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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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단은 여기다.

생물이 생존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이종 간 관계interspecies relationships에 의존한다고 본다. 즉 생물종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단위가 아니며, '순수한' 자기 성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생물종은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신체를 오염시키면서 공진화했고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종 간의, 다종 간의 관계맺음은 우연적인 사건이기에 그것의 결과 또한 일관적이지 않고 불확정적이며 다양하다. 송이버섯 곰팡이가 여러 지역으로 이동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소나무 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냄새와 색깔과 모양을 가진 송이버섯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다.(518쪽)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송이버섯이 상품이 되었다가 선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문명(?)의 삶을 거부하고 채집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곰팡이가 바위를 소화해 식물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이야기에서는 묘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기후 위기를 인간에 대한 비난과 절망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공존의 삶으로 바꾸어가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유지처럼, 아니 사유지만큼 공유지 또한 인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인간들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엔 비인간,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공존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번역가 노고운님의 해제를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3초간 했다. 좋은 책을 번역해주신 번역가님, 두꺼운 책을 출간해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리고, 너무도 근사한 버섯책을 여성주의 책으로 선정해주신 다락방님께도, 그리고 같이 읽어주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급, 연말 시상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정을 넘기는 늦은 시간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는 단발머리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일본 자본(그중 일부는 전후 배상금으로 한국에 전달되었다)의혜택을 받는 것에 기뻐했다. - P215

그래서 송이버섯은 장기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이상적인 선물이다. 공급업자는 송이버섯을 자신들에게 일거리를 맡기는 회사에 준다. 한 식료품업자는 어떤 종교로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지도자에게 바치기 위해송이버섯을 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이버섯은 진지한 헌신의 표시다. - P233

이 책에 담긴 나의 생각 중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 소외는 자본주의적 자산이 형성될 수 있는, 얽힘이 풀린disentanglement형태다. 자본주의 상품은 다음 단계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발판으로 사용되기 위해 생활-세계에서 제거된다. 그 결과 중 하나는무한한 필요다. 다시 말해서 투자자가 원하는 자산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다. 따라서 소외는 축적, 즉 투자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관심사다. 축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소유를 권력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와 생태계를 전복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는 통약성commensuration이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가치 형태들은 차이의 거대한순환 회로를 가로지르면서도 번창한다. 돈은 투자 자본이 되고, 이는 더 많은 돈을 낳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 및 비인간의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생계 방식으로부터 자본을 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번역 기계다. - P245

많은 사람이 곰팡이가 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물에 더 가깝다. 곰팡이는 식물처럼 햇빛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지않는다. 동물과 같이 곰팡이는 먹을 것을 찾아야만 한다. ...물에서만이 아니라 마른 땅에서도 식물이 자라는 이유는 지구의 역사가 펼쳐지는 동안 곰팡이가 바위를 소화하면서 식물이 섭취할 영양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함께 곰팡이는 식물이 자라는 흙을 만들었다. 또한 곰팡이는 나무를 소화한다. - P252

그들은 "연구할수록 공생symbiosis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인 것 같다....자연은 개체나 게놈보다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 같다"라고 썼다." - P261

아마도 내가 이러한 붕괴 현상을 포장하려고 하거나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않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대규모의, 상호 연결된, 막을 수 없어 보이는 숲의 황폐화이고, 가장 지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독특한 숲조차도 여전히 파괴의사슬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동남아시아에서처럼 사라지는 숲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숲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우리의 모든 숲이 그러한 파괴의 바람에 뒤흔들린다면, 자본주의자가 그 숲을 원하거나 내팽개치거나 간에 우리는 흉물스럽고 불가능하게 된 상태의 그 폐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된다. - P379

진보 이야기를 빼면 세상은 무서운 곳이 된다. 폐허는 버려졌다는 공포를 담아 우리를 노려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 다행히 여전히 인간과 비인간의 일행이 함께 있다. 파괴된 우리 풍경들의 제멋대로 자란 변두리를자본주의적 규율, 확장성, 그리고자원을 생산하는 방치된 플랜테이션 대농장의 가장자리를 여전히 탐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잠복해 있는 공유지의 냄새를 그리고찾기 힘든 가을 향기를 여전히 붙잡을 수 있다. - P497

그리고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그 금전적 대가가 매우 낮다. 그런데도 한국의 출판 시장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외국 서적이 훌륭하게 번역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들, 즉 현재 우리 사회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번역을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수가 아주 많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번역은 주변자본주의적이다. - P529

나도 모르죠. 하나의 생물종은 잠재적으로 유전적 물질을 교환할 수 있는,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유기체 집단입니다. 이것은 성교를 통해 번식하는 유기체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생물 복제lone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식물에서부터 이미 생물종 개념에 문제가 생깁니다. ㆍ 척추동물에서 자포동물로, 산호로,... - P413

벌레로 이동하면, DNA 교환 방식과 집단 형성 방식이 우리와 매우 달라집니다. 곰팡이나 박테리아로 가면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이상합니다. 수명이 긴 복제 생물은 갑자기 성적sexual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큰 덩어리의 염색체 전체에 도입되는 이종 교배가 가능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다배체화 또는 염색체 복제도 이루어집니다. 다른 박테리아를 수용하는 것을 뜻하는 공생화symbiotization를 하기도 하는데, 다른 박테리아 전체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있거나 다른 박테리아의 DNA 중 일부분을 자신의 게놈으로 변환할 수 있을 때 발생합니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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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11-02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단발머리 2024-11-02 16:45   좋아요 1 | URL
😜😝🤣😍

다락방 2024-11-02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꺅 >.<

단발머리 2024-11-03 10:14   좋아요 0 | URL
😜😝🤣😍

건수하 2024-1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단발머리 2024-11-03 15:00   좋아요 0 | URL
☺️😉😜😎😍
 
유대문화론 - 사가판 私家版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인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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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문화론』을 다 읽었다. 어제 한 일은 왼쪽의 인덱스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왜 진작 사지 않아 이 일을 자초한단 말인가. 저는 읽기 전에 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에 산 책이 집에 많이도 있... 더 큰 오해를 막기 위해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합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일전에 써두었던 부분 중, 1) 한국과 일본 외교 관계의 난맥상 관련 언급과 2) 페미사이드에 대한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태도를 통해 나는 또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이 똑똑해도 모를 수 있다는 것,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의 양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통찰과 상관없이 꽉! 막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전문가가 최고다, 나는 또 그런 쪽은 아니다. 뒤에서 봐야 보이는 게 있고, 멀리서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우치다의 특장점은 어떤 논의를 대함에 있어 이런저런 가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 있다. 우리는 각자 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란 그렇게 딱 정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것'이라 할 만한 의견이 필요하고. 그 의견 자체가 조악하거나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엔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유대인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고 죄책감 부분을 연결해 논증한 부분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주장이었는데, 그것이 어떠하다는 판단 너머로(나는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 판단을 못 함) 그런 시도가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이제야 들어간다. 우치다의 사가판 유대문화론.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추적할 때, 『유대인의 역사』에서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불화가 언급된다.

유대인은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이나 몇 가지 분야에서는 그리스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문학만큼은 모든 양식에서 우월했다. 로마 제국 안에는 그리스인만큼이나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은 유대인이 더 높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문화 정책을 주도한 그리스인은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그리스인은 이집트 언어에 무관심했듯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학, 유대 종교 철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아는 거라고는 소문으로전해 들은 부정확한 지식이 전부였다. 유대 문화를 멸시하는 그리스인의 태도와 그리스 문화를 대하는 학식 있는 일부 유대인의 애증은 계속해서 긴장을 유발했다. (『유대인의 역사』, 207쪽)

서양 문화의 두 기둥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때는 그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니 당시에 유대인을 향한 그리스인의 멸시와 질시는 유대인 지식인들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고, 그리스인들 역시 유대인들의 반응, 즉 자신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이토록 오래되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하던 유럽 사회에 『유대적 프랑스』라는 '기념비적' 반유대주의 도서가 등장한다. 제1주제는 반유대주의적 미신과 유대인에 대한 망언. 제2주제는 아리아인과 셈인 비교. 제3주제는 근대주의 비판이다.

반유대주의적 미신은 이런 식이다. 유대인은 페스트에 걸리지 않으며, 가톨릭 신자의 7배에 달하는 생식능력이 있다는 것.(117쪽) (새삼 궁금하다. 그걸 어떻게 확인했단 말인가) 인종 간 전쟁 사관은 '열정적이고, 영웅적이며, 기사도적이고, 솔직하며, 생각이 짧아 그들의 천직이라면 농부, 시인, 수도사 특히 병사'인 아리아인과는 대조적으로 '본능적인 상인으로, 동료를 속이는 데 천재적이며 남을 수탈하는 짓밖에 하지 못하는'는 것이 셈인의 특징이라 주장이다. 근대주의 비판이란 유대계 시민들을 근대화, 도시화의 원흉으로 보고 전통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는 것인데, 우치다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화를 원했던 건 그 누구보다 유럽인들 자신이었다. 변화와 진보에 대한 공포. 즉, '미래의 미래성에 대한 공포'(123쪽)가 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대인에 대한 부정의 감정으로 집적되었다는 주장이다.

<'과잉'의 유대인>이라는 챕터에서 우치다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사고 유형이란 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연하다. '유대인의 뇌', 특징으로 구별되는 '유대인의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민족 중심주의의 발전은 당연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사상은 일부 민족의 주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 집단이 행하고 있는 일이다. 우치다는 '민족적 기습'으로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사고·판단의 근거가 되는 그 사고·판단 구조 자체를 회의하고, 자신은 이미 자기 동일적으로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 동일률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태도'를 그들의 '표준적인 지성 습관'으로 수용했다(178쪽)고 보았다.

포인트는 그다음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사고 실험을 통해 '지성적'이라고 하는 하나의 표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다른 민족들이, 그것을 '지성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치다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

유대인이 특별히 지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대인에게는 표준적인 사고 경향을 우리들이 인습적으로 지성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180쪽)

아.... 문득 떠오르는 한나 아렌트의 분석.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내가 제일 굵은 밑줄을 그었던 바로 그 문장.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결국 모든 외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에서 마지막 승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증을 받았다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민족에 대한 의지박약한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451쪽)

반복해서 쓰자면, 모든 민족이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생각. 우리 민족은 각별하다는 생각. 이건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를 쓰면 책 한 권이 나온다, 는 진짜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넘어서서, 그만큼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 온 천지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던가. 이 세상 가장 한가하고 널널해 보이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이해가 가장 깊고, 나의 통찰이 가장 훌륭하며, 부족함이 없는 나의 미모를 보라. 나를 보라. 나를 존경하라. 인간 생존을 위한 가장 절절하고 솔직한 외침이다. 그런데, 유대인을 접한 민족들은 이 생각을 넘어서서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유대인을 만난 이후, 그들을 직면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내가 아니라 너일 수도 있다는 생각. 진짜 주인공은 너일 수도 있다는 생각. 진짜 똑똑한 사람은 너일수도 있다는 생각. 니가 하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확신으로 확장될 때 분노는 폭발해 버린다. 쾅쾅!

<살의와 죄책>이라는 챕터는 반유대주의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죄책감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데, 그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간이 너무 없는 관계로 이 책의 일부만을 읽어야 한다면, <제4장 끝나지 않는 반유대주의> 중에서 <'과잉'의 유대인>, <사르트르의 모험> 그리고 이 챕터 <살의와 죄책>을 권하고 싶다.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마치고 온 고3 아들의 저녁을 남편이 시키겠다고 해서 밥 차리는 시간을 아껴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기를 돌리며 머리 속으로 반을 썼다. <살의와 죄책> 부분을 더 자세히 쓰고 싶었는데, 정교하게 쓰기에 에너지가 부족해 아쉬운 대로 여기까지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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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16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세상에 제가 모르는게 너무나 많고 알고 싶은것도 너무 많은데 도대체 어떻게 영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뜬금)

단발머리 2024-10-16 15:43   좋아요 1 | URL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님의 저속노화를 ㅋㅋㅋㅋㅋㅋㅋㅋ 권합니다.
유튜브에도 많고요. 그렇게 권하는대로 먹으면 저는 인생사 재미없을 거 같기는 해요. 저는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뭐 이런 건 아닌데 다른 사람 도움 받기는 싫거든요. <요양원 늦게 가는 법> 특별 공개하더라구요ㅋㅋㅋㅋㅋ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독서괭 2024-10-16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아드님 곧 수능이군요!! 놀라워요. 단발님은 이렇게 젊으신데..(뒷모습 사진밖에 못 봤지만)
단발님이 적어주신 내용 모두 저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신기하네요. 유대인들이 그렇게나 똑똑했다고요? 유대인들이 지성이라고 정의하는 걸 우리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대인이 똑똑하게 느껴지는 건가요? 아무튼 똑똑한 건 맞나 본데.. 똑똑한 게 인종 특성이라니 뭔가 반칙 같은데.. ㅎㅎ
살의와 죄책 부분은 다음 페이퍼에서 이어집니까?

단발머리 2024-10-17 09:48   좋아요 1 | URL
제가 이렇게 젊습니다ㅋㅋㅋㅋㅋㅋ 뒷모습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유대인의 특별함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그리스인들과의 긴장 관계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결론은 아닙니다만 유대인의 ‘인종적 특성‘이라는 게 없다면(사실 없는 게 정답이고요) 유대인의 특별함은 교육에 있다는 생각을 쪼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생각은 ‘유대인,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 쪽으로 흘러가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장 마감했습니다. 살의와 죄책 ㅋㅋㅋㅋㅋㅋ 어렵더라구요. 다른 책, 다른 저자와 연결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오며~~

달자 2024-10-16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젠 책을 사셨으니 마음 놓고 땡투를 날릴 수 있겠군요!! 아 단발머리님 글은 정말이지 술술 읽히면서 읽는 내내 허벅지를 탁탁 칠 수 밖에 없네요. 진짜 주인공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 ‘너‘일 수도 있겠구나, 나보다 너가 더 잘난걸 수도 있겠구나, 거기서 오는 불안, 그 불안이 가져온 분노, 그리고 혐오. 이 레파토리의 희생자가 특히 유럽에서, 예전엔 유대인이었다면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만, 예전부터 이어져왔다는 의미에서) 지금은 중국인 것 같아요. 예전에 유대인에게 그랬듯이 오늘날 유럽에서 많이 논의되는 얘기 중 하나가 중국은 이렇다 저렇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등등. 근데 자세히 보면 그 적대감 뒤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숨어져 있더라구요.

공쟝쟝 2024-10-17 07:01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서구의 유대인 중국…! 달자님의 통찰에 더 무릎을 칩니다. 거친 일반화를 조심히 하며 이야기를 건네면, 저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일종의 거울단계라고 생각하고… (라캉읽는 중 ㅋㅋ 중얼중얼) 그래서 우치다 결론이 ‘어른이 되어라‘인게 정희진의 말 ‘피해자 정체성’을 넘어서라 와 일맥 상통한다 생각해요. 일베의 거울 메갈. (여긴 그 출발이 대 놓고 미러링이죠ㅋㅋ) 둘의 시작은 다를테지만 (어떻게 그리스인의 유대인혐오와 백인의 흑인혐오가 같겠습니까. ) 어떻게 하면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지 저 스스로를 살피면서 계속 고민 중예요! 여성주의적 전략이 공략이 아닌 낙후시키라는 제안에 다시한번 곰곰해 지고요. 일단은 우리 공부를 이어나가도록 합시다. 저는 달자님께 ‘친밀한 적‘ 추천드려요!!!

단발님… 이 글이 너므 멋지고, 4장이 넘나 궁금해서 가슴이 설렙니다. 결혼두번 가능하십니까? 폴리아모리 해주세요!!

단발머리 2024-10-17 09:51   좋아요 0 | URL
달자님 / 달자님~~ 달자님 댓글 읽으면서... 어머, 어머, 진짜진짜 나는 왜 중국인을 생각 못한 거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달자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딱 알 것 같고, 한국에서도 제주도 관광객부터 시작해서 중국인들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퍼져나가는 양상이기는 합니다.

똑똑한 상대를 알아보고 그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이 분노와 혐오로 이어지는 과정은 개인에게도 또 민족 전체적으로도 결국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오늘도 달자님 댓글에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되네요. 감사드려요, 달자님!

단발머리 2024-10-17 10:00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 달자님의 통찰에 무릎 치는 사람 저예요. 제가 먼저 무릎 쳤어요 ㅋㅋㅋㅋㅋㅋ 이걸 너무 크게, 아니면 엉성하게 설명하는게 조심스럽기는 한데.... 저는 정체성의 정치와 전략적 본질주의를 어떻게 통합해 갈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더 가까운 말로 하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전업주부가 이해할만한 페미니즘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혹은 설득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요. 권력의 작동이 양방향에서 이루어지죠. 무조건 니 책임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고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상황에서 제일 강력한 대응 방법이 뭔지에 대해서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곧 답은 정치입니다로 갈 예정ㅋㅋㅋ) 공부는 계속 이어져야 하겠죠?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결혼.... 두 번은 좀 어려워요. 은오님의 플러팅에는 설레임이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쟝님의 댓글은 뭐랄까. 심심하다고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4-10-17 10:00   좋아요 1 | URL
진심이 없엇기 때문입니다. 본심 결혼생각 없습니다! (밥상 엎기)

단발머리 2024-10-17 10:02   좋아요 1 | URL
😳🫣😜🤣🤪😏
 
교만의 요새 - 성폭력, 책임, 화해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박선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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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도 그렇겠지만, 기득권의 자리에서, 그러니까 학계에서 인정받는 자리에서 '여성'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공정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여성은 신뢰받기 어려우니 말이다. 남성이 그 말을 할 때는 크게 칭찬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기도 하다. 여러 군데 줄을 치고 인덱스를 붙였지만, 오늘의 픽은 매키넌이다. 다른 이들에게 공을 돌리는 사람, 오랜 기간 그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사람, 불편하고 불공정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았던 캐서린 A. 매키넌에게 박수를 보낸다. 


  


매키넌이 황야에서 홀로 울부짖는 고독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21 그녀는 거대한 법조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의 일원이었고,그 중에서도 '타이틀 세븐'을 성희롱에서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 중 하나였다. 매키넌은 이론적으로 가장 창의적이고 분석적인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많은 공을 돌렸다. 이 일이 매키넌의 어마어마한 통찰력과 변호사로서의 기술을 앗아가지는 않았으나 역사적인 저서를 발간한 후에도 몇 년이 지나도록 법학계에서 정교수 직책을 받지도 못하고 관련 직업을 갖지도 못했던 것을 보면, 법학계에서 외면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67쪽) 



혐오의 형성은 유형마다 미묘하게 다르다.44 하지만 모든 사회에서 여성만큼은 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고 남성들이 스스로를 초월적 존재로 정의하는 동안 여성들은 줄곧 가차없이 출생, 성애, 죽음에 연관되었다. 여성의 월경, 수유, 성적 체액, 단순한 분비물과 같이 이미 알려져 있는 혐오의 대상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여성들을 저희의 공간에 가두는 방식들 중 하나였다. - P83

도널드 트럼프는 특히 이러한 비유를 선호했다. 45 투사적 혐오는 학습된 것이라 할지언정 실재하고, 여성의 신체에 진심으로 혐오(종종 욕망과 뒤섞인 유의 혐오)를 느끼는 이들에게는 여성을(직장과 정치에서) 종속시키고 분리시켜야 할 또 하나의 추가적인 이유가 됐다. - P84

투사적 혐오는 교만의 나르시시스트적 사촌이다. 스스로를 초월적이고 청결하고 순수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인간 집단을 비인간,동물, 혐오적인 것으로 재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모두 동물이지만 나는 동물이 아니고 당신은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적 거짓이다. - P84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종속을 가능케 하는 만국 공통의 전략이다. 이는 교만한 자들이 손쉽게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허구를 만들도록 하며, 피종자들이그들의 종속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그들이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하다는 이유를 드는 것이다. 식민 지배는 피지배 국민이 아이들과 같아서 단호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정당화‘되었다. - P96

이러한 추론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해 오직 두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저항할정도로 순결한 여성이거나 아니면 뭐든지 허락하는 ‘창녀‘이거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우리가 특정 사건을 보는, 혹은 잘못 보는 방식에 편견을 갖게 한다. - P129

이러한 추론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해 오직 두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저항할정도로 순결한 여성이거나 아니면 뭐든지 허락하는 ‘창녀‘이거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우리가 특정 사건을 보는, 혹은 잘못 보는 방식에 편견을 갖게 한다. - P141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강도 피해자라면 법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 재산을 되찾는다거나 적합한 보상을 얻는 등 확실한 이득이 있다. 반면 강간 피해자가 얻게 되는 개인적 이득이라고는 스트레스와 온통 모호한 것들뿐이다. - P150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흑인들이 백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백인들이 흑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대칭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그반대로 차별적이며 평등 보호 조항을 위반한다. 이는 부정에 대한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완전히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인종 간에 결혼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부당한 인종차별로부터 독립적이고 타당한 우선적 목표 같은 것은 없고"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므로, 마찬가지로 여성 고용인들을 남성들의 잠재적인 성적 장난감으로 배치하고,
남성에게 중속되는 방식으로 고용하는 것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있지 않을뿐더러 여러 해에 걸쳐 젠더화된 권력의 위계 구조를 유지할 뿐이라고 매키넌은 주장한다. - P177

의해 확장된 권력 남용의 형태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성학대가 일차적으로는 권력과 권력 남용의 문제이고 성별은 부차적인 것이라주장해 왔다. 동의한다. 진짜 문제는 타인에게 동등한 인간 존재로서 완전한 존중을 표하지 않는 교만과 대상화이다. 이러한 결함은남성이라는 성별과 문화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만연한 권력 구조속에서 남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27

이런 군비 경쟁에서 특히 내가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은선수들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범죄 수사나 형사 기소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시도다. 운동선수들은 불법 약물의 사용이나 판매, 절도, 다른 재산 범죄 및 음주 운전 등 잠재적 형사 범죄들을 많이 저지른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은 열 살쯤부터 자신들은 피 끓는 남성성의 아이콘이기 때문에법은 자기들보다 못한 남성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여기며 자랐다. 그러니 많은 선수들이 성폭행, 성희롱, 스토킹 등 성범죄를저지르는 것이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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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10-14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캐서린 매키넌 넘나 대단하신 분. 한국 출판계는 얼른 매키넌의 책들을 새로 번역해서 내놓아라!!

읽느라 고생하셨고 다 읽으신 점에 대해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

단발머리 2024-10-14 08:47   좋아요 0 | URL
네네, 맞아요~~ 한국 출판계는 매키넌님 책 번역에 박차를 가하라!! 한강 특수 땜에 많이 바쁜 출판사들은 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생 많았습니다, 진짜 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박수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버섯책 읽으러 갑니다. 바빠요, 바빠!

햇살과함께 2024-10-14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한강 작가님 챙기시기로 바쁜 와중에서도 ㅎㅎ

단발머리 2024-10-14 09:33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 글게요. 작가님과 동문수학 자랑하느라 목이 타고 막 그랬습니다. 감사해요, 햇살과함께님!

건수하 2024-10-14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완독 축하드려요!!

단발머리 2024-10-14 09:34   좋아요 1 | URL
완독 축하 감사드려요, 건수하님~~ 제가 마사 누스바움을 좋아합니다. 헤헤...

독서괭 2024-10-14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4-10-14 09:34   좋아요 2 | URL
이런 엄지척은 제가 잘 갈무리해서 ㅋㅋㅋㅋㅋ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
아메데오 발비 지음, 장윤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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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의 저자 박문호는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겪어온 인간의 다음 거주지는 우주라고 주장했다. 지구를 망쳐 놓은 환경 파괴범, 더 이상 지구에 거주하기 어려운 인류의 후손들은 우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최초 육상 동물의 출현, 즉 물에서 생활하던 동물이 육지로 발을 내디딘 사건과 비견될 정도로 생명 진화의 중요한 사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너무 오래 걸릴 일이고 너무 미래의 사건이어서 나와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인간이 그렇게 진화한다니. 그럼 진짜 사이보그 모습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1초간 했다.

책의 제목이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결론을 제목으로. 정면으로 부딪히기. 그렇겠지, 나는 화성으로 떠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나 말고 나 다음. 내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다다다다다음 인간은 어떨까. 그 사람은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제목이 스포일러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화성, 하면 아무래도 화성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가 떠오른다. 지구인과 화성인의 만남, 화성을 둘러싼 흑인들과 백인들의 갈등은 신대륙 개척 이후 침략자와 선주민 간의 갈등으로 읽기 쉬우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레이 브래드버리님의 깊은 뜻은 내 알기 어려울 것이다. 백 번 정도 말한 듯한, 내가 완전 애정하는 단편 중의 단편은 <2005년 9월, 화성인>이다.

화성, 하면 또 <마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 세계적인 히트에 힘입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영화는 안 보았다. 맷 데이먼 좋아했는데, 그런데도 안 봤다. 예고 영상에서부터 느껴지는 '로빈스 크루소' 느낌 때문이었는데, 이 문장을 쓰고 있노라니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고 및 소개 영상 4-5개 보고 돌아옴)



돌아가자, 화성으로.

제1장 <지구 종말의 각본>은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수명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구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서술한다. 제2장 <가고 싶은 곳 - 화성과 달, 그리고 우주 식민지>는 인간이 지구 이외의 장소에서, 이 척박한 우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서술한다. 과학적 지식과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래 정착지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화성에 대한 설명은 스포일러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린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특히 <지구의 남극도 그곳에서는 천국이 된다> 챕터는 지구의 환경이 생명체에게 얼마나 호의적인지, 지구 환경을 근거로 한 지구 생명체의 진화가 얼마나 찰떡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우주를 파는 상인들>은 바로 그 영화,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과 리들리 스콧의 동명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는데, 화성 여행을 터무니없이 쉬운 일로 묘사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화성으로의 편도 여행을 제안하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었던 네덜란드 민간 기업 마스 원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돈을 목적으로 한 장사꾼의 사기 행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주비행사들이 화성 도착 후 68일 만에 질식할 것(131쪽)이라는 치명적인 예측과 명백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헛된 희망을 품게 했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당연히, 일론 머스크. 약 100만 명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자급자족 정착지를 꿈꾸는 머스크의 계획에 대해 저자는 우주 여행에서 겪는 문제와 화성 내 생존에 필요한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머스크 역시 화상 탐사와 지구인의 화성 이주를 사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 핵심이다.

다시 화성으로 돌아온다. 이 책의 제목대로 '우리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면, 화성이 우리 인류의 차기 거주지가 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제3장 <태양계 너머의 세계; 거주 가능한 행성과 성간 여행>은 지구라는 요람에서 떠나 우리 태양계를 넘어, 우리은하 그 너머를 탐험하고 탐사하는 미래를 그린다.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거주 가능 영역에 프록시마 b라는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행성이 실제로 거주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4.2광년의 거리에 있으니, 빛의 속도로 여행해도 4년 이상이 걸린다. 인류는 아직 빛의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비행한다. 보이저 탐사선의 속도가 초속 약 17킬로미터지만, 이는 광속의 약 1만 8,0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니(197쪽), 아직도 인류에게는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다고 하겠다.

우주 방주로서 '세대 우주선' 발상은 영화에나 나올 법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시는 지구에 돌아오지 못해도 괜찮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그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세대가 그 우주선 안에서 태어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문단이 있어서 옮겨 본다.

장기간의 성간 여행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우주선 추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고 가정할 때, 먼저 출발한 세대우주선이 훗날 개발된 더 빠른 우주선에 의해 추월당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여행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도착해 새로운 행성을 이미 점령한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더 편안하고 빠르게 여행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된 기술을 보유했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먼저 떠나고 늦게 도착한 이들을 옛날 사람들로 여길 것이다.(220쪽)

수백 년 동안 심연과 같은 우주를 여행하고 바라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는데,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그곳에 도착해 이미 그 행성을 점령한 것을 확인하는 상황.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더 빠른 사람들, 결정적으로 더 젊은 사람들 앞에서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제 진짜 쓰려고 하는 데까지 왔다.

태양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그리고 생명체의 출현에서 각 동물의 진화, 그리고 현재 인류의 문명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이 모든 것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1000년도 못 가는 문명이 허다하게 오고 갔지만, 지구에게는 46억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무한에 가까운 확률 속에서 인간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구 밖 외계 생명체, 정확히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조사 및 관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어디에 있나?"(240쪽)

물리학자 엘리코 페르미가 이렇게 물었다는 건데,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명의 은하 제국이 존재하고 항성계 사이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가. 적어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라면 전자기 통신을 활용한 신호가 우리에게 도달했어야 했다. 알려졌어야 한다. 의도적으로든 혹은 실수이든. 현재까지는 그런 신호가 없다. 모두 어디에 있나.

나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은하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주는 너무 넓고,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주 저편 어딘가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우리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문명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자연선택을 통해 과학을 발명하고 기술을 사용하며 우주 비행에 이를 수 있는 생명체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더 길고 특별한 우연이 필요하다. 전 우주 역사에서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라는 존재가 이러한 도약을 한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이며, 이 우주 시대에 유일한 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241쪽)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신의 존재를 확신했던 시대에 과학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억지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가끔 그런 착각이 든다. 모두가 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인간이 신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가장 중요한 존재,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대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의 지구 역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과학자는 미친 사람이라 여겨졌다. 신학이 온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였다. 신학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했던 과학은 오랜시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이제는 명실공히 과학의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안다. 우리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은하는 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우주의 저 한쪽 구석의 작고 작은 지구별을 잠깐 스쳐 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potentially habitable)'을 곰곰 따져볼 때, 지구라는 우리의 우연, 인간이라는 우리의 현재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에너지원과 화학 원소, 그리고 액체 상태의 물. 이 중에서 '물의 존재'는 '거주 가능성'과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하다. 태양 주변 거주 가능 영역에는 세 행성 즉 금성, 지구, 화성이 존재하지만 호수와 바다가 있는 곳은 지구뿐이다. 행성의 평균 온도는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지만 역시 대기가 가장 중요하고, 대기와 관련해서는 별과의 거리가 중요한 요소지만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어쩌자는 건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널리 받아들여졌던 개념, 지구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은 이제 상식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질 활동, 판 구조, 강력한 자기장, 풍부한 산소 대기와 심지어 위성의 존재 등을 고려했을 때, 지구와 같은 조건으로 생명체가 살아갈 만한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 지은 고생물학자 피터 워드와 천체물리학자 도널드 E. 브라운리의 '희귀한 지구' 역시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사 괴로움과 고통은 비대한 자아 때문이다. 혹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특별하다'를 제일 중요하다,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아에 대한 이런 인식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나 자신이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구는 우주 한쪽 구석의 아주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겪어온 이 모든 경험과 사건의 조합, 환경과 상황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존엄하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 그대로 '우아하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면서 또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 테고, 그에 더해 내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지구는 생명을 품은 행성이다. 행성이 공전하는 중심별의 유형, 우주 방사선의 양, 초신성 폭발이나 다른 잠재적으로 해로운 천체물리학적 현상과의 거리와 빈도, 소행성 및 혜성과의 출동 가능성, 자기장과 화산 활동의 존재(21쪽) 등이 모두 제때 정확하게 조절되고 조정되었고, 그 결과와 결론으로서, 지구는 생명을 품은 파란 별, 인류의 거처가 되었다.




지구의 환경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얼마나 호의적인지, 얼마나 미세하게 조정되고 있는지, 그 균형이 46억년 동안이나 이렇게 잘 맞춰져 온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왜 나만 감동받는 것이냐. 왜 나만 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우연과 확률이라고 말하는 세계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 결과만 인정받는 세계에서, 노사연의 노래는 진실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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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9-0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절반 읽은 상태 ㅋㅋㅋ 다 읽고 읽을게요. 우리 만남은 우연은 아니고 바람이라요. 간절히 간절히. 온 우주가.

단발머리 2024-09-06 23:56   좋아요 1 | URL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라고 박근혜가 그랬었죠 ㅎㅎㅎ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204-5쪽)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9-07 12:43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단발님 간직할게요 ㅋㅋㅋ 지지 말 ㅋㅋ

단발머리 2024-09-07 13:12   좋아요 0 | URL
간직하면서 푸코도 잘 챙겨욬ㅋㅋㅋㅋㅋㅋ푸코는 챙기고 김연수는 간직(😜)

다락방 2024-09-09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우주에 관심이 요만큼도 없거든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이 이런 글을 올려주실 때마다 감탄해요. 어떻게 우주에 관심을 갖고 하나씩 차곡차곡 그에 대한 질문과 지식을 쌓아가실까? 당연히 단발머리 님과 저는 다른 사람이지만, 이 다름이 너무나 놀라워요! 우주,화성, 과학 관련 책은 제가 안읽는데 ㅋㅋㅋㅋ 그것에 관한 책을 읽고 쓴 단발머리 님의 글은 제가 읽습니다.

단발머리 2024-09-11 11:44   좋아요 0 | URL
사람이 각자 궁금해하는 게 다르니깐요. 저는 엄청 일찍 자는 사람이고, 잘 자는 사람이고 (tmi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전 별이랑 우주가 많이 궁금하고요. 화성가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 화성 간다고 하면 그게 또 그렇게나 궁금합니다.
우주, 화성, 과학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하하하!
 
한국의 여성과 남성 현대의 지성 39
조혜정 엮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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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쓴 글을 한국어로 읽는 기쁨에 더해, 어려운 이론을 술술 풀어주는 것에 더해, 이 책의 백미는 '정리'에 있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여성주의 이론과 대략적인 역사, 여성주의 운동 뿐 아니라, 이것이 우리 사회, 분단된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어 왔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잘 읽힌다는 특장점은 저자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준다.




사람마다 공명하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공통으로 이야기되는 부분은 역시 제주도를 다룬 6장, <'발전'과 '저발전' : 제주 해녀 사회의 성 체계와 근대화>일 것이다. 스스로가 베짱이라 생각하는 나는, 심사가 단정하지 못한 나는, 제주 여성들이 겪어온 삶의 굴곡과 어려움에 대해 느낀 분노의 감정보다 제주 남성들이 살아낸 '고귀한(?)' 삶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오히려 압도적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 아이들을 건사하는 아내, 고된 물일과 끝없는 밭일, 집안일을 전담하는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작은각시'와 생활하는 그런 인생. 그런 삶을 정당화하는 문화. 그 문화를 당연시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 일생. 그 인생.




텔레비전의 보급이 제주도민들의 생활 변화를 가져온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섬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자신들과 다른 삶, 육지에 대한 동경이 극도로 계급화된 모습으로 그려질 때, 그것이 텔레비전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나타났을 때, 고단한 삶을 탈출할 하나의 답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더 쓰고 싶은 부분은 '전업주부'에 대한 부분이다.




가정일을 실제로 누가 주도하든 경제적 자립 가능성이 없고 가사일이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정에 고립되어 잇는 비취업 주부는 통괄권을 쥔 남편에게 궁극적으로는 종속될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27쪽)



장기적으로 볼 때, 비취업 가정 주부의 삶의 형태는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순수한 선택에 의한 하나의 삶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258쪽)




2015년에 권인숙 씨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간통제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전업주부'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에 나는 전업주부였고, 그 이후로도 오랜 기간 전업주부였다. 지금은 일당제 단기 계약일을 하고 있지만, 자동으로 계약 연장이 되지 않는 일이라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처지이기는 한데, 일단 현재로서는 전업주부는 아니다. 그때의 나, 2015년의 나는, 권인숙 씨의 그 말이 조금 아쉬웠는데,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계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좀 서운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2015년의 내 글은 그런 나를 변명하는 의미가 강했고, 그때로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내 삶에 대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해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 책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의 비슷한 표현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그때처럼 발끈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나의 위치가 바뀌어서라기보다는, 내 생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여성의 노동, 재생산 노동을 위시한 각종 돌봄노동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을 뿐이지 엄밀하고 적확한 의미에서의 '일'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동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계약 관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찌라도, 이 사회를 작동케 하는 강력하고 의미 있는 활동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여성이 '남편을 살뜰히 보살피고, 아이들을 잘 건사하고, 부모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면, 그 와중에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삶, 그러한 결정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간순간의 작은 생각들과 자기만의 것이라 여겨지는 소소한 판단과 결정을 지배하는 문화의 힘과 자본의 거대한 압력 속에서 어느 영역에서 타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본인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마리아 미즈의 마지막 충고를 기억하고야 만다. 여성성에 대한 중산층적인 이상화를 비판해야 한다. 네, 그럼요. 비판해야지요. 일단 저는 저를 좀 비판하고, 저의 게으름을 한탄하고, 저의 배고픔을 달래야겠습니다. 그 담에 제가 야무지게 중산층적인 이상화를 비판할게요.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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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05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변화에 닿기까지 치열하게 사유해 오신 단발님께 박수를 짝짝짝! 내 감정에 적합한 분석 섞인 말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끔 감정이 변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고급스럽게 말하면 내가 나의 조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것일텐데….

저는 그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 것 같고…. 그래서 여성주의 읽기가 참 좋아요!

2015년의 글을 읽어봐야하겠는데… 졸립니다… 베짱이를 꿈꾸는 개미는 뚠뚠 노동하다 열두시 알람이 울려 댓글달고 갑미다 :)

단발머리 2024-08-06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여전히 전업주부에 대한 그런 시선이 불편하고 또 기분 나쁘지만... 네, 예전보다는 덜 기분 나쁘네요. 제가 현재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고요. 쟝님 말대로 조건에 대한 해석이 바뀐건데..... 온 세상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걸 받아들인 거니까 일종의 체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주의가 주는 해방감을....... 누려할 시간입니다. 허나 그럴려면 먼저 읽어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05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읽기를 잘한 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나 제주도 여성들에 대해서라면 막연하게 제주도 여생들이 억세다, 강하다는 말을 듣는 그 배경에 대해 알게된 게 좋더라고요. 억세다, 강하다 라는 말로는 감히 다 담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이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8-06 12:31   좋아요 0 | URL
제주도 여성들 어떻게 살아왔던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저도 많이 기쁩니다. 다락방님이 계셔서 이 모임이 이렇게 오래 착착 야무지게 진행되고 있네요!!

2024-08-05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05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08-05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두줄 왜 이리 귀여우십니까? ㅋㅋ
이 책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많이들 칭찬하시는 거 보니 다시 페미니즘 책 읽을 때 읽어봐야겠군요..
그런데, 커피 두 잔 다 단발님 거예요?

단발머리 2024-08-06 12:37   좋아요 1 | URL
이 와중에 저의 귀여움을 발견해주시는 독서괭님은 진정 매의 눈이시며, 안목의 여왕, 이 시대의 참 알라디너되십니다!!
이 책 정리 잘 되어있어서 전 강추이고요. 아쉬운 점은 편집과 디자인이 많이 올드하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 바닐라라떼가 제것이고요 ㅋㅋㅋㅋㅋ 왼쪽은 머스캣 피치 아이스티인데 큰아이꺼입니다. 전 한 번에 한 잔 마시는 사람이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06 14:21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한 번에 두 잔 주문도 마다않는 다락방 입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06 14:23   좋아요 1 | URL
☕️🍺🍷🍹🍾🍸🍵🥤🍶🧋 두 개만 고르세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8-06 14:40   좋아요 1 | URL
🤣🤣🤣🤣🤣 책 읽으며 두잔 마실 수도 있죠 뭐!! ㅋㅋㅋ

단발머리 2024-08-06 14:42   좋아요 0 | URL
☕️🍺🍾🍷🍹🥂🍸🍵🥤🍶🧋중에서 세 개 고르세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