000원에 특별판답게 책의 크기가 대형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라도 비싼 가격에 편안하게 읽기에는 힘든 무거운 판형이라면 독자들이 외면하기에 충분하다.  특별판이 나온지 2년 뒤에 줄어든 가격에 편안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형으로 보급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보급판이라고해도 600페이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압박은 여전하며 보급판 속의 도판이 흑백인데다가 특별판에서 볼 수 있는 몇 몇 도판이 삭제된 게 아쉽다.   

읽기 어려운 특별판이라고 해도 나에게 특별판은 화려한 올컬러 화보 때문에 그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책으로 교내 과학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다.  나름 유명한 과학 고전인 것도 있었고 그 때 마침 과학 독후감 대회가 있어서 정말 밤을 새면서까지 대형 특별판을 읽고 열심히 10장 분량의 독후감 한 편을 써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최우수상은커녕 입선에도 뽑히지 못하고 마는 비극을 맛봐야했다. 그래서 지금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만큼은 왠만한 일반 독자들도 잘 읽지 않는 과학 분야 도서지만 지금까지 읽거나 내 손에 거쳐간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는 책들 중의 하나다. 유년시절의 독서 경험 덕분에 보급판을 구입해서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완독을 하지 못한, 지금도 조금씩 읽고 있는 '현재진행형' 독서의 책들     

   

 

 

 

 

 

 

   

 

최근에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책장에 방치되었던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7월에 있었던 리뷰 대회 때문에 읽게 된 것이지만 만약에 김태권 도서 리뷰 대회가 없었더라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만화로 구성되어서 방대한 분량의 <사기열전> 속 내용을 재미있게 읽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그래도 사마천 특유의 역사적인 관점이 묻어있는 원전 <사기열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름 입체적인 독서를 한답시고 김태권의 만화와 <사기열전>을 동시에 번갈아 읽어봤는데 사실은 <열전>만 읽기에는 충분치가 않다.   

사기는 <열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대 제왕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본기>와 광활한 중국 대륙의 각각 지방을 다스리던 제후들의 기록을 담아낸 <세가>로 구성되어 있어서 간혹 <열전>에 있는 내용이 <본기>에도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본기><세가>까지 완벽하게 구비한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각 한 권의 방대한 분량 무시 못한다.   

지금 두 권으로 된 <열전>만 소장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 <본기>와 <세가>를 구입하고 싶지만 절제 중이다.    일단 <열전>을 절반 정도, 아니 1권이라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우선인듯싶다. 

 

 

  

 

 

 

 

 

 

 

  

평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일명 줄여서 '상절지백' 이라고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만의 잡다한 지식들이 총망라한 책을 더 좋아한다.   제목만으로는 백과사전일뿐이지 실상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백과사전답게 너무 진지하지도 않으면서도 굳이 살아가는데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평상시 우리가 지나치고 있거나 무관심하고 있었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백과사전의 큰 장점인거 같다.   <상절지백>에 있던 내용에다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한 <상상력 사전>은 자투리 시간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항목을 틈틈이 읽기에 좋다.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철칙들 중에는 정말 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책은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질리게 되고 미각의 쾌락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되듯이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고 다 읽다보면 정작 찾아오는 것은 알 수 없는 허무감이 오며 읽고 난 뒤에 머릿속에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한 채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디트리히의 슈바니츠의 <교양>은 서양의 인문, 교양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읽으면 좋은 책인것은 분명하다.  이 책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출간되었는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중학교 2학년, 이제 막 인문, 교양이라는 것에 눈 뜨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읽다가 도중에 잠든 기억만 날 뿐이다.   그 당시에는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중학교 2학년, 15세가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자주 들리는 헌책방에서 완전 반값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 책은 나에게 '교양' 이라는 멋진 이름을 단 수면제다.   <상상려 사전>은 내용이 재미있어서 조금씩 읽고 있지만 반대로 <교양>은 내용 자체가 진지하고 쉽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서 천천히 읽는 편이다.  

 

 

 

 

 

 

 

  

  

 

 

이 세 권 다 내가 순전히 읽고 싶다는 마음에 구입한 책이면서도 과연 죽을 때까지 완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책들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인명사전까지 포함하면 총 1330페이지다.   몽테뉴는 죽을 때까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수상록>를 남겼는데 분량도 10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글 속에 묻어 있는 몽테뉴의 사유 방식 역시 분량 못지 않게 깊으면서도 방대한 범위를 자랑한다.   

죽음, 잠, 종교, 우정 등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행위들에 대해서 몽테뉴만의 진실되고 솔직한 성찰과 감정이 담겨져 있다.  꾸밈 없는 그야말로 솔직하게 쓰여진 기록이다보니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 때만 가능했던 제한적이면서도 구시대적인 관점도 있지만 몇 몇 수필과 문장 중에도 삶의 진리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내용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필 중간에 호메로스나 세네카와 같은 고대 문장가들의 격언까지 인용되어 있어서 현대인의 정신을 살 찌우게만드는 좋은 명문들이 수필 곳곳에 박혀 있다.  

 

<광기의 역사>는 단지 미셀 푸코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선뜻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앞쪽의 해제만 여러 번 읽었을 뿐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제일 심각한 책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 중에서 산 지 얼마 안 된 책이다.  이 책을 구입한 동기 역시 단순히 서양미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미술학과 전공도서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읽어내기가 순탄하지가 않다.  게다가 책의 활자가 깨알 같아서 덕분에 <교양>과 더불어 대구의 열대야를 이겨내는 좋은 수면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 전에는 대중의 기호에 맞춘 편안하고 읽기에 무던한 미술사 관련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대학전공 수업 내용에 맞먹는 정말 '제대로 된' 미술사 도서를 만났으니 이 책을 읽기만 하면 부담스러우면서도 고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역사적 순서대로 한 챕터씩 읽으려고 했지만 독서 패턴이 단순해서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인상주의를 소개하고 있는 챕터를 읽어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를 시도해봤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읽을 정도의 책은 아닌거 같다.    관련 미술화파를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유행했던 미술화파 역시 알고 있어야하기에 미술사에 대한 순차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술 비전공이다보니 이 책이 미술사와 관련해서 책들 중에서 명불허전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미술 비전공자들에게는 깨알 같은 활자는 읽기 불편하다는 것.   그래도 시험을 위해서라면 전공책을 통독한 나로써는 활자는 수면을 부르게 할 뿐 불편을 감수하면서 읽고 있는 중이다.  광범위한 미술의 역사를 딱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게 어디인가.  

 

  

  분량이 두꺼워서 슬픈 언터처블 책들이여

무더움과 장마가 찾아오는 여름날에 어떻게 보면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더위와 짜증 그리고 수면만 늘어나게 만들 수 있다.   간혹 정계 인사나 CEO들이 휴가철에 읽는 도서들을 보면 조금은 두꺼운 분량의 고전 몇 권이 끼여있기 마련인데 여름철 무더위와 일상의 피곤함을 벗어나기 위한 휴가에 정말 제대로 읽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특별한(?) 사고방식을 가진 몇 몇 사람만 제외하고는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은 꼭 휴가철에만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꾸준히 읽어야 할 정신적인 영양소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을 즐겁게만 해주는 우리들의 기호에 맞춰주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요즘에는 읽기 어려워하는 고전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대중들의 독서를 위한 집필의 취지는 좋지만 정작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렵고 분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지널은 외면받고 있다.  비단 고전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내용들이 할애되는 철학이나 과학 분야의 도서들의 외면은 더하다.  가격도 비싸서 서러운 판에 단지 분량이 많다고해서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알맹이를 먼저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형식상 겉모습만 보고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나마 자신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구매서평마저 없는 책도 있다.   

노천명의 시에 등장하는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다고 하는데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일명 '언터쳐블' 책들은 판형이 크고 두꺼워서 슬프다.  독자들의 손에 쥐어쥔다고 해도 자신보다 가벼운 분량의 책처럼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항상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뜨거운 라면이 담긴 냄비받침이나 목침 못지 않은 딱딱한 베개가 되기도 한다.   

주인 잘못 만나 서러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언터쳐블' 책들은 화려한 홍보가 아닌 언제나 점잖게, 서점 책장 어디선가 자신을 선택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독자를 기다리면서...

   

 

 

 P.S>

 

                                                 

 

 

 

 

 

 

 

두꺼운 책이라고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들뢰즈 &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빠질 수가 없다.  평소에 이 두 권의 책에 그저 눈빛만 보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망해버려서 알라딘에 판매되고 있던 <율리시스>가 품절되고 말았다.  진작에 구입하지 못한 아쉬움만 자꾸 든다.  

반면에 들뢰즈라는 악명 높은(?) 철학자가 쓴 <천 개의 고원>은 출간된 지 꽤 되었고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중인데,,,   이 책 역시 언젠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품절 혹은 절판될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   <천 개의 고원> 역시 편안하게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지만... 재정적 여건만 된다면 빠른 시일내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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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에서 놓친 진정한 의미의 1000페이지 클럽 책들은 여기에도 있당^^
    from 퀸의 정원 2011-08-11 12:04 
    즐찾에서 cyrus님의 글을 읽다보니 냄비받침 No! 베개대용 No! 1000페이지 클럽 이벤트란 행사을 알게 되었네요. 가벼든,가볍지 않든 교양서적은 좀 무식한(?)사람 입장에서 페이지 수가 작아도 읽기 힘든편인데 권당 페이지수가 최소 7백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되어 읽을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ㅜ.ㅜ 그런데 문학서적분야에도 인문 교양서적 못지않게 무자비히게 페이지 수가 많은 책들이 있는데 정말 장식장용으로 딱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는 페이퍼예요! 갑자기 정말정말 두꺼운 책을 책상 한가득 펴놓고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네요..ㅎㅎ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꺼운 책은 <나니아 연대기>예요^^;; 1080쪽이네요.
그 다음이 <오디세이아> 이건 672쪽이네요.

<교양>에 대해 쓰신 부분이 제일 공감가요. 저도 제목과 책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었는데 정말 교양인답지 못한 꼴로 결론이 나요. 책을 베고 잠이 든다던지, 읽던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던지요..ㅎㅎ

대학때 미술사를 배울 때는 책도 별로 없었어서 <미술의 역사>라는 정말정말 두껍고 무거운 양장 책을 교재로 썼어요. 미술사 들은 날은 정말 어깨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래도 비싼 책이라 학교에도 두고 다니지 못했다지요..ㅎㅎ

cyrus 2011-08-09 19:45   좋아요 0 | URL
저도 왠지 두꺼운 책만 보면 끝까지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드는데,,
막상 읽고나면 중도에 포기할 때가 많았어요. 그러고보니
두꺼운 책이라면 <나니아 연대기>도 있었네요, 학창시절에 한창
<나니아 연대기>가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 판타지를 좋아하는 제 친구가
그 두꺼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무거워도 함부로 보관할 수 없는게 전공책의 아이러니인거 같아요.
무겁다고 해서 학과 사무실이나 사물함에 따로 보관하게 되면
누군가가 훔쳐가거든요,, ^^;;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본인이 직접 챙기는 수밖에요 ㅎㅎ

stella.K 2011-08-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두꺼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허영인 경우가 많구요, 한 320페이지 내외면 딱 좋은 거 같아요.
저 상상력 사전은 알사탕 안 붙었으면 안 샀을텐데 사 놓고 모셔만 두고 있다능.ㅜ

cyrus 2011-08-09 19: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완독할 수 있고 적당한 최적의 분량이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을 멀리하는 이들에게는 300페이지도 두껍게
보인다는 사실이에요 ^^;;

아이리시스 2011-08-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광기의 역사]보다 얇아서 푸코 책을 한 권 소유중인데 제목이 뭐더라. 흐아, 까먹었네요. 저건 다 가지고 계신 거죠? 저도 [서양 미술사] 있는데..^^

cyrus 2011-08-10 21:21   좋아요 0 | URL
푸코의 책 중에 얇은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닌가요?
저는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해서 도록이랑 그 책도 구입했는데,,
역시,,, 푸코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

사진에 있는거 다 읽으려고 구입한 거에요. 과연 다 읽을 날이 오게 될까요?
^^;;

마녀고양이 2011-08-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책 욕심이 많아서, 저렇게 두꺼운 책이 한벽 가득하다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읽었냐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난번에 800 페이지 넘는 아인슈타인 자서전 읽다 죽을뻔했죠~ ^^
아하, 율리시즈는 저기서 저를 보는군요. 나니아는 저도 읽었어요. 참 길죠~
뒤에 꽂힌 책을 보니, 도둑 들어오면 저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들 냅다 던지면 될듯.

cyrus 2011-08-10 21:2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사진에 있는 책들은 한번도 끝페이지를 보지 못했어요 ^^;;
두꺼워서 읽지 못하는 책도 나름 쓸만한 용도가 있었군요 ㅎㅎ


콜로서스 2011-09-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율리시스 품절된 거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워지는....

cyrus 2011-09-02 2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콜로서스님 ^^

예전부터 구입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미루다보니 그만.. 결국에느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

북깨비 2015-10-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의 역사에 대한 코멘트가 재밌어서 좋아요를 꾹 누르고 갑니다. ˝진도가 안나가는 제일 심각한 책˝은 내용이 제일 심각한 책인가요 심각하게 진도가 안나가서 제일 곤란한 책인가요. ㅎㅎㅎ 저도 `책이 좀 많습니다`에서 추천글을 보고 급 땡겼는데 cyrus님 올리신 사진보고 그 생각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5-10-12 18:11   좋아요 0 | URL
북깨비님 덧글 덕분에 예전에 썼던 글을 오랜만에 보게 됩니다. 다시 봐도 정말 부끄럽군요. ㅎㅎㅎ 분량이 엄청 많으면서도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만난다면 곤란해요. 여러 번 도전했는데 완독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요. 그래서 심각한 책이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Dora 2015-11-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개의 고원 내년에 도전하고 싶은데 ..혹시 비법을 전수해주실 수 있으신지요(사셨을 거라 믿고) 구입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cyrus 2015-11-30 17:51   좋아요 1 | URL
답글을 재스민님의 서재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확인해주세요. :)
 

  

 

 

 

 

 

 

 

  

 

 

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을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감히 하니까요.  그러므로 그대 친척 나를 막진 못합니다.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 로미오의 대사, 민음사 pp 54 -

 

 

누구나 한번쯤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향기를 담고 있다. 400여 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사랑의 향기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흔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에 있었던 전설을 토대로 만든 비극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의 전설과 오디비우스의 신화를 함께 인용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비극적 사랑의 대명사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 커플의 이야기에 모티브가 된 설화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전해내려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시리아라는 지역에 퓌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총각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서로 이웃지간으로 살고 있었는데 정이 들다보니 서로 눈 맞아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양가 어른의 반대로 서로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고 있는 앞집 뒷집 사이에는 아주 높은 벽이 세워져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티스베> 1909년

 

 

그러나 높은 성벽이라도 연인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벽 사이에 갈라진 틈을 이용하여 목소리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자신들을 가로막는 사랑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퓌라모스와 티스베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야밤에 사랑의 도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주하기 위해서 어두컴컴한 밤에 뽕나무가 있는 샘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티스베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한 마리 사자가 입에 피를 묻힌 채 나타났다. 티스베가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쓰고 있던 베일이 땅에 떨어졌고, 사자는 베일을 피 묻은 입으로 찢어버렸다.  한발 늦게 도착한 퓌라모스가 땅에 남겨진 사자의 발자국과 찢어진 티스베의 베일을 발견하고는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잠시 후 조심스레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온 티스베는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퓌라모스를 발견하고 놀람과 슬픔에 오열하다가 그를 따라 자결하였다.  두 남녀의 죽음을 알게 된 양가 집안은 이들의 소원대로 두 사람의 주검을 한 무덤에 묻어주기로 하였다.

퓌라모스가 자결하면서 흘러나온 선혈이 약속 장소에 있었던 뽕나무 가지에 묻게 되었는데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가 익으면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퓌라모스의 티스베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증거로 신화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 <로미오와 줄리엣> 1823년


 

두 사람의 가슴을 태운 사랑의 불꽃은 그 뜨겁기가 같았을까, 달랐을까?  아마 같았겠지.  하지만 양가의 부모들밖에는, 아무도 이 비밀을 몰랐어.  고갯짓, 눈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었으니까.  감추면 감출수록 깊어가는 게 사랑이잖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는 섶 속의 불씨 같은 게 사랑이잖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 '퓌라모스와 티스베' 편, 민음사 pp 156~157 -  


오비디우스의 저 표현대로라면 사랑이라는 불씨는 사랑하는 당사자 이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들수록 더욱 활활 불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누군가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른다.  어떤 힘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부모든, 다른 어느 누구든 자신들의 만남을 가로막으면, 심지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도록 만드는 커다란 힘이 조그마한 사랑의 불씨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반대가 너무 강력하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려고 했듯이 말이다.  이렇듯 사랑을 가로막을 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모도, 국가도, 총으로도 포탄으로도 막지 못한다. 결국 양가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쓸데없는 적개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었다는 후회와 통절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희생을 통해서 양가는 서로 화해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 중에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외부 압력이 거세질수록 남녀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일종의 청개구리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는 세기의 문학사적 커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에전해져 내려오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가 그 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기에 오히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두 주체가 서로 매혹되는 일. 매혹이 일생 동안 한 치의 변함없이 유지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시련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떠한 것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대수로워지지 않는 담력을 이끌어낸다.   

누구든 사랑에 빠지면, 이런 외적 요인들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외적 요인들이 사랑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것들에 맞서서 저항하고 투쟁하도록 사람을 바꾸어 놓는 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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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0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의 밤에 셰익스피어를 읽는 건 너무 멋지잖아요, 시루스님. 너무 더워서 죽겠어요. 저는 공부는커녕 책읽기도 귀찮아요. 시간을 계속 뒹굴거리며 흘러보내고 있어요. 이러다 정신차리면 10월이 와있을 것 같아요. 얼른 정신 차려야지. 대학생은 방학이라 푹 쉬어도 또 학교가지만 저는 뭔가 좀.. 흑흑. 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읽기 해야겠네요, 저도. 너무 멋있어요!!!^^

cyrus 2011-08-07 00:38   좋아요 0 | URL
저 방금 아이리시스님 서재에 댓글 달고 왔어요 ㅎㅎ
대구는 요즘 열대야라 잠이 안 오네요. 그래서 지금 이렇고 있어요 ^^;;

저는 민음사판으로 처음 읽어봤는데,, 고전이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원문의 운문 형식 그대로 따르다보니
뭔가 어색한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윤기 님의 번역도 읽어보려고 해요.^^

비로그인 2011-08-0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얼마전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어 뭔가 찾아보곤 했는데, 이렇게 또 마주하니 재밌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림과 문학작품에 대해서 소개를 하더라고요. 올려주신 글과 그림 읽으니 갑자기 그 부분이 막 생각납니다.

갑자기 비가 막 오고 갔는데, 뭔가 어수선한 밤입니다. 이 더위가 끝나면 cyrus님 개강이겠지만, 더위는 얼른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

cyrus 2011-08-08 23:51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대사를 읽어보면 신화 속 대사나 인물, 격언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셰익스피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더군요.

어제 태풍이 지나간다고해서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바람 때문에
덥지는 않았는데.. 태풍이 지나간 지금 너무 더워요. ^^;;
벌서 방학도 3주 남았네요, 슬슬 개강 준비를 해야되갰네요.


stella.K 2011-08-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인기리에 방영중인 <공주의 남자>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데
괜찮은 것 같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자식들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가정 충분히 가능
가능할 수 있죠. 이야기가 너무 현대적여서 그렇긴 하지만 사극에 현대성이 빠지면
재미없잖아요. 극본을 잘 쓴 거 같아요.ㅋ

cyrus 2011-08-09 19: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드라마 시청하고 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 광고에 혹해서 보고 있어요. 내용 전개는 뭐라 흠잡을데는
없는거 같은데 배우의 연기력 논란 때문에 말이 많은거 같아요 ^^;;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왜 어떤 기업은 위대한 기업으로 건재한 반면, 다른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몰락하는가
짐 콜린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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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운명은 짧고 기술은 길다

부불삼세, 빈불삼세 (富不三世, 貧不三世) 

부자는 3대를 못가고, 가난도 3대를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의 변화는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 속도는 그렇지 않다. 불과 몇 년, 몇 달 아니 자고 나면 세상이 뒤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기업의 수명도 과거보다 훨씬 짧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이라는 것이라는 통설이 자리잡고 있지만 현재의 급변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기업의 평균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신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찾은 기업은 성장이 가능했지만 성공에 대한 지나친 오만(Hubris)에 빠진 기업들은 역사의 무덤 속에 묻혀 버리게 된다.

세계 카메라시장을 장악했던 코닥의 흥망성쇠는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기업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코닥의 몰락    

 

코닥의 역사는 18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유리판 필름은 대단한 기술이었다.   코닥은 그 후 카메라를 시판하기 시작했고 이처럼 코닥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싼 가격으로 제품을 시장에 내놓자 소비자들은 열광하였다. 추억을 현실속의 기록으로 남겨주는 기업으로, 카메라는 세계인들이 꼭 지녀야 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코닥은 잊혀진 기업이 되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필름의 대명사 역할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변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닥은 디지털 시대가 되면 플라스틱 필름이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서야 자신의 발등에 불똥이 튄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코닥은 뒤늦게 디지털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여전기 코닥은 전성기의 영광과 추억에 집착했다. 디지털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해오던 기존의 필름 카메라 사업 투자 비중은 오히려 확대했다.

신기술의 디지털 제품을 내놓으면 기존 시장에서 강점을 갖고 있던 아날로그식 필름 재고가 소진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일까?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대세를 읽지 못한 대가는 의외로 컸다. 시장의 반응은 혹독했다. 일본의 캐논이 디지털 시장을 석권하며 번성하고 있는 동안, 코닥은그렇게 몰락의 길을 걸어나갔다.  

  

 

  기업 몰락의 5단계  

아무리 뛰어난 기업도 언젠가는 몰락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떤 기업은 위기를 극복해 다시 뛰어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코닥이나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해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사례를 통해서 기업의 몰락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여 몰락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경영 구루 짐 콜린스는 수많은 자료검증을 토대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에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몰락 1단계는 성공을 당연시하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요인을 잊을 때다.  성공에 취해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사업에는 운도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망해가는 기업은 행운으로 얻은 성공마저도 실력으로 거뒀다고 착각해 버린다. 경기가 좋아 물건이 잘 팔려도, 제품이 훌륭해서 판매가 늘었다며 좋아하는 식이다. 그러곤 앞으로 사업이 더 뻗어나가리라 믿는다.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그간의 승리를 바탕으로 여기저기로 사업을 넓혀 나가게 되며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원래의 사업에 소홀해진다.  

3단계는 위험 가능성과 위기 경고를 부정한다.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업 판매 성적이 예전만큼 좋지 못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뭔가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야 할 테다. 그럼에도 임직원들은 상황 탓만 한다.  이때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매달리기도 한다. 인원을 떨구고 비용을 줄인다며 법석을 떤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기업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4단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시기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기업은 어려움을 한번에 날려줄 인재를 찾아 헤맨다. 여기저기서 변화와 혁신을 외쳐댄다. 이들은 그동안 다져왔던 기업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느라 힘을 쏟아보지만 반짝 성과가 날 뿐 오래 가지 못한다.

마지막 5단계는 기업의 생명력이 소멸되는 최종적인 단계이다. 기업은 부도 절차를 밝게 되지만 모든 기업이 몰락의 성적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 기사회생하는 기업들도 있다.   

   

 

  위대한 기업이란...?

짐 콜린스는 기업이 위대해지는 과정보다 몰락하는 길이 더 다양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몰락 과정이 반드시 책에서 제시되는 5단계 순서대로 거치는 것이 아니며  한 두 단계 빠르게 거치는 기업이 있는 반면에 수십 년동안 거치는 기업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정이 어떻든간에 몰락한 기업의 공통점은 위기의 길로 인도하는 관습이 몰락을 자초하게 만들었으며 기업 스스로 성공의 덫에 걸려버렸다는 점이다.  성공에의 도취가 바로 몰락의 덫으로 바뀌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에 저자가 출간했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통해서 대표적인 성공 기업의 사례로 소개된 모토로라, HP 역시 몰락의 5단계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흥망성쇠 방정식은 무척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스스로 유도하여 새로운 강점을 끊임없이 창출해내면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짐 콜린스는 현실 안주보다는 성장의 욕심에 눈이 먼 과도한 변화와 혁신 역시 스스로 기업의 몰락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 역시 실패의 서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공의 공식이 확실한만큼 성공의 덫을 피하기도 어렵다. 로마의 흥망성쇠가 그랬고,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시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짐 콜린스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경영인들에게 현실을 냉철하게, 해법은 착실하게 찾아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생존전략 상의 오류를 반면교사로 삼아 각각의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해 나아갈 것인가를 제시해주고 있다.  

경영 현장에 상존하는 위기와 위험신호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읽어내느냐에 따라서 그 기업의 진가를 결정짓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기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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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0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아주 좋군요!
코닥이 망한 건 여기서 첨 알았네요. 헉.
그렇죠. 문제는 욕심. 이기주의 입니다. 큰일났습니다.ㅜ
짐콜린스는 꽤 괜춘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ㅋㅋ

cyrus 2011-08-07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읽기전만 해도 한 번 망한 기업은 회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덕분에 기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경영 도서치고는 분량이 얇고 어렵지 않아서 괜찮았어요.
다음 학기 때부터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경영햑을 복수전공하게 되었거든요.
아마도 당분간은 경영학에 대해 알기 위해서 경영 도서도 읽어야할거 같아요.
^^;;

마녀고양이 2011-08-0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는 방법은 하나이나, 죽는 방법은 수천가지다 와 비슷하군요.
흥한 것은 언젠가는 망한다죠... 이는 하나의 교훈같아요, 겸손하라는.
(음.. 우리나라 누군가들에게 들려주고 싶군요. ^^)

cyrus 2011-08-07 00:06   좋아요 0 | URL
짐 콜린스는 점점 파산에 치닫고 있는 기업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소수의 기업에만 적용될 뿐 나머지는
CEO의 역량이나 그 밖의 외부 조건들 때문에 살아남기가 불가능할거 같아요,
결국에는 흥망성쇠의 진리는 부정할 수 없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