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이 작은 책’은 사전이고(스포일러), 줌파 라히리가 쓴 ‘이 작은 책’은 작가로서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쓰는 줌파의 ‘이탈리아어 고분분투기’이다. 물론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로마로 이사 온 지 일주일 후, 문이 잠겼던 잊을 수 없는 그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두 번째 맞는 토요일 나는 우리의 고난을 적기 위해 일기장을 펼쳤다. 그날 난 생각도 못한 낯선 행동을 했다.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쓴 것이다. 자동적으로 술술 이탈리아어 일기를 썼다. 손에 펜을 쥐었을 때 머릿속에서 더는 영어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그 시기에 나는 언어를 바꿔 글을 썼다. 내가 새로이 경험했던 모든 것을 보다 의욕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52쪽)

 

이런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숱하게도 많이 들었는데, 말 그대로 어느 순간, 특별한 어느 순간에 외국어로 글쓰기와 말하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 순간을 고대하며 기다렸으나, 그 순간이 오지 않았다는 확신보다 더 확실한 건, 화려하게 빛날 그 찰나를 기다리긴 했으나 막상 그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적정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

왜, 줌파는, 자신의 언어를 버리려 하는가.

하지만 몇 년 후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벵골어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때였다. 그때부터 모국어 벵골어는 더는 홀로 날 성장시킬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내 모국어는 죽었다. 새어머니 영어가 왔다. (119쪽)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가져다준 영어는 줌파에게 새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그녀의 모국어는 벵골어이다. 부모님과 친척들과 함께 있을 때, 줌파는 벵골어만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학교와 사회에서 벵골어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언어, ‘무시해도 되는’ 언어이다. 그녀는 영어로 읽고, 영어로 말해야 하며, 그리고 영어로 써야 한다.

벵골어로 말할 때, 그녀의 친척들은 ‘외국에서 태어난 네가 벵골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 영어로 말할 때, 미국인들은 ’외국인처럼 보이는 네가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벵골어와 영어, 어느 것과도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119쪽)

 

 

이탈리아어는 그녀가 선택한 언어이다.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며 공부하는 언어다. 이제는 이탈리아어로 된 책만 읽고,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으며, 그리고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려 한다. 영어권 작가로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장점, 특혜, 무기를 모두 다 내려놓는다.

언어로 집을 짓는 작가, 그 중에서도 삶의 가장 가까운 일면을 그려내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책을 읽어가며 여러 번,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이미 가진 것, 이미 얻은 것을 왜 버리려 하는지, 어쩌면 끝까지 가질 수 없는 것, 끝까지 얻을 수 없는 것을 위해, 왜 이렇게 애쓰는지.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물을 수 없었는데, 그건 그녀의 이런 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죽으면 이탈리아어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도 끝나기 때문에 난 죽고 싶지 않았다. 매일 배워야 할 새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영원을 꿈꾸나 보다. (43쪽)

 

새로운 흥분과 열정, 살아있다는 느낌을 이탈리아어를 읽을 때 느낀다는 것인데, 어쩌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졌다.

... 

그녀가 버리고 싶은 영어를 나는, 얼마나 갖고 싶은지. 그녀가 이제는 싫다고 말하는 영어에 대한 편안함이 나는 얼마나 부러운지. 가능하다면, 버리고 싶다는 그 영어 실력을 나한테 버리면 안 되는 건지...

 

지지난주에는 보슬비님이 보내주신 책과 선물을 받았고,

지난주에는 다락방님이 보내주신 책과 선물과 엽서를 받았다.

 

알라딘 이웃들의 애정과 관심, 사랑과 배려에 감동받았다. 멀리 사는 친구들은 생일에도 만나기 어렵고,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들도 선물을 주지 않는다. 이 세상 그 누가, 내게 이렇게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내줄까.

다시 한 번, 두 분께 무한 감사 사랑을...

아무튼 나는 그렇게 책을 펼치고, 아,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한 페이지 넘겨 두 번째 페이지부터 슬슬 짜증이 난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했다. 이 책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나는 왜 줌파처럼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를 노트에 적어가며 읽으려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1분간 탓해 본다.

주말에는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의 문장에 완전히 반해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 3권을 대출하면서,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거야 하며 『Children Act』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서라,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내게는 어렵다.

    이 작은 책들은 언제나 내게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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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22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단발머리님의 글도 좋고, 보슬비님의 선물도 좋고,
다락방님의 선물도 다 기쁘고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제 하루도 참 좋습니다~~ㅎㅎㅎ

단발머리 2015-09-22 11:10   좋아요 1 | URL
좋게 봐 주셔서~~~~ ㅎㅎ
선물을 받기만 해서 저는 감사하고 미안해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appletreeje님께도 항상 감사하구요.
날씨도 더운 듯 하면서도 청명하네요. appletreeje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아무개 2015-09-22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읍 다락님의 엽서를 저는 못받았어요.
중간에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 진짜...
다시 보내달라고 말도 못하고(여기다 쓰고) ㅠ..ㅠ

외국어에 대한 짝사랑 또는 집착은
아마도 진짜로 사랑에 빠지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단발머리 2015-09-23 07:30   좋아요 0 | URL
다시 보내달라는 말을 못하셨지만, 일단 여기에 쓰시고...
다락방님, 와서 이 글을 보소서~~~~

그러게요. 진짜 사랑에 빠지면 그게 쉬워질까요?
예전에 익숙했던 언어가 싫어질까요? 공항이 그리워지고 그럴까요?
외국어와 사랑에 빠져보지 못 했던 저로서는... @@

해피북 2015-09-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랬습니다. 제가 외국어에 젬병인 이유가....사랑때문이였다니요 ㅋㅂㅋ
어떻게하면 사...사......사랑하랑할수있을까요 ㅎ 저는 평생을 짝사랑으로만 끝낼거같아요 ㅎ 보슬비님 티 저도 받아본적 있어서 사진보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ㅎ 그 마음 깊이깊이 느껴집니다. 아 그런데 단발머리님 혹시 생일이셨나요?

단발머리 2015-09-23 07:33   좋아요 0 | URL
네.... 모든 것은 사랑때문이지요. 사랑사랑사랑.

어떻게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랑은 그냥 빠지는것 아닐까요?
풍덩이요. ㅋㅎㅎㅎ
줌파는 이탈리아로 떠나기 6개월전부터 이탈리아책만 읽었다고 그러더라구요.
20분만 원서를 읽어도 급 피곤에 잠이 몰려오는 저로서는... 참 놀라운 사랑입니다.

제 생일은 여름이었구요.
위의 사진은 그냥 선물이요. 하하.... 전 이런 선물이 제일 좋아요.
그냥, 네가 생각나서 보냈어. 막 이런거요.
우하하..... 저 지금 또 자랑하나요? ^^

2015-09-22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