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뭐였을까? 마침 올해가 마르크스 태어난 지 20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마르크스 주의로 대변되는 이데올로기? 맑시즘이라는 사상? 또는 철학은 역사적 패배로 이미 끝났지만, 그의 철학이 여전히 변형, 수정된 상태로 오늘날 사상의 한 흐름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책 읽는 동안 켄로치 감독의 , 다니엘 블레이크」,지미스 홀이라는 영화도 봤다. 그래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살고, 쓰며 죽어간 인생에 대해서 훑어보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썼다고 선전하는 이 평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과 그의 가족들간의 편지와 주변사람들의 회고록 등의 자료를 통해 객관적 시선에서 서술한 듯 하다. 그러나 꼼꼼히 읽어보면 저자자신은 위트나 재치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마르크스를 비꼬는 듯한 서술태도를 느낄 수 있어 저자 자크 아탈리가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임을 알게 된다.

아마도 책 말미에 적시해 놓은 케인즈의 평가를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마르크스의 천재성과 위대성을 시기하는 지식인의 옹졸함이 저자인 그에게도 내비쳐 진다고 해야 할까?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잘못 되었을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낡아 빠진 경제입문서다.”](721)

 

자본론등 마르크스의 많은 저작들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사상과 철학을 평할 입장이 아니지만, 인간 마르크스는 혁명을 꿈꾸면서 천재적인 두뇌로 끊임없이 쓰고, 행동한 지식인이었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하다. 그리고, 그에겐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인 친구 엥겔스와 아내 예니가 있었다는 점에서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죽을 때까지 그를 지지하고 후원해 준 엥겔스와 예니가 아니었다면 그의 사상과 철학은 꽃피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1800년대 유럽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사상의 용광로로 들끓었던 혁명의 시대였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꽃피우며 영국과 프랑스 등 강국들의 식민지 경쟁속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설사 엥겔스의 후원과 예니의 희생이 있었다하더라도 평생을 임금노동자로서 살지 못했고 그래서 뚜렷한 직업이 없던 그에게도 빈곤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로 인한 어린 자식들의 죽음은 커다란 고통이었다. 물론 말년에는 상당한 명성을 얻고, 주변의 도움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던 모양인데 그는 이놈의 때문에 많이 시달렸고, 자본론등 저술활동으로도 돈을 벌지 못했을 것임은 확실하다.

 

그가 1883년 죽고 나서 자본론이 영역되어 5천 부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출판사가 은행전문가들에게 재산을 모으는 방법으로서 그 책을 소개하며 내놓았다고 하니 쓴웃음이 난다. 그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파악한데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 받는다이 공산주의의 모토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비열한 이기성을 간과한 것이다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집권층에 공산주의 혁명의 두려움을 느끼게하여 그나마 사회 개혁, 개량에 나서게 했다는 점과 인간의 욕망을 향한  본능적 질주를 견제하고, 이성적으로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은 커다란 그의 공헌이다  

 

더위 때문인지 책읽기나 독후감쓰기도 심드렁해진다. 예전엔 '안광이 지배를 철하듯이'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고, 하찮은 표현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글쓰기도 했는데...책에 대한 설렘이나 갈급함도 없어지고, 글이 백사장에 지렁이 지나가듯 느껴진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 책읽기는 모르겠으나 독후감 쓰기는 이 책 마르크스 평전이 마지막이다. 지난 1년간 이 알라딘 서재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한때는 열심히 책도 읽고, 독후감도 올려 '이 달의 당선작'으로 뽑혀본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슬럼프가 온 것 같다. ‘나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이런 데다 올리지?’ ‘이 글쓰기의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주 든다. 생계유지(돈벌이)를 위한 의무감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면 잘난 체하려는 인정욕구나 지적허영?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인의식? 강퇴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알라딘 서재활동을 하겠다는 작년의 호기도, 몇 개의 좋아요에 따른 자아도취도 부끄럽다. 그래, 이젠 그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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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2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가 마르크스 선생 200주년이었군요...

가지고 있는 아이사야 벌린 버전의 평전
으로 한 번 다시 만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cyrus 2018-07-27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문제가 될 정도로 민폐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알라딘에 ‘강퇴’는 없어요.. ㅎㅎㅎ 그 대신 ‘자발적 퇴장’은 많아요. 어느 날부터 예고 없이 글쓰기를 중단한다거나 회원 탈퇴를 한 알라디너들을 많이 봤어요. ‘서재 활동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해놓고선 다시 활동을 재개한 분들도 많아요. 물론, 결국엔 정말로 돌아오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대단해요. 자신의 약속을 철저히 지켰으니까요.

sprenown님의 글을 구독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기분 나는 대로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sprenown 2018-07-27 17: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에서 가장 진실되고,열심히 활동하시는 사이러스님을 잊지 못할거예요! 비록 저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존경합니다!
저는 이미 글쓰기의 한계에 온것 같습니다.
책은 계속 읽더라도 글쓰기는 못할것 같아요. 너무 부끄럽습니다!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sprenown 2018-07-2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께도 미안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글은 못(않)쓰더라도 책은 열심히 읽겠습니다. 건승 하시기 바랍니다!

2018-07-27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7-27 18:06   좋아요 0 | URL
언젠가 글을 다시 쓰고 싶다면 그러겠지만 공개적으론 쓰지 못할것 같습니다
비공개로 일기처럼 쓸것같긴 한데 이것도 누군가 볼거라는 가정이나 전제가 깔려 있다는게 문제 겠지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젠 이 북플앱도 지우겠습니다.
 
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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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5번째 작품으로 풀리처상 수상작이라 한다.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과 말 못할 고통의 역사, 기억을 통해 노예제의 잔인성을 폭로하는 이 책에서() 토니모리슨의 역설적 작명법은 빛을 발한 듯 한데 가혹한 노예 농장은 '스위트 홈(Sweet Home)'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흑인 노예는 '빌러비드(Beloved)' 사랑받는 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읽은 책은 도서출판 들녘에서 20053월 초판7쇄 발행일로 되어 있고, 번역은 김선형 이란 분이 맡았다. 굳이 이를 언급한 이유는 아무래도 번역이 문제인지 아니면 토니 모리슨의 문체나 소설작법을 제대로 이해 못한 독해력 때문인지 매끄럽게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어보지 못해 비교할 수도 없으나, 이 책을 완독하는데 꽤나 힘들었다.

 

일단 번역문제와 관련해서 주인공 이름 ‘Sethe’를 다른 곳에서는 세드라고 표기하던데, 이 책에서는 시이드라고 번역되어 있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에 대해 어떻게 표기하는냐의 문제는 원음에 가깝게 번역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런다고는 하지만 번역에서의 항상 마주치는 직역과 의역의 정도 문제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물론, 의역이라도 작가의 의도와 작품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범위의 한계가 설정되어 있겠지만 이것 역시 번역자의 주관적 판단일 수 밖에 없어 시대배경과 언어와 문화 등을 포함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국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도 어려울 일 일 것이다.

 

예를 들어 352쪽의 저는 몰랐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치즈가 더 단단해진 거예요.’라는 문장을 보면, 토니 모리슨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지, 관용어를 사용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확신이 깊어졌다는 뜻이라고 굳이 각주 처리한 점을 보면 직역과 의역을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절하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는 번역자의 가장 큰 능력이자 미덕이 아닐까 싶다.

 

한편,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소설 자체가 비인간적인 노예제 고발, 지모신의 모성애를 통한 인간구원과 영혼의 치유라는 묵직한 주제를 은유적인 문체, 교차적 시점에 의한 사건의 재구성, 귀신과 주술적 요소를 가미한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 등을 혼용한 서술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쉽게 읽혀지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럽게 읽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조된 소설이라면, 그만큼 번역의 난이도도 높았을 것으로 짐작은 된다.

 

이 소설은 형식상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의 첫 문장 들은 토니 모리슨이 아마도 자주 쓰는 또는 특유한 소설 작법이 아닐까 싶게 반복적인 문장구조를 통해 인상적으로 꾸며졌다. 1(하나)의 첫 문장 ‘124번지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 아기가 뿜어내는 독기가 충천했다.’2()의 첫 문장 ‘124번지는 시끄러웠다.’로 이어지고, 마지막 3부에서는 ‘124번지는 고요했다.’로 첫 문장이 시작되는 것이다.(사건의 발단과 전개, 위기와 절정을 거쳐 갈등의 해소를 통한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 구조와 관련된 듯하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랄 수 있는 2()에서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해 어린 딸 빌러비드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시이드와 죽은 언니 빌러비드의 존재를 느끼는 동생 덴버의 시각에서 그려진 각 장의 마지막에 각각 [그애가 내게 돌아왔어요, 내 딸이. 그애는 내 거예요](345), [언니는 내 거예요. 빌러비드. 언니는 내 거예요.](354)라는 끝 문장과 뒤이어 어머니 시이드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았던 빌러비드의 시각에서 구성된 장의 첫 문장 [나는 빌러비드, 엄마는 내 거야.](355), [나는 빌러비드, 그녀는 내거다.](361)과 수미쌍관적 대구를 이룬다. 어머니 시이드와 죽은 딸 빌러비드, 그리고 살아남은 딸 덴버. 이렇게 흑인 3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내 것인 한 몸인 것이다. 이러한 몸의 순환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나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바뀜과 같이 자연의 순환을 닮았다.

 

이 소설에서 으로 표현되는 모성은 만물의 생명을 키워내는 대지를 상징하면서 살고자 하는 본능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인데 노예사냥꾼에 발각된 상황에서 어린 딸 빌러비드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렸던 시이드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동(‘로 상징됨)에 대해 해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내 자식은 절대 안돼. 네가 내 거라는 얘기는, 나도 네 것이라는 말이란다. 내 자식들 없이는 절대 숨을 쉬지 못할 거야.~ 내 계획은 너희들을 전부 다 데리고 저승으로 떠나려는 것이었지.](343) 폴 디가 시이드를 떠나면서 한 당신 사랑은 너무 짙어 숨막혀.”(281)라는 말 은 시이드의 이 지독한 모성애를 설명하는 위와 같은 진술을 통해 살아서 노예의 삶을 사느니 죽어서 자유를 얻는다.’라는 명제로 변환, 역설적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흑인노예의 비참한 삶과 고통스러운 그들의 역사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백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흑인노예의 원한을 우리의 씻김굿(또는 오구굿)으로 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여기에 그려지는 흑인 공동체 문화와 124번지에 살아가는 한 흑인 가정의 풍경은 우리 민족의 신산스러운 삶, 특히 의 정서를 떠올리게도 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사는게 힘들어 그리고 배가 고파서, 시장바닥에서 복어내장을 구해와 온 가족이 끓여먹고 죽을려고 했다는 어머니. 입을 덜기위해 어린나이에 식모로 간 누이. 군대에 가서야 사람이 하루 세끼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형님. 우리 이웃들의 이런 얘기를 듣고 자라면서 나는 새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정신적·신체적 자유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는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 지옥 같은 직장에서 노예 같은 삶을 이렇게 꾸역꾸역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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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7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고 있었을 때, 토니 모리슨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었어요. 매번 늘 그래왔듯이 ‘읽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

sprenown 2018-07-1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되시면 읽기를 권장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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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만다는 것은 소설의 경우, 상당히 비효율성이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이번에도 작년에 읽다만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 마저 읽었다. 사실 결말부분의 반전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던데 예상보다 힘들게 읽었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다.(이 독후감을 쓰기위해 다시 뒤적 거리기는 했다.)

 

이 작품으로 2011년 줄리언 반스가 노벨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2부로 구성된 짧은 장편임에도 철학, 역사, 문학에 대한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심오한 사고가 담겨있어 이 상의 권위에 값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작가의 경력을 보니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편찬한 적이 있는데 확실히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작가의  치밀한 의도였는지 아니면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처음부터 다시 읽게 하거나 한동안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그럼에도 속시원한 결론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다. 기껏해야 아마도 그럴 것이다 또는 그러지 않았을까? 정도여서 뭔가 여전히 찝찝하다. 결국 축적된 기억(그 기억이라는 것도 왜곡과 편집으로 조각난 것이다.)으로 이루어진 우리네 인생... 진실과 정답이 없을지라도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지면서 성찰적 삶을 살자는 철학적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이유도 목적의식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후, 죽음만을 유일한 필연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인간존재의 조건이다. 자유란 어쩌면 이런 인간 운명의 비극적인 필연을 성찰할 줄 아는 능력을 일컫는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265, 옮긴이의 말)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60대 노년에 접어 든, 대머리의 이혼남으로 1인칭 화자시점에서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를 회고하는데, 1부에서는 40여년전의 치기어린 학창 시절과 연인이었던 베로니카와의 사랑얘기 그리고 헤어진 여친 베로니카와 사귀다 갑작스럽게 자살한 절친 에이드리언의 죽음이 큰 줄기를 이룬다. 작가는 한 개인이 겪는 사건(롭슨의 자살)과 그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 의미에서 역사와 빗대서 에이드리언의 말로 표현하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일 것이 분명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 빚어지는 확신입니다.](34)

 

E.H.Carr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얘기 한 역사는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은 과거의 사건에 대해 현재의 시점에서 역사가가 자신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통해 해석한다는 의미일 텐데, 역사성 여부와 관계없이 의미를 확장한다면,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가 죽은 후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각자의 내면적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문제는 그 기억이라는 것이 살아남은 주인공 토니 웹스터조차도 정확한 진실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101)

 

그래서 2부에서 작가는 현재 시점의 토니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 여기에는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여사의 유산문제가 가장 큰 축으로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도대체 이 여인은 죽으면서 왜 토니에게 500 파운드와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남겼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독자들에게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데 그 궁금증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야 하는 식으로, 소설을 마무리 하지 못해 두루뭉술하게 처리한 것인지, 작가의 의도에 따른 열린 결말인지 여전히 궁금하다.(여기서 책을 사이에 두고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문제가 대두되는데 이 역시 역사기억에 대한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토니의 시기와 저주에 가득찬 예감이 틀리지 않아 비극을 불러온 것에 대한 보복인가? 역사는 우연의 반복이며 사소한 편지 한 장으로도 다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고도의 트릭인가?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40여년이나 지나 죽으면서 하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황당무계하여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햇볕이 내리쬐는 등나무 아래에서 팔을 수평으로 뻗으면 비밀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던 그녀가 죽기 전 사실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 토니였어!’라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라면, ‘추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낸 마지막 몇 달 동안 에이드리언은 행복했다고 생각해라는 편지는 죽어가면서까지 토니의 질투심을 유발하려는 술책이었다는 얘긴가?

 

또한, 딸을 질투한 어머니가 딸의 남자친구를 가로채 관계를 갖고 아이까지 낳는다는 충격적인 내용에다가 에이드리언의 이성적 판단에 따른 자살. 게다가 에이드리언의 지성미 돋보이는 b,a,s,v라는 정수가 포함된 축적을 표현한 공식은 뭔가? 번역이 잘못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마지막에 토니는 이제야 뜻이 명확해졌다고 단언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게 도대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다.

 

그런데 이 엉큼한작가는 여기에서도 언어가 갖고 있는 권능 또는 한계문제까지 은근슬쩍 드러낸다. 토니가 수제감자칩을 주문하는데 저희업소에선 손으로 안썰어요. 미리 썰어놓은 것을 배달해 쓰죠라고 대답하는 바텐더.“그렇다면 수제 감자칩이란 말은 사실 다른데서 썰었다는 것이고, 십중팔구 기계로 썬 것이겠네요?

수제라는 말뜻이 반드시 손으로 직접 썰었다는 게 아니라 통통하다인지는 꿈에도 몰라서 그랬지”(248,249쪽 발췌) 라며 응수하는 토니.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토니의 말을 나도 이쯤에서 꼭 하고 싶다.

미안해요, 그냥 이해가 안가서 그랬어요.”

(우리도 술집에서 간혹 가오리회인줄 알면서 홍어회라고 말하고, 쓰기도 한다.)

 

어쨌든, 요즘 소설이나 영화의 대세인 반전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펼치다보니 열린 결말이라는 미명하에 애매하고, 어정쩡하게 마무리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나와 같이 무능한 독자의 몰이해를 탓한다면, 작가가 나서서 책임있게 해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소설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틀리지 않듯이 이에 대해 철학적이고, 위트있는 언어를 맘대로 부리며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줄리언 반스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역시 틀리지 않을 것이다.(이 잡글의 마무리가 쉽지 않아 서둘러 끝맺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면서 나의 이 궁금증을 해소해줄 독자 제현의 고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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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을 읽고 리뷰 쓸 때가 힘들어요. 소설 속 장면을 인용하거나 설명할 때 책을 다시 살펴봅니다. ^^;;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8
김수경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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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른 여름휴가를 받아 어머니 홀로 계신 시골에 내려 왔다. 굳이 휴가기간에 쉬면서까지 부담스럽고, 무거운 책을 읽느니 가볍고 편하게 읽어보자 가져왔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이 소책자는 작고, 날씬한 몸피와 달리 의외로 얘깃거리를 많이 담고 있다.(그동안 들어왔던 수많은 대중가요와 가수, 노랫말들이 불러오는 당시의 기억 또는 추억들...)

 

주로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의 노랫말, 쿵짜작~ 쿵짝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음율. 때론 신파적이면서 상투적이지만 대중가요는 한편으로는 위대한 철학자의 묵직한 잠언이나 유명한 시인의 아름다운 시보다 우리 생활가까이에서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목에 힘주고, 고고한 척하는 학자들의 고담준론을 읽고 들으면서 그들의 허위와 가식에 식상해 질 무렵, B급 문화의 첨병이랄 수 있는 대중가요를 듣다보면 차라리 거기에 인생과 사랑, 그리고 철학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된다.(내겐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그리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또는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등과 같은 노랫말들이 그렇다.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내 몸 안에 그냥 흘러들어와 나도 모르게 젖어든 것이라 표현한다.)

 

이 책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는 어느 음악 평론가나 문화 평론가가 쓴 글이 아니라 <고려처용가의 전승과정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수경이라는 국문학자가 대중가요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 글들을 모아 나온 것인데 그렇다고 여느 학술서처럼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발라드의 개념과 역사,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톺아보고, 서태지 이전 발라드의 전성기라 할수 있는 1980년대 중·후반의 발라드를 중심으로 박건호와 양인자, 박주연과 이영훈 등 발라드의 대표적 작사가들의 노랫말을 분석하면서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힘에 주목한다.(아마도 그 이란 삶의 고단함에 대한 위안과 카타르시스 일 것이다.)

 

일단 발라드라는 말은 춤추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파생되어 느린 템포의 아름다운 사랑노래를 가리키며 여러 장르와 섞여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갔는데 우리나라에는 한국 전쟁후 미군의 팝문화가 뿌리내리면서 6,70년대 라디오, 80년대 TV, FM방송을 통해 전성기를 맞게 된다.(21~29쪽 발췌)

 

저자의 노랫말 분석에 따르면, 작사가중 박건호와 양인자의 경우 노랫말과 시는 다르다는 전제 속에서 청각적인 요소 내지는 맛에 중점을 두어 '소리로 들었을 때 그 묘미가 살아나는 구체성'을 특징으로 하며, 발라드 전문 작사가 제1세대인 박주연과 이영훈의 노랫말 특징은 '사랑에 대한 담론의 본격화와 구어체적 표현을 통한 현실의 재현'이라고 평가하는데 꽤나 그럴 듯 하다.

특히 저자는 조용필의 노래와 양인자의 노랫말을 사랑하는데 이러한 취향이 나와 같아 반갑기도 하거니와 재작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미국 포크가수 밥 딜런의 내한 공연 소식도 있던 터라 대중가요라고 해서, 또는 B급 문화라고 해서 무시당했던 시절에 모든 폄하받는 것들에 대해 나름의 미덕을 찾는작업을 꿋꿋이 하고 있는 저자같은 사람들의 공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팝송과 발라드를 흥얼거리던 20대를 거쳐 이후 30대를 지나면서 부터는 서서히 뽕짝(‘스탠더드 뽕이라고도 불리우는 슬로우 고고 양식 포함)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가끔 유투브를 통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비내리는 고모령과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다던 임방울의 쑥대머리까지도 듣게 된다. 그래서 대중가요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대중의 감성과 보편적 정서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바로미터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지 시간을 뒤로 돌려 옛 가요를 들어보면 확실히 우리민족 특유의 슬픔과 체념다시 말해 한의 정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옛날 노래지만 어머니가 좋아하는 봄날은 간다’(1954년 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의 가사 전문이다. 단순한 대구의 묘미와 시적인 내용이 마음에 드는데, 가사를 음미하며 이 곡을 다시 부른 장사익, 최백호나 린의 노래와 같이 들어보니 참 좋다.(다소 청승맞기도 하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울림이 있다!)

 

이녁은 거기서 편안하시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가나 보다. 아침에 아버지의 사진액자를 어루만지고 닦으시며, 중얼거리는 어머니. 어머니도 이제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실 준비를 하시고 계신지 모르겠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짓무른 눈두덩이...어머니에게도 봄날은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꿈 많던 문학 소녀...꽃가마 타고 시집 오던 날, 연분홍 치마 곱게 차려 입었던 새색시 시절이였을까?

 

날 더운디, 술 좀 엔간히 묵고 다녀라!”

언젠가는 이런 잔소리도 그리워 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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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7-05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노래‘는 잘 모릅니다. 가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는 재밌게 보고 있지만요...
어제 서울올라와서 ‘변산‘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랩 가사가 괜찮더군요. 노랫말이 ‘일상성‘으로 확장된다는 말이 실감이 되더군요. ‘내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게 노을밖에 없다‘는 영화속 시구절도 좋구요.

cyrus 2018-07-05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요 트렌드가 변할 때마다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꾸준히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작사가는 잘 모르겠어요.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작사가는 김이나인데, 향후 몇 년 안에 김이나만큼의 실력을 가진 작사가가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앞으로는 멜로디는 좋은데 노랫말은 좋지 않은 가요 곡이 많이 나올 거예요.

NamGiKim 2018-07-0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인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재 소리 듣는ㅋㅋㅋㅋ
 
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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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1963~1997)은 일찍 죽기엔 참 아까운 소설가다.” 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다.’라는 말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계급적이고, 권위적인 편가르기의 사고가 은연중 스며든 표현일테다. 모든 생명의 죽음은 다 안타깝고,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재능있는 한 소설가의 이른 죽음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맨 앞장... 추억의 어린시절 흑백사진 몇 장과 함께 나와있는, 집필 무렵 그의 사진을 보면 소위 도시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예민하고, 차가운 느낌을 갖게 되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푸근하고, 찰진 사투리와 순우리말 구사능력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당연히 강원도 철원태생의 이 젊은(?) 소설가가 이런 말들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작가의 우리말과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그 절실함은 돼지꿈을 매개로 도박을 하고 싶어 환장하는 날품팔이 양씨와 사내아이를 갖고 싶어 애타는 상주댁의 다음과 같은 소설 속 대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우데를 가노 말이다? 또 그래, 손꾸락지가 근질근질해졌나? 도야지꿈인가 뭔가를 꾸었으니깐 한바탕 해보러 가야 직성이 풀린다 이거구마. 내사 마 이러믄 정말 몬산다. 가장이라는 게 아래께부터 쌀 팔아올 돈도 떨어져 외상으로 봉지 쌀을 들여다 놓는 줄은 모르고 허구한 날.....”

상그러븐 소리 그만 걷어치지 않으면 콱 쥑이뿌린다 마.”

~

제기랄, 내가 매화타령이 절로나는 이땡짜리 패를 들었을 때 그 노무 자석이 삼팔광땡 들고서도 의뭉스레 죽을 듯 말 듯 설레발을 칠줄이야 우째 짐작이나 했겄나. 손속이 나쁘면 노름의 대가가 와도 우얄끼고.”

~

듣다보니 그 도야지꿈은 사내아아 태몽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믄 우리 한분 보람 있게 정성드려 해봅시다. 뜸물에도 얼라가 선다 안캅니꺼?”

정성드려 무얼....”

도야지꿈을 태몽삼아 실팍한 애기 좀 한번 받아 보입시더.”

~

오냐오냐 알긋대이. 내사 다 들어줄테니 우선 이 바짓가랑이 좀 놓고 말로하자, 우리 말로.”

건성으로 말고 확실히 대답해 뿌소.”

헉헉, 보그래이. 내 다 이짓도 용서헐테니 이것, 이것만은 놓고 우리 신사적으로 이바구로 해결해 보자구 으응? 한다 카지 안나? 정이러믄 니 말대로 거시킬 하고 싶어도 물건이 제 꼴을 잡지 못해서 낭패 보는 수가 있다 아이가.”(143~146쪽 발췌)

 

연작 장편소설인 이 책 장석조네 사람들70년대 서울 변두리 달동네 소시민들의 궁상스러운 삶을 슬픈 듯 하면서도 위와 같이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요샛말로 웃픈현실에는 삶의 애환과 진실이 담겨있어 짙은 페이소스도 느껴지는데 50년대말 60년대초 대구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간난한 삶의 풍경을 곡진한 애정을 담아 담백하게 그려낸 김원일 작가의 자전적 소설 마당깊은 집을 떠올리게도 한다. 별을 보며 나누는 사내들의 대화장면.

 

사람이 제 몸에서 나온 것도 싫다고 코 싸쥐고 돌아서는 똥을 치우는게 천상 내 일인 줄 알고 사는 나 겉은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믄 박씨나 천씨나 다들 번듯허지 뭘 그러는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허네요 잉?헌데 헹님은 오랜만에 별을 보고 뭔 생각이 떠오른 것이요?”

별은 똥이다.”

헹님, 와 이캅니꺼! 주정하는 거 아닝교?”

주정이믄 또 우떻나! 내는 항상 똥만 쳐다보니 사니껜. 그게 내 일이니깐. 그걸 퍼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쌀도 팔아묵고 술도 사묵지.~ 내가 그 별을 올려다 볼 때 틀림없이 이 술로 찌들고 푸르딩딩한 내 눈에도 별빛이 고봉으로 하나 가득 담길 것 아닌가 말여.~”(117,118쪽 발췌)

 

한 지붕아래 아홉 개의 방이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어 기찻집으로 불리는 장석조네에 세들어 사는 아홉가구의 세입자들. 이들을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과 아픔을 때론 슬프고, 때론 우습게 그려내는 이 소설 역시, 작가의 추억이 버무려진 자전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몇 편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구성된 다른 편들과는 달리 1인칭 화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겐 더욱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편이 그렇다.

 

[그 틀사진은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던 흑백 증명사진을 부랴사랴 확대하여 마련한지라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느낌을 줄뿐 아니라 윤곽마저 희미하게 어룽거려 마치 급조된 몽타주 속의 인물을 연상시켰다. 조붓한 공간 속에 갇혀 건성드뭇한 대머리을 인채 움펑 꺼져 데꿈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는 무엇에 놀랐는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어깨까지 한껏 곱송그리고 있어 방금 염병을 앓고 난 이 같았다.](120)

 

경제적으로 거의 무능했던 이런 모습의 아버지가 얼떨결에 선거에 나가게 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이 편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다른 모습(선거벽보안의 아버지)을 엿보고, 아버지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는 한 번두 이세상과 정직하게 맞서본 적이 없드랬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이북에 두 양주와 처자를 모두 두고 왔으면서도 끝내 이곳에 남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이 비겁한 애비다. 몸뚱이가 산산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래두 한 번쯤 피하지 않고 운명이라는 것하고 말이지, 부닥쳐보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133~134)

 

어쩌면 소설가 김소진은 소설 속 아버지의 바람을 어릴 적부터 느끼면서, 운명이라는 것에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부닥치며 정직한 삶을 살다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린 지도 모르겠다.(이 독후감의 제목을 뭘로 할까 잠깐 고민하다 긍정적인 의미로 위와 같이 정했는데, 장마 때문인지 너무 질척거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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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6-3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소진 소설이네요.

sprenown 2018-06-30 22:16   좋아요 1 | URL
예, 그렇습니다. 그 ‘김소진 소설‘입지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함께 사둔지 꽤 되었는데, 이제야 읽었네요.별점을 궁금해 하던 북플씨께 이제야 답을 하는 꼴입니다. 순서상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먼저 읽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제목에 끌려서...

munsun09 2018-06-30 20:51   좋아요 1 | URL
저도 중고로 소설집 구입해놨는데 여태 읽지못하고 있네요.
오랜만에 북풀에서 김소진 작품 보니 새롭고 반갑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