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 지도를 펼치면 성공의 길이 열린다
댄 스미스 지음, 김이재 옮김 / 청아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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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말하는 지도력(地圖力)이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실감하게 되는 저작이다. 여러 주제와 사안들을 중점으로 지도와 도표를 제시하고 있는 본서를 통해 많은 사고를 해보게 하는 필요와 유용함이 남다른 저작이라는 감상이 든다. 

 

[우리는 누구인가] 장에서 현재의 기대수명을 지도로 보며 다시 도시화에 대한 지도와 연계해 보자니 팬데믹으로 사회적 불안정성이 높아진 이때, 다시 말해 감염과 부작용, 사망률이 상승하는 이때 인구가 도시로만 밀집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되었다. 실제 인구밀도만큼이나 감염재생산지수도 수도권 지역과 거대 도시들에서 밀도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확진자 숫자 만큼이나 사망자 숫자도 그렇게 높다고 알고 있다.

 

도시화라는 것이 편리에 의해 여러 목적에 의해 추구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재택근무 비중이 높아지며 딱히 감염 위험도 높은 도시 거주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각성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완전 재택근무 비중이 높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미국 등 서구 국가들에서는 탈도시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재택근무로 출퇴근의 편리를 위해 굳이 도시에 거주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이유인데 사실 도시 거주는 감염 가능성도 높여줄 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기대 수명이 높아진데 대한 지도는 이 저작의 대다수 자료가 2017년까지나 2019년까지의 정보로 한정되어 있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2022년 현재 내지는 이 팬데믹이 끝난 이후의 자료로 다음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세계 각국의 기대 수명은 아마도 한층 감소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계획한대로 다음 팬데믹이 등장하는 이후에는 더더욱 가열차게 기대수명은 감소할 것이다.

 

본서의 도표로는 '2020년 전 세계 도시 인구는 43억 7,900만 명'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로는 도시화는 편리와 목적이라는 필요에 의해 거듭거듭 갱신되어 왔다. '1950년의 전 세계 도시 인구는 7억 5,10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인구 증가률을 감안하더라도 2020년까지 상당한 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재택근무나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이직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리랜서 업무가 일반화되면 더이상 취업자들에게 감염 가능성이 더 높은 도시생활이 불필요해질 것이다. 그런 위험을 굳이 떠안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향후에는 탈도시화가 상당한 규모로 일반화될 것이 아닌가 싶다. 탈도시화가 이뤄진다면 대도시들의 부동산가는 당연 하향할 것이다.

 

[부와 빈곤]의 장에서는 부의 분배를 묻는 각국의 Gini계수나 각국의 인간개발지수(HDI)를 각국 국민총소득(GNI) 수준과 비교해 볼 기회도 나쁘지 않았다. 초국적 기업들(월마트 수익:5천억 달러, 보잉의 수잉:930억 달러, 메타의 수익:410억 달러, 맥도날드의 수익:230억 달러)의 수익과 각국의 GNI를 비교해 주는 지도나 JP모건 체이스의 연간 수익(1,314억 달러)과 비교한 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각국 부패지수 이후 지하경제규모와 파나마 및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의 조세 회피 데이터가 유출된 경로를 밝히고 그 데이터에 근거한 각국의 조세회피 실체와 그로 인한 각국의 대응들을 지도로 보는 것도 상당히 유익한 정보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보는 급증하는 계층 격차를 도표와 그래프 그것도 국가간 양상만을 비교한 정보로 "아! 이렇구나."에서 그치게 만드는 효과가 더 크지 않나 싶다. 물론 [소수의 부유층] 장에서 '2,153명의 억만장자의 총자산이 8조 7천억 달러'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것도 2019년의 자료일 뿐이다. 조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인용한 2021년 4월 [포브스]지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19로 미국인 2000만명이 직업을 잃었을 때 개인자산 10억달러가 넘는 미국 억만장자 고작 650명의 전체 자산은 1조 달러 늘어났다고 한다. 그들의 총자산은 4조 달러가 넘는다고 의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 중에 발언했다. 실제 데이터로도 이들 650명의 자산은 2020년 1월1일 주식시장 개장 당시 가치는 3조4000억 달러였는데 2021년 4월 28일 주식 시장이 마감할 때는 전체 자산 가치가 4조 6000억 달러였다고 한다.] 2022년 현재 미국의 650명의 총자산 규모가 얼마일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팬데믹에 배팅해 백신개발에 투자했으며 그로 인한 수익은 쉽게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와 각국 수반, 그리고 각국 정재계인사들이 팬데믹이 오기 불과 2달 전에 팬데믹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는 것과 빌&멀린다 재단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도 후원하고 있었음은 이미 [플랜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그 저작에서도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이 음모론이었다면 반론이 나왔을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슈가 되는 영화이자 저작임에도 누구 하나 오류를 밝히지 못했다. 

 

세계의 부패와 부의 축적은 어떤 식으로든 격차를 확장하고 일부에서는 죽음을 불러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정보에 민감하고 민활하게 대응해야 한다. 본서에서는 [권리와 존중]의 장에서 범죄자, 아동, 여성, 성소수자, 소수자의 인권 등을 다루고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각국의 정보를 거시적으로 돌아보는 정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좀더 상세한 정보는 각자가 더 확장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정보들이 보다 나아지는 세계로 가기위해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알려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살아남아야 세상도 바뀐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십억 명의 대대적인 인구 감소가 이뤄진 직후라면 그때 부패니 빈곤과 부니 차별이니 하는 문제들이 더이상 무슨 논란꺼리가 되겠나 싶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변동사항이 있다하더라도 지속되는 바가 있어야 변화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종교들이 종말이라거나 개벽이라거나 하면서 이 학살의 시기를 자기들의 종교교리에 따른 해석으로 호도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 종교의 창시자들도 바라지 않는 바일 것이다. 특정 세력이 의도를 가지고 인구감소를 추진하는 것을 그저 시대의 흐름으로 종교적인 특정시기가 다가온 것만으로 치부하게 대중을 선동한다는 건 대응의 방법을 차단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말이다.

 

[전쟁과 평화] 장은 21세기의 전쟁을 지도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2018년까지의 기록이지만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등에서의 전쟁들이 다시 급증하는 추세임은 명백하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인 위상으로 볼 때 이 지역의 문제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안으로 확대되는 상황은 언제와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본서에서 도표와 사진으로 보여주는 각국의 군비증강 사례나 전쟁 사망자 수, 난민 수 등도 주목하게 되는 바다. 게다가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핵을 사용할 시기가 언제일까도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원유, 원자재 등으로 각국의 공급망 문제를 불러일으켜 생산과 무역에 차질을 불러와 경제에 총체적인 문제를 일으키는데다 두 곡창지대의 전쟁으로 식량문제 마저 불러와 달리 말할 것도 없는 대재난의 시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화가 30년을 이어온 지금, 전쟁이 결코 전쟁지역만의 참상에서 끝나는 사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왜 하필 대중들이 대감염병과 그에 대한 백신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주목할 때 즈음 전쟁이 터졌을까? 그리고 왜 서구 사회는 이 전쟁을 지속하려 열의를 보일까? 아마도 이 이후 기다리는 것은 그레이트 리셋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응안은 무엇일까? 인류가 보다 아프지 않고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와 변화에 대한 정보들을 흘려듣지 못하겠는데 그런 때 출간된 이 책도 나름의 역할을 해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지금을 바로 아는 기회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외의 내용이라면 [인류의 건강] 장에 있는 팬데믹, 영양실조, 비만, 흡연,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신건강, 물과 위생, 병에 걸린 사람들의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 영양실조와 비만에 대한 데이터가 인상적이었다. 영양실조와 비만은 영양이라는 문제에 앞서 분명한 분배의 문제가 선행한다고 생각한다. 장 지글러의 저작들을 보면 고기를 위해 사육되는 소와 돼지들에게 초대량의 곡물이 투입되고 있고 버려지는 음식쓰레기의 양이 측량키도 버거울 지경이지만 지구의 한 켠에서는 굶주리고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본서에서는 지구의 인구가 날로 증가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2005년 15% 였던 영양부족 상태인 사람들의 비율이 2015년부터 11%로 소폭 하락해서 2018년까지 줄곧 11%인 상황이다. 이것은 엄연한 분배의 문제이다. 부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치중하여 축적되는 상황하에 부가 편중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날로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 나라 그 민족 그 사람들이 국가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경제 운영을 못해 그 나라 사람들이 그런 것에 무슨 공감과 연민이 필요할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가 치중되는 나라에서 태어난 이들과 굶주리는 그 나라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라면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느냐는 차이가 유일한 것이 아닐까? 단지 이러한 운명적인 하나만으로 누군가는 영양과다가 되고 누군가는 영양결핍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는 타파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국가와 세계의 운영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부라는 것이 선순환되는 기조로 말이다. 고작 몇 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거의 대부분의 부가 치중되는 구조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마지막 장인 [지구의 건강] 장이 있는데 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인류의 수자원 문제를 짚어본데는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기후변화, 녹색지구 만들기에 대한 논조에 다소의 이견이 있다. 지금의 환경문제, 기후변화문제는 노선이 정해져버렸으며 그것이 과학계에서도 주류가 되어버렸지만 한 편으로는 기후변화는 지구적 차원의 주기를 두고 일어나는 변화이지 인간의 탄소배출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과학계의 연구 결과들도 있다. 처음에는 이 둘이 첨예한 대립을 했었지만 전 지구적인 대응책 마련이 세계를 블럭화하고 층차를 두고 각국의 개발을 제재하기 쉬운 현재의 체제로 확립되고 말았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에게 달려있고 스스로 하기 나름이라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주류적 관점에 익숙해 있어 기후변화도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더 받아들이기 쉽고 마음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와 변화를 거시적으로 연구하는 과학분야들에서는 지구의 기후는 다른 주기로 접어들어서이지 인간이 영향을 주어서도 아니고 인간이 영향을 줄 수 있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본서의 내용처럼 1950년대 부터 인간의 탄소배출이 거세지고 지구의 변화를 인간이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한 건 그러한 주기는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반복되어오는 여러 주기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기설을 무시하고 기후문제를 가장 뜨거운 이슈로 자리매김한 것은 탄소배출권이라는 주제로 개발항로인 국가들을 제한하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무엇보다 타당하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학자들이라면 각자의 연구를 공정하게 발표하고 경쟁하면 될텐데 다수의 경제계는 탄소배출이 기후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연구에 압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생산과 연구개발에 악영향을 주는 이론인데도 말이다. 이는 거대한 계획의 일부로 기후변화 문제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시도되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들의 항로는 그레이트 리셋을 향하고 있다. 기존의 체제와 체계들을 모조리 무無로 되돌려버리고서야 맞이할 수 있는 시대를 향한 걸음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들은 냄비 안의 가재가 산채로 조용히 익어가듯 별다른 문제제기도 없이 그렇게 그레이트 리셋 이후, 뇌 임플란트를 이식해서 뇌를 기계와 연동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중앙컴퓨터(AI가 탑재된 양자컴퓨터)에 제어 당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제기들은 마치 음모론의 우스운 털 하나처럼 우스며 지나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귀 하나하나가 이러한 결론을 가르키고 있다. 인간이 가축이 되는 시대를 말이다. 

 

[지금 세계]라는 본서는 결코 음모론과는 1도 관계가 없는 저작이다. 그럼에도 어느 관점으로도 정보는 해석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기에 좋을 만한 이런 리뷰를 써보았다. 이 리뷰에서 언급한 정보들은 본서가 보여주는 숱한 정보들에 일부의 일부도 안되는 것들이다. 이 시대를 말하는 정보들을 둘러보고 다시 그 정보 위에 새로이 접수되는 정보들을 쌓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진실이 덮히고 있는 가당치도 않는 일들이 많았다. 미국 정부에서는 조지오웰의 [1984]에서와 같은 '진실부'라는 부서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시대를 만만히 보다가는 시대에 당하고 말 것이다. 시대를 바로 보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 세계]를 바로 본다해서 반드시 미래를 예비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을 알아야, 지금 이 순간을 바로 딛고 서야, 이 순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를 논하는 저작들에는 관심이 절실히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금 이 시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라면 몇 번이고 거듭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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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 - 대규모 이슬람 이민이 바꿔 놓은 유럽의 현재와 미래
유해석 지음 / 실레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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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이슬람의 폐해나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본서는 그 시절에 제가 가진 많은 의문, 생각들과 비슷한 논조로 유럽과 이슬람의 문제에 주목하는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읽고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깊이 듭니다.

 

본서를 아직 다 읽기 전입니다. 전체 6부의 내용 중 4부까지를 읽었습니다. 책을 완독하기 전에 리뷰부터 작성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인상 깊은 자료들, 저자의 인용문장인 정보들을 기록해 두려 리뷰를 작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용하고 싶은 자료들과 정보들이 너무 너무 많다보니 어찌 리뷰에 옮길지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래서 4부까지의 저자의 논리와 주장을 따라가다가 핵심 안건이다 싶은 몇몇 문장만을 인용하려 합니다. 요즘 들어 긴 문장은 도통 써내려가거나 인용할 엄두를 못내겠습니다. 일종의 번아웃 상태인가 싶기도 합니다.^^;

 

1부 유럽의 이슬람 인구 성장 배경
1. 유럽과 문명의 충돌
2. 유럽의 노동력 부족
3. 유럽의 저출산
4. 유럽의 고령화 사회

2부 유럽 이슬람의 성장 원인
1. 무슬림의 이민
2. 무슬림들의 다산
3. 무슬림의 결혼 제도
4. 현지인들의 무슬림으로의 개종
5. 무슬림 난민들

3부 서유럽과 북유럽의 이슬람
1. 영국의 이슬람
2. 프랑스의 이슬람
3. 독일의 이슬람
4. 네덜란드의 이슬람
5. 스웨덴의 이슬람
6. 노르웨이의 이슬람
7. 덴마크의 이슬람

4부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의 배경
1. 무슬림에 의한 테러
2. 무슬림에 의한 성폭력
3. 폭력적인 범죄
4. 마약의 만연

5부 유럽 이슬람 인구 증가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


6부 다문화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정부의 역할
 

제가 읽은 4부까지의 소제목들은 리뷰에서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되게 복붙했습니다.

 

본서는 이슬람의 폐해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주제는 유럽에서 야기되는 이슬람과의 충돌입니다.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오랜 숙적이었다가 근래 들어 그 관계가 완화되기는 했습니다만 이제는 다른 세기의 다른 문제들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저 문화 차이만이 있겠지 또는 언젠가 유럽 문화에 귀속될 한시적인 소요일뿐이겠지라고 우습게 여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성찰하게 만드는 저작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본서의 1부의 주제와 소제목들을 봐도 유럽에서 이슬람 인구가 유입된 것은 유럽의 고령화 문제와 저출산,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노동인구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노동인구의 유입과 이민으로 유럽 각국은 노동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을 받아들인 이후 이들 문명의 다산문화와 본국에서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는 문화, 그 가족들과의 결합을 위해 2차 3차 이민이 진행되었고 유럽에서의 무슬림들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기존의 유럽 각국 원거주민들의 문화와 전통이 유지하기에도 벅찬 1차적인 문제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기존의 유럽의 법을 무시하고 무슬림의 법률인 샤리아를 근거해, 기존 유럽 각국의 법의 울타리가 해체됨을 유럽인들은 경험해야 했습니다.

 

종교가 그저 신앙의 대상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지켜야 할 불문률인 무슬림들에게는 유럽은 자기들의 종교와 제도로 변모시켜야 하는 대상이기만 했습니다. 기존의 기독교나 불교에서는 융화의 여지가 있고 화합을 도모할 틈이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이슬람은 생활의 하나하나까지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 아닌 제도이자 율법입니다. 무슬림 여성은 타종교를 믿는 이와 결혼할 수 없으나 무슬림 남성은 종교와 인종에 관계 없이 어느 여성과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피임을 영적 타락이나 훼손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구 증가는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유럽 각국마다 인구 증감율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본서에서 예를 드는 유럽 각국의 경우를 취합해 보면 무슬림의 출생율은 2.3명, 기독교인들의 출생율은 1.3명, 무신론자들의 출생율은 0.8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유럽 원거주민들의 경우 결혼제도 자체를 점점 더 거부하는 추세다 보니 이러한 출생율 문제는 앞으로 보다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기도 합니다. 

 

: 예를 들어서 어떤 사회가 1.8명의 총 출산 인구를 유지한다면 한 세기가 끝난 무렵 인구는 80%만 남게 된다. 1.3명의 총 출산율을 유지하는 사회(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그리고 발트해 국가들)는 4분의 1의 인구만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 

 

(여기서 출산율이 0.8명인 한국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본서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유럽의 문제만을 보자해도 인구문제에 있어 유럽 원거주민과 무슬림들의 심각한 인구 역전 현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 통계에 의하면 독일 여성의 24~30%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밝혔다. :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에서 가장 출생율이 높은 나라인 프랑스의 경우 총 출생율이 1.8명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수치는 출생율이 매우 낮은 프랑스 원거주민 여성과 출생율이 매우 높은 이민자 여성을 합한 수치라고 하는군요.

 

인구문제는 점차 무슬림이 유럽인구의 다수를 차지해 유럽이 서부의 이슬람이 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유럽 지식인들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민 문제도 유럽의 이슬람화를 가속시키고 있는데 '2017년까지 독일에 약 141만 명, 프랑스에 40만 명, 이탈리아에 35만 명, 스웨덴에 33만 명, 오스트리아에 17만 명의 난민들이 정착하였다.' 고 합니다. 

 

: 퓨 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내 불법 이민자는 2014년 300~370만 명, 2015년 330~490만 명, 2016년 410~53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

 

유럽 각국에서 수용하는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제외하고도 불법 이민자들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난민 인정을 못받을 불법 체류자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 불법 체류자의 70%는 독일과 영국 이민자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독일에 사는 불법 체류자는 2017년 기준 100~120만 명으로 유럽 국가 중 1위를 차지 하였다. 영국에는 80~120만 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 :

 

이러한 난민 문제 불법 체류자 문제에 있어 같은 이슬람의 부호 국가들은 도대체 왜 손을 놓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오만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은 단 한 명의 시리아 난민도 받지 않았다. :

 

2015년 9월 경 3살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터키 해변에 밀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럽의 많은 국민들이 이 난민 아기에게 가련함을 느꼈고 유럽이 다시 난민문제에 관대해 지는 계기가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쿠웨이트 공무원 파하드 알 살라미가 '프랑스 24시'와의 인터뷰에서 걸프 국가들이 시리아 난민의 망명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하는 데 아주 가관입니다. '쿠웨이트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의 물가가 비싸서 근로자들에게는 적합하지만 난민들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는군요. 

 

: 2015년 위기의 절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살만 국왕은 단 한명의 난민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대신 독일에 새로운 이민자를 위하여 새로운 모스크를 지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

 

어떤 사람들은 꾸란의 예외적인 단 몇 구절만을 들어 이슬람이 관용적이고 연민어린 종교이자 문화라고 호도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런 일화들을 알게 되니, 자신들 문명권의 재난에도 그것을 공감하고 함께 감당하기 보다 타 문명에 짐을 전가 시키는 놀랄울 정도로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문화가 이슬람의 본모습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만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 사태에 39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을 걸프국들에게 수용해 달라고 했다면 그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어쨋건 이렇게 유입된 무슬림들이 유럽에 잘 동화하고 화합하였다면 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을 이야기 하는 이런 저작 자체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입된 난민들의 문제는 폭력과 테러와 성폭력으로 유럽 각국의 치안 체계마저 동요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안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너무도 세세하고 방대해서 저는 도무지 인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2014년 2015년의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있던데 그런데도 이렇게나 방대한 범죄 기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각국에서 무슬림들로 인한 유럽 원거주민 여성들에 대한 강간 사례가 늘고 있으며 적반하장 격으로 무슬림 남성이 너무 많다는 발언에 마저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 각국의 각 지역 도시와 소도시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곳은 여성들의 차림이 범죄를 불러온다며 여성의 옷차림을 단속하고 혼자다니지 말라는 것이 그곳 경찰들의 범죄에 대한 대응이라고 합니다. 강간범이 무슬림이라는 통계를 내놓거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맹폭격을 해대기 때문에 사회에서 강간과 무슬림을 연결한 발언 자체를 할 수 없다고 하네요. 

 

그 중 스웨덴이 서구 사회에서 가장 강간 범죄율이 높은 지역인데 스웨덴 범죄 예방 담당국 BRA은 2012년 여름 한달 만에 총 1,091건의 강간 사건이 보고되었다고 팔표 했으며 15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하는 강간 범죄는 같은 기간 53%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웨덴의 강간 범죄율은 2017년이 되면서 10% 더 늘었다고 합니다.

 

유럽의 타 지역들도 이런 추세가 하루가 갈수록 더 높아간다고 하는군요. 강간 범죄는 무슬림들이 일으키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발생빈도는 이민자들과 이민 2세 3세가 주로 거주하는 지역들에서 나타나는데도 이런 사안을 언급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기에 전혀 공론화하지도 사적으로도 언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왜 여성들을 강간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이들은 거리낌없이 무슬림 여성이 아니라서 강간했다고 답변했다는데도 말입니다.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각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를 막는다는 게 옳은 일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문화의 차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제 해결의 여지를 거세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접근인 것일까요?

 

각종 테러와 마약 등의 중범죄에 무슬림들이 연루되는 것은 그들이 연루되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각 지역에서 인구의 몇 %밖에 차지 하지 않으면서 유럽 각국마다 전체 감옥 수감자의 50~70%를 차지 하거나(프랑스 감옥 수감자 중 무슬림은 약 50%를 차지하며, 특히 교외 감옥에는 무슬림 수감자가 80%에 육박하기도 한다는군요. 2002년에 한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02년 이미 프랑스의 범죄율은 10만명당 4,244건으로 그 당시 이미 미국 범죄율을 능가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복지 비용의 40~60% 소진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일간지 [질란트 포스텐]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에게 복지예산의 40%가 지출되며 코펜하겐의 모든 범죄의 70%를 무슬림이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유럽에서는 이런 문제제기만으로도 인종차별주의로 낙인 찍혀 오히려 맹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왜 이런 부조리가 만연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미 1960년대 부터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왔고 그들로 인한 사회문제가 차츰 문제시 되었을텐데 왜 급격한 난민 수용까지 하여 문제가 증폭되도록 관망했을까요? 이에 대해 서구의 연구자들은 이민자 수용은 노동력을 충원하여 유럽경제를 부양할 것이라며 장밋빛 해답을 제시하여 왔습니다. 고작 얼마후면 AI와 로봇기술로 인해 노동력 50%를 대체할 시기를 앞두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현재입니다. 2015년에도 미래학자들은 이런 시대가 이렇게 조만간은 아니더라도 근미래에는 등장하리라 예측하였을텐데, 왜 난민수용이라는 과도한 무리수를 유럽 각국은 선택했을까요? 

 

저는 이것이 의도된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난민 수용으로 인한 테러 위협과 치안 불안을 불러와 대중이 기꺼이 대중통제를 자발적으로 요구하도록 하려는 한 수였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불안과 위협 속에서 자발적인 통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회는 그런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대중통제 시대에 대해 예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여러 지성들이 있지만 저로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해결안이라고 생각되는 제안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혁명이나 저항이라느니 소규모 집단 사회로의 회귀라는니 하는 해법들이 이 시대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 같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발전한 테크놀로지에 의지한 직접민주정치 시대로의 진입이라는 기대어린 해결안을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진정한 해답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초고속 결속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디스커넥트의 시대이기도 한 현재, 게다가 분열이 화두인 시대이기에 지금까지의 대안들과는 혁신적이면서 획기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적 시대를 풀어나갈 방법이 안보이기에 난감합니다. 

 

어쨋건 분명한 건 유럽이 실패하고 포기한 다문화라는 과제가 이제 한국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구감소를 불안해 하며 다문화를 부추기는 지금 이 시대는 오히려 인구가 간소해야 풀어나갈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량실업자의 시대에 인구란 것은 오히려 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인구는 결국 분열과 충돌을 극대화 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을 보고 우리는 느끼고 대비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본서는 더더욱 일독은 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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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심리학 - 누가 권력을 쥐고, 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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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치를 근거할 때 정치인이란 국민이 세운 대리인일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집권자들은 권력을 향유하다 말년을 수형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행보만을 보여왔습니다. 아무리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 한다해도 권력의 정점이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기만 한 것은 아닐텐데, 그들 역시 초심은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있었을텐데, 왜 한결 같이 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본서는 행동경제학, 신경학, 정치학, 심리학의 연구와 성과를 아울러 보며 권력의 본질과 변질을 관찰하고 숙고하는 통찰이 담긴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을 , 정치인과 유권자들 누구에게나 절실했던 저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반드시 부패하고 마는 것이 권력자의 말로인가를 돌아보고 어떻게 권력남용과 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정치인을 선택할 것인를 결단하게 해주는 저작이 아닌가 합니다. 대선이 얼마남지 않은 이 시점에 꼭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시절에만 주목 받고 말 한 철을 논하는 저작도 아니기에 대선시기와 대선 이후 어느 때라도 누구나가 필독할 만한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저작을 감히 정의하자면 권력남용과 부패의 양상은 어떠한가로 시작해 그러한 부패한 권력자는 타고나는 것인가 시스템의 오류로 양산되는 것인가를 규명하고자 하며 더나아가 부패한 권력자를 양산하는 과정을 단절할 시스템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권력자들과 권력남용과 부패의 사례들 그리고 권력의 양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과정과 성과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가 과제라며 권하고 있는 부패를 척결내지는 차단할 수 있을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예시들이 있습니다. 저자의 발로 뛰며 숙고한 노력에 미안하게도 그 모든 사례를 리뷰에서 다 언급한다거나 일부만을 언급하려 한다해도 방대한 규모입니다. 그래서 미흡한 이 리뷰에서는 아주 인상 깊은 사례를 작게 소개하고 말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서문에서 언급된 162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바타비아호의 표류로 인한 권력이 이상징후의 양상을 보일 때를 예시한 경우와 본문에서의 20세기 라즈니쉬의 미국 영적 수행집단 내에서 일어났던 대중 위협과 독살의 경우 그리고 현재의 미국 거의 전 지역 경찰집단이 장갑차나 탱크 등과 대량살상 중화기 등을 보유한 이후의 민간인 사살 급증 등은 너무도 인상 깊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타비아호는 너무도 일반적인, 권력이 부정적 영향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 같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왕권에서나 일상적이었고 근현대사에 이르러서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쏠리니가 대중의 뇌리에 인상깊게 남았을 것이며 현대에서도 제3국가들의 독재자들의 사례와 현재의 태국 문제로도 대중은 충분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사안입니다. 하지만 바타비아호 사건이 더 상징적인 것은 이는 국가가 주도한 사건이거나 전쟁 범죄에서의 권력 사안이 아니라 사조직에서의 권력 남용과 부패의 문제이기 때문일 겁니다. 단지 난파되어 섬에 표류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권력 체계로서 살상과 부패가 드러난 사안이기 때문에 권력의 남용과 부패라는 것이 인간의 뿌리 깊은 지병과도 같다는 것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 저작에서는 원숭이와 같은 동물들을 통한 권력 문제를 연구한 사례도 제시하기 때문에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내 생물체 대부분의 문제인 것도 분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국가 등 절대적인 권력을 위임하는 체계가 아닌 경우에도 권력의 남용과 부패는 넘치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도 있습니다. 영적 수행집단인 라즈니쉬의 수행단체가 미국 한 지역에 터를 잡을 때도 그 지역 거주민들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강점임을 자각하자 지역 거주민들의 권익은 무시하고 지역 이름을 바꾸고 해당 지역으로 들어서는 팻말을 자신들의 집단명으로 바꾸고서 그 지역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행집단의 신도들의 노동력을 자원을 빙자한 착취를 하며 건물과 단체를 조성하고 집단 내에 총기 무장세력까지 갖추었다고 하네요. 방대한 규모의 집단이었기 때문에 입수되는 금액도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각종 비행기들을 몇 대나 사들였다고도 하는데 이런 문제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집단이 그들에게 반발하는 그 지역 주민들을 압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살하기까지 했던 사건이 역사에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몇 차례나 독살을 했고 또 시도하고 그 지역 상수도 시설에 독을 풀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합니다. 그들 집단에 경찰이 들이 닥쳐 압수한 도서 중에는 살인하는 법, 독살하는 법, 완전범죄를 하는 법 등의 제목을 지닌 책들도 입수되었다고 하네요. 오쇼는 그의 사후 지금까지도 그를 추종하는 집단과 개인들이 즐비한 영적 스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행집단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건을 저자가 말하듯 단 한 명의 여성신도가 2인자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으로 단정짓는 것도 문제가 있을 듯 합니다. 사이코패스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에게 실험했다는 공정성을 인식하고 재분배하는 연구는 4살만 되어도 아이들이 함께 풀어나가는 과제에 대해서는 공정함을 인식하고 이익을 재분배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공정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맞고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추구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도 중요할 겁니다. 인도에서 한 실험으로는 자기에게 이익이 더 돌아가도록 속임수를 쓰는 사람일 수록 공직자를 선호하고 지망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같은 실험을 덴마크에서 하자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 공직자를 선호하지도 지망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인도의 공직은 부패와 비리가 많고 덴마크의 공직은 투명하게 일 처리를 하기 때문에 부패의 여지가 적다는 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고 부패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익을 가장 쉽게 취득할 자리를 찾기 마련입니다. 부패의 고리는 그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공직이 투명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고 공직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국가에서는 그만큼 부패와 비리가 적은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에서는 과거 UN 외교관들에게 면책 특권의 일환으로 불법주차에 대한 과태료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7년 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 미납된 UN외교관 차량에 발급된 주차딱지는 15만 회에 달했고 그건 하루당 80회 이상이라는 것이며 누적된 미납 과태료는 무려 1,800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2002년이 되어 뉴욕 시장 마이크 블룸버그가 여기에 제재를 가하기로 하고 과태료 미납이 3회 이상인 경우 외교관 차량의 외교관 번호판을 취소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한 달에 30개국의 면책 번호판을 빼앗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시스템이 변화하자 원래부터 주차위반을 하지 않던 원칙주의 국가들 외에도 주차위반 건수가 외교관 한 명당 평균 250회 남짓 주차위반을 하던 쿠웨이트도 0.15회로 줄었으며, 이집트는 141회에서 0.33회로 차드는 126회에서 0회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걸 권력의 남용이나 부패 문제와 완벽히 동일할 것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일말의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시스템이 변하면 부정도 감소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반대의 경우 중 권력남용 그 중 폭압의 경우를 보자면 미국 경찰 전체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돌보기 위해 무기교체를 해야하자 남는 중화기들을 각 지역 경찰집단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대 늪지도 수심 깊은 강도 없는 시골 마을에 수륙양용 장갑차가, 소규모 도시에 탱크가, 각지에 대량살상 중화기들이 미 전역에 배치되었습니다. 기존에도 민간인 살상 비율이 높던 미국인데 이런 대량살상 무기들이 지원된 이후에는 민간인에 대한 사살비율이 현격히 높아졌다고 하네요. 일반인들도 이런 체제하에서라면 경찰을 지원하는 것이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거나 길 잃은 치매 할머니의 집을 찾아주는 업무를 하려고 지원하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더욱이 미국인 중 군 복무비율은 6%인데 반해 미국 경찰관 중 군복무 경력자는 19%라고 합니다. 알래스카주 같은 경우에는 경찰지원자가 없어 경찰관 거의 대다수가 전과자인 상황이라고 까지 하네요. (군 경력자가 전시작전 지역에서의 적군을 대하던 방식으로 민간인을 제압한다던가 가정 폭력이나 강간 이력이 있는 이들이 가정 폭력에 대응하거나 강간 사건 현장에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한국처럼 현장 업무 능력치가 0%인 여경들을 현장에 배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강간현장에 강간범이었던 자를 경찰이라고 보내는 경우는 문제의 심각성이 한국만큼이나 심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스템의 문제를 극복 못할 부조리로 방치한다면 특히나 권력자가 폭압하는 상태를 조성하거나 방치한다면 그것은 결코 개인 도덕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독자들이 갖추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문제있는 개인은 공직에서 배격하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공직이나 권력에 지망하지 않을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과제들은 이러한 의식을 해결안으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짚자면 문제 있는 개인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나 그런 이들이 권력을 선호하도록 만드는 시스템도 문제이지만 그런 이들을 선호하는 유권자랄까 선호자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사례이지만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자 보다는 남자, 유색인종 보다는 백인을 지도자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알았지만 본서가 든 근거처럼 극명할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자대통령이 있었고 미국에서도 흑인대통령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사이례로 미국에서는 흑인대통령이 그 한 사람이었고 한국에서도 그녀 한 사람만이 여자 대통령이었습니다. 인물이 없는 것도 맞겠지만 이런 경향성을 띤다면 어떤 흑인이 정치지도자가 되고자 맹렬히 노력할 것이며 어떤 여성정치인이 자신이 대권에 도전하리라 기대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중심리의 이상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모르는 외국의 정치인 두명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누가 공직자로 어울리는지를 묻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지목한 사람은 외국의 대선에서 승리한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뽑지 않은 사람은 대선에서 2위를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 이야기는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증거하는 사례일까요? 역대 미국 대통령은 모두 키가 컸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더 키가 큰 후보를 밀어내고 승리한 후보가 드물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백인이고 남성이고 키가 더 크고 더 잘 생긴 사람이 선호되는 선거판이라면 이건 시스템으로 바꿔야 할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당면한 문제 자체는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이런 노래도 물론있기는 합니다만 그 바꿔야 하는 대상에 우리 자신의 의식도 포함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시스템의 변화와 우리 자신의 변화가 병행되어야만 부조리한 부패와 비리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것을 여러 스펙트럼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물이 본 저작입니다. 저자의 '발로 뛴 성찰'이라는 제 표현을 본서를 읽고 나시면 공감하게 되실 겁니다. 제 리뷰에서는 본서의 아주 작은 부분도 온전히 담지 못했습니다. 대선 전에 본서를 읽어보신다면 보다 유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 이후더라도 장기적인 한국 정치의 변화를 어찌 모색해야 할지 정치인들과 유권자들 모두가 주목해 봐야 할 사안들을 다루고 있는 본서를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각자의 인식과 제도적 변화가 함께 한다면 분명 세계는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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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야놀자 2022-02-21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이하라님 저 waxing moon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논리야놀자 2022-02-21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재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네요. 현 정부은 확실히 부패했죠. 물론 전 정부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상대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더 못 하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이하라 2022-02-21 16:25   좋아요 1 | URL
안녕하셨어요. 닉넴을 바꾸셨네요. 금새 적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평등, 공정, 정의를 소리 높이기에 이제는 다르리라 믿고 투표했다가 실망이 너무도 컸죠. 소리 높이던 기치도 중국 정부의 연설문에서 표절한 것이니 어이가 없을뿐이더군요. 이번 투표는 신중히 하려합니다.

논리야놀자 2022-02-22 10:55   좋아요 1 | URL
네. 닉네임 변경한 것을 적응하도록 노력을 해주신다니 매우 감사합니다. 기존의 moon이라는 단어가 문재인을 연상시켜서 재수없어서 바꿨습니다. 네. 저도 실망이 매우 커서말이죠. 제가 지지했던 후보가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통탄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모두 문재인을 뽑아달라고 호소하였는데 말이죠. 지지자를 이렇게 부끄럽게 하는 경우가 어디있단 말입니까. 참담합니다. 네 저도 이제 진정한 정의와 상식을 지향하는 지성인에게 투표를 하고자 합니다. 아집으로 가득찬 꼰대는 싫어요.
 
원소 -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작지만 강력한 이야기
필립 볼 지음, 고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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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정립된 원소 주기율표상의 원소는 118개 입니다. 하지만 언제 또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고 창조될지 알 수 없다는 걸 본서를 읽으며 새삼 되새기게 됐습니다. AI의 발전과 양자 컴퓨팅의 계발로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다소 시기가 걸려야 특이점이 올거라고 하지만 통합적으로 볼 때 어느 한 분야의 기술적 혁신만으로도 변화는 빠르고 크게 앞당겨지리라 예견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자컴퓨팅과 AI가 만났을 때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원소들을 구조화하고 연구하는 분야라고 하네요. 이 시점이 오면 새로운 결합구조를 이룬 발명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원소의 발견이나 창조도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원소 발견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돌아보는 본서의 출간은 참으로 시기 적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서는 고대그리스철학의 제일질료를 찾던 시기부터 원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제일질료는 고대그리스철학에서는 '아르케'라고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각 철학자의 시기마다 물, 공기, 불, 흙의 단계를 거치며 4원소 중에 물질의 제일질료가 무엇인지 나름의 답을 제시하려 해왔더군요. 그러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근본입자가 있으리라며 그를 '아트모스'라 칭하며 고대철학자들은 세계가 이루어진 근본원리랄까 근본질료랄까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이후 atom으로 남아 근대에 이르러 원자론을 낳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전부터 이후까지 인류는 흙, 나무, 금속 등을 다루며 물질을 이용하고 변화시켜 활용해왔습니다. 그러다 중세부터 서양에서는 연금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속을 다루는데서 더 세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양의 연금술은 동양의 그것과는 다르게 완벽한 금속이라는 황금을 얻기 위한 기법이었다는 것이 과학자들과 과학관련 기고자들의 상식인 모양입니다만, 연금술이란 분야나 분석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서양의 연금술도 동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존재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마법 체계를 다루는 저작들에서 '현자의 돌'이라고 언급되는 것은 비단 완벽한 금속을 얻는 목적만이 아니라 존재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고대 저작들은 증거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연금술에서의 '원소 변환'은 유대 마법체계나 카발라 전승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카드몬'을 회복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동양 특히나 고대 신라의 신화서이자 역사서인 [부도지]에 따르면 '복본復本'이라하여 근본을 다시 회복하는 것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연금술의 결과물인 '엘릭시르' '현자의 돌'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 본연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원소 변환의 이야기는 완벽한 금속을 얻기 위한 연금술의 전승만을 담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쨋건 다시 고대 그리스철학으로 돌아가자면 고대철학자들은 4원소설에서 제5원소인 에테르를 찾고자 시도했고 그 에테르에 대한 믿음은 17세기에 이르기 까지 과학자들의 신념 속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물질의 힘을 전달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매질로서 에테를를 가정했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 에테르라는 신화가 사라졌다는 것이 저자 필립 볼씨의 말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고대의 에테르와 같은 개념이 재등장했고 '디바인 매트릭스'라는 저서에서 그렉 브레이든씨는 이 대상의 이름은 현재 명명되지 않았기에 자기 나름대로 디바인 매트릭스라고 가칭하여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라고 에테르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짚어보고 싶은 것은 4원소설이나 5원소설이 과연 고대그리스철학이 기원인가 하는 것입니다. 고대인도철학의 전승에서는 이미 지(흙), 수(물), 화(불), 풍(바람), 공(비어있음 또는 공간)의 5대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불교나 요가의 전승에서는 이것을 자연히 수행 체계로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고대 신라의 전승인 부도지를 보아도 4대 내지는 5대의 체계가 보입니다. 신화서라고 간과한다거나 일본역사학계가 주장하듯 위서로 몰아간다면 할 말 없을 수도 있지만 찾아보면 중국도 한족의 전승이 아닌 그 외 여러 민족들의 전승을 조사해 보면 오행만이 아닌 그 이전부터 통용되어왔던 4대나 5대의 전승이 남아있을 겁니다. 황제헌원이 5대에 대응한 오행의 개념을 내놓아 정통성을 주장하고 이후 한족이 중국의 여러 민족들을 복속시킨달까 통합시키며 황제헌원을 기원으로 삼는 한족 중심의 오행개념이 근본 축이 되어 과거의 4대 또는 5대의 전승 체계가 자연스레 묻히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족 중심의 역사개념이 아니라 한족이 주변 아류 민족으로 치부하던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정신문화를 다시 되찾는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원소 변환을 목적으로 하던 연금술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연금술의 발전은 자연히 화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화학자들의 시대는 자연히 이전보다 원소 발견의 개척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로지스톤이라는 연금술의 개념이 화학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남아있었는데 '소거된 공기'라고 믿어지던 플로지스톤은 고대그리스철학의 에테르처럼 사람들의 개념과 믿음으로 존재하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에테르가 현대에 와서 되살아난 것과는 다르게 물질이 연소되며 공간을 가득 채우면 불이 꺼지게 된다고 믿던 그 공간을 가득채워야 하는 존재 플로지스톤은 처지가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로지스톤이 공간을 가득채우면서 연소되는 것이 아니라 산소가 반응하면서 연소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중세 이후 화학자들은 새로운 원소를 찾아내기 시작하며 그 개척의 역사 속에서 결국 다양한 기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플로지스톤을 찾아헤매고 그 영향력을 연구하던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근현대에 들어서며 기존의 원소만이 아니라 새로운 원소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미신적인 대상으로 여기던 '원소 변환'이라는 연금술의 연대기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게르마늄이 어느 정도 인체에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게르마늄은 물론 창조된 원소는 아니고 자연계에 있는 원소 중 하나이지만 원소들이 생명체에게 악영향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효능을 논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도 연금술 시대부터 이어져온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원소 변환'을 거친 새로운 원소가 나타나 인간의 정신과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가정일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또한 '엘릭시르' '현자의 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양의 선도에서 말하는 '단'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시대, 진보해나가는 과학은 과거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증거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본서는 철학과 문명사에서 부터 시작해 연금술과 화학의 시대를 거쳐 핵의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원소 발견과 창조의 역사를 차분한 어조로 전하는 과학서입니다. 여러 리뷰어님들의 완성도 높은 리뷰가 기대되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많은 감흥을 준 책이지만 그 감흥들을 어찌 담아내야 할까 고민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짧은 이 감상으로 다 담지 못할 책입니다만 과학적 해석을 하기에는 이과적 대뇌가 아니기에 부족한 리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른 리뷰어님들의 리뷰를 읽으며 제가 못보거나 지나치며 읽은 대목들에서 어떤 깊이가 더 있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본서는 자못 건조할 수 있는 과학사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냈으며 다수의 이미지들로 따분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원소 관련 저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로 시작해 다른 저작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정통 과학사서로는 처음 읽은 저작이라 쉽게 권해서는 안될지도 모르지만 선뜻 권해 드릴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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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데믹 -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획되었다!
미키 윌리스 지음, 이원기 옮김 / 에디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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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가 원작 다큐멘터리와 제목이 같다고 해서 아마도 딱딱한 어조의 사실 전달만을 할 줄 알았기에 처음엔 개인사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 되어 조금 의아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개인사적인 도입부에서 어떻게 팬데믹이 기획되었다는 내용으로 이어질지 조금 난감한 기분으로 독서를 이어갔다. 도입부에서 조금씩 문제 제기가 일어나는 부분에서 더 읽어나가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다가 중반 이후 부터야 본론에 이르는구나 싶었다. 마지막까지 읽고서야 정말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문해력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지성으로 진실을 판단해 행동하는데 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본서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마음의 훈련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어디서나 다양한 견해와 사실이 교차되고 있으며 그것들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분별해내는 것은 자신의 몫일 것이다.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과 가족과 이웃의 건강과 안녕이 달려 있다면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해 옮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때 보다 적절한 정보들을 분별해서 바른 판단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본서를 배송 받으며 띠지가 없기에 조금 애석했는데 띠지에 적힌 문구는 검열 100%, 오류 입증 0%라는 카피이다. 본서의 원작 다큐멘터리 1편과 2편에 대한 비판자들이 팩트체커를 자처하며 거짓 근거들로 문제제기를 할 때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그에 대한 진짜 정보로 대응을 하자 비판자들은 대꾸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본서의 모든 정보들은 실제 연구자들과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로 갖춰진 것이기에 팩트 아닌 어설픈 정보로는 반박이 불가능한 내용들이다.

 

이 책은 각 매체를 통해 서평단을 모집한 도서니까 세부적인 디테일이나 인용문구는 앞으로 숱하게 보시게 될 것이다.(저는 구매해서 읽고 리뷰를 남깁니다) 그래서 [플랜데믹]이란 이 책에 대한 짧은 감상을 기억나는대로 남기고 말려고 한다. 이미 몇 개월간을 백신에 대한 포스팅으로 네이버, 예스24, 알라딘에서 백신의 위험성을 말씀드리고 있었는데도 이웃님들까지 백신 접종을 망설이지도 않기에 더는 백신 접종에 대해 언급할 의지를 잃어서도 그렇다. 또 요즘 들어 세세한 리뷰 쓰기, 인용문을 다수 장착한 리뷰 쓰기가 조금 지겨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술된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을 백신 접종에서 팬데믹과 그 이전까지의, 실제와는 역순의 시간흐름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mRNA백신'이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요법이 의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백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의 발언으로는 이것은 '화학요법'이나 '유전자요법'이지 '백신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백신이라고 칭하는 것은 백신이라 칭하여 대중이 화학요법이나 유전자요법이라고 인식할 때의 그 거부감과 두려움을 축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더 많이 맞으라고 백신이 아닌 것을 백신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mRNA요법은 인체에 메신저 리보핵산을 침투시켜 인체 내에서 스파이크 단백질(mRNA가 역전사해 우리 인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생성해내는 것이다)을 생성해 그것을 항원으로 인식해 우리 면역력이 항체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mRNA요법을 창시한 개발자인 로버트 말론 박사의 증언으로는 '접종효과가 감퇴하는 단계에서 이 백신이 바이러스 복제를 가속화할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항체 의존 면역 증강'이라고 하는데 이건 접종자가 바이러스에 극도로 취약해지는 상황을 불러온다는 말이다.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가 생성되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면역 관련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뤽 몽타니에 박사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된 국내 최고의 면역학자 이왕재 박사님 같은 경우도 mRNA요법의 위험성을 알리며 접종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필두로해 타국가들에서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해고될지언정 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크게 이슈화되는 것을 정부차원에서 막고 있는 사실은 백신에서 이물질 그것도 정교하게 제작된 나노물질들이 검출된 사례가 전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누구라고 검색하고 찾아보아야 할 정보이기도 하다. 이미 독일, 스페인,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한국 등의 국가에서 수차례 백신에 나노물질을 검출하고 있다. 스파이크 단백질로 인한 암 발병 위험이나 항체 의존 면역 증강으로 인한 중증 바이러스로의 이행 보다도 이 나노 물질이 가장 우선적인 해악이 아닐까 싶다. 혈액, 혈관, 뇌 그리고 심장과 함께 각 장기들에서 혈전 반응과 중증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첫번째 원인이 이 나노물질일 수 있다는 것은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혈관 속을 정교하게 제작된 나노 물질들이 쓸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위험할텐데 뇌와 각 장기들로 침투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이런 위험한 백신을 각국 정부에서 왜 위기감을 조성해 국민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접종하도록 하는 것인가? 사실 백신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고 이런 위험성이 있지만 그래도 접종할 의사가 있는지 재삼 확인하고서야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정부나 보건복지부, 질병청이 할 일일텐데 과연 한국에서는 객관적인 부작용의 고지가 있었는가? 그리고 미국에는 그러했을까? 

 

-프랑스의 법원에서는 백신접종 사망자의 유가족이 사망 보험금을 수령하려하자 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은 충분히 죽음을 인식한 후의 선택이었기에 명백한 자살이라며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백신 접종 사망은 자살이다'라고 세계 최초로 정의해 버린 것이 프랑스 법원이다.- 

 

과연 이런 자살을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왜 반강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사안은 미국 정부가 백신 수입을 하며 동시에 백신제조사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 후 사망의 경우 백신 제조사를 소송할 수 없도록 법적 보호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인이 백신 접종 후 사망하면 백신 제조사로 부터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보상한다. 결국 미국민의 세금으로 미국민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백신 제조사는 백신문제로 중증 환자가 얼마나 생기든 사망자가 얼마나 발생하던 법적 실질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임상실험조차 마치지 않은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화학요법, 유전자요법(mRNA백신)에 대한 면죄부이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다. 인류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말이다. 인류의 대다수가 자처해 실험대상이 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충분히 고지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인류적 차원의 임상실험은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며 미국에서 두 차례나 있었다. 하나는 1980년대 미국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매독 전파 실험이고(이건 그간 미국 정부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정하여 왔으나 2000년대 초가 되어 사실로 밝혀졌다.) 다른 하나는 1998~2001년 사이 미국 고아원에서 자행되었다는 맨해튼 실험이다. 맨해튼 실험은 현 미국 보건 복지부(HHS) 산하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구성하는 27개 기관 중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가 과거 HIV양성인 고아들에게 에이즈약을 실험한 사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약은 DNA, 피부, 내부 장기, 골수 및 뇌에 치명적인 약이었다고 하는데 고통에 아이들이 투약을 거부하면 강제 투약하고 그래도 거부하는 아이들은 병원으로 옮겨 위장 투약을 했다고 한다. 이때 최소 80명의 아이들이 사망해 공동묘지에 매장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미국에서 출간된 [The Real Anthony Fauchi]에 수록된 내용으로 사실이 아니라면 의학자에게 치명적인 루머라 소송으로 가는 건 당연할텐데 파우치는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세계는 적어도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인도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화들이 상식을 조금만 확장해도 즐비하다. MK울트라프로젝트라는 음모론적 실험도 사실이었음이 21세기 들어 밝혀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은 빌 게이츠의 자선재단인 빌 & 멜린다 재단의 지원을 받는 제약사가 인도 여학생들에게 행한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 실험으로도 이어져 21세기인 지금까지 너무도 인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본업인 것으로 알았던 제약회사들과 의료진들이 오히려 사람을 잡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과거에 제약을 개발하는 의료진들에게 특허권을 주도록 하는 법안이 제정되면서 부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직언이다. 개발자가 특허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생각하겠지만 이들이 자비로 연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비로... 나라의 세금으로... 다시 말해 결국에는 국민들 돈으로 연구개발을 하고는 특허권을 획득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약간의 약효만 있더라도 다른 부작용이 위험한 것을 인지한다고 해도 제품으로 생산하면 수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특허권을 갖고 있던 파우치와 개발자들이 에이즈 치료약을 시판하고 대중화하며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 보다도 더 신속하게 사망했었다는 내용도 본서에서 다루고 있다. 

 

mRNA백신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코로나 연구와 백신제작에 관련한 연구에 이미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선견지명만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인터뷰들이 본서에 수록되어있다. 빌 게이츠의 사업가적 수완과 정치적 기질은 그와 함께 MS를 창업한 동료도 치를 떨며 떠나가게 했고 그의 사업 방식은 많은 창업 청년들을 짓밟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까지는 수완있는 사업가의 장점이자 단점인 경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반독점법을 위반한 사례에 대한 재판이 항소까지 가며 결국 그가 승리는 했지만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된 상태에서 그를 타개하려고 자선재단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선재단은 말이 자선이지 제약사나 바이러스와 감염병 연구 단체에 주식을 매수하는 형태로 지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건 자선도 기부도 아니고 그저 투자가 아닌가? 빌 & 멜린다 재단은 자선도 물론 하겠지만 이러한 투자로 올리는 수익이 막대하다고 한다. (빌 게이츠가 거브러여수스 WHO 총장의 취임에도 관여했다는 내용도 있다. [플랜데믹]에는 의료진 출신이 아닌 최초의 WHO총장의 과거와 빌 게이츠의 관계도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WHO의 최대 후원자 중에 하나이기에 의료인도 아니면서 WHO 기조연설까지 나설 수 있는 빌 게이츠의 막강한 영향력도 언급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수록된 2021년 4월 [포브스]지의 기사로는 미국에서 코로나19로 미국인 2000만명이 직업을 잃었을 때 개인자산 10억달러가 넘는 미국 억만장자 고작 650명의 전체 자산은 1조 달러 늘어났다고 한다. 그들의 총자산은 4조 달러가 넘는다고 의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 중에 발언했다. 실제 데이터로도 이들 650명의 자산은  2020년 1월1일 주식시장 개장 당시 가치는 3조4000억 달러였는데 2021 4월 28일 주식 시장이 마감할 때는 전체 자산 가치가 4조 6000억 달러였다고 한다. 

 

팬데믹이 닥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그들인데 백신제조사에 투자하고 바이러스 연구소들에 투자한 그들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과연 팬데믹을 그들이 예견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빌&멜린다 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던 바이러스 감염병 연구단체 중에는 중국의 우한 연구소도 있었으며 그들이 지원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차단만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바이러스가 인체에 쉽게 침투하도록 조작하는 '기능획득' 연구까지도 포함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면 그 우한연구소 출신인 미국으로 망명한 여성 연구원의 발언처럼 우한연구소에서 조작한 바이러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코로나19가 출현한 걸로 인정되는 2019년 12월에서 고작 두 달 전인 2019년 10월 미국에서는 각 제약사들과 그에 투자한 빌 게이츠 등과 각국 정부 수반과 보건복지부 장관들이 모여 팬데믹이 온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한다. 중국이 코로나 전파의 시작을 12월로 인정은 했지만 그들이 코로나19의 전파를 차단하려 암약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라 가정한다면 대략 시뮬레이션 한 시기와 맞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빌 게이츠가 팬데믹 상황을 우려하고 고작 4년인가 2년만에 팬데믹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1977년 종식되어 감염병 연구소 외에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천연두를 콕 짚어 천연두 테러가 일어날 것이니 대비하라고 예언을 했다. 이 정도면 예견이 아니라 예언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에 있는 감염병 채권 중 이번에는 에볼라 등 출혈열성 감염병 채권인 class B가 대대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수퍼리치들의 도박이 예견이나 예언처럼 펼쳐지는 상황에 대중은 죽어가고 이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재능일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조작해 대중을 살상하는 것이라면 이는 씻을 수 없는 죄가 명백한 것이다.- 

 

과연 이들은 예견자인가? 아니면 기획자인가? 빌 게이츠는 선지자인가? 아니면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들과 공모한 자일까? 그도 아니면 그가 주도자일까? 정말 수퍼리치들은 인류적 재난을 매개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려 이런 기획을 한 것일까? 미국 정부의 수뇌부들마저 이들의 공모자인 걸까? 각국 정부 중 어느 정도 규모가 이들과 공모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숱하게 이어지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것밖에는 없다. 다들 살아남자고 말씀 드리고 싶다. 다들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러면 여러 정보를 두루 접하고 무엇이 옳은 정보인지 거듭 숙고하고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해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일은 관심일 것이다. 넓고 깊게 정보를 찾아보고 숙고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랜 후에도 많은 분들이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한 바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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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5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5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논리야놀자 2022-02-22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저질환 타령하면서 백신에 의해 사망한 사건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기가막히고요. 정작 백신 안 맞은 사람만 코로나 음성반응 나오고 백신 맞은 사람들 코로나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저도 백신 맞고 부작용 때문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기존에 있던 기저질환 또한 악화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정부의 행태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라 2022-02-22 16:37   좋아요 1 | URL
백신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인과성 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백신제조사들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으니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더 실망과 후회로 물들지 않나 싶습니다. 이 시기가 어서 지나가야지 싶어 대선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또 다른 팬데믹을 예언하는 빌게이츠를 보며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걱정입니다.

2022-02-24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4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