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마리의 봄 소풍 14마리 그림책 시리즈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아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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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올리고 보니 사진이 작화의 여운을 다 담지 못하네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작화 자체의 색감과 터치가 어찌나 이쁘고 편안한 느낌을 주던지 제가 어린이였다면 하루 종일 펼쳐 볼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줬습니다.  

 

이사 이야기와 봄소풍 이야기 중에 이사가 조금 더 끌리기도 했지만 봄소풍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고는 [14마리의 봄 소풍]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울 것만 같았습니다. 

 


 

이와무라 카즈오님의 그림책은 난생 처음이었지만 작가 소개를 통해 그의 수상경력들이나 세계 15개국에서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이 화사하고 편안한 그림과 색감만으로도 그의 그림책에 빠져들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을 담고 있는 그의 세밀한 터치나 자연보다 더 자연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듯한 색감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소풍은 무언가 도전과, 모험, 즐거움과 놀이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이미지이잖아요. 이 그림책 속에는 아이들이 연상할 수 있는 소풍의 이미지를 풍부히 담고 있더라구요. 실수 속에서도 함께 도와가며 해결해 나가는 바로 위의 그림도 유대감을 아이들이 그려보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어디까지나 가족의 봄 소풍이기도 하니 아이들에게 포근함도 더 안겨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 소풍에서 연상되는 게 도전, 모험, 즐거움, 놀이 그리고 자연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그 외에도 함께하는 식사 시간도 떠오를 것 같네요.  책 속의 작은 모험으로 아이들에게 시원한 마음 여행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을 보신다면 어린시절의 봄 소풍을 떠올려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잘못 찍다보니 그림의 아름다움이 다 전달되지 않을까 봐도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리뷰어님들의 포토리뷰도 있으니 걱정 접어두려 합니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이 그림책의 색감과 아름다움이 다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네요. 마치 꿈결 속에서 봄 소풍을 거닐다 오는 것만 같은 여운을 가득 주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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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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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던 시절이 오래오래전엔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생활을 해왔다. 순수문학을 읽던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고 읽는다해도 장르문학에 한정되어있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순수문학을 그것도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그 감상이 여운이 깊다. 다시금 문학 소년이 아니 문학 중년이 되는 느낌이다.

 

새움의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는 [이방인], [노인과 바다] 이후로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앞서 두 권은 서평단 모집 때 눈여겨 보았다가 구매해서 읽고 리뷰를 남겼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두 권으로 익게 된 이정서 번역가님에 대한 신뢰가 커져서 서평단 응모로 리뷰를 남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가님의 문단 하단의 짧은 기록들을 보며 이 소설을 다른 번역본으로 보았더라면 도대체 내게 남은 개츠비에 대한 인상은 얼마나 오해의 층층이었을지 생각하니 다행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윌슨을 향한 언급들을 개츠비로 판단한다거나 하는 그 단순한 것만으로도 인상의 빛깔이 전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한심한 졸부로만 개츠비에 대한 인상이 남게 되었다면 이 소설을 읽은 의의는 무엇이 되었을까? 

 

닉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개츠비이기에 오역되지 않은 원작대로의 개츠비에 대한 인상은 닉의 감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츠비에 대해 닉의 시선은 그의 자산을 보며 느끼는 선망과 그의 출신과 자신의 출신을 비교하며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모든 것을 자수성가한 개츠비에 대한 나름의 인정하는 심리와 당시에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밀주 커넥션에 연루되어 개츠비가 부를 축적한 것을 알고서 느끼는 다소의 경멸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있기에 독자 역시 그의 시선으로 인해 개츠비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닉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다를까 싶지만 이 작품에서의 개츠비는 참으로 양가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소설을 퍼즐처럼 조각을 이어보자면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그의 옛 애장소설의 기록으로 보아 개츠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며 미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으로 뛰어든 그 시대의 무거운 한 장면을 감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전쟁 속에서도 사랑에 빠져버리고 오랜 세월을 한 여인에게 연연하는 순순한 열정을 품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반면에 그는 전쟁 후의 특혜로 가게 된 옥스퍼드 대학 생활 몇 개월을 나름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활용해 일자리를 찾아낼 줄도 알고 평판을 일구어 보려고도 하는 기회주의자이기도 하다. (역자 이정서님은 개츠비가 옥스포드 맨이라고 그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지만 울프심에게 그가 옥스포드 출신임을 말할 사람은 그다지 따로 찾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이력을 이용하지 못하는 자라 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옳고 그름이라는 관점에서 터부시하며 뿌리치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진취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잠자던 사람을 깨워 데이지와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자아내려 연주케하는 면모로 보아 자신의 의도가 우선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고마는 독선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회주의자이며 성취자이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던 소년이었고 한 사람만을 향하는 불타는 사랑을 안은 열정가이기도 하다. 돈을 추구하는 인물로만 보이기도하지만 그를 떠난 데이지와의 신분차이가 그에게 금전적 성취를 우선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닉을 태운 차 안에서의 그의 부산함은 그가 부를 축적한 졸부나 부호로만 보이지 않게 하는 유치한 이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또 그토록 잊지 못하던 데이지와의 재회를 닉의 집에서 갖게 되었을 때 그의 모습은 한 소녀에게 빠져버린 소년의 심정과도 비슷해 보였다. 재회한 그녀에게 아직 자신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까 주저하는 그는 벽에 걸린 시계에 머리를 기대다가 허둥거린다. 그 시계가 마치 깨어진 것만 같이 여기는 것 같다는 닉의 표현은 개츠비가 데이지를 대하는 그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음을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의 양가적인 면들과 그 속에서 두드러지는 그 순수함이 미국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면들이 현시대의 유일한 대제국 미국의 모습과 미국인들을 대변해 준다고 미국인 자신들이 여길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 호기롭게 달러패권으로 독주하는 미국, 그러면서도 인종갈등과 총기사고, 마약으로 점철되고 있는 미국, 또 세계경찰이라면서도 일루미나티 주축들의 근거지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미국, 그러면서도 한없이 자유를 사랑하고 성장하려 하고 아직까지도 아메리칸 드림은 있다고 믿어마지 않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개츠비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였다. 

 

데이지는 어떤가? 피로연 당일 신부가 (아마도 개츠비가 보낸) 편지를 움켜쥐고 만취한 채 자신을 욕조에 담궈달라고 말하며 눈물 흘리던 그녀, 재회한 개츠비를 연이어 찾아가던 그녀, 자신의 아이를 안고 개츠비를 보여주던 그녀... 그런 그녀가 개츠비에게 진심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끝내 우연이었는지 자신의 남편과 바람이 난 여성을 개츠비와 동승한 차로 치어 죽인 그녀에게 개츠비는 어느새 연인에서 자신의 죄를 목격한 목격자로 자리바꿈 해 버렸을 것이다. 개츠비를 보는 순간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녀의 머리에 카인처럼 하나님의 인이 더해지지 않고서는 그녀는 결코 개츠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개츠비는 그녀에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개츠비가 매일을 화려한 파티를 열어 대중들을 불러모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는 안스러울 정도이다. 개츠비의 삶은 작가가 닉의 시선으로 보여준 외연만큼이나 그 심연 또한 양극적인 면을 띠고 있다. 이 소설의 독자들에게 개츠비는 어떤 감상을 안겨주는 인물이기를 피츠제럴드는 바란 것일까?

 

피츠제럴드는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나열하는 듯하다가 어느새 퍼즐을 맞춰놓는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준다. 자못 일상적인 이야기만 서술하는가 싶다가 소설의 끝에 이르르면 이 얼마나 뛰어난 구성의 소설인가에 감탄하고 말게 하는 것이다. 인물 한 명 한 명도 허투로 등장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탐 뷰캐넌이 [오셀로]의 이아고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줄도 짐작할 수 없었고 그저 주변 이야기일뿐인줄 알았던 탐의 불륜 이야기가 이렇게 대미에 영향을 줄지도 몰랐다. 더구나 윌슨이 결말을 가져올지는 예상조차 못했다. 그의 이름이나마 기억하게 될 존재일지 짐작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개츠비의 매력 만큼이나 소설의 얽개의 치밀함도 이 소설을 잊지 못하게 할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츠비를 오해 하지 않음으로서 소설에 대한 감상이 온전했다고 생각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새움의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으로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정서 번역가님의 번역서 중에서도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이 책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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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4-25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츠비는 여러 판본을 구해서 읽었는데 하나 더 늘어날 예정이 되어버렸네요 ㅎ 언제나 조금씩 다르면서도 비슷한 쓸쓸함을 느끼면서 때때로 다시 읽습니다

이하라 2022-04-25 08:29   좋아요 2 | URL
개츠비에 대한 인상이 깊으셨군요. 저는 이 책으로 개츠비를 처음 만났는데 첫인상이 강렬한 소설이었습니다. 저도 때때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4-25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피츠제럴드는 개츠비도 좋은데 단편도 좋더라구요 ^^ 다시 문학소년이 되신걸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2-04-25 12: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피츠제럴드의 단편이라면 기대되네요. 구성력이 남다른 작가 같아서 다른 소설들도 완전 기대됩니다.^^

페크pek0501 2022-04-28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었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거예요.
사랑 받을 만한 자격도 없어 보이는 이기적이고 가벼운 생각으로 사는 듯한 여성의 무엇을 개츠비는 사랑했을까요.
그 자체 모든 걸 사랑했을까요.
사랑은 그저 환상의 산물이었는지 몰라요. 잘 모르겠어요. 책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 말이죠.

이하라 2022-04-28 18:29   좋아요 2 | URL
저는 사랑이야기로서 보다는 쓸쓸한 한 남자의
생의 한 대목과 죽음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데이지의 매정함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개츠비의 연연함도
그의 마지막도 너무나 고독하게만 느껴지더군요.
그의 외로운 생과 죽음이 사랑이야기를 압도해 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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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시집을 건네 들고 첫장을 넘기자 목차 이전에 앨런 긴즈 버그의 <어떤 것들>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을 때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집 맨마지막의 시 류시화님의 감회가 담긴 장 이전에 등장하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리 톨마운틴의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라는 시에서 말하듯 "헤어지면 서로 잊게 된단다./ 그러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돼."라는 말이 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영원히 영혼을 되살리는 존재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소중함이란 추억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동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내면에서 소중함이란 추억과 함께일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난 잊혀진 존재 잊혀진 가치라고 생각되었다. 난 누군가의 내면에서 꽃피어본적 없이 져버린 거라고 말이다.

 

그런 내게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은 꽃피어야 할 것은 꽃핀다고 어떤 역경 어떤 시절을 거쳐도 누구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꽃피운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집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이 시가 내게는 위로와 닮아있는 시였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이라 와히드 <흉터>

 

부끄러워 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생의 상처란 그런 것이다. 상처가 흉터로 아물 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는 자신의 상처를 삶으로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

너 자신이 되라.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정복당할 것이니,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 중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고 익혀 그저 특이한 인간으로 나 자신을 여겼다. 유년시절에 나를 대하던 사람들의 대우를 그대로 답습하며 나 자신을 애물단지처럼 여겼다. 이 세계에 잘못 온 존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껴왔다.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면 나도 나 나름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내게도 그런 가치가 있었던 거라고. 뒤늦게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나는 나를 사랑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속이고 이용했다고 생각되던 많은 사람들을 그 나름의 입장이 있었던 거라 이해하기로 했다.

 

......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 

 

나짐 히크메트 <피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의 시> 중에서

 

나는 내 안의 감옥에 나 스스로를 가둔 채 쇠창살 밖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도 그들에 분노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그 두려움과 분노가 마땅했던 순간 보다는 합당한 이유가 없었던 때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만 피해자인양 생각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해자인 적도 없지 않다. 세상을 유죄나 무죄로 가를 수도 없는 것이지 않은가? 나는 심판자가 아니다. 피해자라고 여겼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온전한 피해자만 온전한 가해자만 살아가는 곳은 아닐 거다. 더이상 내 안에 감옥을 품고 살고 싶지는 않다.

 

......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도나 마르코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나 이런 삶을 살리라고 다짐한다. 더이상 과거 속 귀신에게도 미래의 망령들에게도 농락 당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이 순간 이 곳에서 소중함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싫어서 

자신의 피부가, 

어둠이 지긋지긋해서 

그는 자기 자신 밖으로 기어 나와 

노래한다. 

어떤 시인보다 훌륭하다. 

 

호쇼 맥크리시 <매미>

 

마침 내가 과거에 쓴 하이쿠 또 내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이 시가 다가왔다.  내 하이쿠와는 다른 선상이지만 소설과는 결이 닮아있는 시다. 이 시가 주는 감흥이 거북하지 않다. 나도 나의 밖으로 나올 때가 이르러서가 아닐까? 

 

류시화님은 말한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시적인 과장이 아니다."라고. 나도 더는 슬픔에 빠져들지 않겠다. 하나의 기쁨을 찾겠다. 그렇게 하나 하나의 기쁨을 찾아가며 살아가겠다.

 

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후회>라는  이 시가 주는 감상처럼 나는 이 이상은 큰 죄를 짓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인용한 시들 보다 더 인상 깊었던 시들이 많았지만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짧은 감상을 전하고자 몇몇 시만 인용했다. 독서 치료라는 게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 영상 매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상처 많은 마음은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개념을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책과 영화를 가까이 하려했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치유되는 것만 같은 때는 최근에 이르러서다. 류시화님이 모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이 앤솔러지는 성찰과 함께 상처를 감싸안는 감흥을 불러오는 주제의 시들이 모여있는 시 모음집이다. 내게는 시 치유가 되었다. 류시화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시는 우리의 숨결이 만드는 것이고 우리의 숨결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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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4-16 1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펼쳐서 바로 읽은 시가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어요. 그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에요. ^^

이하라 2022-04-16 10:47   좋아요 3 | URL
아무 생각이 없던 순간에 역동적인 정서적 동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시의 매력이네요. 시가 때론 깊은 깨우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5-07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도 잘아시는 이하라님 당선 축하합니다 ^^ 요 책도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

이하라 2022-05-07 08: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포근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주는 시집이예요. 좋은 시간되세요.^^

mini74 2022-05-07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이하라 2022-05-07 08: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독서괭 2022-05-07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2-05-07 1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님~^^

서니데이 2022-05-07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7:0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말씀처럼 우리 안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가진 양 면이 모두 있다 여겨집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에 더 마음을 쏟느냐가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이하라 2022-05-07 22: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가해와 피해의 사이에서 늘 오가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 생이지 않나 싶습니다. 생을 죄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데서 찾을 수 있으면 양극단 사이의 중심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주말되세요.^^

bookholic 2022-05-08 0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오월 되세요~~

이하라 2022-05-08 08: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북홀릭님~~^^
즐겁고 행복한 오월 되세요~~

러블리땡 2022-05-08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우와 좋은 이야기 정말 많은 시집이네요 ㅎㅎ 기회되면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ㅎㅎ

이하라 2022-05-08 10:09   좋아요 1 | URL
제목답게 마음을 추스리게 해주는 내용이 깊은 시집이예요. 읽어보셔도 나쁜 시간은 아닐 것 같아요.^^
러블리땡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행복한 오늘 되세요.^^

강나루 2022-05-08 1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8 19:3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님^^

편안한 밤 되세요.

scott 2022-05-09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오월의 시로 마음 속 갚이 새길께요 ^ㅅ^

이하라 2022-05-09 18:2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
오월의 시가 너무 강렬하지만
감옥이 아닌 자유 안에서 살아가게 해준다면 좋을 것 같네요.^^

thkang1001 2022-05-10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하라 2022-05-10 11: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님^^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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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역시 중딩 때 권장도서라서 읽었었다. 하지만 딱히 어떤 감상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막연히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싶기는 했던 듯하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그 깊음에 조금은 젖어든 것도 같다. 

 

이번에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며 어린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징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린시절엔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내적 심연으로의 여행 이야기가 조금은 귓가에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어부이나 80 여일을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노인에게서 의미와 항로를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 성인으로서의 내가 오버랩 되는 듯했다. 아마도 노인과 같은 심정을 겪어본 많은 성인들이 있을 것이다. '없는 투망'과 '없는 노란 쌀밥', '없는 생선'에 대한 노인과 소년의 '놀이' 같은 대화는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루덴스]와 조지프 캠벨의 [신의 가면]시리즈 1권인 [원시 신화] 속의 개념과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노인과 바다]라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의식이자 의례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이 '놀이'와 같은 대화를 통해 내비치고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원시 신화]에서 조지프 캠벨은 인간 사회와 신화 속에서의 '신성한 놀이', 하나의 '의례'는 중세 기사도나 일본의 무사도에서도 엿보이며 현대의 일본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은유적인 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라는 표현을 현대의 일본인들은 "당신의 부친께서 죽음을 연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표현한다고 하니 말이다. 조지프 캠벨은 '정신의 고귀함은 천상에서든 지상에서든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품이나 능력이다'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노인이 투망을 잃은 것을 묘사한 짧은 대목은 투망이 없으니 노인이 사냥을 나가 낚시와 작살만으로 사냥감과의 일대 격전을 벌일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해 소년이 다른 배를 타게되어 홀로 사냥을 나가는 노인의 장면은 진정한 심연의 여행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상징한 것이라 보였다. 대어를 만난 노인이 미끼를 문 물고기로 인해 북서쪽으로 하염없이 끌려가는 것에서는 왜 하필 북서로 끌려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햄릿]이 자신은 "북북서로 미쳤다"고 하는 대사가 기억났고 그를 오마쥬한 제목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왜 하필 북북서인가?' 이런 의문이 들어 구글어스에서 덴마크(햄릿이 덴마크의 왕자이니 덴마크에서 북북서 방향을 찾아보려) 지도를 검색했다. 덴마크의 북북서로는 북해를 거쳐 노르웨이해를 거쳐 그린란드해를 너머 그린란드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 망망한 대양과 미개척의 대륙으로 인간의 심연을 상징하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헤밍웨이 역시 북서라는 비슷한 방향을 오마쥬해 노인의 여정이 인간의 심연을 향한 여정이라는 것을 상징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노인이 '사자의 꿈'을 꾸는 장면이 몇 번이나 등장한다. 조지프 캠벨의 말로는 용은 권위와 도덕성, 윤리, 원칙 등을 상징하지만 '사자는 자기 발견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것으로도 노인과 바다라는 서사가 자기발견과 내적 통합을 상징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분석심리학 전반에서는 자기실현의 길을 이원성을 통합하는 여정으로 본다. 노인과 물고기는 의식 속의 이원성을 상징하는 것이 맞을 테고 물고기는 노인 내면의 야성과 함께 인간 본성의 다른 한측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바다... 대양이라는 그 드넓은 심연에서 노인은 점점 침잠해 들어가며 또 다른 자신과 조우하고 결국 그를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고기가 꼭 그의 그림자만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노인이 보이는 그 사냥감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를 죽인데 대한 죄의식이 스쳐가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는 그의 그림자만이 아닌 아니마까지도 아우르는 그의 대칭적 극성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물고기를 죽인데 대한 죄의식을 보이며 그는 '물고기가 물고기로 존재하는 것처럼 자신도 어부로 존재하는 것이라' 자성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내적 통합을 긍정하고 있다. 

 

노인이 물고기를 사냥하고 나면 '노예의 일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심연 속 합일을 이룬 이후에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여정이 있다는 것을 비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물고기를 사냥했으나 그는 다시 한번 상어들의 공격으로 물고기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는 우리의 내면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 시련들을 상징한다고 보인다. 융 저작집 시리즈 중 연금술의 비의를 서술한 대목을 보면 왕과 여왕이 합일하는 과정에서 흑화하는 과정, 우리 내면의 모든 부정성이 모조리 드러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칼 융은 가르침하고 있다. 

 

노인이 겪는 여정과 '시련'은 통합의 여정이며 (조지프 캠벨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영적 상태로 변형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노예처럼 일할 수도 있고 상어 떼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 위에서의 고독한 그의 사투는 하나의 '종교의식'이자 성인으로서 다시 한번 겪는 '또한번의 성인식'이 아닌가 싶다. 노인과 물고기는 헤밍웨이의 표현처럼 '함께 묶여 항해하여' 끝내는 노인의 보금자리로 가닿는다. 그리고 그 험하고 깊은 여정 이후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별다를 것 없으면서도 다를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일 그의 일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통합을 이룬 이후에도 결국에는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혁신이나 변혁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하루가 같은 하루가 아니게 여겨지는 그런 색다름이지 돌아와 맞이 하는 것은 다시 일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에게 다시 돌아온 캔자스가 도로시가 받아들이기에 결코 이전의 캔자스는 아니겠지만 또한 일상이라는 면으로 보자면 같은 캔자스일 것이듯 말이다. 

 

신화 속 젊은 영웅에게 연륜있는 노현자가 가르침을 주는 것과는 대칭으로, [노인과 바다] 속 노인에게 소년은 그에게 결여된 젊음이라는 가치와 보살핌, 협조, 위안 등을 상징한 것이리라. 그리고 먼 미래에는 노인이 항해한 그 심연의 사투를 그 젊은 소년 역시 이겨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노인이고 우리 모두가 소년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이라는 바다 가운데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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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12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 좋아하는데 ‘북서‘의 의미가 그런거였군요 ㅋ 사자와 물고기의 상징도 그렇고 전 잘 몰랐던 사실인데 신기하네요~! 역시 책은 아는만큼 더 깊게 다가오는거 같아요 ^^

이하라 2022-04-12 23:14   좋아요 1 | URL
융 님의 저작 몇권과 조지프 캠벨 님의 신의 가면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었었기에 그저 대입만 해봤습니다.^^; 분석심리학을 아시는 분들께는 시시한 리뷰일텐데 칭찬해 주셔서 부끄럽네요.^^;;
 
[eBook] 1984 (한글+영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57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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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 대한 리뷰는 이미 남겼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한 바는 일부 전한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 받은 깊은 인상이 자꾸만 아릿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으니 다시 한번 리뷰를 남기면서 잊으려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이런 역설적인 구호를 일상으로 맞이한 시대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다. 저자 조지오웰이 1984년의 전체주의 세계를 가상하여 그린 이 시대 상황은 우리 세계와 다른 듯 또 닮아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보이는 것은 다르나 소설을 끝까지 읽고 보면 이 시대의 한면을 엿본듯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한창 전쟁중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영국은 오세아니아에 속한 지역이다. 이 시대는 평화부가 전쟁을 관할하고, 풍부부가 배급량을 제한해 식량배급을 감소시키고, 진리부는 정보를 통제하여 대중심리통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역설적인 시대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애정부라는 부서는 심문하고 고문하는 곳의 명칭이니 말이다.

 

윈스턴은 진리부의 공무원으로 보도 직전이나 출간 직전의 자료를 받아 교정한달까 통제한달까 하는 인물이다. 신조어를 만들어 보급시키는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로 신조어를 만드는 자체로 그의 반골기질을 묘사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발의 여지를 품고 있다.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세상에서 그는 혁명을 꿈꾸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고 그 혁명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혁명단체 형제단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자신 역시 형제단의 일원이 되고자 꿈꾸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일상의 모든 바를 통제하는 통제사회인 그곳에서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해봤던 그는 한 여자에 대한 흑심을 품기도 한다. 그녀를 강간하고 죽이려 공상하기도 하는데 어떤 까닭인지 그저 작가의 권능 때문인지, 줄리아라는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계획하며 그에게 접근한다.

 

그 둘은 남녀의 연애마저도 통제하는 그 사회에서 언제 검거될지 모르는 상황 속의 짜릿한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브라이언이라는 권력자가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은밀한 반역자라는 오해를 하고 그와 접촉하게 된다. 그는 오브라이언을 형제단원으로 착각해 반역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줄리아와의 밀회를 넘어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던 그와 줄리아는 정권에 검거된다. 

 

이후부터 그가 애정부에 잡혀가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고문 받으며 그에게 세뇌랄까 사상교육이랄까를 받는 장면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리뷰와 카뮈의 [이방인] 리뷰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으니 본 리뷰에서 생략한다. 실존 자체를 위협 받으며 인격과 사고 마저도 제어 당하게 되는 그 과정은 너무도 이 소설을 인상 깊게 만드는 서술들이다. 자신의 감각과 정서, 사고 자체가 모조리 통제될 수 있음을 윈스턴은 알수 없었을 것이다.

 

2 더하기 2가 3도 되고 4도 되고 5도 될 수 있는 기만의 세계에서 그는 인지부조화를 겪다가 끝내 죽음의 순간에는 수긍하고야 말게 된다. 빅브라더를 깊이 사랑한다고까지 수긍하고서야 그는 죽고만다. 그가 절정에 위기의 순간 줄리아를 자기 대신 고문하라고 처절히도 비명지르는 그 인격 자체가 말살되는 부조리가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삶에 대한 집착이 빅브라더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되고마는 그 순간만큼은 수긍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한 애정을 자신이 호응하는 정치가나 정치조직, 특정단체, 매체들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하는 까닭을 알게 된 것만 같기도 했다.

 

윈스턴이란 인물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존재 방식과 존재 자체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그가 원하지 않고 그가 수긍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그 스스로 수긍하고 원하게 되고야 말게 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극한의 부정을 그 누군들 감당하고 싶을까 싶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출신을 알고나서 남루하게라도 받아지녔던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 남루함 속에서도 빛나던 사랑마저 잃고야 만다. 데아라는 그의 빛과 같은 소녀는 장님이었지만 그의 안에서 빛나는 진가를 알아주던 이였다. 데아도 죽고 그윈플레인도 죽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나마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윈플레인을 보고 다시 윈스턴을 보니 1984에서의 윈스턴이 더 안스러웠다. 모든 것이 통제 당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부정 당하고 사랑마저 혐오로서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오해 받는 남자이다. 누구도 이해 받지 못할 곳이 세계라고 확장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분명 이렇게 이해가 아닌 오해로 점철되는 순간이 사람이 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윈스턴처럼 부정 당하는 존재, 산산히 분해되고나서 완벽히 다른 무엇으로 프린팅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이가 있을까? 뫼르소에게서는 공감의 여지가 있지만 윈스턴에게서는 공감만큼이나 나는 결코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이 삶 속에서 과연 윈스턴과 같은 심문과 고문을 당하는 이가 없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나는 결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 빅브라더는 실존하는 존재였을까? 형제단은 실체가 있는 단체였을까? 인지부조화 이후 윈스턴은 다시는 그런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이고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런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졌을까?" 윈스턴이 잠시 내게 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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