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가 : 무희의 화가》 앙리 루아레트, 시공사, 1998

* 《에드가 드가》 베른트 그로베, 마로니에북스, 2005

 

 

흔히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인상파 화가로 분류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주의에 가깝다. 춤추는 여인들, 리허설 등에서 발레리나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과 묘사는 마치 현장을 보는 듯한 감동을 전해 준다. 그렇지만 드가의 그림을 비판하는 연구가들은 그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이 그림 속에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제임스 H. 루빈(James H. Rubin)은 드가의 그림을 비판적으로 보는 미술사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로니에북스, 2017)에 드가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하면서 그림에서 드러난 드가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언급하고 있다.

 

 

 

 

 

 

드가의 『개의 노래』는 드가가 즐겨 찾았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엠마 발라동(Emma Valado)을 묘사한 작품이다. 드가는 그녀의 노래에 열광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엠마가 취하고 있는 동작은 양쪽 앞다리를 내민 개를 흉내 낸 자세이다. 드가는 개를 흉내 내고 있는 엠마의 자세를 여러 번 스케치한 습작을 남겼다. 루빈은 이 습작을 근거로 드가가 인간의 몸짓과 표정을 동물의 속성과 흡사하게 그리려는 작업에 몰두했다고 주장한다.

 

 

 

 

 

 

 

 

 

 

 

 

 

 

* 《추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진화론에서는 유사성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을 비교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다윈을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은 진화의 개념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기능적으로 점차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봤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natural selection)은 사회에 적용되어 사회진화론을 낳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 사회에서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의 불평등이나 계급 차이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심적 특성, 운명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구별 지었다.

 

 

 

 

 

 

불행하게도 사회진화론과 골상학은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과격한 반유대주의로 악명 높은 드가는 그림 속 유대인을 매부리코를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루빈은 드가를 ‘골상학자’라고 대놓고 말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유대인의 못생긴 매부리코가 그들의 사악함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세미콜론, 2008

 

 

 

드가의 여성 혐오를 생각한다면, 그는 엠마를 ‘개보다 못한 여자’로 그렸을 수 있다. 나는 『개의 노래』가 드가의 여성 혐오가 반영된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에 밝혔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루빈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드가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레리나와 매춘부를 사회적으로 낮은 하층 계급으로 이해했다.

 

 

 

 

 

 

19세기 파리의 발레리나와 매춘부 들은 대부분은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다. 발레리나들은 생계를 위해서 화가의 모델이 되거나 부유층 남자들의 정부(情婦)가 되는 것은 물론, 매춘부로 몸을 팔아야 했다. 발레리나가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드가의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멀찌감치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신사가 바로 발레리나의 후원자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화가의 수익을 높여주는 인기 소재였고,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들을 장난스럽게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발레리나는 무용이라는 예술 관련 분야의 일에 종사하면서도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드가는 판화의 한 종류인 모노타이프(monotype) 기법으로 매춘부들의 모습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그는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신사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만들었다. 드가가 세상을 떠난 후, 드가 유족들은 모노타이프 일부를 파기했다. 이 작품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면, 우린 드가가 매춘부를 그렸다는 사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드가의 매춘부 그림은 ‘엿보기’에 가깝다. 생전의 드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었다. 드가가 여성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를 무성애자(無性愛者)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당연히 매춘부 그림이 화가의 성적 취향과 관음증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드가의 엿 보는 행위를 상상한 작품들을 남겼다. 피카소의 그림에 묘사된 드가는 창문으로 벌거벗은 매춘부들을 몰래 엿보거나 그녀들을 관찰하는 신사로 등장한다. 드가는 그림 밖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그를 존경하는(?) 피카소는 대선배를 그림 안에서 여성을 엿보는 관찰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피카소도 드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1]

 

 

 

 

 

 

 

 

 

 

 

 

 

 

 

 

*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파스칼 보나푸, 이봄, 2013

 

 

 

남성 화가들은 시각적 쾌락을 위해 여성을 그렸다. 다시 말해 그림 속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수동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에 불과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신비화는 수많은 다양한 여성들을 ‘매춘부’와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의 두 부류로 분류했다.

 

 

 

 

 

 

 

 

드가는 말년에 신체 일부를 씻거나 목욕하는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여성의 목욕하는 행위는 여성의 정결함을 유지해주는 행위인 반면, 에로틱한 엿보기의 대상이 된다. 드가가 ‘관찰한’ 목욕하는 여성은 에로틱한 ‘매춘부’와 정결한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드가는 ‘관찰자’가 되어 남성이 보고 싶어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리듬에 온몸을 맡긴 발레리나를 지켜보는 후원자, 몸으로 유혹하는 매춘부를 바라보는 매음굴 손님은 드가의 분신이다. 드가의 그림에 그가 생전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고개 숙인 욕망’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1]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림은 언제나 욕망과 맞물려 있었다.” (파스칼 보나푸,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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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4 10:25   좋아요 0 | URL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해요. 이런 문제를 논하면 끝이 없습니다. ^^;;

AgalmA 2017-04-03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관음증적 시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난과 지탄 받을 걸 알면서도 인간의 그런 욕망을 당당히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저는 옹호도 비난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최강으로 적응하는 ˝물곰˝의 존재가 참 특이하더군요.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온도 속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죠. 외계에서 유입된 생명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던데, 그렇다면 진화론도 상당히 달라질 지점이 생기죠.

cyrus 2017-04-04 10:2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비난은 하면 안 됩니다.

물곰 같은 동물이 신기해요. 정말로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존재입니다. ^^

레삭매냐 2017-04-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가의 그림을 단순하게 dancer on the stage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에투알이라는 제목이 있었군요.

고호의 해바라기랑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그전에 무서운 그림을 읽었는데, 사실은 이 멋진
그림 당대 스폰서십에 대한 비화가 숨겨 있는진
미처 몰랐네요. 씁쓸합니다.

cyrus 2017-04-04 12:19   좋아요 1 | URL
에투알이 가장 인기 있는 발레리나를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해서 ‘춤추는 무희’로 알려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