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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근법의 탄생

 

 

 

 

 

 

 

 

 

 

 

 

 

 

 

 

 

 

 

 

 

 

 

 

 

 

 

 

 

 

 

기원전 2만 년경,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탄생한 미술의 최대 꿈은 박진감 넘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의 평면에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랜 동안 거의 불가능한 요원한 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변화하게 될 것들을 미리 자신 앞으로 끌어당겨서 자기의 작품 속에서 그 역동적 에너지를 원근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당시 원근법은 단순히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원근법이라는 구성방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마사초 「삼위일체」  1426년경

 

 

원근법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3차원 공간의 물체나 공간을 2차원의 평면 위에 거리감과 깊이감을 주어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원근법은 주로 풍경화 등 넓은 공간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1417년 무렵 건축가 브루넬레스키(1377~1446)가 최초의 실험적 시도로써 투시 원근법과 소실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한 이후, 회화에서는 마사초(1401~1428)의 <삼위일체>에서 최초로 실현되었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광학과 기하학적 지식에 근거한 원근법을 이용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대상의 사실적인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다.

 

마사초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투시 원근법을 이 작품에 응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근법을 사용해 후면의 벽면과 천장이 깊어 보이는 입체감을 주는 공간구성 방식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좁은 공간에 삼위일체의 형상을 묘사하는 성부를 포함해 6명의 형상을 그려 넣어도, 전혀 좁아 보이지 않게 작품을 구성했다.

 

 

 

 서양의 대표적 원근법, 투시 원근법

 

원근법은 투시 원근법과 대기 원근법으로 나뉘는데, 투시 원근법은 일정한 비율이나 법칙이 없이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을 위에 또는 작게 그리거나 사선을 사용하여 배경을 표현하는 초보적인 원근 표현방식을 탈피하여 기하학적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시킨 일종의 공식이다. 투시 원근법은 삼차원의 대상물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대상들이 이루는 공간 내에서의 원근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을 도입했다. 소실점의 개수에 따라서 1점 투시, 2점 투시, 3점 투시로 나눌 수 있다.

 

 

 

 

 

마인데르트 호마바  「미들하르니스의 길」 1689년

 

 

1점 투시는 소실점이 한 개다. 물체의 한 면을 정면에서 볼 때 생기는 투시로, ‘평행선 원근법’이라고도 한다. 주로 건축물 실내, 길게 나 있는 길, 가로수, 가로등 등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고, 소실점이 가운데 집중되어 멀고 깊은 공간감을 느낀다. 2점 투시는 소실점이 2개다. 물체의 한 면 대신 모서리를 중심으로 볼 때 생기는 투시로, ‘사선 원근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기하학적인 입체가 시선에 빗겨 일정한 각도로 틀어져 있거나, 모서리가 화면 표면에 완전히 돌출된 듯이 보인다. 3점 투시는 소실점이 3개이고,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생기는 투시로, ‘조감도법’이라고도 한다. 물체를 바로 위에서 바라보면 좌, 우, 위 3개의 소실점이 생긴다.

 

 

 

 

 

 동양의 원근법, 삼원법

 

 

 

 

 

 

 

 

 

 

 

 

 

 

 

 

중국의 북송(北宋) 때의 화가 곽희는 북송 산수화 양식을 완성하여 화면에 포치하기 위한 시점의 다변화를 최초로 시도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수화를 표현할 때 삼원법이라는 원근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원법은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 3가지가 있다. 독립된 각 시점에 일치한 시점만의 고집에서 이러한 시점을 한 화면에 복합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산점투시(散點透視)를 의미한다.

 

 

 

 

 

정선  「청풍계(淸風溪)」 제작연도 미상

 

 

산점 투시는 이동 시점에서 생기는 여러 시점으로 바라본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정된 시점에서 대상을 보지 않고, 위치를 여러 번 바꾸어 가면서 대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술가가 한 공간 안에,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출현할 수 없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는 사물들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게 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산점 투시는 구도의 배치에도 자유롭다. 고정된 소실점에 따라 물체를 바라보는 서양의 투시 원근법과 다르게 산점 투시는 소실점이 다양하며 고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구도의 필요에 따라 좌우와 상하의 거리 조정 등의 표현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화가는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화면의 예술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화가 자신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낀 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서 표현한다.

 

 

 

 

정선 「금강전도(金剛全圖)」 1734년 (왼쪽, 고원법)

김홍도 「명경대(明鏡臺)」 제작연도 미상 (가운데, 평원법)

정선 「구룡폭포」 제작연도 미상 (오른쪽, 심원법)

 

 

‘고원법’은 높은 산을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상태에서 생기는 높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원법을 이용한 그림은 자연의 웅대함과 위압감을 느낄 수 있다.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정선의 <금강전도>는 서양의 원근법과는 전혀 다른 다시점의 공간구성법을 통해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을 하나의 화폭에 담고자 한다. 화가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되 풍경에 대한 어떤 이상향적 관념을 품은 채 금강산의 숭고미와 신비감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평원법’은 산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느낌으로 마치 앞산에서 뒷산을 건너다보는 평평한 공간의 넓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평원법을 이용한 그림은 자연의 광활함이 느껴진다. ‘심원법’은 높은 산의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표현하는 방법으로, 심원법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은 자연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채색을 할 때 고원인 경우에는 청명한 느낌이 나게 하며, 평원은 밝고 어두움이 고루 나타나게 하여 심원은 무겁고 어둡게 표현한다.

 

 

 

 객관적 재현을 강조한 서양, 체험의 공간을 강조한 동양

 

 

 

 

 

 

 

 

 

 

 

 

 

 

 

 

 

르네상스시대 서구 미술을 지배해 오며, 환영적 사실주의를 꾀했던 전통적 방법은 1점 투시에 의한 원근법이었다. 이는 화면에서 시점의 통일성을 요구하게 되어 관찰자로 하여금 형태의 사실적 화면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뛰어넘어 동양에서는 다시점(多視點)을 통한 화면전개 방식을 구사했다. 한 화면 속에 고원, 심원, 평원 등의 적용은 흩어진 시점 즉 복수시점을 말한다.

 

 

 

 

파블로 피카소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의 초상」 1912년

 

 

바로 상반된 논리를 동시다발적 표현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큐비즘(cubism)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데, 큐비즘은 대상을 해체하고, 시점을 이동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본 대상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인지하는 것으로 그리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그림은 3차원의 모방을 넘어서 시간을 담은 4차원으로 이동하였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큐비즘의 다시점 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동양의 화가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서양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기법은 원근법인데, 전근대 동양의 그림에서는 이 원근법을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원근법이 없는 동양화의 미적 가치를  서양화와 비교하면서 낮출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인식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다. 원근법은 과학의 대두와 개인의 등장이라는 르네상스시대의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개별적·독자적 주체인 화가의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그것을 화폭에 옮길 때 원근법이 출현한 것이다. 동시에 원근법은 수학적 질서다. 공간은 시점의 각도에 의거해 기하학적 질서로 인식된다. 근대 서양회화의 그림은 이 기하학적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따른다. 그러니까 기하학적 공간을 회화의 공간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선험적 공간인 셈이다.

반면에 동양의 그림에는 이런 기하학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원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곧 주체는 그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풍경의 일부이다. 그 풍경 안에서 산수의 신비감과 숭고미를 체험하는 것이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진경산수’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진경은 아니다. 그것은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금강산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 산의 숭고미와 신비감을 극단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을 그렇게 그린 이유를 김우창 교수는 회화의 기법을 근본적으로 규정한 세계관에서 찾는다. 풍수사상이 보여주는 대로 땅은 사람이 깃들어 사는 곳이자 무한을 향해 초월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상한다. 그 땅의 세계와의 일체감이 중요했기 때문에, 동양의 산수화는 풍경을 대상화하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반면에, 서양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다.

 

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눈을 통한 관찰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관념적으로 직접 보지 않고 그리는 예도 있지만 시각적 언어인 그림은 어떠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림을 그릴 때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는 대상물을 어떠한 방식으로 보는가에 따라 실제적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대상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앞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그리는 화가의 자세다. 그리고 동양의 삼원법을 통해서 서양의 원근법처럼 그림을 그릴 때 언제나 정확한 형태와 배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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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3-05-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북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읽다보면 말이죠,
가본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은총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나와요.
그렇다면 보고 경험하고 할 수 있는...
현대를 살아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우리들은 행복한가 하고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자세와 더불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자세까지 얘기하자면 오지랖이겠죠~--;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내레이션 속 내용입니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고흐(1853~1890)의 이름은 은 불행한 삶을 살다간 화가의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고흐의 그림은 수억 원대 가격으로 매길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습니다. 고흐는 훗날 자신의 그림이 값비싼 가격으로 거래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있을 때는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기 때문이죠. 고흐는 자존심 세고 격정적인 성격 탓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같은 아틀리에에서 함게 작업했던 폴 고갱과의 다툼 이후 면도칼로 왼쪽 귀를 자르는 자해 소동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가 믿고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의 피붙이 같은 동생 테오였습니다. 친구가 많지 않은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피해 고독의 그늘 구석으로 도피했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발작은 고흐의 정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가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잔인하면서도 불행했습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격정으로 뭉친 왼쪽 심장을 향해 권총을 겨눈 것이죠.

 

고흐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우리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고흐의 불행한 삶이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고 많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삶에 대한 후대의 평가와 대중의 시선은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의 관점이 강합니다. 그래서 고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많습니다.

고흐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성격이 괴팍하고 암울한 인생을 산 그의 그림은 어두운 분위기의 색채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고흐는 어둡고 칙칙한 색깔만 고집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창기에 어두운 검정과 갈색 위주로 그림을 그린 적은 있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렬하고도 밝은 색채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실제로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보게 된다면 그 오해가 틀렸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년

 

 

고흐는 밀밭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중에서 많이 알려진 것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렸다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입니다. 후자의 그림에는 밀밭의 강렬한 노란색이 전경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울함이 감도는 하늘의 파란색과 그 한가운데 날아다니고 있는 까마귀는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길이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는 길의 끝자락은 고흐 자신이 곧 가게 될 ‘망자(亡者)의 길’로 보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자고새가 있는 밀밭」1887년

 

반면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리기 13년 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그려진 <자고새가 있는 밀밭>은 오히려 평안하게 느껴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과 붉은 색의 양귀비 그리고 수확하는 밀밭의 농부에 의해 놀라 달아나는 듯한 자고새의 모습에서 활력 넘치는 생명의 약동이 느껴집니다. 이제 막 날갯짓을 하는 자고새는 이제 막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열정을 가슴 속에 한가득 지닌 채 파리에 정착한 ‘영 더치 페인터’(Young dutch painter) 고흐를 연상시킵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단면만 보게 되면 전체 또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고흐가 지금까지도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사나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심리에서 비롯된 오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흐가 우리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것은 맞을지 몰라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암울할 정도로 어두운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닙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 고흐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노래한 돈 맥클린의 명곡 ‘Vincent'를 백 번 듣는 것은 반 고흐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 살랑살랑 봄의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 주말에 예술의 전당 ‘반 고흐 전’에 가보길 권합니다.



* <자고새가 있는 밑밭>은 현재 예술의 전당 ‘불멸의 화가 반 고흐 in 파리’(~2013년 3월 24일)에 전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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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3-12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고새가 있는 밀밭> 그림 참 좋네요. 너무 평화로워 보여요. 반고흐와 테오의 우애를 생각하면 참 감동적이에요. 열 살이 넘게 차이나는 형제가 세상에서 가장 친한 벗으로 죽을 때에도 옆에서 죽음을 지키고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고 없었을 것 같아요.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은데 거리가 꽤 있어서 엄두가 안 나지만 시도해 봐야겠습니다.cyrus님의 좋은 페이퍼 덕분이네요.

cyrus 2013-03-12 19:18   좋아요 1 | URL
저는 지난 달에 고흐전을 봤는데요, 책에서 봤던 그림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새로웠고 고흐의 진가를 직적 보게 되었습니다. 전시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시회에 가볼려고요. 화창한 날 주말 나들이에 반고흐전 강추합니다. ^^

수연 2013-03-13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나 보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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