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 클로드 파스롱이 함께 저술한 이 책은 유럽 사회학 연구소에서 수행한 여러 연구와 공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1960년대 프랑스의 교육체계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분석했다. (알라딘 책소개)

계급과 교육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점과도 일치한다. 남녀 7세 부동석에, 종아리 내놓고 다니는 여성에 대한 경시가 대세였던 조선이 대학 진학률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러버리는 대한민국으로 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한 동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가.

내 생각에 제일 중요한 동인은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분단. 이전에 한국을 구성하고 유지시켰던 유교적 관념의 아성이 일시에 붕괴되고, 자본주의 수입으로 인해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세계, 과거와는 다른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계급이 재생산되고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기제는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식민의 역사가 있었고, 전쟁이 있었다. 우리는 전부 '0'이었다. 해방된 조선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은 집단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밖에 없어야 할 테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 가난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건사할 여유가 없었다. 약삭빠르게 대응한 친일파들은 자녀들을 야무지게 유학 보내고, 교육시키고, 나름 나름 결혼시켜 현재에는 명문 가문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을 테다. 하지만, 전쟁 이후, 한국에서 상류층으로의 진입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 무엇보다 '돈'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은 인맥,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학연은 교육을 통해 완성된다. 상위 계층/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며 확실한 방법이 교육이었다. 입신양명의 전통은 명문대 입학으로 이어진다. 물론, 나는 이것이 한국의 임금 체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 체계의 변혁만이 한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인 대학 입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한국의 고질병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런 나를 보라),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여전히 학력은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책의 주요한 주장들은 모르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알고 있는 사실들의 확인에 가깝다. 이 도표가 이 책 전체를 보여준다.


농민, 산업 노동자, 고용직, 하급 관리직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독서 카드를 덜 사용하고,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서 라틴어를 선택할 가능성이 낮고, 남은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상급 관리직, 자유 전문직 부모를 둔 학생들은 인류학과 제3세계에 관심이 많고,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서 라틴어를 선택할 확률이 높고, 부모 집에서 같이 살며 경제적 조력을 충분히 받기에 여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


가장 '교양 있는' cultivés계층에서야말로 아마도 문화를 숭배하도록 설교하거나 문화적 실천에 입문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모가 대개는 문화적 열의 외에는 별달리 전수할 것이 없는 프티부르주아 계층과는 대조적으로, 교양 계급 classes cultivées은 문화에 대한 애착을 끌어내는 산발적인 자극들을 구사한다. 그것들은 일종의 은밀한 설득을 통해 훨씬 더 뛰어난 효과를 발취한다.(43쪽)


나는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에 밑줄을 긋는다. 노력 없이. 노력할 필요 없이.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둘째가 이만 년 만에 공부를 하겠다고 스카에 간다고 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간 게 아니고, 작년에 남편이 스카에 100시간을 결제해 둬서 아까워서 가야겠다 하고 갔다. 그래, 그렇게라도 그 시간을 쓰거라, 했는데, 둘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공부를 해볼까 하고 파일을 열었는데, 시험 범위에 버틀러가 있었고. 버틀러를 보니 엄마가 생각나 그 화면을 캡처해 보낸 것이었다. 아, 버틀러를 보고 엄마가 생각났다니. 일순 감동한 나는, 감동에 그치지 않고 버틀러의 신간을 찍어 보낸다. 버틀러 신간이되 아직 읽지 못한, 친구의 귀한 선물이라 김치냉장고 옆, 북 트롤리에 고이 모셔든 바로 그 버틀러를 말이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엄마를 생각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기특하고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둘째가 캡처해 보낸 화면에는 버틀러가 있었다. 페미니즘 이론의 최상급, 바로 그 버틀러가 말이다. 둘째의 메시지가 이토록 반가운 것은 화면 속 인물이 버틀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둘째가 나를 생각했다는 사실 때문인가.

물 마시러 잠깐 나왔다가도 김치냉장고 위 책 무더기의 제목을 꼭 훑고 가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버틀러를 읽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신통방통한 바로 이 순간. 하지만, 만약 그 인물이, 아들이 화면을 캡처해 보낸 인물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김동률? 조인성? 전지현? 이었다면, 나는 버틀러 때만큼 즐거워했을까. 기뻐했을까. 흐뭇해했을까.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기쁨은 그 인물이 버틀러였기 때문이다. 정희진 선생님이어도 그랬을 것이고, 해러웨이여도 그랬을 것이고, 필립 로스여도 그랬을 것이지만. 그 인물이 버틀러여서 나는 기쁘고 즐거웠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읽고 쓰는 나이지만, 그래도 그 인물이 버틀러여서 기뻤던 건, 내 안에도 문화적으로, 지적으로 '상층부'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작은 기쁨이, 내가 그 무엇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노력했다면, 그것이 의도적 노력의 결과라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교양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다. 왜냐하면, 나는 버틀러를 읽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버틀러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이렇게 발견하는 것이다. 혹은 발견되는 것이다. 초경량 미니 슬림 프티 부르주아지에도 속하지 못한, 속하지 못하는 이런 나를.


결국 어떤 문화적 활동에 고유하게 문화적인 특질을 부여하는 것은 그 활동을 수행하는 개인적 방식이다. 조롱 섞인 경쾌함과 거침없음, 재치 있고 세련된 우아함, 규약에 따르는 자신감은 편안함, 혹은 가식적 편안함을 허용한다. 이는 상류계급 출신 학생들의 징표이기도 한데, 그런 매너는 거의 언제나 엘리트에 속해 있다는 기호 역할을 한다. - P42

프티부르주아(농민이나 노동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출신의 아이는 교양 계급의 자녀에게는 그냥 주어진 것을 고생스럽게 습득할 수밖에 없다. 스타일, 취향, 에스프리, 한마디로 삶의 기술과 방식 말이다. 이는 어떤 계급에게는 자연스러운데, 그것들이 바로 이 계급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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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4-24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님이 버틀러를 읽으셔서 어롱이에게는 그 취향이 그냥 주어졌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버틀러를 누가 쉽게 읽겠어요? 그치만 아 이거 우리집 김치냉장고 옆에 있는 우리 엄마 책이지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과 버틀러가 누군지 모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두 권이나 사두고 읽지 못하고 있는자)

단발머리 2026-04-25 10:37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저는 항상 제 입장만 생각했는지라. 아롱이에는 버틀러가.... 아무렇지 않은 그냥, 그냥 버틀러겠네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롱이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님이 선물해주신 책도 버틀러입니다. 곧 읽겠어요!!!의 결심을 다시 한 번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24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에 책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더 교양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 책들을 읽는게 아니어도, 나중에 어떤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어 들어봤는데?‘ 가 된다는거죠. 위의 아롱이 경우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집에 버틀러 책이 있고 또 엄마가 버틀러를 읽는 사람이고, 설사 엄마가 버틀러를 ‘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버틀러를 삶의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되면, 어? 우리 집에 있는데? 이렇게 되는거죠. 그 사람은 버틀러가 사람 이름이냐 새로 나온 빵이름이냐 갸웃하는 사람보다 일단 한 발 더 앞서 나가게 되는거죠. 저였어도 아주 기뻤을 것 같고 어쩐지 뿌듯했을 것 같아요. 멋진 엄마 단발머리 님, 잘 자라는 아롱님..

문제는, 저희 집에는 세상 교양있게 자라게 해줄만큼 책이 많은데, 그걸 보고 자랄 자식... 이 없다는 겁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늙으신 부모님과 같이 늙어가는 나... 샤라라랑~

단발머리 2026-04-25 11: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지요. 저는 참말로 ㅋㅋㅋㅋㅋㅋ기쁘고 즐겁고 뿌듯했습니다. 위의 건수하님 댓글도 그렇고 다락방님도 댓글에서 말씀해 주셔서 더 확실히 알게 된 건데요. 제겐 멀었던 버틀러, 자랑스럽고 어려운 버틀러가 아롱이에게는 김치냉장고 위 책무더기 위의 그냥 그 버틀러라는데 생각이 미치니깐, 그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제게는 멀었지만 아롱이에게는 그냥 버틀러 ㅋㅋㅋㅋㅋ

제 아이들은 제 책의 제목을 알고는 있지만 읽지는 않거든요ㅋㅋㅋㅋ 다락방님들의 조카들도 다락방님 서재를 좋아하니깐 저와 같은 경우입니다. 제목만 아는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여 ㅋㅋㅋㅋㅋㅋ 예쁘게 건강하게 잘 자라다오!

햇살과함께 2026-04-25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지 않아도 서재에서 이름만 들어본 어려운 작가의 책 읽는 이런 페이퍼 보면 반가운 것과 같은 거겠죠 ㅎㅎ
단발머리님 읽는 난해한 책들 보며 저도 즐겁습니다^^

단발머리 2026-04-25 11:38   좋아요 1 | URL
헤헤헤~~ 역시나 우리 알라딘 이웃님들 따뜻한 댓글에 제가 ㅋㅋㅋㅋㅋㅋ 이런 페이퍼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난해한 책들, 책제목 열심히 전파하며ㅋㅋㅋㅋ 제가 함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된 건 이번 학기부터인데…

나도 가끔 멋을 내고 싶어. 예쁜 가방을 사고 싶어.. 이럴 때. 나의 가장 큰 적은 책이어서, 책이 내가 좋아하는 책이 그 가방에 들어가냐 마냐가 선택의 중요한 요소였으니. 책 안 되면 시집이라도(시집은 책 아니냐.) 들어가는 가방을 사곤 했다.

그러니깐 그 가방이 어떤 가방이던지 내 가방엔 책이 들어가야 하고. 작년에는 책보다 킨들을 들고 다닐 때가 많았으나.

올해는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집인지라, 게다가 작년처럼 차로 출퇴근하는 게 아니고 ‘걸어서 출퇴근’(사실은 퇴근만) 모드인지라 책을 안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그래서 오늘처럼 집 가는 도중에 잠깐 들린 새로 발견한 커피숍에서 펼칠 책이 없 …. 책 없이 커피가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 대타로 수첩이 등장하고 마는데…


내용은 그제 읽고 정리해둔것.


부르디외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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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4-17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가 책을 안 들고 나가셨다구요?????????????????!!!!!!!!!!!!!!!!!!!!!!!!!!!!!!!!!

단발머리 2026-04-19 17:15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그랬고요. 그랬는데.... 책 없으니 아쉽네요. 하하하!

건수하 2026-04-17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정리하면서 읽으시는군요? 단발머리님 글씨 좋아요 ^^

단발머리 2026-04-19 17:16   좋아요 1 | URL
네, 키워드만 쓰면서 정리했어요. 건수하님이 제 글씨 좋다고 하셔서 제 기분이 폴짝폴짝!!

망고 2026-04-17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단발머리님 글씨 저도 좋아요😍

단발머리 2026-04-19 17:16   좋아요 0 | URL
오오옼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님도요? 이럴 수가! 그래서 제 기분이 폴짝폴짝 날아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4-18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카페 갔는데 책 없을 때… 너무 슬프져 ㅠㅠ

단발머리 2026-04-19 17:17   좋아요 1 | URL
커피의 소중한 의미가 퇴색되었던 것입니다. 슬픈 마음 가눌 길 없어 저 수첩을 꺼낸것이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18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것입니다. 걷기 책 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어깨야, 내가 잘할게..

단발머리 2026-04-19 17:18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일주일에 2틀 정도는 백팩을 메고 다니거든요. 근데 그것도 보통일이 아니더라구요. 마침 그 날은 백팩이 아니어서 책이 없었사오며~~~
다락방님 어깨와 허리, 그리고 다리도 힘을 내야합니다. 걷기와 책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책읽는나무 2026-04-21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없어도 메모 수첩이라도 읽는 마음.
진정한 읽는자의 자세로 보입니다.
보통 이럴 땐 핸드폰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는데 말이죠.
역시 읽기 학구파.ㅋㅋㅋ

단발머리 2026-04-23 22:01   좋아요 1 | URL
저 오늘은 외출할 때, 책 가지고 나갔는데요. 커피숍에 안 가서 ㅋㅋㅋㅋㅋㅋ 커피&책 사진이 없는 것입니다.
읽기 학구파~~ 너무 좋네요. 올해 저의 최애 별명으로 지정하렵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통념, 그리고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문화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변동되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200년 전에도 인간은 인간이었고, 1만 년 전에 인간이 느꼈던 희로애락, 애증과 분노, 기쁨과 환희는 지금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 다기 보다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남성과 다른 하나의 동일체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특질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 그런 인식에 의해 여성 집단을 강제했던 '여성 혐오 문화'의 시작을 거다 러너는 농경의 시작 이전으로 보고 있다. 가부장제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나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여성이 한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면서, 여성 집단 전체가 남성 집단 전체에게 포획되어가는 과정 말이다. 농경, 즉 정착 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여성 지위의 주요한 변곡점은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 책 『임금의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여성을 어떻게 무력화시켰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가 상류층 여성들의 피지배화 과정을 추적했다면, 실비아 페데리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들이 피지배화 과정을 파헤친다.











『제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남편이 소유한 재산이 막대할수록 아내는 그만큼 더 가혹하게 예속된다'(134쪽)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현실판이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이다.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고학력자 여성들이 직업 대신 완벽한 몸매 가꾸기와 명품에 집착하고,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올인하는 모습(24쪽)이 그려진다. 상류층 여성들이 먼저 포박되었다. 그다음은 프롤레타리아 여성 차례.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세대 재생산 문제를 일축하면서 자본이 노동자의 "자기 보존 본능에 의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186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가 과로, 영양 부족, 지속적인 전염병 노출로 인해 "사멸 위험에 놓여 있다"는 두려움이 자본가 계급에게 주요한 위기를 안겨주고 있었다. 실제로 수년간의 과로와 저임금은 노동자의 재생산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산업 분야에서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30세 미만이었다. (141쪽)

마르크스는 가사 노동에 무관심했다. 마르크스가 가치 있다고 여긴 노동에 가사 노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의 세대 재생산을 '본능'의 문제로 이해했기에 임신과 출산을 피하고자 했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행동은 그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무분별한 착취의 결과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돈 만들어 내는데 이골이 난 자본가 계급이 상황의 위급함을 먼저 알아차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노동자, 더 건강한 노동자가 필요했다.

개혁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가족과 재생산에 대한 노동 계급 여성의 광범위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해 자신의 임금을 벌고, 독립적이며,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다른 여성 및 남성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영국 노동 계급 여성, 특히 공장의 "소녀들"은 "다음 세대 노동자를 생산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집안일을 거부하고 거친 매너와 남성 같은 습관-흡연과 음주-으로 부르주아적 도덕성을 위협했다. (139쪽)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사회대변혁의 기로에서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이 원래의(?) 자리인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138쪽)했다. 여성, 아동과의 경쟁을 물리치면서 남성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고, 이는 더 높은 임금 책정으로 이어졌다. 남성/임금노동자와 여성/가정주부로의 설계가 점점 더 정교해졌다. 페데리치는 전업 프롤레타리아 가정주부의 출현이 '절대적 잉여' 가치 추출에서 '상대적 잉여' 가치 추출로 이행(91쪽) 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가정 전체의 수입을 책임지는 남성 노동자와 전업 가정주부의 조합은 이렇게 탄생했다.

여성의 자리만 가정이 아니고, 남성의 자리 역시 가정이다. 남성만이 산업 현장에서, 일터에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처럼 여성도 산업 현장에서, 일터에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목소리를 얻을 때마다 '여성은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반복된다. 공유지에서 마녀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것도 여성이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며 떠밀리는 것도 여성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의 주체로 호명되는 사람 역시 여성이고, 한없이 추락하는 출생률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사람도 여성이다. '임금의 가부장제'의 민낯이 드러난 이후, 여성들은 가정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이중, 삼중 노동의 굴레로 여성을 더 억압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생각, 어떤 도전, 어떤 문화가 필요한 걸까.

건강하고 친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자존을 지켜가며 여남이 공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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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4-1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자꾸 돌아가래.. 지들은 가정에서 안 왔나.. 흥칫뿡!
단발님 잘 읽었어요☺️

단발머리 2026-04-11 13:36   좋아요 1 | URL
저처럼 집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참말로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점심 먹고 산책 나갑니다.
귀한 댓글 감사링! 😘

바람돌이 2026-04-12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 먹고 산책 갔다왔습니다. 단발머리님은 지금 산책 중? ㅎㅎ
제 친구 딸이 공대생이었는데요. 남자애들이 대부분인 학과에서 이 놈의 남자애들이 정말 의도적으로 지들끼리 시험 족보고 뭐고 독점하고 절대 여자애들을 끼워주지 않는답니다. 안 그래도 남성혐오증이 심하던 친구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혐오증이 더 심해졌고요. ㅠㅠ. 오랜 역사에서 남성들은 법률과 관습을 종횡무진하며 사회에서 여성들을 배제해왔는데, 요즘은 법률과 관습이 무너지는 상황이니 남자들이 지들끼지 진짜 대동단결하는 지경에 이른거 같네요. 뭐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합니다.원래 무서울 때 많이 짖잖아요. ㅎㅎ

단발머리 2026-04-13 22:11   좋아요 1 | URL
남자들이 다수인 세계에서 따님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게 진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네 현실이고 우리의 현재네요 ㅠㅠㅠ
남자들의 대동단결이야 인류 문명 시작때부터 한결같기는 해요. 여성들도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남성들의 행복도도 높아질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서관이 커피숍보다 좋은 이유. 첫 번째는 화장실이다. 신축 도서관의 화장실은 공항 화장실급의 퀄리티를 자랑하는데, 인근에 새로 생긴 커피숍의 화장실보다 넓고 깨끗하고 쾌적하다. 두 번째는 커피. 예전에 살던 동네의 도서관에서는 물만 음용이 가능했는데, 근래 이용하는 도서관에서는 음료까지 음용이 가능해서 커피를 들고 도서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옆자리에 앉은 분은 공부하다가 도중에 밖으로 나가 한 잔 사들고 오셨는데, 뜨거운 상태라 잠시 뚜껑을 열어놓으셔서 근처에서는 향긋한 커피향이 솔솔~~ 세 번째는,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옆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볼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다른 분들도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보일 테다. 나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마저 읽었고, 상호대차한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학』을 훑어봤다. 내 오른쪽에 앉으신 분은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나> 프린트물을 펼쳐 놓고 BBC 뉴스와 미드를 번갈아 시청하셨고, 내 앞에 계신 분은 『친절한 주식책』을, 그리고 왼쪽의 젊은 청년은 『항공안전법』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 다른 책들을 배경으로 영어원서 같이읽기 4월의 도서 『Red, White & Royal Blue』의 사진을 한 장 남겨 주시고.













늦은 밤, 친구들의 선물이 도착했다. 알라딘의 <선물하기> 아이디어는 천재적이다. 책 선물은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갑고 고마운데, 책을 보낼 때의 마음은 친구들마다 제각각이다. 같이 읽기를 권하면서 보내주는 책 선물이 있고, '네 책장에 이 벽돌책을 꽂아주고 싶다'해서 당도하는 책 선물이 있다. 일단 갖고 있으라며 건네주는 책 선물이 있고, 그리고, 아무 설명 없이 아무런 예고 없이 도착하는 책 선물이 있다. 행복한 시절이라고 하고 싶은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은 친구들이 보내준 책들의 무거움.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두께. 다른 벽돌책들과의 두께 비교샷이 유행이라고 해서 나도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았다.





이제 진짜 게으름 피우지 말고 시작하자.... 고 나에게 말하는 시간.

... 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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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05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 벽돌책들 사이에서도 남성 판타지는 압도적이군요. 남성판타지를 이길 책은 없는걸까요..
신축 도서관 저도 가보고 싶네요. 레드 화이트.. 책 뒤로 책장에 책 가지런히 꽂힌거 왜이렇게 좋죠. 우리집도 저렇게 가지런히 꽂힌 거였으면.. ㅠㅠ

그나저나 <여전히 미쳐있는> 너무 얇은거 아닙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

단발머리 2026-04-05 23:0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남성‘과 ‘판타지‘에 대해서, ‘남성과 판타지‘, 혹은 ‘남성의 판타지‘ 혹은 그 무엇에 대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 말이 얼마나 많았던 걸까요? 차근히 읽으며 따라가봐야겠습니다. 아직, 시작을 못 했지만요.

<여전히 미쳐있는>도 일반적인(?) 책이 아닌데 말입니다. (찾아보니 600쪽이네요) 저 책탑 속에서는 얼마나 얇고 단정한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망고 2026-04-05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 화이트 저 책 재밌어 보여서 저도 읽어볼까 말까 하는 상태인데요 실물 책 구경하려고 도서관 간 김에 찾아 봤더니 없어서 상호대차 할까말까 하다가 그냥 왔어요ㅋㅋㅋㅋㅋ읽어보셨나요? 재밌나요?
아니 근데 커피 들고갈 수 있는 도서관 새로운데요? 옆에서 커피향 풍기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6-04-05 23:30   좋아요 1 | URL
저는 아주 완전 ㅋㅋㅋ 앞부분만 읽어봤고요. 유튜브에서 영화 예고편이랑 유명한 클립을 몇 개 봐서 대충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한 번도 안 읽어본 장르인지라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같이 읽는 분들 곁에 껴서 읽어볼까 합니다. 망고님도 컴온~~~!!

커피 마시면서 책 읽을 수 있어서 커피숍이 부럽지 않은 도서관 되겠습니다. 참고로 핫과 아이스의 비율은 2:8 정도입니다^^

책읽는나무 2026-04-06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책사진은 영원한 진리!ㅋㅋㅋ
먼저 장강명씨 신간은 지금 남성 판타지 책 출간일에 발맞춰 딱 잘 나온 책인 것 같아요. 안그래도 올해는 집에 있는 벽돌책 좀 읽자! 그런 생각도 좀 있었는데 강명씨 책이 눈에 띄었고 읽지 않아도 뭔내용인지 알겠으니 일단 내 책부터 읽겠노라! 했더니 더한 벽돌이 날아와 흠! 계속 쳐다보고 있어요.ㅋㅋ
집에 있는 다른 벽돌과 비교 인증샷이 유행이래요? 그럼 또 유행에 민감한 저로선 엉덩이가 들썩들썩..ㅋㅋㅋ
단발 님네 다른 벽돌책들도 찬란하게 빛나네요. 그래도 남성 판타지가 1위!(저도 그렇더군요.ㅋㅋㅋ) 당분간 이 벽돌책을 깰만한 책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영어 원서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사다 모으기만 해서 이번 달 책은 안 샀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진짜 읽어보려고 했는데….^^˝

음료를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신간 도서관도 부럽습니다. 저흰 집에서 먼 신간 도서관이 그런 것 같긴 하던데 대부분의 이용객들이 경직되어 있어서인지(아님 몰라서일지도?) 음료를 들고 가지 않는 분위기라(젊은 대학생들은 들고 들어오긴 하더군요.) 저도 왠지 눈치가 보여서 못들고 들어가겠는 거에요. 그래서 맨날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자거나…ㅋㅋㅋㅋ 저의 도서관 활용 풍경은 늘 그런 풍경이에요.

단발머리 2026-04-06 22:26   좋아요 1 | URL
저는 장강명씨 신간 대출해 왔는데 그 책은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네요. 벽돌에 벽돌을 더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벽돌책의 시대가 되겠습니다. 남성 판타지가 1위 맞고요. 당분간 더 두꺼운 책은 출간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

처음에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아니.... 도서관에서 커피를? 그랬는데 말이지요. 요즘에는 유행하거나 새로 생긴 커피숍의 인기 동향까지도 확인이 가능하답니다. 뜨거운 커피는 좀 조심스럽기는 한데, 아무튼 현재까지는 잘 운영되고 있는 듯 합니다.
책 읽다보면 사실 자주 졸리지요. 저는 커피 마시는데도 중간중간 잠을 자기도 한답니다. 헤헤.

잠자냥 2026-04-0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손 백수가 쏘셨군요! 그 인간 위만 큰 게 아니라니까요. 하여간…🤣

단발머리 2026-04-06 22:1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푸하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

독서괭 2026-04-0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돌을 선물받으셨군요… ㅋㅋㅋㅋ 아니 근데 정말 위용이 엄청나네요. 우리 본성의 선한천사가 그나마 비슷해보이는데 그래도 남성판타지가 더 두껍죠?
Red white는 오늘 도서관에 대출신청 했습니다. 저도 안 읽어본 장르라 어떨지.. 올리브부터 끝내야 하는데 말이죠 ㅠ

잠자냥 2026-04-06 14:15   좋아요 1 | URL
저 벽돌 읽는 동안 나 존 적이 없음... 졸다가 떨어뜨리면 3호 사망할까봐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4-06 14:29   좋아요 0 | URL
어우 ㅋㅋㅋ 3호가 큰일 했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6-04-06 22:16   좋아요 1 | URL
일단 어떻게 독서대 위에 저 벽돌을 올릴지가 첫번째 난제가 되겠습니다 ㅋㅋㅋ 그 어려운 걸,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Red white 일단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구요.

3호야~ 수고가 많다. 많이 무거운 책이니 각별히 조심하거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09 10:24   좋아요 1 | URL
남성 판타지, 저는 독서대 위에 올릴 생각도 못하는데... 올라...가나요? 시도도 안해봤어요. ㅋㅋㅋㅋㅋ
 











『의자의 배신』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확실히, 혹은 압도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의 제일 중요한 생각은 편안함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의자가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해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제목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책을 절반쯤 읽고 있던 어느 날 밤, 남편에게 '스탠딩 책상'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서치한 책상의 링크를 남편에게 보냈고, 남편은 바로 주문했다. 의자에 그대로 앉아 책장을 넘기는데 바로 그다음 페이지에 '스탠딩 책상'이 '의자의 배신'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장이 나와 버렸고. 그리고 거실을 바라보니 커다란 스탠딩 책상을 놓을 자리가 없.... 일단 결제를 취소하라 했다. (해당 업체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밑줄은 '앉는' 일에 있지 않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와 인간 신체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인간의 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밝혀낸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가장 확실한 자세는 '고정'된 자세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간에게 제일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유익한 자세를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멈춰있지 않은' 그 상태, 움직이고 있는 그 자체가 인간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따라 하기 쉽고, 오래 할 수 있는 동작은, 빠밤~

이 연구에서 말하는 빠른 걷기란 1.6 킬로미터를 13분 24초에 걷는 정도를 의미한다. ...... 걷기가 우리에게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 논문은 단 한 편도 없다. 걷기는 허리에도 좋지만, 생리적, 생물학적, 심리적 보상과 심지어는 환경적 보상까지 수많은 보상을 준다. 걷기는 연조직과 경조직 모두에게 기적의 치료제다. (234쪽)

고강도 인터벌 운동에 비견될 수 없는 걷기의 탁월함. 글 쓰는 일이 직업인 이 책의 저자는 의자의 배신을 반사하고, 이 간단한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 집필 장소를 다소 떨어진 세 곳으로 정해두고, 세 장소를 옮겨 가며 글을 쓴다고 한다. 트럼프는 전쟁광이고 유가는 계속 올라 천정부지이고, 겸사겸사 나도 도보로 출퇴근을 하겠다는 알찬 계획을 세웠다. 출근한지 3일째라 3월 대부분의 기록은 동생과의 즐거운 외출 기록이지만, 아무튼 꾸준히 실천하겠다는 각오만은 확고하다.


어제는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 갔다. 작년 3월에 헬스장 1년권을 끊었는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 않아 뜨거운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 지나,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되었다. 연장의 기운은 없고 일단 사물함 짐이나 좀 빼자 하고 헬스장에 갔는데. 아...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이 힘찬 기운. 오전 10시 28분에 맞이하는 이 활기찬 운동의 아우라. 사람들은 모두들 즐겁게, 바쁘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연예인만 오전에 운동하는 게 아니고, 이분들 다 오전에 운동하시는구나.

나는 오랫동안 사회적 고용 관계를 통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둘 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1년 남짓밖에 다니지 않았기에 오전 시간을 주로 아이들과 함께 보냈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오전 시간에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사회에서 말하는 생산적인 일은 아니더라도, 내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장보기와 도서관 가기, 그리고 책읽기를 하며 보냈다.

여성의 일에 대해 논할 때, '경제적 자립'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힘으로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얻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한 경제적 자유는 여성의 권리를 강화해 줄 뿐 아니라,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협의와 문화의 대변혁 없이 여성에게 '사회적 일'을 강제하는 경우, 이는 오히려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중, 삼중 노동의 새로운 굴레가 여성에게 덧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생산의 중심이자 욕구의 사회적 세계로서 가족이 꼭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친밀한 착취』, 268쪽)

이에 대한 대답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책임 있는 답변이 되지 못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낳아준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낳아주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가정 내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재생산 노동이 정당한 노동으로, 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건 당연히 19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감정 노동을 포함한 모든 돌봄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여성들에게 더 많이 '일하라'라고 말하기보다는, 남성들도 '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쪼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 된다. 문제는 임금을 유지한 채 노동 시간을 줄여가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초대 안 했는데 벌써 와 버린 손님, AI가 있다.

나는 인공지능과 휴먼노이드의 결합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행이 가능하고, 게다가 고전을 비롯한 인류 문명의 정수를 섭렵해 인간 심리를 폭넓게 이해하는 '척하는' AI가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졌을 때의 그 찬란한 순간을. 나는 무서워하면서도 궁금해한다.

인간과 AI의 차별점이 무엇이 될 것인가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일 테지만, 그 중심에 '몸'이 있을 것만은 확실하다. 오전에, 나만을 위한 소중한 그 시간에,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필사를 하는 것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지만, 오전 시간에 걷거나 달리거나 요가를 하거나 줌마댄스를 하는 것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나만 몰랐다.

다들 오전에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찾은 새로운 일, 의미 있고 중요한 그 일은.

걷고 뛰고 달리고 춤추는 것이었다. 몸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전에도 가능한 일.

걷고 뛰고 달리고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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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4-01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탠딩 책상 쓴다고 얘기하려 했는데…;;

이제 오전에 운동하시는 건가요? 😊

단발머리 2026-04-01 22:08   좋아요 0 | URL
아........ 건수하님 잘 사용하고 계세요? 쓸 만한가요? 저도........살까요? ㅠㅠㅠㅠㅠ 거실에 둘데가 없는데 말이지요.

일단 사물함에 짐을 빼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걸어서 출근하니 40분 조금 더 걸리는데 저녁 되니 다리가 좀 아프네요. 어쩔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1 22:45   좋아요 0 | URL
저는 디스크 때문에 사무실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느라 쓰고 있어요 ^^ 스탠딩 책상을 안 쓰셔도 자주 일어나서 스트레칭 해주고 하는게 좋다고 해요.

다리가 아픈 것은 운동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마사지 좀 해 주시고 일주일 정도 해보신 뒤에 결정하면 어떨까요 :)

단발머리 2026-04-02 21:19   좋아요 0 | URL
오늘 건수하님 말씀대로 책 읽다가 자주 일어나서 돌아다녔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아침에 요가할 때 폼룰러 운동도 더해주었고요. 도보로 출근하기 힘들기는 하네요. 자신이 없어지는 어떤 봄날입니다^^

망고 2026-04-0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다들 운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다니는 수영장 위에는 헬스장 있는데 거기도 사람들이 가득해요. 옆에 테니스장에도 복싱 배우는 곳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걷기도 참 좋은 운동이죠. 특히 날씨 좋을 때 걸으면 기분도 좋고 볼 것도 많고요ㅋㅋㅋ 저는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좋아해요.
아 그런데 빠르게 걸어야 하는구나...이건 좀...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6-04-02 21:46   좋아요 0 | URL
네, 사람들 정말 부지런하게 열심히 운동하더라구요. 저는 학교 다닐 때도 체육 시간에 어떻게 하든 뭐든 안 하려고 도망다니던 사람이라서 그게 아직도 신기하기는 하고요.
저는 걷는 것도, 빠르게 걷는 것도, 달리기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해야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하려고 하는데...
헬스장은 아직 용기가 안 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6-04-02 0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서 일하는 책상 엄청 좋아보이더라구요. 저도 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열악한 시민단체 재정 수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값비싼 아이템이었습니다.

대신 일하다가 자주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자주 몸을 쭉쭉 펴줄 수밖에 없지요. ㅎㅎㅎㅎ

사무실에 앉아있는 일을 해도, 외부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해도 모두 힘든 일이라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6-04-02 21:48   좋아요 0 | URL
각도가 조절되고 높이가 조절되는 것들은 가격이 좀 나가더라구요. 저는 그냥 고정된 거를 알아봤는데 요즘 고등학교 뒤쪽에 몇 개씩 놓아둔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스탠딩 책상에서 고정된 자세로 있는게 더 나쁘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더라구요. 자주 일어나서 스트레칭하는게 더 좋다고요.

다락방 2026-04-0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며칠전에 아차산 다녀왔거든요. 와, 정말 사람들 많더라고요. 모두들 운동하고 있다는 그 말은 참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예전엔 산에 가면 다들 저희 부모님 또래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산에 가면 저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도 많아요. 게다가 혼자서 산에 오는 젊은이들도 많고요. 지난번에 태백산 갔을 때였나, 혼자 온 여자분 사진도 찍어드렸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많이 걷고 또 달리기도 하고 요즘은 요가도 다시 하고 있긴 하지만, 산에 가는 건 정말 좋은 운동인 것 같아요. 산에 오르고 또 내려올 때 쓰는 근육은 평소 쓰는 근육과도 그리고 달리기와 걷기에서 쓰는 근육과도 다른 근육이라는걸 알겠거든요. 오르막길 오를 때 허벅지와 또 종아리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지냅시다, 단발머리 님. 걸어서 출퇴근하는거 처음엔 좀 힘들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힘든 것도 줄어들면서 체력이 향상되어 있을거에요. 단발머리 님, 화이팅!! >.<

잠자냥 2026-04-02 15:26   좋아요 1 | URL
산을 걷다가 철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칠봉이 아님)
(제가 요즘 산책하다 보면 아... 철봉에 매달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 ㅋㅋㅋ)

다락방 2026-04-02 16:00   좋아요 1 | URL
헉, 잠자냥 님, 저를 관찰하고 계시나요? 저 요즘 철봉 보고 매달리기 하고싶은데, 저희 집 근처에는 일자산을 가야만 비로소 철봉을 볼 수 있어요.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에 철봉은 너무 낮아서 매달릴 수가 없고, 동네 다른 놀이터도 철봉이 없고요. 세상에 철봉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나요. 그래서 일자산 갈 때면 철봉에 매달리고 옵니다. 이게 처음 매달릴 때는 1초도 매달리지 못하고 바로 떨어졌거든요? 이젠 10초 이상은 매달릴 수 있어요. 겨드랑이 쫙쫙 늘어납니다. 손바닥도 아프고요. 매달리기가 척추에 그렇게 좋대요! 처음엔 철봉 잡자마자 떨어졌는데 어느 순간 4초 정도 할 수 있게 되더니 이제 10초 이상 매달릴 수 있어서 씐나요. 결국 이대로 친업 까지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면, 매달려보세요, 잠자냥 님!!

다락방 2026-04-02 16:00   좋아요 2 | URL
아, 일자산에서 매달리는거라 할아버지들의 잔소리는 수시로 끼어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02 16: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도심에선 너무 귀한 그 이름... 철봉
철봉아!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너무 내 허리 펼치고 싶다......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6-04-02 21:5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 저는 산에 올라가면서 내려올 일을 걱정하는 때가 많아서 말이지요. 지금도 산을 생각만 해도 ‘하산‘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근래에는 건강하게 지내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자주 실감합니다. 걷고 뛰고 달리는 일이 너무나 필요하죠. 물론.... 저는 하기 싫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억지로 하는 거죠. 해야 되서 하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걸어서 출퇴근은 2회차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매일 이렇게 하지는 말자~ 라는 결심을 했더랍니다.

잠자냥님 / 잠자냥님은 자전거도 타시고 테니스도 하시는데 철봉까지요? 와우~~ 정말 대단합니다.
북한산 둘레길의 휴식 장소마다 철봉이 있습니다. 아주 많아요 ㅋㅋㅋㅋㅋㅋ 북한산이 요즘 외국인들에게도 유행하는 등산 코스라고 하던데요. 철봉을 찾으십니까~ 북한산에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책읽는나무 2026-04-0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자의 배신…저런 책도 있군요?^^
근데 꽤나 강렬한 느낌이 남는 책이었겠어요. 저도 읽었다면 스탠딩 책상 바로 주문했을지도.ㅋㅋㅋㅋ
옛날에 아들 학교에 갔을 때 스탠딩 책상이 뒤에 몇 개 있던데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을 보고 응? 저건 뭐야? 괜찮은 아이템인데? 했었던 생각이 나네요. 근데 가만생각하니 나는 몇 분 안 서 있겠다. 싶어서 도로 의자를 찾아서 앉을 게 뻔해서 스탠딩 책상 갖고 싶은 욕망 포기했었는데 단발 님 말씀하시니 또 갖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가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하시니 음. 그렇군! 또 포기했네요.ㅋㅋㅋ
나 같은 사람은 진짜 도움 안 될 듯.ㅋㅋㅋ
그나저나 3월에 진짜 많이 걸으셨군요?
저는 미세먼지 핑계를 대고 보름정도 겨우 걸었어요. 걷기도 꾸준히 해야 하는데 저는 꾸준히 걷다 안 걷다를 하는 것 같아요.ㅋㅋㅋ
안 걷다가 허리가 아파온다 싶으면 한 며칠 꾸준하게 걸으면 허리가 좀 덜 아프더라구요.
암튼 단발 님도 봄에 걷기 좋을 때 열심히 걸어두세요. 좀 있음 더워서 또 못 걸을테니까요. 봄에 열심히 다리 근육 만들어서 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시길^^

단발머리 2026-04-14 22:33   좋아요 1 | URL
에궁.... 저 이 댓글 이제 봤어요. 분명 알람 울려서 댓글 본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요 ㅠㅠ
저 그날 밤에 ㅋㅋㅋㅋㅋ 스탠딩 주문하고 취소하고....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검색하면서 보니깐 기능이 많지 않으면, 그러니깐 높이 조절, 각도 조절 기능이 없으면 가격이 예상만큼 비싸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3만원대 구입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나 안녕~~
저는 오늘 드디어 손목닥터9988 앱을 깔았습니다. 최근에 독보적 스탬프를 계속 받아서 화이팅하는 기념으로 깔긴 했는데, 솔직히 8,000보는 제게 좀 무리기는 해요.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이것도 더운 여름 오기전에나 가능한 일이라 열심히 해보려고요.
책나무님도 꾸준히 걸으셔서 허리 통증 많이 없어지시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