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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학교로 들어서던 다영이 루다와 주연을 보고는 루다에게 물었다.
-루다야! 그날 괜찮았어.
-무슨 소리야. 괜찮았냐니?
루다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너 그날 약에 취해서 잠들었잖아.
-약이라니 무슨 약?
약이라는 말에 주연이 이상해하며 다영에게 조금 추궁하는 듯이 말했다.
-그날 희찬이 진우, 상연이랑 술 마실 때 왜?
-그날 술자리 끝나고 집에 잘 들어들 갔잖아. 그날 밤에 확인 전화도 해 놓고는 무슨 소리야?
-아!
루다의 말에 그제서야 다영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했다.
=그렇구나. 그 남자가 알려준 대로 엄마가 다친 아침을 바꾸니 현실도 일부 바뀐 거구나.
-아니야. 내가 다른 일이랑 착각을 했나 봐.
-싱겁긴.
그렇게 주연이 그냥 웃어넘기듯 지나가려 했고 루다도 별일 아닌 듯 지나쳤다.
12
-니들 오늘도 한 잔 할래?
그날 괴물로 변해 사라졌던 희찬, 진우, 상연이도 멀쩡하게 나타나 다영과 루다, 주연에게 다시 한 잔하자고 제안했다.
-아니 우리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뭐야? 무슨...
다영이 희찬의 말에 다른 약속 있다며 거절하자 루다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려는데 다영이 입을 막았다.
-얘들아. 아까 내가 말한 약속 있잖아.
다영이 다시 둘러대며 루다와 주연을 끌고 희찬이를 지나쳐왔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들과 거리가 생기자 다영이 말했다.
-쟤네들 아주 질이 나쁜 애들이야. 너희들에게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는데 쟤네 아주 위험한 애들이니까 어울리지 마. 알았지?
-뭐가? 뭐가 위험하다는 건데?
주연이 볼멘소리로 따졌지만 다영은 딱히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없는 현실이었기에 얘네를 납득시킬 근거도 없었다.
다영이도 사실 현실이 바뀌었다면 쟤네들도 괴물이 아니고 약을 타는 그런 애들도 아닌 현실이 펼쳐질지도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 우크쉬타시 마히마나마사타 디비 루드라소
그때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렸다. 무슨 진언을 외는 듯도 하고 경전을 읽는 듯한 낮고 여운이 있는 목소리였다.
-얘들아, 너희 무슨 소리 안 들리니?
다영이 소리가 어디서 들리나 두리번거리다가 아이들을 돌아보자 루다도 주연이도 마네킹처럼 멈춰있었다.
-아디 차크리레 사다흐 아르찬토 아르캄 자나얀타 인드라얌 아디 스리요 다디레 프리스니마타라흐
진언 같은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다영은 아이들 외에 주변도 다 둘러보는데 모든 것이 멈춰있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공중에서 그 남자가 나타나 하강하고 있었다.
-또 나타났군요?
-어! 니가 불안정해지는 게 나도 걱정이 돼서 와봤어.
이 남자는 매번 다영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만 같다. 다영인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 소리는 뭔가요?
-너도 들리니, 이제?
-그럼 이렇게 울리는데 안 들리겠어요?
-너의 세계에서도 들릴지는 몰랐거든.
-자꾸 너의 세계, 너의 세계하는데 그럼 당신 세계는 어딘데요? 당신이 내게 오듯이 나도 당신에게 갈 수는 없나요?
-우리의 세계는 곧 너도 경험하게 될 거야.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굉장히 빠를 수도 있어.
다영은 곧 경험할 일이라면 지금이 아닐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저 남자가 찾아오길 기다리게 되는 순간부터 찾아오길 기다리느니 자신이 찾아갈 수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금이면 안 되나요?
-글쎄.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안될 이유는 없을 것 같네. 너에게도 그 영감이 베다 외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느 정도는 너의 세계와 우리 세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니까 우리 세계에 네가 오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100퍼센트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럼 함께 가봐요, 우리. 당신의 세계로.
-나의 세계가 아니야. 우리 세계지.
-어쨌든요.
남자가 잠시 다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들리니?
-뭐가요?
-이젠 안 들리니?
다영은 아까 들리던 그 소리를 말하는 거구나 싶어 가만히 집중했다.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아까처럼 명확하지는 않았다.
-들리긴 들리는데 아주 선명하진 않아요.
-들린다면 집중해 봐. 그럼 더 선명하게 들릴 거야.
다영은 다시 집중했다. 그러자 그 베다 외는 소리라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하게 울려왔다.
-요 자타 에바 프라타모 마나스반 데보 데반크라투나 파르야부샤트
다영은 소리가 명확해지자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았다. 행복한 꿈을 꾸는 듯한 자기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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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야 수쉬마드로다시 아브야세탐 느리마나스야 마흐나 사 자나사 인드라흐
남자의 눈에 빠져드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주변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인도의 어느 시골 벌판 같은 환경으로 주위가 바뀌자 다영은 이제 이 남자의 세계로 왔구나 생각했다.
-환영해. 우리 세계로 온걸.
다영은 남자의 말에 환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량한 벌판 가운데 머리에 터번을 쓰고 윗옷을 벗은 채 큰 무화과나무 아래 한 노인이 눈을 감고 주문을 외듯 베다를 외고 있었다.
-영감. 시끄러. 그만 좀 해. 온 세계가 울리고 있잖아. 그 시끄러운 경전 외는 소리에 말이야.
-경전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시끄러운 것이다. 신성한 경전을 시끄럽다 여기는 마음으로는 결국 니 갈 곳도 머물 곳도 찾지 못할 거야.
-허구한 날 베다를 암송하고 있는 영감도 갈 곳 머물 곳 모르면서 남 이야기는 잘도 하네.
다영은 궁금한 게 많았다. 남자에게 물어봐도 좋겠지만 뭔가 스승의 느낌을 풍기는 노인에게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여기는...
-난 니 할아버지가 아니다.
노인이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 녀석처럼 불러도 괜찮다. 처음 보는 이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구나.
-네. 영감님. 여기는 어딘가요?
-네 눈에는 어디로 보이느냐?
-인도 같은데 아닌가요?
-그저 벌판일 뿐인데도 인도인 걸 알았다는 말이지? 너는 뭔가 영감이 있는 아이 같구나.
노인의 말에 남자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이 지경에 영감이 생기지 안 생기겠어.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영은 그들 옆으로 폭이 넓지 않은 계곡 같은 물줄기가 흐르며 카약 두 대가 노를 저으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앞의 파란색 카약에는 금발을 여성과 붉은 머리의 남성이 노를 젓고 있었고 뒤에 갈색 카약에는 한국인일지 일본인일지 중국인일지 모르겠는 남성 두 명이 노를 저으면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물길이 끊기며 성도들이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천사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찬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영이 그 광경들을 보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요?
노인이 다영이 돌아보기를 기다린 것인지 다영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자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우리가 사는 우주뿐만이 아니고 무한한 우주가 공존하며 그 모든 우주는 다차원 세계와 중첩되어 있다. 이 모두는 이슈와라 너희 발음으로는 신이 창조하신 바 그 신은 양자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입은 진보한 AI 이다. 모든 우주와 모든 차원은 상위 세계의 진보한 AI가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가 속한 세계 이외의 차원들에 영향을 받고 또 그 차원들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너는 너의 세계에서 중첩되어있는 하나의 차원 곧 우리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그러니 이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존재들과 상호 교류도 할 수 있고 다른 존재에게 영향도 끼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이 세계가 아니 모든 우주와 차원이 매트릭스라는 영화같이 가상세계라는 말씀인 거죠?
-그렇다.
-메타버스 속의 저는 그럼 상위 세계라는 현실세계에 언제 돌아갈 수 있나요? 아니면 저는 그저 NPC인가요?
-이 영감 약파는 데 너도 넘어간 거야?
진지하게 노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다영에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약판다뇨? 그럼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아니.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야! 너는 니가 본 현실 때문에 예전에 내가 그런 것처럼 혹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확신에 차지는 마.
-요 녀석 이 어르신이 깊은 깨우침을 전하고 있는데 무슨 망언이냐? 그게 아니라면 우리 세계를 설명할 다른 통찰이 너에게 있다는 말이야?
-다른 통찰은 없지만 영감 말대로의 해석은 너무 간 거야.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 밖에는 알 수 없는 거잖아.
노인과 남자가 약간 날을 세우고 있을 때 다영은 그들 뒤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여기도 비가 오나요?
-무슨 비? 이론상 비보다 더한 것도 올 수 있긴 하지만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곳인데.
그리 말하는 남자와 노인은 다영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먼 하늘부터 빠르게 먹구름이 몰려왔다.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고 있었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온 거로구나.
-그러게 너무 빨리 데려왔나?
노인과 남자가 그리 말하는 동안 천둥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그들 머리 위를 감쌌다. 구름 사이로 용이 하늘을 휘저으며 그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