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열고 들어오다 늘 그랬듯 오른쪽 책장에 시선이 멈췄고, 무릎 쯤 닿는 거리에 꽂혀있던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위로는 편애하는 일본 소설들이고 왼쪽에는 시집과 에세이, 오른쪽에는 국외 소설들이 거주하고 있다. 가끔 한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으면 '그냥 꺼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는다. 서점 바닥에 앉아 책 읽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요즘엔 동경만경이 꽂혀있는 칸의 책들이 자주 눈에 띄고 주로 그 책장에서 하나둘씩 불러내어 무작정 내 놀이 상대로 맞이한다. 지난주엔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이 생각나 꺼내 읽고, 내친김에 만화도 읽었다. 체온계가 장착되있는 것처럼 선생님의 가방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그 세계에 압도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세계로 스르르 스며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 느낌 때문에 서점 바닥에 앉아 책 읽는 놀이를 하듯 무작위로 꺼낸 책을 책상으로 모셔오곤 하는데 동경만경도 그랬다. 사랑이 언제 끝났죠? ... 정말 모르겠어. 라는 대사가 압권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일식> 을 인용하는 미오는 닿을듯 말듯하며 연인으로 지내는 료스케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인터넷 미팅 사이트에서 만났다. 시작이 그랬기 때문인지 둘은 연결되있지만 쉽게 연결을 끊고 지내고 접속한(=만난) 순간에만 뜨겁다. 사랑하는데, 먼저 사랑한다고, 죽도록 사랑하니 나와 같이 죽자 살자 하며 사귀어보자는 말은 판도라의 상자인듯 꺼내지도 못한다. 헤어지는 게 두려워서, 헤어짐 이후의 이별을 홀로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이게 사랑일까 하는 의심에 혼란스럽다. 낯선 서로가 만나 말하고, 웃고, 나누고 하는 일들에 공허를 느끼고 있다. 지금 웃으면 뭐해, 금세 헤어질걸. 지금 사랑하면 뭐 해, 난 결국 혼자인걸. 새로운 기기 발명이나 편리한 삶의 도구들은 새로울 것도 없는 시큰둥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독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이슈가 되지 않는 세상에 살다보니 외려 내 삶이 이상하게 외로워져 버렸다. 내가 그에게 접속하지 않는 순간, 나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없는 것 같은 이상한 외로움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접속할 때만 연인. 사랑이 언제 시작됐지? 정말 모르겠어. 미오도 료스케도 대답은 회피하고 있다. 한때 친구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잘 만나 놀고 헤어져 돌아설 때의 느낌이 애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때로는 그 이상 막연히 쓸쓸했다. 애인이면 결혼이라도 하지 친구들과는 결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마음을 많이 빼앗긴 탓이었다. 이럴때는 제도권이라는 영역이 감정을 다스리는데는 괜찮은 것 같은데 미오와 료스케는 결혼은 커녕 사랑이야? 아니야? 로 밀고 당기고 당기고 밀고 있다. 그 말을 과연 누가 먼저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물음표가 많아지면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격을 의심해봐야 한다. 사랑의 초입은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구석이 있어서 사랑한다면, 일단 밀고 들어가버린다. 우왕 좌왕하고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일시적인 강렬한 감정일 수 있다. 망설여지면 사랑하지 마세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멋있고 좋았나 싶게, 참 좋다, 고 잠깐 생각했다. 얘네 둘, 끝까지 이런다. 끝까지 막연한 감정을 시험한다. 긴자에서 만나기로 했던 두 사람은 서로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는다. 다음날 도쿄만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근무처에 있던 두 사람은 통화를 하며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끊임없이 서로를 탐색만 하던 미오와 료스케. 료스케가 미오에게 말한다.

 

"음, 만약에 말야, 지금 내가 여기에서 그쪽까지 헤엄쳐서 널 만나러 간다면...... 내가 너한테 싫증이 날 때까지 계속 내 곁에 있어줄래?"

"그게 머야. 너무 좋은 조건 아니야?"

".......자 그럼, 만약 내가 지금, 바다로 뛰어들어 도쿄만을 헤엄쳐 너에게...... 미오가 있는 곳까지 간다면, 날...... 끝까지 좋아해줄 수 있겠어?"

료스케의 말이 선명하게 미오의 귀에 와 닿았다. 농담이란 걸 알면서도 뭔가가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를 '미오'라고 불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좋아. 만약 정말로 료스케가 거기에서 여기까지 헤엄쳐 건너오면 끝까지 좋아할게."

미오는 일부러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약속 장소에 동시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 필연같은 우연으로 느껴져서인지 료스케는 대담한 제안을 하고 미오는 대담하게 받아들인다. 대담한 실험이 없이는, 목숨과 불가능을 걸지 않고서는 빠지기조차 힘들어진 엘오브이이. 이것이 이별을 대신하는 프로포즈라면 씁쓸하지만 받아들이겠다. 때로는 이별이 사랑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랑 고백이라면, 같이 헤엄칠 준비를 해야지. 그게 사랑 아니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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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대로 글 쓰고 놀 수 있는 공간들을 모두 닫아버렸다는 걸 며칠전에야 알았다. 글이라는 게 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말 할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입을 다물었고 손을 멈췄다. 그러다보니 나는 더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버렸다. 먼지가 되기 전까진 글 쓰며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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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1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 :)

플레져 2015-05-14 13:28   좋아요 0 | URL
하이:D

프레이야 2015-05-1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잘 오셨어요. 먼지 걷고 청소 좀 하셨나요? ㅎㅎ 먼지가 되기 전까진 쓰며 놀자에 동감입니다.

플레져 2015-05-14 13:29   좋아요 0 | URL
아차차... 먼지는 쓰면서 조금씩 날려버릴게요^^
잘 지내셨죠?

프레이야 2015-05-1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대문사진 보니 ‥ 시데 다녀오셨어요? 그동안

플레져 2015-05-14 21:13   좋아요 0 | URL
저 사진은 오래전에 걸어놓은건데요,
몇 년 전에 다녀온 터키, 파묵칼레에요 ^^

프레이야 2015-05-14 21:15   좋아요 0 | URL
아, 파묵칼레 입구. 저는 지난 12월에요.^^

icaru 2015-05-1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우아 반가워라잉ㅇㅇ;;

플레져 2015-05-14 21:1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셨죠? ^^
은근 슬쩍 방 문 열었어요~
 

  

 

 

 

 

 

 

 

 

 

 

 

 

 

2007년 1월 초, 그 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발표되었던 그 때, 한겨레신문 문학담당 최재봉 기자의 기사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당선자들에겐 미안하지만 단편 소설이 아니라 장편을 써야 하는 시대, 라고. 정확한 문장은 아닌데 이런 뉘앙스는 분명하다. 비단 그 기사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때부터 한국 소설에는 장편 소설 바람이 불었고, 온갖 장편소설 문학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돌풍이었다. 아마도 어떤 자구책이었을거라 생각한다. 단편에 치중되어있지 말고 장편도 같이 균형을 맞추자는. 그런데 그게 꼭 필요할까.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어떤 지점에선 편향적이며 편협하다. 취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도서관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을 발견했고 선 채로 몇 페이지를 재미나게 읽었다. 책이 좀 두툼해서 빌리지는 않고, 도서관에 올 때마다 몇 장씩 읽기로 했다. 웹 검색의 꼬리들을 따라가다 한겨레 홈피에서 책의 근원이 된 기사 꼭지를 발견. 책에도 실려있을 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서재와 이야기가 담긴 동영상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단편이나 중편에 애착을 지닐 뿐 장편은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단편은 장편의 역할을 해 왔어요. 전력을 기울여 쓴 것이니까 장편급이라 할 수 있지. 요즘 장편소설을 열심히들 쓰고 있던데, 결국 작가들이 출판사에 놀아나는 거라고 봐요. 단편에 이것저것 너절하게 넣어 살찌우면 뭐가 되겠어요? 장편(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장사꾼의 논리일 뿐이야.”

 

장편을 쓰라고 했던 기자와 단편 중편만 애정한다는 평론가의 우연한(?) 대화가 퍽 재밌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을 좋아하고,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단편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그 무엇 이상이다. 장편소설 붐이 일면서 단편 소설을 읽던 나도 멈칫했다. 어떤 의무처럼 책을 주문할 때 장편소설 한 권쯤은 선별했다. 여기엔 얄팍하고 팔랑이는 내 귀도 문제겠지만, 그래도 모두들 장편, 장편하니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태생에 맞는 글 읽기를 강조하는 건 어떨까. 오래 자리를 지키며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엉덩이가 묵직해도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이다 파국이다 하는 시절에도 팔리는 책은 팔린다. 작가들에게도 매니아, 팬 층이 있지 않으면 책 한 권 팔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장편, 단편 가릴 것 없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떤 부류가 고집하고 선호하는 것에 휘둘리지 말고 내 몸의 생리구조에 맞춘 독서를 하는 게 낫다. 그리고 이미, 독자들의 생리 구조에 맞춰 읽으라고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불황임에도 쏟아져 나온다.

 

다음 아고라에 서울시 교육감 후보, 민주진보진영 단일후보인 조희연후보의 둘째 아들이 쓴 글을 읽다가 오래 멈춘 대목이 있다.

 

이를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저희 아버지가 최소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공정하게 평가받을 기회라도 얻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인지도가 없으면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작가들의 책, 출판사들은 언제나 그 출판사가 그 출판사다. 마케팅과 홍보의 힘도 있겠지만 그 외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들의 책을 만나는 건 참 어렵다. 그 사람들이 잘 쓰니까, 라고 말하면 할 말 없는데, 기회라는 것은 여전히 한쪽에만 향해 있는 것 같다. 이건 그들만의 잔치, 로 남게 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나는 우리나라 문학이 아는 사람만 아는, 한쪽으로만 치우친 어떤 장르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의 문은 많은 것 같아도 열린 문은 언제나 좁을 뿐. 어디에도 휘둘리지 말고 내 취향에 충실하는 독서가 정말 재미있는 독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이글의 결말은 이렇게 하자. 선거를 잘하자. 선거 잘해서 세상 좀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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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3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하도 안 나타나셔서 이제 여기는 안 오시나 했습니다.ㅋ
잘 지내죠?
중국처럼 문학인에게도 나라에서 월급도 주고 하면 좋을텐데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단편 쓰는 게 장편 보다 어려운 건데 내가 작가라면 단편을 쓰고 싶고,
독자라면 장편을 읽고 싶고 해요. 이런 이율배반이 어딨습니까?ㅎㅎ
요즘도 글 열심히 쓰시죠? 어찌지내는지 궁금합니다. 플레져님.^^

플레져 2014-05-30 18:12   좋아요 0 | URL
보고 계시죠? 열심히 서재에 글 쓰고 있는 모습을...ㅎㅎ

다락방 2014-05-3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플레져님 아니십니까!
어제 영화리뷰는 집에 돌아가는 길 스맛폰으로 보았는데 오늘 이렇듯 피씨로 페이퍼를 만나니 더 반갑네요.(이게 대체 무슨말?)

간혹 들러주세요, 플레져님.

플레져 2014-05-30 18:15   좋아요 0 | URL
시스터 보셨나요? 이 더위에 겨울 배경이라 시원~하게 볼 수 있고...
또... 좋은 영화라 생각되니 꼭 보세요!
간혹, 때때로, 틈틈이 들를게요. 반겨해주셔서 감사해요 다락방님 ^^

푸른희망 2014-05-3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을 무척 좋아합니다... 너무 단편만 읽어서 내가 읽기에 무언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지요.. 긴 호흡이 힘들고 장편도 좋은 작품이 많지만 뭔가 중언부언하며 곁가지가 많다는 생각도 하구요. 짧지만 길게 생각할 수 있는 단편을 좋아하면서 드러내기는 힘들었는데.. 왠지 내가 틀린 건 아니구나... 라는 위안을 받고 갑니다.. 잘 읽었고 공감합니다. 선거는 잘해야겠죠 !!

플레져 2014-05-30 18:16   좋아요 0 | URL
푸른희망님 안녕하세요.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을 근래에 첨 뵙는 것 같아 저도 반갑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짧지만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주는 것이 단편소설인 것 같아요. 즐독하세요!

비연 2014-05-3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플레져님. 넘 반갑습니다!!!!

플레져 2014-05-30 18:16   좋아요 0 | URL
비연님 오랜만이에요 ^^!
 

 

 

 

2012년 작, 시스터를 보았다. 레아 세이두를 보려고....힛.

 

12세 소년 시몽은 스키장에서 스키와 스키 악세사리등을 훔치는 능숙한 도둑이다. 시몽은 훔친 물건을 동네 아이들과 리조트에 잠시 일하러 온 제 3세계의 노동자들에게 판다.시몽의 고객들은 물건의 출처를 알면서도 모른체 넘어간다. 시몽의 누나 루이는 시몽에게 용돈을 받아 쓰고 내키는대로 일을 관두고 남자를 만나고 가출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시몽은 루이에게 외려 용돈을 주고 그저 돌아와주기만을 바란다. 누나 루이는 시몽의 고객들처럼 시몽이 도둑질을 한다는 걸 알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만, 씁쓸하게 웃거나 웃지 않을 뿐이다. 시몽의 도둑질은 과감하고 리조트의 관리는 허술하다. 시몽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은 시몽을 방관할 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몽의 세상은 더 쓸쓸하다. 누군가 나의 잘못을 크게 꾸짖어주지 않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나를 더 슬프게 하고 외롭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몽이 훔치고 팔고를 반복하던 끝에 겨울이 끝나가고 스키 시즌은 끝이 난다. 파장이다. 그제야 시몽의 외로움이 드러난다.

 

스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휴가 온 사람들이 모두 떠났을 때 시몽은 외로움을 느낀다. 12세 소년이 지나치게 늙어 보인다. 인생을 본의아니게 오래 살아버린 노인처럼, 폐허가 된 도시에 나타난 리플리처럼, 종말의 끝에 혼자 살아남은 지구인처럼 시몽은 외롭고 혼자다. 그동안 시몽이 저지른 범죄들이 이해될 것만 같다. 시몽에게 도둑질이란 또래의 소년들처럼 친구와 가족과 놀이를 즐기는 시간이었던 것만 같은 것이다. 시몽이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면 시간을 때울 수 없었고, 그것은 곧 가족이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자신의 처지를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켰을 테니까. 남의 물건을 훔치는 시몽에게는 거짓말도 자연스럽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장에 온 영국 부인에게 시몽은 자신의 부모가 아주 큰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며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식사 값을 치루려 선뜻 지폐를 꺼내는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순간의 시몽은 소년이면서 부인의 가정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빈 옆자리를 차지하려는 성인 남자같다. 시몽은 왜, 열두살 소년의 보통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시몽의 물건을 구입하는 어린아이들은 시몽이 스키도 무척 잘 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몽은 일(=훔치기)하는데만 열중하며 스키는 탈 줄 모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몽이 할 줄 모르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시몽은 물건 훔치기에만 능숙하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서툴다. 누나 루이에게 큰소리 치며 청바지 하나 사입으라고 베풀지만 누나는 시몽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늘 씁쓸하게, 불편하게만 바라본다. 거기에 두 사람의 비밀이 있다. 루이는 시몽의 진짜 누나일까? 시몽은 루이의 진짜 동생일까?

 

사람의 마음은 무척 정직하다. 사랑이나 정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초 단위로, 분 단위로 차곡차곡 쌓이고 오고 가고 주고 받으며 학습되며 자라난다. 그런 과정은 가족이라는 단위에 속해있을때 배울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일. 시몽이 영국부인에게 진심으로 대하지만 그 진심은 나이에 맞지 않은 행동이고, 시몽 또한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단, 훔친 물건을 판 돈으로 누나의 환심을 샀던 것처럼 돈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에 시몽은 영국 부인에게 진심을 베풀었지만 영국부인에겐 그저 자신의 가족을 잠시 도와준, 그러나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소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시몽의 도둑질이 발각되어 스키장 출입이 금지되었을 때, 시몽은 고속도로 히치하이커로 변신하여 최선을 다해 또 훔친 물건을 판다. 어린 시몽은 왜 그토록 최선을 다해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차라리 보통의 소년 도둑처럼 물건을 판 돈으로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쓴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시몽에게 루이는 그리운 모성, 그리운 가족이다. 시몽은 자신이 보통의 아이들이 부모의 축복아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랑을 얻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소년은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과 바꿔서라도 괜찮은 가족의 구성원이고 싶었을 것이다. 심지어 시몽의 고객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선물하기 위해 시몽의 훔친 물건을 기꺼이 산다. 그때의 시몽의 마음은 어땠을까. 시몽이 누나 루이에게 같이 자게 해달라며 돈을 지불하는 장면에서 그 마음은 들통난다. 누나의 배에 머리를 대고 누운 시몽은 그제야 어린 열두살 소년의 표정으로, 따뜻한 가족이 있는 소년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에 기꺼이 다가가고 마음을 사려했던 시몽에게 <빌리 엘리어트>의 가족이 있었다면, 또 하나의 빌리 엘리어트가 탄생했으리라. 열 두살 소년에게도 고독은 고독이고 외로움은 외로움인 것이다. 아마 어른의 고독보다 더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나태한 어른들보단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독과 처지를 헤쳐나가려 하는 면면은 가히 서럽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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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지음, 고영범 옮김 / 강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여름이었다. 폭염의 나날 속에서 나는 단 한 권의 책,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을 정독했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한 작가의 생을 쫓았다. 폭염을 잊을수는 없었지만 잠시 외면할 수는 있었다.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황과 태어나고, 살고, 죽은 후의 상황들이 나열된 이야기였다. 맨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서 나는 한 작가의 생이 아니라 한 남자의 쓸쓸한 생을 읽은 것 같아서 쓸쓸하고 아팠다. 쓸쓸하다는 말, 참 오랜만이다. 중학교때 내가 마땅히 써야 할 유행어처럼 쓰고 처음이다. 레이먼드 카버, 참으로 쓸쓸한 인생이었다. 작가라는 그의 소명은 쓸쓸함을 부추겼을 뿐 해소하지는 못했다. 작가는 쓸쓸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감명깊은 책을 읽고, 작가를 알게 되면서 작가를 꿈꾸고 동경한다. 레이는 아홉살 때부터 작가가 되고자 꿈을 꿨다. 그 꿈을 갖게 된 후 그는 작가들을 동경했고 그들의 책을 읽었다. 그는 그 어린 나이에 자기의 운명을 정해놓고 그 길로 직진했다. 작가의 길로 가는 동안 그는 샛길로 빠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야 했고, 생활고를 등에 지고 품에 안고 걷고 뛰었다. 그가 쉽게 작가가 되었다면 그의 작품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길을 가기 위해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뛰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뒷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에겐 오로지 '작가' 와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직업을 선택하여 편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아홉살 때부터 꾼 꿈밖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처럼 줄곧 그 길에 있었다. 그 길에서 이탈하는 방법일랑 그는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작가, 레이는 왜 그토록 작가를 꿈 꾼 것일까. 9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얼추 짐작한 건 그의 마음에 넘쳐나는 공허였다. 그건 태생적인 공허였다.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공허였다. 공허는 그런 게 아닐까. 나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덤벼들었다가 다시 제풀에 쓰러져 넘어져버리는 것. 누군가 해결해주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절망적인 것. 공허는 공허를 낳음으로서 영원해진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가 떠오른다. 어떤 아이가 어른에게 물었다. 행복이 뭐에요? 그러자 어른이 그건 아주 좋은 거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아이가 말했다. 먹는 거에요? 어른은 아이를 따뜻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단맛이 나는 사탕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아이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에이, 시시하네. 아이에게 사탕이란 금세 녹아 없어져버리는 먹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린 나는 아이도, 어른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난 사탕을 먹으면 안된다는 금지 조항을 껴안은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었고 어른의 말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동화를 오래 기억하고 행복을 얼추 상상할 수 있는 건 '단맛' 때문이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 행복이란 말을 입에 올리면 '단맛' 부터 생각난다. 레이의 생에는 없었던 단맛.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돈을 벌고 명성을 얻었을 때도 나는 그가 행복해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공허로 주입된 에드벌룬처럼 그저 둥실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도드라지게 떠 있는 에드벌룬.

 

 

레이는 작가의 길을 걸으며 남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는 스무살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또래의 연인인 메리앤의 임신 소식을 듣고 레이는 청혼을 한다. 그 당시엔 평균 결혼 연령이 십대였고 어린 신부의 혼전 임신은 흔한 일이었다. 그 순간(레이가 청혼을 한 순간), 작가가 될 레이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고 필자는 말한다. 메리앤은 그가 작가의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첫번째 사람이었다. 너무 이른 결혼으로 가장이 된 그는 가족 관계를 성립하는데 무지했다. 그에게는 아이들이 그저 어쩌다 생겨난 전유물처럼 존재했고 아주 나중에서야 남매에게 신경을 쓰게 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아버지 상과는 다르다. 딸은 레이처럼 알콜 중독을 겪지만 곧 회복하였고 아들도 독일에서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딸과 아들의 증언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회한이 역력하다. 아내 메리앤은 그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것을 적극 지원했고 영감을 주었으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직업 스토리는 놀랍고 고단해보인다. 레이의 소설들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은데 아내 메리앤과의 에피소드, 그들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레이의 소설 주제가 바로 그들의 이야기였다.

 

요즘 내게 이야기 '재료'로 다가오는 것들은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무렵 내 눈에 드러났던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내가 부모가 되기 전의 생활에 대해선 거의 기억이 없어요. 스무 살이 되고 결혼해서 애들을 낳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라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에야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거죠. 108쪽   

 

레이는 작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모색한다. 대학을 다니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다시 또 글을 쓰고 일을 관두고 대학을 다닌다. 그들의 집에는 변변한 가구 하나 없었고 겨우 산 목숨을 이어갔을 뿐이었다. 작가들은 어딘가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홀려있었듯 레이는 술에 홀려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유전적인 탓도 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 불안했고 불안을 떨어내기 위해 술을 마셨다. 악순환은 반복되었지만 그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래도 술을 멀리할 수는 없었다. 레이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쓴 시들은 소설의 원천이 되었다. 그가 쓴 시 중에 <운전 중 술마시기> 는 제목에서부터 그의 일상을 드러낸다. 그에게 술은 글이 되지 못한 불안과 공허였을까. 그가 사로잡힌 공허는 어떤 결핍에서 오는 것일까. 그의 소설들은 사실적이고 단순하지만 의미와 여운은 오래 남는다. 그는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부분 각색해서 써내려간다.

 

말들, 정확하고 진실한 말들은 행위가 지니는 힘을 가집니다.

여러분의 말들의 영혼, 여러분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으로 준비는 충분합니다.

더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 레이먼드 카버   857쪽

 

 

900페이지가 넘는 두껍고 긴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중도에 포기했던 책들이 꽤 있었다. 나를 끝까지 읽게 한 레이의 생은 단순히 작가의 삶이어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생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아버지 세대의 삶이어서도 아니다. 불안하고 가엾은 시지프스, 한 인간의 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굴러내려오는 생의 시간들을 혹독하게 치렀다. 그는 마치 불행하지 않으면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처럼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벌린 옳지 못한 일들에 연민을 느끼는 건 아니다. 아내 메리앤을 집착할 정도로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던 레이를 옹호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아내 메리앤이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레이가 아내의 머리채를 잡은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 너무 사랑하면 그 사람의 머리채가 아니라 팔이라도 부러뜨리고 싶지 않을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미치광이로 변신시키는 게 사랑의 속성일테니. 레이와 메리앤은 사랑하는 연인이고 남편과 아내인 동시에 서로를 움켜쥐고 있는 필연의 관계였다. 에드가 드가가 연인 메리 커셋과 라이벌이자 어떤 선을 긋고 지냈던 것처럼. 레이와 메리앤도 사랑하지만, 어떤 한 부분은 서로에게 잡혀 있지만 (잡혀 있기를 원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레이는 어떤 수순을 밟듯 메리앤과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시인 테스 갤러거와 마지막 생을 살았다. 나는 울었던 것 같다. 메리앤과 헤어질 때 메리앤이 레이를 위해 헌신한 일들이 떠올라서.(이건 순전히 소박한 독자, 여자의 감정이겠지) 하지만 레이와 메리앤은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진짜 사랑이, 끝났음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게 마무리 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의 끝, 그건 행복의 단맛과 달리 담백한 맛이 날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원했던 것은, 카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사랑 받았다 - 아들과 형제, 친구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두 번, 그리고 마침내 작가로서.    866쪽

 

 

그의 공허의 성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랑받기 위해 글을 썼고 작가의 삶을 살았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 내 일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었다. 레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그것은 글이었고 작가의 삶이었다. 레이의 주변 사람들 인터뷰를 성실하게 모았다. 증언은 지루할 수도 있는데 소박하고 일상적이어서 잘 읽혔다. 레이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대한 뒷 이야기, 짤막한 작품 분석들은 흥미로웠다. 책이 책을 부르듯 소설이 소설을 불렀다. 레이의 생애와 소설을 같이 읽느라 독서의 시간이 길었다. 이십여일만에 한 남자의 생애를 읽었지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 사람의 생을 내 생이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단지, 부분 부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일뿐. 그의 작품이 남아있는 동안 그의 생에 대한 이해와 소설의 감동은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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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1-0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샛길로 이리 빠져도 보고 저리 빠져도 본 저로써는 작가의 그 "초지일관"이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플레져 2012-11-02 14:06   좋아요 0 | URL
한편으론 부러운 삶이지요. 그가 불행했을거라고 짐작하는 건 독자,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일뿐이듯... ^^

프레이야 2012-11-0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담지않고는 뭇 배길 책을 이렇겟 소개해 주시네요, 플레져님^^
정확하고 진실한 말의 힘, 사랑의 끝맛은 담백함. 왠지 그럴 것 같다고 고개 주억거려져요.
다 살아본 것도 아니고 아직 살아갈 날이 많지만.
11월의 둘쨋날 이렇게 오랜만에 글 올려주셔서 더 반가워요.

플레져 2012-11-02 23:13   좋아요 0 | URL
반가워해주셔서 반가워요 프레이야님^^
요즘엔 자서전과 전기문이 잘 읽혀요.
한 사람이 지나온 생애를 관조하는 시절이 온 것 같아요..

2012-11-0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음장수 2012-11-0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0페이지의 책을 읽을 자신은 없지만,
리뷰는 너무 잘 읽었습니다.

플레져 2012-11-05 10:44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저도 다시 900페이지의 책을 완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얻은 것 같아요.

2012-11-05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5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