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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릴은 새벽녘까지 자밀라와 무자히드를 가둬 둔 막사 앞에서 서성이다가 다른 대원들에게 무자히드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고 말하고는 어렵사리 막사에 들어갔다. 밧줄에 묶여 쓰러져 있던 자밀라와 무자히드는 진이 빠진 듯 지친 기색은 역력했지만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브릴은 상의 안쪽에서 숨겨온 가죽 부대를 꺼내 부대 안에 물을 자밀라부터 목을 축이게 하고는 무자히드에게 마시게 가죽 부대를 기울여 주었다.
“우린 살 수 없을 거야! 너도 알지!”
자밀라의 말에 지브릴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주변은 온통 IZ 대원들의 참호와 막사가 깔려 있다. 이젠 대원들 대다수가 살상을 위해 훈련된 전사들이었기에 이들을 따돌리고 도망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밀라,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억해 줄 이의 얼굴을 보고 죽으니 다행이야. 고마워! 지브릴.”
무자히드는 고맙다고 말했다. 무엇이 고마울까? 그들을 구할 수도 없고 자밀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은 마치 저주만 같았다. 죽음을 앞둔 이들 심정 같을 수는 없겠지만 지브릴은 지금 지옥을 걷는 듯했다.
지브릴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정이 지나가고 정오 기도를 하고 나서 나씨르가 대원들을 소집했다. 배도자들을 처형하기 좋을만한 사막 한가운데서 대원들은 도열하고 섰다.
“바로 지금 지하드를 저버리고 알라의 뜻을 배반한 배도자 둘을 참수할 것이다. 형집행은 우마르와 지브릴이 맡는다.”
“왜 접니까?”
지브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럼 누군가 다른 전사가 처형하면 다르다는 말인가?”
나씨르 보다도 우마르가 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우마르는 눈 빼고는 얼굴을 모두 가리는 복면을 착용했다. 지브릴은 넋 나간 듯 그를 따라 복면을 썼다.
대원들이 트럭에서 자밀라와 무자히드를 끌어내리더니 대원들이 도열한 곳으로 끌고 왔다. 자밀라는 이미 복면을 한 지브릴을 알아본 것 같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에게는 말할 자격도 없겠으나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를 주겠다. 너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냐?”
나씨르가 무자히드부터 유언을 남길 기회를 주었다.
“이슬람의 시대정신 그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질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서 더욱 홀가분해 보이는 무자히드는 죽음으로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말도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빛나는 눈을 볼 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아 보였다.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나씨르가 자밀라에게도 물었다.
자밀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고는 말했다.
“나는 늘 새로운 날을 꿈꿨어.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더이상 새로운 날이 없을 거란 걸 알았어. 그래서 난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자유로워질 기회라고 생각해. 너희를 원망하지 않아. 너희는 그냥 호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 뿐이니까. 언젠가 너희도 자유로워질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럴 거야, 반드시!”
우마르가 무자히드의 뒤에서 그의 목에 칼을 꽂았다. 지브릴은 고개를 돌렸다. 슬겅슬겅 살과 뼈가 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무지히드의 고통에 찬 신음이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새어 나왔다.
지브릴은 두렵고 서럽고 참담했다.
“뭐하는 거야?”
지브릴이 망설이고 있자 우마르가 재촉했다.
넋이 나간 지브릴의 귓가로 자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브릴, 망설이지 마! 그럼 내게 고통만 더해질 거야. 고통 없게 보내줘! 나를.”
“이제 결전만이 남았다. 오늘의 공격으로 아탈라의 탈환이 임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적들에게 타격을 주고 동요하게 할 폭탄 테러가 있어야 한다. 이번 테러는 아탈라 도심 내부까지 침투해 번화가에서 폭파해야 한다. 자! 누가 지원하겠느냐?”
아부바르크가 연설하는 사이 어느새 들어왔는지 라일라와 모나가 나섰다.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아부바르크가 순간 당황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다가 그들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너희가 말이냐?”
“저희 남편도 지하드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도 지하드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IZ의 대원들이 아탈라 도심 한복판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미망인들이 차도르 안에 폭탄 재킷을 입고 침투한다면 도심 한복판까지 진입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부바르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바로 승낙했다.
“너희 검은 미망인들이 남편의 유지를 받들고 지하드에서 한 역할을 하겠다니 갸륵하구나. 너희와 너희의 남편 그리고 너희의 가문 모두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침투하여 아탈라 도심에서 폭탄 테러를 성공시키면 전 부대가 정부군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소식이 들려오자 아부바르크는 상당히 애석해 했다.
“쓸모없는 것들. 여자란 것들은 정말이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구나.”
정찰병은 라일라와 모나가 번화가에 못 미쳐 자그마한 폐가에서 자살 폭탄 재킷의 스위치를 잘못 누른 듯 폭파되어 죽었다고 전했다. 그녀들은 실수로 자유로워진 것일까?
전 부대원은 지프차와 트럭을 타고 아탈라의 진입로 인근으로 향했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하룬이 조용하고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지브릴에게 말했다.
“이 전투는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미국에서 온 신참 하나가 그러는데 미국방성과 정보부가 우리 훈련소 위치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군.”
“그런데도 폭격을 안 한다는 거야?”
“미국 뉴스에서는 전략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한다는데 전략적으로 적의 유닛 생산시설을 그대로 둔 채 생산해내는 유닛들만 상대한다는 게 제정신으로 할 전략도 전술도 아니지.”
“그럼 왜 미군이 정부군과 함께 우리에게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않고 우리를 섬멸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이 전쟁이 장기화가 되기를 노리고 있는 거야. 이 전쟁이 장기화가 될수록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보호의 명분으로 지들 입지를 높이고 지들 나라 내에서 군사비용을 확대하고 그러면서도 지네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을 테니까. 또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에도 간섭하면서 원유를 제어할 수 있으니까.”
“정말 진저리나도록 악마다운 나라구나.”
“이 전투는 짜고 두는 체스판 같은 거야. 체스를 두는 놈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게임 말이야.”
저 멀리 정부군과 그들의 장갑차들이 보였다. IZ 대원들이 진격하자 모래바람이 스쳐 갔다. 모래바람이 그치니 그 많던 정부군이 모두 사라지고 장갑차 두 대만 덩그러니 보였다. 모두 가까이 다가가서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이 겁쟁이 녀석들. 죽음이 두렵다고 장갑차들과 소총, 탄창, 화염방사기, 대전차 직사화기와 탄환들을 모조리 두고 도망간 거야?”
“우리는 알라의 전사들이니 저들은 명분도 없고 두려움밖에는 일지 않았겠지.”
태양은 여느 날처럼 다시 떠올랐다. 이른 새벽 지브릴도 여느 날처럼 다른 IZ 대원들과 함께 도열하고 서서 지도자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는 이제 알라의 뜻과 지하드 전사들의 용맹과 병기까지 모두 갖추었다. 더는 우리를 막을 그 무엇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전면전을 벌이는 동안 아탈라 내부에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릴 폭발이 더 있어야 한다. 누가 지원하겠느냐?”
‘그래, 또 이런 기회가 있을 줄 알았어!’
지브릴은 아부바르크의 물음에 바로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지브릴은 아탈라 도심을 걷고 있었다. 그가 입은 토브 아래로는 폭탄 재킷이 있었다. 그는 차분히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라일라와 모나가 쓸모없는 것들이라 빈 폐가에서 자폭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무자히드처럼 자밀라처럼 자유를 향한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그들보다는 자유로웠을 뿐... 아니 그들도 자밀라도 무자히드도 결코 자유롭게 자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슬람의 시대정신이 그들에게 자유를 향할 수밖에 없는 압박을 더한 것일 테니 말이다.
지브릴은 이슬람의 시대정신 IZ 전사들이 나타나자 모든 중화기를 버려두고 정부군이 도망간 그 순간 알아버렸다. 하룬의 말이 맞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모두가 짜고 두는 체스 같은 것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이미 모두 결정 나 있는 것이다. 저항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이 그렇게.
지브릴은 공터가 보이자 그곳 중앙으로 가 자신의 토브를 툭툭 털고 앉았다. 지브릴은 자밀라가 새로운 날을 찾아 떠나자던 그날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밀라도 깨달았을 것이다. 더는 새로운 날이 없으리라는 것을. 이곳을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찾을 기회이다.
“그래, 고통 없게 가자!”
공터에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그렇게 지브릴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알라께로 가닿을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알라의 뜻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유로울 것이다. 카림처럼 라니아처럼 라일라처럼 모나처럼 무자히드처럼 자밀라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들이 찾은 자유가 이 시대에 유일하게 자유를 향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누구라도 모를 길 위에 있을 테니까.
< 끝 >
처음에 이 단편소설을 구상할 때는
단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또는 희곡으로 쓸까도 고려했던 이야기 입니다.
짧게라도 이야기들을 완결 지어보고자 썼던 작년의 활동에서
탄생한 이야기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시 탈고를 하면서 새삼 느끼기에는
한 지역의 시대상황으로 이 시대의 상황과 대중이 느낄 내적 동요들을
잘 녹여냈구나 하는 자기감상이 일었습니다.
묘사나 기교는 미흡하지만
이 단편소설을 통해 내적 동요가 이셨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름의 보람을 느낄 것만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