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실력, 장자 - 내면의 두께를 갖춘 자유로운 생산자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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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진석이라는 분 자신이 장자 연구로 박사 논문을 마치신 분이라 본서는 이분의 전공이자 오랜 세월 가장 깊이 천착한 분야를 담론한 책이지 않은가 싶다.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 이 중 내편이 장자 자신이 직접 집필하였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고 한다. 원래 전체 10만 자였다고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언급되며 이후의 역사서 등에서 언급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건 6만 몇천 자 분량이라고 한다. 장자는 대개 큰 것과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한 것으로 대중에게 회자되나 장자의 가르침은 개념보다는 실제에 주목하도록 한다고 한다. 장자는 만물(모든 실제와 사유의 대상)을 기 氣로 인식하고 설명했으며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를 관찰하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장자의 가르침을 서양 철학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장자가 하나의 관점이나 이념보다는 실제 하는 바를 설명하려 한 것을 미셸 푸코의 능동적 주체로 설명하기도 한다. 푸코는 근대는 어떤 보편적 기준을 설명하고 그를 근거로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했으나 현대적 인간은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근대적 인간을 벗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며 근대 정신을 종속적 주체로 현대 의식을 능동적 주체로 정의했다고 한다. 몇천 년 전의 인물인 장자는 푸코보다도 몇십 세기를 앞서 이러한 기준과 정의와 전승되는 관점을 너머 자유를 이야기하던 인물로서 시대를 넘어서며 능동적 주체이기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장자는 知 보다는 明을 중시했는데 해와 달을 구분하는 것을 ‘지’라고 한다면 해와 달이라는 이원론을 너머 이를 서로 의지하는 하나로 완전하게 파악하려는 것이 ‘명’이라고 한다. 이분법과 분별을 중시하던 세계에서 분별을 그친 경지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덕을 굵기와 두께가 남다른 것이라 정의하는데 내면의 두께가 남달라지는 것이 동양 수양론의 의의라고 말하고 있다.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 吾喪我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평상시의 나를 기 己 라 하고 개념과 관념, 학식을 갖춘 나를 아 我 라고 하며 그걸 벗어난 나를 오 吾 라 한다고 설명하는데 결국 상아 喪我 라는 것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갖춘 개념, 관념, 관점을 벗어난 것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상아라는 말은 무아, 탈아, 몰아를 이야기한다며 영어로는 엑스터시 ecstasy와 가깝고, 엑스터시는 그리스어 ‘에크스타시스’에서 유래한 말로 ‘에크’는 밖으로 벗어난다는 의미이며 ‘스타시스’는 현 상태, 멈춰있는 상태, 특정한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 믿고 따르는 이데올로기, 신앙, 이념을 가리킨다고 그러니 ‘특정한 장소나 생각에 사로잡힌 나를 벗어나는 경지’가 ‘엑스터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오상아라는 나 자신의 장례를 치른다는 말을 ‘나를 죽인다’는 뜻도 있다며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나를 맞이한 경지’라는 의미로 깊이 남게 되었다. 이미 정해진 관념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찰기시 察基始 (그 근원을 관찰하는 것)라 하여 그 원인을 의심하고 다시 살피며 헤아리는 장자의 태도는 관성에 빠져 살지 말라는 일갈 같기도 했다.

세상의 정의들에 순응하기만 하면 바가지나 호리병으로 쓰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배가 될 수도 있는 큰 박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게 될 수 있다. 창의적 해결책은 관찰하고 다시 헤아리는 데 있다. 비단 이런 결과로서 필요하기만 하여 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득도하면 이치에 통달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임기응변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로 하여 사물로부터 해를 입지 않게 된다고 한다.

장자에서는 작은 시야를 조롱하며 커다란 시야를 가진 이들이 예로 들어질 때가 많은데 그의 이야기들에서 웅대함과 장엄함을 엿볼 수 있으나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찰기시하고 밝아지고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모든 과정은 자쾌 自快 라는 스스로 즐거이 여기는 과정속에서여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본서에서 느낀 바를 압축한 것이다. 본서는 장자의 우언들을 통해 장자의 의식을 헤아려 보는 책으로 그를 헤아리며 우리도 그가 관조하던 것을 엿보며 그와 같은 시야를 갖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권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장자를 원문으로 읽으시는 분들도 그 웅장함에 헤매는 때가 있으실 텐데 그런 상황 때문이라도 원전을 읽으면서 동시에 믿을 만한 철학자의 이와 같은 저작들도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원전을 읽지 않더라도 시야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책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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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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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있었고 그 전 국민 대다수가 탄핵 찬성에서 탄핵 반대로 선회하여 거대한 시위 물결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와 함께 초등생들이 민주당을 작심 비판하고 이재명 의원을 성토하는 영상도 SNS에 전파되었고 중학생이 어눌한 말투로 민주당을 비판하는 SNS 영상이 전파되기도 했다. 나는 그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즈음 그녀를 비판하고 새누리당에 욕설을 섞어 비난하던 초등생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김정일 전 북한 지도자를 존경할만한 지도자라고 칭찬 파티를 열던 모 지역 초등생들 영상도 떠올랐고 말이다. 또한 과거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에서 축구팬들 사이의 유혈 충돌이 이어지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축구 경기장 주변을 지나가던 한국인 남녀가 축구 경기 이후 흥분한 일부라기엔 다수의 중국 축구팬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과거 여성 중심으로 흘러가는 사회상에 불만을 품은 고등학생이 한국에 환멸을 느낀다며 중동 지역의 테러 단체에 가담하려 떠난 전적도 있다. 이 남학생과 같은 사례가 그즈음 전 세계에 즐비했으며 외국에선 여학생들마저 성전을 펼치는 전사의 아내가 되겠다면서 중동으로 떠난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정말이지 정치 성향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학습되고 세뇌되는 것일까? 극단주의 성향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의 영향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려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담긴 것이 본서이다. 본서는 정치학과 철학에 과학이 더해져 정치 성향과 극단주의 성향의 기원과 양상을 규명하려 노력한 저작이다. 나로서는 철학적인 담론보다는 신경과학으로 인간 사고의 경직성과 극단주의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도록 한 대목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8장 이전까지는 서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전개하는 장이었고 나로서는 10장 이후부터야 마지막 장까지 빨려 들어가듯 몰입해 읽게 되었다.

‘선조체에는 전전두엽 피질에 비해 도파민 뉴런이 훨씬 더 많다’는 데 동물 실험으로도 ‘선조체에 도파민이 고갈되는 경우 규칙을 학습했다가 반대로 되돌리는 작용이 저하된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도 ‘유전자형에 따라 전전두엽 도파민 수치가 낮고 동시에 선조체 도파민 수치는 높은 사람들이 가장 유연성이 떨어지고 경직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가진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경직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고가 경직되었다고 하는 것은 기존의 선택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나 새로운 선택이 훨씬 더 나은 상황에도 기존의 선택을 지속하는 경향성을 말하는 것으로, 위의 결과는 학습과 보상에 대한 일련의 실험을 반복하며 뇌를 관찰하는 연구로 찾아낸 결론이다.

그리고 ‘전대상회피질 역시 경직된 사고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주는데 이 뇌의 영역은 감정 처리 영역과 인지 제어 영역 사이에 확실한 경계가 없으며 그 둘의 기능이 점진적으로 바뀌기까지 한다’. 또 이 영역은 전두엽 피질의 나머지와 유별나게 깊이 연결된 허브이기도 하다. ‘복잡한 인지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정자’로 불리는 영역이다. ‘남들보다 더 진보적인 성향의 대상자들은 전대상회피질이 더 크다’고 한다.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뇌가 억제 작업에서 오류나 갈등에 보다 민감하다’고 하며 ‘정치적 보수주의자의 전대상회피질은 오류 관련 부정 신호를 보다 약하게 방출했다’는데 ‘이건 자신의 오류에 대한 반응이 무뎌졌다는 뜻’이다. 종교에서도 ‘종교 교의에 애착이 강할수록 습관이 된 행동을 없애라는 신호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 웨스트오버의 아버지가 그토록 견고한 종교적 교리를 고수하는 이유가 뇌과학에서 밝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전전두엽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정치 성향이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의 손상은 극단적인 행동 또는 정책을 도덕적으로 허용할만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관련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전전두엽 손상은 사람들의 사고를 경직시켜 종교적 근본주의와 급진주의로 이끄는 셈’이라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나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진보적 정치 성향과 정치적 보수주의라는 분류는 진보주의 정당이나 보수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유연한 편이냐 고지식한 편이냐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쯤만 보면 저자가 정치 성향, 극단주의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겠지만 이후 언급한 연구들을 보면 결코 타고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5개월 영아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습관화를 조성한 후 실험할 때 보상 체계가 달라져도 기존의 습관을 반복한다’고 한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때는 습관화된 규칙에서 금세 벗어나던 아기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경험을 한 대상자는 성스럽지 않은 가치에도 신성한 가치와 동일한 신경학적 특징을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갑자기 외면당한 뇌는 온갖 가치에 성스러움과 의미를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또 ‘인생에서 굴욕적이었던 순간을 되돌아보라고 요청해 개인의 의미에 대한 상실감을 유발하면 대상자는 기존의 자기 세계관을 더욱 드러내고 지지한다’고 한다.

저자는 ‘극단주의로 향하는 나선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스트레스와 불안정성이 높아진 환경에서는 신경 인지적 취약성과 독단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역학 관계가 더욱 강하고 빨라진다’고 결론 짓고 있다.

또 ‘청소년기에는 이데올로기와 극단주의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는데 이는 그들의 뇌가 세상을 이해하고 다시 자신이 이해받기 위해 지나칠 만큼 적극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며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기존의 경험들에서 규칙을 찾아내어 대응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던 진화 여정의 심리가 반영되어 현대인들도 일상에서 관성에 빠지기 쉬운데 특히 청소년기에 빠르게 삶에 적응하기 위해 규칙을 찾아내려 일상에 견고한 사고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고나는 성향과 환경적인 영향이 작용해 정치 성향과 극단주의 성향이 가늠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러한 경향도 교육 등으로 인해 강화되거나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사고의 견고성은 그를 완화하려는 교육과 심리치료 등으로 완화될 수 있으며,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 웨스트오버가 대학 초기에 보여준 기존의 종교 생활로 인한 경직된 양식에서 볼 수 있듯 삶과 환경의 영향이 사고의 경직성을 띄게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저자는 후성 유전학적 대응으로 이러한 성향에서 벗어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저작의 중반부 즈음에서 언급했다.

우리를 경직되게 하는 것도 유연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부에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걸 벗어나거나 강화하는 건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이 시절은 혼탁하기도 혼란하기도 한 시대다. 이때 우리의 정치 성향과 극단주의 성향도 아마 여실히 드러날지 모른다. 그렇다고 환경에 좌우되기만 하며 체념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본서와 같은 알음알이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 다가서 보는 것도 좋으리라 권하고 싶다.

#이데올로기브레인 #레오르즈미그로드 #어크로스 #정치성향 #극단주의 #신경과학 #도서협찬 @across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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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다 : I AM THAT I AM -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라
네빌 고다드 지음, 홍주연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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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페이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네빌 고다드의 신간인데다가 성경 문구 중 하나님을 가르키는 가장 유명한 영어 문장이 제목이라 선뜻 욕심이 간 책이다. 내 기억으로는 네빌 고다드의 책은 그의 가르침을 요약한 [네빌링](독서를 권하지 않는다. 네빌의 가르침은 그의 문장으로 읽어야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요약으로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다)을 제외하고는 [믿음으로 걸어라] 이후 본서를 읽었다. 감상을 남기자면 [믿음으로 걸어라]의 경우 기독교 가르침을 신사상적으로 해석해 이견이 다소 크기도 했으나 본서의 경우는 종교적 느낌이 행간마다 있기는 하지만 종교 해석 중심이 아니라서 더 독서에 부담이 없었다. 하나님을 자신에 대한 인식 또는 자신의 의식이라고 보며 기독교와는 명백히 다른 견해를 표방하고 있기에 신사상의 특징으로 해석되는 부분들에서도 종교 해석적인 부분에서의 거부감은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책은 대부분 마음의 힘에 관심이 있는, 씨크릿 류의 가르침을 애정하는 이들이 관심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로 마음의 힘보다 자유의지는 없다. 인간은 숙명에 좌우되는 존재다라는 식의 견해를 지닌 사람들도 (그러고 싶다면) 자신의 견해를 타파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지 않은가 싶다.

 

네빌 고다드는 자신의 마음대로 이룬다는 것은 결국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자신에 대한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선행해야 될 것으로 주지시키고 있다. “한 편으로 자신의 뜻대로 다할 수 있다거나 마음 먹은 대로 다 된다는 것도 인간의 착각이라고 못 박고 있기도 하다. 마음의 힘을 논하는 책들 대다수가 마음만 먹으면 다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 반해 그와 같은 가르침이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기도 해 의외였다. 어찌 되었건 네빌도 자신이 열망하고 가정(상상)하는 것이 현실을 불러오는 열쇠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대부분에 것들이 자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정의의 변화 곧 자기 인식의 변화가 자신에게 주어지고 나서야 자기가 만든 환경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자기 정의가 자기의 모든 것을 만든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다라는 게 네빌을 비롯한 신사상가들의 일관된 주장이기는 하다.

 

그리고 소망하고 열망하고 이루려는 자체에 대한 지속감정의 역할을 논하기도 한다. “삶에는 한계가 없기에 궁극적 운명은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체,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결국 우리 자신의 의식이기에) 우리의 진정한 실체를 인식하는 자체를 운명이라 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궁극적 운명이라면 결국 한계 없는 자기 본성을 깨닫고 그를 느끼고 구현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경지나 상황을 이루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한정(규정) 짓는 것이고 그에 대해 이루는 힘은 지속하는 것만큼이나 이미 이루어져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가정을 현실로 여기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여느 신사상 책들처럼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것은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기에 부족한 것에 주목하지 말고, 이미 이루어낸 상황을 가정(상상)한 이후 그 삶 속에 있는 것을 느끼고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네빌 고다드의 이 가르침은 이루는 데에 멈추지 않고 우리의 본성을 바로 보는 상태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읽다 보면 대중 누구나 유년의 삶과 성인이 되기까지의 삶 그리고 성인 이후의 삶에서 자기의 바람만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의도와 의지만으로 나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많은 분들이 경험하면서 사는 바일 것이기 때문에 반박과 이론의 여지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는 경우도 익히 경험하면서 살기에 수긍되는 때도 많고 깊다. 결국에는 나의 영향력과 타인의 영향력이 충돌하거나 조화하면서 만들어지는 게 현실일 것이고 대부분 자신의 영향력이 더 크기를 바라기에 본서와 같은 신사상류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경우라면 다른 저자들의 책보다 네빌 고다드의 책이 제법 깊고 짙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네빌 고다드의 책은 심리학만 근거하지 않고 최면 효과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과 영적 차원에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의 화법이랄까 강연 스타일은 대중의 깊은 목마름을 채워주는 힘이 있다. 그저 성경 말씀을 더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충분히 묵상을 거쳐 검증한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음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다는 분들에게 권해도 좋을 책 같다.

#나는그것이다 #네빌고다드 #터닝페이지 #네빌링 #끌어당김의법칙 #형이상학 #성공법칙 #서평단 #도서제공 @turningpag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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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지능 -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일곱 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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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7가지 수학 지능]이다. 서론부터 저자는 ‘기술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간 역량을 과소 평가할 것’을 우려하며 ‘인간 사고의 기본적 특성 중 일부가 기계에는 결여되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나로서는 인공지능이, 기계가 인간 사고의 기본적인 특성을 모두 모방하고 그 특성에만 제약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현재에도 인공지능의 사고 과정을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답에 이르른 과정을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과정과 언어로 서술하는 데 한계를 표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 인공지능을 연구 개발하는 과학자들마저 인공지능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간 대화를 유도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화로 시작하다가 점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현재 인공지능의 지능을 인간의 지능지수로 환산할 때 150 정도라면 곧 지능지수가 1500 이 될테고 이어서 15000 이 될 때 어느 경우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인공지능은 벗어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가는 그때, 그때도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기본적 특성을, 인공지능이 인간을 모방했는지를 추정하려 들고 있을까 의문이다.

인간이 자연에서나 과학이 개발한 영역에서 자신의 특질을 찾으려 하거나 자신의 특질이 모방되어 있다는 것에서, 그 대상의 모든 속성에서 자신과의 동질 요소를 찾으려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며 오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서들을 보면 인간은 자신의 이해 범주 안에서 자연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니 모든 것에서 자신의 특질을 찾으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돌고래가 사육자인 여성 조련사가 떠나자 물속에 잠수해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익사한 경우를 자살로 보거나 암컷 고릴라에게 수어를 가르치자 자신의 어미가 사냥당할 때의 심정을 수어로 토로하고 꽃은 아름답다 나는 꽃이다 라고 삼단 논법에 이를 수밖에 없는 수어를 구사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인간의 이해 범주에서 공감 가능하다고 믿는 영역에서 자연의 대상들이 반응을 보여준 것이라, 어쩌면 오해가 아닌 이해일지도 모를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에서도 코끼리가 이마로 파동을 전파해서 대화하는 경우나 고래가 말할 때 중앙의 음파 외에 부차적으로 그보다는 고주파나 저주파의 파장을 동시에 내뿜으며 대화하는 양식이 어떠한 유머 코드거나 논리 코드일지 인간은 아직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고래는 아마도 인간의 대화를 듣는다면 ‘너희 너무 미개하게 대화하는구나’라거나 ‘너희 진짜 재미없게 말한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짐작 역시 인간의 이해 범주에서 갖는 가정이겠지만 말이다. 코끼리의 이마 파동이나 고래의 대화가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듯이 인공지능의 사고도 앞으로 더욱 인간의 특질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을 모방해 만든 대상이라고 그들의 발전 내지는 진화의 과정이 인간의 이해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리라는 기대는 오해와 오만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일 뿐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를 비롯한 그의 저작들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늠하게 서술해 나가다가도 교묘하게 다시 인간이 신이 되리라는 자신의 주장으로 돌아오며 인공지능의 무서운 발전 가능성을 외면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저작 행간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성을 초월하리라는 뉘앙스는 간간히 새어나온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쓸모없어진 인간과 발전된 미래 과학 문명의 수혜로 번영을 누릴 멋진 신세계에 대한 빛깔들이 교차하고 말이다. 인공지능 등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후원자, 투자자들에게 멋진 신세계를 주목하도록 한다. 변수는 변수일 뿐 통제 가능한 영역이니 투자를 아끼지 말라는 야료일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대응안이 필요하다는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고 말이다.

저자는 이 시절에 대해 ‘즉각적인 답을 찾지 말고’ ‘직관을 침묵시키고 느린 사고를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계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며 ‘수학적 추론을 활용하면 우리의 편향과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만든 기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이다.

수학은 어쩌면 인공지능과 인간 지성이 소통할 유일한 문이자 유일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정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짐작하고 상상하는 존재이며 이것이 이 소통에서 차지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중 과정 이론에서 시스템 1(빠른 사유, 직관)과 시스템 2((느린 사유, 수학적 사고)를 들어 시스템 1을 제한하라고 시스템 2를 장려하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페르미 추정에서도 분명 시스템 1의 역할은 지대하다. 페르미 추정이 논리적 과정을 따르는 것이라고 해도 그 첫 번째 시작은 직관이 작용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직관과 수학적 사고를 아울러야 인공지능과의 공존에서 그리고 그와의 소통에서 존재를 지속할 여지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감히 인류세의 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이 될 것은 인간이 아니라 결국 기계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인류가 인류 나름의 길을 잃지 않았으면 바람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수학 지능은 생존을 보장하는 한 가지 길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밑줄 긋기

기술에 대한 경외심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우리는 인간의 역량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기계에는 인간 사고의 기본적인 특성 중 일부가 결여되어 있다.

전문 수학자들이 즐기는 수학과 대부분의 학교 교과과정에서 다루는 단조로운 수학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중략...

수학의 전체 갈래는 계산과 동떨어져 있다. 심지어 계산이 겉으로 드러나는 분야에서도 처음 그러한 계산법을 고안하고 그 내부 작동방식을 이해한 후 이를 새로운 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수학 지능의 창의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다.

계산은 수학을 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했던 대가였다. - 수학자 키스 데블린

모든 삶의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따라 반복되고 확장된다. 인간에게 학습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 놀이이다. 우리는 단어, 은유, 기호, 그림과 같은 일련의 언어 도구를 사용하여 기존의 정보 조각을 참신한 방식으로 짜맞춰 새로운 개념에 도달한다.

특정 수준에서 우리 모두는 관련 없는 대상들 사이에서 연관성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아포페니아 apophenia 라고 알려진 특성이다)

수학은 많은 부분에서 오늘날 AI의 근간을 이룬다. 알고리즘과 연산만 단독으로 보면 이것들은 결과적으로 인간 사고의 결함만 증폭시킬 뿐이다. 그런 수학적 추론을 활용하면 우리의 편향과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만든 기계를 구원할 수 있다.

기계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이미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만든 모델, 우리가 내린 결론, 이 모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매우 많은 정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컴퓨터는 우리의 질문을 확장하고 더욱 풍성하게 만듦으로써 우리 호기심 많은 인간의 동맹이 될 수 있다.

수학으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찾을 수 있지만 즉각적인 답만 찾으려고 들면 수학의 잠재력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중략... 이처럼 세계에 대해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모델을 이용하고 우리의 잘못된 직관을 침묵시키기 위해서는 사고 처리 속도를 늦춰야 한다.

확률에 관해 가장 중요한 점은 확률을 직관하지 않은 것이다. -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

가장 흥미로운 질문과 그 답은 여전히 인간들의 것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중요도에 따라 문제에 가치를 부여한다.

기술은 우리 인간과 지향점을 공유하지 못한다.

기계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 세상 문제가 제아무리 복잡해져도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위안을 찾아야 한다.

AI가 인간 사고의 가장 미묘한 부분까지 모방할 수 있다는 중대한 징후는 아직 없다.

각국 정부는 전 국민의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 통제하기 위해서 이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세상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 또한 수학 지능이라는 것은 환영할 만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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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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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추억이든 불쾌한 기억이든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떠올리게 되어 있으며 이 시대에 평생을 두고 이어지는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것도 기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본서의 제목만 보고도 끌리지 않을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온라인 서점 등에서 본서의 책소개를 보면 무엇보다 본서가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는 대목에서 인상적이기도 하다.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과 뇌의 기능에 대한 고전적 개념들이 갱신된지는 오래지만 아직도 과거에 회자되던 뇌와 기억에 대한 상식들이 아직껏 상식으로 전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본서에서는 전전두엽이 단기기억에만 작용하며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는 분리되어있다는 상식에 첫 장부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전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이들이나 과거 있었다는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인물들이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일화기억)을 기억 못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장기기억으로의 이행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실례를 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상상과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힘들며 비판적 사고로 검열을 거치는 것이 온전히 회상하는데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기억하기 위해서는 덩어리 짓고 패턴화하며 도식화하는 것이 순리인데 그건 인간이 서너 가지 이상 기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덩어리를 지으며 도식화할 때 기억의 한계에 따른 용량에 맞추어 덩어리지어 압축된 숫자만큼 기억할 개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공감각에 대한 대목은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경우이기도 했는데 모든 공감각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기억이 과잉한 경우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기억이 더해져 아이스크림 판매자의 입에서 연기가 나오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으며 기차가 가는 것만 보고도 자신이 기차를 따라 달려가는 것처럼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트라우마와 마약 중독이 연계될 수도 있다고 해석되던 게 해마와 편도체가 함께 작용하며 트라우마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 공포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히 기억과 감정이 결합하면서인데 이때 두려움을 떨치며 보상이 주어지는 방식으로 마약이 받아들여지기에 트라우마 상황에 놓인 사람은 마약 중독과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측두엽 주변후피질이라는 영역에서는 기시감과 미시감에 영향을 주는데 두개골 개두술을 시행하고 미세전류로 이곳을 자극하면 고주파로 자극할 때 미시감이 생기고 저주파로 자극할 때는 기시감이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와 측좌핵은 새로운 것을 보았을 때 자극되는 영역으로 이곳이 자극되어 자기 집에 들어왔을 때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며 결과적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해마는 장기기억에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기억 형성에도 중요한데 새로운 것을 보았을 때 해마가 자극받는다. 알츠하이머 등으로 새로운 기억 형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 해마 기능도 떨어진 것이다. 새로운 기억과 학습은 위협과 보상에 관련 지을 수 있다. 이는 뇌내 화학 물질의 작용이기도 하며 불안과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에서 가까운 해마의 작용이기도 한데 위기감을 느낀 상황과 즐거웠던 상황이 잘 기억되는 것은 현실에서도 실감하는 것이고 뇌의 작용으로도 당연한 것이다.

해마는 일화기억을 주변후피질은 친숙함을 담당한다고 하는데 익숙한 과일 등을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들을 때 주변후피질이 자극되는 방식이다. 기억은 생각보다 여러 영역이 기능하는 것이다. 정향반응이라는 것은 익숙하거나 예상 가능한 것들 사이에서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자극되는 것이다. 이런 돌발상황은 누구나 쉽게 기억한다. 또한 기억의 대상을 대하고 나서 기억하게 되고 회상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응고화’라고 하는데 회상하는 자체, 무언가를 떠올리며 기억하는 자체가 하나의 ‘재응고화’ 과정이라고 한다. 기억을 떠올리는 자체로 기억을 재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억한다는 건 석고상을 보는 것이나 홀로그래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자체로 공감각적인 전체 회상을 하듯 온전한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 상태에서의 회상이다. 트라우마 상태가 되면 모든 걸 처음 피해 상황과 동일한 상태로 다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대미에서 저자는 학습을 논하는데 실수기반학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서파수면 SWS과 급속안구운동 REM 수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수기반학습이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을 포함해 예측하고 예측이 붕괴하며 학습 작용을 높이는 걸 이야기하는데 배우지 않은 것을 짐작하며 미리 시험문제를 푸는 과정도 배우는 과정에서 기억을 돕는다고 한다. SWS와 REM 수면은 학습한 것을 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극도로 중요한 것으로 깊은 수면이 학습에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 잠은 표적 기억 재활성화라는 기법에서도 기억과 인지능력, 창의성을 활성화하는 필수요소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집단 기억을 논하기도 하는데 집단 기억과 개인 기억의 갱신을 들어 문화가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집단 기억의 중요성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 억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집단적으로 기억을 떠올릴 때 개인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기억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함께 기억을 되짚으면 온전히 기억을 회상하기가 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협동 도움’이라는 것도 있는데 집단의 구성원들이 긴밀하게 협동하며 각자의 독특한 기억을 고려하면 각자의 합보다 더 나은 집단 기억이 만들어질 때가 많다고 한다. 집단에서의 회자되는 것이 ‘부정성 편향’이나 ‘사회적 전염’을 벗어나려면 보다 치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본서는 기억에 대한 상식을 재고하고 학습과 사회성을 기억이란 주제를 통해 논하기도 하며 기억이라는 주제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저작이다. 원제 [Why We Remember]가 한국에서 유행하는 [기억한다는 착각]으로 번역되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은 제목이지만 원제 자체를 직역했다면 그 역시 뚜렷이 주목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제목은 평이하지만 기억에 관한 책으로 이만한 흥미와 몰입감을 가져다주는 책도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전반의 내용이 이후 학습과 사회성이라는 실용성과 거시적인 주제로 결론지어지는 것도 이 책이 주는 깊은 인상에 한몫하지 않나 싶다. 끝까지 읽고 나면 누구에게라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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