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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요가
이태영 지음 / 여래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쿤달리니 요가의 모태인 탄트라를 나는 그저 수행체계와 수행 전승의 하나로만 바라봤는데 tantra의 의미는 날실과 경전을 말한다고 한다. 씨실을 의미하며 경전을 이르는 다른 말인 sutra와 대칭을 이루는 표현이었다. 씨실이 베틀에서 세로줄을 이루며 한 가닥씩 열을 이루고 날실이 그를 한 올씩 가로지르면서 가로로 나아가며 면을 만들 듯이 수트라와 탄트라의 역할도 그와 같은 것이구나 생각되기도 했다. 탄트라는 수행체계이기도 하니 수트라와 탄트라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 거구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실천과 수행을 수트라와 탄트라가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감상도 갖게 되었다.
또 탄트라에 대한 추가 설명으로 ‘비밀스런 요가적 행법, 신들에 대한 찬가, 의례, 제사 의식 등의 종교 행위와 연금술을 비롯한 화학, 의학, 천문학 등의 자연 과학, 그리고 요술, 주술, 복점 등의 신비 사상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이기까지 하고 있다.
탄트라에 대해 수행으로만 접해 봐서 개념이 주먹구구로 잡혀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강을 알게 되었다.
본서는 쿤달리니 요가에 대해 한의학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쿤달리니 증후군이라는 부작용(중국 기공식 표현으로는 ‘편차’)에 대해 그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마음장상이라는 불용성 위축도 극단적인 수준의 생식기 축소로 이루어질지 몰랐었는데, 리 샤넬라 님의 [신비의 쿤달리니]를 읽은 후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고 이런 내용까지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읽은 [무, 최고의 상태]에서도 ‘명상 수행을 주기적으로 수행한 집단에서 이타적 감정과 행위가 감소하고 자아의식이 극대화’되었다는 연구에 관한 내용을 듣고 충격이었다. 수행이 긍정적 영향을 더 준다는 믿음이 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같은 책의 다른 장에서는 ‘관찰 수행과 연기성에 집중한 수행을 한 집단은 이타적 행동과 정서가 500% 향상’되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상반되는 두 연구 결과로 보자면 명상과 수행도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서 또 얼마나 수행력이 깊으며 전문가 집단인가에 따라서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본서의 다른 장들은 쿤달리니 요가 행법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꾼달리니 딴뜨라]와 그 전작을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면 실수행으로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수행 횟수와 시간의 분배에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본서는 수행 방법들만을 소개하고 실수행은 스승의 전문적인 가르침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저자가 스승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들도 이어지니 당연한 감상이 아닌가 싶다. [꾼달리니 딴뜨라]라는 책에서의 꾼달리니 운행은 도가적 표현으로 역주천이다. 상식적으로 익숙한 수행체계로 수행하고 싶다면 [꾼달리니 딴뜨라] 수행 중이나 이후에 본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