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 제도화된 수렁들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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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가정 밖에서 일하면서 독립적인 수입을 얻을 자유에 대한 대가로 이중 노동을 한다. (123쪽)

이건 사실이다.

출근을 하게 된 이후, 나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하고 반찬을(거의 만들지는 않지만) 암튼 먹을 반찬을 준비하고, 식구들을 깨워 학교로 보내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아침의 그 '나'이고, 빨래를 시작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을,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거나 집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는다. (이번 주에는 외식 한 번에, 두 번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왔다)

그러니까,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의 내 생활은 100% 바뀌었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예전과 똑같다. 나는 가정 밖에서 일하면서 내 소유의 수입을, 적은 수입을 얻게 되었지만, 가사 노동의 주된 책임자는 여전히 나다.

나는 19년간 전업주부였는데, 그 기간에 직무유기와 태만으로 일관했던 내 생활이 얼마나 나태했는지를 고백하는 순간, 온 세상이 온통 나를 부러워할 것이기에 여기에 뭔가를 보태지는 못 하겠다. 나는 보통보다 살림을 안 하는 편이고, 남편은 보통보다 살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관여나 도움, 협조 등의 단어를 쓰는 거 자체가 불합리하다. 나는 적확한 단어를 골랐다. 살림.)


딸과 장남 아닌 아들을 전부 상속에서 배제하는 베아른의 상속 체계에서 장남 이외의 아들이 법률적, 직업적인 측면에서 '가정부'에 해당한다는 지적은 새삼 놀랍다.(77쪽) 가장과의 결합으로 지위가 결정되다는 게 주요한 포인트인데, 이는 여성이 자신이 결혼한 남성과 맺는 관계와 심각하게도(?) 유사하다.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속한 계급으로 취급(?)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이혼했을 때, 여성은 이혼함으로써 더욱 가난해지고, 남성은 더 부유하게 된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해준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더 이상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이 아니고, 결혼 이전의 직업과 지위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결과적으로는 경력 단절 등의 이유로 비숙련 저임금 노동에 내몰린다. 결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왔던 남성은 이혼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적 지위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 후 남편이 약속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암묵적으로 강요되었던 육아에 대한 강제는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아이와 하나로 묶인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 여성 집단을 고립시키기 위한 첫번째 단계가 '은행 계좌 동결'이었던 이유가, 고소득의 사회적 명망과 지위가 보장되는 '선호' 직업군으로 여성의 진입이 어려운 이유가, 여성들이 주로 수행하는 감정노동, 돌봄노동이 저평가되는 이유가, 여전히 동일 업무에 대해서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돈을 덜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발흥과 플랫폼의 발달, AI의 출현등으로 이제 인간은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기계에게도 손쉽게 대체되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 직접 수행해야만 하는, 아직 기계의 발전이 도달하지 않은 영역에서의 노동, 특히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의 경우, 오히려 남성보다 여성의 노동력이 더 많이 요구되며, 그런 경우 노동자의 임금은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의 여성화'가 가속화되는 와중에 일시적으로는 여성의 노동 참여로 인해 남성에의 예속이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저소득층의 아내가 임금노동으로 인해 폭력 가정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사례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과 교차되는 지점을 '완전히'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여성은, 자신의 젊음과 육체에만 의존하도록 '사회화된' 여성은, 영원히 노동자일 수 밖에 없다. 결혼 상태에서도 그러하고, 이혼 상태에서도 그러하다. 계급의 혁파는 경제에서 시작된다. 노동 혹은 수입, 또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가치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비-소지자란 누구인가? 성인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주로(베아른 지방의 ‘동생‘과 같은 경우를 보자면 반드시는 아니다) 아내다. 아내들은 가정 밖에서 일하지 않을 때 남편의 계급에 결합-사회학 이론뿐 아니라 자발적 사회학에서도 되며, 고유의 위치를 갖지 않는다. - P82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한 상황, 남편과 아내가 처한 상황을 일반 사회학에서는 ‘성의 범주‘라 부르고 가족사회학에서는 ‘역할‘이라 부른다. 그러나 명백히 보았듯 성의 범주는 계급의 범주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계급 내 지위의 범주다. - P87

한편으로 결혼은 제도적인 여성 착취의 공간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 착취 때문에, 그들의 잠재적인 상황(기혼 여성뿐 아닌 모든 여성의 상황에 해당한다)이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여성들에게 결혼이 경제적으로 그나마 가장 나은 경력이 되는 것이다. - P110

아동 양육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장 잘 조명하는 동시에 이혼 이후에도 결혼이 지속한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이혼의 측면이다. 여성이 도맡는 아동 양육은 남편에 의한 여성의 노동 전유라는 가설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덜 분명하던 부분도 뚜렷이 드러낸다. 바로 결혼의 특성인 이 전유가 결혼관계가 끝난 뒤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혼은 결혼의 반대가 아니고, 끝도 아니며, 결혼의 현신이자 변형이라는 것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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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5-13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완독하셨군요. 게다가 멋진 글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 깨달았던것 같아요. 우리 엄마가, 밖에 나가 돈 벌기 전에 가사노동을 하고 밖에 나가 돈벌고 들어와서도 가사 노동을 하는 우리 엄마가, ‘어떻게 저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 엄마가, 아빠보다 훨씬 더 큰 노동으르 감내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지요. 그렇게 힘들게 자식들을 키워오셔서,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정말 잘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고생했으니까 이제 인생을 즐기시라고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러다가도 엄마한테 자꾸 화내고... 하아- (갑자기 자기반성)

아무튼, 같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5-22 10: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엄마가 아빠 사업하실 때 같이 일하셔야해서 다락방님 댓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근데 그렇더라구요. 전, 엄마가 그 말씀 하실 때, 나는 일하면서 밥을 세 번 차렸다... 그 말을 이해를 못했어요. 이게 가능한가요? 왜? 라고 묻지 않았다고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야, 그 일이 내 일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거에요. 아빠는 일하고 밥 드시는데, 엄마는 일하고 밥을 차리고 밥을 드신다는 것을요. 게다가 밥 먹고 치우기까지...........

자기반성으로 얼룩진 우리의 과거를 내려놓고 더 따뜻하고 다정한 효도를 실천하자고요.
다락방님은 이미 잘하고 계신듯. 나만 잘하면 됩니다. (엄마~ 기다리세요!!)

공쟝쟝 2024-05-14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가족과 결혼 제도가 (뭐 과거에는 어쨌는 지 몰라도) 결국 인간 재생산 + 계급 재생산(혹은 계급 탈출 ㅋㅋ)...의 기능이며 장치인 건 맞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저쪽 프랑스보다 더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는 마지막 문단에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가족 안에서의 나는 기능(물론...)적으로 대체될 수 없지만. 사회에서 나는 아주 쉽게 대체되거든요. 게다가 저는 완전한 1인 가구고... 나보다 젊고 영리하고 똑똑한 노동력은 많아요.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노력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너무 지치는 데 요즘은 ai란 경쟁해야 할 거 같아서 근로의욕 더 상실ㅋㅋㅋ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

어쨌든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이고 여성의 생산수단은 몸이예요. 몸. 노동하는 몸, 섹슈얼리티의 대상이자 주체로서의 몸. 살아남지 못하면 남자는 교도소에 가고. 노숙자가 될지 모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혼자이지만 노동시장에서 탈락되는 여자는... 페미니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내 위치에서 현실을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무의식적으로는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도망치듯 결혼을 내가 하고 싶었나 하게 되더라는.

가족이 계급 재생산으로서의 기능이 특화되어버린 현시점의 한국에서... 저는 능력이나 조건이 부족한 타발적 비혼자로서, 가족 혹은 결혼 제도로 탈출하는 여성들을 많이 이해합니다. 정상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로망이 없지 않죠. (가끔 부럽다) 그러나 그 일이 절대 수월하지 않다는 걸 친구들을 통해서 너무 자주 느껴요. 인간이 기능이 아니라 친밀함을 나누는 사연을 지닌 소중한 타자라는 걸 결혼이라는 제도도 가족이라는 제도도 이 급박한 자본주의의 시절에서는 느낄 수 없게 해버리는 듯 합니다. 델피를 마저 사야겠어요~ (본격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탈 노동의 기치 드높이!!)

그나 저나 이 글 왤케 단정합니까? 원래 단정했다고요. 단정적이시네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4-05-22 16:30   좋아요 0 | URL
결혼 제도 안에 있는 제가.... 4인 핵가족, 딸 하나, 아들 하나, 남편 하나(참고; 애인 없음)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참 거시기 합니다만, 그게 사실인 거 어쩔 수 없죠. 인간 재생산과 계급 재생산을 위한 도구죠, 결혼은...
제도적으로 여성을 착취하기 위한 공간인 것도 맞고요. 성공하려는 여자라면, 결혼하지 않거나(미리 알고 피한 경우) 결혼했다면 이혼(알고 나서 피한 경우)하는 게 맞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예전부터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밀함‘의 측면에서 두 사람 사이의 결합/합일/동거에 대해 이야기 했던 거, 그리고, 인류사의 지난한 발전과 퇴행 속에서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 일부의 여성을 보호한 측면을 이야기했던거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작금의 이런 사태, 한국 여성들의 ‘결혼 스트라이크‘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밀함, 사랑, 애정, 돌봄의 원초적 욕망마저도 ‘거절‘한 혹은 ‘거절할 수 밖에‘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모든 영페미들의 혜안과 결단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페미니즘의 본산인 미국의 여성들도 하지 못한 것을, 그 어려운 것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해내고 있어요. 멸망하더라도 나는 굽히지 않겠다. 나는 끝까지 내 삶의 주인이 되겠다.

정상가족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 토론이 저는 이어져야 한다고 보고요. 남자랑 사는 거 아니라도, 꼭 동성 친구랑 사는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가족, 또 다른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입양아 수출이 1위인 이 나라에서 그게 가능할 것인가.... 나는 아직도 가족이라는 이상에 매몰되어 있는가, 하는 고민을......... 맨날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커피랑 초코쿠키랑 먹으면서요.

공쟝쟝 2024-05-22 13:38   좋아요 1 | URL
이렇게 단정한 댓글이지만 내용은 정상 가족이데올로기 철폐임 ㅋㅋㅋ 쿠키 먹으면서 한국의 발전의 원동력 핵심을 부정하는 무서운 사람 ㅋㅋㅋㅋ

yamoo 2024-05-14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미니즘 관련 책은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 유명한 책 몇 권만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페미니즘 책을 읽고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쓰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단발머리 2024-05-22 10:05   좋아요 0 | URL
이제야 아셨다니 제가 막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ㅎㅎ 알라딘 서재에는 페미니즘 책을 읽고 멋진 리뷰를 쓰시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관련된 글, 정말 좋은 글들이 무척 많고요.
가지고 계신 유명한 페미니즘 책 읽으신 후에, yamoo님의 멋진 리뷰 써주세요~~ 멋짐 대열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