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은 사치일까?』

 

 

 

 

 

진짜 이 책을 읽을 것일가, 말 것인가는 도서반납일이 3일 남았을 때 결정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면 2주간 ‘절대소유권’을 획득하게 된다. 뒤에 예약한 사람이 없다면 일주일을 더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때까지 대출해 온 책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면 그 책은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과 도서관 직원분들, 그리고 책을 집까지 운반한 내 팔에 대한 예의상, 반납일이 3일 정도 남았을 때, 그러니까 마지막 반납기일 2-3일 전에는 책무더기 속 책들을 차례로 훑어본다.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읽지도 않을거면서 무거운 이 책을 왜 빌렸을까, 『여성의 남성성』, 『여자들의 사상』), 자리에 앉아 목차를 살펴보는 경우가 있고(『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겨우 29페이지 읽은거야?의 (『신곡: 지옥편』) 경우도 있다.    

나는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과 『올 어바웃 러브』를 읽었기에 이 책은 그냥 간단히 지나가려, 아니, 목차만 대충 살펴보려 책을 들고 잠깐 앉았는데, 역시나, 그녀의 책은 패쓰가 안 되는 책이다.

그러나 소득이 높은 여성들만이 실질적으로 일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한다. 요리와 가사, 육아 등을 도와줄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그들은 가정으로 돌아와 ‘2교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저소득 여성은 자신들의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이 상대 배우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경제적 부담과 책임감을 덜 수 있다. 종종 밖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완벽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더욱 무리해서 일했다. .... 일터에서 여성을 위해 늘어난 여러 가지 기회의 수혜자는 많은 경우 독신의 여성 노동자였다.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여성들은 일을 시작한 후 삶이 더 어렵고 힘들어졌다. 따라서 일터가 자유를 향한 길인 것처럼 주장했던 페미니즘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의 비판은 타당했다. (81쪽)

 

더 자유로운 삶, 구속이 없는 삶을 위해 밖으로! 밖으로!를 외쳤던 여성들은 변한 건, 시대를 앞선 그녀들의 의식일 뿐, 세상은, 남편은, 가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노력이 인정되지 않고,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가정의 모든 잡다한 일을 떠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육아와 가사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남성들과 똑같은 강도, 똑같은 분량, 똑같은 시간동안 일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육아와 가사의 ‘도우미’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일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러한 ‘2교대’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187쪽)

 

임옥희는 말한다. “여성은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고 있었던 힘 때문에 혐오와 매혹의 대상이었다.”(『여성혐오가 어쨌다고?』, 88쪽) 즉, 여성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인지하고 못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을 때,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사랑하고 인정해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보호를 벗어나려 할 때, 자신보다 더 나은 직장을 얻었을 때, 자신보다 연봉이 높아졌을 때, 자신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임용되었을 때, 바로 그 때, 남자는 자신의 지지를 철회한다.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지 않는다. 그녀와 결별한다.

어허, 흥분하지 마시라. 나는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벨 훅스의 남자 말이다. 벨 훅스가 기나긴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학문적 동료였으며, 그녀의 성공을 응원했고, 경제적으로도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그 남자,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동거남, 그 남자가 그랬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그 남자만 그러는 건 아니다.

 

2. 『성서와 만나다』

 

 

 

 

 

과학자인 저에게 좀 더 자연스러운 유비를 들자면 성서는 모든 커다란 질문에 정해진 답을 마련해놓은 궁극의 교과서가 아니라, 실험실의 노트와 같습니다. 곧 성서는 중대한 역사적 경험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뜻과 본성은 성서를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무오하며 질문조차 허용하시지 않는 기이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사건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신의 뜻과 본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다.(16쪽)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놀랍고 신비로우며 흥미진진한 확신 위에 놓여 있으며, 저는 이 확신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이 확신이란 무한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가장 분명하며 가장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곧 말씀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을 취함으로써 당신의 본성을 알리셨다는 것입니다.(181쪽)

 

성서가 실험실의 노트와 같다는 저자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요즘엔 성경을 너무 안 읽어서 정말 심하다,는 생각에 성경계의 아이돌 『메시지 시가서』를 구입했는데, 이것도 책탑 속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 교수를 지낸 존 폴킹혼이 저자인데, 과학자의 신앙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우며 쉽게 잘 읽힌다.

 

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5분 사이에 한 명의 사람을 열 명의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사람, 어떤 일이든지 몇 초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사람, 거짓 혹은 가짜 이야기를 능숙하게 지어내면서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 건너가려는 사람.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인 톰슨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톰슨씨는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지껄이며 몽상을 말한다. 자기의 내적 세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꾸며낸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의 경우 가장 큰 ‘실존적인’ 비극은 기억에 있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완전히 황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기억에만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느낀다는 기본적인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이란 이것을 말한다. (220쪽)

 

그가 유일하게 평정을 되찾는 장소는 사회적인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병원에 딸린 정원이다(223쪽). 사람이 없는 적막한 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온함과 충족감을 맛볼 수 있다.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손상되어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의 범위를 훌쩍 벗어난다. 정상을 벗어난 사람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들. 소설처럼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관찰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가감없이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풀어가다 보면, 마지막 문제에 부딪힌다. 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발 붙일 곳이 있을까? 과연 ‘본토’가 그들을 특수한 존재로 받아들여줄까?

 

결국엔 그렇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모두 다 말짱한 정신일 수 없을 테고, 그 때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그 때에도 내 손을 잡아준다고 약속하신 그 어떤 분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의 섬처럼, 떠돌고 또 그렇게 떠돌아 다닐 것이다. 하나의 섬, 또 다른 하나의 섬처럼 말이다.

 

뜨거운 8월의 여름, 이 책을 읽었을때만 해도 작가 올래드 색스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기사를 보게 되었다. 또 하나의 섬이 되어 이 아름다운 세계를 떠났으되,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떠났으니 올리버 색스, 덜 외롭기를.

 

4. 『희지의 세계』

 

 

 

 

 

 

희지의 세계

 

저녁에는 양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원의 고요가 초원의 어둠을 두드릴 때마다

양들은 아무 일 없어도 메메메 운다

풍경이 흔들리는 밤이 올 때

목양견 미주는 희지의 하얀 배 위에 머리를 누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익힌 콩과 말린 고기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자 산다                     (18-19쪽)

나는 언제나 시읽기가 어려워 시집은 사놓고도 못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은 사실 외모에 먼저 반했다. 1988년생의 작가, 민트색의 표지 때문에 산뜻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한다. 시를 더 많이 읽어야겠다, 시집을 더 많이 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보면서...

오늘은 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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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1-08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깔맞춤이 가능하군요?
이뻐요^^
민트는 하얀색이랑 분명 차이가 나는데도 저는 항상 민트색을 보면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박하사탕맛이 생각나네요
민트는 박하사탕맛!!^^

몇 권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콕 찍어놓았습니다
남은 주말도 사랑받고,사랑 많이 하는 하루 되시길♡

단발머리 2015-11-09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민트가 너무 좋아요.
민트티, 민트레깅스, 민트가방의 딸애한테는 못 미치지만요.

저는 님 덕분에 많이 사랑받고 즐거운 주말되었어요.
책 읽는 나무님도 즐거운 주말되셨나요?

icaru 2015-11-1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시행전에 올리버 색스의 책을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그러니까 다섯권은 넘지 않는다는 요지이죠 ㅋ)에서 갈퀴로 긁었어요. 그중에 아내를 모자로~ 도 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단발머리 님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오프 지인들이 몇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좀 전무한 편인데,,, 없는 와중에도 한분 발견했잖아요. 둘째친구엄마가 모자를 아내로, 저 책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꼼꼼하게 읽고 싶은 페이퍼인데, 제게 허락된 시간이 2분이라,, 대략 발자취라도 남기려고 발악하는 저의 꼴 좀 봐요 ㅠㅠ))

단발머리 2015-11-12 10:5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도 언니가 있긴한데, 요즘엔 아이들 스케쥴이 바뀌어 자주 못 만나고 있어요.
요즘에 언니는 현대문학 단편선을 읽고 계시더만요. 오헨리, 기드 모파상 이런 분들을 만나신다는.
책 이야기 나눌 때 너무 좋지요. 잘난 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책 이야기로...
그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잘난 척은 무슨. 간신히 따라갑니다.

icaru님 많이 바쁘시군요. 그 와중에 댓글 무한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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