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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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의 네 번째 책이다. 라고 쓰고 찾아보니 다섯 번째였다. 로벨리의 다섯 번째 책이다.

로벨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찬찬히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글이 과학자의 글 치고는(?)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의 나열과 단어의 향연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네 삶, 우리의 현실과 그가 말하는 물리학이 기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을, 그는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99쪽) 양자론에 대한 이런 설명을, 천생 문과인 단발머리는 환영합니다.

이 책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신의 이야기로 모든 것이 설명되던 시대에, 신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 했던 아낙시만드로스를 추적한다. 신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 맞서고,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주장조차 비판하는 아낙시만드로스. 그는 자신 앞에 커다란 벽처럼 존재하는 확고한 세계를 거부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무, 그로 인한 무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무에서 시작해 새로운 이론과 주장, 지식을 쌓아나간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창한 우주론의 핵심은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92쪽)'라는 개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 이미 눈으로도 확인한 바이지만, 측정 기술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가설이고 주장이었다. 이게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포함된 동시성 개념이 우리에게 그토록 난해한 이유는 고대인들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에서 위아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와 매우 비슷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위아래가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성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물리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다. (103쪽)

그렇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이 어려운 그렇게나 어려웠던 것이다.

후반부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과학자로서 내내 관찰하고 연구했던 과학적 실험의 결과와 그 결과에서 도출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의 자기주장이 나온다. "과학의 목표는 정량적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과학의 목표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174쪽) 저자는 이전 역사에서 확증되었던 고정된 개념과 사고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세계관의 구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던 시대에,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아낙시만드로스. 세상의 작동 원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인식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과학자 역시 특정 세계의 이해와 지식, 사회적 통념과 문화의 일부임은 당연하다. (왜, 당연한 이야기를 쓰는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수만 년 동안 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거의 즉각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물론 오해와 착각이 있었고, 그 결과 콜럼버스 이전의 문화가 붕괴하는 비극도 뒤따랐다). 흔히 말하듯 문화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면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어떻게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군사적 동맹을 맺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하고, 종교를 교류할 수 있었을까? (209쪽)

209쪽의 문장들은 과학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편협한 이해 혹은 편협한 해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스파냐인들의 침공 이후, 에스파냐 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에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치욕의 시간들 역시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남미의 국가들 중, 많은 국민들이 혼혈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인종 간의 위계와 그러한 차별의 핵심이 '백인성에 대한 추구(whitening)'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천상 문과인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과학책의 믿을 만한 저자로 생각하지만,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워서 일부러 기록으로 남겨 둔다.

제일 좋아하는 문단을 여기에 쓴다. 마지막 문장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뜻은 뭔지 알 것도 같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 우주에는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다. 그리고 각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또 1,000억 개나 있다. ... 부모와 자녀가 닮은 것은 선대의 유전자가 DNA에 담겨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 속에는 약 1,000조개의 시냅스가 있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일으킨다. ...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에서 만난다. 따라서 인간과 무당벌레는 친척이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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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5-28 0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제가 그 시대에 살았어도 아낙시만드로스 주장 어이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ㅋㅋ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지구가 둥근 것도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도 신기한데 ㅋㅋ

무당벌레 만나면 잘해줘야겠네요…

단발머리 2026-05-29 09:0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래요. 독서괭님~ 우리가 눈으로 봤어도, 사진으로 말이지요 ㅋㅋㅋㅋ 믿을 수 없으니 그 시대에는 더 그랬을 거 같아요. 지구가 어떻게 둥글게 생겼나요. 길은 이렇게 쭈욱~ 뻗어있는데요.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른가 봅니다.

무당벌레는 날개를 펴면 참 이쁘지요. 저도 잘해 주겠습니다^^

건수하 2026-05-28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과지만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부터 손 들고 외면했거든요...
올해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상대성 이론 책 읽어보기 (...)

뭐, 지구, 아니면 우리 태양계에 있는 모든 것이 친척이라고 볼 수 있겠죠? :)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네요,

단발머리 2026-05-29 09:04   좋아요 1 | URL
아... 올해의 목표 너무 근사합니다. 상대성 이론 읽어보기라니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 외계인은 저는 영화 예고편으로 봤는데, 반지의 제왕의 그 나쁜 친구가 생각나는 외모여서 좀 무서웠어요. 책을 읽고 나면 저도 건수하님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죠.
우리 모두 친척이고, 인간끼리는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고요. 위 아 더 월드일까요? ㅎㅎ

건수하 2026-05-29 13:49   좋아요 0 | URL
상대성 이론 책 읽어보기라고 썼지만
상대성 이론 읽어보기는 왠지 찔리네요... 교양서적으로 접해볼 예정입니다 ^^!

다락방 2026-05-28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과학과 AI 관련 책을 읽고 쓰시는 단발머리 님을 제가 존경합니다. 저는 관심없는 분야라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독서로 잘 이어지지가 않는데, 단발머리 님은 정말 지적이셔...
아무튼 끊임없이 읽고 써주세요. 제가 단발머리 님의 글로 배우겠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9 09:09   좋아요 0 | URL
제가 이렇게 과학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ㅋㅋㅋㅋㅋㅋ 지적이어서가 아니고(그랬으면 정말 좋겠구요). 과학책을 부담없이 읽기 때문인 거 같아요. 천상문과에다가 어차피 읽어도 모르는 부분이 많고,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지요. 그래서 내가 아는 거 하나, 두 개만 배워도 괜찮겠다 하고 읽거든요. 모르는 부분은 슬슬 넘어가고요~~

이 책에서는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 이 부분에 꽂혔어요. 아, 주위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향, 혹은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감탄을 하면서요.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다!
 
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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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군대를 동원해 계엄을 단행한 자들이 좀 더 똑똑했더라면 그들은 다른 곳에 군인을 보냈을 것이다. 국회의장 우원식의 관저에, 민주당 당대표 이재명의 자택에, 그리고 KBS 방송국에 군인을 보냈어야 했다. 그들은 다른 곳에 군인을 보냈다. 국회에 군인을 보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군인을 보냈다. 그리고, 여론조사 꽃이 위치한 유튜브 방송국 건물로 군인을 보냈다.

2024년이었다. 12월이었고, 3일이었다. 진눈깨비가 가볍게 날리는 화요일 저녁이었다. 주중이라 지역구에 내려가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이 사람들과 만나 저녁을 먹고, 가볍게 술을 한잔하고 집에 막 도착했을 시각, 조금 일찍 귀가한 사람이라면 이제 막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시간이었다. 오후 10시 28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속속 모여들었다. 보좌관의 차를 타고 이동한 국회의원이 있었고, 아내나 남편이 운전한 차를 타고 국회로 향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자신의 차가 미행당할 것을 우려해 택시로 이동한 국회의원이 있었고, 핸드폰마저 집에 놓아두고 현금만 들고 집을 나선 국회의원이 있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라이브를 켜고 국민들에게 국회로 모여줄 것을 요청했고, 용감한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자신의 차를 끌고 국회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2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모이는데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재석 190, 찬성 190으로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회에서 해제되었다.

대로 한 가운데 설치된 대형 화면 속에서 국회의장이 대통령 탄핵소추를 그날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리가 조용해졌다.

국회의원들은 탄핵소추안 표결을 마치지 못했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본회의장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국에 방송되었다. 추운 거리에 앉은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살상을 지켜보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거 사실이가?"

누군가 물었다.

"진짜로 지금 국회 안에서 저러고 있다 말이가?"(37-8쪽)

정보라의 『처단』은 1차 비상계엄 해제 후, 2차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가 불법적인 두 번째 비상계엄을 해제하지 못했을 때, 이 나라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들을 그려낸다. 이 나라가 <포고령>에 근거해 정치되었을 때, 우리에게 일어났을 일들을, 정보라는 서술한다.

계엄이 해제된 그날 오전의 일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일들을 알라딘 서재에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몸이 벌벌 떨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털썩 주저앉았던 전날 밤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말썽 없이 조용했다. 수없이 불법을 저지르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전직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전횡에 분노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이고 명백한 헌법 파괴 행위 덕분에(?), 어쩌면 저 대통령이 탄핵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색종이를 접고 오리고 접은 선 안쪽에 풀칠을 해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었다. 이거 다 망했다고 실망한 아이를 구슬리고 달랬다. 괜찮다고, 다시 해보자고 말했다. 내 일상은, 내 생활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정보라의 『처단』에서는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투쟁의 현장에 외롭게 서 있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파업하는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성소수자들 그리고 장애인들.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 투쟁은 계속되었다. 쓸쓸하게, 그리고 암울하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제일 답답한 건, 문재인이나 윤석열이나 똑같다는 이야기다. 문재인이나 윤석열이나 똑같고,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 하의 세상이 이재명 정부 때보다 더 폭압적이고, 더 잔인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라의 『처단』에서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노동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장애인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그가 불러온 비상계엄에 의해 얼마나 큰 곤궁에 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잔인한 세상은 노동자와 성소수자, 장애인들에게 불공평하고 가혹하지만, 비상계엄하의 세상에서 그들은 처단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다. 최근에 다락방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소설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작가는 '현시대 젊은 거장'이라 불리며 이런 저런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상이 갖는 무게에 더해, 또는 그 무게만큼의 기대를 가지고 그 책을 구입하게 되고 읽게 될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대수일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야말로 길이길이 전해질 인류 문명의 정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상만큼 혹은 예상보다 더 많이 그 상의 가치는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강 작가님이 그 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의 단어와 문장과 소설을 통해 광주의 비극이, 4.3의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강의 소설을 구입하고 애독하게 된 이유 중 한 가지는 그 책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라의 『처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우리의 비극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을 그려내고, 우리의 가정, 직장, 병원, 거리에서 펼쳐질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보여준다. 2024년 12월 3일이 현재였고, 현실이었던 우리에게, 이 소설은 우리네 소중한 사진과 기록, 그리고 역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출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보라가 있다.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이자, '부커상',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인 정보라.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너의 유토피아』 의 정보라이자,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인 정보라. 한국 소설 시장에서 읽힐 수 있고, 팔릴 수 있을 거라 기대되는 정보라의 소설이기에 이 소설이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외출할 때 몇 번이나 책을 들고 나갔는데, 우연찮게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마저 읽었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핸드폰에 키보드를 연결해 글을 썼다.

끔찍한 미래가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아 기쁜 것만큼, 그토록 잔인한 미래가 우리에게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오래 생각했다. 사방이 시끄러운 중에도 정보라 작가의 물음과 답은 또렷하고 명확했다. 못 알아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오해가 불가능한 언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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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03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은 정보라 작가를 좋아하시고 또 정보라 작가야말로 이 시대의 활동가이시잖아요. 그런 정보라 작가가 계엄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생각되며, 단발머리 님이 정보라를 좋아할 수 밖에 없겠구나, 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것처럼, 특히나 정보라 작가가 이 책을 써주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 그 이름에 신뢰를 가지고 있는 작가가 말이지요.

단발머리 2026-05-08 08:51   좋아요 0 | URL
소설을 대하는 자신만의 이상 같은 게 있겠지만, 저는 정보라 작가가 계엄에 대해 써주어서 좋았어요. 황정은 작가가 <작은 일기>라고 계엄 즈음의 일들을 기록한 일기를 출간했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계엄은 기록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황정은 작가는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고 정보라 작가도 자신의 스타일로 이 일을 기록한 게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역시나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요.

책읽는나무 2026-05-05 0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이 좋아하시는 정보라 작가님 책을 읽으신다고 하셨을 때 이 책의 표지를 봤음에도 찾아볼 생각을 못한 제가 부끄럽단 생각이 드네요.
계엄에 대한 글이란 리뷰를 이제야 읽고 음..했구요. 읽으면서 과연 정보라 작가! 그리고 그걸 읽는 단발 님도 과연 단발 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도서관 갔을 때 정보라 코너에 갔을 때 이 책이 없어서 응? 했더니 신간이나 마찬가지인 책이었더군요. 희망도서 신청해놓아야 할 책이네요. 알라디너들의 리뷰가 참 인상적일 땐 제겐 그 작가의 책을 읽을 땐 늘 특정 알라디너분들이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제게 정보라 작가를 대할 때 늘 단발 님이 떠올라요. 정보라 작가를 좋아하시는 단발 님 덕분입니다. <너의 유토피아>책을 다음 번에 읽을 책으로 찜해뒀었는데 <처단>부터 읽어봐야겠군요.^^

단발머리 2026-05-08 08:53   좋아요 1 | URL
저는 사실 계엄에 대한 글을 아직은.... 읽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너무 현실에 가까운 일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근데 정보라 작가님 이 책은 우리에게 오지 않은 현재를 현실적으로 잘 그려낸 거 같아요.
정보라 작가를 대할 때 제가 떠오른다고 하시니 너무 기쁩니다. 정보라 작가한테 자랑하고 싶은데... 연락처가 없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정보라 작가와 연결해서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오며~

감은빛 2026-05-05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윤씨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비상계엄이 성공했을 거라는 끔찍한 상상을 자주 합니다. 그 인간이 멍청해서, 그 인간 주위 인물들이 죄다 멍청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정보라 작가의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네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문재인, 노무현, 박근혜, 이명박이 똑같은 인간이자 대통령입니다. 그들 모두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권력을 움직이려한 자본가의 손에 놀아났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윤석열과 이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들도 다수의 국민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들이지요.

단발머리 2026-05-08 09:03   좋아요 2 | URL
제가 저 위의 문장을 잘못 쓴 거 같아요. 조금만 더~~ 가 아니고. 아주 많이 똑똑했어야 했죠. 제대로만 된 사람이라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 주위는 말할 것도 없고요. 권력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얻을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노무현,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과 이재명은 모두 다수의 국민들을 생각하기 보다 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자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거대 자본에게 전쟁 직후의 한국은, IMF 이후의 한국은 좋은 먹잇감일 수 밖에 없었을 테고요. 전 세계,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자본주의를 통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브라질 밀림 속의 소수민족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그 구조 자체를 완벽하게 거스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 세태를 인식하고, 더 나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본가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애쓰고 노력했던 대통령들이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시험봤는데 점수가 100점 아니라고, 학교 안 오고 친구 때리는 아이와 똑같은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OLIVE KITTERIDGE (Paperback)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Simon & Schuster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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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뭐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건 좋은 소설 독법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읽은 '내'가 보기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이 부분이 아닐까 추측하는 건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의 의미를 추적해가는 관객처럼, 스쳐 지나치는 평범하고 무난한 문장 속에서 어떤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 그리고 '발견'한다. '발명'에 가까울 테지만, 그건 분명 발견일 테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좋아하고, 그녀가 창조한 루시를 좋아하는 내가,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발명'한 작가의 속마음 문장은 바로 여기다. 나는 이 문장들이 내겐 작은 충격으로 읽혔던 <겨울 음악회>의 마지막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So they talked like that, and it was kind of nice. They both needed someone to talk to, someone to listen, and they did that. They listened. Talked. Listened more. He never mentioned Harvard. The sun was setting behind the boats as they sat with their decaf coffees. (325p)



나는 항상 '대체 불가능성'에 미혹됐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마리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는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사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타인의 특징은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 톤, 눈빛, 코, 턱, 눈썹, 손톱 모양, 또는 커피 잔을 집는 방식에 매료되기도 한다."(126쪽)

나는, '그'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람과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혹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irreplaceable. 신승훈이 <I believe>(아, 숨길 수 없는 나의 연식이여!)에서 노래했듯이. '난 그대여야만 하죠'의 고백. 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미루어 짐작했다. 난, 그대여야만 해요. It's always been you. 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길버트의 말처럼. 항상 너였어. 너였고, 너야. 내 마음은 언제나 너였어. 그런 말, 그런 이야기.

올리브에게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 사람이 함께 떠나지 못했던 짐 오케이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헨리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리브는 남아 있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헨리였으니까. 새로운 사람 잭이 그녀의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잭 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짐은 사고로 올리브를 떠났고, 그리고 헨리도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고,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올리브에게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대는... 잭이다. 잭인 것 같다. 그런데 잭은 어떤 사람이냐면, 잭. 바로 '그' 잭이 아니라, 그녀 앞에 앉아 있는 '그냥' 잭이다. someone to talk to, someone to listen. 지금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사람, 그리고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내게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사람.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사람. 이 사람,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11쪽)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잭이 올리브에게 말하고, 올리브가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올리브가 이야기하고, 잭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올리브는 올리브가 되고, 잭은 올리브에게 비로소 '잭'이 된다. 이때의 '잭'은, 바로 그 사람, 대체 불가능한 어떤 사람, 꿈에 그리던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다. 이 사람은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목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근무시간이 워낙 적으니깐 근무일을 4일로 조정해 주었는데(나에게는 조정권 없음), 수요일이 금요일이 되는 건 좋았는데, 금요일이 월요일이 되어버려서 지금으로서는 좋은 건지, 별로인 건지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의 공부와 식사(를 위시한 영양관리)를 거의 완벽한 수준에서 케어하던 친구여서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갔다고 해서 서운하고 허전해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배달 한 번 안 시키고, 외식도 마다하던 친구는 밥 안 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아이가 돌아오는 목요일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참 묘했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가진 최고의 노력으로 엄마의 역할을 해냈던 친구는 만족해하고 즐거워했다. 빈둥지 증후군의 증세가 전혀 없었다. 이에 반해,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 꺼내 밥 차려주고, 툭하면 외식에, 공부는 자기 일이니 각자 알아서 잘 하겠거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는, 아이 둘 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오히려... 떠났던 빈둥지를 돌아보고, 안으로 들어와 쓸고, 할 일 없어 바닥을 닦는, 그런 엄마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화끈한 친구의 표현대로, 둥지가 비기도 전에 둥지 '떠나버렸던' 내가 말이다.

빈둥지 증후군이 당최 뭔지도 모르는 친구가 빈둥지 유사 증세를 겪고 있지만 차마 입 밖에 말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케이크를 사 주었다.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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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4-1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의 찐사랑은 헨리라고 생각합니당😆

단발머리 2026-04-14 22:20   좋아요 1 | URL
크리스토퍼 빼야겠지요? ㅋㅋㅋㅋㅋ 저도 올리브의 찐사랑은 헨리라고 생각합니당 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것보다 저는, 헨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쓰러져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다가 이별한 게 너무 아쉬워요. 물론 저보다 올리브가 더 아쉽겠지만요.

다락방 2026-04-14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이 리뷰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저도 가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고 또 연인에게 네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냐 물었던 적도 있고, 그리고 주변에도 가끔 그렇게 묻기도 했거든요. 친구들에게도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의 이 문장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고,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

아..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네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내가 전에 누굴 더 사랑했든, 그리고 내 앞의 그 사람이 전에 누구를 더 사랑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내가 얘기하고 또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인 것을요..

단발머리 님.. 멋져요 ㅜㅜ

단발머리 2026-04-14 22:19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쪽으로는 사실 잘 모르고 살았고, 제 삶을 돌아봤을 때 앞으로도 그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깐 제가 가보지 못한 길, 제가 갖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서요. 이런 걸까, 저런 걸까,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거든요. 근데 이 소설에서는 뭐랄까. 그게 안 중요하다고 느껴졌어요. 잭이 치료받으러 들어갔을 때, 병원 의자에 올리브가 앉아 기다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 때, 올리브가 ‘편안하다‘고 말했던 게 무척 인상깊었거든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지금 여기에 내가 할 일이 있고. 그런 거요.

다락방님은 영어원서 같이읽기 회장님이신데, 행동은 선플 달기 위원회 회장님 같습니다. 진짜루 그래요.

책읽는나무 2026-04-16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원서 리뷰를 읽으면 뭐랄까요? 정말 새 책의 리뷰를 읽는 느낌입니다. 나는 과연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은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고, 다시 그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구요.^^
근데 다들 각자의 눈에 들어온 문장들과 그 문장을 오래 생각하고 다시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그 방식이 참 감동이란 생각을 종종 하고 있어요.
‘난 그대여야만 해요.‘ 내 눈 앞에 있는 지금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유일한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진리인 듯한데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좀 심쿵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단 딴생각도 좀 해보구요.ㅋㅋㅋ

그나저나 빈둥지 증후군.ㅜ.ㅜ
동네 언니 한 분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닌가? 두 분인가?
비어져 있는 아이들 방을 쓸고 닦으며 물건을 그대로 놓아두고 있는데…지금은 그냥 방문을 닫아뒀다고 하더군요. 그 마음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지금 우리집에 애 셋 우글우글해서인지 그래도 좀 부럽다!로 바로 두뇌전환!🥹
빈둥지를 바라고 원하지만 막상 빈둥지를 갖게 되면 그 헛헛함이 찾아오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 같아요. 저는 빈둥지를 바라고 있지만 또 내심 빈둥지를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여서…엄마 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케잌을 사 주는 친구가 있으니 참 복 많은 사람입니다.ㅋㅋㅋ

단발머리 2026-04-17 08:35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올리브 키터리지 읽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너무~~ 좋다~ 할 때, 제 삶에, 현실에 가깝게 겹쳐지는 부분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그게 싫었어요. (뭔지 아시죠? ㅋㅋㅋㅋㅋㅋ) 저는 다들 각자의 눈에 들어온 문장과 그 해석들이 참 좋거든요. 읽기라면 역시나 ㅋㅋㅋㅋㅋ 같이읽기가 최고죠^^

저는 제가......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빈둥지 증후군을 겪을만큼 둥지에 머물지 않았던 엄마새이구요. 저는 ㅋㅋㅋㅋㅋㅋㅋㅋ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 ㅋㅋㅋㅋㅋㅋㅋ복잡복잡 우글우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사실 그 순간에는 힘들잖아요. 코로나 때 생각나네요. 방마다 1명씩 아이들이 차지하고, 먹고 치우고, 치우고 먹고....
책나무님은 위의 제 친구처럼 열심히 달려오신 분이라 아이들이 훨훨 날아가면 그 시간을 잘 누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집밥에서 드디어~~ 해방되었습니다.
금요일이라 좋아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책나무님!
 
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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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고, 어디까지나 사건의 당사자와 화자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과 이 책을 비교하자면 그 차이가 확연할 텐데, 똑같이 자서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김대중 자서전』 같은 경우 본인이 저술의 처음과 끝이다 보니 검수의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의견이나 판단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해찬 회고록』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후배이자 동지인 최민희 의원이 과거의 장면을 회상시키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이해찬 대표가 답을 하고, 그 상황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지라 읽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수월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편안함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를 일직선상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은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는 정치가 이전에 사상가였고, 철학자였다. 당연히 현실(?) 적인 정치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 4명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과는 좀 다른 언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함에 있어,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급하게 미국 관료 000을 만나 이렇게 저렇게 설득했고, 그래서 한반도의 이런저런 위기를 막아냈다.' 이런 식이라면, 이해찬 대표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좀 도와달라고 그러더만.' 이런 식이다. 그 많은 일을, 척척해냈던 사람치고는 가지기 어려운 묘한 겸손함. 책 전체를 통해 그런 겸손함이 느껴졌다. 항상, 결국, 종국의 문제는 실력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에 겸손함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사람에게는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 윤회의 삶을 믿는 게 아니라면, 한 번. 단 한 번의 삶이다. 그 삶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고 어깨의 짐이고 하나의 특권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정해진 직업, 강요된 현실을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모든 양태의 삶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정치는 전부가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직업 정치인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그러한 정치적 결정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의 교복 비용을 지원받는다거나 집 앞 공터에 수영장을 겸한 도서관이 들어서는 일은 눈에 띄는 아주 자그마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통령 후보의 대북관이 왜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만 하는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과 북한을 동포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이 펼쳐낼 한반도의 미래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제 막 시작해서 겨우 30쪽 읽은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에서 오웰은 이렇게 썼다. 아주 유명한 바로 에세이의 바로 그 문단이다. 글쓰기의 네 번째 목적.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최대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으려는 욕구 등을 가리킨다. 어떤 책도 정치적인 편향으로부터 100퍼센트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인 태도이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17쪽)


정치란 무엇인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 혹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우리가 바라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과 비전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타적이고, 고매한 것인가 만큼 중요한 것이 그 이상의 실현과 실천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표독스러운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을 무력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윤석열이 '파렴치한 종북 반북가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했을 때, 국가와 경제와 국민을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고서라도 그가 얻고 싶은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가 그 말을 진짜 믿었을 확률도 적지 않다. 근간의 행동을 보아서는 그렇게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위해, 그 이상의 실천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바보가 되기도 하고, 폭군이 되기도 한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줬어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은 20세기 초에나 통했을지 모르지. 칼 포퍼 같은 학자는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개방사회' 개념과 함께 끊임없는 진보, 개혁을 주장했어요. 혁명은 짧고 단순한 과정이지만 개혁은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야 돼.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려운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분단이 됐는데 여기에 교조적인 계급투쟁이 통할 수 없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서 개혁해야지. (173쪽)

그래서 이해찬 대표의 이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만들어가겠다는 말.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개혁해 나가겠다는 말이 좋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믿고 가는 모습이 좋았다.


변혁의 주체는 결국 국민이고, 국민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찬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한결같을 수 있었다. 국민을 의지하는 그 마음 때문에.

최민희 2016년 10월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를 통해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시민 저항이 일어났고 결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집니다.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국회가 탄핵까지 갈 수 없었겠지요?

이해찬 촛불 1만 명당 국회의원 한 명이었다고 보면 돼요. 무슨 말이냐. 당시 주말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잖아요. 12월 9일에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했는데 찬성 의원이 234명이었어요. 근데 직전 주말인 12월 3일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이 234만 명 정도였지. 최대 규모였어요. 촛불집회가 그렇게 커지지 않았으면 탄핵을 못했을 거예요. 태블릿PC가 나오고 나서도 바로 탄핵 여론이 일어난 건 아니었어요. 박근혜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다는 분위기였지. 그게 안 먹히니까 탄핵 요구까지 나오게 됐고. ... 근데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여당 의원들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촛불 1만 명이 국회의원 한 명을 탄핵으로 이끌어 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야.(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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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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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을 보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외교에 관한 것이었다. 행정 집행 능력, 공약 실천력 같은 부분에서는 사실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다른 사람들처럼 '잘 하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외교는 좀 달랐다.



외교도 사람의 일인지라 직접 만나 부딪혔을 때의 순발력, 대응력이 중요하겠지만, 정교화된 외교 문법이라는 틀을 익힐 시간이 그에게 있었겠나, 그런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참으로 쓸데없는 것이었으니. 이 세상 어디에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하지만, 국가의 최고 지위에 도달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국가 지도자라면 그 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에너지, 다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소년공으로 자라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시간들을 모두 빼앗긴 채 살아왔던 이재명 대통령은 많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결같이 당당했고, 자연스러웠다. 부끄러웠던 우리의 시간, 과거 대통령의 순간들이 소환될수록 이재명 대통령의 그런 자연스러움은 더 빛을 발했다.

이 책의 작은 에피소드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엄마의 손을 잡고 공장 가던 길에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는 여학생들을 마주해 창피했던 경험이나, 공장에서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매질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는 이야기 등이 그랬다. 공부하는 시간을 얻기 위해 밀폐된 공간에서 화공약품을 처리하는 래커실을 자원했다는 이야기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대학입시의 좌절로 희망을 잃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었다는 이야기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부제가 <소년공에서 대선 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이라서 이재명에 관한 세간의 의혹, 특별히 전과를 얻게 된 과정들이 비교적 소상하게 나열되어 있다. 윤석열 시대와 비상계엄의 시간을 지나 보내며, 국민들은 그러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그 밤에 군인들에 맞서 국회를 지켰던 사람들도 국민이었고, 힘찬 구호와 발랄한 음악, '윤석열! 탄핵!'의 함성으로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도 국민이었고, 소복이 내린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도 국민이었다. 물론, 윤석열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도 국민이었다. 그런 분들 많이 만났다, 지난 토요일에.

이 책에서 내가 뽑은 한 장면은 바로 여기다.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쓸 때마다 나는 항상 이 부분에 걸린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하는가 혹은 돌아갈 수 없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불운했던 과거를 부정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불행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 하는가. 이미 탈출한 자기 자신을, 왜 지나쳐 온 과거 앞에 붙들어 세우는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친구가 행복할 때, 행복할 확률은 15% 증가한다.(『행복은 전염된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만 해도, 내 친구는 바로 나 때문에 행복해지는데, 15%의 확률로 행복감이 상승한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내 삶을 재미있게 알차게 보람되게 보내기만 해도 나는 내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내 행복이, 내 행복의 일부가 친구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내 궁금증은 여기에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의 일부를 포기하는가. 이제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이제 막, 그 지독한 가난에서 간신히 탈출했는데, 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가.

왜, 자신의 개인적 행복만을 위해 살지 않고, 세상의 탄압받고 억눌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조금 포기하는가. 포기하려 하는가.

왜, 도대체.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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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3-02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잘 알고 계시군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라구요. 글에서 뽑아주신 장면, 그 일기 속의 고민과 서로 일치하는 것 같아 감히 댓글을 드립니다. 저의 생각은 동물들에게서도 종종 발견 할 수 있는 능력같기는 합니다만...

단발머리 2026-03-06 08:41   좋아요 1 | URL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에서 이타적인 면이 발견될 때, 그게 과학의 주장/학설과 대척해 있을 때, 저는 그 지점에 관심이 많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026-04-01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