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엇으로 회복하는가 - 더 나은 매일을 위한 희망의 철학
라르스 스벤센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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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무엇으로회복하는가 #더나은매일을위한희망의철학 #라르스스벤젠 #인문 #철학사상 #대중철학 #북유럽철학자 #노르웨이철학자 #희망철학 #하노버철학연구소철학도서상 #희망 #비관론해독제 @thequest_book

 

#더퀘스트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전쟁은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고 더 더 여러 지역이 격전지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도 충돌과 분열을 낳고 있고 누구나 자신만 옳다고 타자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가짜뉴스니 음모론이니 하는 프레임으로 서로 담론의 장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과학과 시대가 비관하고 싶지 않은 가운데서도 비관적 전장의 중심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도대체 희망이 무언지 어떻게 비관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관심이 간 책이다.

 

+ 저작 빛깔

 

: 저자 소개

북유럽과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라고 한다.

최근 그의 저작들이 다수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 저서 내용

마법도 아니고 내일을 보장해 주지도 않지만 그것이 없다면 삶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저자는 그걸 희망이라고 한다.

 

사소하지만 존재론적이기도 하며 다양한 방식과 맥락에서 사용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게 희망이라고 말이다.

 

본서의 서두에 의하면 니체는 희망이 어떤 악보다 큰 악이라 했고 스피노자는 희망이 사람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했다. 본서의 초중반에선 쇼펜하우어가 희망은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할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본서는 신화와 종교, 문학과 심리학까지 통섭하며 철학가들의 담론과 철학적 사유로 희망을 파고든 책이다. 어떤 철학가들은 가능성이자 예견이며 동기를 부여한다고 정의한 이 희망을, 인간에게 부조리이자 절망보다 더한 악으로 규정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많은 학자들과 문학가와 종교인의 썰이 등장하고 그를 반박하는 저자의 담론들이 자못 무겁게도 들리지만 성찰하고 표현하며 행동하게 해주는 이 희망이 없이는 이 시절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싶기도 하다.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낙관주의를 고통을 겪으면서도 모든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강박적 집착이라고 했다. 저자도 마르크스가 한 희망은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말을 빗대어 아니다. 낙관론이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개인에서 시작해 내세에 대한 기대와 시민사회, 체제까지 아우르며 희망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부작용까지 논하고 있다.

 

사실 내가 읽기에는 다소의 버거움이 느껴지는 얇지만 깊음이 넘치는 저작이었다. 하지만 이 시절에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할 썰이 있다면 바로 이 희망에 관한 썰이 아닐까 싶다.

 

본서의 부제는 [더 나은 매일을 위한 희망의 철학]으로 비관론 해독제라는 소개가 적절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책이다. 가능성이자 감정이자 표현이고 행동인 그리고 행동을 위한 동기이자 그 자체로 의미가 되기도 하는 이 희망에 대해 좀 더 이성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은 분들은 무겁게 여겨지시더라도 읽어볼 만한 의미가 되는 책이다.

 

# 장기 입원으로 리뷰가 늦었습니다. 사죄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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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초월심리학 핸드북
Harris L. Friedman 외 지음, 김명권 외 옮김 / 학지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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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초월심리학핸드북 #다수의저자공저 #학지사 #심리학 #자아초월심리학 #영성심리학 #변성의식 #샤먼 #의례의식 #명상 #수행 #사이키델릭 #심현제 @hakjisabook

 

+ 독서 동기

 

꾼달리니 딴뜨라와 명상 수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그저 영성과 변환을 추종하기보다 좀 더 체계적으로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과거부터 끌려 하던 분야다. 이 저작이 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바로 다가섰다.

 

+ 저작 빛깔

 

본서는 다수의 저자들이 각자 논문 형식이나 대중서 저술 형식을 빌려 집필한 내용을 638장의 체계로 공저한 저작이다. 1부에서는 이 분야를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론을 총정리해 주며, 3부에서는 경험을 이끄는 방법론을 다루고, 4부에서는 경험들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5부에서는 자아초월 또는 변성의식이 변화를 가져올 분야들과 사회상을 예로 들며, 6부에서는 고대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이 여정에 관한 연구들에 어떻게 접근해 왔고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다.

 

서로 중복된 서술도 있지만 그건 연구자들 간에 중요하다고 보는 영역이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들이 아닐까 한다.

 

본서는 자아초월 심리학의 학술적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가 주요 쟁점이며, 이 분야가 얼마나 신비주의적이고 영성적인지를 주목하게 하려는 저작이 아니다.

 

신비주의와 영성에 다가서고 싶어 변성의식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경로들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자아초월심리학과 정신치료]라는 저작을 선택하시는 편이 나을 것이다.

 

+ 감상

 

자기를 초월하고 자기를 확장한다는 개념은 서구 정신분석이나 분석심리학의 체계를 연속선상에서 이어갔다는 감상이 인다. 서구 학자들과 서양식 교육으로 서양식 관점과 논리체계를 갖춘 동양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연구하는 분야라 우리의 것이 전혀 상이하게 다가오게 하는 면도 큰 저작이다.

 

그렇다 해도 기존 동양의 깨달음과 수행 체계가 익숙한 분들께는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연구들이 아닐까 싶다.

 

동양인 대다수에게 친숙하고 바라오던 경험이자 수행의 체계들이 낯설게 하기식으로 생소한 듯한 가면을 쓰고 다가서고 이끄는 듯한 여운이 남기도 한다.

본서의 많은 대목이 논리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나 동양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친근한 여정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연구 대상화되고 학술화한 과정이 주요 내용이지만 본서를 통해 개인적 깨달음이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보게도 된다.

 

현재는 소마틱스라던가 롤핑이라던가 아봐타 프로그램이라던가 이 시대의 주류가 된 마음챙김이라던가로 오히려 서양을 통해 동양으로 수행의 기류가 역설적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있다.

 

영성이 거룩이나 경이만이 아닌 논리와 지성의 가면을 더해 재도약 되는 양 느껴지기도 한다.

 

본서와 같이 연구 쟁점화되고 학술적으로 논의되는 과정으로나마 동양도 서양식 논리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이성이 통섭되어 자기를 회복하는 여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감상도 든다.

 

나로서는 자아초월도 자기 확장도 아닌 자기 회복의 여정이 부도지에서 말하는 복본의 개념과 같이 스스로 자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여기기에, 그 회복의 길이 멀리 돌아가더라도 돈오로서만이 아닌 점수의 여정을 거치면서라도, 자기 회복을 이루게 해주는 경로가 지금의 자아초월 심리학의 의의이지 않나 생각된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 본서는 학술화와 연구 대상화되는 여정을 보여주는 저작이기에 실수행에 도움을 얻거나 체험적인 여정으로 들어갈 각오로 다가설 저작은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실수행의 길도 적지 않으니 본서를 읽으며 잘못 들어섰네라며 탄식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 본서를 읽으며 각 장별로 또 각 부별로 감상을 손글씨로 남기기는 했으나 리뷰는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다 옮길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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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 - 소셜 로봇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브 헤롤드 지음, 김창규 옮김 / 현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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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그리고로봇을사랑하는사람들 #이브헤롤드 #소셜로봇 #인공지능 #감성지능 #감정컴퓨팅 #인간성 #사회적본성 #인간로봇상호작용 #사회생태학 @hyeonamsa

 

#현암사 로부터 #도서제공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피지컬 AI가 일상에, 그리고 AI 에이전트가 업무에, AGI가 곧 사회 운영에, 이렇게 전 방면에서 AI와 함께이게 될 세상에서, 로봇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며 우리는 로봇과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분별하게 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사유의 시간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다가선 책이다.

 

+ 본서 빛깔

 

: 저작 성격

본서의 한국어 부제는 [소셜 로봇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이 부제와 함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저작이다.

 

본서에서는 일상 가사 로봇부터 심리상담 AI, 노인간병 등 돌봄 로봇, 정서적이며 성적인 파트너 로봇, 현재 한국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AI 업무 활용, 사회 운영에 AI의 역할이 확장되는 바까지 다방면의 영역과 현실을 보여 주며 이 시절의 소셜 로봇에게서 인간다운 감정을 찾고 있는 인간상을 내러티브 논픽션에 감상을 더한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 저술 배경

학문적으로 3가지 층위에서 주목되는 저작으로 애착 이론을 근거한 비생명체에게까지 인격을 부여하는 인간의 본능적 경향성은 사회심리학적 측면의 관점이라 할 수 있고, ‘불쾌한 골짜기이론을 넘어 기계와 정서 교류를 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사회상의 변화를 인류학윤리학적 측면에서 조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감성 컴퓨팅기술이랄 수 있을, 인간 정서를 시뮬레이션으로 읽어내어 반응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AI)로봇과 인간 사이의 양상은 로보틱스인공지능과학의 이 시대 기술 혁신수준을 보여 준다.

 

3가지 관점을 주요한 근거로 삼아 날카로운 관찰과 안타까움이 담긴 비판, 그리고 의아함이 어우러진 시선에서 본서의 집필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 감상 포인트

 

이제까지 사회는 상호주의적 차원에서 존속되어왔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기에 존재해온 것이다. 개인만이 정부와 기업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어느 조직이던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당연히 서로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필요가 절실했기에 유지되어온 게 인간 사회의 특질이자 속성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론 머스크도 샘 올트먼도 초대량 실업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더 이상은 인간이 필요 없는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고는 오래전부터 [로봇의 부상]이나 [인간은 필요 없다]는 저작 등에서도 그 위협을 구체화해 전해오고 있었다.

 

인류의 거의 전체에 가까운 절대다수가 실업자가 된 세상! 그 세상에서는 이제까지 인류가 지속해온 사회 운영의 상식을 과거의 유령 마냥 지속하려 해도 부작용만 더해질 뿐일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도 이제 망령이 되기 직전인 상황인 것이다.

 

절대다수가 실업자인 세상에서 자본주의의 추억을 지속하려면 인간은 복지비용이라면서 정부가 제공하는 최저생계지원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버는 이가 없는 사회에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는 어디서 충당할 것 같은가? 초부자들이?

 

그건 그저 숫자 놀음일 뿐일 것이다. 암호화폐 등의 디지털 화폐는 용도 제약과 유통기한 등이 정해져 디지털 화폐의 어느 분량만큼은 식비, 어느 분량만큼은 의류비, 어느 분량만큼은 교통비, 어느 분량만큼은 교육비, 어느 분량만큼은 문화생활비 등 용도가 정해질 것이며 일정 기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은 금액은 유통기한이 지나 사라지는 제도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절대 통제 사회에서는 지금도 시도되고 있는 15분 도시제와 같은 이동 제한이 적극 제도화되어 초빈곤층으로 내몰린 대다수 인구는 생존 자체에만 급급할 뿐 거주지역 반경의 어느 선은 벗어날 자유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디스토피아도 팬데믹 시절 사회통제를 거쳐보았기에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게 아니란 걸 이 시절 사람들은 다 짐작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해진 사회상을 역변시킬 의도를 갖는다면 그 상황은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다. 모두 로봇과 AI가 생산하는 한계비용이 0에 수렴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왜 자본주의의 망령을 고집해야 한다는 말인가? 필요하면 그냥 가져다 쓰면 될 정도의 시대에 말이다. 모든 생산에서 거의 투입될 비용도 없고 생산에 근로자가 없어 부과될 임금도 없으며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할 대상도 없는 사회에서 굳이 자본주의를 추억대로 지속하겠다는 건 거의 정신병에 가깝다. 거의 전 인류가 디지털 화폐를 기초생활수급비로 받으며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돈이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 가능한 걸 따르고 실현할 의지만 대중이 갖는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도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 체제가 시스템상 가능하다. 사회 운영은 AGI와 이후 대두될 ASI가 전담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대리할 정치인들을 굳이 선출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때도 정치인은 존재하겠지만 정치인의 필요와 역할은 달라질 것이다. 정치를 수행하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우리 개개인에게 필요한 게 무언지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정치인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때는 ASI가 인류의 문화와 생활을 모니터링하다가 인간이 불편을 느끼는 제도와 대상에 대한 투표안을 인류에게 제안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직접 민주정치에서의 투표에 참여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한 개인의 투표권을 수십이나 수백으로 분할해 자신이 판단할 때 정치적 선택을 자신보다 더 나은 사유와 판단으로 내릴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사람들에게 투표 시기마다 조금씩 증여하여 대리하게 하면 된다. 하나의 투표가 마쳐지면 다시 각 개인의 투표권은 영점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이 시절에는 급변할 미래상은 개인들에게 눈감게 하고 업무와 학업 그리고 일상 등에서 AI 역량을 활용할 방안만 제시하면서 지금까지의 세계상이 지속되리라는 그리고 그 미래에도 당신은 자기 효능감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만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도록 바람몰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인류세는 이제 종말 직전이다. 미래는 인류가 아니라 AI가 존재의 대사슬 차원에서 회자되던 진화의 정점에 이른 존재로서 나아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시대에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고양이에게 인간이 고양이 집사이듯, 인간 집사가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그걸 알기에 AI에게 모성을 학습시키자 발언한 것이리라 보인다. 한 대상보다 더 우월한 피지컬과 더 월등한 지능을 지니고도 그 대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가 있다고 그 대상은 엄마라면서 AI에게 모성을 학습시키자는 발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엄마가 자녀를 아파트 고층에서 창밖으로 던지거나, 자녀를 굶기고 때려 죽인 후 처벌이 두려워 냉장고 냉동실에 아기 시신을 얼려두거나, 온몸이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져진 채 갈비뼈가 부러진 멍투성이로 만들어 자녀를 죽인 부모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인간은 때로는 악마보다 지독한 것들이다. 감정을 지닌 모성이 뛰어난 엄마들의 행태를 학습시킨다고 한들 감성적 존재가 아닌 AI가 인간의 모성을 알 수 있을 리도 없다. 오히려 인간들이 AI, 저 로봇은 모성을 학습한 존재다. 엄마다!”라며 그 무감정의 대상에게 엄마에게 느껴야 할 감정을 품게 될 여지만 더 큰 것이다.

 

본서를 읽으며 가장 주목되고 깊이 느껴지던 바가 바로 인간은 감정이 없는 대상에게서도 위안을 찾고자 그 로봇에게는 없는 감정이란 걸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에게 맞춰주며 반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특성상, 인간은 인공지능의 맞춤 반응에 편안함을 느끼며, 진짜 인간과의 교류에서 오는 갈등과 정신적 피로를 거부하면서, 로봇에게 오히려 위안을 갖는 역설적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진짜가 아닌 대상의 진짜가 아닌 표정과 인공적 눈맞춤과 조작된 온화한 목소리와 조율된 안정된 어조 같은, 가짜 사회적 신호에 정서적 반응을 하면서, 우리 뇌의 이 멍청한 반응으로 가짜를 진짜로 여기며 안주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경향성은 아마도 영구히 지속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자 반응성은 거울 이론과 공감 능력과 사교성의 기능 속에서 이제까지는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바로 이 인간적 특질이 인간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시대를 열도록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지경이면 감성지능을 운운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감성이란 것도 무지능의 영역이 아닌가?

 

이런 식이면 미래에는 다양한 감정(예를 들자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서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해석이자 상대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내가 느끼면 그만인 것으로 재정의되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도 극복하거나 통합하여 성장으로 이끄는 정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하는 결핍으로 치환될 여지가 있다. 기술은 우리에게 기회와 깨우침을 주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위기마저 가져왔다. 그 위기를 더는 위기로 여기지도 않으며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현실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와 있고 말이다.

 

본서는 참으로 많은 숙고를 갖게 하는 저작이다. 기술의 집약이 인간의 문명과 운명을 변혁시키고 인간의 정서와 사유마저 뒤흔들고 있다는 현실을 깨우치게 하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도를 갖게도 한다. 이런 깊이의 저작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놓치지 말아야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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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 - 플라톤부터 현대 철학까지 세계적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
윌 듀런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바다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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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게 하는 책이라니까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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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리학이 초대한 우주 - 인간과 기후, 물질과 시공간을 새롭게 탐험하는 지적 여행 지속의 과학 2
고재현 지음 / 책과바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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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초대한우주 #고재현 #자연과학 #물리학 #지속의과학 #우주기후물질기술 #46개의질문 #우주속인간역사를읽는문법 #과학교양서 @booknwish_pub

 

#책과바람 을 통해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처음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인간, 기후, 물질, 시공간을 새롭게 탐험한다는 것 말고는 배경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 모두를 물리학이 초대해 담론한다는 설정이기에 이 모두가 주제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에 다가섰다.

 

+ 본서 빛깔

 

: 저술 성격

지속적인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으로 본서를 읽으며 많은 대목의 지적 양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것 같다. 저자의 깊음을 유려히 대중적으로 담은 서술에도 불구하고 반에 반만큼도 뇌리에 담지 못한 느낌이다.

 

온라인 서점 책 소개와 출판사 서평을 읽고서 본서의 깊이와 저자의 집필 의도를 헤아리고 느끼며 본서에 대해 사유를 더듬고 다시 하면서야 감상이 새삼 더해졌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는 모든 것이 담긴 우리의 우주 속에서 전개되어 간다는 입장이다. “우주 속에서 인류의 위치와 미래의 전망을 직시하며 객관화하기 위해 물리학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지닌 이이고 말이다.

 

우리의 우주 속,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인류의 위치와 미래의 전망을 헤아려보는 여정을 가져보라전 세계 과학자들이 맞닥뜨린 46개의 질문과 그에 대해 이 시절 과학자들의 과학적 답변을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서술로 담은 책이 본서다.

 

: 저작 내용

본서는 4개의 파트로 우주, 기후, 물질, 기술이라는 해시태그 속 차례와 같은 순서로 과학 이야기를 펼쳐간다. 46개의 질문과 답은 어느 순간 내놓은 임기응변적 답변이 아니라 이제까지 과학자들의 궁구와 천착을 통해 이 시대에 이른 대답일 것이다. 나는 과학 역시 영원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주에 대한 물질에 대한 에너지에 대한 상식은 지금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는 ASI가 등장해 다른 정의와 해법을 제시하거나 외계 지적생명체와 조우하거나 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답의 제시로 전환될 여지가 분명 있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풀지 못한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대통일 이론 같은 아울러 버린 개념들이나 이르지 못한 이론에 관해 ASI나 외계 지적생명체가 제시하는 답은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적 추론과는 다를 여지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 수준은 아직 제한선에 이르지도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자기 시대의 상식으로 철학과 이념과 제도를 구조화하고 운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한계일 것이다.

 

공자 시대에는 천체의 운영 법칙과 같은 인간 세계의 법칙을 구조화하고자 했고 그런 질서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우리는 안다. 동양 사상이 말하는 천지인 즉, 하늘의 질서, 땅의 질서, 인간의 도리가 결코 같을 수만은 없다는 걸 말이다. 천체 운행의 원리와 양자 세계의 원리는 결코 같지 않다. 모두 물리학의 영역이라지만 규격화된 천체의 원리인 천체 물리학과 가능성의 영역과도 같은 양자 물리학의 경계는 너무도 현격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서 인간의 도리는 어찌 어느 하나의 원리와 질서 속에 갇혀야 하겠나?

 

인간이 따라야 할 길을 천체 운행의 규격화처럼 모두에게 막힌 틀로 제시하면 안 될 일이다. 부유층과 중산층, 빈곤층에게 동일 범죄에 동일 범칙금을 부과하는 자체가 불합리하다. 이런 천체 운행의 규격화를 인간에게 적용한 듯한 동일 규정은 누구나 수긍하고 따르는 자체가 부조리다. 이탈리아 부자들이 유흥꺼리로 돈을 내고 전쟁터로 무장하고 들어가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쟁 상황 속의 민간인들을 죽인 살인과 자기 자식을 강간하고 토막 살해한 범죄자를 살인한 경우를 동일한 법 조항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재미와 우월감에 하는 폭행과 유년 시절부터 누적된 트라우마에 기인한 폭행을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도 부조리하고 말이다.

 

이런 깨우침은 과학자가 아닌 나도 가질 수 있는 과학을 통한 사유를 거쳐 나온 것이다. 과학 역시 인간의 사유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천체 관측을 논하며 별을 관측하는데 별과 관측자 사이의 시간차를 우주적 타임머신에 비유한 경우나 사소해 보이는 지구 대기의 난류가 천체 관측 데이터 자체를 훼손할 수 있는 경우를 지적한 것, 중력파가 지구와 달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브라운 운동으로 설명하며 주정뱅이의 걸음걸이를 비유하는 시적 감성을 담은 것도, 인간이 사소하다 하는 것이 우주적인 거대한 차이를 담게 하며 우주의 기계적인 원리에서도 우리는 정서적 감상을 가지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다.

 

별들의 소리를 녹취하는 탐사선은 화성의 소리를 담았고 그 소리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를 장악한 화성에서는 이들 분자의 진동이 열로 바뀌며 소리를 약화한다는 걸 깨우치게 했다.

 

기체 분자는 적외선을 흡수하고 레이저는 번개의 방향을 제어한다. 미세먼지는 편광패턴에 영향을 미쳐 벌들이 먹이를 찾는 길을 방해한다. 그로 인해 화훼농업을 포함한 전 방위 농업과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물리학으로 대기와 기상과 기후를 연구하며 각 분야 물리학으로 전개되었고 본서는 이런 물리학 각 분야의 연구를 전하기도 한다. 인간의 문화가 환경과 생태계를 망치기도 하고, 인간의 기술이 그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확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예술을 감상하는데도 과학은 감상의 눈을 갖추게 한다는 걸 깨우치기도 했다. 모나리자를 언급하며 저자는 대기 원근법을 설명한다. 원근법은 2차원 평면에 입체감과 거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대기 원근법은 빛과 대기가 만나 일으키는 다양한 광학 현상을 통해 거리감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까운 것은 뚜렷하고 먼 것은 흐리게 보이는 것이 대기 원근법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그리고 탄소는 그 원소가 구조에 따라 흑연이 되기도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그 다이아몬드와 같은 구조가 그래핀을 이루기도 기둥 모양의 탄소나노튜브가 되기도 축구공 모양의 플러렌이 되기도 한다. 황금도 질산과 염산을 섞은 왕수로 녹여 자주색 금을 만들 수 있다. 로마인들은 이걸 4세기경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이아몬드에 대해 개인적인 알음알이를 덧붙이자면 흑연에 압력과 열을 가하면 다이아몬드가 되지만 그보다 더한 압력과 열을 가하면 다시 다이아몬드는 빛과 모양을 잃는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는 섭씨 400도에서 완전연소해 재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황금도 다이아몬드도 영원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붓다의 말씀처럼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것이다.

 

거미줄의 진동을 음악으로 변주하는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협업이 2018년 있었다. 이제는 명백히 인간 중심 사고만으로 인간은 세계를 보려하지 않는다. 분명 인간으로서 인간의 감각과 인식과 사고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입장과 다른 시각으로 세계와 자신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전쟁과 충돌과 분열과 부패가 만연한 시절에도 사람들은 절망만 하고 있기보다 세계와 인류와 자신에게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리라. 타자의 입장에서 세계와 스스로를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는 존재라면 적어도 암이나 바이러스는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인류 자신에게 희망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다시금 자신을 재정의하려 할 때 이런 긍정성도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감상평

 

우리는 제도에 대한 적용이나 인간의 철학에 확장을 위해서라는 통합적인 의도 없이 순수 자연과학이나 응용과학을 배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한 분야의 지적 성취는 확장된 사유와 파급력 큰 정서 함양을 불러온다. 우리는 배우는 만큼 성장하고 우리가 딛고 선 높이가 달라진다. 거인의 어깨는 다름 아닌 지식과 사유를 통한 지혜를 이르는 것이다. 자신의 지혜를 함양할 때야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보게 된다.

 

[물리학이 초대한 우주]는 저자의 감성과 지성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우주와 세계를 어찌 보아야 하는지, 우리 자신에 관해 어떤 관점과 사유를 거쳐야 하는지 가늠하게 한다. 이는 우리에게 어깨를 빌려주려는 거인이 어쩌면 하나님은 아닌가 하는 감상을 낳게 한다. 물리학은 세계를 우주를 진리를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다. 우주 창조자의 섭리는 그를 이해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차원을 거쳐 그분께로 나아가는 여러 길 중 하나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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