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틱낫한 스님이 새로 읽고 해설한 반야심경
틱낫한 지음, 손명희 옮김, 선업 감수 / 싱긋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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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에서 얻은 깨우침이 단편적인 일별들이라 하나하나 적기에는 그렇고 본서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옮기며 리뷰를 대신하려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은 장애와 괴로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심오한 가르침도 우리를 오도할 수 있습니다. 다루는 요령이 부족하면 경전조차도 참자유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 p25 서문



반야바라밀다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은 자아의 공함과 모든 현상의 공함이지 자아와 현상의 부재나 비존재가 아닙니다. / p32 서문



깨달음의 지혜와 성취조차도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자아 개체가 아닙니다. "분리된 자아 개체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말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기존의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 p33 서문



공은 오직 자아가 비어있음을 의미할 뿐, 자아의 비존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 p33 서문



존재한다는 뜻은 곧 상호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 p48 하나: 상호존재



자신의 길에서 진보하려면 자신의 관점을 초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p51 둘: 무엇이 비었는가?



오온에 핵심이나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게 되면 모든 괴로움과 번뇌와 두려움은 즉시 사라집니다. / p53



오온에서 분리된 자아가 비어 있다는 말은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이들 다섯 줄기의 강이 제각기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p54



관찰하고 이해하려면 그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대상과 하나가 되어야 하기에 부처님은 이를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핵물리학자들도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더는 바깥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관찰자(observer)‘라는 말보다 ‘참여자(participant)‘라는 말을 선호하는 과학자가 많습니다. /p58 셋: 이해의 길



2세기의 불교 사상가 용수(龍樹 , Nagarjuna)는 "비어 있기에 만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 p67 넷: 비어 있음이여, 만세!



부처님은 현상이란 그저 다양한 원인과 조건이 나타나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현상 어디에도 영원하거나 불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 p69 다섯: 비어 있음의 표식



상호존재라는 통찰은 그 무엇도 외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 만물은 다른 온갖 것들과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깨달음입니다. 무상, 즉 덧없음이라는 통찰은 그 무엇도 고정적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는다는 깨달음입니다. 상호존재는 분리된 자아가 비어 있음을 뜻하지만, 덧없음 또한 분리된 자아가 비어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비어 있음을 공간적 관점에서는 ‘상호존재‘라고 부르며, 시간적 관점에서는 ‘무상‘이라고 부릅니다. / p73



모든 현상은 비어 있음의 표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상은 시간적 측면에서도 공간적 측면에서도 분리된 자아가 본래 비어 있다는 특성을 띱니다. / p73



부처님은 어떤 것이 겉으로 발현되어 나타날 때 사실은 어디에서도 비롯된 바가 없으며, 발현이 그쳤을 때 역시 어디로도 간 바가 없다는 사실을 매우 명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 p89 일곱: 해바라기가 보이는가?



태어남도 죽음도 없고, 존재도 비존재도 없고, 오고감도 없고, 같음과 다름도 없다는 것을 팔불(八不)이라고 합니다. ....... 모든 현상의 본질에 닿으려면 이 모든 대립쌍 사이의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 p91



궁극적인 진리에 가닿으려면 모든 대립쌍, 다시 말해서 이 모든 이원성을 초월해야 합니다. / p92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의 관념을 초월하는 수행을 하고, 현실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를 지웁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부처님은 그것을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관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 p94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상호존재라는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린 매춘부, 소년병, 굶주리는 어머니, 이주노동자가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괴로움은 물론 온 세상의 괴로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상호존재의 통찰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 마음 속에 참된 자비심이 솟아나고 그 상황에 도움이 되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재대로 알 수 있습니다. / p105 여덟: 장미와 쓰레기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느니라"

몸과 오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 혹은 ‘자신‘으로 식별할 수 있는 분리된 자아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p118 열 : 이름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우리는 분리된 자아를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할 때 분리된 자아가 자아 아닌 온갖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내려놓고 비어 있음[空]이라는 진리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명(假名 , 시설施設 : 무자성이되 인연과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법)의 가르침입니다. / p119



무상은 아무런 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p120



해바라기를 비롯한 다른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종이는 태어나고 죽거나,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오고 가거나, 같거나 달라지는 등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지만, 이런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이 종이의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이런 연유로 [금강경]에서 "상이 있는 곳에 속임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p121



상을 초월할 때 ‘나‘ 혹은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분리된 자아 개체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게 됩니다....... 현상과 상은 모두 본질적으로 비어 있습니다. 이 두가지 가르침을 공상(空相)과 무상(無相)이라고 합니다. / p123



우리는 모든 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태어남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오고감과 같은 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空이라는 지혜에 가닿고 실재의 참 본성인 ‘그러함‘에 가닿으려면 공이라는 상 혹은 표식조차도 버려야 합니다. / p123



붓다에게도 의식과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접촉과 느낌이 오직 갈망하고 취하는 것만을 불러온다고 말한다면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 p137 열둘: 모든 것은 형성되어진 것



우리가 형성되어진 것을 더이상 분리된 자아 개체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망상은 소멸합니다. / p139



마찬가지로 행복을 얻기 위해 괴로워하고 몸부림쳐야 한다면 그또한 맞지 않습니다. 행복의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행복해야 합니다. 목적과 수단은 하나입니다. / p148 열셋 : 행복의 길



무지 없이는 통찰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오해와 잘못된 견해가 없다면 애초에 무엇에서 깨어나 깨달을 수 있을까요? / p150 열넷: 나비를 쫓아서



무원(無願)은 삼해탈문 중 세번째 입니다. 무원을 꾸준히 수행하면 얻을 바 없음(不成)을 깨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무원은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는 것, 대상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손을 뻗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 p151



당신이 사람이라면 사람인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 굳이 부처가 되어야 합니까? / p153



집착하던 대상의 진면목을 확연히 보고 나면 더는 집착하지도 거부하지도 뒤쫓지도 않습니다. 더이상은 그 무엇도 성취하거나 붙잡거나 뒤를 쫓을 필요가 없습니다. / p155



삼라만상의 본서이 곧 우리 자신의 참 본성임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 p157



지식은 명상하는 사람이 제거해야 할 마음의 첫번째 장애물입니다. 그 무엇도 지나친 확신은 금물입니다. / p160 열다섯: 자유



모든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물을 팔 때는 삽이 있어야 하지만 우물을 다 파고 나면 삽을 치워야 합니다. 삽을 계속 들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 p161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매듭을 우리 손으로 풀 수 있다면 우리는 열반이라고 불리는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열반은 불이 꺼진 시원한 상태를 말합니다....... 열반은 멀리 있는 꿈이 아닙니다. 열반은 우리가 내려 놓을 준비가 되고 지식과 번뇌라는 장애를 떨쳐버리는 즉시 찾아듭니다. / p162



열반은 우리가 찾고 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우리는 열반의 경계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열반에 이르러 있기 때문입니다. /p169 열여섯: 두려움 없는 경지



통찰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집중을 통해 통찰을 유지하고 삶의 모든 측면에 매 순간 적용하지 않는다면 통찰을 잃어버리는 것은 금방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깨달음과 행복과 해방조차 영원하지 않습니다. 해방, 행복, 깨달음은 일시성 덕분에 생성되며, 정성들여 보살피지 않으면 다시 또다른 무언가로 바뀌어버립니다. / p173 열일곱: 깨닫는 이는 누구인가?



열반은 현상이 아닙니다. 열반은 모든 형성되어진 것과 현상의 밑바탕입니다. / p176



당신이 말하는 자아가 불멸하는 영혼이 아니라 그저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에 불과하며, 여러 원인과 조건이 결합된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알아차림입니다. / p176



불교에서는 한 가지 가르침이 다른 모든 가르침을 아우릅니다. 이러한 가르침 중 하나만 깊이 실천하고 수행해도 실체의 참된 본성으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 p180 열여덟: 만트라



[반야심경]은 세상 그 무엇도 자기 성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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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Itgoes 2024-04-1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뜻이 담겨있는 책 같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어요

이하라 2024-04-11 02:22   좋아요 1 | URL
읽어보시면 좋을 책이 분명한 듯합니다. 행복한 독서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