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및 사전설명

1. 황홀한 비쥬얼의 계란말이

2. 멋대가리 없이 소주잔을 들고 있는 손이 바로 내 손

3. 오로지 오겹살 흑돼지 비계로만 이루어진 여왕고기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 날 여왕고기는 D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

4. 책 이야기 한 줄 없이 『책 먹는 법』에 대한 페이퍼가 된 이유는 알라딘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기 때문

 

제일 걱정되었던 건,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는 친구 만나는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나는 만나는 친구가 많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대학 친구는 과친구, 기독동아리 친구, 총학 친구 따로따로 만난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앱을 깔아주는 신세대 친구도 있고 심지어 동서도 친구라서 시댁에 가도 친구가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멀리 살아서 일년에 겨우 한두번 만나는 친구도 있다. 학교 다닐때는 하루 종일 같이 다녀서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잘 알 수 있지만 요즘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경우라면 근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문제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강신주는 함부로 서재를 보여주지 말라고, 그건 영혼을 보여주는 일이라 했다던데, 나는 알라딘서재에 리뷰를 올리며 영혼 뿐 아니라, 영혼의 느낌, 영혼의 생각, 영혼의 컨디션 내지 영혼의 방황까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내가 요즘에 읽는 책, 내가 밑줄 긋는 문장, 내 생각을 알고 있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난, 두려웠다.

만남이 걱정스러웠던 두 번째 이유는 직접 만나면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내 글 속에서, 나는 더 근사하다.

글 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지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보이며, 실제의 나보다 더 착하다. 실제의 나보다 ‘사회 정의’에 더 관심이 많으며, 실제의 나보다 더 ‘진보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활달하며, 더 긍정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게 되면, 만나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마시다 보면 실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눈빛에서, 표정에서, 몸짓에서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번 ‘그냥 약속장소에 나가지 말까’를 고민했다. 그게 8월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두 번째로 알라딘 모임에 나갔다.

M님은 예쁘다.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예쁘장하다. 예쁜데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예뻐도 ‘새침한 예쁨’이 있고, 예쁜데 ‘백치미와 어울린 예쁨’도 있다. 내가 보기에 M님의 ‘예쁨’은 ‘사랑스러운 예쁨’이다. 큰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미소 때문에 M님을 보는 사람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Y님은 멋지다. 여자에게 멋지다는 말을 쓴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Y님은 멋지다. 약간 흥분해서 팔을 휘저으며 말을 할 때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도 멋스러움이 가득하다. 나란히 길을 걷다보면 발걸음도 멋지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존재 자체가 까탈스러운 고양이 5마리와 이렇게 멋진 Y님이 희희낙락 동거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농약 같은 가시나’의 매력을 내뿜는 D님은 말 그대로 매력덩어리다. 지난 8월, “아이 더워, 더워”를 연신 외치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D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순간 멍때리고 있었더니, Y님 왈, “이 사람, 글 쓴 거 하고 똑같죠. 똑같아요, 진짜.” 하는 거다. 나는 “네, 맞아요. 그렇네요.”하고는 다시 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읽어서 익숙한 D님의 페이퍼를 누군가 읽어주는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이 D님. 참 신기했다. D님은 쌍커플이 예쁘고, 손이.... 손이 정말 말도 못하게 고은 손이라, 한 번 잡으니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았더랜다. 함께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안주를 먹든, 옆의 사람에게 전염되는 “으흠~~ 맛있다! 맛있어!” 추임새에 밥맛을 꿀맛으로 바꾸는 놀라운 초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D님의 제일 큰 매력은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약간 낮은 듯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무슨 이야기든 귀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적인 목소리. 사람 목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D님 목소리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마시라.

그렇게 만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마시고. 자리를 옮겨 마시고, 먹고, 이야기 하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 진보를 표방하는 특이한 선생님 이야기, 조카 이야기, 회사 이야기, 직장동료 이야기, 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그러한 소소한 이야기들, 이야기 나누는 방식, 이야기할 때 서로의 반응, 느낌, 공기가 모두 좋았다.

제일 친한 친구 1번, 그 다음 친한 친구 2번, 3번, 4번, 5번, 이렇게 친구에게 번호를 매기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1번으로 번호 매겼던건 그녀가 나의 1번 친구이듯 나도 그녀의 1번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했다고 해서, 특정한 시기를 함께했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가끔은 아주 작은 일로 오해가 생겨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만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잊혀지기도 한다. 친구와의 관계도 식물을 키우듯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주고 그렇게 ‘가꿔가는 것’이라던 말이 맞는 것 같다.

난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강력곱슬 여중생, 여드름박사 여고생, 천방지축 여대생의 시절을 지나, 나는 아이 둘의 아줌마가 되었다. 전업주부이고, 책을 산다. 읽고 생각하고 가끔 끄적거린다. 여중생, 여고생, 여대생이었던 내가, 변하고 또 어느 정도는 변하지 않은 채 이렇게 4땡의 아줌마가 되었다.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의 지난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새롭게 알게된 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역시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들과 만들어갈 시간, 우정, 사랑이 기대된다.

알라딘 친구, 나는 이 친구들을 알라딘 친구라 부르기로 했다.

알라딘 친구, 알라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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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5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10-25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잔 들고 있는 손과 여왕고기 사진이 없어요ㅜㅜ

단발머리 2015-10-25 08:51   좋아요 1 | URL
붉은돼지님,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7,8번 시도해보았는데 글쓰기의 <이미지>가 클릭이 안 되네요. 하나의 사진만 올라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여왕고기, 참 우아한데...

단발머리 2015-10-25 09:00   좋아요 1 | URL
다른 컴으로 하니 되네요..... 붉은돼지님 덕분에 사진 업로드 완료~~ 했어요.

2015-10-2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10-25 13:10   좋아요 0 | URL
아핫!!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떤분은 세 분을 모두 맞추시더라구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ㅎㅎㅎㅎ

2015-10-2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5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7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5-10-2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러면서 한편으로 왠지 님의 적은 이유 때문에 겁나기도 하고. 으악,.... 그래도 부럽네용~~!

단발머리 2015-10-28 09:18   좋아요 0 | URL
겁나면서도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어요.

저는, 뭐랄까요.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 처음 경험이라 너무 너무 신기하고, 알라딘서재 이야기하면서 너무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그런 느낌이었어요. ㅎㅎㅎ

icaru 2015-10-2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ㅋㅋ
부럽습니다,, 오프에서 얼굴 좀 보자는 제안을 들은 적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본적은 있는데,,,
역시나 저는 그런 엄청나게 엔돌핀 도는 일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ㅋㅋ 그래도 단발머리 님은 실제로 한번 뵈었음 싶은 마음 간절이네요~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이 될 것도 같은 d님도 뵙고 싶고,, 저 모임에 나오신 모든 분들 궁금해요^^ 이니셜만 갖고도 모르겠는데,,, 손만 보고 맞춘 분은 왓우!!! ㅎㅎ

2015-10-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0-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명 다 맞힌 분, 누굽니까! ㅎㅎㅎ

보슬비 2015-11-01 23:58   좋아요 0 | URL
오호.. D님이시당!!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5-11-02 08:39   좋아요 0 | URL
일단 a로 시작하고 e로 끝나는 닉네임을 가지신 분이 세분을 단박에 맞추셨구요.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잘도 맞추셨어요.
요기 위에 ㅂ으로 시작하시는 분도 그러셨지만, 다들 D님은 누군지 알겠다고 하시더라는....
왜 그럴까요, 다락방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보슬비 2015-11-02 08:41   좋아요 0 | URL
a님도 누군지 알겠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5-11-0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보슬비님.... 이런 놀라운 추리력.... 명탐정 보슬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