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나리자』(Monna Lisa). 이 그림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 Gioconda)의 세 번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벌거벗은 두 여인이 욕조에 들어가서 묘한 행동을 한다.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유두를 쥐고 있다. 왼쪽 여인은 마치 뜨거운 것이라도 잡는 양 왼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반지를 잡고 있다. 가슴의 유두를 잡은 왼쪽 여인의 자세는 이름 모를 남성 화가가 의도한 연출이다. 저기요, 아재!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가슴은 그만 보고, 욕조가 있는 방의 구조를 살펴보자.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너무 작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떠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난로 위에도 그림 액자가 있는데, 절반이 가려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델의 다리만 보일 뿐이다.
* 김복래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북코리아, 2006)
* 나가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세미콜론, 2009)
* 엘리아 보슈롱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시그마북스, 2014)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아트북스, 2016)
작자 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보다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림 제목이 알려져서 관람객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반지를 쥔 오른쪽 여인이 프랑스의 왕 앙리 4세(Henri IV)의 애첩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다. 왼쪽 여인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동생 빌라르 공작부인(duchesse de villars)이다. 공작부인은 왜 언니의 유두를 쥐고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저 두 사람을 '수수께끼 자매'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당시에 가슴의 유두 상태로 여성의 임신 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동생의 행위는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암시하며 바느질하는 여인은 장차 태어날 아기(왕의 자식)가 입게 될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앙리 4세의 전처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로 알려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였다. 마르그리트는 왕의 아이를 낳지 못했고, 왕은 매력적이고 자식까지 낳아줄 수 있는 가브리엘과 어울려 다녔다. 왕은 한때 58명의 애첩을 거느린 호색가였다고 한다.
* 다카시 하마모토 《반지의 문화사》 (에디터, 2002)
* 원종옥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이다미디어, 2009)
가브리엘의 손에 쥔 반지는 앙리 4세와의 약혼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반지에 박힌 보석은 사파이어(sapphire)다. 이때 당시 앙리 4세가 교황으로부터 왕비와의 결혼무효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은 ‘왕과 약혼한 애첩’이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이 준 귀중한 증표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반지는 단순한 약혼반지가 아니다. 왕권의 존엄성과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은 왕의 조언자가 되었고,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따라서 그림 속 반지는 왕과의 약혼을 알리는 증표임 동시에 ‘여왕을 넘어선 애첩’이었던 가브리엘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 진중권 《성의 미학》 (세종서적, 2005)
진중권은 반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는데,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근친상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왕과 가브리엘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599년에 왕은 가브리엘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르그리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임신 6개월이었다. 가브리엘이 사산아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그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 박경성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라는 책은 가브리엘 자매를 그린 그림에 ‘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는 여인을 봤을 때 에로틱의 대명사 ‘비너스(Venus)’를 떠올렸던 걸까. 그렇지만 16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이 1519년에 세상을 떠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소개된 내용은 잘못된 정보다.
* 에이민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청림출판, 2017)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벌거벗은 자매를 쳐다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그림 속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을 잘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에 빠지게 된다. 모델의 하반신만 보이는 그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이 남자라면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Ares)’), 아름다운 소년으로 알려진 아도니스(Adonis)일 수 있다. 아도니스는 사냥하는 도중 멧돼지의 엄니에 찔려 죽고 마는데, 땅바닥에 누워 죽어가는 아도니스의 모습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비너스가 홀딱 반한 남자들이다. 모델이 여자라면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