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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정미나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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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서를 읽기 전 본서에 관한 검색을 하고 예비지식이라고 배경 정보를 갖고 있었다. 방송작가와 PD가 미스터리를 추적하다가 예수가 죽지 않고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막달라 마리아와 2세를 낳아 지금까지 후손들이 이어졌고 카톨릭 교회에서도 이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후손들에게 지속적인 지원금을 후원해 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일부 맥락은 맞지만 잘못된 정보였다. 저자들이 방송작가이거나 PD인 건 사실이 아니었고 로마 카톨릭에서도 예수의 후손들에게 후원금을 지급해왔다는 얘기는 낭설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며 죽지 않았고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아 대를 이어 지속되었다는 부분은 본서의 주장이 확실하다. 이게 본서의 핵심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추적을 초반부터 보여주며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서술해 가고 있기도 하다.

 

본서의 주장이 추적으로 이어지는 과정 대로의 키워드를 보자면 렌르샤토, 소니에르, 카타리파, 성당기사단, 시온수도회, 장미십자회, 메로빙거 왕조, 로렌 공작, 성배, 성경, 외경, 바실리데스, 라자로, 막달라 마리아, 베다니아의 마리아, 십자가 처형 사기 등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하지만 몇몇 대목은 특히나 성배에 관한 대목은 영화의 속임수인 맥거핀 급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다. 성당기사단과 성배에 관한 내용으로 전개되며 시온수도회를 소개하는 것은 프랑스 왕조와 시온수도회를 연계 지으며 프랑스 왕조의 비밀과 진짜 성배인 왕조의 혈통에 대한 부분을 시온수도회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를 수 있기는 하지만 그에 부수적인 연결점들에 과도하게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은 맥거핀과 다름없었다고 본다.

 

본서는 이 책을 117일에 출간하려다 그러지 못했다고 117일을 중요한 날짜인 양 주지시킨다. 렌르샤토에서 하나의 비밀을 알아내고 교황청과 프랑스 왕조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은 소니에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도 117일에 사망했다. 이후 또 한 번의 117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도 그것으로 끝이다. 이 또한 맥거핀이다.

 

어찌되었든 소니에르는 렌르샤토의 성당에서 어떤 비밀에 접근하였기에 교황청과 프랑스 왕조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저자들은 그것이 보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유형의 보물이 아닌 비밀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과정에 예수의 신성과 십자가형 죽음을 부인하는 고대 보밀파의 유파인 카타리파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들과 성당기사단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성배에 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나간다. 그리고 성당기사단의 기원을 시온수도회라고 보며 시온수도회의 성립에 프랑스 왕조가 개입하였으며 중요하지는 않지만 장미십자회 등 비밀단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귀결되는 것은 성배라는 것의 진짜 의미는 해당 어휘를 풀어나가면 성스러운 왕족, 성스러운 혈통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메로빙거 왕조가 등장한다. 메로빙거의 선조인 종족의 상징은 곰이었고 이는 그들 왕조의 인물들에 우르수스라는 명칭이 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곰이 웨일즈어로 arth인데 그로 인해 아서왕과도 연계된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프랑크 왕조의 초기 왕조의 혈통은 이후 그들의 후예인 로렌 공작의 등장과 함께 다음 왕조와 로렌 가의 정략 결합으로 메로빙거의 혈통이 이후 프랑스 왕조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성배는 성스러운 혈통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성스러운 혈통은 결국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혈통이 도대체 왜 성스럽다는 것일까?

 

이후 이야기는 성경과 외경들을 근거로 해서 전개되는 데 이전 이야기들이 아마도‘~일 수 있다’ , ‘~ 일 것이다등 가정형 화법과 억측과 비약과 단정이 이어졌던 것과 같이 가정과 억측과 비약과 단정이 어우러져 있다.

 

본서 후반부의 핵심 내용은 바실리데스(서기 120~130년의 저술가)의 주장이 [나그함마디 문서] 중 하나인 [위대한 셋에 관한 두 번째 논문] 사본에서도 발견되며 다른 외경인 [빌립보 복음]에도 등장하듯이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으며 키레네의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 대신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말이다. 또 다른 외경인 [베드로 복음]에 의하면 예수가 사랑한 제자라는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인물과 본디오 빌라도는 지인이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그를 근거로 빌라도가 예수와 짜고 그의 십자가형을 사기로 실행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경과 외경을 두루 보면 예수의 십자가형을 받은 처형장이 골고다 언덕이 아니며 무덤 하나가 있는 한적한 언덕이었다고 하며 그렇기에 사기를 치기에 적당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이유는 예수가 당시 사회를 전복하려는 과격단체 열심당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만 해도 예수의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며 칼을 갖추라고 명령했고 칼이 없는 자는 칼을 사라고 종용했으며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제자들이 칼을 지닌 걸 보고는 흡족해했다는 내용들이 신약의 복음서들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자들도 도둑이 아니라 열심당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다고 하자 해융(스펀지)에 신 포도주를 적셔주었는데 그건 의식을 잃을 때 의식을 차리게 하는 고문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경 기록대로면 그 의식이 깨어나게 한다는 신 포도주를 입에 적시고 예수는 오히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게 마취약으로 죽은 것처럼 만들어 처형된 것처럼 사기를 쳤던 것이라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형벌과 처형을 감당한 건 예수가 아니며 키레네의 시몬이었고 예수는 숨어서 그 과정을 훔쳐보기만 했다는 주장이다.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 주장과는 대치되지만 많은 기독교 고대 종파와 외경들에서 언급되는 내용이기에 무조건 배척할만한 내용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아내인 막달라 마리아와 프랑스로 이주해 대를 이어 프랑스 왕조로 자신들의 혈통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라는 주장의 근거를 저자들은 예수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첫 이적에서도 찾는데 당시 예수가 만든 분량의 포도주는 600리터로 포도주 800병에 이르는 것으로 이만큼이면 큰 잔치에서 쓰이는 양이고 당시에 참석자들이 신랑을 불러 칭찬하는데 그 시대에는 결혼식 이후 잔치를 주관하는 것은 신랑으로 예수가 포도주를 대접했다면 바로 예수 자신의 결혼이라는 주장이다. 또 당시 예수는 랍비라고 불렸는데 유대교 율법서를 보면 결혼해야만 랍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동 경로가 굉장히 먼 거리인데도 성경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연이어 등장했다고 하는데 당시 남편과 동행하지 않고는 여성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부활시킨 라자로의 여동생인데 예수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고 예수가 당도했을 때 상복을 입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도착 후에도 나오지 않다가 예수가 불러서 나왔다고 한다. 그에 대해 저자들은 당시 관습으로는 상복 입은 여자는 밖에 나올 수 없고 오직 남편의 부름에 의해서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혼인한 상태였다는 것이 저자들 주장이다. 라자로의 여동생과 막달라 마리아와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어준 베다니아의 마리아를 저자들은 모두 한 인물로 보고 있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명확한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예수가 자신은 독신주의자라고 언급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결혼에 대해서 중요하고 반드시 치러야 하는 중대사로 언급했으며 결혼한 사람만이 될 수 있는 랍비가 된 것만으로도 그가 결혼했다는 증거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예수에게 후손이 있었다는 건 빌립보 복음서라는 외경에서 인자의 아들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는 걸 근거 삼고 있다.

 

나로서는 예수가 살아남았다는 건 믿어지는데 그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과 프랑스로 이주해 메로빙거 왕조의 선조가 되었다는 건 억측이라고 생각된다. 살아남았다는 것에 관해서는 예수 시기와 예수 사후로 일컬어지는 시기의 초기 기독교 분파들과 아포크리파들이 그의 십자가형 사망을 부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수의 신성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예수의 사망과 부활을 믿지 않았거나 사실이 아닌 걸 알고 있던 대중이 많았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이런 판단에 사실적 배경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찬들이 본서를 욕하면서도 본서의 내용처럼 예수님께서 살아서 행복한 삶을 사셨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본서는 학술서나 연구서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생각되지만 읽어보기에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미지다. 기독교인들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만한 소설 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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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미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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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JESUS MYSTERIES]이다. 예수는 신화일까 역사일까 미스테리다라는 의미와 그 당시 존재하던 이교의 가르침과 의례들을 미스테리아로 칭하면서 논하는 서이기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한국어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기에 이후 [예수는 역사다][예수 신화? 예수 실화!] 등에 제목의 저작이 잇따라 출간되기도 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다가 본서를 검색하다 보니 여러 유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있는 걸 알게 되었다.

 

본서는 예수 이전 시대부터 예수의 수태와 탄생과 생애, 죽음과 부활, 그 가르침까지 예수라는 존재의 전부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교의 신적 존재의 역사와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예수는 실화가 아닌 신화였다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는 책이다. 본서를 보면 예수라는 존재의 전승 하나하나의 원본 텍스트를 제시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매끄러운 서술을 하기 위해 빠르게 전개하고 있지만 (본문만 390쪽에) 120쪽에 이르는 후주가 존재하는 책으로 그 하나하나의 근거가 무언지 깊이 천착하며 공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내용이다.

 

이미 [성서의뿌리 구약편][성서의 뿌리 신약편],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을 통해 예수를 믿는 종교가 그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통해 존재해온 다른 종교의 내용과 가르침을 표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거에도 [2의 성서 아포크리파],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이것이 영지주의다], [유다복음서, 진실 혹은 거짓?] 등의 책과 방송을 통해 영지주의와 그 원류가 되는 가르침에 대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예수는 표절이며 신화일 뿐이다라는 논지를 전개하는 책이 참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긴 세월을 예수는 실존했고 그의 생은 역사이며 실제라고 믿어왔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본서는 예수를 믿는 종교의 전제인 예수 자체가 신화의 짜깁기이지 실체가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초기에서부터 신약성서가 갖춰지며 교세가 안정되기까지의 역사도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생존 당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대의 문장가들, 학자들은 누구 하나 예수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주장하는 예수의 실존 증거라며 내세우는 기록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된 이후 로마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남긴 것뿐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는 총독이었던 적이 없고 로마에서는 그저 사령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를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확산한 이후 그리스도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총독으로 기록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예수 사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본디오 빌라도가 사령관이 아니라 총독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도 당시 이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지역에서 선동을 하던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로마 기록에는 그들 중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처녀 수태, 생존시에 보여주는 이적,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등은 예수 이전 몇백 년 전부터 존재하던 타종교들에 신적 존재들의 내용을 그리스도교가 그대로 표절했으며, 그 가르침의 내용 역시 타종교 텍스트에서는 미스테리아로 옮기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되는 이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원래 복음서 중 하나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동굴에서 시신이 없어진 것을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이 목격했다고 부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예수가 부활하고 제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었고 다른 복음서들도 그 복음서를 텍스트로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본서의 저자들은 예수를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신화의 내용을 표절하며 창조된 인물로 영지주의자들이 그를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함께 신적 자아의 각성을 은유하는 존재로 상징하려 한 것과는 다르게 문자주의자들(현재의 기독교를 전승하게 한 초기의 예수는 역사다주의자들)이 그를 무리하게 역사적 인물로 확정하려 갖은 모략을 써서 현재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베드로의 편지 등의 기록 등에서도 예수의 생애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그의 죽음만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도 저자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마따나 미스테리아라는 예수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영지주의로 계승된 후 문자주의자들과의 격돌이 있었고, 이 둘은 무수한 종파로 나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반강제적으로 이들 전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주교의 기록으로는 내 안에 있는 상대의 교리를 찢어발겼으며 상대 안에 있는 나의 교리를 찢어발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리상 합의될 수 있는 내용조차도 종교회의라는 그 격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괴되고 난자되고 만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그리스도교는 살과 피와 신경을 모조리 해체당하고 뼈대만이 남아있는 앙상한 종교라는 말이 된다.

 

기독교도도 인정하는 내용 중 하나는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후대에도 이단을 징죄하며 그리스도교의 본체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말이다. 문제는 바울이 상당히 영지주의를 중시했으며 바울이 남겼다는 영지주의 문서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CE 160~220년 생존했던 테르툴리아누스라는 문자주의자의 이단을 비판하는 기록은 후대에도 줄곧 인용되리만치 명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적극적인 문자주의자이며 이단비판자였고 여성차별주의자여서, 당시에 주교와 예식 주도자와 일반교인의 역할을 집회할 때마다 제비뽑아 결정하며 여성과 남성의 무차별까지 모든 방면에서 전혀 차별없이 진행되는 종교모임을 갖던 영지주의자들을, 주교의 권위와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하는데 적대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문자주의자들과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 전체를 적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논란이 될만한 것은 그도 그의 생애 후반기에는 영지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성립과정과 예수라는 인물이 설정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그리스도교가 강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지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영지주의가 그 당시까지 존속했던 타민족의 미스테리아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는 차용하고 수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문자주의자들은 이후 자신들 이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과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그 미스테리아와 예수 이전 시대의 전승을 모두 악마의 모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죽을지 알고 있던 악마들이 그 이전에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을 모방해 예수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악마들이 성스러운 대상을 전도시키려던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문자주의자들의 주장을 이 시대에 대입하자면 500년 전 곡을 그대로 모방한 작곡가가 (예전의 아름다운 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내가 이 곡을 작곡하려는 걸 500년 전에 미리 안 악마가 나를 표절한 것이다라고 앙탈과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수준의 억지라면 도둑이 따로 없어 보이고 이걸 믿는 것도 바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본서는 한국어 제목을 주지하고 읽으면 예수는 실제했는가 그리스도교는 신앙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인가라는 데 주의하며 독서하게 되고, 영문 제목에 관심이 꽂히면 미스테리아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란 무엇인가에 주의하며 읽게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이해와 고대 이교의 종교들에 대한 연구에 비교종교학적 견해가 더해져 집필된 저작이라 크리스찬이 읽게 되면 영지주의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될 테고 비신앙인과 무신론자들이 읽는다면 그리스도교의 실상을 알게 된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카톨릭과 개신교 역시 그 역사 속 불법과 범죄들과 함께 신앙인들에게 준 마음의 평화 또한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본서에서 그리스도교 초기에 영지주의자는 구약성서는 신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를 나열한 목록서라고 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신이 문제 많은 인간을 창조했고 그렇기에 인간 세계가 문제투성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 문제들을 양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순한 주지만 시키고 인간을 세계로 내보낸 것은 바이러스나 암처럼 증식만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달랐나 싶었지만,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취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해도 그 모든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에서 만끽하는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는 과정(살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생각이 이르니 일자()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문제 많은 신이라는 관점도 인간이 자신의 문제 많음을 신에게 투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들의 주장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를 지은 것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문자주의자들이 예수의 존재함의 가치를 신앙인들이 수긍하게 하기 위해 구약을 이용할 필요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시대에 문제 많아 보이던 신의 이미지가 이용되었던 것이 구약이라면 그 신을 빛이자 사랑으로 진화시킨 것이 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와 예수라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 신화였느냐에 관한 의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읽기보다는 무엇이 인간과 일자()를 이어주어 왔고 이어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읽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예수의 실존을 믿는다고 바보라기 보다는 예수라는 상징이 이미 바보였던 인간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신앙인에게도 신앙이 강화되건 무화되건 간에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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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이하라 2023-12-05 00: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저도 북플마니아와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3-12-05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하라 2023-12-05 21: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평화로운 시간 되세요.^^
 
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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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를 서술하며 저자는 문학치료라는 개념을 거듭 언급한다. 문학치료에서의 자기서사를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만들어 가는 인생 여정의 서사와 신화는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면적 심층에서 삶을 움직이는 존재의 본질은 신화학과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원형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를 통해 자신의 내적 실존을 일깨운다는 취지에서의 저작이기에 깊은 감상을 기대했지만 다소 부유하는 느낌을 주는 저작이기도 하다. 신화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자기서사의 속성과 좌표를 살피기에는 이 책에서 예를 든 신화들 중 한국 신화들은 뭔가 밋밋하고 맥이 빠진 느낌을 주었다. 한국 신화에서 존재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나 깊이와 사람 마음의 근본을 읽기에는 뭔가 트릭스터 이야기의 감상만도 못한 듯했다. 오늘이와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깊이가 느껴졌으나 배네깃또와 궁상이, 매일 장상 이야기는 하나 같이 깊이 와닿지 못했다. 한국 신화라는 것들이 삶의 깊이를 담기에는 너무 얕다고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 신화들을 깊이 사유할 만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저자가 서술한 대목들만으로는 무엇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해주며 자기서사의 속성과 좌표를 이야기해준다는 말인가 무엇이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찾아보게해준다는 말인가 의문이 드는 신화들이다. 사실 신화들이라기에는 민담의 깊이만도 못하게 얕고 흐린 이야기들로 다가온다. 신화 관련 저작을 읽고 이렇게 얕고 흐리게 다가오기는 처음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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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지음 / 블루리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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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전 [성서의 뿌리 신약편]이 신약성서 내용의 원전을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신화들에서 근거를 찾았던 것에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번에는 신약성서가 불교 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것을 하나하나 불교 경전들에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법화경]이라는 불경에 대해 학술적이며 신앙적 차원에서 해설해주는 내용이다.

 

본서는 [성서의 뿌리]시리즈를 집필하고 나서 [예수와 붓다]라는 책을 집필한 이후 그 둘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간한 책 같은데 [예수와 붓다]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 내용을 근거해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본서에서도 기존의 미트라 신앙,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구약과 신약에 특히 신약의 성립과 카톨릭 성립에 끼친 영향을 재삼 언급하고는 있다. 전작들(성서의 뿌리 시리즈)에서 구체화해 설명한 내용이 그것이었다.

 

다만 본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즈음부터인 기원전 400~300년 즈음부터 불교가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전체에 성행했으며 당시 유럽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미술이 영향을 받으며 조성된 불상들을 이후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해 예수상과 성모상, 성모자상 등이 불상의 영향을 받다 못해 그대로 표절한 사례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이전 시기의 유럽 불상들이 유물로 출토되는 현상은 무엇보다 놀랍고 예수가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다만 본서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말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가 불교 진언인 Arya, Arya, Lama samyak sam bodhi를 예수의 제자들이 곡해하고 자기들 들린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예수의 불제자 시절의 스승이라며 스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위의 주장을 하려면 전거를 제시하고 그 전거가 명백히 믿을만한 사료인지부터 검증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본서를 좀더 신뢰하거나 부정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전작인 [성서의 뿌리] 시리즈와 [예수와 붓다] 그리고 다른 저자분의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라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문제가 있다면 [예수와 붓다]는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는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지경으로 절판되었다는 게 난점 같다. 예수의 불교 수행설이랄까 불제자설이 근거가 있다면 어떤 사료에 의해서인지 어떤 고고학적 근거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절실하지 않나 싶다. 그 책의 저자분은 목영일 님으로 서울대 출신이자 뉴욕대 공학박사 출신이며 국방연구소를 거쳐 UC버클리 초빙교수이자, 유네스코 아태지역 에너지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전국과학기술인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분으로 대툥령표창, 국무총리상, 국방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공학자인 분이다. 그분이 쓰신 책이라 문과적인 창의성보다는 이과적인 사실 근거한 사고를 담은 책이리라는 믿음이 다소 간다. 그래서 구하기 다소 어렵겠지만 나중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본서에서는 삼위일체설, 천사와 악마, 천지창조, 종말, (삼일 만에) 부활, 구세주 탄생과 사명(동정녀에서 태어나, 12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2제자를 이끌고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트라교의 신화를 기독교가 차용하고 있다), 선한 목자라는 표현까지 조로아스터교(미트라교) 교리를 기독교와 유대교가 그대로 표절하였다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한 후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불교 내용을 표절한 것을 나열하는데 이 책에서 각략히 축약한 도표로만도 28가지의 내용 표절이 있다.

 

-수태고지, 아기예수 경배, 신전에서의 12살 예수, 예수 세례, 광야에서 시험에든 예수, 물 위를 걷는 예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빵과 물고기의 기적, 돌아온 탕아, 가난한 과부의 헌금, 간음한 여인, 산상수훈, 유다와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 고향에서의 푸대접, 평등한 사랑, 좋은 열매 나쁜 열매, 세례자 요한, 말세, 거짓 선지자 출현, 유아학살과 도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진정한 보물,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의식주를 걱정말라, 예수의 변용,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깨어있으리라-

 

이렇게 예수의 일화들과 예수의 가르침, 예수가 든 비유 중 대표적으로 28가지에서 각 불교 경전들이 근거가 되었다며 근거가 되는 불경들을 나열하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칼 융이나 분석 심리학자들은 모든 신화에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이미 이전 이야기의 원작자과 이후의 이야기들의 작자 사이에 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현실을 부정한 채 원형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이미 예수 시대 이전에 유럽 전역에 불교는 성행했다는 게 유적과 유물로도 밝혀지고 있으며 예수 당시에는 불교가 상식인 유럽과 중동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예수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불제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억측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신약성서의 내용들이 불교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만한 지적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제가 간과하고 넘어간 대목을 다른 님께서 언급해주셔서 첨가하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장로, 집사, 마귀, 천사라는 표현도 불경에서 표절해간 내용이란 것도 본서의 내용 중 하나이다. 기존의 한문 불경이 빨리어 불경의 내용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용한 용어들이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교 역사 보다도 오래된 불교의 용어들을 아무 꺼리낌없이 표절한 그리스도교의 행태가 어이없기도 하다. 이제는 장로와 집사도 마귀와 천사라는 한자 표현도 천주교와 특히 개신교의 원래 용어인줄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니 이미 언급한 불경을 표절한 내용들까지 보면 이 종교는 표절이 아니고는 성립될 수 없었던 종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반(신약의 근거는 무엇인가)과 후반(법화경 해설)이 명확히 나눠지는 책이니 전반부의 내용은 무신론자든 타종교인이던 비신앙인이던 기독교 신앙인이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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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뿌리 (신약) - 그리스.인도사상과 신약성서
민희식 외 지음 / 블루리본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주께서는 동지가 지난 직후 1225일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는 결혼식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였으며,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성찬 의식 내지는 영성체 의식을 행하였으며, 최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게 신약 성서의 복음서 부분 줄거리를 요약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그리스부터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던 고대 신들의 공통된 줄거리라고 한다. 구약의 시대 유대인들이 고대의 타민족 신들의 이야기를 참조해 자신들의 이야기로 날조한 것을 [성서의 뿌리 구약편]을 보며 알 수 있었는데, 기독교는 그보다 더해 존재 자체가 사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저작이 본서이기도 하다.

 

미트라 신의 일화와 그리스 신화 중 디오니소스 신화, 이집트 신화들이 짜깁기되어있는 것이 신약의 복음서 내용에 다름 아니었다. 예수의 모든 이야기가 타민족 신들의 신화 내용에서 도용한 것이고 예수 생일이 1225일이 아니라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고대 미트라 신을 위시한 일본의 아마테라스 여신까지 태양을 근거한 전 세계 모든 신들의 탄생일이 1225일로 기념된다고 한다. 1222일이 동지인데 동지까지 해가 짧아져서 상징적으로 태양이 죽는 것을 상징하고, 1225일쯤부터 해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서 태양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날이 되기에, 태양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신들의 생일이 1225일이라고 한다. 예수 사후 몇백 년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생일은 16일로 기념되다가 예수가 신격화되기 시작하며 미트라 신의 신화 내용을 도용하여 태양신의 생일까지 뺏어오게 되어 크리스마스가 1225일이 된 것이다. (아직도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는 16일을 예수 탄신일로 기념하고 있다) 미트라 신의 영향은 그 밖에도 적지 않아서 현재도 카톨릭 사제인 교황이 의식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관 같은 모자를 미트라 관이라 부른다. 교황을 Papa, Pape, Pope라고 부르는 것도 미트라 사제를 부르던 호칭에서 유례했다고 하니 기독교의 빼앗고 베끼는 신공 하나는 초절정 고수의 풍격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예수는 부활도 하지 않았다는 게 논리적 사고를 떠나서 사료적으로 복음서가 쓰여지고도 초창기에는 예수 부활의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활 대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며 기록된 바대로라고 주장하는데 그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되는 해당 구절을 구약에서 동정녀 내지는 처녀로 한글 번역을 하는 걸 원문으로 찾아보면 처녀가 아닌 젊은 여자가 임신한다는 내용으로 쓰여있어서 성 경험이 없는 처녀(동정녀)를 뜻하는 원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한마디로 동정녀에게서 (구약 당시의 기준에서) 미래의 구세주가 태어난다고 하는 기록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씨에서 구세주가 난다는 내용도 구약에는 없으며 구약에서는 다윗 자체를 구세주(기름부음 받은 자)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다윗의 씨에서 구세주가 난다고 억지를 부린다 해도 성령 잉태되었다는 예수가 요셉의 계보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크리스천 시대에는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아서 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인간이라고 받아들이던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 중에 왕권의 온전한 강화를 추구하던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종교 중 하나로 공인한 이후) 325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투표로 아리우스파를 제거하고 예수를 신으로 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성서 편찬이 시작되어 예수의 인성을 보여주는 경전들은 외경과 위경으로 몰려 대부분 소각해 버리고 신약 성서를 첨삭하고 변개해 지정했으며 그 외의 경전들은 지금 일부만 남아있다.

 

이 신약의 첨삭과 변개는 대대적으로 일어나 히브리 성서와 랍비들의 문헌, 타 종교의 신화들을 짜깁기해 예수의 복음서와 그 외 신약 성서의 내용을 만든 것이다. 애초에도 처음 쓰여질 때부터 이런 짜깁기로 완성된 것이 신약이라는 것이다. 마태는 특히나 소설가적인 창의성과 표절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그가 날조한 대목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상수훈과 예수의 계보까지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날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비교종교학자 등 전문학자들은 기독교를 뻐꾸기 종교라 부른다고 하는데 뻐꾸기가 다른 종의 새의 둥지에 알을 몰래 낳고 가면 그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숙주가 되는 새의 알과 다른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모두 몰아내서 떨어뜨려 죽여버린 후 먹이를 독점하는 생태를 빗대어 기독교를 비판하는 말이다.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타종교의 신화들을 훔쳤고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요셉의 계보도 조작했으며 (그 계보는 구약의 기록과 맞지 않는 것은 물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상충한다) 산상수훈부터 예수의 가르침 전반이 기존 유대교의 기록들과 탈무드를 변개한 내용일 뿐이다. 신약의 내용들 전반인 서간문들에서의 구약 인용도,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예수를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기존 히브리 성서의 내용과 탈무드 등 히브리의 지혜를 변조해서 날조하고 있다고 하는데 유대교 랍비들은 그래서 유대교의 지혜를 도둑 맞았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무엇보다 다윗 왕과 바사의 고레스(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를 구세주로 칭송하는 내용들을, 교묘히 편집하고 조작해 예수에게 대입하며 예수를 신격화하고 있고, 유일신의 독생자를 참칭하고 있어서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평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도 성령 잉태했다는 설을 말도 안 되게 보고 있는데 같은 원류인 유대교, 이슬람 모두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바는 여호와 신에게 아들을 따로 낳을 이유도 낳을 필요도 없으며 유일신이 굳이 성령 잉태를 왜 하게 하겠냐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예수 시대에도 예수가 혼외정사로 태어났다는 것은 상식이었으며, 그로 인해 예수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건 신약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빌라도가 예수를 살리려 도둑놈과 예수 중 누구를 살려주랴하는 물음에 유대인들은 모두 예수가 아닌 도둑놈을 살려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예수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저자들은 예수 시대에 예수가 보였다는 기적들이 실제 했다면 당시 로마나 이집트, 근동 여러 나라에 기록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성서의 주장을 근거 없다고 한다. 또한 예수가 탄생한 당시의 예수 탄생 시 유아 살해 등과 그로 인한 예수의 이동 경로 등이 마태와 누가 두 기록에서 모두 다르며 마태만이 유일하게 예수 탄생 직후의 헤롯 왕의 유아 살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와 마태 두 기록에서의 예수 탄생 시기는 (당시 역사 문헌들을 근거하면) 12년의 차이가 난다. 예수 사후 그리 긴 세월이 아닌 초창기에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신앙하고 기록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수의 탄생 시기가 다른 것이다. 누가는 예수 탄생 직후 헤롯왕의 유아 살해를 기록하고 있지도 않고 누가복음에서는 헤롯왕 시절에 예수가 태어난 것도 아니다. 역사 문헌상으로는 헤롯왕 시절에는 유대인을 위한 제도들이 많았으며 오히려 유대인들의 눈치를 많이 보던 왕이었다고 한다. 또한 동방박사 이야기도 마태와 누가 중 한 사람은 기록하고 다른 한 사람의 기록에는 등장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 방대한 살육이 있었고 예수의 부모가 그를 피해 피신할 정도의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또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수의 특별함을 지지하는 내용인데 기록자 중 한 명은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기록이 다를까 하는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본서를 보면 마리아의 성령 잉태, 예수의 출생, 출생 이후의 기록, 공생활 중의 기록, 사후 부활의 기록 등 무엇 하나 날조가 아닌 것이 없으며 예수가 과연 실존했는지도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 했더라도 문맹률이 높고 지역 간 이동에 한계가 크던 (문맹이자 지역적 문화적 한계를 안고 있는) 당시 사람들을 통제하고 홀리기 위해 날조한 내용이 더 많다는 감상이 인다. 이런 대중 통제의 의도는 초기에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기독교가 공인 된 이후에는 왕권 강화뿐 아니라 교황과 사제들의 권한 강화를 위해 더해졌으며, 시대를 거쳐 대중 통제의 효과를 실감하던 위정자들의 의도와 목적을 통해 기독교는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학자들이 종교학과 역사학과 고고학, 인류학 등 총체적인 연구와 추적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막가파식 종교의 횡행이 막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이 시대에 상식을 가진 누가 성령 잉태를 믿을까, 신의 화현과 신의 아들에 등장과 재림을 믿을까 싶지만, 아직도 인간은 미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혹세무민과 범죄 행각들은 그쳐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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