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을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감히 하니까요.  그러므로 그대 친척 나를 막진 못합니다.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 로미오의 대사, 민음사 pp 54 -

 

 

누구나 한번쯤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향기를 담고 있다. 400여 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사랑의 향기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흔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에 있었던 전설을 토대로 만든 비극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의 전설과 오디비우스의 신화를 함께 인용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비극적 사랑의 대명사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 커플의 이야기에 모티브가 된 설화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전해내려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시리아라는 지역에 퓌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총각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서로 이웃지간으로 살고 있었는데 정이 들다보니 서로 눈 맞아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양가 어른의 반대로 서로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고 있는 앞집 뒷집 사이에는 아주 높은 벽이 세워져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티스베> 1909년

 

 

그러나 높은 성벽이라도 연인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벽 사이에 갈라진 틈을 이용하여 목소리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자신들을 가로막는 사랑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퓌라모스와 티스베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야밤에 사랑의 도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주하기 위해서 어두컴컴한 밤에 뽕나무가 있는 샘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티스베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한 마리 사자가 입에 피를 묻힌 채 나타났다. 티스베가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쓰고 있던 베일이 땅에 떨어졌고, 사자는 베일을 피 묻은 입으로 찢어버렸다.  한발 늦게 도착한 퓌라모스가 땅에 남겨진 사자의 발자국과 찢어진 티스베의 베일을 발견하고는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잠시 후 조심스레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온 티스베는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퓌라모스를 발견하고 놀람과 슬픔에 오열하다가 그를 따라 자결하였다.  두 남녀의 죽음을 알게 된 양가 집안은 이들의 소원대로 두 사람의 주검을 한 무덤에 묻어주기로 하였다.

퓌라모스가 자결하면서 흘러나온 선혈이 약속 장소에 있었던 뽕나무 가지에 묻게 되었는데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가 익으면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퓌라모스의 티스베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증거로 신화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 <로미오와 줄리엣> 1823년


 

두 사람의 가슴을 태운 사랑의 불꽃은 그 뜨겁기가 같았을까, 달랐을까?  아마 같았겠지.  하지만 양가의 부모들밖에는, 아무도 이 비밀을 몰랐어.  고갯짓, 눈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었으니까.  감추면 감출수록 깊어가는 게 사랑이잖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는 섶 속의 불씨 같은 게 사랑이잖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 '퓌라모스와 티스베' 편, 민음사 pp 156~157 -  


오비디우스의 저 표현대로라면 사랑이라는 불씨는 사랑하는 당사자 이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들수록 더욱 활활 불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누군가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른다.  어떤 힘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부모든, 다른 어느 누구든 자신들의 만남을 가로막으면, 심지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도록 만드는 커다란 힘이 조그마한 사랑의 불씨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반대가 너무 강력하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려고 했듯이 말이다.  이렇듯 사랑을 가로막을 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모도, 국가도, 총으로도 포탄으로도 막지 못한다. 결국 양가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쓸데없는 적개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었다는 후회와 통절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희생을 통해서 양가는 서로 화해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 중에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외부 압력이 거세질수록 남녀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일종의 청개구리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는 세기의 문학사적 커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에전해져 내려오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가 그 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기에 오히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두 주체가 서로 매혹되는 일. 매혹이 일생 동안 한 치의 변함없이 유지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시련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떠한 것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대수로워지지 않는 담력을 이끌어낸다.   

누구든 사랑에 빠지면, 이런 외적 요인들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외적 요인들이 사랑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것들에 맞서서 저항하고 투쟁하도록 사람을 바꾸어 놓는 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르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1-08-0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의 밤에 셰익스피어를 읽는 건 너무 멋지잖아요, 시루스님. 너무 더워서 죽겠어요. 저는 공부는커녕 책읽기도 귀찮아요. 시간을 계속 뒹굴거리며 흘러보내고 있어요. 이러다 정신차리면 10월이 와있을 것 같아요. 얼른 정신 차려야지. 대학생은 방학이라 푹 쉬어도 또 학교가지만 저는 뭔가 좀.. 흑흑. 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읽기 해야겠네요, 저도. 너무 멋있어요!!!^^

cyrus 2011-08-07 00:38   좋아요 0 | URL
저 방금 아이리시스님 서재에 댓글 달고 왔어요 ㅎㅎ
대구는 요즘 열대야라 잠이 안 오네요. 그래서 지금 이렇고 있어요 ^^;;

저는 민음사판으로 처음 읽어봤는데,, 고전이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원문의 운문 형식 그대로 따르다보니
뭔가 어색한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윤기 님의 번역도 읽어보려고 해요.^^

비로그인 2011-08-0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얼마전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어 뭔가 찾아보곤 했는데, 이렇게 또 마주하니 재밌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림과 문학작품에 대해서 소개를 하더라고요. 올려주신 글과 그림 읽으니 갑자기 그 부분이 막 생각납니다.

갑자기 비가 막 오고 갔는데, 뭔가 어수선한 밤입니다. 이 더위가 끝나면 cyrus님 개강이겠지만, 더위는 얼른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

cyrus 2011-08-08 23:51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대사를 읽어보면 신화 속 대사나 인물, 격언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셰익스피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더군요.

어제 태풍이 지나간다고해서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바람 때문에
덥지는 않았는데.. 태풍이 지나간 지금 너무 더워요. ^^;;
벌서 방학도 3주 남았네요, 슬슬 개강 준비를 해야되갰네요.


stella.K 2011-08-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인기리에 방영중인 <공주의 남자>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데
괜찮은 것 같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자식들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가정 충분히 가능
가능할 수 있죠. 이야기가 너무 현대적여서 그렇긴 하지만 사극에 현대성이 빠지면
재미없잖아요. 극본을 잘 쓴 거 같아요.ㅋ

cyrus 2011-08-09 19: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드라마 시청하고 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 광고에 혹해서 보고 있어요. 내용 전개는 뭐라 흠잡을데는
없는거 같은데 배우의 연기력 논란 때문에 말이 많은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