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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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는 운명론적이라 다소 거슬렸지만 [사피엔스]는 3개의 혁명으로 인류의 발전상을 해석하고 있으며 인지혁명 중 상상하는 것을 믿는 특성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깊이, 통찰로 다가왔다. 인류의 발전상을 달리 해석하는 [위어드]와 [호모 사피엔스]가 궁금한 것도 [사피엔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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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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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 하지만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일으킨 원인보다는 그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 할 수 있었다.


...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결과적으로 사피엔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경로를 서술해야 한다. ... 생물학적 속박만을 이야기한다면, ...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운동장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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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퀴, 문자, 금속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대형동물의 절반가량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이런 생태적 재앙은 농업혁명 이후에도 규모만 작아졌을 뿐 수없이 재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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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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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밀 채취에서 집약적인 밀 경작으로 전환한 목적은 정상적인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기존에 우리는 개척자들이 처음에 마을을 세우고 이것이 번영하면 그 중앙에 사원을 건설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괴베클리 테베가 시사하는 바는 그 반대다. 먼저 사원이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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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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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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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히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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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미국인들이 수립한 가상의 질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이 선언서는 위계질서로 혜택을 받는 남자와 위계질서에 힘을 빼앗긴 여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또 자유를 향유하는 백인과 평등한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흑인 및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 미국의 질서는 또한 부자와 가난뱅이는 계층이 다르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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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최초로 등장한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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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의 경제사는 미묘한 춤과 같다. 사람들은 이방인과의 수월한 협력을 위해서 돈에 의존하지만, 그것이 인간적 가치와 친밀한 관계를 손상시킬까 봐 두려워한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돈과 상업의 이동을 막아온 공동체라는 댐을 기꺼이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와 종교와 환경이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아줄 댐을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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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년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제국은 진정으로 세계적일 것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환상이 실현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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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일관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불교, 도교, 스토아철학의 일부 분파는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꾸로 많은 근대 이데올로기 속에 신에 대한 믿음이 계속 존재하며 그 중 일부, 대표적으로 자유주의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거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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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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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의 금고에서 수십억 달러가 실험실과 대학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 대부분의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는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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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류가 어떻게 해서 앨러머고도와 달-수많은 다른 목적지가아니라-에 도착했는지를 이해하려면, ... ... 다른 방향들을 무시하면서 특정 방향으로만 밀어붙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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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에 유럽인들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인의 제국주의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빈 지도는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약적인 진전이었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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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정치의 힘찬 포옹은 신용시장에서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 어떤 경제가 지닌 신용의 양은 새로운 유전의 발견이나 새 기계의 발명 같은 순수한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체제 변화나 좀 더 대담한 해외정책 같은 정치적 사건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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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지상주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 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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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 부자의 지상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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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들의 독립성을 서서히 약화시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더 이상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이제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 이탈리아, 멕시코, 타이 국민들이 독립성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을지라도, 사실 그들의 정부는 독립적인 경제, 외교 정책을 수행할 수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전면전을 벌이고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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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제국의 비전]에서 설명했듯, 우리는 지구 제국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제국 역시 그 국경 내에서 평화를 강제한다. 그리고 그 국경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세계 제국은 세계 평화를 효과적으로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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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의 여부, 쾌락적 감정을 즐기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된 질문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이나 중세의 농부보다 이런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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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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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피엔스의 역사가 정말 막을 내릴 참이라면, 우리는 그 마지막 세대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데 남은 시간의 일부를 바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인간 강화' 문제라고도 불리는 이 질문에 비하면 오늘날 정치인이나 철학자, 학자, 보통사람들이 몰두하고 있는 논쟁은 사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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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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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과 민족으로 보는 세계사 - 일본인은 조선인의 피를 얼마나 이어 받았는가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전경아 옮김 / 센시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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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서 민족 간의 내분과 전쟁과 참상이라는 갈등이 차지하는 영역은 심대하고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지역들도 다수이니 이런 시각과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저작도 접해 볼만하다고 본다. 한국사 부분이 미흡하다 보니 다른 국가 역사도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쁜 접근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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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다산초당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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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인생수업]서양 철학 2000년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 헤드의 말이 너무 인상 깊어, 서양 철학의 정수가 담겨있을 듯한 플라톤의 가르침으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길에 조금 더 나은 지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다만 본서를 건네받고 처음엔 그저 24개의 아포리즘이 담긴 책인가 싶어 다소 실망이 일기는 했다. 맥락 없고 파편적인 아포리즘이라면 왠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서는 Idea, Arete, Eudaimonia, Episteme의 이상, 미덕, 행복, 지식이라는 4가지 기준으로 아포리즘을 정리하고 있고 제목처럼 인생 즉 사람의 삶이라는 화두로 가르침을 주고 있어 다 읽으며 또 읽고 난 후의 묵상으로 맥락이 정리된다.

 

본서의 내용을 모두 정리할 수는 없고 이해한 바를 약술하자면 첫째로 본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정리된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바라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그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견해를 이 시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 세계(가상세계)이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미 학창 시절 배웠듯 동굴 그림자의 비유처럼 그는 이 세계는 실재가 아니며 허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Idea설이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비유가 아니라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있다는 모피어스의 일갈과 한치의 다름도 없다니 새삼 충격이었다.

 

이 실재가 아닌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어떡해야 실재를 인식하고 실재 세계로 전향하거나 이 세계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뜬금없지만 붓다와 생몰연대가 거의 비슷한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사랑하고 영혼을 정화해야 해탈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붓다께서 해탈과 열반을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그럼 플라톤은 어떻게 말했을까? 본서에서는 해탈을 말하기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플라톤의 해탈은 열반과 같은 완전한 초월이라기보다는 실재가 아닌 것을 인식하고 실재를 인지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본서의 주제 자체가 인생수업이다보니 해탈보다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플라톤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미덕이란 다름 아닌 탁월함이고 탁월함이란 좋은 것이며 좋다는 것은 다시 말해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 3가지인 이성, 기개, 욕망은 절제를 통해 탁월한 이상적인 상태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가상 세계의 가상의 것일 뿐인 몸이지만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도 절제와 함께라면 영혼의 바름을 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라톤 논리대로라면 오감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이 허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을 훈련하면 보다 나은 영혼의 경지를 가질 수 있다고, 바른 자기 훈육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플라톤의 주장과는 다르게 요가에서는 프라티야하라(Pratyahara, 제감)와 다라나(Dharana, 집중)를 말하고 있고 한국의 부도지라는 신화서에서는 오미(五味, 오감을 은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이 타락하고 훼손되었다며 복본(復本)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한국 선도에서는 조식, 지감, 금촉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의 요가도 한국의 선도로 감각을 제어하고 마음을 산란히 하지 않으며 집중하는 것을 주지시키며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분이 플라톤의 오감 훈련에 대해서 감각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묘사하셔서 동양과 한국의 가르침과는 플라톤의 접근이 다른 것 같았다. 가짜 세상을 즐기며 벗어날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주 크게 모순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삶은 거듭 반복되는 환생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직전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전생을 모두 잊어서이기 때문에, 전생과 저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안다면 세상의 모든 비밀을 확연히 알 수 있다며 상기론을 펼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직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기는 회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다시 떠올릴 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지혜로 가는 길로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묻고 또 물음으로써 실재를 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지혜와 지성, 지식을 플라톤은 이 거짓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로 보았다고 한다. 완전하고 충족되고 택할만한 것이 진정한 가치인데 그것은 이성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스어로 진리를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했다는데 a가 부정어이고 Iethe가 망각을 뜻하는 말로서 진리란 다시 말해 망각했던 것을 회복하는 것이라 한다. 앞서 말한 한국 신화서 부도지의 복본 개념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복의 길을 플라톤은 가장 탁월한 것 가장 나은 행복으로 여긴 것이다. 불가에서도 불교 가르침의 정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했다. 괴로움을 떠나고 즐거움을 얻는 것 다시 말해 괴로움을 떠나 행복해지는 것을 이른다. 플라톤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는 행복의 길은 이성의 길을 통해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길이다. 세상이 허상의 것, 허구의 세상이라면 이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허상인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성을 탐하는 것은 더더욱 허무의 길이니 말이다. 플라톤은 그 길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혼자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독이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유명해진 아폴로 신전의 말씀은 붓다께서 하신 너 자신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라라는 말씀과 같다고 여겨진다. 자신을 알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고독하게 나아가는 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붓다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허상의 세계에서 거짓을 초월하고 자신의 이성과 기개로 욕망을 절제하며 나아가는 것은 저자가 말했듯 공자께서 말씀하신 극기(克己)와 다름없다. 크게는 상호 호환되는 면들이 있는 성현들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허상에 빠져 사는 삶에서 벗어나 지혜를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플라톤과 서양 철학의 가르침은 동양의 가르침과 어느 수위까지는 유사한 부분도 있다. 현대에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기는 하다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수위의 바람이 있고 저자가 에로스를 언급하며 말하듯 자기의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다 보면 더 나은 삶, 진정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때 플라톤의 가르침이나 붓다의 말씀들이 와닿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과 삶의 방식에 회의가 들 때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싶을 때 너무도 상식적인 가르침이며 너무도 과거의 이상 같은 이 가르침들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그때는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 그런 변화의 길에서 한 번쯤 하나의 안내서로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싶다.


#플라톤의인생수업 #장재형 #다산초당 #다산북스 #도서협찬 #서평단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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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테크의 시대
이진우 지음 / 다산스마트에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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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단순했다. 교육과 기술이 연결되어 시너지를 낳을 때 그 기술개발처를 미리 알 수 있고 기술개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면 투자 방향성 중 하나를 미리 알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서는 저자의 진지한 교육관과 교육에서의 기술 활용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대하면서 그런 이윤추구의 마음이 다소 미안해지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다. 본서는 무엇보다 교육에서 기술이 왜 적용되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선명한 교육과 기술에 대한 철학에서 저술된 책이라는 감상이 먼저 든다.

 

책을 다 읽고 저자 소개를 다시 보니 저자는 교육자도 교육학자도 아닌 한 이동통신사 연구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SK C&C 수석컨설턴트로 있는 공학 전공자 출신이신 모양인데 사람의 관심과 진로는 참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거구나 하는 소소한 감상도 일었다. 저작 전반이 교육자들과 교육학자들에게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필요한 주제를 전할 책이구나 싶었다. (미혼의 직장인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TMI 일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교육 관련한 분이 아니더라도 학부모라면 대부분 궁금해할 수 있을 내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본서의 내용 중 핵심만 짧게 전하자면 본서의 핵심은 산업화 시기 이후에 교육의 전개를 대한민국 중심으로 돌아보고 근래까지의 교육은 근로자를 양산하기 위한 교육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개인의 개성을 꽃피우기 위한 개별화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주장에 있다.

 

----- 이에는 어린시절 경험한 대한민국의 교육이라는 것이 정보 주입 위주의 교육이면서 전인교육은 도외시하고 인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학생 스스로나 학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절로 형성되겠거니 여기는 게 아닌가 받아들여졌었기에 더더군다나 개별화된 교육의 중요성과 주입식 교육의 철폐를 생각하게 되었었다. 저자도 언급하다시피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더는 주입식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리 미래에 머리에 칩을 심고 클라우드 메모리에 정보를 업로드하고 필요한 정보를 다운로드 받는다고 해도 경쟁 상대가 초인공지능이라면 애초에 경쟁 상대라고 가정하는 자체가 난센스일 뿐이 아닌가 싶다. BCI 기술로는 초인공지능을 이용해 초인공지능의 경쟁 상대가 되는 게 아니라 초인공지능이 역으로 낱낱의 사람들을 통제하게 되는 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편이 더 합리적인 의심이 아닐까?

 

어찌되었던 앞으로의 미래는 초대량실업자가 기본소득이라는 미미한 생존비용만을 지급받으며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시대가 될 게 기정사실이라고 본다. 기술의 발전으로 혜택을 볼 대상은 극소수의 초엘리트층으로 국한될 게 자명하다. 대다수는 살아남으려 자발적인 트랜스휴먼이 되거나 정부 보호를 갈구하지만 외곽으로 밀려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라도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최소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생존자들이 있다면 그 미래에는 초인공지능과 경쟁하겠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기대나 현재와 같은 인간들 사이의 생존 경쟁을 지속하기보다는 좀 더 현실성 있는 자구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그건 서로를 해치지 않는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인간은 무엇보다 심리학과 심리치료, 명상과 인간애, 종교성들에 대한 교육이 주류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교육이라고 했지만 학습 과목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이점을 체감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추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치료사의 상담, 명상 수행, 신앙 교육을 통한 묵상과 생활 변화 등). 전인교육이라는 옛날의 허풍이 이제는 더 절실해진 시대이고 실천되어야 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 기술의 결합이 필요할 것이고 이런 교육 변화를 위해 기존의 주입식 교육이나 평가방식의 교육은 기술로 속도감 있고 간소화된 양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개별화 교육의 필수 요소를 구체화해서 개인화된 교육 과정(콘텐츠, 시간(속도), 공간, 가르침*평가의 개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지시킨다), 가정과의 연계 강화, 교사의 역할 변화, 기술의 활용 등으로 분야별로 접근해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의 적용은 팬데믹 상황이든 자연재해 상황이든 전쟁 상황이든 교육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교육 시공간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학교는 장소가 아니라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하며 콘텐츠의 진화는 지역적 교육격차를 해소할 것이라 긍정적 영향을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교육 양식과 평가와 피드백, 수정 등에 있어서 빠른 속도 구현이 가능하며 재미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고, 데이터 확보 및 활용이 쉬워지며, 협력을 강화할 수 있고 교육 주체 간의 소통 또한 강화될 수 있다고 기술 적용의 이점들을 나열하고 있다.

 

저자는 교육에 기술이 적용되는 실제에 있어서 교육을 위해 개발되고 적용되는 기술 역시 무엇보다 현재 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술적 도구 개발에 있어 무엇보다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 현장의 상황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데 있어서는 그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방향성이라는 틀로 한 번 걸러서 개발에 반영하라고도 지적하고 있다.

 

기술 개발이 실제 교육에 적용되어온 과정은 TV나 프로젝터, 실습용 컴퓨터 등 점진적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활용되어오기는 했으나 전면적인 변화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과도기일 뿐일 것이다. 현재의 이 과도기에는 더 학습 효율이 높은 매체는 종이냐 스크린이냐 하는 단순한 사안부터 원격수업에 과연 집중력이 유지되느냐 또 원격수업으로 학습 효율이 높아진 것이냐 아니면 사교육이 원격수업의 폐해를 감춰주고 무마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하는 문제들까지 돌아볼 사안도 많을 것이다. 향후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교육이 일상이 되고 폐해가 있더라고 당연한 일상 교육이 되어버릴 여지도 있지만 그때까지 교사뿐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 자신까지 교육 주체 모두가 면밀히 모니터링과 개선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변화는 다가왔고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보다 더 사람들 각자에게 맞는 양식으로 개선해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뒤따라야 할 일이다.

 

이런 변화와 적응, 개선이 반복되는 이 시기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내용을 전하고 있는 본서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서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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