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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탑승합니다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6년 8월
평점 :
분류로 따지자면 '한국에세이', 혹은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라고 하는데,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되고 있고, 여행에세이답게 장소의 변화가 계속되다 보니, 일기처럼 읽힌다. 일기처럼 읽는다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어서, 나 혼자 좋아하는 정보라 작가의 글을 일기처럼 읽는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신나는 일이던가. 그제 밤에 도착한 『울프 일기』는 두께도 두께거니와 행간이 상당히 빡빡해서 마음의 준비를 요구하지만, 다른 일기도 있다. 오르한 파묵의 그림 일기, 『먼 산의 기억』도 있고,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도 있다.
소설가에게는 소설 쓰는 일이 제일 중요하니, 새로운 소설, 창의적인 소설, 아름다운 소설, 환상적인 소설로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제일 우선일 것이나, 그렇게 쓰여진 소설의 배경, 그 소설의 집필을 시작하게 된 동기, 한국 사회에서 그런 소재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등을 세계 시장에 설명하는 일도 소설가의 일 중 하나이다. 정보라는 2022년 『저주토끼』가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 행사와 현장에 초청된다. 2024년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까지 이어져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어서, 정보라 작가는 런던에서 시작해 바르샤바, 베를린, 카피툴로, 보고타 등 4년 동안 15개국 32개 도시를 누비는 해외 출장을 이어간다. 이 책은 출장이라 불리는 초청 행사와 여행, 그리고 행사에서의 일들을 담고 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뿜어버렸던 지점은 '여행이 싫다'는 대목. 정확히는 '출장'이 싫은것일테고, 출장 자주 가는 사람들에게서 들어본 말이기는 한데, 평생 일로 떠나는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런 출장마저 한없이 부럽기는 했다.
부커상 행사부터 시작해, 조지타운 문학 축제, 카피툴로 우노 문학 축제, 케 뒤 폴라르 장르문학축제, 브리즈번 작가 축제등 정보라 작가가 참여했던 문학 축제들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되었을텐데, 그 모든 도시를 연결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그건 바로 데모.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데모를 무척 좋아하니까 무슨 시위인지 궁금해서 피켓과 현수막을 유심히 보았다. ... 남편도 나도 전직 대학 강사이고 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이므로 공교육 관련 시위라고 하니 갑자기 흥분해서 시위대를 따라갔다. (80쪽)
세상에나. 이 책은 『아무튼, 데모』가 아닌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건 데모 이야기다. 많은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공습을 비판하고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시위이다. 문학 행사에 참석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문장을 소리내어 읽고, 이 작품에서 이 무언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소설은 무엇일지에 대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여유 시간에는 박물관을 관람하거나 관광을 하지 않고. '갑자기 흥분해서 시위대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없기도 하지만, 나는 모든 소설가가 정보라 작가처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싫고, 작업실 안의 고요함 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찾아가는 삶이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창작자들도 많을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이렇게나 데모를 좋아하고(그것도 남편과 한 마음으로), 폴란드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고, 좋은 책을 발굴해 번역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과 목소리로 소설을 써내는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참 좋다. 나이로 따지자면, 정보라 작가는 내 또래이고, 그리고 유학했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을텐데, 어쩜 <정보라>라는, 이렇게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탄생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은 마음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십년 전은 물론이고, 일주일 전만 돌아봐도 부끄러운 일들이 태반이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산떠미 같으며, 자랑할 만한 일은 한 손으로도. ...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은 이 마음을, 정보라 작가는 바로 오늘, 자신의 현실과 현재에 아로새긴다.
그런 그녀에게 2022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해이고, 서울에서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사망한 해이다. 2023년은 윤석열 정부가 고등교육 연구개발 예산을 16퍼센트 삭감하고, 오송역 침수 참사로 열네 명이 사망한 해이며,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해이다. 2024년은 12월 3일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해이며, 제주항공 2216편 참사로 179명이 사망한 해이다. 2025년은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로 스물일곱 명이 사망하고, 8월 29일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을 했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땅으로 내려온 해이다. 그녀의 하루, 그녀의 1년은 우리 나라의 현실, 우리의 현재와 끊임없이 공명한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렇다. 문학 행사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고, 사인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작가는 쉬는 시간에 만나는 시위대와 조우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규탄한다.
그녀의 대표작 『저주토끼』가 무서워(무서울 것이 예상되어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지만) 아주 무섭게 쓰지만 않는다면 그녀가 내주는 모든 소설들을 다 읽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니, 그녀의 소설 이외의 문장들도. 박상영 작가의 추천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정보라와 동시대에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난 정말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