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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평점 :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시집을 건네 들고 첫장을 넘기자 목차 이전에 앨런 긴즈 버그의 <어떤 것들>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을 때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집 맨마지막의 시 류시화님의 감회가 담긴 장 이전에 등장하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리 톨마운틴의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라는 시에서 말하듯 "헤어지면 서로 잊게 된단다./ 그러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돼."라는 말이 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영원히 영혼을 되살리는 존재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소중함이란 추억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동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내면에서 소중함이란 추억과 함께일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난 잊혀진 존재 잊혀진 가치라고 생각되었다. 난 누군가의 내면에서 꽃피어본적 없이 져버린 거라고 말이다.
그런 내게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은 꽃피어야 할 것은 꽃핀다고 어떤 역경 어떤 시절을 거쳐도 누구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꽃피운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집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이 시가 내게는 위로와 닮아있는 시였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이라 와히드 <흉터>
부끄러워 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생의 상처란 그런 것이다. 상처가 흉터로 아물 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는 자신의 상처를 삶으로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
너 자신이 되라.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정복당할 것이니,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 중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고 익혀 그저 특이한 인간으로 나 자신을 여겼다. 유년시절에 나를 대하던 사람들의 대우를 그대로 답습하며 나 자신을 애물단지처럼 여겼다. 이 세계에 잘못 온 존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껴왔다.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면 나도 나 나름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내게도 그런 가치가 있었던 거라고. 뒤늦게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나는 나를 사랑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속이고 이용했다고 생각되던 많은 사람들을 그 나름의 입장이 있었던 거라 이해하기로 했다.
......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
나짐 히크메트 <피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의 시> 중에서
나는 내 안의 감옥에 나 스스로를 가둔 채 쇠창살 밖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도 그들에 분노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그 두려움과 분노가 마땅했던 순간 보다는 합당한 이유가 없었던 때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만 피해자인양 생각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해자인 적도 없지 않다. 세상을 유죄나 무죄로 가를 수도 없는 것이지 않은가? 나는 심판자가 아니다. 피해자라고 여겼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온전한 피해자만 온전한 가해자만 살아가는 곳은 아닐 거다. 더이상 내 안에 감옥을 품고 살고 싶지는 않다.
......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도나 마르코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나 이런 삶을 살리라고 다짐한다. 더이상 과거 속 귀신에게도 미래의 망령들에게도 농락 당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이 순간 이 곳에서 소중함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싫어서
자신의 피부가,
어둠이 지긋지긋해서
그는 자기 자신 밖으로 기어 나와
노래한다.
어떤 시인보다 훌륭하다.
호쇼 맥크리시 <매미>
마침 내가 과거에 쓴 하이쿠 또 내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이 시가 다가왔다. 내 하이쿠와는 다른 선상이지만 소설과는 결이 닮아있는 시다. 이 시가 주는 감흥이 거북하지 않다. 나도 나의 밖으로 나올 때가 이르러서가 아닐까?
류시화님은 말한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시적인 과장이 아니다."라고. 나도 더는 슬픔에 빠져들지 않겠다. 하나의 기쁨을 찾겠다. 그렇게 하나 하나의 기쁨을 찾아가며 살아가겠다.
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후회>라는 이 시가 주는 감상처럼 나는 이 이상은 큰 죄를 짓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인용한 시들 보다 더 인상 깊었던 시들이 많았지만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짧은 감상을 전하고자 몇몇 시만 인용했다. 독서 치료라는 게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 영상 매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상처 많은 마음은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개념을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책과 영화를 가까이 하려했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치유되는 것만 같은 때는 최근에 이르러서다. 류시화님이 모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이 앤솔러지는 성찰과 함께 상처를 감싸안는 감흥을 불러오는 주제의 시들이 모여있는 시 모음집이다. 내게는 시 치유가 되었다. 류시화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시는 우리의 숨결이 만드는 것이고 우리의 숨결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