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기술 - 무의미한 소음과 자극에 맞서는 강력한 도구
이윤규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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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기술의 문제임을 깨우쳐 주는 책이다. 열정이나 노력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결론만 보자면 단순한 테크닉 같겠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능적인 면과 원리의 방향에서 세심하게 숙지시켜 준다. 저자는 정말 뇌력도 필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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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 - 게임이론이 알려주는 인간 행동 설명서
모시 호프먼.에레즈 요엘리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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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에 관해 처음 읽은 책이다. 서술을 쉽게 해 주고 있지만 대목대목 이해가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키워드 몇 가지만 기억에 남은터라 개념 이해 이후에 다시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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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2 Watching 2 - 시야를 넓힐수록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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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키워드로 수렴되는 내용이다.

셀프1, 셀프2, ( 동시에 공간)

 

셀프1은 물질적 육체의 나로 자신을 육신에 한정시킬 때 육신으로 수렴되는 한정된 자아상으로 드러난다. 셀프2는 여러 차원의 중첩된 몸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 공간으로 확산되어 가는 무한의 자아상이다. 셀프1을 개체아, 셀프2를 섭리나 신(신과 합일함)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셀프1은 구체화되어 물질적이거나 상세한 사고와 폭이 좁은 한정된 사고를 할 때 유익하고 셀프2는 발상하고 상식을 깨는 창의적 사고에 유익을 준다.

 

수학적이고 물질적 대상을 떠올릴 때는 자신의 몸을 의식하는 과정이 유리하고 창의적 발상에서는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유리하다.

 

창의적 문제 해결에서도 공간상의 또는 시간상의 거리를 큰 폭으로 잡고 바라보면 문제 해결에 유익하다. 학습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두는 학습도 효과적이다. 높고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에서 번갈아 공부하는 것도 학습 능률향상에 좋다.

 

(넓거나 높은 천정 등) 공간이 확보되는 것은 정신이던 육체던 질환이 있는 환자의 회복에도 유익하다. 그리고 통증도 내 몸을 떠나 공간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고 의념할 때 완화되고 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슬픔과 분노, 좌절 등과 트라우마, 그리고 현재의 무거움이나 현재의 상태를 그에서 물러나 바라보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현실에 매몰되어 버릴 때 시간상의 공간인 오랜 세월 후의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또는 제3자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관찰하는 게 효과적이다.

 

몸 밖이나 몸 안의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마음 수행과 변성의식을 가져오는 모든 수행에서도 유익하다. 그렇게 공간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뇌파가 바뀌고 의식이 변환된다.

 

그 외에 인상적인 건 샘 해리스의 [자유의지는 없다]에서 주목하던 실험과 같은 예를 들며, 우리가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뇌에서 결정하기 전이나 지시사항을 전달받기도 전에) 우리 뇌가 이미 행동을 결정 내리는 작동을 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우리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저자는 더 나아가 뇌나 육체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우리는 무한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적 사실과 여러 학자의 연구 그리고 여러 인물의 실례가 제시되고 있다. 그로 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주제를 수긍하게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과 저자를 통해 새로이 주목하게 된 내용들까지 모두 관심 분야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맥락 지어보니 좀 더 개인적인 과거의 잔재와 현실과 수행에 있어서 보다 나아간 시각을 갖게 된다. 안 읽었더라면 후회도 못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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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2 Watching 2 - 시야를 넓힐수록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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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과 저자를 통해 새로이 주목하게 된 내용들까지 모두 관심 분야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맥락지어보니 좀 더 개인적인 과거의 잔재와 현실과 수행에 있어 보다 나아간 시각을 갖게 된다. 안 읽었더라면 후회도 못했을 텐데 생각이 드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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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붓다
민희식 지음 / 블루리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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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신약성서]의 전반부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상세히 서술되어있다. [법화경과 신약성서]에서는 논조 자체가 신약성서가 불경을 베낀 것이라는 투를 내어 보이는데 본서는 그런 면이 다소 적다. 아마 저자분이 본서를 집필한 이후(본서를 전 세계 25개국에서 이미 각국 언어로 출간한 상황 이후)[법화경과 신약성서]를 집필하고 [성서의 뿌리] 시리즈 중 신약편을 이후에 집필하신 모양이다. 본서에서부터 저자 민희식 님께서 아주 약간의 문제의식을 갖게 되어 갔던 게 아닌가 싶은 대목들이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성서를 연구하면 할수록 깊어져서 세계적으로 성서 연구로 저명해지는 과정에서도 [성서의 뿌리 구약편]에서는 하나님을 악마로 치부하기도 하고 구약이 날조되고 조작된 것이다라고 결론 짓기도 하며 [성서의 뿌리 신약편][법화경과 신약성서]에서는 신약성서가 이전의 종교들의 교리와 기록을 참조해 짜깁기한 것이며 예수는 실존하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본서의 11장 계보와 족보편에서는 예수의 계보(족보)와 부처님의 계보를 비교 대조하는데 기독교인들도 이미 아실 것이듯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는 판이하게 다르다. 마태와 누가 두 명 중 한 명 또는 둘 다의 기록이 날조가 아니라면 예수라는 한 인물의 계보가 이렇게 다를 수 없을 것이다.

 

12장 수태고지와 탄생편을 보면 마태와 누가는 예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이라고 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갈릴리의 나사렛을 탄생지로 기록하고 있다. 다수(마태와 누가)가 맞겠거니 하려 해도 1부 중반의 기록을 보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은 예수의 이종사촌 동생이다. 그렇다면 그저 생판 남인 마태누가보다 예수의 엄마에 여동생(이거나 언니)의 아들인 요한이 기록한 내용이 더 맞으리라는 판단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마태와 누가는 왜 예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이라고 했을까?

 

그건 당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에서 나오며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거라는 전승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전승이 있다 보니 이 틀에 예수를 합치시켜야 그가 구세주라는 대중의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으리라 판단해 예수의 양부 요셉의 계보와 예수의 탄생지를 조작한 것일 거라는 논리적 귀결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분이 이미 [성서의 뿌리 신약편]에서 먼저 언급했었듯 요셉의 자식이 아닌 예수에게서 요셉의 계보가 이어진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가 너의 후손 중에서 미래의 어떤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자신의 후손 중에서가 아닌 미래의 후손이 입양한 자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판단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이는 하나님이 하셨다기엔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만약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그가 메시아로 올 거라면 먼 훗날 어느 시기 나의 아들이 인간으로 임해서 너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명백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말도 안 되게 다윗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했겠는가? 게다가 다윗의 후손도 아니고 태어난 곳도 하나님이 말씀한 곳이 아니라면 더더군다나 예수는 메시아일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성서와 불경을 대조해 기독교와 불교의 유사함을 이야기해 보고자 했던 저자는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인식하면서 시작된 의문이 증폭되는 과정을 거치며 끝내 기독교와 예수 더 나아가 유일신을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종교도 신앙도 하나하나의 믿어 마지않던 바들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 수 있는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성서 연구가들은 동방박사라는 세 사람의 예수 탄생 경배를 위한 왕림(브라만교의 성자 크리슈나의 역사를 마태가 차용하여 날조한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동방박사 왕림도 헤롯왕의 유아 살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의 성스러움과 남다름을 증거하는 내용인데도 말이다)도 실제가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고 한다. 자신의 동복이부 형제들과 이종사촌 형제들까지 신도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예수라는 존재가 실제했던 것은 맞으나 그를 구세주라는 신앙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과장과 조작도 한몫 제대로 했지 않나 싶다.

 

물론 본서의 대부분에 내용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두 종교 사이의 유사성을 주목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책 같다. 기독교인과 불교인의 화합과 이해를 위한 책이 아닌가 싶지만, 본서를 통해서 아니 꼭 본서를 통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의 역사와 기록을 사실과 대조하면서 실상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기독교인일 수 없을 것이다.

 

붓다께서는 예수보다 560년 이상 먼저 태어나셨고 예수 당시 중동과 유럽 전역에는 불교가 전파된 이후이다. 유럽에는 예수 이전 세대에 만들어진 불상들이 출토되기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예수의 탄생부터 사망까지의 평생에 대한 역사와 그의 가르침 전반이 불교 경전의 내용과 동일하다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거의 대부분이 불교라는 원본을 복사하고 짜깁기한 표절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해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교종교학이나 종교연구가들은 아마도 이미 그와 같은 결론에 거의 이르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내용들과 저자가 천착하여 파헤친 내용들이 그에 대해 증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종교가 마음의 안정을 준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혼란과 동요를 주고 분열과 충돌을 야기한다면 그 종교의 실상도 바로 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더라도 믿겠다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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