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과 심리학
미셸 푸코 지음, 박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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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자신이 현명한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은 미친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올바르고 믿었으나 실제로는 망상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정신병과 심리학> 중에서, pp 136 -

 

 

  젊은 푸코의 '광기' 에 대한 풋풋한(?) 학문적 탐구     

인간의 광기는 흔히 정상적인 것과는 대칭에 선 비정상의 개념쯤으로 통한다. 우울증과 죽음, 욕망, 폭력, 비판과 같은 광기의 양상은 위험하고 혐오되야 할 가치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광기는 정치와 철학, 역사의 범주에선 늘상 배제되고 억압받곤 한다. 그러면 광기는 정말 비정상적이고 배척해야만 할 주제일까.    

이성의 광기에 대한 배제와 억압의 역사를 담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다가 독서 진도가 나아가지가 않아서 <광기의 역사>가 출간되기 전에 쓰여진 <정신병과 심리학>을 겸하여 읽게 되었다. 

푸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는 1961년에 발간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광기의 역사>가 푸코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처녀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광기의 역사>를 읽기 전에는 그저 '푸코' 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던 터라 <광기의 역사>가 푸코의 처녀작인줄 알았다.    <정신병과 심리학>은 1954년에 푸코가 심리학과 조교수로 역임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공식 저작물이다.   으레 푸코라고 하면 철학자라고 떠올리기 쉬운데 그가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오르면서 전공했던 학문이 심리학이다.  전통적인 철학의 학문적 범위에만 한정하지 않는 그의 광범위한 지식 편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신병과 심리학>에는 심리학을 통한 정신병에 대한 탐구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심리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신병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이론 등과 같은 다양한 심리학 이론 등을 논지로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는 광기의 사회문화적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부는 심리학적 용어가 많이 언급되는데 사실 심리학적 지식이 빈약한 편이라 굳이 1부를 읽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광기의 역사>를 읽고 있는 상황이라  '광기' 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2부만 따로 발췌해서 읽었다.

700여페이지나 되는 <광기의 역사>를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병과 심리학> 2부는 훗날 <광기의 역사>로 집대성하기 전. '광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젊은 푸코의 풋풋한(?) 학문적 탐구를 볼 수 있었다.   <정신병과 심리학> 2부 '광기와 문화'가 푸코 사상의 청소년기라고 한다면 <광기의 역사>는 사상의 범위가 한층 더 광범위해지고 성숙되어진 청년기인 것이다.  

 

 

  서구문화적 관점이 만들어낸 광기의 정의

푸코는 하나의 사회집단 속에서 특정 개인이 '정신병 환자' 로 간주될 수 있는 원인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과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분석에서 찾고 있다.   

뒤르켐은 '사회' 를 정치체계, 가족체계 및 그 밖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체계 등 여러 부분이 합성된 하나의 실체로 보고 있다.  즉, 사회 그 자체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특징을 부분으로 한정지어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에서 과학적 조사를 실시한 최초의 사회학자이다.  그는 통계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근거로 이론을 제시하였다.  사회집단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은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는데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가 무규제 상태로 사회 내 도덕적 규범의 가치가 상실된다면 그 현상은 일탈 행동으로 보게 된다.     이를 푸코는 통계학적 시각의 관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미친 여인>  1822년 

 

우리 사회는 사회가 추방하거나 감금하는 정신적 환자 속에서 자신을 알아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질환을 진단하는 바로 그 순간, 환자를 축출한다.   

- 2부 광기와 문화 서론, pp 110 -

 

그리고 루스 베네딕트와 같은 미국 심리학자들의 관점 역시 뒤르켐의 통계학적 관점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원주민 집단은 대체로 옷을 입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이며 신발 역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생활한다.  그런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있는 50명의 원주민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고 가정해보자.   평소에 벌거벗고 맨발로 다녔던 원주민들에게는 옷과 신발로 무장한 그 원주민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며 그동한 자신들이 생활했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는 원주민 집단의 고정된 문화적 유형에서 배제되는 행위이며 이는 곧 사회집단 내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뒤르켐과 베네딕트의 분석과 같은 서구문화적 관점에는 공통적으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양식, 도덕적 규범 등에 위반되는 행위는 비정상적, 또는 정신병자로 간주되어진다는 점이다.   

 

 

  광기의 역사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년경  

 

15세기 말은 확실히 광기가 언어의 본질적 힘과 다시 관계를 맺게 된 세기들 중 하나다. 고딕 시대의 마지막 징표들은 차례차례, 그리고 연속적으로 죽음과 광기에 대한 강박관념에 지배받았다.  죄없는 자들의 묘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Dance macabre), 피사의 캄포 산토 벽에 새겨진 '즉음의 승리' 가 그것이다.  그리고 또 그 당시에는 광인들의 수많은 춤과 축제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럽이 그렇게 기꺼이 기념하던 광인 춤과 광인 축제가 존재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6~117 -  

  

2부 '광기와 문화' 에는 <광기의 역사>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광기라는 단어가 형성되어지는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광기는 일반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비정상적' 행위이지만 15세기 때만 해도 어느 곳에나 광인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광인의 심리에 대한 저작물도 출판될 정도로 그 당시 대중들에게 광기는 친숙한 주제였다.   광기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가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사회학적 대상이었다.

 

 

 윌리엄 호가스 <연작 '탕아의 편력' - 정신병원에서>  1732~1735년    

 

가난한 불구자들, 빈곤층 노인들, 고집 센 실업자들, 성병 환자들, 온갖 유형의 방탕아들, 가족이나 왕권이 가하는 공식 처벌을 기피하는 자들    (중략)     간단히 말해서 이성, 윤리 그리고 사회 질서에 비추어 볼 때, '문란' 의 신호를 보이는 모든 자들을 이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9~120 -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광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광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강제수용소가 생기게 되면서 광기는  개인적인 문제의 대상으로 그 범위가 변형되었다.   그리고 '광인' 에 포함되는 대상은 단순히 정신질환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7세기의 강제수용소는 단순히 의학적으로 정신병에 걸린 환자들을 수용하는 의학적인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 사회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난한 부랑자에서부터 사회 질서에 어긋나고 부도덕적인 범죄자들까지 사회에서 인정될 수 없는 비이성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강제수용소의 탄생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성' 을 통용하는 권력집단의 사회적 통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이성을 감금하고, 광기라는 낙인을 붙여 치료의 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심리학과 정신병리학이 등장한 근대 이후부터다.  그러나 사회적 일탈과 범죄 행위로 결부되는 광기의 시선은 변함없었다.

     

 

  광기 그리고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깨자

광기에 대한 편견의 출발점은 사회적 소수자와 그 대척점에 있는 기득권자들의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후자만이 그 기준을 정하고 평가함으로써 비극을 낳고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광기에 대한 편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척과 소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당연히 가져야 할 교육과 직업을 얻을 기회를 빼앗아 놓고 장애인을 사회적 무능력자로 낙인찍어 사회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거나 격리의 대상으로 삶을 규정해버리거나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병균체로 사회를 오염시키거나 격리가 필요한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등의 사회적 판단이 여전히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있지만, 영화나 언론매체에서의 정신과 환자에 대한 왜곡된 묘사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영화나 언론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실제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정신병 환자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편견으로 음지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다.   

이제 정신병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정신병은 더 이상 숨길 병도 아니다. 다른 질병처럼 주위 사람과 상의하고 감기를 치료하듯 스스럼없이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의료인들이 더 노력하고 연구할 문제이지만, 의료시스템을 포함한 사회제도적 측면에서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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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사람의 상태를 둘로 나눌 수 있을까요... 살다보면 스스로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광기와 정상을 오가는 삶이랄까요.

cyrus 2011-08-27 13:11   좋아요 0 | URL
푸코가 이성의 헛점을 지적했듯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런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비로그인 2011-08-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면 푸코의 <광기의 역사> 는 흥미진진하게 시작하다가 읽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다가 다시 빨라졌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서양의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자 현대 사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 책으로 도서관에서만 보다가 돈벌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구입하게 된 책인 듯 싶네요 ^^

푸코에 말한 판옵티콘의 구조를 갖고 있는 학교, 병원, 감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경고는 앞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1-08-27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읽을 때 각 내용마다 속도가 달랐던거 같아요. 처음에
광인의 배에 대한 내용 때는 좀 흥미진진했었는데 그 뒤로는 진도가
잘 안 나갔어요. 그래서 좀 얇은 분량의 푸코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책의 1부는 너무 어려웠고요. ^^;;

2011-08-2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려움 때문 아닐까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얼마 전 버스에서 한 아이를 봤는데, 자리에 앉더니 머리를 앞뒤로 크게 흔들더군요.
몸을 감싸안고 박자에 맞추어 흔들흔들. 사람들이 다 그 아이를 보더군요. 그런데
한눈에 그 아이가 자폐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과 자폐증이 어떤 유형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나니 무섭지 않더라구요.

아마 아이는 버스에서 자신의 불안을 견디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인거 같았거든요.
대견한거죠.

광기에서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죠.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장 차이기도 하고.
결국 관용의 문제인데, 현 사회는 관용과 여유를 부리기에는 다들 너무 빡빡한거 같아 슬퍼요... ㅠ

cyrus 2011-08-27 13:21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대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푸코의 삶을 완전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푸코가 학창 시절에
정신 발작을 경험했고 동성애자였다네요.
제가 읽은 <정신병과 심리학> 역자 후기에는 왜 푸코가
광기와 성이라는 주제의 연구에 매달렸는지 이애할 수 있었어요.
사회 내에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온 감시와 처벌, 그리고
광기와 이성으로 구분짓는 경계 때문에 고뇌하고 이를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7 13:26   좋아요 0 | URL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었다 하잖아요. 그리고 특히 심리학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적용 가능하지만, 원시 부족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에... 그렇구나 싶어집니다.

아래 <지나가는 이>님의 댓글로 인해 생각이 많아져버렸어요.
지금 팽팽 돌아가는 중이예요,, 아하하.

cyrus 2011-08-27 13:33   좋아요 0 | URL
저의 부족한 글 때문에 괜히 마고님 머리 아프게 만들었네요 ^^;;


2011-08-27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08-27 23:09   좋아요 0 | URL
푸코가 에이즈땜시 사망했다죠..

지나가는이 2011-08-2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흥미롭네요. 제가 알기에는 푸코가 제시한 문제제기는 설명할 수 없는 타자를 자폐증으로 재단하는 지식권력의 문제인데요. 이걸 관용이나 사회적 통념 또는 제도적 변화로 해결하자는 것은 정신병을 생산한 지식권력을 내재화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푸코가 가장 비판할만한 답변일 듯 싶은데요......

cyrus 2011-08-27 13: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글의 오류를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깐 정말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제 막 푸코의 사상을 접한 것이라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오류를 범했네요. 푸코를 읽은게 <정신병과 심리학>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중인 <광기의 역사>뿐이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푸코의 사상적 특징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텍스트에 접근하고 있는 식이라
아직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님이 언급하셨던 부분은
푸코의 사상을 읽는데 꼭 명심해야할 내용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좋은 내용의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좋은 주말 되셨으면 합니다. ^^

2011-08-2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다오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 정훈희의 노래 <안개>의 가사를 개사함 -

 

 

  너무나 어둡기만한 공지영의 안개

무진(霧津).  우리말로 풀어보면 '안개 나루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독자라면 '무진' 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떠올릴 것이다. 서울 생활에서 상처받은 인물이 남쪽 고향인 무진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여러 면모를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때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무진은 안개로 덮여 있다.  '감수성의 혁명' 이라는 별명답게 김승옥 작가는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 이라고 음습하면서도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안개의 이미지는 어둠, 억압, 소통 불능, 희망 없음 정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역시 '무진' 이라는 지명을 무대로 한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안개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김승옥이 바라본 무진의 안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김승옥의 안개는 몽환적이라고 한다면 공지영이 본 무진의 안개는 런던의 스모그 못지 않게 너무 불투명하면서도 어둡기만 하다.     당최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카르텔

장애인 학교 '자애 학원' 내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소설은 세상에 만천하에 공개된 사건 실체의 내막 자체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점은 이 불행한 사건이 전혀 공권력의 힘이나 지역사회 상식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역 인권단체에서 교장의 파렴치한 장애 학생 사실을 고발하지만 무진경철서 형사, 시교육청 장학사, 시청 담당 공무원, 판 검사 하물며 영광제일교회 교인들, '무사모' 라는 무진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까지 철저히 담합을 형성하여 이 사건을 은폐시키는 데 일조한다.  지역사회의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총동원되어 비리 주범인 자애학원의 이강석 교장을 무혐의받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성벽처럼 견고하고 거대한 악의 담합 앞에서 인간의 양심은 보잘것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인가?    작가의 머리에서 탄생된 순전히 허구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모를까 실화를 토대로 구성한 진실적인 내용이기에 우라나라의 현실에 대해 탄식이 절로 흘러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무진에서 벌어지는 이 협잡과 타락의 추악한 풍경이 단지 소설 속의 가상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점점 더 강자 중심으로 변해가는 권력 기득권자들의 담합과 약자들에 대한 억압, 정의의 실종과 같은 사회적 퇴행 현상이 무진에서 벌어지는 '악의 카르텔' 을 닮아가고 있다.  

 

 

  잘못된 사회가 괴물을 만든다 

 

 

" 죽다 살아난 세계적 사회지도층의 미소 "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前 총재는 

법원으로부터 공소 기각 결정을 받아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다. 

(사진 출처: 로이터)

 

범죄도 대중의 관심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에 무엇보다도 장애인은 언제나 가장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유독 장애아의 성폭행에 관해선 둔감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인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당사자도 그렇지만 장애 아이를 키우거나 대한민국에서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늑대 굴에 어린 양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없는 기분일 것이다.   

요즘에는 집 근처 평범한 이웃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지위를 누리는 사회지도층, 심지어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다던 IMF 총재까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게중에 몇 몇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일으킨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지지 않은채 법의 심판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검찰 조직의 집단적인 성 접대가 만천하에 알려져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무혐의 처분을 받는 나라와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하기만 한 권력자들로 인해 상식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마저도 범죄가 안 되는 세상은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별반 다를게 없다.  

장애 소녀를 집단 성폭행하고도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인면수심으로 가득한 어른으로부터 신체적 상처를 입은데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여성을 하나의 성적인 유희의 도구로만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장애아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들이 억울한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장애아들은 여전히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호는 불편한 진실을 간직하지만 그 진실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뛰어들어 해결하지 않으려 하는 진실은 결국에는 묻혀버리고 만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 제3의 자애학원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공지영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소설 발간 당시 그랬듯이 가을에 곧 개봉될 동명제목의 영화 역시 과연 소설 속 충격적인 내용을 어떻게 영상화가 될지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어떻게 잔인한 성폭행 장면을 묘사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충격 요법형으로 현실의 치부를 그대로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잘못된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절박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문제다.

세상은 감상으로 변하지 않는다. 제 자리에서 분노하고 공감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변화와 문제의 시점을 파악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방관자의 무서운 침묵은 사회를 더욱 미쳐버리게 만들게 되며 괴물 같은 아이를 양산하고 그런 괴물들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성장해 정의를 집어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사회를 방조하는 권력자들부터 변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는 희망의 햇빛 한 줄기 보이기는커녕 그저 어둡고 음습한 악(惡)과 거짓의 안개로만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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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8-2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부하신 것이 곧 개봉할 영화 포스터인가 보네요. 포스터 분위기 한번 으스스 합니다. 저는 소설은 읽지 않았는데, 영화로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보려구 해요.^^

cyrus 2011-08-26 21:59   좋아요 0 | URL
9월에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네요, 맥거핀님은 영화를 즐겨 보시는 분이시니까
영화리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blanca 2011-08-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관대한 것 같아요. 특히 합의에 의해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오히려 유야무야 넘어가는 사태를 조장하는 것 같고요.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cyrus님의 리뷰를 읽으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네요.

cyrus 2011-08-26 22:02   좋아요 0 | URL
간혹 언론과 뉴스를 보게 되면 법전 내용의 형식에 너무 지우쳐서
분명 범죄 행위임에도 무죄나 가벼운 형량을 받은 사례를 보곤 해요.
성범죄만큼은 확실히 규제할 수 있는 형법의 도입이 필요한거 같아요.

비로그인 2011-08-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 저도 자극적인 내용 묘사보다는 그 분위기와 생각할거리를 어떻게 던져주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편 흥행이라는 면도 고려해야 할텐데, 과연 어떻게 될지.

영화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책에서 받은 느낌의 반밖에 되질 못했었는데 이 소설이 영화가 되어 보게 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cyrus님 덕분에 영화가 나오게 되는 걸 알았네요~

cyrus 2011-08-26 22:04   좋아요 0 | URL
예전 <우행시>가 성공했듯이 <도가니>도 블록버스터급 외국 영화가
개봉되지 않는 이상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소설 속 인호 역으로 공유입니다. 얼핏 <우행시>의 강동원이
생각나네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아니 자주 현실은 소설보다 더 무섭죠...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은 5% 정도일 것 같은데 보게 된다면 아마 공유때문일 것 같네요 ㅎㅎㅎ

cyrus 2011-08-27 14:05   좋아요 0 | URL
<도가니>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공유의 역할도 큰 비중이 있다고
봐야될 거 같아요 ^^
 

 

  왜 아버지는 선동열을 싫어했는가?      

 

 

선수 시절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前 삼성 라이온즈 감독 선동열 

 

지금으로부터 거의 6년 전, 한국야구의 챔피언을 결정짓는 2005년 한국 시리즈 때였다. 그 당시 한국시리즈는 시즌 패넌트레이스 1위 팀이였던 삼성 라이온즈와 시즌 2위였던 두산 베어스와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 지키는 야구 ' 라고 불릴 정도로 든든한 불펜진을 자랑했던 선동열 감독의 삼성과 반대로 막강한 화력을 뿜어내는 타력을 갖춘 김경문 감독의 두산 간의 한국시리즈전은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였다.  2002년 구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로는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삼성으로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이 높았으며 두산 역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기에 두 팀 간의 한국시리즈 대결은 성사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   

시즌 1, 2위 팀간의 대결이라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시리즈 예상 우승팀에 대해서 근소한 차이로 엇갈려져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2005년에 갓 부임한 '초보' 선동열 감독의 삼성보다는 오랜 코치 경험에다가 선 감독보다는 2년 선배인 김경문 감독의 두산이 우승할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 진정한 한국야구 챔피언을 결정짓는 한국시리즈답게 치열한 공방전을 예상했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4차전 모두 삼성이 4전 전승을 거두게 되면서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시리즈는 7전 4선승제로 진행된다)    

선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패넌트레이스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두 가지 위업을 달성한 최초의 야구감독이 되었으며 2010년까지 삼성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이듬해인 2006년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2관왕을 이루었으며 2010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두면서 감독으로서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삼성 라이온즈라고 하면 현재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 그리고 배영수, 차우찬, 안지만 등과 같은 선발과 중간 계투를 책임질 수 있는 막강한 불펜진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투수 출신이었던 선 감독 시절에서 재능의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 감독 시절의 삼성을 '지키는 야구' 의 대명사가 되었다.    올해 선 감독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류중일 감독의 삼성은 이전 선 감독 시절의 경기 운영과는 다른 화끈한 공격야구를 선보이면서 이전의 '지키는 야구'로서의 색깔을 희석했다지만 여전히 '선동열이 남긴 유산' 인 불펜진의 위력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현재 시즌 1위를 달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 소속 시절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지금도 선 감독이 부임했던 2005년, 2006년의 삼성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삼성과는 다르게 투수 위주로 운영한 '지키는 야구' 라서 경기 운영면에서는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의 인연과는 거리가 멀었던 삼성을 2년 연속 우승시킨 점은 삼성 팬인 나로써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좋지도 않았고,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 될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집에서 TV로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보게 되면 아버지와 함께 보는 날도 있었다. 아버지 역시 야구 경기, 특히 경북 출신에다가 오랫동안 대구에서 자란 토박이다보니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야구 경기를 보면 항상 불편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경기에 지고 있어서 아버지가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짜증내는 점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지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욕이 나오는건 당연하니까.

이상하게도 브라운관에 덕아웃에 앉아 있는 선 감독의 얼굴이 나오게 되면 아버지는 비하하는 듯한 말로 이애할 수 없는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심지어 삼성이 경기에 크게 이겼어도, 2006년에 한화 이글스 간의 한국시리즈에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어도 아버지는 선 감독에 대해서 호의적인 말씀을 하지 않았다.  

 

  " 저 XX는 참,,. 전라도 출신 주제에 별 것도 아닌 놈이 잘 나가네 "  

 

세상 물정 몰랐고 그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시에 매달렸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불만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평소에 아버지가 야구 팬으로서 선 감독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왜 선동열을 싫어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선동열은 삼성 라이온즈 소속 감독이 아니라 그저 전라도 광주 출신 감독이었다.  

 

 

  기아 타어거즈 = 홍어 = 전라도 = 빨갱이?  

 

  

광주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 

(전신은 해태 타이거즈)

  

요즘에는 TV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시대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으니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과 피 튀기는(?) 리모컨 전쟁을 할 필요도 없으며 야외에서도 생생한 야구 중계를 시청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야구 중계를 집에서 보게 되면 TV보다는 컴퓨터로 시청하는 편이다. 컴퓨터로 중계되는 야구 경기는 이름만 되면 알만한 유명한 모 검색 포털 사이트가 지원하고 있는데 화면으로는 TV에 비해 떨어지지만 컴퓨터 야구 중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실시간에 달려져 있는 댓글을 보는 것이다.     

 

 

모 포털 사이트에서 지원하고 있는 야구 중계 동영상 

동영상 아래에 댓글창이 있는데 이용자는 경기 동영상을 보는 동시에  

댓글을 달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 팀의 경기를 보면서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댓글로 표현하다면 참 좋겠지만 익명성을 이용해 악의적인 내용을 서슴치 않는 우리나라 댓글 문화를 생각하면 그저 현실상으로 불가능한 좋은 생각일뿐이다.    

실제로 야구 경기장에 가게 되면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구별할 수 있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듯이 온라인 야구 중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할 수 있게 댓글창도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면 삼성과 기아와의 경기를 중계하는 동영상 아래에 '삼성 라이온즈 댓글 창''기아 타이거즈 댓글 창' 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기 동영상을 보고 있는 네티즌이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댓글창에 줄줄이 달리는 댓글 중에는 정말 좋은 말을 하는 내용의 댓글을 찾기가 모래알에 진주 찾는 격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온갖 불만을 댓글로 표출하는 것은 애교일뿐이다.  대놓고 상대방 팀을 비방하는 수준을 넘어서 팀이 연고를 두고 있는 지역까지 비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 8개 구단이 치르는 경기들마다 지역감정을 담아 상대 팀을 비방하기도 하지만 특히 삼성 라이온즈와 기아 타이거즈 간의 경기는 양 팀 팬들간의 총성 없는 댓글 전쟁 역시 치열하기만 하다.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광역시에 연고를 두고 있으며 해태 타이거즈 시절 야구 구단 중 최다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명문 구단이다.  그리고 구단 엠블렘과 선수들의 유니폼이 빨간색이다.    다른 야구 팀 팬들은 항상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치뤄지게 되는 날이면 온통 기아 타이거즈를 비난하는 악의적인 댓글로 도배를 한다.  야구 팬들은 각 팀마다 그 구단의 전형적인 특징을 꼬투리 잡아 비하성이 담긴 별명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기아 타이거즈 같은 경우에는 전라도에 위치하는 광주에 연고를 하는데다 구단 엠블렘과 유니폼이 빨간 색이라서 '홍어' 라고 부른다.   

그래서 야구 팬들 사이에서 '홍어' 또는 '홍어 타이거즈' 라고 하면 속칭 기아 타이거즈를 가리키는 통칭되는 용어였다.

  

 " 홍어 XX들, 니들은 안 돼. " , " 전라도 홍어는 그냥 나가 X져라. "    

 

하지만 이제는 야구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홍어' 는 단순히 기아 타이거즈를 뜻하는 비하성이 담긴 별명이 아니라 이제는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광주 지역에 사는 사람들 즉,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악의적인 별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야구 중계에 댓글을 다려는 사람들 중에는 순전히 야구 중계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예 상대 팀에 연고를 두고 있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기 위해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려는 악플러가 존재하고 있다.  

"전라도 홍어들 중에서 사기꾼 아닌 사람들 없고 깡패 아닌 사람들 없다" ,  "여수, 순천 반란사건, 5ㆍ18 광주 폭동도 이제 보니 전부 전라도 홍어 XX들이 일으켰지. 전라도 홍어 ×××들. 폭도의 후손들이 이젠 야구로 별 짓을 다 하는구나 " 라는 원색적인 댓글까지 나오게 된다.  

이렇듯, 야구 중계까지에도 전라도를 비하하는 악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비단 '홍어' 뿐만이 아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조금이라도 기아 선수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홍어존’ 논란이 나온다. 일부는 전라도 출신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슨상존’ 이라는 표현을 대신 쓰기도 한다.   그리고  전라도의 [전라ㄷ]+ 사람을 나타내는 영어 접미사 [ian]을 합성해서 '전라디언' 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전라디언' 이라고 하면 곧 친북 좌파 또는 빨갱이를 뜻하게 되어 그 의미가 한층 더 다양해진다(?)  



 
 

   영호남 지역갈등이 만들어낸 최악의 난동사건

 

  

1986년 당시 삼성 팬들로 인해 불 타버린 해태 타이거즈 전용버스  

사진 출처: 프레시안

 

악플러의 지역감정적인 악플의 수준은 단지 인터넷의 발달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니다.  그 현상의 근원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역갈등이 있었다.  

기아 타이거즈 vs 삼성 라이온스, 즉 호남과 영남 간의 지역감정이 담긴 갈등이 만들어낸 깊은 악연은 프로야구 최악의 난동사건으로 기록된 한국시리즈의 조금은 부끄러운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 대구 폭동 ' 으로 불리는 사건은 1986년 10월 22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발생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홈팀인 삼성이 해태에 5-6으로 역전패를 한 것에 대해. 몇몇 관중들이 경기장 밖에 주차해둔 해태 구단 전용버스에 불을 지른 보복성 사건이었다.   그 날 경기 결과에 대한 분풀이도 원인이지만  방화사건의 시발점으로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삼성 투수 진동한의 부상에서 비롯되었다.  

1차전 경기에서 삼성의 진동한 투수는 7회말까지 호투를 했지만 8회초 덕아웃에서 쉬고 있는 도중에 윗편 관중석에서 술 취한 관중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아 경상을 당하게 되었다.  한창 경기가 진행하고 있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 삼성 팀 입장에서는 최상의 호투를 보이고 있는 투수의 어이없는 부상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8회말에 투수를 김시진(현 넥센 히어로즈 감독)으로 교체했지만 연장전 끝에 3-4로 역전패하고 만다. 

야구계에서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 먼저 우승하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한다는 일종의 속설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양팀뿐만 아니라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결과에 촉각을 곤두 설 수 밖에 없었다.   삼성과 해태는 단순히 라이벌 구단 관계 이상이 아닌 영호남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앙숙의 관계로 변질되었다.    

문자 그대로 불붙은 지역감정 때문에 다음 경기를 대구가 아닌 중립지역 서울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구에서 경기를 강행했지만 예상했던대로 추가 사고가 이어졌다.  4차전마저 삼성이 패하자 홈 팬들은 병을 경기장에 투척했고, 1차전에서 나온 해태 팬의 '빈병 투척 사건' 까지 다시 언급되면서 관중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관중의 난동이 얼마나 심했으면 경기장 주변으로 2000명 가량의 경찰들이 투입되었으며 심지어 최루탄까지 발사했다고 한다.     

 

 

  지역감정으로 점칠된 스포츠의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 

 

 

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면서 스페인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카시야스 (왼쪽에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 미남)와  

FC 바르셀로나 소속 수비수 푸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견원지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최대 라이벌 관계이다.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지역차별주의로 인해 형성된 스포츠에서의 라이벌 관계는 우리나라의 삼성과 해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한국의 프로야구와 유사하게 각각 일본 간토와 간사이의 대표 구단으로 자리잡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 간의 라이벌이 유명하며 미국 메이저리그로 넘어가면 각각 뉴욕과 보스턴에 프랜차이즈를 둔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경쟁도 유명하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계에서도 최고의 라이벌이 존재한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나 원작의 동명영화를 보신 분들도 아시겠지만 남녀 주인공 노덕훈(김주혁 분)과 주인아(손예진 분)가 심야 시간에 맥주를 마시면서 함께 축구 경기를 보게 되는데 그 경기가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대의 라이벌 구단 간의 경기인 엘 클라시코(El Clásico)다.    

엘 클라시코는 우리 말로는 '고전의 승부' 라는 뜻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리그 1, 2위를 다투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 간의 축구 경기를 뜻하고 있다.   하지만 '고전의 승부' 답게 이 두 팀간의 대결은 109년이나 될 정도로 지금까지도 선수와 감독들뿐만 아니라 팀을 응원하는 팬들마저 치열한 신경전을 펼칠 정도로 정말로 유명한 축구계의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가 연고지이며 FC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이 투 팀간의 대결은 최근에 두 차례나 펼쳐진 두 팀 간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대회에서도 선수들와 코치 간에 난투극이 펼쳐질 정도로 라이벌 관계답게 치열한 경기 양상을 보였다. 엘 글라시코의 열기는 같은 스페인 출신 선수들끼리 지역 연고를 두고 있는 프로 축구 팀 때문에 대립을 펼쳐야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스페인 국가대표팀 주장 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슈퍼세이브' 골키퍼 카시야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남아 있는 엘 클라시코의 갈등과 불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친목 도모를 위한 회식 자리를 마련한단다.   스페인은 작년에 펼쳐진 2010년 월드컵에 우승할 정도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였지만 최근에는 '무적 함대' 답지 않게 중요한 경기마다 패전을 거듭하고 있다.   카시야스는 다시 한 번 스페인의 명성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대표님 내부에 남아 있는 엘 클라시크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아빠 + 해태 타이거즈 엄마 = '삼태' 라이거 소년  

사진 출처: 이데일리
 

 

엘 클라시코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역감정으로 점칠된 스포츠의 현실을 그저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만의 전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좀 과장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스포츠 팬들뿐만 아니라 멋진 경기 운영을 보여줘야할 선수들마저도 지역감정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포츠 내에서도 운동선수들 또는 코치진 사이에서 학벌, 지연 위주에 따라 팀워크가 깨져버리는 사례가 많이 있었듯이 지역차별적 감정이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과연 어디서부터, 누가 조장했는지 기원은 의심스럽지만 연고 구단에 대한 일방적 지지가 지역감정에서 비롯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감정이 없었다면 야구 팬들 사이에 영원히 회자되는 흥미진진한 라이벌 구도 역시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팀 자체가 아니라 특정 지역과 특정 지역 사람을 비난할 정도로 팬들의 비방이 날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악플러의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위험할 정도다. 굳이 한국의 현대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들은 구분해야 한다. 상대에게 분노와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말과 글은 자제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는 정치·사회적 긴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지역감정’ 을 만들어냈다. 호남 고립의 지역감정, 지역구도가 그렇게 탄생했다. 굳이 지역감정의 역사적 기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스포츠 종목에서 나타나는 지역감정의 양상은 분명 퇴행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기본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은 상식이 있는 팬들이 앞장서서 일침을 가해,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 뿐이다.  

올해 한국시리즈가 열리기까지 두 달 정도 남았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한국시리즈에 상대할 팀은 SK 와이번스(현재 리그 2위)와 롯데 자이언츠(리그 4위)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리그 3위)다.   어느 팀을 만나든 간에 야구 경기를 지역감정과 차별로 만들어낸 색안경을 벗은 채 그저 스포츠를 진정 즐기는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 ' 1986년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사건'  관련 출처 기사  

[그들은 왜 무등구장에서 '김대중'을 외쳤는가] 프레시안 2009년 8월 26일 

호남차별과 야구 종목과의 관계는 고교야구 탄생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글이 길어질 우려가 있어서 그 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링크된 기사문을 읽어보시면 좋을듯합니다.   

 

* P.S : 참고로 저는 홍어삼합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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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2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한 문장에서 뿜었네요...ㅋㅋㅋㅋ ㅎㅎㅎㅎ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 서로의 비방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버스 사건은 첨보는 것입니다만..

cyrus 2011-08-25 20:55   좋아요 0 | URL
이 버스 사건이 지금도 삼성과 기아 경기 때 간혹 기아 비방하는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한답니다.

stella.K 2011-08-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러 조장하는 것도 있을 것도 있겠죠.
그 흥분을 이용해서 팀의 결속, 나아가선 지역의 결속까지.
근데 버스까지 그렇게 된 건 또 참 보내요.
글구 홍어가 무슨 죄라구.

근데 시루스님 삼합 좋아하시는 거 보니까 술 좀 꽤 하시는 편 아닙니까?ㅋ
삼합엔 막걸리라든데.
맛에 호기심이 많은 제가 아직 그걸 못 먹어 봤어요.
글구 거 뭐더라, 말린 꽁치 김에 싸 먹는 거...?
둘 다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피했다능. 아, 아쉬워.ㅠ

cyrus 2011-08-26 22: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신에게 이로울게 없는데 왜 자꾸 사회 내에 불신을
만들게 할까요? ^^;;

저는 딱 한 번 홍어삼합을 먹어봤는데 전라도산이 아니라
시장 안 식당에서 파는 걸 먹어봤어요. 그 때는 홍어가 어떤 맛인지
정말로 궁금해서 처음 먹어봤는데, 먹을만했어요.
냄새 때문에 홍어를 잘 못 먹는 사람이 많다던데 제가 진짜배기
전라도산을 먹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냄새는 참을만했습니다. ^^;;

그리고 혹시 김 싸먹는 꽁치라면 과메기입니다.
과메기도 제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

맥거핀 2011-08-2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전문용어(?)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cyrus님도 꽤나 야구 열심히 보시는 듯 하네요.^^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면, 참 별 지역비하가 난무하지요. 말씀하신 용어들 외에, 거의 모든 팀을 비하하는 용어들이 있구요. 근데 유독 기아에만 심한 것 같다는 느낌도 좀 있긴해요. 기아를 비하하는 말에는 유독 어떤 지역적(?)인 것이 따라붙는 것도 그렇구요. 아마도 오랜 지역차별과 연관이 있는 것이겠지요..한때 우리나라 지역차별이 많이 옅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그냥 옛날 기억이 좀 나네요. 지금은 LG팬(-_-)이지만, 어렸을 때는 부모님 따라 해태가 잠실에 오면 자주 보러갔거든요.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 분이시라서요.그 때 해태는 참 무적이었는데..열렬한 응원 때문에 더 잘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때 3루측에서 응원들이 꽤 살벌(?)했었거든요.
에고 지금도 살벌한 응원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 LG는 이모냥이네요. 하하, 삼성팬이신듯 한데, 삼성 우승 기원합니다. (요즘 보면 삼성이 우승권에 가장 근접한 듯^^)

cyrus 2011-08-26 22:11   좋아요 0 | URL
ㅎㅎ 방금 컴퓨터로 야구 경기 보고 왔어요, 패색이 짙은 경기였는데
다행히도 역전승하게 되었네요 ^^;;

다른 구단도 비하성 별명이 많은데요,, 맥거핀님 말대로 기아가 유독
심하답니다. 심지어 다른 야구 팀을 응원하는 네티즌까지도
기아 경기가 있는 동영상 공간에 기아를 비하하는 악성 댓글을
남기기도 하거든요.

맥거핀님은 LG팬이시군요, 내심 LG도 정말 오랜만에 가을야구할 줄
알았는데, 비록 삼성팬이지만 안타깝습니다. 선수들 중에는 삭발까지
하면서 열심히 경기에 임하던데요. 지금 한화랑 연장중인데
이번 경기는 LG가 승리했으면 좋겠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렸을 적이 프로야구 폭발적 부흥 시기였죠. 초, 중학교때요. 전 서울 출신인데 삼성 팬이었어요. 이만수 때문에 그랬었던 것 같아요ㅎㅎㅎ 그땐 아이부터 어른까지 야구 열풍이었죠. 저도 관심이 없었는데도 야구 규칙을 그때 다 배웠다니까요.
어쨌든, 우리 나라에서는 야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결국 지역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예요. 경상도와 전라도가 없었다해도, 뭘 기준으로든 편을 나누어 싸웠을것 같아요. 그게 인간 세상 아니겠어요? ㅎㅎ

cyrus 2011-08-26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너무 어렸을 때라 초창기 프로야구에 대해서 기억은 없지만
이만수는 정말 레전드죠. 특히 지금도 대구 사람들은 이만수를
각별한 존재로 여기기도 하고요.


2011-08-2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6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리 신랑의 모습 가관이라죠... ㅋㅋ
오면서 내내 DMB로 보고, 와서 TV에서 꼭 야구 정리 프로 보고.
주말에는 TV를 독차지할 수 있으면 하루종일 야구 보고, 안되면 컴터로 보고.

아주 못 말려요..
하지만 무엇인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모습 자체도 좋은거 같아서 냅두는 중입니다. ㅋㅋ

cyrus 2011-08-26 22:23   좋아요 0 | URL
저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팬더님이 저랑 비슷해요 ^^;;
야구 경기 다 보고 나면 야구 정리 프로그램 꼭 봐야해요.
팬더님은 무슨 스포츠채널을 보시는지 모르겠는데 참고로 저는
KBS 아이러브 베이스볼을 보는 편입니다.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예쁘거든요,, ^^;;

예전에 저희 어머니도 저의 야구 사랑(?)에 대해서 핀잔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제가 컴퓨터로 야구를 시청해서 신경을 안 쓰신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7 10:31   좋아요 0 | URL
팬더가요, 자신은 3사의 채널을 홀랑 돌리며
몽땅 섭렵하고 있다고 전해달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1-08-27 13:3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게 가능한가요? 3사 채널을 담당하는
아나운서들이 모두 미모가 출중해 고정팬이 많답니다. 그래서
정말로 아나운서 보려고 동시에 3사 채널을 본다는 팬들도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도 있었군요 ^^

saint236 2011-08-2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그렇군요. 홍아 삼합을 좋아하시는 군요.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플랭클린 포어/말글빛냄)"라는 책에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스페인 이야기도 그렇고요. 스페인 전쟁사라는 책을 보면 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싸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

전 술을 끊은 이유로 홍어 삼합을 먹지 않습니다. 막걸리 없이 홍어를 먹는 것은 꽤 힘든 일이더군요.

cyrus 2011-08-26 22:26   좋아요 0 | URL
맛있는 음식에는 술이 없으면 안 되는거 같습니다. ^^;;

세인트님이 언급하신 책,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스포츠 관련 역사라,,
읽는데 지루하지 않을거 같아요 ^^
 
어둠의 심연 을유세계문학전집 9
조셉 콘라드 지음, 이석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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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18] 어둠의 속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폐쇄적인 서구인의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며 타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드는 제국주의적 태도를 이야기 하고자 할 때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은 자주 인용되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말론 브란도 주연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으로 알려진 소설이기도 하는데 자랑할 수준은 아니지만 평생 독서를 하면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작가를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다.    

원제는 Heart of darkness 인데 국내에서는 '암흑의 핵심' (민음사 판), '어둠의 심연' (을유문화사 판 외 그 밖의 출판사) 등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실 을유문화사판을 읽기 전에 처음에는 '암흑의 핵심' 으로 소개된 민음사 판본을 읽었는데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작품을 읽는데 몰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아무래도 콘래드 특유의 본연의 의미를 드러나지 않게 암시적으로 풀어낸 문체가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을유문화사 판에 수록된 콘래드의 또 다른 단편 <진보의 전초 기지> 역시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읽어야했을 정도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화자인 말로가 템즈 강가에 정박한 어느 상선의 갑판 위에서 들려주는 체험담에 근거하고 있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 벨기에령 콩고의 어느 회사 소속 기선의 선장으로 취직한 말로가 우여곡절 끝에 콩고 강 상류의 오지로 가서 커츠라는 일급 교역상을 만나게 된다.   

커츠는 현지인들 위에 초법적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다이아몬드 채취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승승장구하는 교역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끊임없는 무장경계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신처럼 대접받으면서도 순간순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 같은 분열적 상태 속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황폐해져만 갔고 이는 신체까지 좀먹었다. 커츠는 결국 귀국하지 못한 채 “ 끔찍하다, 끔찍해. ” (pp 151) 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커츠로 대표되는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은 세계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하였으며
야만인들을 문명화하는 것은 “백인들의 의무” 라는 명분까지 내걸고 식민지 정복의 길에 뛰어들었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고 있던 서구 문명에서는 커츠의 입장은 그 당시로서는 통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수사였다. 커츠도 자기 딴에는 고귀한 사명감에 넘치는 인물이어서, ‘아프리카에서 무한한 선을 행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활동 계획서로 정리하여  ‘야만적 악습 억제 협회’ 에 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관습과 문화를 가진 인간들을 비인간화하고 자신을 신격화했던 왜곡된 환상의 결과는 자기파괴였다.

검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상징되어지는 ‘어둠의 심연’ 으로의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화자인 말로는 궁극적으로는 커츠의 아프리카 경험이 주는 인간적 가치의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다. 말로의 담담한 어조의 이야기 속에서 ‘어둠’  , '암흑' 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사명감이 지닌 헛됨과 그러한 헛된 사명감의 정신적 기조를 이루는 정신적 황폐함을 상징화시키고 있다.  암흑의 대륙에 문명의 빛을 전달한다라는 사명감에 투철한 유럽인들의 우월주의적 시각이란 결국은 아프리카인들과 그들의 상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배와 원시적 암흑 대륙에 대한 문명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관념’ 에 불과 하며, 실제 아프리카의 현실과는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관점의 비평이 소개되면서 재해석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식민주의를 찬양하고 있다는 비평도 있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현재까지도 조지프 콘래드를 '제국주의자' 라는 평단의 오해가 존재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징적이면서도 갈팡질팡하는 문체로 인한 해석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길 법도 하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마다 이해의 방식이 확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콘래드가 서구의 식민주의를 막연히 '찬양'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생각이 든다.   

서구의 이중성과 제국주의의 유령은 지금도 아프리카나 제3세계 국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식민 지배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 남반구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으며 다국적기업의 횡포 탓에 만성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부패한 권력과 결탁해 한 국가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가 씌워놓은 그 굴레를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던지지 못한 채 지금 아프리카와 제3세계의 현실은 너무 어둡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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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23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흑의 핵심이군요...이거 매력적인 작품인데...전 예전에 원서로 읽다가(중간도 못 넘겼음)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번역본을 구해놓고는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리뷰를 보니, 8월이 가기전에 완독하고 싶네요..

cyrus 2011-08-25 19:42   좋아요 1 | URL
짧은 분량인데도 읽는데 힘들었어요, 저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흑의 핵심'도 '문명의 전초지'도 결국 주인공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납니다.제국주의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요.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에 굉장히 비판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로 보고 싶습니다.저는 이 두 작품이 콘라드의 다른 작품보다는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저는 '문명의 전초지'가 '암흑의 핵심'보다 읽기 쉽던데요.더 짧기도 하지만...마지막 시체 장면이 압권이죠.

cyrus 2011-08-25 19:43   좋아요 0 | URL
다음 작품으로 <로드 짐>을 읽어보려고 해요, 민음사에서 두 권짜리로
나왔는데,, 읽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26 16:54   좋아요 0 | URL
로드 짐 읽기 전에 문명의 전초지를 한 번 더 읽으라고 권하고 싶네요.정독하면 할수록 맛이 나는 단편입니다.

'청춘'을 구할 수 있다면 읽어도 좋아요.로드 짐처럼 해양소설이면서 분량도 짧으니까요.

에드워드 사이드의 콘라드 평가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콘라드를 평가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4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옥의 묵시록은 정말 매니아가 많은 영화잖아요. 그런데 드디어
시루스님의 취향과 맞지 않는 작가를 만났다는 부분에서 그만 폭소를. ^^

저한테도 읽지 못 한 조셉 콘라드의 작품이 틀림없이 있는데, 어디있는지 찾지 못 하겠어요. 아하하......... 자기 서재의 책도 못 찾다니, 비극이예요, 증말.

cyrus 2011-08-25 19:44   좋아요 1 | URL
그 유명한 영화,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어요.
마고님 댁에 책이 얼마나 많길래 못 찾으시나요? 저도 한 번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

네오 2011-08-24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구나'라며 나지막히 탄식했습니다. 조셉 콘라드는 제가 허빈 멜빌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영미소설가이지만 그렇게 제대로 이해하는 작가는 아니네요~ 그의 소설이 나오는대로 무작정 모아놓고 읽어보는 저로서는 ㅋㅋ <지옥의 묵시록>도 제가 전쟁영화라는 장르만을 한정짓고 놓고 봤을때 거의 베스트10에 껴들만한 작품인데 원래는 이 소설을 맨처음 영화화하고 싶었던 감독은 프란시스 f 코폴라가 아니라 <시민 케인>의 오손 웰즈라고 하더군요~ 이 두 감독이 황홀한 정도로 스타일리쉬했던 감독으로써 이 <암흑의 핵심>에 빠져들었던 감정이 어떤 마음이었을라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만들던군요~ 아무튼 <암흑의 핵심>도 좋아하고 <지옥의 묵시록>도 좋아해요^^ 아~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나오는 그 장면만 수십번 본거 같네요~

cyrus 2011-08-25 19:45   좋아요 1 | URL
원래는 허먼 멜빌을 읽으려다가 어쩌하다 보니 콘래드의 소설을 집어
들었어요, 콘래드 역시 항해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죠.
정말 그 유명한 영화, 꼭 보고 싶네요. ^^

2011-08-24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복지 국가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2
정원오 지음 / 책세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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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상급식 투표 결과' 에만 혈안이 된 복지 논쟁

대한민국 사회 최대의 쟁점인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가 드디어 내일 실시된다.  투표 결과는 서울이라는 특정 지역이나 무상급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론과 전면적 복지론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국가 복지정책의 향후 진로가 판가름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투표결과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시장직을 내건 모습이 보기에 민망하고 무모한 도박처럼 느껴진다. 투표율 33.3%의 벽을 넘을지 모든 국민은 투표 결과에 집중하고 있다. 이 투표율을 넘지 못하면 개표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보수 진영 시민단체 쪽에서는 투표참여 문자 메시지와 홍보문를 전송함으로써 어떻게든 무상급식 도입을 막으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무상급식이라는 복지정책 도입의 의미보다는 투표 결과에 더 혈안이 되어 있는거 같다.   오 시장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 쪽에서는 무상급식은 빨갱이들이 선동하는 경제 파탄으로 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진보 진영 측의 야당에서는 오 시장에 내건 주민투표는 무의미하고 위법적인 행위라고 반박하고 나서 국민들에게 참여할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다.  수치로 결정되는 투표 결과에만 매달리는 복지 논쟁이 점점 가열되는 양상이다.    '무상급식' 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무상급식 투표 결과' 를 위한 싸움일까?  보수 세력은 어떻게든 투표율을 높이서라도 무상급식 도입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진보 세력은 그저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할 뿐 투표 결과에 따른 무상급식 도입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 마련에 대한 어떠한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 역시 천차만별이다.  오 시장의 눈물 쇼(?)에 코웃음치면서도 복지 정책 도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몇 명이 있을까?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당과 국민들은 정작 '복지' 라는 핵심적인 본연의 의미에 대해서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 베버리지 보고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  윌리엄 베버리지 (1879~1963) 

 

영국은 이미 50여 년 전에 복지 정책 도입 논쟁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보다 이미 복지국가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그래서 1945년 전후에 벌어졌던 상황은 2011년 한국의 복지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영국 정치지도자들은 국민 사기진작을 위해 종전 뒤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 했고, 전시 연립내각인 처칠 행정부는 1941년 이를 위한 위원회들을 구성했다. 윌리엄 베버리지는 그러한 위원회 가운데 하나인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베버리지는 1년여의 활동을 거쳐 1942년 12월 보고서를 출판했고, 이 보고서는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그것이 바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복지국가의 모토가 탄생된 '베버리지 보고서' 이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아동이 성장할 수 있는 아동 수당, 누구나 자유롭게 치료를 받는 무료 의료시스템, 원하는 사람 누구나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 정책을 제시하였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실의에 빠진 영국 국민들은 복지정책 도입에 환영하였으나 현실적으로 정책에 도입할 재정적 여건을 충당하기에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노동당과 자유당은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로 검토하였으나 반대로 보수당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며, 전후 복구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복지 확대는 국가 백년대계에 어긋난나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폭발적 기대 속에서 기다릴 수 없었다.  세계대전이 종전됨에 따라 영국은 전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에 돌입하였다.  선거 최대 쟁점은 전후 발전 방향이 아니라 베버리지 보고서의 실현 문제였다.  즉, 사회적 복지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였다.   국민들의 강력한 여론에 선거 전세에 불리함을 느꼈던 것일까?  복지정책 도입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보수당도 어정쩡한 입장에서 보고서 내용 실현을 공약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적극적 실천과 대대적 복지 확대를 내세웠다.  전시내각 해체 전부터 노동당은 주도적으로 복지정책이 도입될 수 있도록 이미 기틀을 확립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 총리는 참패하고, 종전 두달만에 그때까지 단독 집권경험이 없었던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집권한 노동당은 약속대로 국민 보험 제도와 산업 재해 보험 제도를 법적으로 실시하게 하였고 복지 국가로서의 영국으로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과연 한국은 '복지국가' 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복지국가가 탄생하기 위한 필수 요건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노동당처럼 사회 보장 정책 도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둘째, 영국이 총선거를 통해서 복지국가로 전환될 수 있었듯이 민주주의 정치 과정 혹은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셋째,  유럽 각국에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민주적 방식으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사민주의 혹은 중도 좌파 정당이 존재하고 있듯이 복지국가 존립에 이념적으로 가장 친화성이 있는 정파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4대 사회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제도등 사회 복지 서비스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만 사회 보장을 위한 재정적 규모면에서는 OECD 국가 중에서 복지비 지출 비중이 가장 낮아 이미 복지국가 단계를 거친 영국와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저자는 두 번째 요건에서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안정화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pp 156)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최근 MB 정부의 노선 행보를 생각하면 민주주의적 가치가 점차 퇴행되고 있음을 역시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금 최대의 쟁점에 서 있는 무상투표 주민투표는 오히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부정하려는 오 시장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고 서울시의 주민투표 발의는 무상급식 시행여부와 시기 결정 등은 서울시 교육감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권한을 침해했으니 법적으로 본다면 이 투표는 민주적 절차를 어긴 위법 행위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민주주의 절차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이다.  

우리나라에 남북 분단의 상황으로 인해서 좌파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의 입지는 여전히 미약하다.    좌파 이념의 민주노동당이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대표적인 여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확실하게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중도 좌파 정당이 없으며 '복지' , '무상급식 도입 찬성' 을 옹호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지 정책 도입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복지 국가와의 친화성 수준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복지 국가 유형의 분류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통일적인 유형은 없지만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복지 후진국' 미국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은 실질적인 사회 보험 제도가 도입되지 못했으며 사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출 비용 역시 유럽 복지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어설픈 복지' 보다는 '보편적 복지'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분명한 교훈을 준다. 안보 문제와 복지 문제가 충돌했을 때, 선거에서는 복지문제가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안보는 ‘모두의 문제’ 이고 복지는 ‘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 이기 때문일 것이다.  

1945년 집권하여 보편적 복지라는 베버리지의 꿈을 추진했지만 6년 뒤에 다시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고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고 되며 훗날 '영국병' 또는 '복지병' 이라고 불리우는 복지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베버리지 보고서와 노동당의 사례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국가에게는 교훈의 대상이다. 과감한 재정적 투자로 체감할 만한 수준의 급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치밀한 정책 기획력에 의해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보편적 복지를 레토릭으로 주장하는 보수세력도 문제이지만 진보세력은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상급식 투표율이 33.3% 미달된 결과에 성급하게 축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 가슴과 머리로, 국민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준비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로가 되는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복지정책 및 복지국가의 참된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되든 간에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주는 '복지' 라는 개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준비되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주창하는 보편적 복지는 오히려 역사와 발전을 더욱 후퇴시킬 수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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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투표결과가 어땠으면 좋겠어요? 아예 33.3%가 안되면 훗날 또 어떤 식으로 다툴지 궁금해요. 무엇을 위한 선거고 무엇을 위한 투표인지, 어떤 게 진정한 복지인지 요즘은 의문이 들어요.

cyrus 2011-08-23 20:22   좋아요 0 | URL
저는 투표율이 미달되었으면 합니다. 투표율이 미달된다면
진보 여당은 투표 결과에 축배를 들기보다는 영국의 노동당처럼
무상급식 정책이 정착될수록 실질적으로 준비를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투표율이 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다고해서
복지 정책 도입에 대한 화두만큼은 오랫동안 쟁점화되었으면 해요.

양철나무꾼 2011-08-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내일 주민투표를 두고 공방이 있었어요.
전 당근 투표를 할 생각이 없지만,
주민투표 청구 측 얘기(그 여자가 이경자라는 이름였었나?)를 들어보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더군요.
또 어떤 어거지를 쓸지 말입니다.

cyrus 2011-08-23 20:24   좋아요 0 | URL
오늘도 뉴스를 보니 어떻게든 무상급식 도입을 막아보려고
별 수작을 다 하더군요. 무상급식 찬성론자를 빨갱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무상급식하는 학생은 동성애자 된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홍보까지 펼치네요 ^^;;

마녀고양이 2011-08-2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그런데 영국이 복지 국가라 할 수 있는거 맞나요?
처칠 때에는 그런 논쟁이 있었는지 모르나, 대처 수상에 의해서 퇴보되었다는 글을 읽었던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얼마 전 영국의 유혈 투쟁을 생각하면, 이 책의 논점이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어요. 현재 영국의 양극화 현상과 실업 문제는 엄청나니까요.

cyrus 2011-08-25 19:57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 맞아요, 베버리지 보고서와 노동당의 승리로 영국은
복지국가였다가 1980년대부터 복지병이 발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처 수상이 당선됨으로써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가게 되었죠.
오늘날에도 베버리지 보고서를 사회보장제도 확립의 기초로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복지에 반대하는 보수는 벌써부터 복지병 생길거라 운운하면서
망국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고 있던데 다른 복지국가의 교훈 삼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 좋을텐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