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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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간의 편향성과 뇌의 기능적 영향으로 인한 특이성향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과학의 잔혹사라는 본서가 출간된 것을 알고 인간의 독특한 성향(인간성)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이다 싶어 관심이 갔다. 책 소개와 목차를 보고 더욱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인간의 잔인성과 야만성, 그리고 자기기만과 자기 합리화가 어우러져 펼쳐진 이야기들이라 생각되어 관심이 깊어졌다.

 

저자가 샘 킨이라니까 다수의 독자들이 더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반응을 보이기에 누구지 싶어서 검색도 해봤다. 주기율표를 테마로 한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 [사라진 스푼]과 뇌가 손상되거나 수술이나 사고 등으로 기능이 달라진 경우를 들어 뇌의 기능적 특이성을 다룬 [뇌과학자들], 기체의 화학적 특징과 그와 얽힌 일화들을 다룬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천재와 장애 등을 가르는 유전자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등 과학을 대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을 집필한 유명한 작가였다. 전공도 물리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하고 미국 과학작가협회상을 특별수상하기도 했다고 하니 과학저작에 대해 믿고 선택할 만한 작가임에는 분명했다.

 

[과학 잔혹사]라는 본서는 과학과 의학 전반에 얽힌 잔혹하고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며 야만적인 인간의 광기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책으로 전문성과 서사 능력을 두루 갖춘 저자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책이다. 프롤로그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야만적인 의학적 실험들로 시작하는데 책의 내용 전반을 작가가 충격적인 전달이나 이것이 옳다고 하는 정의를 강조하기 위해 무겁게 서술하고 있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담담히 각 시대에 따른 과학과 의학의 개가를 위해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하나의 업무로서 진행해온 이야기들이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이 시대에 범죄로 인식될 역사이지만 실제 미국의 핵폭탄 실험 정보들을 소련에 넘기려 한 간첩 행위나 흑인들의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진행시키면서 관찰한 사례, 해부용 시신을 만들기 위해 살인을 자행하는 사례, 남의 고고학적 발굴을 자신의 경력을 위해 훔쳐 가는 사례,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를 검사하며 하지도 않은 검사를 했다고 거대한 횟수의 허위 보고를 한 사례 등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경우를 이 책에서 보자면, 본서에서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았고 케네디가 사람으로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을 그의 아버지 요청으로 뇌수술해서 폐인으로 만든 사례와 대중적인 쇼처럼 다수의 뇌를 절단해버린 사례, 지능지수가 160이 넘는 천재를 실험과 연구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심리적 고문을 가해 연쇄 폭탄테러범이 되도록 만든 사례(흥미 위주의 방송들에서는 천재의 광기 어린 테러 사례로만 방송되었던 그 사건에 대한 원인 규명으로 다가왔다), 에디슨이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전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들을 전기 처형하고 인간의 범죄에 대한 사형 방식에 교류전기를 사용하도록 한 사례 등에서는 범죄라기보다는 해당 과학자와 의학자, 관계자들의 금전욕과 성취욕과 명예욕, 무책임함과 잔인성, 야만성이 드러난 경우들이 아니었나 싶었다.

 

본서를 읽으면서 각 개인의 내재적 문제라고 여겨지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는 당연했거나 별 거리낌 없이 자행될 수 있는 사안들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 시대 기준의 원칙들과 문화적으로 수긍되는 상식들을,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들도 분명 있지 않나 싶다. 왜 사람들은 내가 겪고 싶지 않은 일은 상대에게 해선 안 된다는 단순하고 명징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본서에서 짧게 언급된 2004년의 스테튼아일랜드의 장의사가 육군에 시신을 3만 달러를 받고 팔아 해당 국가의 육군이 시신의 다리에 방탄 신발을 신기고 지뢰의 성능 실험을 했다는 기록과 2010년대 후반 말라리아 백신 모스퀴릭스의 다양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있음을 고지하지도 않은 채 권장해서 대대적 피해사례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화이자사가 백신 보급 이전 임시 임상 실험에서 백신의 치명률이 3%인 것을 확인하고도 치명률 겨우 0.1%에 불과한 팬데믹 상황에 백신의 치명률을 숨기면서 대대적으로 보급한 사례 등도 이 과학과 의학의 잔혹사라는 게 20세기까지 이전 시대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재에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도 우리는 이런 잔혹성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특성이지 싶으니 말이다.

 

금전욕, 성취욕, 명예욕, 무책임함, 잔인성, 야만성과 광기만이 인간의 본성일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인간의 속성 중 이런 면들은 부정할 수 없는 내재적 성향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본서의 부록에서도 일부 언급되고 있지만, AI가 개발되고 특이점을 앞둔 현재 인간이 감당해야 할 건 인간의 속성뿐만이 아니라 기계의 속성이기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내재적 문제들이 해소되거나 완화되는 미래를 꿈꾸게 된 이들에게는 암울한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본서는 과학의 잔혹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속성이 드러난 것이기에 미래는 인간의 속성과 기계의 속성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시대이겠구나 하는 감상이 드는 저작이기도 하다. 더 나아지고 보다 개선된 것 같겠지만 매 시대에는 그 시대에 인식 못 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고 우리는 그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본서는 우리가 인식 못 하는 현재의 문제들은 무엇일까를 돌아보게 해 주기에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과학잔혹사 #샘킨 #이충호 #해나무 #서평단 #도서협찬

 

(인디캣책곳간 블로그를 통해 해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리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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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지배계급 300인 위원회
존 콜먼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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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 절판되어서 중고도서로 구매해야 하나 망설였는데 중고도서 가격이 상식을 뛰어넘어서 어쩌나 한참 고민했던 책이다. 그러다 도서관 책이음 서비스를 통해 일독하게 되었다. 주말에 도서관에 책이 도착해 정말 나름 머리에서 열이 나도록 읽으려 했는데 1장이 시작됨과 동시에 다소 김이 샜다. 책의 내용은 전체를 읽고 보면 음모론에서의 상식적인 관점으로 역사와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이지만 내가 음모론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시각에서 읽어나가니 상당히 논지 전개에 미흡한 면이 많은 책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에서 전하는 내용은 익숙한 상식들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음모론을 믿어 마지않는 사람들에게는 다분히 상식적이고 알고파 할 내용이다. 다만 그런 일부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 위해서라면 관점 전개에 있어 어떤 일의 원인이 뭐였다는 단정만큼이나 어떻게라는데 근거를 명확히 전달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일련의 사태의 배후는 이렇다에서 서술이 끝나버리면 음모론적 주제에 대한 상식이 없는 이들은 그들이 어떻게 배후라는 말이지?’라는 의문에서 그건 니 생각일 뿐이겠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상대는 니 말대로 된다고 해도 그게 니 말이 맞다는 얘긴 아닐 거야로 단정 지어 버렸었다. 그 이후 세상이 그때 내가 말한 상황대로 흘러와 버렸지만 그 말이 기억나면 난 그런 생각이 든다. 많은 사태의 흐름이 음모론과 전혀 다름 없이 흐른다고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음모론의 시각은 각기 다른 사안들에서 일관되는 맥락을 찾아 주장하는 것일 뿐 그 맥락이 결국 음모론이 맞다는 걸 증거하는 것은 아닐 거다로 결론 지을 것이다. 신빙성이 있어 보여도 대부분은 사회에 근거 없는 낙천주의를 반영해 바라보기에 배후가 있다거나 세계를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과 의도로 유도하는 세력이 있다는 시각에 대하여 세뇌에 기반한 반발을 한다.

 

이런 세뇌된 반발에 대응하려면 어떻게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들 세력이 세계를 제어하려 하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이후에 어떻게그럴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건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2가지 전제에 대해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서는 그런 전제로 시작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렸다. 그래서 본서로 처음 음모론에 다가가는 분들은 불신부터 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보였다. 본서는 [그림자 정부] 시리즈라던가 쑹훙빙의 [화폐 전쟁] 시리즈 그리고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위대한 전환]까지라도 익숙한 분들이라야 읽어보실 만한 책이지 음모론이 생소한 분들은 읽어도 아무런 이익도 없이 음모론에 대한 선입견만 더 커질 수 있을 책이다 싶다. 하지만 그건 독자의 책임이기도 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연애의 과정과 합의의 과정이 배제된 성관계라면 강간일 수 있다. 음모론적 시야를 갖게 해주는 다른 책들과 정보들에 다가서는, 연애와 합의와 전희의 과정을 거친 그 이후에 본서에 들어서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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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시장 -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
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김병수 옮김 / 궁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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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의 주제에 대한 다소의 오해가 있었다. 3 국가부터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범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장기매매에 관한 내용이기만 한 줄 알고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깨달았다. 단지 장기밀매의 현실만을 고발하는 책이 아니라, 자기 신체와 유전자에 대한 권리에 관한 책이란 것임을 말이다. 이건 비단 프라이버시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주권, 자기 자신에 대한 권한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본서는 서문부터 병원에 방문해 검진을 받고 나서 의사의 권유로 주기적인 검진을 받게 된 인물이, (자신도 모르는 자기 인체의 화학물질이 남다르다는 이유로) 주기적으로 인체에서 채취한 물질들을 동의없이 실험에 이용당하고, 결국 생명공학회사에서 그의 몸에서 생성되는 물질에 특허권까지 취득한 것을 알게 되어,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소송은 어떤 결과에 닿았을 것 같은가? 법원은 그의 동의 없이 인체 생성물질을 채취한 것은 부주의했으나, 그의 인체에서 생성된 물질에 특허를 받고 수익을 남기고 있는 의사와 연구자와 생명공학회사(제약사)에게, 그의 인체 생성물질에 대한 권리가 귀속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임신을 기대하는 여성에게 배란촉진제를 주입하고, 생성된 여러 난자 중 일부는 해당 여성에게 착상했으나, 여성은 임신에 실패했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해당 여성의 동의 없이 그 여성의 난자를 다른 여성들에게 착상하여, 다른 여성이 임신하게 되었고, 난자를 도둑맞은 이 여성은 사실을 모른 채 8년을 보내고서야, 자신의 난자로 아이가 태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앓는 질환들의 유전적 변이에도 각각을 선점하는 회사에게 특허권을 주어 뇌 질환, 간 질환, 신장질환 등에 각기 다른 회사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유전적 질환들 외에도 천식 같은 일반적인 질환에까지 특허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특허권을 취득하기 위한 연구들에 자신의 유전자가 이용당한 것을 해당 질환에 관한 연구 대상이 된 개인들은 모르고 있다.

 

우리 인체에 대한 권리, 우리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주권이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체의 주권에 대한 쟁점으로 법적 논의가 있으면 과학자들은 인류의 미래와 의학 발전의 가능성이 차단당한다며 반발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올리는 막대한 수익을 생각할 때 이것이 과연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가 의문이 남기만 한다. 사실 예전에도 논의되었다는 유전자에 대한 저작권 인정을 하고서 연구를 지속한다고 해도, 인류의 미래나 의학 발전에 전혀 저해될 소지는 없다. 일부 희귀 난치병 치료제의 가격이 20~30억이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인간이 자신의 인체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 순수하게 인류의 미래와 의학 발전만의 문제가 아닌 건 아닐까 의심한다고 해서 모난 시각만은 아니란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극부 중에서도 초극부층의 부만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존속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시각이라면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정한 발전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또 한 국가에서 내재한 자원을 다른 국가에서 자신들에게만 기술력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비용지불 없이 강제로 채취해 간다면, 분명 이건 국제적인 지탄과 분쟁을 불러오고 국제 재판소에 국제적 소송으로 비화하거나 전쟁의 빌미마저 될 수 있을 사안이다. 그에 근거해 다음 예를 보자면 (우리는 우리의 2차적인 자원인 작곡이나 문학 또는 미술 창작 등에 대해 지적 재산권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 체계는 우리 자신의 가장 1차적인 자원인 것이 분명하고, 이는 어느 각도의 시각으로 본다 해도 분명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주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마땅히 주장해야 하고 보호 받아야 할 우리의 주권을 침탈당하고도, 거대 제약사의 특허권 주장에 주저앉고 말아야 하는가? 참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17, 18세기와 19세기에는 의학 발전을 위해서나 과학자들의 실험을 위해 또 미술가들의 인체 연구를 위해 시신이 매매되어 해부되고 난자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이 없는 부랑자들은 자신의 인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기회도 없이 사망과 동시에 시신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저자는 1998년 있었다는 독일의 인체 해부 전시전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전시전을 개최한 인물에게 시신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냐고 묻자, 플라스티네이션을 시작해 인체를 설정한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서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21세기의 중국에서도 인체 해부 전시회는 열렸었고, 유투브에 의하면 이때의 시신에 대한 음모론에 가까운 괴담이 돌고 있기도 하다. 과연 17세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친지의 권리에 발전이 없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본서에서는 이런 우리 자신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며, 사망자의 뇌하수체에서 채취한 배란촉진제를 주입받고 유전적 질환에 걸려 일부는 사망하기까지 한 사례, 인공수정을 하며 의사로부터 정자 세척이란 것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대답했다가, 타인의 혈액으로 그녀 남편의 정자를 세척해 그녀의 난자에 수정해 착상되는 과정에서 간염에 걸린 여성의 사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충분한 고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인체에 일어나는 일들에 거의 배제되다시피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기들의 탯줄이, 사산한 아기가, 사망자의 인체 일부가, 동의 없이 누구나의 세포 일부가 연구 실험에 쓰이고 그에서 제약으로 탈바꿈되어 매매되는 현실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시신을 매매하던 17세기부터 인체와 유전자 체계가 거래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모습이 그다지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인류는 과연 발전하여 온 것인가 의심이 들 뿐이다.

 

이제 기술 위주의 세계상에 접어들어 뇌에 칩을 심어 외부에 대상들을 제어하고 기억과 사유의 일부를 클라우드 서비스나 데이터 전송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외부 컴퓨터와 AI에 도움을 받는 시대가 코앞이라고 한다. 하지만 왜 BCI 기술이 인간이 컴퓨터를 제어하기만 하고, 역으로 AI가 인간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쓰일 거라고는 우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미 기술은 인간의 생각을 AI가 읽고 해석하고 문자와 영상으로 제시할 수도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각 기지국에서 전파되는 주파수 대역들을 이용해 낱낱의 사람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까지 파악 가능한 시대이기도 하고 말이다. 넛지 같은 행동경제학이나 콜드리딩이나 다크아트 같은 최면과 사회공학 데이터까지 접근 가능한 AI가 향후 발전한다면 인간에게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는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경우의 수가 아닌가?

 

그래서 더욱 일부 식자층은 발전한 AGI가 범죄국가에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하는 사안이 있는 국가에 대한 침공과 지도부 교체가 가능한 강력한 권한이 있는 제도를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세계미래보고서 2024-2034]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전직 OECD 관계자) 벤 괴르첼은 [1984]와 같은 파시스트 체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이 역시 [세계미래보고서 2024-2034]에서의 발언)

 

기후위기설이라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로 각국과 각국의 국민에게 불안을 조장하며, 통제사회에 접어 들어가는 형국에서, 이젠 AI의 발전으로 위협과 불안 심리를 갖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대놓고 통제사회,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가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가 정점으로 흐르기 위해 대중이 희생되고 노예가 되던 과정은 멈춘 적이 없다. 이제는 그 과정이 정점으로 향하며 인권이랄까 자기 주권에 대한 그리고 자유에 대한 파국에 다다라가는 것이다. 그저 약간의 편리와 배부름에 만족하며 대중은 그에 대해 고려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인체에 대한 주권이란 것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권리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걸 제한받고 침탈당하면서도 얼마나 손쉽게 순응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해,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보며 거의 모든 시대에 다르지 않은 양상이 이어져 왔다는 걸 직시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저항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속아서도, 무턱대고 순응하는 데 익숙해져서도 아니라, 아마도 다수에 위정자들은 그들의 이익과 합치되는 바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미래를 보면 암담한데 현실을 봐도 그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 참 막막할 뿐이다. 그래도 현실을 역사를 더더욱 알아야 할 일이기에 본서를 권하고 싶다. 품절 내지는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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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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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서민의 피를 빨아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는 과정이란 걸 되새기게 해주는 저작이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시간 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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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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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가 [Big Business and Hitler]로 자본이 히틀러와 나치스 그리고 전쟁을 왜 또 어떻게 지원했는가에 대한 내용을 기술한 책이다. 저자는 역사학과 정치학 모두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의 학자이자 교수로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그의 책들은 북미와 유럽 여러 국가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좀 더 상세히 알고 싶던 차에 본서를 접하고는 본서와 그의 전작인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읽어보려 했는데 본서를 읽고 전문적으로 파고들려는 것이 아니면 이 정도쯤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서는 서문에서 역사가 변천해오며 계급사회에 변화도 뒤따랐는데, 이 시대에는 자본가들, 기업가들과 은행가들이 과거의 왕족과 귀족과 제후와 지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과 계급의 현상유지를 위해 전쟁을 불러오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계대전들도 자본가들의 의도와 지원으로 발발하고 지속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전제인데, 본서를 읽고 보면 그러한 주장이 일견 타당하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전쟁배상금과 대공황으로 인해 과도한 사회부담을 안게 되었으며, 당시 피어오르던 공산주의로 노동자와 사회 피지배층이 기존의 사회를 전복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지배계층의 우려가 커나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국가회주의독일노동당이라는 이름의 당에서 히틀러가 나섰으며, 이 노동자를 위하고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대변할 것만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의 당에서는 돌격대와 같은 단체에 저소득층을 끌어모으며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독일의 자본가들은 이 시기 이전부터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의 진면목을 알아본 양 지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입지가 다소 생기기 시작하고부터 히틀러는 부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자본가를 우대하고 기업의 활성화를 위하며 공산주의가 이 땅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앞장설 것이라는 식으로 연설하여 자본가들의 호의를 사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끊임없이 재무장화와 공산주의 타파를 주장했고 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자본가들의 사업가적 이윤추구의 욕구를 자극했다. 히틀러는 나치의 제3제국이 수립되는 시기 피의 숙청 사건으로 기록되는 독일 내 노동당과 사회당의 인사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으며, 자신의 돌격대인 집단의 거의 모든 노동자들과 저소득층을 죽여없앴다고 한다. 히틀러는 자본가들에 그들의 사회가 전복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우선 해소해준 것이다.

 

그 이후부터가 압권인데 독일이 재무장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지속하는 동안 자본가들의 사업은 나치스에 무기 생산과 물자 공급을 하며 역대급으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 환경은 극단적으로 나빠져 노동 시간이 1932년 주당 41.5시간이던 것이 1938년 주당 47.9시간으로 늘었으면 전시에는 주당 66시간으로 확대되었다. (현대의 OECD 평균은 주당 40시간이 약간 넘으며 한국의 경우도 독일의 1932년 수준과 비슷한 정도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작업 중 병을 얻는 경우도 극단적으로 늘었으며, 보험료는 그대로인데 국가의 보험지출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여, 국민들이 지불하는 보험료가 모두 전쟁 비용으로 전용되기에 이른다. 또한 전쟁포로는 강제노동에 동원되어 거의 대다수가 과로로 사망하는 지경에 이른다. 포로만이 문제가 아니라 주당 66시간을 노동에 동원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되어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한다면 임금이 대폭 삭감된 것과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은 지불할 임금마저 동결되었기에 거침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본서는 1부가 독일 자본가들과 히틀러의 밀월을 그리고 있다면 2부가 미국 자본가들의 히틀러 지원과 그로 인한 혜택들을 다루고 있다. 미국의 자본가들도 전쟁 이전부터 대대적으로 히틀러와 나치스와 유착했다. 포드, 아이비엠, 제너럴모터스, 아이티티, 코카콜라, 스탠다드 오일 등 다수 기업이 독일에 자회사를 내고 히틀러를 지원하며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포드사의 창업자 헨리 포드 같은 경우는 반유대주의 도서 국제 유대인이라는 저작을 출간해 히틀러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히틀러는 헨리 포드의 국제 유대인이라는 저작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헨리 포드는 히틀러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미국의 기업들과 록펠러가(), 모건의 은행은 공공연히 독일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며 미국 기업들의 독일 내 자회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독일 병사들은 미국 기업의 독일 자회사들이 생산하는 무기와 물자를 보급받고 미국산인 코카콜라와 환타를 마시며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이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무서운 게 연합군이 독일의 퀼른의 도심을 방대하게 폭격할 때도 포드사는 자회사인 포드-베르케사를 폭격하지 말 것을 요청해 퀼른 지역이 초토화될 때도 퀼른 외곽에 위치한 포드-베르케는 멀쩡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독일이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미국과도 전쟁을 치렀으나 스탠다드 오일의 기름을 공급받고 출격해 미군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스탠다드 오일만 재판을 겪었을 뿐 다른 미국 기업들은 오히려 독일과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손실에 대한 보상금마저 청구하여 받았다는 것이다. 전쟁 중 미국 기업의 독일 자회사들에 실제 가치는 2~3배 이상 상승했고 손실 보상금과 세금 감면 등으로 또한 높은 수익을 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쟁은 비단 군수산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부자들과 초부자들을 모아놓고 미국 대통령(조지 부시)부자 여러분! 더 부자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기반입니다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게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젤렌스키는 몇조 원대 비자금을 착복을 했고 그 외 우크라이나 장관들은 몇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것이 미 언론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고 말이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것은 서민들이고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터질 듯이 배를 불린다. 전쟁 자체가 막대한 부의 창출을 약속하니 지배층과 자본가들이 전쟁을 반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금전적 물적(무기)의 지원은 당연히 각국 국민의 세금에서 나간 것이고 그 금액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지배층의 지갑을 채웠고 군수산업계 등의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게다가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사망이 이어지자 병력 충원을 위해 유럽 각국의 협조를 요구하며 피난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징집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 시도가 이뤄졌는지는 소시민인 나로서는 그 이후 뉴스를 보지 못해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60대까지 동원되는 우크라이나 전시 동원령으로는 우크라이나 국민 중 남성들이 모조리 죽을 때까지도 징집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도 더 명백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쟁은 서민의 피를 빨아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는 과정이다. 휘말려선 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서민으로서는 벗어날 길도 없어 보인다. 전쟁이 확장된다고 한다면 참 암담할 뿐이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본서도 사회 아니 (그보다 적절할 표현은 세상일 것이다) 세상의 이면을 보다 명백히 드러내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본서는 시간 날 때 읽어볼 책이 아니라 시간 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많은 분이 이 시절, 시간을 내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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