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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
아메데오 발비 지음, 장윤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4년 8월
평점 :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의 저자 박문호는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겪어온 인간의 다음 거주지는 우주라고 주장했다. 지구를 망쳐 놓은 환경 파괴범, 더 이상 지구에 거주하기 어려운 인류의 후손들은 우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최초 육상 동물의 출현, 즉 물에서 생활하던 동물이 육지로 발을 내디딘 사건과 비견될 정도로 생명 진화의 중요한 사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너무 오래 걸릴 일이고 너무 미래의 사건이어서 나와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인간이 그렇게 진화한다니. 그럼 진짜 사이보그 모습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1초간 했다.
책의 제목이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결론을 제목으로. 정면으로 부딪히기. 그렇겠지, 나는 화성으로 떠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나 말고 나 다음. 내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다다다다다음 인간은 어떨까. 그 사람은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제목이 스포일러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화성, 하면 아무래도 화성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가 떠오른다. 지구인과 화성인의 만남, 화성을 둘러싼 흑인들과 백인들의 갈등은 신대륙 개척 이후 침략자와 선주민 간의 갈등으로 읽기 쉬우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레이 브래드버리님의 깊은 뜻은 내 알기 어려울 것이다. 백 번 정도 말한 듯한, 내가 완전 애정하는 단편 중의 단편은 <2005년 9월, 화성인>이다.
화성, 하면 또 <마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 세계적인 히트에 힘입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영화는 안 보았다. 맷 데이먼 좋아했는데, 그런데도 안 봤다. 예고 영상에서부터 느껴지는 '로빈스 크루소' 느낌 때문이었는데, 이 문장을 쓰고 있노라니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고 및 소개 영상 4-5개 보고 돌아옴)
돌아가자, 화성으로.
제1장 <지구 종말의 각본>은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수명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구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서술한다. 제2장 <가고 싶은 곳 - 화성과 달, 그리고 우주 식민지>는 인간이 지구 이외의 장소에서, 이 척박한 우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서술한다. 과학적 지식과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래 정착지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화성에 대한 설명은 스포일러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린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특히 <지구의 남극도 그곳에서는 천국이 된다> 챕터는 지구의 환경이 생명체에게 얼마나 호의적인지, 지구 환경을 근거로 한 지구 생명체의 진화가 얼마나 찰떡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우주를 파는 상인들>은 바로 그 영화,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과 리들리 스콧의 동명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는데, 화성 여행을 터무니없이 쉬운 일로 묘사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화성으로의 편도 여행을 제안하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었던 네덜란드 민간 기업 마스 원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돈을 목적으로 한 장사꾼의 사기 행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주비행사들이 화성 도착 후 68일 만에 질식할 것(131쪽)이라는 치명적인 예측과 명백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헛된 희망을 품게 했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당연히, 일론 머스크. 약 100만 명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자급자족 정착지를 꿈꾸는 머스크의 계획에 대해 저자는 우주 여행에서 겪는 문제와 화성 내 생존에 필요한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머스크 역시 화상 탐사와 지구인의 화성 이주를 사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 핵심이다.
다시 화성으로 돌아온다. 이 책의 제목대로 '우리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면, 화성이 우리 인류의 차기 거주지가 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제3장 <태양계 너머의 세계; 거주 가능한 행성과 성간 여행>은 지구라는 요람에서 떠나 우리 태양계를 넘어, 우리은하 그 너머를 탐험하고 탐사하는 미래를 그린다.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거주 가능 영역에 프록시마 b라는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행성이 실제로 거주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4.2광년의 거리에 있으니, 빛의 속도로 여행해도 4년 이상이 걸린다. 인류는 아직 빛의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비행한다. 보이저 탐사선의 속도가 초속 약 17킬로미터지만, 이는 광속의 약 1만 8,0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니(197쪽), 아직도 인류에게는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다고 하겠다.
우주 방주로서 '세대 우주선' 발상은 영화에나 나올 법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시는 지구에 돌아오지 못해도 괜찮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그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세대가 그 우주선 안에서 태어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문단이 있어서 옮겨 본다.
장기간의 성간 여행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우주선 추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고 가정할 때, 먼저 출발한 세대우주선이 훗날 개발된 더 빠른 우주선에 의해 추월당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여행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도착해 새로운 행성을 이미 점령한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더 편안하고 빠르게 여행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된 기술을 보유했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먼저 떠나고 늦게 도착한 이들을 옛날 사람들로 여길 것이다.(220쪽)
수백 년 동안 심연과 같은 우주를 여행하고 바라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는데,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그곳에 도착해 이미 그 행성을 점령한 것을 확인하는 상황.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더 빠른 사람들, 결정적으로 더 젊은 사람들 앞에서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제 진짜 쓰려고 하는 데까지 왔다.
태양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그리고 생명체의 출현에서 각 동물의 진화, 그리고 현재 인류의 문명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이 모든 것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1000년도 못 가는 문명이 허다하게 오고 갔지만, 지구에게는 46억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무한에 가까운 확률 속에서 인간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구 밖 외계 생명체, 정확히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조사 및 관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어디에 있나?"(240쪽)
물리학자 엘리코 페르미가 이렇게 물었다는 건데,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명의 은하 제국이 존재하고 항성계 사이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가. 적어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라면 전자기 통신을 활용한 신호가 우리에게 도달했어야 했다. 알려졌어야 한다. 의도적으로든 혹은 실수이든. 현재까지는 그런 신호가 없다. 모두 어디에 있나.
나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은하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주는 너무 넓고,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주 저편 어딘가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우리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문명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자연선택을 통해 과학을 발명하고 기술을 사용하며 우주 비행에 이를 수 있는 생명체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더 길고 특별한 우연이 필요하다. 전 우주 역사에서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라는 존재가 이러한 도약을 한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이며, 이 우주 시대에 유일한 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241쪽)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신의 존재를 확신했던 시대에 과학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억지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가끔 그런 착각이 든다. 모두가 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인간이 신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가장 중요한 존재,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대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의 지구 역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과학자는 미친 사람이라 여겨졌다. 신학이 온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였다. 신학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했던 과학은 오랜시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이제는 명실공히 과학의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안다. 우리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은하는 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우주의 저 한쪽 구석의 작고 작은 지구별을 잠깐 스쳐 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potentially habitable)'을 곰곰 따져볼 때, 지구라는 우리의 우연, 인간이라는 우리의 현재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에너지원과 화학 원소, 그리고 액체 상태의 물. 이 중에서 '물의 존재'는 '거주 가능성'과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하다. 태양 주변 거주 가능 영역에는 세 행성 즉 금성, 지구, 화성이 존재하지만 호수와 바다가 있는 곳은 지구뿐이다. 행성의 평균 온도는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지만 역시 대기가 가장 중요하고, 대기와 관련해서는 별과의 거리가 중요한 요소지만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어쩌자는 건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널리 받아들여졌던 개념, 지구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은 이제 상식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질 활동, 판 구조, 강력한 자기장, 풍부한 산소 대기와 심지어 위성의 존재 등을 고려했을 때, 지구와 같은 조건으로 생명체가 살아갈 만한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 지은 고생물학자 피터 워드와 천체물리학자 도널드 E. 브라운리의 '희귀한 지구' 역시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사 괴로움과 고통은 비대한 자아 때문이다. 혹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특별하다'를 제일 중요하다,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아에 대한 이런 인식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나 자신이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구는 우주 한쪽 구석의 아주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겪어온 이 모든 경험과 사건의 조합, 환경과 상황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존엄하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 그대로 '우아하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면서 또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 테고, 그에 더해 내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지구는 생명을 품은 행성이다. 행성이 공전하는 중심별의 유형, 우주 방사선의 양, 초신성 폭발이나 다른 잠재적으로 해로운 천체물리학적 현상과의 거리와 빈도, 소행성 및 혜성과의 출동 가능성, 자기장과 화산 활동의 존재(21쪽) 등이 모두 제때 정확하게 조절되고 조정되었고, 그 결과와 결론으로서, 지구는 생명을 품은 파란 별, 인류의 거처가 되었다.
지구의 환경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얼마나 호의적인지, 얼마나 미세하게 조정되고 있는지, 그 균형이 46억년 동안이나 이렇게 잘 맞춰져 온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왜 나만 감동받는 것이냐. 왜 나만 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우연과 확률이라고 말하는 세계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 결과만 인정받는 세계에서, 노사연의 노래는 진실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