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은 여성만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형식의 문헌이다. 《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가 썼다. 보카치오의 여성관은 아직 중세의 때를 벗지 못했지만, 이전보다 근대적인 관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논쟁’을 주도한 크리스틴 드 피장은 이 책을 원본으로 삼아 《여성들의 도시》를 집필했다.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효녀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 책을 참고해서 만들어진 《여성들의 도시》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여성들의 도시》 211~212쪽 참조)

 

 

귀족 출신의 젊은 여성이 있었다. 이 젊은 여성의 어머니는 부모로부터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았지만, 팔자가 사나웠다. 하여튼 알려지지 않은 어떤 죄목으로 그녀는 집정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행정관은 그녀를 세 집정관 중 한 사람에게 이미 내려진 판결대로 형을 집행하도록 넘겼다. 집정관은 그럴 목적으로 간수에게 그녀를 넘겼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밤에 처형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간수는 인정에 이끌려서인지 아니면 귀족 여성에 대한 동정심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그녀를 즉시 죽이기보다는 굶어서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딸이 면회 왔을 때 간수는 혹시 음식을 들여가지 않나 샅샅이 몸을 조사한 뒤 감방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에 출산했기 때문에 굶주린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젖이 충분했다. 이 일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간수는 형을 언도받은 여성이 그처럼 오랫동안 굶어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몰래 이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는 딸이 가슴을 드러내고 자기 어머니에게 젖꼭지를 물리는 모습을 보았다. 간수는 딸의 효심과 딸이 어머니에게 젖을 먹이는 희한한 광경에 놀라서는 집정관에게 이 사실을 곧바로 보고했다. 집정관은 행정관에게 보고했고, 그는 시의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 결과 딸의 효심을 높이 사 어머니의 처벌을 무효로 하자는 데 전부 동의하게 되었다.

 

(조반니 보카치오,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 310~311쪽)

 

 

 

이 이야기를 읽으며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손발이 묶인 늙은 죄수가 젊은 여성의 가슴을 빨고 있고, 철창 바깥에선 간수들이 희한한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 처음 보면 춘화로 오해를 하게 되는 그림이다.

 

 

 

 

 

 

 

 

 

 

남자가 시몬이고, 여자는 그의 딸 페로이다. 시몬은 처형되는 날까지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딸이 몰래 감방에 들어와 아버지에게 젖을 먹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해 시몬을 석방했다고 한다. 시몬과 페로 이야기는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전해져왔다. 자식이 부모를 젖으로 공양한 이 사례를 그린 그림은 이후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 ‘로마인의 자비’라고 불렸다. 여러 화가가 이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시몬과 페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루벤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루벤스가 묘사한 부녀의 행각을 퇴폐적인 성행위로 해석했다. 루벤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루벤스가 이 그림에 성적 욕망을 투영했다고 봤다. 실제로 그림 속 노인과 여인의 모습은 루벤스와 루벤스의 아내와 비슷했다.

 

 

 

 

 

 

 

 

53세의 루벤스는 첫 부인과 사별한 뒤 4년을 홀로 지내다 자신보다 16세의 아내 엘렌 푸르망과 재혼했다. 루벤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그는 벨기에 외교관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엘리트였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의 새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를 둘 만큼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루벤스의 가정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시몬과 페로」를 불편하게 여겼다. 루벤스는 「시몬과 페로」 그림에 딸의 헌신적인 사랑, 거기에 아내를 향한 숭고한 사랑의 감정까지 더해져 여성의 아름다움을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천상의 것으로 끌어올리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벤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몬과 페로」는 ‘음란한 그림’으로 오해받았다. 당대에 문제작 혹은 저속한 예술로 평가를 받았던 그림이 현대에 와서 극찬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시몬과 페로」처럼 한 작품에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루벤스의 그림이 오해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의 영향이다. 여성의 가슴이 성욕을 불러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드화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찬반이 있었다. 인간의 고상하고 세련된 취미 속에 에로티시즘의 욕망은 숨어 있고, 그것이 곧 대중의 취향임을 옹호하는 측과 엉터리 미술이니 하는 혹평이 바로 그것이다. 남성 화가들은 비현실적이고 비인격화한 알몸에 신화나 성경의 옷을 걸쳐 여체를 탐하는 남성의 욕망을 미화했다. 그래서 누드는 교화의 의미가 담긴 종교화에서조차 교묘히 구사됐다. 남성 화가들은 그림 자체에 성적 뉘앙스를 풍겨야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누드를 보면 필요 이상 풍만하게 강조된 몸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의 몸은 전적으로 남성 화가의 눈을 통해 걸러진 채 강조와 생략을 통해 재탄생된다. 일부는 젖가슴이나 엉덩이를 극단으로 강조해 관능미를 부각하기도 한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참다운 여성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루벤스가 묘사한 페로 역시 남성의 시선에 잡힌 여성상에 가깝다.

 

 

 

 

 

 

 

 

 

 

 

 

 

 

 

 

 

 

독일의 문화사 연구가인 한스 페터 뒤르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의 가슴 또한 남성들의 에로틱한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벤스가 보카치오나 크리스틴 드 피장이 소개한 효녀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어도 남성 관객들의 눈에는 야릇한 이미지만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루벤스의 그림에서 숭고한 효심을 발견할 것인지 아니면 성적 뉘앙스를 찾을 것인지 결국 보는 이들의 몫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술 혹은 외설에 대한 논쟁에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기보다 정답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 논란은 끝이 없을 것이고, 정답도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림을 보기 전에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남성 화가들의 단골 소재는 단연 여성, 그중에서도 벌거벗은 여성이다. 우리는 남성의 그림에 의존해 여성을 읽고 이해하고 있다. 결국, 완벽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허상이며 환상이다.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wikiart)’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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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1-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저께 서양미술사 바로크편 동영상 강의를 들었는데 마침 루벤스를 소개해줘서 반가움에 댓글 남겨요ㅎㅎ
로마인의 자비 .. 가슴 아픈 그림입니다ㅠ.ㅠ

cyrus 2016-11-10 21:24   좋아요 2 | URL
여자가 남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정절녀‘, ‘효녀‘가 돼서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교 사회의 조선 시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yureka01 2016-11-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싫어 하는 스타일의 남자...마누라 하나 건사 못시키고 술처먹고 쥐 패는 찌질남....경멸하는데..심심찮게 봤으니..아흐...

cyrus 2016-11-10 21:28   좋아요 0 | URL
특이하게 그런 남자를 옹호해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에 출연하는 문제 많은 남자들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더군요. 남들은 그 사람의 문제점을 압니다. 그가 함께 사는 가족들도요. 그런데 의리 때문인지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