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은 사치일까?』

 

 

 

 

 

진짜 이 책을 읽을 것일가, 말 것인가는 도서반납일이 3일 남았을 때 결정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면 2주간 ‘절대소유권’을 획득하게 된다. 뒤에 예약한 사람이 없다면 일주일을 더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때까지 대출해 온 책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면 그 책은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과 도서관 직원분들, 그리고 책을 집까지 운반한 내 팔에 대한 예의상, 반납일이 3일 정도 남았을 때, 그러니까 마지막 반납기일 2-3일 전에는 책무더기 속 책들을 차례로 훑어본다.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읽지도 않을거면서 무거운 이 책을 왜 빌렸을까, 『여성의 남성성』, 『여자들의 사상』), 자리에 앉아 목차를 살펴보는 경우가 있고(『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겨우 29페이지 읽은거야?의 (『신곡: 지옥편』) 경우도 있다.    

나는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과 『올 어바웃 러브』를 읽었기에 이 책은 그냥 간단히 지나가려, 아니, 목차만 대충 살펴보려 책을 들고 잠깐 앉았는데, 역시나, 그녀의 책은 패쓰가 안 되는 책이다.

그러나 소득이 높은 여성들만이 실질적으로 일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한다. 요리와 가사, 육아 등을 도와줄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그들은 가정으로 돌아와 ‘2교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저소득 여성은 자신들의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이 상대 배우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경제적 부담과 책임감을 덜 수 있다. 종종 밖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완벽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더욱 무리해서 일했다. .... 일터에서 여성을 위해 늘어난 여러 가지 기회의 수혜자는 많은 경우 독신의 여성 노동자였다.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여성들은 일을 시작한 후 삶이 더 어렵고 힘들어졌다. 따라서 일터가 자유를 향한 길인 것처럼 주장했던 페미니즘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의 비판은 타당했다. (81쪽)

 

더 자유로운 삶, 구속이 없는 삶을 위해 밖으로! 밖으로!를 외쳤던 여성들은 변한 건, 시대를 앞선 그녀들의 의식일 뿐, 세상은, 남편은, 가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노력이 인정되지 않고,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가정의 모든 잡다한 일을 떠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육아와 가사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남성들과 똑같은 강도, 똑같은 분량, 똑같은 시간동안 일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육아와 가사의 ‘도우미’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일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러한 ‘2교대’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187쪽)

 

임옥희는 말한다. “여성은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고 있었던 힘 때문에 혐오와 매혹의 대상이었다.”(『여성혐오가 어쨌다고?』, 88쪽) 즉, 여성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인지하고 못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을 때,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사랑하고 인정해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보호를 벗어나려 할 때, 자신보다 더 나은 직장을 얻었을 때, 자신보다 연봉이 높아졌을 때, 자신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임용되었을 때, 바로 그 때, 남자는 자신의 지지를 철회한다.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지 않는다. 그녀와 결별한다.

어허, 흥분하지 마시라. 나는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벨 훅스의 남자 말이다. 벨 훅스가 기나긴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학문적 동료였으며, 그녀의 성공을 응원했고, 경제적으로도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그 남자,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동거남, 그 남자가 그랬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그 남자만 그러는 건 아니다.

 

2. 『성서와 만나다』

 

 

 

 

 

과학자인 저에게 좀 더 자연스러운 유비를 들자면 성서는 모든 커다란 질문에 정해진 답을 마련해놓은 궁극의 교과서가 아니라, 실험실의 노트와 같습니다. 곧 성서는 중대한 역사적 경험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뜻과 본성은 성서를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무오하며 질문조차 허용하시지 않는 기이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사건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신의 뜻과 본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다.(16쪽)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놀랍고 신비로우며 흥미진진한 확신 위에 놓여 있으며, 저는 이 확신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이 확신이란 무한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가장 분명하며 가장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곧 말씀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을 취함으로써 당신의 본성을 알리셨다는 것입니다.(181쪽)

 

성서가 실험실의 노트와 같다는 저자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요즘엔 성경을 너무 안 읽어서 정말 심하다,는 생각에 성경계의 아이돌 『메시지 시가서』를 구입했는데, 이것도 책탑 속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 교수를 지낸 존 폴킹혼이 저자인데, 과학자의 신앙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우며 쉽게 잘 읽힌다.

 

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5분 사이에 한 명의 사람을 열 명의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사람, 어떤 일이든지 몇 초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사람, 거짓 혹은 가짜 이야기를 능숙하게 지어내면서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 건너가려는 사람.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인 톰슨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톰슨씨는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지껄이며 몽상을 말한다. 자기의 내적 세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꾸며낸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의 경우 가장 큰 ‘실존적인’ 비극은 기억에 있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완전히 황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기억에만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느낀다는 기본적인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이란 이것을 말한다. (220쪽)

 

그가 유일하게 평정을 되찾는 장소는 사회적인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병원에 딸린 정원이다(223쪽). 사람이 없는 적막한 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온함과 충족감을 맛볼 수 있다.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손상되어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의 범위를 훌쩍 벗어난다. 정상을 벗어난 사람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들. 소설처럼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관찰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가감없이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풀어가다 보면, 마지막 문제에 부딪힌다. 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발 붙일 곳이 있을까? 과연 ‘본토’가 그들을 특수한 존재로 받아들여줄까?

 

결국엔 그렇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모두 다 말짱한 정신일 수 없을 테고, 그 때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그 때에도 내 손을 잡아준다고 약속하신 그 어떤 분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의 섬처럼, 떠돌고 또 그렇게 떠돌아 다닐 것이다. 하나의 섬, 또 다른 하나의 섬처럼 말이다.

 

뜨거운 8월의 여름, 이 책을 읽었을때만 해도 작가 올래드 색스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기사를 보게 되었다. 또 하나의 섬이 되어 이 아름다운 세계를 떠났으되,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떠났으니 올리버 색스, 덜 외롭기를.

 

4. 『희지의 세계』

 

 

 

 

 

 

희지의 세계

 

저녁에는 양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원의 고요가 초원의 어둠을 두드릴 때마다

양들은 아무 일 없어도 메메메 운다

풍경이 흔들리는 밤이 올 때

목양견 미주는 희지의 하얀 배 위에 머리를 누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익힌 콩과 말린 고기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자 산다                     (18-19쪽)

나는 언제나 시읽기가 어려워 시집은 사놓고도 못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은 사실 외모에 먼저 반했다. 1988년생의 작가, 민트색의 표지 때문에 산뜻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한다. 시를 더 많이 읽어야겠다, 시집을 더 많이 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보면서...

오늘은 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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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1-08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깔맞춤이 가능하군요?
이뻐요^^
민트는 하얀색이랑 분명 차이가 나는데도 저는 항상 민트색을 보면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박하사탕맛이 생각나네요
민트는 박하사탕맛!!^^

몇 권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콕 찍어놓았습니다
남은 주말도 사랑받고,사랑 많이 하는 하루 되시길♡

단발머리 2015-11-09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민트가 너무 좋아요.
민트티, 민트레깅스, 민트가방의 딸애한테는 못 미치지만요.

저는 님 덕분에 많이 사랑받고 즐거운 주말되었어요.
책 읽는 나무님도 즐거운 주말되셨나요?

icaru 2015-11-1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시행전에 올리버 색스의 책을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그러니까 다섯권은 넘지 않는다는 요지이죠 ㅋ)에서 갈퀴로 긁었어요. 그중에 아내를 모자로~ 도 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단발머리 님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오프 지인들이 몇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좀 전무한 편인데,,, 없는 와중에도 한분 발견했잖아요. 둘째친구엄마가 모자를 아내로, 저 책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꼼꼼하게 읽고 싶은 페이퍼인데, 제게 허락된 시간이 2분이라,, 대략 발자취라도 남기려고 발악하는 저의 꼴 좀 봐요 ㅠㅠ))

단발머리 2015-11-12 10:5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도 언니가 있긴한데, 요즘엔 아이들 스케쥴이 바뀌어 자주 못 만나고 있어요.
요즘에 언니는 현대문학 단편선을 읽고 계시더만요. 오헨리, 기드 모파상 이런 분들을 만나신다는.
책 이야기 나눌 때 너무 좋지요. 잘난 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책 이야기로...
그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잘난 척은 무슨. 간신히 따라갑니다.

icaru님 많이 바쁘시군요. 그 와중에 댓글 무한감사드려요.

from 사랑과 댓글을 먹고 사는 단발머리
 

 

 

 

 

 

 

 

* 사진 및 사전설명

1. 황홀한 비쥬얼의 계란말이

2. 멋대가리 없이 소주잔을 들고 있는 손이 바로 내 손

3. 오로지 오겹살 흑돼지 비계로만 이루어진 여왕고기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 날 여왕고기는 D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

4. 책 이야기 한 줄 없이 『책 먹는 법』에 대한 페이퍼가 된 이유는 알라딘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기 때문

 

제일 걱정되었던 건,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는 친구 만나는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나는 만나는 친구가 많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대학 친구는 과친구, 기독동아리 친구, 총학 친구 따로따로 만난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앱을 깔아주는 신세대 친구도 있고 심지어 동서도 친구라서 시댁에 가도 친구가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멀리 살아서 일년에 겨우 한두번 만나는 친구도 있다. 학교 다닐때는 하루 종일 같이 다녀서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잘 알 수 있지만 요즘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경우라면 근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문제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강신주는 함부로 서재를 보여주지 말라고, 그건 영혼을 보여주는 일이라 했다던데, 나는 알라딘서재에 리뷰를 올리며 영혼 뿐 아니라, 영혼의 느낌, 영혼의 생각, 영혼의 컨디션 내지 영혼의 방황까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내가 요즘에 읽는 책, 내가 밑줄 긋는 문장, 내 생각을 알고 있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난, 두려웠다.

만남이 걱정스러웠던 두 번째 이유는 직접 만나면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내 글 속에서, 나는 더 근사하다.

글 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지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보이며, 실제의 나보다 더 착하다. 실제의 나보다 ‘사회 정의’에 더 관심이 많으며, 실제의 나보다 더 ‘진보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활달하며, 더 긍정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게 되면, 만나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마시다 보면 실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눈빛에서, 표정에서, 몸짓에서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번 ‘그냥 약속장소에 나가지 말까’를 고민했다. 그게 8월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두 번째로 알라딘 모임에 나갔다.

M님은 예쁘다.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예쁘장하다. 예쁜데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예뻐도 ‘새침한 예쁨’이 있고, 예쁜데 ‘백치미와 어울린 예쁨’도 있다. 내가 보기에 M님의 ‘예쁨’은 ‘사랑스러운 예쁨’이다. 큰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미소 때문에 M님을 보는 사람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Y님은 멋지다. 여자에게 멋지다는 말을 쓴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Y님은 멋지다. 약간 흥분해서 팔을 휘저으며 말을 할 때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도 멋스러움이 가득하다. 나란히 길을 걷다보면 발걸음도 멋지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존재 자체가 까탈스러운 고양이 5마리와 이렇게 멋진 Y님이 희희낙락 동거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농약 같은 가시나’의 매력을 내뿜는 D님은 말 그대로 매력덩어리다. 지난 8월, “아이 더워, 더워”를 연신 외치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D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순간 멍때리고 있었더니, Y님 왈, “이 사람, 글 쓴 거 하고 똑같죠. 똑같아요, 진짜.” 하는 거다. 나는 “네, 맞아요. 그렇네요.”하고는 다시 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읽어서 익숙한 D님의 페이퍼를 누군가 읽어주는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이 D님. 참 신기했다. D님은 쌍커플이 예쁘고, 손이.... 손이 정말 말도 못하게 고은 손이라, 한 번 잡으니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았더랜다. 함께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안주를 먹든, 옆의 사람에게 전염되는 “으흠~~ 맛있다! 맛있어!” 추임새에 밥맛을 꿀맛으로 바꾸는 놀라운 초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D님의 제일 큰 매력은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약간 낮은 듯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무슨 이야기든 귀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적인 목소리. 사람 목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D님 목소리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마시라.

그렇게 만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마시고. 자리를 옮겨 마시고, 먹고, 이야기 하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 진보를 표방하는 특이한 선생님 이야기, 조카 이야기, 회사 이야기, 직장동료 이야기, 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그러한 소소한 이야기들, 이야기 나누는 방식, 이야기할 때 서로의 반응, 느낌, 공기가 모두 좋았다.

제일 친한 친구 1번, 그 다음 친한 친구 2번, 3번, 4번, 5번, 이렇게 친구에게 번호를 매기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1번으로 번호 매겼던건 그녀가 나의 1번 친구이듯 나도 그녀의 1번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했다고 해서, 특정한 시기를 함께했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가끔은 아주 작은 일로 오해가 생겨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만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잊혀지기도 한다. 친구와의 관계도 식물을 키우듯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주고 그렇게 ‘가꿔가는 것’이라던 말이 맞는 것 같다.

난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강력곱슬 여중생, 여드름박사 여고생, 천방지축 여대생의 시절을 지나, 나는 아이 둘의 아줌마가 되었다. 전업주부이고, 책을 산다. 읽고 생각하고 가끔 끄적거린다. 여중생, 여고생, 여대생이었던 내가, 변하고 또 어느 정도는 변하지 않은 채 이렇게 4땡의 아줌마가 되었다.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의 지난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새롭게 알게된 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역시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들과 만들어갈 시간, 우정, 사랑이 기대된다.

알라딘 친구, 나는 이 친구들을 알라딘 친구라 부르기로 했다.

알라딘 친구, 알라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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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2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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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5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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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25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잔 들고 있는 손과 여왕고기 사진이 없어요ㅜㅜ

단발머리 2015-10-25 08:51   좋아요 1 | URL
붉은돼지님,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7,8번 시도해보았는데 글쓰기의 <이미지>가 클릭이 안 되네요. 하나의 사진만 올라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여왕고기, 참 우아한데...

단발머리 2015-10-25 09:00   좋아요 1 | URL
다른 컴으로 하니 되네요..... 붉은돼지님 덕분에 사진 업로드 완료~~ 했어요.

2015-10-2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10-25 13:10   좋아요 0 | URL
아핫!!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떤분은 세 분을 모두 맞추시더라구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ㅎㅎㅎㅎ

2015-10-2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5 2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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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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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2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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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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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2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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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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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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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5-10-2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러면서 한편으로 왠지 님의 적은 이유 때문에 겁나기도 하고. 으악,.... 그래도 부럽네용~~!

단발머리 2015-10-28 09:18   좋아요 0 | URL
겁나면서도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어요.

저는, 뭐랄까요.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 처음 경험이라 너무 너무 신기하고, 알라딘서재 이야기하면서 너무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그런 느낌이었어요. ㅎㅎㅎ

icaru 2015-10-2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ㅋㅋ
부럽습니다,, 오프에서 얼굴 좀 보자는 제안을 들은 적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본적은 있는데,,,
역시나 저는 그런 엄청나게 엔돌핀 도는 일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ㅋㅋ 그래도 단발머리 님은 실제로 한번 뵈었음 싶은 마음 간절이네요~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이 될 것도 같은 d님도 뵙고 싶고,, 저 모임에 나오신 모든 분들 궁금해요^^ 이니셜만 갖고도 모르겠는데,,, 손만 보고 맞춘 분은 왓우!!! ㅎㅎ

2015-10-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0-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명 다 맞힌 분, 누굽니까! ㅎㅎㅎ

보슬비 2015-11-01 23:58   좋아요 0 | URL
오호.. D님이시당!!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5-11-02 08:39   좋아요 0 | URL
일단 a로 시작하고 e로 끝나는 닉네임을 가지신 분이 세분을 단박에 맞추셨구요.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잘도 맞추셨어요.
요기 위에 ㅂ으로 시작하시는 분도 그러셨지만, 다들 D님은 누군지 알겠다고 하시더라는....
왜 그럴까요, 다락방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보슬비 2015-11-02 08:41   좋아요 0 | URL
a님도 누군지 알겠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5-11-0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보슬비님.... 이런 놀라운 추리력.... 명탐정 보슬비님~~~~
 

 

무엇에든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 아닌 의미다. 소설 집필 같은 창작이 아닌 경우, 편집 같은 가공이 아닌 경우,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슨 이득이 있는가.

내가 신곡을 읽는다는 게,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는다는 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을 읽는다는 게,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를 읽는다는 게,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읽는다는 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이상은 오에의 강력 추천 도서).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 이외에 무슨 소득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일로만 평가받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유, 즉 성찰, 계몽, 이해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고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읽어 나가는 프로젝트, 즉 하루에 일정 시간 동안 앉아서 책 한 권을 읽는 행위는 생산물과 축적물로만 우리의 가치를 재는 세상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입니다. 뭔가 생산적인 다른 일 대신에 아침에 혼자서 책을 읽는 행위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구체적인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 저항하십시오. 앉아서 성찰하는 기쁨을 느끼십시오. 인간이란 생산력만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고집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떠서 부엌을 청소하고 서류를 정돈하기 전에, 무엇보다 고전을 한 권 집어 들고 읽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독서의 즐거움, 5-6)

 

이러한 문구가 있어, 이러한 격려가 있어,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까지 올 수 있었다. 오에가 좋아하는 작가, 사이드의 말을 옮겨본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수필가의 책을 거론한다고 해봅시다. 제가 그 책에서 자극을 받고, 감명을 받고, 힘을 얻어, 지적 흥분을 느끼는 것은 (받아들일 모드가 되어 있을 경우겠으나), 단순한 정보 때문이 아닙니다. 책 속의 글을 통해 느껴지는 일종의 정신 - 발견이라는 감각, 어느 소재의 독창성이나 중요성을 자연스레 깨닫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감각. (47)

 

오에가 하도 원문을 봐야한다 강조하기에 원문도 살펴보면, 독서는 ‘inspires me or moves me, animates me, gets me excited, intellectually'란다. 나를 뭉클하게 하고move 하고, 활력을 느끼게animate 하고, 흥분시키는get me excited 것이니(48), 인생의 국면이 바뀔 만큼 둘도 없이 소중한 정보를 전해준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 ’글을 쓰고 있는 인간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며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것이라고, 정리하는 것이다.(49)

위대한 정신, 만나기 어렵고, 만나는 것이 불가능한 위대한 정신과의 조우, 이게 바로 읽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혜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정신과의 만남을 통해 결국에는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노작가의 인생, 문학,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이 책에서 의외의 팁이 있는데, 그건 외국어 학습에 관한 것이다.

오에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읽고, 이탈리아어는 대학 초급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곡이탈리아어’로 읽는 일본 작가를 상상해보라

 

   

 

 

 

 

 

 

우선 처음에는 번역서에 선을 그어가며 빈틈없이 읽습니다. 두 번째는 선을 그은 부분을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하며 읽어갑니다. 그리고 세 번재로, 그게 정말 좋은 책이고 한 달 정도 공을 들여 읽을 짬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원서로 읽어봅니다. 그것이 재독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 같은 외국어 비전문가들은 말이죠, 전문가가 번역한 책을 옆에 두고 읽으려는 원서도 함께 둡니다. 그리고 사전을 앞에 둡니다. 이런 식으로 원서를 읽는 것이 좋아요. 번역본을 참고하면 원서를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41)

 

나는 의지할 만한 영어실력도 없으면서, 왜 번역서와 나란히 원서두기를 무시해 왔는가. 왜 번역서 vs 원서의 구도만을 고집해 왔는가. 줌파 라히리로 시작되어 오에로 열매맺은 나의 원서 옆 번역서 프로젝트가 드디어 가동되었다. 일단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원서 옆 번역서 프로젝트에 적당한 책들을 몇 개 골라본다.

 

 

애정하는 책 순서대로 고른다면, 1순위는 물론 유령퇴장이겠으나, 두께의 유혹 때문에 에브리맨이 낙점되었다. 오에가 가르쳐준 대로 빨간색(감탄한 부분, 흥미로운 부분)과 파란색(잘 모르겠는 부분, 부정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 볼펜을 굴려가며 읽어간다. 난 반대로 했다. 감탄스런 문장에는 파란색을, 부정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문장에는 빨간색을.

 

 

드디어, 마침내, 바야흐로.

나는,

읽는 인간이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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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서 꿀 팁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10-24 11:42 
    제겐 의외의 집중력을 선사하는 만족스러운 독서 스팟이 있는 데, 그건 코인 빨래방입니다. “(49)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이 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죽은 지식의 집적을 말합니다. 대형 대학 강의실에서 열리는 지루한 개론 강의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
 
 
[그장소] 2015-10-07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자유로운 읽는 인간..이 되셨군요!

단발머리 2015-10-07 14:04   좋아요 2 | URL
아... 자유로운 읽는 인간은 아니구요.

그냥, 읽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읽는 인간, 먹는 인간, 자는 인간 중에...
당당한 2위, 읽는 인간이요*^^*

2015-10-0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7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10-0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에 뭘 못하는 바보라..한편 부러워 그럽니다..^^

단발머리 2015-10-07 14:14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책에 뭘 못하는 바보 1인입니다. 부러우실것은 없구요. 이렇게 쓰다보면 한 자라도 더 읽게되지 싶어요. *^*^*

blanca 2015-10-0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하고 싶어지네요. ^^

단발머리 2015-10-07 15:41   좋아요 0 | URL
아하... blanca님은 매일 매일 영어를 공부하신다는 글에, 제가 많이 감동 받았지요.
나는.. 왜 진득하게, 진지하게 영어를 읽지 않는가.

저는 이 책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되리라 예상하지 않았는데, 항상 영어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 사람이, 일본 작가가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이렇게 노력한다 해서 도전 받았어요.
저도 노력 비슷하게라도 해 보려고요. 일단 사진으로 동기부여^^

그렇게혜윰 2015-10-0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번역서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단발머리 2015-10-07 17:16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공부법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ㅎㅎ
실제로 이렇게 진지하게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아주 신기하더라구요.

붉은돼지 2015-10-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에 선생의 독서법은 함부래 포기했습죠...아예 따라할 생각조차 품지 않았습니다.
안되는 외국어에 낑낑거리며 용쓰지 말고 그냥 한글로 된 번역본이라도 열심히 읽자고 말이죠...ㅎㅎㅎㅎ

그래도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아쉬운 생각이 조금 남아있는 듯 합니다.....ㅜㅜ

단발머리 2015-10-07 17:34   좋아요 0 | URL
저도 안 되는 외국어에 낑낑대지 말자, 하고 책 접은지 10년이 다되어 가는데, 영어 못 한 다고 무시하는 일본 사람이 이렇게 한다니, 나라고 끝까지 안 되기만 하겠나? 하면서 일단 책을 폈습니다.

저는 작심 3일도 어려운 사람이라 간당간당하기는 한데, 일단 <에브리맨> 끝내보기가 목표입니다.
가능할지는..... @@

감은빛 2015-10-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만해도 영어로 된 책도 읽어보려고 애쓰곤 했는데,
요새는 외국어는 아예 눈에 안 들어오더군요.
한때는 영어뿐 아니라 독어나 일어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이젠 욕심 버리고 우리말이라도 제대로 읽고 쓰자 맘 먹어요.

그런데 (예전) 직업 덕분에 출판된 책의 내용도 워낙 잘못된 번역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편으론 제대로 책을 이해하려면 원서로 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예전에 제가 편집을 본 책 중 하나는 역사적 사실이나
이미 출판된 문학 작품 내용을 죄다 엉망으로 옮겨놓은 것도 봤어요.
그 책의 경우 번역자를 믿을 수 없어서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
다 원서를 확인해야해서 솔직히 저도 공동 번역으로 넣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물론 외주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 이름은 그 책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발머리 2015-10-07 18:24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외국어는 엄두도 못 내구요. 영어하고나 친해지자 하는데@@

저는 어려운 내용을 번역하고 뭐, 그렇게까지 바라지도 않고요. 좋아하는 책, 원서로 사놓고 꽂아놓았다가 가끔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감은빛님 성함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정말 안타까운 경우네요....

해피북 2015-10-0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번역서를 읽다보면 작가가 정말 이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문장을보면서 원서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을 하곤했는데...그래서 단발머리님이 정말 부럽습니다ㅋㅂㅋ!

단발머리 2015-10-08 10:21   좋아요 0 | URL
아이공~ 부끄러워라~ 저는 오에처럼 원작자의 깊은 뜻을 알아채는 독서까지 가능하지는 않구요. 다만 좋아하는 구절도 적어보고 사전도 찾아보는 이런 `느린 독서`가 근사해보여서요~~~

보슬비 2015-10-1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이스 로리 책이 확 눈에 띄었어요. 3권까지 읽고 마지막권은 아직 읽지 않고 있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원서 옆 번역서 프로젝트’ 마음에 들어요~~ ^^

단발머리 2015-10-13 11:56   좋아요 0 | URL
저는... 1권 <기억전달자>만 읽었답니다. 저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이렇게 미루고 있네요.
일단 `원서 옆 번역서 프로젝트`는 에브리맨 - 유령퇴장 순서만 정해졌는데...
아, 진도가....

2015-10-11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5-10-1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꽃의 여자 반갑버여...!!
이건 딴 이야인데,, 요즘에 위험한 독서의 해, 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좀 반신반의하면서 잡았는데(왜냐면 책이 잘 안 읽히는 즈음이라서 건성건성 읽다 던져버릴 것 같았거든요...) 좋더라고요,, 아아 요점은 읽으면서 단발머리 님 페이퍼를 읽는 느낌이 났어요... 어머 왜 그랬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요~ 단발머리님도 궁금하지요! ㅎ

단발머리 2015-10-15 18:05   좋아요 0 | URL
아하... 그래요.
오에가 저 위의 책에서 젊은 지식인 여성들에게 시몬 베이유를 권한다, 뭐 이런 말을 했거든요.
`젊은`도 안 되고, `지식인`도 어렵겠지만 `여성`이라서 시몬 베이유를 읽고 싶어요.
<위험한 독서의 해>라는 책,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왜냐하면.... 궁금하니까요. *^^+
 

경향 시민 대학

정희진의 <독서의 쟁점과 재구성>

10/13, 10/20, 10/27, 11/3, 11/10

매주 화요일 저녁 7-9시, 수강료 10만원


아하... 화요일은 남편이 늦는 날인데, <독서의 쟁점과 재구성>을 위해 가정사 재구성 가능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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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9-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사 재구성 하셨나요? ^^

단발머리 2015-09-25 12:41   좋아요 0 | URL
재구성에 전권을 가진 사람이 비협조적이네요. 초딩들만 두고 밤마다 나갈수도 없고.... 실물로 보고 싶은데요, 정희진님^^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이 작은 책’은 사전이고(스포일러), 줌파 라히리가 쓴 ‘이 작은 책’은 작가로서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쓰는 줌파의 ‘이탈리아어 고분분투기’이다. 물론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로마로 이사 온 지 일주일 후, 문이 잠겼던 잊을 수 없는 그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두 번째 맞는 토요일 나는 우리의 고난을 적기 위해 일기장을 펼쳤다. 그날 난 생각도 못한 낯선 행동을 했다.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쓴 것이다. 자동적으로 술술 이탈리아어 일기를 썼다. 손에 펜을 쥐었을 때 머릿속에서 더는 영어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그 시기에 나는 언어를 바꿔 글을 썼다. 내가 새로이 경험했던 모든 것을 보다 의욕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52쪽)

 

이런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숱하게도 많이 들었는데, 말 그대로 어느 순간, 특별한 어느 순간에 외국어로 글쓰기와 말하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 순간을 고대하며 기다렸으나, 그 순간이 오지 않았다는 확신보다 더 확실한 건, 화려하게 빛날 그 찰나를 기다리긴 했으나 막상 그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적정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

왜, 줌파는, 자신의 언어를 버리려 하는가.

하지만 몇 년 후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벵골어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때였다. 그때부터 모국어 벵골어는 더는 홀로 날 성장시킬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내 모국어는 죽었다. 새어머니 영어가 왔다. (119쪽)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가져다준 영어는 줌파에게 새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그녀의 모국어는 벵골어이다. 부모님과 친척들과 함께 있을 때, 줌파는 벵골어만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학교와 사회에서 벵골어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언어, ‘무시해도 되는’ 언어이다. 그녀는 영어로 읽고, 영어로 말해야 하며, 그리고 영어로 써야 한다.

벵골어로 말할 때, 그녀의 친척들은 ‘외국에서 태어난 네가 벵골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 영어로 말할 때, 미국인들은 ’외국인처럼 보이는 네가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벵골어와 영어, 어느 것과도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119쪽)

 

 

이탈리아어는 그녀가 선택한 언어이다.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며 공부하는 언어다. 이제는 이탈리아어로 된 책만 읽고,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으며, 그리고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려 한다. 영어권 작가로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장점, 특혜, 무기를 모두 다 내려놓는다.

언어로 집을 짓는 작가, 그 중에서도 삶의 가장 가까운 일면을 그려내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책을 읽어가며 여러 번,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이미 가진 것, 이미 얻은 것을 왜 버리려 하는지, 어쩌면 끝까지 가질 수 없는 것, 끝까지 얻을 수 없는 것을 위해, 왜 이렇게 애쓰는지.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물을 수 없었는데, 그건 그녀의 이런 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죽으면 이탈리아어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도 끝나기 때문에 난 죽고 싶지 않았다. 매일 배워야 할 새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영원을 꿈꾸나 보다. (43쪽)

 

새로운 흥분과 열정, 살아있다는 느낌을 이탈리아어를 읽을 때 느낀다는 것인데, 어쩌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졌다.

... 

그녀가 버리고 싶은 영어를 나는, 얼마나 갖고 싶은지. 그녀가 이제는 싫다고 말하는 영어에 대한 편안함이 나는 얼마나 부러운지. 가능하다면, 버리고 싶다는 그 영어 실력을 나한테 버리면 안 되는 건지...

 

지지난주에는 보슬비님이 보내주신 책과 선물을 받았고,

지난주에는 다락방님이 보내주신 책과 선물과 엽서를 받았다.

 

알라딘 이웃들의 애정과 관심, 사랑과 배려에 감동받았다. 멀리 사는 친구들은 생일에도 만나기 어렵고,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들도 선물을 주지 않는다. 이 세상 그 누가, 내게 이렇게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내줄까.

다시 한 번, 두 분께 무한 감사 사랑을...

아무튼 나는 그렇게 책을 펼치고, 아,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한 페이지 넘겨 두 번째 페이지부터 슬슬 짜증이 난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했다. 이 책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나는 왜 줌파처럼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를 노트에 적어가며 읽으려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1분간 탓해 본다.

주말에는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의 문장에 완전히 반해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 3권을 대출하면서,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거야 하며 『Children Act』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서라,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내게는 어렵다.

    이 작은 책들은 언제나 내게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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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22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단발머리님의 글도 좋고, 보슬비님의 선물도 좋고,
다락방님의 선물도 다 기쁘고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제 하루도 참 좋습니다~~ㅎㅎㅎ

단발머리 2015-09-22 11:10   좋아요 1 | URL
좋게 봐 주셔서~~~~ ㅎㅎ
선물을 받기만 해서 저는 감사하고 미안해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appletreeje님께도 항상 감사하구요.
날씨도 더운 듯 하면서도 청명하네요. appletreeje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아무개 2015-09-22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읍 다락님의 엽서를 저는 못받았어요.
중간에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 진짜...
다시 보내달라고 말도 못하고(여기다 쓰고) ㅠ..ㅠ

외국어에 대한 짝사랑 또는 집착은
아마도 진짜로 사랑에 빠지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단발머리 2015-09-23 07:30   좋아요 0 | URL
다시 보내달라는 말을 못하셨지만, 일단 여기에 쓰시고...
다락방님, 와서 이 글을 보소서~~~~

그러게요. 진짜 사랑에 빠지면 그게 쉬워질까요?
예전에 익숙했던 언어가 싫어질까요? 공항이 그리워지고 그럴까요?
외국어와 사랑에 빠져보지 못 했던 저로서는... @@

해피북 2015-09-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랬습니다. 제가 외국어에 젬병인 이유가....사랑때문이였다니요 ㅋㅂㅋ
어떻게하면 사...사......사랑하랑할수있을까요 ㅎ 저는 평생을 짝사랑으로만 끝낼거같아요 ㅎ 보슬비님 티 저도 받아본적 있어서 사진보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ㅎ 그 마음 깊이깊이 느껴집니다. 아 그런데 단발머리님 혹시 생일이셨나요?

단발머리 2015-09-23 07:33   좋아요 0 | URL
네.... 모든 것은 사랑때문이지요. 사랑사랑사랑.

어떻게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랑은 그냥 빠지는것 아닐까요?
풍덩이요. ㅋㅎㅎㅎ
줌파는 이탈리아로 떠나기 6개월전부터 이탈리아책만 읽었다고 그러더라구요.
20분만 원서를 읽어도 급 피곤에 잠이 몰려오는 저로서는... 참 놀라운 사랑입니다.

제 생일은 여름이었구요.
위의 사진은 그냥 선물이요. 하하.... 전 이런 선물이 제일 좋아요.
그냥, 네가 생각나서 보냈어. 막 이런거요.
우하하..... 저 지금 또 자랑하나요? ^^

2015-09-22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