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웹소설 쓰기 - 단계별로 따라가는 웹소설 맞춤 수업 Daily Series 17
김남영 지음 / 더디퍼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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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을 도전해 봤는데 예전 수필만 올리던 때와는 다르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본서를 읽으면서 깨우쳤다. 장르를 분류하는데 있어 숙련 저자도 오해나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데 우선 놀랐고(그래서 나도 장르 분류를 다시 고쳤다) 키워드로 작품의 개성과 대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유치하고 긴 제목이더라도 작품이나 등장인물의 개성을 보여줘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제시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로그라인이라고 한 줄 줄거리로 작품을 소개하는 법도 배웠다. 분량에 대한 부분에서도 놀랐는데 연재 분량의 1일 권장 글자 수가 5,500자라는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분량의 거의 2배에 가까운 분량이라 연재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실제 집필 그러니까 웹소설쓰기에 대한 장에서는 일반적인 소설 쓰기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들도 있었다. 일반 소설의 지문보다 적어야 하며 장면전환이 빨라야 한다는 것은 이미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웹소설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이 아니다. 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 순수문학 보다 융통성이 있으리라 믿고 희곡 작법과 소설 작법을 절충한 글쓰기를 시도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소설의 차이점이라는 3인칭+1인칭 시점이라는 것은 사실 시도해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게 등장인물마다 3인칭이었다가 1인칭이 되면 뭔가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글 같을 듯한데... 다른 웹소설을 읽어봐야 어찌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말 줄임표의 사용 그러니까 말을 얼버무리는 듯한 대사는 쓰지 말라는데 나로서는 그게 습관적으로 그러던 경향도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관작수(관심작품등록수)가 늘면 좋아라 했는데 그게 하등 관련 없고 댓글이나 관작수 보다는 연독률 그러니까 조회수가 중요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짧은 분량의 책인데 웹소설만의 특징을 모르고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유익한 책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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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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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목표는 바로 '변화와 성장'이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읽고나서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 단 한권의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무엇이든 해낼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좌절을 경험한다.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변화하고 성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독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기는 했지만 누군가 인생책이라는 그 책의 내용을 체화하고 실천해 옮기는 극소수의 사람 이야기일 뿐이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제시하는 주제를 가지고 숙고하면서 사고의 확장을 이루면 "난 천잰가?"하다가 책을 덮고나면 어느사이엔가 책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만 남지 돌아서면 기억 저편 어디엔가 있을 작은 편린이 되는 것이 독서의 다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님의 지적처럼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변화하고 성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청소년시절의 인생책이라고 할만큼 큰 영향을 준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라는 수행서를 오쇼가 강론한) [탄트라 비전]이라는 저작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을 실천해 옮기지 않았다면 다른 책들처럼 [탄트라 비전] 역시 단편적인 감상만 남기는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본서의 내용 역시 그럴 것이다. 챕터1과 챕터2의 강렬한 감상과 그로 인한 각성이 있었고 챕터3,4,5에서의 실천 방안들을 알려주는 내용들도 인상깊다. 하지만 정작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본서의 내용도 그저 기억 저편에서 아련하게 조각조각 남아 떠돌뿐일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야 배움도 있고 성장도 있고 성취도 있을 것이라는 감상은 실천을 통해서야 남음이 있는 것이리라. 무언가 마스터피스를 남기려 시작을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는 그 지연이 인생의 후반기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께서 존 크럼볼츠와 라이언 바비노가 함께 쓴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에서 인용한 도자기 강사의 경우처럼 질적으로 우수한 한 가지를 제출하라는 경우보다 많은 작품을 제출하게 하자 더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사례처럼 많은 시도가 결국에 성과를 남긴다는 걸 깨우치게 되었다.

 

작가님의 저작 속에서의 '행동하고 생각하라'는 독려처럼 실행력을 갖추자는 생각과 결심이 드는 것만 같다. 비단 책쓰기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실행력이 절실한 누구나 읽어볼 법한 책이 아닌가 한다. 물론 무언가를 집필해 보고자 하는 이에게라면 더욱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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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21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오늘은 추석입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신가요.
보름달처럼 좋은 소원 이루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1-09-21 22: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께서도 보름달처럼 풍성한 소원 이루시고
즐거운 명절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피리 부는 소년
헤르만 헤세 지음, 정소영 그림, 최인자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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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이름답게 서정적이고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동화이지만 주독자층인 아이들 중 일부는 재미없다고 느낄 이야기도 몇몇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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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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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관이 미래상의 세계관을 좀더 다채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종말론의 한부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교황과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며 인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또 종교인들의 우려가 드러나 있는 것도 같다.

 

작품에 그려져 있는 안락사 제도가 현재 일부 국가에서 제도화된 존엄사를 연상하게도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지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 등장해 세계적 지도자가 된다해도 몰살형 등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한 집단 전체를 몰살해 버린다? 차별에 적대적이기에 그러한 차별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으로 한 집단을 몰살해 버린다는 논리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지도자들이 있을까? 이 소설은 극적이긴 한데 너무 극적이라 현실감각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출간한 연대가 1907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후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면 저자가 가정한 미래의 몰살형이 이미 실행되었던 것과도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까운 과거에도 동유럽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종청소라고 불리운 학살들이 일어났으니 (현재의 상식으로 보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특정 종교인들을 몰살시킨다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집단학살이라면 미래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흡인력있고 재밌는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의 세계관이 생각해 볼만은 했지만 재미면에서는 선뜻 다른 분들에게 권하기 그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1907년 출간된 소설임에도 옛날 소설식의 늘어지는 주석 같은 묘사가 없다. [1984]만 해도 읽다가 지겨워져서 중단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제법 빠른 전개이다.

 

저자가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면서 성공회 사제로 제직하다가 카톨릭으로 전향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카톨릭의 예식에 대한 관찰이나 호감이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껴지기도 한다. 카톨릭 사제가 쓴 종말과 적그리스도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면이 독자에게 남다른 호기심을 불러올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론이나 적그리스도를 묘사하는데 그리 치밀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독교적 시각을 빌려 보자해도 적그리스도라면 좀더 설득력 있게 종교를 탄압하고 인구 감소를 유도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같은 대감염병을 인위적으로 전파시켜 인구를 감소시키면서 예방차원의 접종 백신에 손을 써 접종자들이 어느 비율로 사망하거나 접종 이후 오랜 시간 후에 사망하게 하고 차츰 불임이 오게 해서 인구를 감소시킬 것 같다. 또 적극적인 방역을 시행하기 위해서라면서 종교 모임을 차단한다던가 하며 종교 모임을 갖는 이들을 금고형에 처한다던가 종교 집회 주동자를 무기징역에 처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종교도 탄압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린 로마 폭격이나 나자렛 폭격 같은 예는 너무도 만화 같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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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만나러 지구로 갈게 꿈꾸는돌 26
김성일 지음 / 돌베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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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앨리스가 온다, 나를 만나러. 항구에서 헤어진 그 앨리스도 아니다. 수년간의 고독이 만들어낸 환상도 아니다. 휴대폰 사진 속의 누군지 모를 사람도 아니다. 저 우주 멀리 정말로 존재하는 앨리스가, 나를 위해 그 먼 길을 온다. 

 여우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 순간, 여우는 가슴속인지 머릿속인지, 어딘가에 있던 무언가가 열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있는 줄도 몰랐던 기관 같다는 느낌이다. 마음의 온도가, 색깔이 바뀌어 갔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웃음이 마음 속에 피어났다.


 본서의 책 띠지에 보면 『어린 왕자』의 서정과 감동이 우주를 만나다!라는 카피와 함께 이런 문구가 있다. -"관계 맺음의 갈망과 그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고독한 영혼들이 서로를 치유하고 함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 넓은 우주에서 혼자인 것만 같은 이들이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 세 명에게 모두 공감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의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우주시대에 화성 생명체의 DNA를 조작해 애완동물들을 생산하여 판매한 이후, 얼마지 않아 해당회사가 티타니아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에 인수되며 유전자 개량 애완동물들을 폐기하려 한다. 이 때 앨리스라는 주인이 애완동물이었던 여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도망시켰고 여우는 이때부터 룹알할리 재활용센터라는 쓰레기장에서 혼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판매하며 살아간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동물이라 인간에게 수학을 가르칠 정도의 지능이고 소설이 전개되면서 등장하는 전기를 제어하는 초능력도 있다. 


지구에 여우가 있다면 먼 우주의 어느 소행성에 티타니아 그룹이 만든 우주기지 로즈워터라는 곳에는 AI가 양육하는 알렉스라는 소년이 홀로 살고 있다. 아이 역시 화성 생명체의 DNA를 개량한 유전자 조작 인간으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 소행성에서 지구의 여우에게까지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알렉스와 여우는 오래 전 부터 대화를 하고 있지만 여우는 다분히 이성적인 지성체라 알렉스를 앨리스라고 부르며 대화는 하면서도 알렉스는 외로운 자신이 만들어내 허구의 존재가 아닌가 의심하는 중이다. 


티타니아 그룹과는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 란차오 상방에서는 티타니아 그룹이 화성 생명체의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 아이가 특정 소행성에서 비밀리에 육성되고 있는 것을 알아내고는 그 아이를 탈취하려고 기업의 병사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티타니아 그룹의 자동 방어시스템에 의해 란차오 상방이 보낸 산업스파이 병사들은 거의다가 죽고 슈잉이라는 병사 한 명만이 살아남아 파손된 비행선에서 정처없이 우주를 헤메고 있다. 거의 삶을 포기한 슈잉에게 어느 순간 죽음을 앞둔 자신의 환상인지, 여우와 대화 중이니 끼어들지 말아달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렉스는 태어나서부터 AI 외에는 접촉해본적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왔고 여우는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슈잉 역시 쓸쓸한 과거를 지닌 채 현재는 홀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고독한 처지다. 이런 이들이 만나는 계기는 알렉스의 텔레파시로 인한 접속이다.


이 소설은 정말 깊은 애정이 깃들게 만드는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소설속의 알렉스도 여우도 마치 나 자신인양 여겨지며 그들의 만남과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앨리스, 나는 있는 게 잘못이야. 잘못 만들어졌어. 잘못 태어났어."


자신을 찾아내 폐기하려 혈안이 된 사람들 속에서 이런 자기비하를 하는 여우의 외침도 어느 날엔가 절규하던 나를 떠오르게 했다. 그런 게 어딨냐고 어떻게 있는 게 잘못일 수 있냐고 외쳐주는 나만의 앨리스는... 알렉스는 찾기 힘들던 시절이다. 물론 여우는 이때 자신을 위로하던 알렉스의 말을 빌려 이후에 알렉스에게 이런 충고도 하고 있다.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하는 것에는 잘잘못이 있어. 남을 해치면 안 돼, 앨리스. 그러면 로즈워터가 널 가둬 둔 게 옳은 일이 되고 말아."


이 책의 말미에 가면 티타니아 그룹의 로즈워터 AI도 알렉스의 빛을 초월하는 텔레파시 능력을 양자컴퓨터로 구현해내 백스물세번째의 시도만에 알렉스에게 말을 건넨다. 왠지 모르게 로즈워터 AI도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먼 별에서 알렉스 혼자만을 돌보며 지내던 그런 외로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소설은 정말 흡인력있기도 하다. 독자를 페이지터너로 만드는 작품이라고 작가가 전혀 겸손해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저작이다. 청소년을 독자로 품는 소설이기에 피가 튀는 잔인함도 피가 끓는 성애도 피가 마르는 절절함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깊은 곳까지 건드리는 섬세함과 건전하게 몰입시키는 흡인력이 있다. 


소설은 여우를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이, 여우와 만나는 과정이 전체일테지만 그걸 소개하지 않는 건 스포일러로 독자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소설이 어린 왕자를 모티프로 했고 소설 속에도 어린 왕자란 책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감동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 왕자의 고독은 독자가 공감 가능한 그만의 고독이고 알렉스와 여우, 슈잉의 고독은 또한 이 소설의 독자가 공감 가능한 그들의 고독이다. 그리고 그 고독이 서로에 대한 갈망을 낳고 이들을 서로를 어우러지게 했듯, 독자들에게도 그 고독과 함께 어우러짐을 위한 갈망을 안겨줄 것이다. 


내가 만나러 갈 누군가, 나를 만나러 올 누군가를 꿈꾸게 할 소설이다. 좋아하는 시는 아니지만 박노해 시인님의 《별은 너에게로》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고독해본 적 있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 여러분에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웃음이 마음 속에 피어나기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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