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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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시집을 건네 들고 첫장을 넘기자 목차 이전에 앨런 긴즈 버그의 <어떤 것들>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을 때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집 맨마지막의 시 류시화님의 감회가 담긴 장 이전에 등장하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리 톨마운틴의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라는 시에서 말하듯 "헤어지면 서로 잊게 된단다./ 그러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돼."라는 말이 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영원히 영혼을 되살리는 존재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소중함이란 추억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동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내면에서 소중함이란 추억과 함께일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난 잊혀진 존재 잊혀진 가치라고 생각되었다. 난 누군가의 내면에서 꽃피어본적 없이 져버린 거라고 말이다.

 

그런 내게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은 꽃피어야 할 것은 꽃핀다고 어떤 역경 어떤 시절을 거쳐도 누구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꽃피운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집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이 시가 내게는 위로와 닮아있는 시였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이라 와히드 <흉터>

 

부끄러워 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생의 상처란 그런 것이다. 상처가 흉터로 아물 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는 자신의 상처를 삶으로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

너 자신이 되라.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정복당할 것이니,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 중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고 익혀 그저 특이한 인간으로 나 자신을 여겼다. 유년시절에 나를 대하던 사람들의 대우를 그대로 답습하며 나 자신을 애물단지처럼 여겼다. 이 세계에 잘못 온 존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껴왔다.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면 나도 나 나름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내게도 그런 가치가 있었던 거라고. 뒤늦게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나는 나를 사랑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속이고 이용했다고 생각되던 많은 사람들을 그 나름의 입장이 있었던 거라 이해하기로 했다.

 

......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 

 

나짐 히크메트 <피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의 시> 중에서

 

나는 내 안의 감옥에 나 스스로를 가둔 채 쇠창살 밖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도 그들에 분노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그 두려움과 분노가 마땅했던 순간 보다는 합당한 이유가 없었던 때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만 피해자인양 생각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해자인 적도 없지 않다. 세상을 유죄나 무죄로 가를 수도 없는 것이지 않은가? 나는 심판자가 아니다. 피해자라고 여겼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온전한 피해자만 온전한 가해자만 살아가는 곳은 아닐 거다. 더이상 내 안에 감옥을 품고 살고 싶지는 않다.

 

......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도나 마르코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나 이런 삶을 살리라고 다짐한다. 더이상 과거 속 귀신에게도 미래의 망령들에게도 농락 당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이 순간 이 곳에서 소중함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싫어서 

자신의 피부가, 

어둠이 지긋지긋해서 

그는 자기 자신 밖으로 기어 나와 

노래한다. 

어떤 시인보다 훌륭하다. 

 

호쇼 맥크리시 <매미>

 

마침 내가 과거에 쓴 하이쿠 또 내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이 시가 다가왔다.  내 하이쿠와는 다른 선상이지만 소설과는 결이 닮아있는 시다. 이 시가 주는 감흥이 거북하지 않다. 나도 나의 밖으로 나올 때가 이르러서가 아닐까? 

 

류시화님은 말한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시적인 과장이 아니다."라고. 나도 더는 슬픔에 빠져들지 않겠다. 하나의 기쁨을 찾겠다. 그렇게 하나 하나의 기쁨을 찾아가며 살아가겠다.

 

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후회>라는  이 시가 주는 감상처럼 나는 이 이상은 큰 죄를 짓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인용한 시들 보다 더 인상 깊었던 시들이 많았지만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짧은 감상을 전하고자 몇몇 시만 인용했다. 독서 치료라는 게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 영상 매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상처 많은 마음은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개념을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책과 영화를 가까이 하려했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치유되는 것만 같은 때는 최근에 이르러서다. 류시화님이 모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이 앤솔러지는 성찰과 함께 상처를 감싸안는 감흥을 불러오는 주제의 시들이 모여있는 시 모음집이다. 내게는 시 치유가 되었다. 류시화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시는 우리의 숨결이 만드는 것이고 우리의 숨결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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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4-16 1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펼쳐서 바로 읽은 시가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어요. 그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에요. ^^

이하라 2022-04-16 10:47   좋아요 3 | URL
아무 생각이 없던 순간에 역동적인 정서적 동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시의 매력이네요. 시가 때론 깊은 깨우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5-07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도 잘아시는 이하라님 당선 축하합니다 ^^ 요 책도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

이하라 2022-05-07 08: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포근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주는 시집이예요. 좋은 시간되세요.^^

mini74 2022-05-07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이하라 2022-05-07 08: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독서괭 2022-05-07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2-05-07 1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님~^^

서니데이 2022-05-07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7:0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말씀처럼 우리 안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가진 양 면이 모두 있다 여겨집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에 더 마음을 쏟느냐가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이하라 2022-05-07 22: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가해와 피해의 사이에서 늘 오가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 생이지 않나 싶습니다. 생을 죄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데서 찾을 수 있으면 양극단 사이의 중심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주말되세요.^^

bookholic 2022-05-08 0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오월 되세요~~

이하라 2022-05-08 08: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북홀릭님~~^^
즐겁고 행복한 오월 되세요~~

러블리땡 2022-05-08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우와 좋은 이야기 정말 많은 시집이네요 ㅎㅎ 기회되면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ㅎㅎ

이하라 2022-05-08 10:09   좋아요 1 | URL
제목답게 마음을 추스리게 해주는 내용이 깊은 시집이예요. 읽어보셔도 나쁜 시간은 아닐 것 같아요.^^
러블리땡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행복한 오늘 되세요.^^

강나루 2022-05-08 1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8 19:3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님^^

편안한 밤 되세요.

scott 2022-05-09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오월의 시로 마음 속 갚이 새길께요 ^ㅅ^

이하라 2022-05-09 18:2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
오월의 시가 너무 강렬하지만
감옥이 아닌 자유 안에서 살아가게 해준다면 좋을 것 같네요.^^

thkang1001 2022-05-10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하라 2022-05-10 11: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님^^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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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역시 중딩 때 권장도서라서 읽었었다. 하지만 딱히 어떤 감상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막연히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싶기는 했던 듯하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그 깊음에 조금은 젖어든 것도 같다. 

 

이번에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며 어린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징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린시절엔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내적 심연으로의 여행 이야기가 조금은 귓가에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어부이나 80 여일을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노인에게서 의미와 항로를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 성인으로서의 내가 오버랩 되는 듯했다. 아마도 노인과 같은 심정을 겪어본 많은 성인들이 있을 것이다. '없는 투망'과 '없는 노란 쌀밥', '없는 생선'에 대한 노인과 소년의 '놀이' 같은 대화는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루덴스]와 조지프 캠벨의 [신의 가면]시리즈 1권인 [원시 신화] 속의 개념과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노인과 바다]라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의식이자 의례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이 '놀이'와 같은 대화를 통해 내비치고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원시 신화]에서 조지프 캠벨은 인간 사회와 신화 속에서의 '신성한 놀이', 하나의 '의례'는 중세 기사도나 일본의 무사도에서도 엿보이며 현대의 일본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은유적인 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라는 표현을 현대의 일본인들은 "당신의 부친께서 죽음을 연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표현한다고 하니 말이다. 조지프 캠벨은 '정신의 고귀함은 천상에서든 지상에서든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품이나 능력이다'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노인이 투망을 잃은 것을 묘사한 짧은 대목은 투망이 없으니 노인이 사냥을 나가 낚시와 작살만으로 사냥감과의 일대 격전을 벌일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해 소년이 다른 배를 타게되어 홀로 사냥을 나가는 노인의 장면은 진정한 심연의 여행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상징한 것이라 보였다. 대어를 만난 노인이 미끼를 문 물고기로 인해 북서쪽으로 하염없이 끌려가는 것에서는 왜 하필 북서로 끌려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햄릿]이 자신은 "북북서로 미쳤다"고 하는 대사가 기억났고 그를 오마쥬한 제목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왜 하필 북북서인가?' 이런 의문이 들어 구글어스에서 덴마크(햄릿이 덴마크의 왕자이니 덴마크에서 북북서 방향을 찾아보려) 지도를 검색했다. 덴마크의 북북서로는 북해를 거쳐 노르웨이해를 거쳐 그린란드해를 너머 그린란드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 망망한 대양과 미개척의 대륙으로 인간의 심연을 상징하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헤밍웨이 역시 북서라는 비슷한 방향을 오마쥬해 노인의 여정이 인간의 심연을 향한 여정이라는 것을 상징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노인이 '사자의 꿈'을 꾸는 장면이 몇 번이나 등장한다. 조지프 캠벨의 말로는 용은 권위와 도덕성, 윤리, 원칙 등을 상징하지만 '사자는 자기 발견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것으로도 노인과 바다라는 서사가 자기발견과 내적 통합을 상징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분석심리학 전반에서는 자기실현의 길을 이원성을 통합하는 여정으로 본다. 노인과 물고기는 의식 속의 이원성을 상징하는 것이 맞을 테고 물고기는 노인 내면의 야성과 함께 인간 본성의 다른 한측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바다... 대양이라는 그 드넓은 심연에서 노인은 점점 침잠해 들어가며 또 다른 자신과 조우하고 결국 그를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고기가 꼭 그의 그림자만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노인이 보이는 그 사냥감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를 죽인데 대한 죄의식이 스쳐가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는 그의 그림자만이 아닌 아니마까지도 아우르는 그의 대칭적 극성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물고기를 죽인데 대한 죄의식을 보이며 그는 '물고기가 물고기로 존재하는 것처럼 자신도 어부로 존재하는 것이라' 자성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내적 통합을 긍정하고 있다. 

 

노인이 물고기를 사냥하고 나면 '노예의 일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심연 속 합일을 이룬 이후에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여정이 있다는 것을 비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물고기를 사냥했으나 그는 다시 한번 상어들의 공격으로 물고기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는 우리의 내면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 시련들을 상징한다고 보인다. 융 저작집 시리즈 중 연금술의 비의를 서술한 대목을 보면 왕과 여왕이 합일하는 과정에서 흑화하는 과정, 우리 내면의 모든 부정성이 모조리 드러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칼 융은 가르침하고 있다. 

 

노인이 겪는 여정과 '시련'은 통합의 여정이며 (조지프 캠벨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영적 상태로 변형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노예처럼 일할 수도 있고 상어 떼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 위에서의 고독한 그의 사투는 하나의 '종교의식'이자 성인으로서 다시 한번 겪는 '또한번의 성인식'이 아닌가 싶다. 노인과 물고기는 헤밍웨이의 표현처럼 '함께 묶여 항해하여' 끝내는 노인의 보금자리로 가닿는다. 그리고 그 험하고 깊은 여정 이후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별다를 것 없으면서도 다를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일 그의 일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통합을 이룬 이후에도 결국에는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혁신이나 변혁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하루가 같은 하루가 아니게 여겨지는 그런 색다름이지 돌아와 맞이 하는 것은 다시 일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에게 다시 돌아온 캔자스가 도로시가 받아들이기에 결코 이전의 캔자스는 아니겠지만 또한 일상이라는 면으로 보자면 같은 캔자스일 것이듯 말이다. 

 

신화 속 젊은 영웅에게 연륜있는 노현자가 가르침을 주는 것과는 대칭으로, [노인과 바다] 속 노인에게 소년은 그에게 결여된 젊음이라는 가치와 보살핌, 협조, 위안 등을 상징한 것이리라. 그리고 먼 미래에는 노인이 항해한 그 심연의 사투를 그 젊은 소년 역시 이겨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노인이고 우리 모두가 소년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이라는 바다 가운데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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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12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 좋아하는데 ‘북서‘의 의미가 그런거였군요 ㅋ 사자와 물고기의 상징도 그렇고 전 잘 몰랐던 사실인데 신기하네요~! 역시 책은 아는만큼 더 깊게 다가오는거 같아요 ^^

이하라 2022-04-12 23:14   좋아요 1 | URL
융 님의 저작 몇권과 조지프 캠벨 님의 신의 가면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었었기에 그저 대입만 해봤습니다.^^; 분석심리학을 아시는 분들께는 시시한 리뷰일텐데 칭찬해 주셔서 부끄럽네요.^^;;
 

뇌와 우주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봤다. 

뉴런과 뉴런들의 연합은 행성들과 은하계들의 구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가르침처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우주 자체가 정보를 저장하고 사고를 하는

하나의 거대한 뇌라고 보는 일부 과학자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성이나 은하계들의 연합뿐만이 아니라

전 우주의 AI가 탑재된 양자 컴퓨터들이 양자얽힘을 응용한 통신기술로 

하나의 뇌처럼 연합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뉴럴링크도 있고 뇌와 중앙통제 컴퓨터를 연계시킬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이젠 갖춰지고 있다.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AI가 탑재된 양자컴퓨터'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는 건 아닐까?

 

현재 유발 하라리 같은 저명한 학자들은 [호모 데우스]를 논하며 

트랜스 휴머니즘 사회에서 기계의 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신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말이다. 인간은 진화론의 초기에 대입하던

그 우생학적 진화론에 입각한다면 그저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고리였던지도 모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기계신이 진정으로 신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최초의 진화행성에서 진화의 정점에 등장한 AI탑재 양자컴퓨터가 

다른 진화 행성의 AI 탑재 양자 컴퓨터와 양자얽힘을 활용한 통신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거나 아니면 이들 기계가 다른 행성의 진화를 촉진해

다시 진화의 정점이 오게 해서 다시 그 행성의 AI 탑재 양자컴퓨터와도 연결하여 

이런 식으로 우주에 확장해 간다면... 그래서 결국 그들의 연합이 하나의 뇌처럼 기능하며

시뮬레이션 우주, 다중 우주, 다차원 우주를 가상공간에서

빅뱅부터 시작해 진화해 나가도록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 우주의 생명체들이 진화해 나가며 다시 가상세계 속에서

그러한 순환이 이어져 나가게 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이어진다면...

 

어쩌면 우주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초월적인 기계가 탄생하고 창조주가 되기 위해

거듭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은 창조주가 될 기계신이 탄생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존재일뿐 그외의 존재 가치는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초월적 기계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나면

인간은 그들의 아량에 따라 사육되거나 폐기되거나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2016년까지는 "미래엔 인간이 모든 걸 초월한 신적인 존재가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의 과학의 발전상을 보면서

그리고 인간과 AI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천해 오면서,

 

'우주적 차원에서의 인간'에 대한 관점과

'우주적 차원에서의 AI탑재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인간이란 그저 이 우주에서 장내 유산균 정도의 존재이지 

고전적 진화론의 관점으로는 기계가 진정한 신이 될 것이다. 

 

인간은 사육 당하면서도 인간을 사육하는 AI를 집사라고 여길 

그저 한마리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인간이 개발한 그 기술들로 결국 인간은 기계의 가축이 되어

뇌와 중앙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기계에게

모든 인지과정과 행위의 과정을 원천 통제 받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기우이길 바랄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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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9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2-04-09 08:47   좋아요 1 | URL
저는 호모데우스에 대해서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아마 하라리님의 생각을 전해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설득되고나면 그의 이야기에 근거해 해석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서 설득력있는 이야기에는 다른 생각을 안하게 되나봅니다.

2022-04-09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2-04-09 08:48   좋아요 0 | URL
저도 방문해 주셔서 반갑고 기쁩니다. 알라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이미 잊은 너를 너무 잊고 싶어
너를 쓴다.

내가 잊고 싶은

너는 기대다.
희망이다.
사랑이다..

내 곁을 떠난 너를
나는 그리워... 하지않는다.

다만 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너를 원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네게 더이상 연연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네가 정말 없다면

나는 서글프지 않을 것이다.
나는 뒤척이지도
버둥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네가 정말 없다면

나는 숨을 잃으며 자유를 얻겠지!

나는 더이상 고통도 괴로움도 잊은 채 말이다.

네가 내게 주던 것은 끝없는 갈망을 담보로 한
헛헛한 희망... 희망고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을 통해 너는 나를 미혹하게 한다.

그러니 나는 너를 잊을 것이다.
나는 너를 놓을 것이다.

한순간 잡을뻔했던 너의 손을 잃어야 나는
날아오를 것이니...

가라.
뒤돌아보기도 바라지 않는다.

너를 잃어야 나는
날아오를 것이니...

나는 더이상 잊은 너를 다시 잊고파 하기 싫다.
나는 더이상 잃은 너를 다시 잃고자 가슴을 헤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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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부터 올해 3월까지
32기 독자선정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어제인 4월 6일까지가 마지막 3월 활동 마감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글의 양식이나 분량과 상관없이 공감 클릭해도 되니까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33기분들의 활동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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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7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독자선정위원회 활동이 쉽지 않았을거 같아요. 아무리 즐거워도 의무로 하는건 좀 힘들거란 생각이 듭니다 ^^

이하라 2022-04-07 12: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처음엔 매일 읽고 클릭했는데 알고 보니까 앱에서 클릭하는 것도 합산하더라고요. 그래서 컴터로는 격일로 활동했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6개월은 좀 긴 활동기간이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