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읽고 평생 자랑 가능한 고전 중의 고전을 읽었다. 1권 말미 대심문관의 독백은 한 번 더 읽어봐야 한다. (나에게는) 올해 최고 화제의 신간 『빌레뜨』. 제인 에어 ‘순한 맛’이라 할 수 있는데 샬럿 브론테 팬이라면 강추. (팬이라면 뭔들^^) 12세 관람가 수준의 겁쟁이 1인은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블러드 차일드』가 떠올라 며칠 밤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올해 읽은 가장 강렬하고 가장 눈부신 단편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것.
에이드리언 리치의 글은 항상 나를 가슴 뛰게 한다. 솔직하다고 해서 모두 감동을 주는 건 아닌데, 그녀의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완벽한 ‘역할수행’이라는 게 아예 불가능한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완벽하다. 아들 셋 어머니는 어떻게 모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힘을 창조해내는가. 절망과 차별 앞에서 마야 안젤루는 씩씩하다. 좌절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다. 살고 살리고 결국엔 이겨낸다. 그녀의 삶이 바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나의 안락함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제3세계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고통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 쉽지 않았지만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사람, 장소, 환대』는 자랑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의 언어로 쌓은 ‘인간’ 아닌 ‘사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결정체. 그녀(김현경)는 새 책을 써야만 한다, 반드시. 『성 정치학』은 페미니즘 고전 중에서도 단연 빛난다. 사회와 문화를 관찰하고 평가할 때, 새로운 시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특히 문학 작품 속 남성의 성 판타지를 날카롭게 파헤치는데, ‘물건’을 ‘무기’로 사용하고자 할 때, 찌질한 남성들의 환희에 찬 비명소리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개척자이며, 선구자이면서도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낸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2020년 올해의 책. 연달아 두 번 읽은 책. 여성이 남성의 눈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보겠다는 그 위험한 도전을 아름답게 이뤄낸 책이다. 사람에 대한 호의와 선한 의도가 다르게 이해되는 것은 흔한 일이나, 사랑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호의와 관심,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준다. 나의 사랑은, 어쩌면 영원히 나만의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 해가 갔다.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서먹서먹하던 가족들이 코로나 때문에 같이 지내게 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는 사연을 소개하던데, 우리 집은 반대다. 난 평소에 우리 집은 ‘유난히’는 아니어도, 대체로 가족들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진짜 서먹서먹해지기 직전이다. 서로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지만 같은 공간에, 그것도 좁은 공간에 북적이며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내년에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래본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친구들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어서 책을 더 많이 읽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책 제목이라기보다는 2020년을 보내는 나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습니다.
알라딘에서 만난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서로의 글을 읽고 소개해 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알라딘 이웃들이 있어서, ‘읽는다’는 이 평범한 일이 훨씬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계속 올라오는 ‘올해의 책’ 페이퍼들이 반갑고 고맙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오랜 고민, 그 길고 긴 고민을 들어준 친구들과 빵! 터지는 웃음을 하염없이 선물해주는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따뜻한 응원 때문에라도 내년에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알라딘 마을 이웃 여러분, 올 한 해 감사했어요.
2021년 새해에는 원하는 바 이루시고, 온 가정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