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계정을 가지고 있는 SNS는 페이스북이다. 원래 카카오스토리도 있었는데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탈퇴했다. SNS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고치고 싶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북플도 SNS이군. 요즘 페이스북보다 북플을 애용한다. 하지만, 접속 횟수를 늘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한다. PC 상태에서 글을 작성하고 난 뒤에 접속한다. 주로 서재 이웃의 글에 댓글을 단다. 그 외에는 접속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북플은 무궁무진한 책 이야기와 도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내 독서 시간만큼은 북플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

 

페이스북을 접속하면 궁금할 때가 있다.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 정성껏 사진과 글로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여유와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이다. 셀카 사진을 하루에 한두 장 찍어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 그들의 외모가 출중한 것은 인정은 하나, 자꾸 페이스북으로 들이대면 부담스럽다. 이제 셀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것도 질린다.

 

누구든지 SNS을 하게 되면,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과하게 몰입하면 자신의 감정까지도 공개한다. 살다 보면 상황에 따라 기쁨과 우울, 분노, 슬픔을 느낀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함께 이 즐거운 기분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반면에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내 감정을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은 곧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작용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감정 과잉하는 성향이 많아지면 부작용을 낳는다. 정작 본인은 잘 모르지만, 계속 보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내가 보는 개인적 기준으로 감정 과잉형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느닷없이 페이스북에 ‘화가 난다’라거나 ‘우울하다’라고 올리는 사람이 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답글을 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친구들이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줄 수 있다. 그런데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그냥, 좀 안 좋은 일이 있어’라고 말할 뿐이다. 두 번째, 감정 조절 없이 그냥 표출하는 사람. 그러니까 첫 번째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 원인과 그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런 글 상당수는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많다.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본인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고 풀 수 있는데도 말이다. 혼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니까 감정을 남들에게 공개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한 감정 과잉형은 충만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작성해보지만 보는 이들은 당최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채연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던 ‘눈물 셀카’다. 지금도 채연의 흑역사로 언급할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채연은 미니홈피에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가끔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로다. 맘이 아파서 소리치며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꼭 슬퍼야만 우는 건 아니잖아. 난 눈물이 좋다. 아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우는 내가 좋다”는 글과 눈물을 머금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이 좋다고? 나름 멋있어 보이려고 국어 시간에 배운 역설법을 시도한 것 같은데 오히려 이 사진 공개 이후로 채연의 안티팬이 생기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자화상도 엄연히 말하면 화가의 ‘예술적 셀카’이다. 일반적으로 자화상은 화가가 표현기법을 늘리기 위해서 모델이 있어야만 그릴 수 있는 초상화 대신에 그리는 것이다. 인물화는 단순히 모델의 외형을 똑같이 그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델의 감정도 그림으로 온전히 옮길 줄 알아야 한다. 모델의 속마음까지 꿰뚫을 수 있는 훈련으로 자화상이 적합하다. 모델이 없어도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본인 감정을 표현하면 된다. 그래서 화가의 자화상에 당시 화가의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SNS에서 볼 수 있는 감정 과잉형은 ‘이 사람’의 자화상과 비교하면 애교에 가깝다.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비참한 삶을 살다 간 인간이 그린 자화상을 소개해본다. 진짜 이 그림의 사연을 알게 되면, 이 그림 앞에서 숙연해질 것이다.

 

 

 

 

 

리하르트 게르스틀  「웃는 자화상」 1907년

 

리하드르 게르스틀(1883~1908)이라는 독일의 화가가 그린 「웃는 자화상」이다.  그림 속 화가는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그런데 웃음이 영 부자연스럽다. 억지로 웃는 것 같은 화가의 얼굴에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발산한다. 이 그림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슬프면서도 약간 무섭다. 자화상은 게르스틀 최후의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1907년 게르스틀은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이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이듬해 자신의 작업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결국, 이 자화상은 비극적 죽음으로 내몰리기 일보 직전에 그려진 화가의 모습인 것이다. 곧 자살을 눈앞에 둔 화가는 초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 웃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자신의 운명이 우습고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리하르트 게르스틀  「마틸데 쇤베르크 II」  1907년

 

자살 동기와 관련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실패한 사랑을 원인으로 본다. 게르스틀은 사랑에 빠졌는데 하필 그 여인은 작곡가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데였다. 젊은 화가와 여설 살 연상의 유명 작곡가 아내와의 사랑, 이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와 친분을 맺은 인연으로 음악가의 자녀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곤 했다. 여기서 게르스틀은 마틸데에게 연정을 품기 시작했다. 마침 마틸테도 괴팍한 예술가 남편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시도한다. 하지만, 마틸데는 자녀를 버리고 떠나버린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마틸데는 쇤베르크의 인생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유일한 사랑을 떠나 보내야하는 게르스틀은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음악가의 아내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자신이 인생에 패배한 화가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세기말의 우울감은 젊은 게르스틀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비관적인 감정의 늪을 헤어 나오지 못한 게르스틀은 유서와 같은 「웃는 자화상」을 남긴 채 짧은 예술가의 생애를 끝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도록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사람은 내 신체 일부 하나하나가 떨어나가는 듯한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린다. 화가는 마틸데를 잊기 위해서 자기위안으로 웃어보지만, 그의 눈가는 눈물이 촉촉하게 번지기 시작한다. 웃음 속에 숨겨진 눈물, 이것이야말로 진짜 슬픈 사람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다. 활짝 입을 벌린 웃음은 어느새 절규로 변하고, 화가는 점점 미쳐간다. 게르스틀의 웃음에 예술과 사랑 둘 다 실패한 한 인간의 원초적인 슬픔과 원망이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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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cyrus님 글은 책 읽는 것 만큼 생각하며 읽게 되네요.

cyrus 2015-01-21 16:06   좋아요 0 | URL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글이 길어지는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후즈음 2015-01-20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양물감님 덧글에 공감해요! 리뷰도 좋지만 저는 이런글이 더 좋아서 찾아 들어와 읽고갑니다ᆞ

cyrus 2015-01-21 16:0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qualia 2015-01-2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남성들의 ‘찌질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봅니다.
최근 인터넷/에스엔에스 따위에서 자행되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마녀사냥, 언어폭력, 인격테러 등등을 보면
얼마나 한국 남자들이 저열하고 짐승스러운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런 한국 남성들의 짐승스런 짓들이 인터넷/SNS에서
소수로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노소/학력고하를 막론하고
짐승스런 찌질남들이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전쟁의 99% 이상을 남성들이 획책하고 터트린 것입니다.
아직도 한국은 남존여비, 봉건적 가부장적 관념이
하나의 관습적/전통적 폭력으로 적법하게 관철되고 있는 미개국가입니다.

개인적 경험을 하나 말하자면, 제가 다종다양한 직업군의 한국 남성들 차에 동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거의 모든 한국 남성 운전자들이 여성 운전자를 욕하고 부정적으로 비난해댔습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거의 예외없이 (미친) 개가 되는 게 한국 남성들 즉 찌질남들의 정체입니다. 그렇게 비루하고 비겁하고 천박한 종자들은 한국 밖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디스패치라는 찌라시를 필두로 기레기 언론들이 연예인 추문 건을 동시다발로 터트려 누리당 정권으로 향한 국민들의 비판과 불만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려 획책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기획을 위해 한 여성 연예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더군요. 바로 그 당사자는 인터넷/SNS에서 야만적 한국 남성들의 마녀사냥/인격테러를 계속해서 무차별로 당해오던 연예인입니다. 이 억울하고 힘 없는 희생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하이에나떼한테 던져준 것입니다. 너무나 악의적이고 쓸개 빠진 기레기/찌라시들의 주구(走狗)질이라고 판단합니다.

저는 채연의 윗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하지만 채연한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봅니다. 왜 채연이 저 건으로 비난 받아야 하죠? 오히려 저런 비난질은 그저 남존여비 사상/봉건적 남성우위 관념/가부장적 권력을 폭력적으로 휘둘러대는 한국 찌질남들의 언어폭력/인격테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cyrus 2015-01-21 16: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심해요. SNS 중독에 상대방을 비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도 많아요. 우리 사회는 ‘SNS 중독자=여자’라는 편견이 심해요. 그리고 페이스북의 정보만 가지고 단적으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해요. 이러니 마녀사냥. 언어테러가 생기죠. quila님 말씀처럼 저도 페이스북에 떠도는 찌라시를 믿고, 사실인 냥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고, 한편으론 무섭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누군가를 희생양 만들고, 악성 루머를 만들기에 페이스북이 아주 적당한 곳이에요.

채연 같은 경우, 저도 안티팬이 생겨날 줄 몰랐어요. 최근에 방송에 나왔는데 채연 본인이 당시 눈물 셀카 이후의 반응에 대해서 그렇게 언급하더라고요. 사실 채연의 눈물 셀카는 SNS 허세를 희화화할 때 자주 회자되곤 했어요. 그래서 이 채연의 셀카가 SNS로 허세 떠는 모습으로 조롱받게 되었고, 그 중에 대다수는 채연의 안티팬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SNS 허세는 남자도 많아요.

맥거핀 2015-01-2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그림을 보니 영화 [올드보이]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이 나는군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 것이다.˝ 거기 나왔던 그림도요. (찾아보니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의 [슬퍼하는 남자]라는 그림이군요.)

cyrus 2015-01-21 16:18   좋아요 0 | URL
저도 게르스틀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딱 그 영화대사와 앙소르의 그림이 생각났어요. 역시 영화마니아답습니다. ^^

수연 2015-01-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카 사진 내 이야기 같아서 막 찔리면서 막 웃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페북 잘 안 하니까 코콧_ 비극적인 사랑은 사람을 마모시키니까_ 물론 그렇다고 비극적인 연인들이 일부러 비극적인 사랑을 골라서 하는 건 아니지만_ 그대는 예쁜 사랑 하면 좋겠습니다. (채연의 저 이야기를 듣고보니 채연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나도 윽 -_- 싫군요)

cyrus 2015-01-21 16:22   좋아요 0 | URL
저는 야나 누님이 셀카 사진 많이 찍는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요, 항상 지민이랑 같이 찍는 셀카나 지민이 단독샷 좋아요. 그나저나 요즘 지민이 나오는 사진이 줄어든 것 같은데요... ㅎㅎㅎ

수연 2015-01-21 16:29   좋아요 1 | URL
곧_ 북플에 중독중이니 북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셀카는 자제하고_ 민이 나오는 사진으로 호호호호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본 글이다. 옛날에 애꾸눈 왕이 있었는데, 나라 안의 유명한 화가들을 불러 초상화를 그리라고 했다. 모든 화가는 어떻게 왕의 모습을 잘 그릴까 고민을 했다. 애꾸눈을 그대로 그린 화가들, 애꾸눈이 아닌 것처럼 정상적으로 그린 화가들 제각기 다양하게 그렸다. 그런데 임금님은 화를 벌컥 내면서 거짓으로 그린 것도 안 되며 애꾸눈인 자기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 또한 몹시 불쾌하다며 다른 화가를 찾았다. 많은 화가 중에 마침내 임금님의 마음에 흡족한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나타났다. 그 화가는 임금의 미소 띤 옆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

 

“폐하,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면이 있습니다. 폐하는 미소 짓는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왕의 신체적 단점을 극복하여 미적 완성도를 높인 초상화를 제작한 이 화가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대상을 진짜처럼 똑같이 그릴 줄 안다고 해서 다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대상도 아름답게 보고 묘사하는 능력이야말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사실 초상화의 등장은 원래 얼굴 정면이 아닌 측면을 그린 것으로 시작되었다. 인물 또는 사물을 대충 나타낸 그림을 실루엣이라고 한다. 원래 하나의 색조만을 사용해 만든 이미지나 도안, 또는 물체의 윤곽이나 윤곽이 뚜렷한 그림자를 의미했다. 실루엣은 종이를 오려서 그림자 초상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던 18세기 중반의 프랑스 재무장관인 에티엔 드 실루에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흰 종이 위에 검은 종이를 옆모습처럼 잘라 붙여 만든 초상화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조지프 라이트  「코린토스의 소녀」  1782~1785년경

 

 

그렇다고, 실루엣을 만든 실루에트가 측면 초상화를 최초로 그린 사람은 아니다. 그 기원을 찾아보려면 미술의 역사를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벽에 비친 인물의 그림자 윤곽을 그린 코린토스 도공의 딸에서 측면 초상화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도공의 딸은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에 떠나보내야 하는 생이별의 슬픔을 견디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훈련소로 떠나보낸 남자친구의 사진을 지갑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곰신의 처지가 되었으나 그땐 사진이 있을 리가 없다. 멀리 떠나 있어도 애인의 얼굴이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그래서 도공의 딸은 애인의 얼굴에 불빛을 비추어 나타난 그림자의 외곽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이렇듯 서양의 초상화는 정면을 그리던 동양의 초상화와 달리 측면을 중시했다. 측면의 윤곽을 뜻하는 프로파일(profile)은 오늘날 특정 인물에 대한 단평이라는 뜻으로 더 알려졌다. 정면이 아닌 측면이야말로 한 사람의 특징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인식했다. 

 

모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멋있지 않은 모델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 모델을 정확하게 그리기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앞에서 언급한 동화 속 궁정화가는 화가 중에 극한직업일지도 모른다. 왕은 화가가 만나게 될 모델의 ‘끝판왕’이다. 권력자의 얼굴을 늘 바라보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은 화가로서의 재능과 배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Mission impossible)이다. 왕이 초상화가 마음에 든다면 더 많은 명예와 부를 얻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화가의 입지는 곤란해진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 부부」  1472년경

 

 

과연 이 그림의 모델은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프란체스카는 근엄하게 보여야 할 모델을 솔직하게 그리는 데 치중한 것 같다. 관객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의 매부리코와 검버섯에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약간 풀린 듯한 공작의 눈은 세상의 거센 풍파를 딛고 정상에 오른 권력자의 고된 여정을 말해준다. 화가가 공작을 무기력하게 그렸어도 한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자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공작 부부의 배경으로 공작이 소유한 땅을 그려 넣어 권력자의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프란체스카가 공작 부부를 서로 바라보는 설정으로 측면을 그린 것은 공작을 멋있게 그리고 싶은 화가의 배려이다. 공작은 마상시합 중에 오른쪽 눈을 다쳐 실명된 상태였다. 프란체스카는 공작의 오른쪽 눈이 드러나지 않도록 왼쪽 측면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공작의 부인은 자연스럽게 오른쪽 측면으로 그리게 됨으로써 부부는 죽어서도 그림에서나마 영원히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부부 초상화에 관련된 또 하나 슬픈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서로 마주 보는 공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어렴풋이 재현된다. 부부 초상화가 제작되기 전에 공작부인은 아들을 출산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화가는 부부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부부가 서로를 마주보도록 그렸다.

 

프란체스카가 못생긴 공작을 있는 그대로 그렸던 것은 오른쪽 눈을 잃고, 거의 다 늙어간 정도로 남성미가 완전히 상실된 공작의 곁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난 공작부인과의 고결한 사랑을 충실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찬바람같이 훨훨 들어오는 세월은 뜨거웠던 사랑 감정을 식게 한다. 이 공작 부부의 초상화는 단순히 권력과 부를 과시하려는 일종의 명예인증서라기보다는 고결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인증하는 멋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눈, 코, 입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정면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옆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옆모습은 우리의 눈을 이쪽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도록 은근히 유혹한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벨 것처럼 날카로운 콧대와 조각 같은 옆모습이 사랑받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다. 가짜 콧대와 가짜 눈으로 겉모습이 화려한 얼굴을 자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안도현, ‘옆모습’ 중에서)

 

 

어쩌면 삶의 동반자와 백년해로하는 과정에 정작 옆모습을 소홀히 여길 수도 있다.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도 늘 바라보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점도 예쁘게 보인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에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옆모습에서 진솔한 매력을 발견하는 것은 정겹다. 옆모습, 옆모습, 자꾸 바라보면 시큰거린 옆구리에 사랑하는 사람의 옆구리가 있음을 가까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한, 꾸밈없고 진실한 그 옆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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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15-01-0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정겨운 얼굴이 좋아. 아주 미남이거나 아주 미녀보다는. 그나저나 우리 사이러스 얼른 연애를 해야 할 터인데_

cyrus 2015-01-03 20:30   좋아요 0 | URL
연애세포가 완전히 죽기 않기 위해 오늘도 글로 사랑을 논합니다. ㅋㅋㅋㅋ

댄스는 맨홀 2015-02-04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주는게 사랑인 것 같아요.
 

 

 

“계획대로 전 연대가 전멸했다! 훌륭하군! 이제 아예 사신이 명령을 내리고 있어. 나도 거기 있었지. 시체가 즐비한 드넓은 전장을 보았다고! 짓이겨진 인간의 살점이 눈 속에 얼어붙어 있었어.” (카렐 차페크  『곤충 극장』 제3막에서, 76쪽)

 

 

카렐 차페크의 희곡 『곤충 극장』(열린책들, 2012년)은 한 편의 잔혹한 우화에 가깝다. 작품에 묘사된 곤충의 세계는 타락을 일삼던 소돔과 고모라가 연상된다. 인간인 여행자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곤충들의 생태를 바라본다. 여행자가 만난 곤충들은 한심하고, 사악하다. 여행자 앞에서 교태를 부리면서 유혹하려 드는 나비, 둥그런 똥 덩어리를 황금같이 여겨 누군가가 훔쳐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쇠똥구리, 자식의 생존을 위해 다른 곤충들의 목숨을 빼앗는 맵시벌 그리고 과학의 진보를 믿고 영토 확장을 위한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개미들. 이들은 탐욕 덩어리 인간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

 

 

 

 

 

 

 

 

 

 

 

 

 

 

 

 

 

제3막은 격렬하면서도 끔찍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 상황을 개미 연대의 싸움으로 재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행자는 개미들이 싸우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훌륭하다!’라고 비꼰다. 그리고 자신 또한 시체가 널브러진 전장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눈 속에 얼어붙은 짓이겨진 인간의 살점. 짤막한 여행자의 독백 대사는 살아남은 자가 없었던 당시 참호전의 풍경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한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서부 전선은 가장 많은 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치열했던 장기전이었다. 이적을 공격하기보다는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나긴 참호는 스위스에서 영국해협까지 만들어졌고, 그 길이만 1000km에 달한 것도 있었다. 지루한 참호전이 이어질수록 연합국과 독일 간의 적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영국의 애국주의자들은 독일산 개 닥스훈트를 죽여 적국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고, 독일에서는 ‘영국 증오가’가 유행했다. 1914년 크리스마스 하루 동안 양측 군대가 자발적으로 전쟁을 멈추었던 기적의 날을 제외하면 서부 전선은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지옥과 같았다.

 

 

 

 

 

 

 

 

 

 

 

 

 

 

 

‘시체가 즐비한 드넓은 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은 『곤충 극장』에 나오는 여행자(또는 카렐 차페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화가 오토 딕스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자원입대하여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비참함에 치를 떤다. 그는 끔찍한 참상의 증인이었고, 역겨운 장면 그대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오토 딕스  「전쟁」  1929~1932년

 

 

 

1929~1932년에 그린 「전쟁」은 참혹한 죽음이 생생한 묘사한 거대한 그림이다. 턱밑이 날아가거나 총탄 구멍으로 너덜너덜해진 병사들의 시체가 참호 속에 널브러져 있다. 그야말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짓이겨진 인간의 살점이 눈 속에 얼어붙어 있었어”라는 절규에 가까운 대사를 내뱉는 여행자가 목격했던 그 장면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이 공개된 당시 사람들과 비평가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딕스가 묘사한 그림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의 그림은 전쟁을 옹호하는 애국 보수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림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딕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저랬다. 나는 보았다.” 딕스도 『곤충 극장』의 여행자처럼 전장 한가운데 거기 있었다.

 

 

 

 

 

 

 

 

 

 

 

 

 

“이 그림은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철저하게 깨뜨린다. 인류사상 최초의 총력전인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에 ‘아름다운 그림’ 따위는 더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일까.”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 중에서)

 

 

「전쟁」을 본 서경식 선생의 감상처럼 무조건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세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아름다운 세상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화롭지 않은 지옥 같은 세상도 펼쳐져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이며 우리의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증오가 만들어 낸 소돔과 고모라이기도 하다. 딕스의 「전쟁」을 본 어느 비평가는 “구역질이 난다”고 비난했다. 딕스는 이 그림을 통해 휴머니즘이라는 고귀한 영역마저도 짓밟는 전쟁, 아니 전장에 나서는 인간의 광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거대한 그림은 살육을 일삼는 괴물 같이 변해버린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비춘 불편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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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예술품도 세월의 무계를 견뎌내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수천 년 전에 나온 예술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복원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복원은 낡고 상처 입은 예술품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바티칸이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벽화와 천장화의 복원을 위해 관람객 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다른 유명 성당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천장과 벽 전체를 덮은 그림으로 인해 매년 6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열기가 그림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그림의 복원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부터 이미 복원 작업을 시작했으며 제작 당시의 화려한 색채와 원형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렇지만 복원 작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복원 작업을 시작한 지 19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벽화와 천장화가 대중에 공개되었을 때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냉담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복원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약품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명암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원 약품이 묻은 벽화 표면이 관람객들의 열기와 습기에 더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바티칸과 복원 전문가들은 원작의 보존 상태가 최대한 유지될수록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실시했다. 어제 개선 작업이 끝낸 벽화가 공개되었는데 새로운 온도조절기와 LED 조명장치까지 설치하여 한층 선명해진 그림의 색감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천지 창조」 (1508~1512년) 

 

 

예전에 미술 교과서나 그림책에 나오는 「천지 창조」(또는 ‘아담의 창조’) 사진을 보면 항상 갈라진 균열 자국이 신경 쓰였다.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선명한 균열 자국은 하나님이 팔을 펼쳐 손가락 끝을 대며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이 극적인 장면의 감동마저도 깨뜨린다. 성당이 지어진 지 오래된 탓에 곳곳에 금이 가 있다. 그림은 오래 보존될 수 있지만, 그림의 캔버스나 다름없는 집(성당)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성당 벽화와 천장화는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그려졌다. 회반죽을 벽에 바르고 미처 마르지 않아 축축하고 ‘신선(Fresco)'할 때, 물에 녹인 안료로 그림을 그린다. 유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프레스코화는 수천 년 동안 화가들에게 애용되었다. 보존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티칸이 화약 약품에 의지하는 복원 작업보다는 거대한 벽화와 천장화의 캔버스 역할을 하고 있는 성당 건물에 좀 더 신경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벽이나 천장에 갈라진 작은 균열도 무시할 수 없다. 건물이 견고하지 못하면 벽화와 천장화가 훼손될 수 있고,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한편으로는 벽화와 천장화에 생긴 갈라진 균열 자국이 50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위대한 걸작에 어울릴 수도 있다. 사실 복원 작업 이후로 예전에 비해 눈에 보이던 균열 자국이 많이 사라졌음을 볼 수 있는데 옛 느낌도 같이 사라졌다.

 

 

 

 

 

사진출처: 전자신문

 

 

최근에 개장한 지 얼마 안 된 제2롯데월드 건물 바닥에 생긴 균열이 SNS에 공개됨으로써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부터 지반 침하와 누수 논란이 있었기에 또다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자 롯데건설 측은 금이 간 것은 서울의 옛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금이 간 것처럼 연출한 디자인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절대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러 균열을 만들어서 멋지게 보이려는 롯데건설의 디자인 방식. 나는 디자인에 문외한이지만, 누가 봐도 절대로 조각조각 갈라지고 깨진 틈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웃기고 놀라운 사실은 서울시의 반응이다. 롯데건설 측의 주장에 수긍한 것이다. 회사 측의 해명대로 바닥에 투명 코팅을 했다면 균열에 명함 1장이 꽂힐 수가 없다.

 

롯데건설과 서울시는 제2롯데월드를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건물에 생긴 균열이 안전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철저한 현장 정밀 조사도 없이 일단 대중의 논란을 잠재우려는 태도는 안전 문제에 민감한 시류를 거스르는 것과 같다. 바닥 균열도 하나의 연출 방식으로 생각하는 롯데건설의 ‘디자인 창조’가 건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치명적 원인이 될 수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겉모습을 오랫동안 유지되게 하는 내부의 힘이 더 중요하다. 「천지 창조」도 마찬가지다. 「천지 창조」가 더 오랫동안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려면 대성당 건물이 튼튼해야 한다. 작은 균열로 공든 ‘창조’가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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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성황리에 끝난 국립중앙박물관의 오르세미술관전을 관람하고 있을 때였다. 전시회  기간 막바지라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입장객이 많았다. 일렬로 줄 서서 그림을 봐야 할 정도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특히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과 조각상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통로 중앙에 위치한 「무용복을 입은 발레리나를 위한 누드 습작」이 발레리나 그림보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린 발레리나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다음 동작을 취하려고 한다. 이제 곧 발레가 시작되기 전에 흐르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드가의 조각 작품을 보다가 내 옆에 서 있는 어느 젊은 커플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드가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많이 그렸대. 그런데 지난주에 서프라이즈에서 본건데 드가가 여성을 무척 싫어했어.신기하지?” 그 여자친구가 언급한 ‘서프라이즈’는 매주 일요일에 하는 TV 방송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지난 달 17일에 방영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줄여서 ‘서프라이즈’)에 드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드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가 즐겨 그렸던 발레리나지만, 작품과 상반되게 여성 혐오자로도 유명하다. 드가는 “여자의 수다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울어대는 양 떼들과 함께 있는게 낫다”며 공개적 자리에서 여성 비하를 서슴없이 나타냈다. 결국 드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무엇 때문에 그가 평생 여성을 혐오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부부」  1868~1869년경

 

 

지난 달 17일에 방영된 ‘서프라이즈’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드가는 여성을 흉측한 모습으로 그렸다. 한 번은 드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부인 쉬잔이 함께 있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평소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쉬잔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마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친구의 완성된 그림을 본 마네는 부인의 얼굴이 흉측하게 그려진 것에 화를 냈다. 심지어 아내의 얼굴이 있는 그림의 오른쪽 부분을 캔버스로 세로로 잘라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그림이 훼손된 것을 자존심 강한 드가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이 사건 이후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한동안 단절되었다.

 

 

 

 

그의 이런 여성혐오증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외도와, 그로 인한 아버지의 몰락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림에 여성을 혐오스럽게 표현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했던 것이다.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주로 그려 명성을 얻은 드가의 그림들은 한눈에 보기에는 매우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레리나들의 얼굴이 모두 추악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나는 ‘서프라이즈’에 역사적 인물들의 숨겨진 일화를 소개하는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려고 사실에 맞지 않은 내용을 방송하기도 한다. 최근 영화 ‘아이언맨’에 출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편이 완전히 틀린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내보내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사실 드가의 여성혐오증을 소개한 방송도 문제가 있다. 사실적인 정보와 거리가 먼 내용을 그대로 전파에 내보냈으니까. 드가가 여성혐오증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방송은 드가의 여성혐오증을 부각시키려고 그의 그림에 억지로 연관성을 만들어 설명하려고 했으며 심지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 지금부터 ‘서프라이즈’ 드가 편 방송 장면을 하나하나 반박하려고 한다.

 

 

 

 반박 1. 드가의 여성혐오증은 어머니의 외도 탓이다?

 

 

 

 

 

 

 

 

 

 

 

 

 

 

 

 

드가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한 눈에 소개한 책으로 두 권이 있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 65번 앙리 루아레트의 『드가: 무희의 화가』(시공사, 1998년)와 마로니에북스 Taschen 베이직 아트 시리즈 17번 베른트 그로베의 『에드가 드가』(마로니에북스, 2005년)다.

 

드가의 어머니는 184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열세 살의 드가에게 이른 어머니의 죽음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 후로 드가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그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드가의 아버지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드가의 아버지는 재혼을 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홀로 지내는 바람에 은행이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은행은 파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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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권의 책은 드가 어머니의 외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이택광의 『인상파, 파리를 그린다』에서는 드가의 불행한 가족사를 상세하게 언급한다. 드가의 어머니는 남편의 남동생과 외도를 했는데 아버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알면서도 묵인했다. 어머니의 사망이 아버지가 폐인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다. 서프라이즈 드가 편에 소개된 내용과 비슷하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내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드가가 여성혐오증을 가지게 만든 원인을 어머니의 외도 탓으로 확정짓는 것보다는 또 다른 추측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즉, 어머니 때문에 드가가 여성혐오자가 되었다는 내용은 무조건 100% 사실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반박 2.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에 여성혐오증을 표출했다?

 

아무리 드가가 주위 동료 화가들에서 잘 알려진 여성혐오자라고 하지만, 왜곡된 여성의 얼굴 그림을 드가가 의도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드가가 발레리나의 얼굴을 이상하게 그린 이유가 인공조명에 의한 빛의 효과를 노려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드가는 인공조명의 빛과 어둠이 만나서 생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레리나의 무대에서 발견했고,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조명의 효과는 캐리커처처럼 왜곡된 여성의 얼굴에 더욱 역동성을 띄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발레리나들의 연기가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에 여성혐오증을 표출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반박 3. 드가의 『개의 노래』는 여성을 개의 앞다리와 입모양을 묘사해 비하했다?

 

 

 

 

 

드가의 『개의 노래』는 카페 앙바사되르에서 노래를 부르는 엠마 발라동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드가가 엠마 발라동을 개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만듦으로써 여성 비하의 증오심을 표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여성의 증오심을 담은 드가의 표현이라는 근거가 없다. 그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엠마 발라동은 자신이 부르는 노랫말에 나오는 개를 흉내 내고 있다. 드가는 발라동의 자세를 혐오스럽게 표현했다기보다는 유행가의 통속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리고 관람객들이 가수의 몸짓에 몰입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발라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 드가 또한 발라동의 노래에 열광했다. 

 

 

 

 

 

에드가 드가  「개의 노래」  1875~1877년경

 

“발라동의 커다란 입이 열리자 관능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 인간의 목소리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베른트 그로베, 『에드가 드가』중에서, 58쪽)

 

드가의 『개의 노래』는 발라동의 멋진 노래 실력을 예찬하는 화가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을 여성 혐오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서프라이즈’의 방송 내용은 사실을 왜곡한 거짓이다.

 

 

 

 

 

에드가 드가  「욕조」  1886년

 


이번 오르세미술관전은 드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많이 알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드가 편은 방송의 재미를 위한 부각시키려다가 그만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평소에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여성을 증오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드가의 삶이 평범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연관 지어 보게 된다면 드가의 독창적인 표현력을 간과할 수 있다. 드가의 여성혐오는 화가의 사소한 정보에 불과하다. 드가는 생각보다 여성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발레리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인에서부터 벌거벗은 채 목욕하는 여인까지 연작 형태로 제작했다. 개인적으로 여성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목욕하는 여인의 누드화를 손꼽히고 싶다. 평범한 여체를 형성하는 곡선 위에 더해진 빛의 효과로 인해 드가의 누드화는 관능적이다. 여성혐오자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성 혐오자라는 이유로 드가의 멋진 그림들이 말도 안 되는 선입견과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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