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001-599] 사물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 조르주 페렉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63 -

 

   

  풍요 속의 욕망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부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그 까닭을 이렇게 풀어준다. ' 인간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남들보다 잘살기를 바랄 뿐이다.'  

욕심은 끝없이 자라는 나무와 같다. 사람은 배불러도 만족을 모른다. 살 만해지면, 살림살이가 기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하려는 ‘이웃’의 수준도 점점 올라간다. 처음에는 옆집, 옆 동네에 눈길을 주다가, 눈높이는 마침내 텔레비전에 나오는 재벌들 수준까지 나아가 버린다. 그들의 재산 수준을 비교하면서 본인에 대해서 자탄을 하게 된다.   

    

 

  조르주 페렉의 문학적 유희  

조르주 페렉의 처녀작 <사물들>을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읽고나게 되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의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소설이다.  

일단 첫 장부터 도입부가 독특하다.  소설 외부에 존재하는 화자는 관찰하듯이 방 안에 높인 사물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설명하는 묘사를 따라서 다음 장으로 읽어나가도 사물에 대한 관찰 묘사는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인물 간의 대화가 별로 없다.  이 소설 속에서 제롬가 실비라는 젊은 남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사건 전개와 괸련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인물 간의 대화도 많지가 않다.   제롬과 실비 역시 화자에게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동등한 '관찰' 대상일 뿐이다.  

작품 해설 내용을 제외하면 139쪽이라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 조르주 페렉을 처음 접해 본 독자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이라고 하면 발표되는 소설마다 일반적인 소설 창작 형식의 틀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실험적 글쓰기를 주장한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규칙 없이 나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화자, 즉 페렉이 기록하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묘사들이 결국에는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르주 페렉은 자신의 창작에 대해서 ' 빠져나갈 작정인 미로를 만들어야만 하는 쥐들 ' 이라고 스스로 정의하였다.  결국 인물 간의 대화를 최대한 배제한 채 소설 외부의 화자인 페렉이 유지하고 있는 관찰의 기록은 그가 독자들을 위해서 고안해낸 미로, 즉 문학적 유희인 것이다.  독자는 페렉의 미로에 들어가게 되면서 문학적 유희를 만들어낸 쥐, 즉 작가가 지나간 흔적을 좇아가게 된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혀버린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통해서 미로를 탈출할 수 있었듯이 소설 속 화자로서 개입한 작가의 관찰은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켜주도록 만들고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들>을 완독한다고해서 독자는 페렉이 만들어낸 사물들의 미로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미로를 탈출하고 난 뒤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탈출구가 없는 사회적 미로에 갇혀버린 채 절망하고 안주하는 제롬과 실비 그리고 실제로 체엄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제롬과 실비는 끝없는 소비의 욕망을 갈구하게 되지만 끝내 좌절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지오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  소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주고, 우리에게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우리의 욕망과 기호가 소비행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행태가 우리의 욕망과 기호를 결정한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중략)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富)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만 갖고 있었다.  (중략)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고 달리 기대할 게 없었다.  하지만 바로 곁 주변에, 늘 걸어 다니는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골동품 가게, 식료품점, 지물포에는 매력적이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중략)   

이대로 영원히 취기 어린 상태로 그 유혹에 자신들을 내맡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욕망의 끝은 냉혹하게 꽉 막혀 있다.  커져만 가는 불가능한 꿈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 같은 책,  pp 22~23 -  

  

소비주의에 낚인 사람들은 소비 나르시시즘의 나락에 떨어져 오로지 자기만이 예외적이고 특권적으로 중요하고, 자기만의 권력, 총명함, 성적인 매혹을 지녔다는 망상 속에서 산다.  이런 망상 속에서는 자신이 겪게 된 실패나 실망은 언제나 내가 아닌 외부의 잘못이다. 소비가 주는 기쁨의 유효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결국 삶의 감각이 마비된다. 소박한 즐거움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되어 더 강한 자극을 찾아 구매욕에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물들' 로 가득한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행복은 찾을 수 있을까?  

오늘날 물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풍요로움이 어떤 정형화된 행복을 가져다주었지요.   (중략)   실비와 제롬이 행복하고자 하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려든 겁니다.  행복은 계속해서 쌓아 올려야 할 무엇이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 1965년 [레 레트르 프랑세즈]와의 인터뷰, 같은 책 pp 142 -


 

20:8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전체 결과의 80%는 20%의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의 법칙이다.  전체 부의 80%는 20%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게 그 사례로 흔히 제시된다. 결국 20%만이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들이 끝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행복' 이라는 단어는 헛된 희망이다.  결국에는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만족감에 불과한 '정형화된 행복' 일 뿐이다.

눈을 떠서 주변을 돌아보면,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영화, TV드라마, 광고 등을 이용하여 그 신화적 욕망을 이미지에 담아냄으로써 소유하고 소비하고픈 욕망을 일깨워준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화려한 성공신화를 홍보함으로써 ‘나’도 부르주아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태우게 한다.   하지만 소비의 사회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준다. 그리고 실패한 나머지 모두에게는 ‘너희’가 능력이 안 되거나, 열정을 바치지 않았거나, 아니면 운이 없어서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현대 문명은 늘 ‘위기’ 상태이다. 욕망을 키워야만 버틸 수 있는 문화가 건강할 리 없다. 다스리지 못한 욕망은 재앙을 낳는다.  욕망이 만들어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소설 속 제롬과 실비처럼 튀니지로 도피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간 튀니지 역시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으로 가득한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자본주의 문명 속 우리들도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비상하지 못한 채 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미로 속에서 탈출하여 행복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조르주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소비 행태와 행복과의 관계를 적확하게 묘사할 뿐 아쉽게도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실타래를 독자들에게 건내주지 못했다.  

경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한없이 커져만 가는 우리의 욕심부터 경계할 일이다.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그것이야말로 지금 사치와 욕망으로 채워진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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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지게 페이퍼나 리뷰 뚝딱 써주시니 저야말로 고마울 따름! 그렇잖아도 민음사,펭귄,열린책들 다 검색중인데 이거 신간이네요. 발빠르신 시루스님.ㅎㅎ 주제가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되돌아보게 하네요. 욕심과 사치 때문에 정말 지켜야 할 행복을 많이 놓치고 사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공감!!!^^

cyrus 2011-08-10 21:1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품해설에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래요, 오히려 페렉은 자신의 소설이 그런 쪽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고 하네요,, ^^;; 저는 해설을 읽기 전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해설을 읽으면서 약간 김이 샜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강남 좌파'가 문제가 아니고
'강남 좌파'와 비교하는 '나'라는 존재의 생각이 잘못된거군요... 맞네요 맞아.

cyrus 2011-08-10 21:19   좋아요 0 | URL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강준만의 <강남 좌파>를 말하는거죠?
마고님 서재에 쓴 리뷰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가 본인은 자신의 소설이 좌파 성향으로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