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리뷰' 의 정의가 무엇일까?   지금도 리뷰 또는 서평의 정의와 그 기준에 대해서 담론이 오고가고 있지만 확실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원래 리뷰라고 하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할 수 있게끔 정확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항상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책의 줄거리만 간단하게 요약약해서 소개만 하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로써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 또는 생각 역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작성하고 있는 리뷰나 페이퍼는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형식은 없지만,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 감상문이며 감상보다는 줄거리 중심으로 쓰게 된다면 그저 책의 내용만 소개하는 기록문일 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봄으로써 오히려 책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저 독서 경험의 흔적을 오랫동안 잊지 않기 위한 '독서 앨범' 이다.   

문득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감상이 언급되는 부분을 기록하는데 적잖이 고심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 때문에 오히려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더러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를 초월하면서 모든 독자들이 공통된 공감을 주는 책이 있다고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재미있다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100% 재미있게 느끼는 독자는 없다. 책 읽는 기호와 취향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입소문과 홍보에 혹해 책을 골랐는데 막상 읽어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보통이거나 또 광고나 서평자가 소개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스럽게 된다.  

그래서 항상 책을 소개하는 리뷰나 페이퍼를 소개하게 되면 왠만하면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나 내용은 좋으나 아무도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잊혀져가고 있는 저주받은(?) 책의 경우에는 되도록 신중하게 쓰려고 하는 편이다.  

   

 

  반전의 독서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리뷰를 작성하면서 <사물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소비사회의 속박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뷰에 기록된 주관적인 감상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뒤에 소개된 작품해설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적인 풍요로움 가운데 그랑 부르주아가 누리던 사치와 호사를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되자 마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기만 한 사물들에 대한 갈증 또는 지독한 시기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해서 이 작품을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만 해석한다면 페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페렉 또한 자신의 작품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좌파 성향의 글쓰기로 단정 짓는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 작품해설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다] 김명숙,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143 -

   

어제 글을 작성하면서 작품해설의 저 구절이 자꾸만 마음에 밝혀서 결론 부분에는 결국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에 대한 욕망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어설프게 마무리지었다.      사실 <사물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의 모습을 통해서 페렉이 소비의 욕망으로 가득한 1960년대 프랑스 자본주의 사회 속 절망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제대로 뒷통수 맞아버렸다.   페렉이 원하지 않는 소설에 대한 반응이라니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게 바로 반전의 독서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페렉의 문학적 유희에 당한 것인가? 

 

 

  창조적 글쓰기의 윤리적 의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이 작가가 원했던 의도와는 완전 정반대로거나 심하게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작가에 대한 무례한 결례일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과 같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창조적인 작가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에 빗나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젋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해석에 대해서 아주 멋드러지게 정의내리고 있다.    

 

창조적 작가는 자기 작품의 합리적 독자가 되어 억지스러운 해석에 반박할 권리는 갖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이미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중에서, pp 16, <젊은 소설가의 고백> 움베르토 에코, 레드북스 -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쓴 소설들에 대해서 독자들의 해석에 반론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의도했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윤리적 의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과학적 글쓰기가 아닌 이상 시나 소설과 같은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텍스트 해석을 위한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같은 책, pp 17) 

     

 

  움베르토 에코의 윙크

그리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황당했던 점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은 예민한 독자라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 떠올렸을 거라고 설명한 부분이었다.  작년에 <감정교육>을 읽은 나로써는 (페렉이 실제로 이를 차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읽은지 꽤 오래 된 것도 있고 아니면 내가 교모하게 숨긴 페렉의 문학적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에코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소설 속에 숨겨진 암시를 '윙크'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처녀작이면서도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중코드 기법' 을 예로 들면서 이를 알아차린 독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자들이 <장미의 이름>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방대한 중세의 지식에 비롯된 난해함에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의 결론부에서는 문학은 독자들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도록 도발하고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pp 50)    

 

지금도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마르크스의 격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60년대의 소비 사회 비판에 대한 좌파적 시선의 알레고리인 것일까?   시간만 된다면 또 한 번 읽어봐야겠다.  독자들에게 도발하는 문학적 유희라고 할 수 있는 페렉의 윙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P.S>

 

 

  

 

 

 

 

 

<젊은 소설가의 고백>에 네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 [궁극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책에서는 글에 대한 정확한 출처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 국내에 출간되었던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2010) 출간 전에 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니면 출간 후 책의 내용에 간력하게 요약한 에세이일 수도 있다, 인용문과 설명하는 내용이 중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목록이 소개된 <궁극의 리스트>를 읽기 전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 속 [궁극의 리스트]를 먼저 읽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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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좀 잘 써봤으면 좋겠어요.
리뷰는 아니 시루스님 말하는 독후감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게 리뷰가 아니고 독후감이라면 진짜 잘 쓴 리뷰는 뭔지
그 뒤태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ㅜ
에코의 책은 넘 어려워 늘 열외죠.

cyrus 2011-08-11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딱히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명확한 것은 없지만 저는 항상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해요, 간단하게 초등학교 때 정기적으로
책 읽고 독서기록장 노트에 감상문 쓰는 것처럼요. 어떤 책은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남는게 없다거나 도저히 쓸 거 없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에요.

<고백>은 에세이 형식이라 어렵지 않아요. 에코 본인의 소설에 대한
창작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소설에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

2011-08-11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2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저는 책을 발간했다는 자체로, 작가의 손을 떠난게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도 있을테지만,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 한 무의식적 부분 역시 반영되었을테고.. 그것을 작가 자신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건 저희가 쓰는 페이퍼도 마찬가지일테죠. 물론,, 지나친 곡해는 곤란하고 글에 대한 해석 역시 예의를 잊어버리면 곤란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두어야겠지만요.

그나저나, 제 글은 리뷰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제 푸념? 아하하.

cyrus 2011-08-16 22:12   좋아요 0 | URL
와~~ 이번 마고님 댓글은 저를 공감하게 만드네요 ^^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 부분이라,, 그 점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어요.

위의 이웃분들 댓글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글 (알라딘 서재에서 쓰고 있는 글까지 포함)들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