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유로와 수이가 수이의 수호천사가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자 하늘 위에서 날개 달린 천사의 군대가 흉갑으로 무장하고 검을 빼어든 채 미더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는 하늘 옆으로 돌아가는 불바퀴를 밟고선 나타태자와 비늘 갑옷을 입고선 태을구고천존, 거대한 뱀이 감싸고 있는 검은 거북 위에 선 현천상제, 청룡언월도를 든 복마대제가 셀 수도 없는 군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 상대해볼만 하겠는걸.”

 

수이의 수호천사가 다행이라는 투로 되뇌었다.

 

유로야. 너도 나서거라.”

 

어느새 나타났는지 붉은 흉갑을 입은 지도령이 유로와 수이, 수이의 수호천사 주위로 마법진의 결계를 검으로 깨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지금 너의 능력치면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아. 어서 갑옷으로 갈아입거라.”

갑옷이요? 어떻게 갈아입어요?”

그저 처음 다른 옷을 떠올릴 때처럼 생각만 하면 된단다.”

 

지도령의 말에 유로는 갑옷을 떠올렸고 유로에게 가야 시대 흉갑이 입혀졌다.

 

수이는 어떡하죠? 제가 싸우러 가면 누가 수이를 보호하나요?”

이봐, 수호령군! 나는 들러리로 있는 줄 알아? 내 임무는 절대적으로 수이를 보호하는 거야.”

 

수이의 수호천사가 말했다. 유로는 내 임무도 수이를 보호하는 건데하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싸우는 게 수이를 보호하는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은편의 마법진에 갇혀있던 유향이가 어떻게 됐는지 돌아보자 유향의 수호천사와 수호령이 유향의 뺨을 두드리며 유향을 깨우고 있었다.

 

아함! 뭐야 이건?”

 

잠에서 깨어나듯 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리던 유향이 주변의 광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유향아!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까 니 수호천사와 수호령에게 꼭 의지하고 있어.”

,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형은 어떻게 여기 있어?”

설명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유로는 유향을 향한 말을 마치고 천사들과 영계의 신들이 악마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날아갔다. 유로는 날아가며 손에 검이 생겨나 거머쥐었다.

미카엘과 가브리엘은 사마엘을 향해 검을 찌르고 베며 달려들었고 사마엘은 롱소드로 그들 둘과 상대하고 있었다. 태을구고천존이 도끼를 휘두르는 사자머리의 마르바스에게 권풍을 내지르며 공격하고 있었다. 악마들과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나타태자와 현천상제는 이 전투를 빠르게 끝내려면 높고 낮은 악마들보다도 악마들의 지도자 사마엘을 처단하는 것이 가장 빠르리라 생각했다. 그들이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협공하고 있는 사마엘을 칠 마음을 먹을 때 이미 복마대제는 청룡언월도를 사마엘에게 내리치고 있었다. 악마들이 미쳐 날뛰며 그들을 가로막으려 공격해 왔다.

64 마신 중 서열 62위인 두 머리의 용을 탄 발라크와 힘겨운 격전을 하고 있던 유로는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다시 다른 악마들이 치고 나오자 난감한 심정으로 어렵게 버티고 있었다.

메타트론이 유로와 격전하고 있던 발라크를 측면에서 검으로 베자 자신이 탄 용과 함께 발라크는 환영이 사라지듯 사라졌다. 천사들에게 베어지는 악마들은 모두 무저갱으로 돌아가 버렸다.

전투 중이던 우리엘이 자신 앞의 악마 하나를 베어내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소녀가 이 시공간의 틈을 지탱하는 열쇠 같아. 사마엘이 시공간을 여는 매개물로 저 소녀를 이용한 거야.”

저 소녀를 우리 진영으로 데려와야겠다. 전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엘의 말에 메타트론이 소녀를 데려오겠다며 하늘로 향했다. 유로가 올려다보니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이령이었다. 유로도 급히 상승해 이령을 향해 날아갔다.

박쥐 날개를 한 악마들이 이령을 향해 날아가는 메타트론에게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렇게 유로에게 소홀한 사이 유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몇몇 떨거지 악마들을 베어내며 날아가 이령을 에워싼 마법 결계와 부딪혔다. 몇 번을 검으로 결계를 내리치던 유로는 문득 결계는 무시하고 이령이만 구하면 되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령을 에워싼 마법 결계 자체를 온 힘을 다해 밀며 수이와 유향이 있는 결계 안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이령이를 보자 유향이 달려와 이령이 곁으로 가려 했으나 결계가 막아 다가설 수 없었다. 결계 안에서 얼어있는 듯한 이령의 눈동자에 유향이 비쳤다.

이령을 결계 채로 유로가 데려가자 사마엘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그는 유로와 수이, 유향과 이령, 그들의 수호천사와 수호령이 있는 천사의 결계를 향해 날아왔다.

사마엘과 상대하던 미카엘, 가브리엘, 복마대제, 현천상제, 나타태자도 모두 그를 뒤쫓아 왔다.

가브리엘이 날아가는 사마엘의 등 뒤에서 검을 찌르며 달려들자 사마엘은 가볍게 피하며 손가락으로 검을 튕겨냈다.

사마엘이 튕겨낸 가브리엘의 검이 가브리엘의 손을 벗어나 이령을 향해 날아갔다. 이령이를 향해 검이 날아들자 유향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천사들의 결계를 깨고 날아든 검이 유향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 그대로 날아간 검 끝이 이령이 갇힌 결계를 깨고 이령의 가슴을 찔렀다.

 

아악!”

 

이령이가 갇힌 결계가 깨어지며 정신을 차리자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길! 어렵사리 세상을 탈환하려 했건만.”

 

사마엘을 비롯한 악마 대군이 모두 무저갱으로 사라져갔다.

검이 몸을 꿰뚫고 지나갔는데도 유향은 이령을 돌아보고는 피를 토했다.

 

넌 안돼. 죽으면 안 된다고.”

유향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이령이를 감싸 안은 채 고통 속에서 이령을 향해 외쳤다.

검에 가슴을 찔린 이령이의 두 눈에 슬퍼하는 유향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이령은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서 커다란 후회가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너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미안해.”

 

죽어가면서 이령은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안 미안해도 되니까 죽지만 마. 죽지 말라고, 바보야.”

 

소리치는 유향의 등 뒤에서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얘들아.”

 

치유의 천사 라파엘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사라지게 하고는 이령과 유향의 머리에 한 번씩 손을 가져다 댔다.

그들의 상처에 빛이 어리더니 상처가 점차 사라지고 유향과 이령은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유로는 수이에게로 갔다. 수이는 유로를 보자 세상 믿음직스러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너무 멋지게 싸우더라. 무슨 수퍼히어로 같았어.”

수퍼히어로 같기는 너무 힘겹게 버티기만 한 걸.”

아니야. 오빠 검에 사라지는 악마들이 몇이었는데. 이령이도 오빠가 구해온 거잖아? 이령이를 데려와서 이 싸움이 끝난 거고. 오빠가 세상을 구한 거야.”

세상을 구하긴. 난 그저 너 하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걸.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유로의 말에 수이가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수이가 사라졌다. 수이의 수호천사가 유로를 돌아봤다.

 

수이는 이제 병원에서 깨어날 거야. 나도 이제 수이 곁으로 가봐야겠어. 너는 안 가? 수호령군!”

저도 가야죠. 저도 수이의 수호령인걸요.”

 

 

2007214일 오후 540M.G.I 쇼케이스 무대 뒤 수이와 아이들이 첫 무대를 앞두고 고정도 대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 얘들아. 긴장할 것 없어. 오늘 쇼케이스가 너희들이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는 무대라고 긴장해서 되려 실수하면 안 돼.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뭐?”

연습처럼이요.”

 

고정도 대표의 말에 효윤이와 선희가 신나서 소리쳤다.

 

대표님, 대표님이 더 긴장하시는 거 같아요. 좀 릴랙스하세요.”

 

이연이가 자신도 긴장되는데 더 긴장한 것 같은 고대표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그랬나? 보이그룹은 경험이 많지만 걸그룹 데뷔시키는 건 너희들이 처음이라 나도 덩달아 긴장했나 보다. 수이야, 소미야, 이연아, 선희, 효윤이도 모두 준비됐지? 가서 무대 찢어 놓고 와. 관객들 다 쓰러뜨려 버려.”

. 근데 대표님이 제일 먼저 쓰러지실 것 같아요. !!”

 

수이가 밝게 웃으면 대답했다.

무대에 올라가며 소미가 수이를 향해 말했다.

 

언니, 정말 모든 게 언니 수호천사와 우리 수호천사가 도운 것 같아. 이젠 우리 꽃길만 걷자.”

그래, 근데 수호천사만 있는 줄 아니 수호령도 열 일한다고.”

알겠어, 언니. 어쨌건 우리 이 첫걸음을 위해 그 노력을 해왔던 거니까. 꼭 무대 찢어 놓자. ?”

!”

 

수이의 얼굴에 긴장감과 기대가 어우러진 표정이 지어졌다. 수이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유로가 가장 보고 싶었다.

유로 오빠, 오빠 보고 있지? 이 첫 무대는 오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무대야. 나 긴장해도 놀리기 없기다. 응원만 해 줘. 늘 그러고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꼭!’

 

전주가 들리며 수이와 아이들이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무대 아래서는 M.G.I의 소속 스텝들과 촬영 스텝, 기자진, 그리고 소수의 팬들이 있었다. 그 팬들 틈에 유향과 이령이 있었다.

 

너 어제 학교에 찾아온 그 사람은 누구야?”

, 유로 형이 빙의해서 수이 구하던 날 사진들을 누가 인터넷에 올려서 나더러 이종격투기를 한번 제대로 배워보겠냐고 찾아왔어.”

너 보고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하래?”

그건 아니구. 우선 입식타격기로는 기초가 탄탄하다구. 좀 더 배워서 데뷔해 보겠냐고 하더라고.”

그럼 해야지. 장래가 촉망되는 격투가 싹이 보이는 녀석인데.”

 

유향이가 격투가의 꿈이 있는 걸 아는 이령이다. 유향이가 자신의 꿈에 한발 다가서게 되어 너무 다행스러웠다.

 

! 수이 굉장하네.”

, 그래?”

. , 소미지? 너무 예쁘다.”

, 그렇단 말이지. 다 이쁜 것도 아니라 소미만 눈에 쏙 들어온다 그 말인 거네.”

진짜 유난히 이쁘잖아!”

내 눈에는 다들 이쁜데 니 눈에는 소미만 이쁘다는 거잖아? 그딴 눈 뽑아다 마법 약 만들 때나 써 보고 싶네, 정말.”

 

유향이 M.G.I 멤버 소미를 칭찬하자 참고 듣던 이령이 불타는 분노를 내리누르며 싸늘히 말했다. 유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둘러댔다.

 

내 말은 소미가 그렇게 이쁘다는 게 아니라 저 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저 중에서. 내 눈은 너 보는 데 써야 하니까 제발 제자리에 놔둬 줘. 부탁할게.”

 

유로는 그들 머리 위에 한참 올라간 공간에서 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저 소녀가 내 여친이라구,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 쟤가 내 여친이예요.”

그건 온 영계가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네, 유로군. 천당에서도 천국에서도 지옥에서까지 도대체 누가 모르겠나?”

 

지도령이 오늘은 와인색 도복을 입고 나타나 유로를 놀리듯 말하자 유로가 정색했다.

 

온 영계까지 다 알려질 정도로 자랑하려던 건 아니었는데요.”

어쨌건 오늘이 자네가 수호령으로서의 지위에서 수호신의 지위를 봉신 받는 첫날인 것도 알아둬야 할 것 같네.”

 

그리 말하며 지도령은 임명부를 꺼냈다. 그걸 보고 유로는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굽히고 예를 취했다.

 

자네는 이제 수호령이 아니라 수호신이 되었으니 수이 한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하는 거네.”

그럼 수이 곁에서 떠나야 하는 건가요?”

 

수호신이 된다기에 뭔지는 몰라도 우쭐한 기분이었던 유로는 수이 곁을 떠나야 하는 걸까?’ 하는생각이 들자 수호신 지위를 거절할까 망설였다.

 

떠나야 하는 건 아니지. 자네의 관할이 대한민국 전체로 넓어졌을 뿐이야.”

관할이 넓어졌다는 말씀이 꼭 떠나야 한다는 말씀 같아요.”

그래도 걱정된다면. 자네는 아직 몰랐겠지만, 수호신은 분신을 할 수가 있네. 자네 분신을 수이 곁에 두고 세상을 수호하러 가면 되는 거네. 그럼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수이를 지켜보면서 자네 업무에도 충실할 수 있다네.”

 

유로는 자신의 분신을 세상을 수호하라고 보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분신을 하고나서 보니 의식이 둘로 나뉜 것 같이 양방향으로 감각이 다 공유되었다. 누가 분신이고 누가 본래 자신인 건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제 하나의 유로는 수이 곁에 하나의 유로는 세상을 지키러 그리 떠나게 되었다. 붉은 핏빛의 말이 히힝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자 한 명의 유로가 말안장에 올라앉았다. 유로가 다시 그 은색의 가야 흉갑으로 의식을 통해 옷을 바꿔 입자 말이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유로는 말을 타고 날아오른 자신을 보며 수이 곁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막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수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수이야. 이제 너와 세상을 모두 지켜야겠어. 그게 진정으로 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니까. 언제까지나 널 지켜줄게.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사랑한다, 신수이!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2

유로는 머리 위에 마법 써클이 그려진 채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어느 집까지 끌려갔다.

집 내부까지 이동하자 자신의 몸에 조금의 자유가 주어지는 듯했다.

천정이 높고 넓은 방 안으로 밀려 들어가자 반라 상태의 유향이 눈을 감은 채 세 개의 마법진 중 왼쪽에 있는 마법진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그 어두운 기운이 서린 소녀, 이령이 뒷모습이 보였다.

유로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오른쪽 마법진에 서게 되었다.

 

너였어? 너였다구?”

오빠, 오랜만이야. 정식으로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거 말이야.”

니가 그렇게 수이를 죽이려 한 범인이었어?”

오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처음엔 그냥 오빠와 수이를 헤어지게 하려고만 했어.”

그럼 지금 이건 뭐야. 니가 날 죽인 거 아니야?”

오빠 오해하지 마. 난 단 한 번도 오빠를 죽이려 한 적이 없어. 그냥 수이가 사라지길 바랐던 것뿐이야.”

수이를 죽이려다가 날 죽이게 된 거겠지?”

오빠, 만약 내 마법 때문에 오빠가 죽은 거라면. 오빠 혹시 수이에게 오는 모든 흑마술을 오빠가 감당하겠다는 그런 마법을 쓴 거 아니야?”

 

유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 봤다. 수이가 걸그룹 멤버로 확정됐던 날 자신이 한 기도가 떠올랐다.

하나님! 수이에게 오는 모든 무거운 짐을 제가 감당하게 해주세요. 수이가 앞으로 힘겹지 않고 포근하게 꽃길만 걸을 수 있도록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걸 감당하겠습니다.’

 

맞다. 유로는 그리 기도했었다. 유로는 문득 생각했다. ‘그래, 다행이야!’그 기도가 아니었다면 지금 죽어있는 건 유로 자신이 아니라 수이였을 거란 생각을 하니 차라리 자신이 죽은 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

 

오빠, 정말 그런 마법을 쓴 거야?”

마법이 아니야. 난 그냥 사랑을 한 거야.”

오빠, 그 사랑이 오빠를 죽인 거야.”

그래도 내가 죽은 게 수이가 죽는 것보단 나아!”

오빠 미쳤어? 어떻게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는 게 나을 수 있어?”

미친 건 너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은 커녕 또 죽이려 들 수 있는 거야? 싸이코패스라는 말이 너 같은 애를 두고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양심의 가책은 수이가 느껴야지. 수이 때문에 오빠가 죽은 건데. 그 애만 없었더라면 수이 그 기지배만 없었더라면 오늘 같은 일도 없었을 거야.”

오늘 같은 일? 너 진짜 내 동생은 왜 저렇게 세워둔 건데? 나를 불러오는 주술에 내 동생이라도 필요했던 거야?”

유로는 이령의 말도 안 되는 적반하장에 기가 막혔다. ‘양심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애 아니야?’ 그러다 문득 자기 동생인 유향이가 서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 이령에게 물었다. 하지만 왠지 저 섬찟한 아이에게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오빠, 난 오빠를 살려내기로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유로는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저 괴물 같은 아이가 이젠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나 오빠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오빠가 다시 살아나야 나도 사는 것 같을 거란 말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구? 날 살리겠다면서 내 동생은 왜 저렇게 세워뒀냔 말이야?”

나 오빠랑 유향이를 바꾸려고 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설마 내 동생을 죽이면 날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야? 너 정말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구나.”

오빠, 이미 한번 유향이 몸속으로 들어가 봤잖아. 그냥 빙의하는 거라고 생각해. 유향이 몸에서 오빠 영혼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 !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이라도 해 봐. 내가 가만히 있나. 넌 살인자고 싸이코패스고 연쇄살인범이야.”

오빠, 오빠가 모두 기억하는 게 버겁다면 내가 오빠 기억을 지워줄게. 그리고 더 이상 수이를 괴롭히지도 않을게.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 영원히!”

 

유로는 영원히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소름 끼치는 말일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유로는 저 미친 여자아이로부터 어떻게 동생을 구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러면서 발버둥쳤다. 유로의 발이 마법진 밖으로 조금 나왔다.

 

오빠 어떻게 한 거야. 마법진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위험해. 거기 그대로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이령인 가운데의 더 큰 반경의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벨레트, 내가 시킨 대로 모든 준비는 마쳤어? 근데 유로 오빠가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해. 이젠 마법을 진행할까?”

 

빈 마법진 앞에서 이령이 그렇게 말하자 마법진 안에서 흑마를 탄 기사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이령, 그런데 문제가 생겼네. 나보다 높은 분께서 이 자리로 오시려고 해.”

아니, 난 소환하지 않을 거야. 소환하지 않는 악마는 나타날 수 없는 거잖아. 너희 멋대로 나온다면 그건 마법이 아니지. 마법은 약속이야. 악마도 약속은 철저히 지키잖아.”

이령, 이건 약속이나 마법의 문제가 아니야. 마왕께선 네가 일깨운 우리 64 마신들에게 이 세계를 정복할 새로운 사명을 주셨어.”

? 그게 무슨 말이야? 마법 소환을 이용해서 이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거야?”

 

그때 가운데 커다란 마법진에서 불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모든 공간이 지옥의 화염이 불타고 있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마엘이 망토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사악한 인간들은 많이 봐 왔지만, 너처럼 순수한 악일 수 있는 소녀는 몇 세기의 끝마다 드물게 나타날 뿐이었다. 다행히 너를 통해 우리는 다시 지상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를 위해 희생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사마엘의 이 말과 함께 이령은 둥그런 구체의 결계에 갇히며 눈을 뜬 채 의식을 잃었다.

유로는 사마엘의 등장과 집이 있던 공간을 넘어 전체 공간들이 차원 중첩되며 지옥의 모습으로 변해가자 놀라 지도령을 불렀다.

 

지도령님. 큰일 났어요.”

오빠, 이젠 어떡해.”

 

잠에서 깨어난 듯한 수이의 목소리가 유로 등 뒤에서 들렸다.

 

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하필이면 이런 때.”

나도 모르겠어. 잠들었다 깨니까 여기야.”

수이는 지금 영혼이 너와 함께 끌려온 거야. 얘 몸은 마포대교에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어.”

 

지난번에 봤던 수이의 수호천사 목소리가 들리자 유로는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이젠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수호천사님?”

나도 몇백 년 산전수전 겪으면서 마녀사냥까지 경험해 봤지만 사마엘은 실제로 처음 봐. 이건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아니지, 넌 너희 소속에서 수호신급이라고 했으니까 감당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유로와 유향이 갇힌 마법진 밖은 이미 지옥의 화염들이 가득 채우고 있고 악마들과 마군 부대가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대적으로 차원의 틈에서 인간 세상으로 이동하려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유로는 다시 한번 다급하게 지도령을 불렀다.

 

지도령님 어디 계세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굼뜨신 건데요?”

그때 수이의 수호천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봐. 수호령군 저기를 봐!”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

유로가 안된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수이는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유로는 어금니를 깨물며 수이의 곁으로 날아가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무슨 주술에 또 홀렸을까?’ 유로는 그리 생각하며 수이의 머리 위를 쳐다봤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 수이를 한쪽 팔로 감싸 안은 채 떨어져 내리다 유로는 다른 손으로 강바닥을 쳤다. 강물이 핵폭탄이라도 맞은 듯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며 유로와 수이가 떠 있는 상공까지 솟아올랐다.

내가 뭘 어떻게 한 거지?’

유로도 각성 된 자신의 힘에 놀라며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꼭 안겨 자기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이를 보았다.

 

수이야 괜찮아?”

! 오빠! 나 벌써 죽은 거야?”

무슨 소리야? 죽긴 니가 왜 죽어? 내가 너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아?”

오빠, 지금 이건 꿈이야? 어떻게 이렇게 현실 같지?”

이건 현실이야.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너에게도 저 강물에도 실제 같은 힘을 아니 실제보다 더한 힘을 사용해도 되네.”

 

유로는 경황이 없는 순간임에도 어떻게 자신이 이런 힘을 갖게 된 것인지 의아했다.

 

오빠, 나 많이 보고 싶었지?”

늘 니 곁에 있었어, .”

그럼, 나 자살하려는 때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야.”

늘 그런 상황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처절히 얘기하고 막아서도 막을 수가 없더라.”

우리 할머니 꿈속에 나왔다는 것도 유향이가 오빠처럼 싸우던 것도 다 오빠가 한 거야?”

, 맞아! 그리고 난 늘 너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

나도 오빠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 . 그치만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더 괴로웠어.”

 

수이를 안은 채 유로는 강변으로 날아갔다. 강변 산책길에 수이를 내려놓았다.

 

난 늘 니 곁에 있어. 내가 죽었다고 하지만 난 죽은 것 같지 않아. 널 볼 수 있고 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해.”

 

이 말을 하며 유로는 눈물을 흘렸다.

 

오빠, 우리 함께이면 되지 않을까?”

 

수이도 울면서 말했다.

유로도 수이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들을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이 사랑이 유로에게도 한없는 상실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수이의 심정이 자신보다 더 괴로우리라 느끼면서 늘 미안함이 있었다.

 

오빠.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죽은 거잖아?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니야. 그게 어떻게 니 탓이야? 니가 나랑 헤어지려고 했다고 해도. 우린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만났을 거야. 내 죽음은 그냥 사고였어! 니 탓이 아니야, 수이야!”

내가 오빠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려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날 그 시간에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오빠는 지금 살아있을 거잖아? 근데, 그게 어떻게 내 탓이 아니야?”

그건 사고였어! 세상의 모든 우연에 누가 감히 다 책임질 수 있겠니. 넌 너무 무거운 짐을 니 심장 위에 얹고 있어. 놓아버리렴. ! 내가 죽었다고 변한 게 있니?”

그렇지만 오빠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우리 그냥 잠시 떨어져 있는 거야.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 그렇게 따로 떨어져 있다지만 또 함께인 거야. 한없이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한 공간에 있고 난 널 늘 느끼고 있어. 그러니까 너 좀 힘내면 안 되겠니? 예전에 니 모습으로 돌아가 줄 수는 없겠니? 난 너의 눈물도 한숨까지도 모두 사랑하지만 니가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예전의 그 이쁜 미소를 다시 보고 싶어.”

이런 게 어떻게 함께인 거야.”

 

눈물을 흩뿌리면 고개를 흔드는 수이를 보고 유로는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부활하게 될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이에게 속삭였다.

 

. 모든 게 전과 같잖아. 우리 잠시 시험 기간이라 아니 니가 가수가 돼서 전 세계 콘서트 투어 하는 동안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듯이, 그렇게 내가 잠시 어떤 역할을 맡아서 떨어져 있는 거라 생각할 수는 없겠니? 하지만 그보다는 나은 게 난 늘 니곁에 있다는 거야.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유로는 수이의 오라가 보였다. 점점 그녀의 오라가 어둡고 까칠해 보이던 색과 질감에서 부드럽고 밝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수이의 눈이 점점 게슴츠레 졸린 눈이 되었다.

 

오빠 나 잠이 와.”

 

그녀 뒤에는 붉은 도복의 지도령이 서 있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유로는 수이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잠시 자, 수이야! 오빠 어디 안가. 니 곁에 늘 있을 거야.”

 

수이는 자리에서 스르르 쓰러졌고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산책로에 몰려들었다.

 

, 거기 119. 여기 마포대교 아래인데요. 여자아이 하나가 쓰러졌어요. . .”

 

운동을 하던 한 여자분이 산책로에서 쓰러지는 수이를 발견하고서 119에 전화를 하고 있다.

 

 

인간계와 천상계 사이의 차원, 그 새하얀 공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너는 아니 자네는 수호신급이 되었네.”

 

붉은 도복의 지도령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유로가 놀란 눈이 되었다.

 

제가 어떻게 벌써 수호신이 돼요?”

 

이제 수호령으로 봉신 받은 지 얼마이지 않은 자신이 수호신이 되었다는 말에 유로는 의아했다.

 

수호신이 된 게 아니라 수호신급이 되었다는 말이야.”

그게 다른가요?”

같다면 같겠지만 다르다면 다르기도 한 게지.”

 

그 말에 유로는 비슷한 건가 싶어 대꾸했다.

 

그게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리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원래는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의도를 지니고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네. 자네를 수호신급으로 바꾼 이가 아마도 자네를 죽인이 일 거네.”

저를 죽여요? 저는 사고로 죽지 않았나요?”

자네, 수이 머리 위에 마법진을 보지 않았나?”

, 봤어요.”

자네가 죽을 때 그 마법진이 있었네.”

그럼 저는 살해당했던 거예요? 수이를 죽이려던 사람이 저도 죽인 거였어요? 왜요? 도대체 누가요?”

 

유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도대체 누가 자신을 죽이고 수이까지 죽이려 했다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군지는 우리도 알게 되었네만 자네를 죽인 것이 왜인지는 우리로서도 알 수 없네.”

 

그때 유로의 머리 위로 육각별을 감싸 안은 원이 그려진 마법 써클이 생겨나고 유로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유로는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가 바로 자신을 죽이고 수이를 죽이려던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너 이 자식. 반드시 죽인다.”

 

유로는 공간을 이동해 가면서도 두 눈에 분노가 불타올랐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2-06-14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편으로 탈고!
12편 기다립니다
하라님 고생 고생 ^^

이하라 2022-06-14 00:2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
12편 내일.. 아니 오늘 저녁즘
올리겠습니다.^^
 

10

유향의 몸에 빙의한 유로는 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가 수이의 팔을 잡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거세게 찼다. 그리고 놀라 수이의 다리를 놓고 일어서고 있는 한 녀석의 가슴을 밀어 차고 다른 녀석의 머리를 걷어찼다. 머리를 맞은 녀석들은 의식을 잃었고 가슴을 걷어차인 녀석은 숨을 쉬지를 못하는지 쌕쌕대고 있었다. 짱인 듯한 아이가 수이를 강간하려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뒤의 다른 둘을 불렀다.

 

뭐 해? 새끼들아! 저 새끼 조져!”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하던 소년들이 유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그 소년들 곁에 있던 두 명의 여자애 중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여자아이 한 명이 유로가 빙의한 유향과 소년들이 격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이는 일어나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려 뛰어가다 이령이를 보았다. 이령이가 수이의 팔을 잡고 가로막았다.

 

널 위해 싸우는 애를 두고 어딜 가겠다는 거야!”

 

수이는 그제야 유향을 돌아봤다. 그 순간 수이와 이령이 함께 입을 맞춘 듯 작게 되뇌었다.

 

유로 오빠?”

 

녀석들을 다 쓰러뜨리자 유로는 수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이가 무사한 듯 보이자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고마워, 유향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돌아가야지. 너 데뷔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려구 그래!”

유향아! 구해준 건 고마운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 선 넘지 말구. 참견은 그만둬.”

 

유로가 수이가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그 심정을 유향의 겉모습을 하고 있기에 수이는 알 수 없었다. 수이는 그저 아는 사이라고 하는 연민이나 참견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유로는 어떻게 해야 수이가 제자리를 찾을까 하다가 말했다.

 

할머니 걱정하시는 건 생각도 안 하니? 니가 세상 혼자야?”

 

유로는 이 말을 하며 생각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늘 내가 니 곁에 있잖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자 수이야!’

 

그때 이령이 유로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수이는 결국 되어야 할 대로 될 거야, 유로 오빠!”

? ?”

 

유로는 어두운 연기 같은 오라에 감싸인 이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령이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자마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향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유향은 갑자기 자기 몸에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더니 자기 몸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며 타격하게 되는데 놀랐다. 타격감은 실제 같았으나 머리에 연기가 가득 찬 느낌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액션 영화를 4D로 보는 것 같기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수이에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말을 하던 순간 유향은 형의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로가 유향의 몸 밖으로 나가자 유향은 이 현실을 믿기도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색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감이 왔다.

 

 

수이, 이령, 유향은 그 공사장에서 벗어나 한강으로 왔다. 수이가 뭔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령일 쳐다봤다.

 

너희 아까 거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난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갔을 뿐이야.”

도대체 확인할 거란 게 뭐야?”

무언가 실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확신을 얻고 싶었다고나 할까?”

 

수이는 이령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돌려 말하며 직설적인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힘줘 다물었다. 유향은 이령의 말에 뭔가 꺼림칙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뭘 실현하고 뭘 의심하고 도대체 무슨 확신을 한다는 거야?”

나에게 중요한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수이는 아까 유향일 보고 유로 오빠라고 이령이가 한 것도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지만 설마 잘못 말한 거겠지. 그게 당연한 거지.’라는 생각으로 말을 참았다.

 

 

이령과 유향은 돌아갔고 별빛이 비추이기 시작하는 시간 즈음 수이는 마포대교를 걷고 있다. 처음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어느 순간 자동차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안 돼. 수이야! 너 그게 니 생에 바른 결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오빠. 나 너무 힘들어! 오빠 없는 세상에 적응이 되지도 않고 이젠 적응하고 싶지도 않아졌어.”

넌 꿈이 있잖아. 언제나 바라고 원했던 꿈. 이루려고 열정을 다했던 꿈 말이야.”

이젠 다 중요하지 않아졌어. 내가 그런 꿈을 꿨던 것도 꿈같이만 느껴져. 오빠를 잃은 그 순간처럼 말이야. 나 그냥 오빠 곁으로 가고 싶어. 나 그냥 오빠 곁으로 갈게. 오빠 나 받아줄 거지. 우리 언제나 함께일 수 있잖아!”

 

수이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수호령인 유로도 눈물을 흘렸다.

수이는 말을 마치고 다리 난간을 넘어가 두 발로 모서리를 밟은 채 두 손을 등 뒤로해서 다리 난간을 붙잡았다. 유로는 그녀를 하염없이 말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수이의 귀에 유로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이는 멍한 채 다리 아래를 바라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유로 오빠, 나 지금 오빠에게로 갈게. 늦었지만 다시 만나면 나 반겨줘야 해.”

 

수이는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는 다리에서 한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9

이계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이령이와 유향이가 이령의 전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마침 등교하던 중인 유향의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그중 한 명이 유향의 어깨를 치며 인사를 건넸다.

 

, 이 자식! 요즘 등교를 꼬박꼬박 왜 하는가 했더니 쟤 때문이었어?”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매번 아침부터 같이 등교하는데 그럼 밤부터 같이 있은 거 아니야?”

 

영현이 말에 유향이 미심쩍게 대답하자 정찬이가 딱 초딩 수준 농담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이령이는 어린애처럼 수준 떨어지는 이딴 애들이 주위에 다가온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그게 너희 수준에 맞는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일 뿐이야!”

? 고용? 피고용? 노예팅 같은 거라도 한 거야, 니들?”

 

 

이령이는 교실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2층 창밖으로 구름이 듬성듬성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 수이가 또 결석한 걸 확인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수이는 오늘도 결석이야. 집에 전화해도 할머니께서도 애가 가출했다고 하던데. 수이랑 연락 닿는 애 없어?”

원래 아이돌 숙소에 있어야 하는 건데 멤버인 애들도 소식을 모른대요.”

데뷔가 6개월 남았는데 메인보컬이 없어졌다고 애들이 난리도 아니에요.”

 

아이들 몇몇이 수이 소식에 대해 모른다며 이런저런 대답을 하자 선생님도 걱정스럽게 한마디를 했다.

 

, 그러다 데뷔도 못 할 것 같은데.”

 

창밖을 보던 이령이가 무언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령이가 유향의 교실로 찾아왔다. 교실 밖 창가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령이를 보고는 정찬이가 한창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에 넋 나가 있던 영현이 뒤통수를 쳤다.

 

뭐야! 한창 끝짱내고 있는 중인데.”

유향이 여친 왔다.”

어라. 유향인 어디 갔냐?”

매점 간다던데.”

! 그럼 날 불렀어야지.”

 

정찬이와 영현이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복도에서 유향이가 오다가 이령일 발견했다. 유향이 살며시 웃으며 다가서다가 아직도 두리번거리는 이령이 볼을 찔렀다.

 

뭐야! 이 짝퉁이.”

내가 왜 짝퉁이야. 조금만 있어 봐. 대한민국이 내 이름을 다 알게 될 테니까.”

! 넌 가만히 있을 땐 유로 오빠랑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유로 오빠랑 달라도 너무 달라.”

형은 형. 나는 나야. 다를 수밖에.”

 

이령인 유로와 유향의 겉모습만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깊이 보지 않아서다. 유향인 유로처럼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만 파는 집념이 있는 아이였다. 가끔씩 농담을 하고 가벼운 말투를 보일 때도 있지만 유향도 유로 못지않게 진지한 아이였다. 이령이가 보는 이상으로 더 깊이 보면 그랬다. 그보다 더 깊이 보면 또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도 했을 테니 이령이가 꼭 잘못 본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령인 지금 유향이를 너무 겉모습만 보고 있다는 거다.

 

너 나랑 어디 좀 가야 해.”

뭐야? 무단 조퇴하려고?”

? 안 돼?”

너는 결석일 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난 좀만 더 결석하면 유급이야.”

유급 받으려면 두 달이 넘게 결석해야 해. 너 결석한 게 두 달이나 돼?”

아니, 대략 한 달 정도? 그래도 자꾸 결석할 수는 없는데. 네 어머니께서 널 경호하라고 하신 건 너 착실하게 지내게 지키라고 그러신 걸 거야. 근데 결석하게 두면 안 될 것 같다.”

무슨 선비냐? 우리 엄마가 널 내 곁에 두게 하신 건 날 감시하고 통제하라고 그러신 게 아니야. 어쨌든 난 지금 학교 밖으로 나갈 거야. 네가 안 따라온다고 해도 나갈 거라고. 하지만 넌 나 안 따라오면 직무태만이야, 알지?”

 

 

이령이 아까부터 계속 손바닥만 보면서 택시 기사 아저씨께 목적지도 불분명하게 말하고는 운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주세요.”

학생 진작 말하지. 여기선 비보호라 돌아서 다시 와서 좌회전해야 해.”

, 그렇게 해주세요.”

유향인 이령이가 어디를 가는지 모르기에 그저 묵묵히 이령이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하는 것마다 의문스러운 아이였지만 분명한 건 이 이쁜 아이가 자기가 갈 곳을 모르고 헤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작고 여린 이 아이는 뭔가 명확한 목적과 의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유향이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택시에서 내린 이령이는 마법 깃털을 만들어 그것이 날아가는 대로 따라갔다. 유향이 보기에는 허공을 보고 자꾸만 외진 곳으로 가는 이령이가 뭔가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 너 진짜 목적지가 있기는 있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만 와. 나도 이러는 건 처음이라 확신은 못 하지만 분명한 건 이론이 완벽하면 실현된다는 거니까.”

 

 

수이는 병원에서 나온 후 집에서 무릎만 껴안고서 혼잣말을 하고 반쯤 의식을 잃은 아이처럼 지냈었다. 그러다 장마가 끝나자 폭주족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던 소주까지 마셨고 매일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질주하면서 모든 순간을 잊으려 하며 보냈다. 유로가 없는 모든 순간을 말이다.

그러다 오늘 폭주족 아이들이 수이를 태우고 이 외진 공사장으로 와 자신을 쓰러뜨리고 강간하려는 순간을 겪고 있었다.

남자아이 하나가 수이의 두 팔을 수이 머리맡에서 잡고 있었고 두 녀석이 수이의 다리를 각자 붙잡았다. 그리고는 짱인 것 같은 아이가 수이 곁으로 다가왔다.

 

!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자식들아!”

 

수이가 발버둥을 치려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유로는 이 숱한 날들과 지금의 이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수이에게 이러지 말아, 수이야!” “정신 차려야 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었다. 그러다 오늘 이런 순간을 맞이하자 격분했다. 그러나 그 녀석들을 향해 발길질하고 주먹을 날려도 허공을 스치듯 다 지나쳐 버릴 뿐이었다.

 

지도령님. 제발! 제발!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런 경우엔 빙의하는 수밖에 없다.”

 

유로는 폭주족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 아무 아이 몸에나 들어가 보려고 마구 시도했다. 하지만 빙의란 게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먹히지 않았다.

 

빙의를 하려 해도 너와 기운이 맞는 사람을 찾아야 가능한 거란다.”

 

마침 그때 멀리서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여자아이와 유향이 보였다.

유로는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로는 유향에게 달려가 몸을 던졌다. 유로와 유향이 일체가 되었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