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극부층에 대한 비판이 담긴 본서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소개하는 1부에서는 벌이, 투자 등을 정의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벌이를 즉 돈을 번다는 개념을 가치나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보상을 받는 것으로 본다. 극부층은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기반을 얻고 타인에게 노동을 청구할 수 있는 청구권인 돈을 획득하니 극부층에게 번다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투자라는 개념도 사회 인프라나, 교육, 기술 개선 등과 같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과 투기적 투자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저자는 불로소득도 정당한 불로소득과 추출하는 불로소득으로 나누어 보는데 기초생활비와 같은 복지비용과 태생적(부자의 자녀로 태어남)으로 얻은 자산을 통해 이후 쉽게 버는 것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추출하는 불로소득을 얻는 방법으로 지대, 이자,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세분화한다. 지대를 소프트웨어 제작이나 지적재산권 같은 개념까지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디즈니사는 지적재산권이 없는 [피노키오], [신데렐라],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해당 애니메이션의 판권을 더욱더 연장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우리의 모든 성취는 이전 것들을 훔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하기도 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 소프트웨어들의 특허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송을 거듭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이자에 대해서는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이자를 많이 받는데 내가 보기에도 이건 니 담보 내놔라로 보였다. 대출 이자를 갚기가 부담스러울 사람에게 담보를 빼앗을 요량이 아니면 더 갚기 어려워지라고 이자를 높일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더 부유층일수록 이자를 많이 받아야 할 텐데 이자율은 임금이 낮은 사람일수록 높다는 게 불합리해 보인다. 그리고 나이지리아가 1985년까지 국제 금융기구들에 받은 대출이 50억 원 일 뿐이었는데도 160억 원을 갚고 나서도 280억 원의 빚이 남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복리 제도는 빈곤국가뿐만이 아니라 빈곤계층 전체의 골수를 빨아 먹는 정책이 아닌가 싶다. 이자를 받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사회상도 비판하는데 기회비용을 볼 때 당연히 이자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다른 데 투자했으면 벌었을 가능성만 있는 게 아니라 벌었을지 잃었을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도 그저 비용 투자만 해서 아이디어와 제작, 마케팅, 노동력 모두를 동원 받으며 이익의 절대다수를 자본가가 자기자본(사실 법인에서의 자본금은 공금이 아닌가 싶다. 자본가의 주식도 증여와 상속이 되는 자체가 문제이지 않은가 싶다. )으로 삼을 수 있는 경우가 이전부터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본서에서는 자본가의 생산에 대한 투자도 불로소득과 다르지 않게 보았다.

 

여타의 투자 같은 경우도 극부층은 내부자 거래와 시장 조작할 능력이 된다는 데 문제가 크게 인식되었다. 이를 테면 팬데믹 채권같은 경우 팬데믹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가에 기존에 없던 것이 창조된 것이고, 초극부층들은 용케도 코로나19 백신 제작 제약회사에 투자를 했으며, 미국 CDC는 용케도 중국 우한 연구소에 코로나19 연구에 비용을 지원했으며 인간이 더 걸리기 쉽게 변이하는 기능획득 연구비까지 지원했다.(미국 청문회에서 이미 확인된 사항을 언급하는 것이다) 대중의 죽음까지도 어쩌면 기획되었을지 모르는 시대라는 말이다. 대량 살상으로 초극부층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부층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냐는 옹호론에도 저자는 맞불을 놓는데 대부분의 일자리는 (근로자인) 대중이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창출된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롯데시네마, 리바이스, 나이키 등등등 어느 매장이든 어느 서비스든 대중이 지불을 하니까 고용을 하고 생산과 판매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부자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개개인의 필요와 소비가 모여 일자리는 창출되어 온 것이다.

 

부자들이 대대적으로 대중의 골수를 뽑아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하면서 이윤대비 약소한 기부만으로 명망을 얻는 것이 본서를 읽다 보면 기가 막힌 현실이라고 와닿게 된다. 부자에 대해 적대적인 관점을 주장하는 책인데 대부분이 깊이 와닿는다. 이런 시각도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2년 미국에서 상위 1퍼센트에 들려면, 적어도 세전 소득 기준으로 최소한 393,941달러를 벌어야 했다. 그런데 상위 1퍼센트의 평균소득은 126만 달러에 달했다. 상위 1퍼센트 내에서도 소득 분배는 매우 불평등하다. 상위 0.1퍼센트에 들려면 적어도 155만 달러의 소득이 필요하고, 상위 0.01퍼센트에 들려면, 적어도 720만 달러가 필요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40년간 상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더 빠르게 증가했다. - 34~

 

부의 불균형을 이야기하며 자료를 제시하는 책들은 더러 있겠지만 본서의 자료도 눈에 들어오는 자료들이다. 위의 자료는 과거 미국의 통계를 인용한 자료겠고 영국의 자료를 인용한 경우를 보면 ‘1997980억 파운드였던 영국 최고 부자 1,000명이 소유한 자산이 20084,130억 파운드로, 20134,500억 파운드로, 20145,190억 파운드로 증가에 증가를 거듭했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미국의 최상위층 부자들의 부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도 많은 분이 아실 텐데 이들은 팬데믹이 오기 전 팬데믹 채권을 만들어내 투자했고 용케도 mRNA 백신의 개발을 예측하고는 생산 제약사들에 미리 투자하고 막대한 비용을 벌어들였다.

 

저자는 본서에서 위기에 책임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소득대비 희생이 더 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이 절대적으로 수긍이 가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팬데믹의 예만이 아니라 경제난이라도 닥칠 때면 생계를 잃고 자살을 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상위계층의 사람들은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세계는 극부층을 위해 셋팅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계화와 자유주의라는 것도 일부의 독점적 사익 추구를 위해 규제를 철폐하고 민영화를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성립해야 가능하다. 이 모두 근로자를 보호하고 갑의 이익과 을의 권리 사이의 균형을 지켜나가려는 모든 노력을 갑에게 유리하도록 뒤바꾸는 과정이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자유주의의 이념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 실업의 책임은 개인의 능력에 묻고 복지의 규모를 축소하기를 강요하며 개인의 설 자리와 자구력을 잃게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초극부층에게 권력과 부가 이동하는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을 물자의 제공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물자가 교환되고 교류되는 과정을 다룬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살기 위한 필수 자원들이 제공되는 과정에 도덕이 결여된다면 결국에는 대대적인 기아와 결핍이 일차적으로 일어나고 최후에는 대량살상이 기획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사회가 그 부담을 안게 된다고 할 때 자본을 가진 극부층이 그 부담을 경감시키려 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까닭에 저자가 말하는 도덕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절실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입부라는 1장만 읽고도 참 필요한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저작이다. 차분히 이어 읽어가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remy 2024-07-18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동네는 주식으로 부자 된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상위 1% 가 우리 동네에 밀집된 듯한 기분, 아니 사실일지도...)
Bull Market, 특히 Nasdaq 이 거의 역사상 최고점 기록갱신을 계속한
최근엔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돈이 복사기에서 찍힌 것처럼 불어나있다는
사람들의 Boasting 과 자랑이 심심치않게 들려오기때문에

2000년에 이 동네에 처음 이사와서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데 저만큼은 필요없지,
아무리 정신승리하며 마음을 다잡아도 부동산과 주식으로
진짜 돈벼락이 나만 비껴가며 일어나는 곳인 것 같아서

저는 경제학이나 주식 부동산 관련된 건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멀리하면서 그저 도 닦는 마음으로 문학소설만 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도덕적 경제학 같은 분야는 없습니다.



이하라 2024-07-18 16:40   좋아요 1 | URL
사회에 변화의 여지가 없다시피 할 때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재정적인 여유가 큰 이들과 접촉이 잦을 수 있을 수록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커지는 모양입니다.
저는 시골에 살다 보니 그런 심정을 크게 느낄 일이 적지만
도시에서 그것도 부유층 거주지라면 그럴 것 같습니다.

저도 경제적 여유를 찾기 위해 경제 관련 도서를 읽기보다는
사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이유로 이런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도덕 경제학이 없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이런 시기이기 때문에
경제학에 도덕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네요.

이콘만 넘쳐나는 사회 같지만 비합리적인 대중이
경제에서 도덕을 찾을 순간이 빨리 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이 달린 일 같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영혼을 타락한 신으로 보았다. 영혼은 무덤처럼신체 안에 갇혀 있으며, “영원한 환생의 주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보았다.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교는 영혼을 해방시키려면 정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플라톤도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자체 정화, 즉 이성을 통해 해방될 수 있고 신의 지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는 더 높은 불변의 층에 영원한 실재가 있다고 그것을 이데아 idea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쓴 용어는 에이도스 eidos이다. 이것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향연]을 통해 개별적인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사랑도 정화와 변환을 거쳐 이상적인 미의 심미적 명상(테오리아 theoria)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형상이 정신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자라투스트라처럼 정신적 삶의 목표를 추상적 존재에 대한 집중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명상을 통해 단일한 신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들의 위계를 상정하고 맨 꼭대기에 부동의 원동자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불멸이자 부동이며, 본질적으로 순수한 사유지만, 생각의 주체인 동시에 생각 자체이기도 하다. 그 원동자는 우주의 모든 변화와 흐름을 유발하며, 모든 것이 하나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신적 실체이므로 다른 동물과 식물보다 우위에 있다.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대사슬에 최초 창안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동의 원동자 아래 인간이 있고 그 아래 동물과 식물이 차례로 존재하는 존재 가치의 피라미드를 상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유의 목적이 불멸, 일종의 구원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경우처럼 사유는 그 자체로 정화의 형태로 여겨졌으나 테오리아, 명상은 논리적 추론만이 아니라 엑스터시적 자아초월을 유발하는 훈련된 직관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힌두교를 기원으로 보는 수행의 체계와 유불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행의 전승이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를 통해서도 유럽의 신앙과 종교적 수행체계가 동양의 그것과 다른 면보다 같은 면이 더 크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 유사성이 그리스 철학자들의 테오리아까지 닿아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지경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유대교와 힌두교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어폐가 있다고 본다. 유대교와 힌두교가 기복신앙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유대교가 기독교로 이어지고 카톨릭이 타락하여 이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상(성모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 십자가) 곧 이미지화된 대상까지 신앙하도록 하고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유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힌두교와 유사성을 찾을 구석 이를테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인도의 세 신(브라흐마, 비쉬느, 시바의 창조신, 유지신, 파괴신의 삼위를 신앙하니) 개념이 유사하고 성상을 통해 신앙해 나가는 데는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대교는 초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형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오로지 유일한 창조신을 신앙한다. 유사성을 억지스럽게 찾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 힌두교는 브라흐마를 개체아인 아트만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신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이후 카발라 철학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신과 인간을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완벽히 타자화했다. 힌두교와 유대교는 유사하다기보다 전혀 다른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맞지 않나 생각된다. 나의 근원이 신성이라고 보는 것과 나는 그저 신이 만든 피조물일 뿐이라고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카발라 철학에 이르면 하나님의 숨 곧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불어넣어져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고 보니 힌두교의 가르침과 유사해지기는 하지만 이번 장에서 언급되는 시대의 유대교 상식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이 외에도 공자와 제자백가 그리고 도교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동양인 독자로서는 너무도 상식선에서의 내용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의책장 2022-12-24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춥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Merry Christmas🎄

이하라 2022-12-24 17:48   좋아요 1 | URL
하나님께서도 포근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scott 2022-12-25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이하라 2022-12-25 06:31   좋아요 0 | URL
스콧님도 메리크리스미스^^
 















[5. 제사, 영혼, 구세주 : ‘영적 돌파구’]라는 장에서는 슬쩍 엿보기라도 한 익숙한 내용들이 등장해서 기분 좋은 독서였다. 무엇보다 본서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주제로 이제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 같아 기분 전환이 되는 독서였다.

 

제물(인신 제사를 포함한)에 대한 대목과 대모신, 황소, 신성한 돌에 대한 대목은 나름 익숙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의례와 원형에 대해서는 죠셉 캠벨의 저작들과 융의 저작들, 인도 철학과 상징에 관련한 저작들을 통해 다소 눈에 익은 내용들이다. 저자는 몇몇 상징들을 고대의 상징들 외에 그리스 로마의 산화나 그리스도교에서 비슷한 맥락을 찾고 있다. 나로서는 익숙한 한단고기(환단고기)와 동이족 신화 전승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혼에 대한 관념의 발전을 다루며 고대 이집트의 kaba나 메소포타미아의 나피스투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서는데 나피스투가 신체 일부인 목구멍을 상징하는 말에서 확장되어 숨, 생명, 영혼을 가리키게 되었다는 데서 우리 선도의 달굼(수행)에서의 용어들이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에서 선도의 특정 지점을 이르는 말이 된 것이나, 내면을 뜻하는 ’, 처음을 뜻하는 ’, 태양을 뜻하는 가 합쳐져 이하라마음이 되었듯, 관념과 지칭의 융합이 또 다른 관념을 낳는 것처럼 애초에 형이상학적 관념에서 시작되어 목구멍을 가르키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인도의 [리그베다]의 기원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원시 인도아리아인은 흑해와 카스피 해, 카스피 해와 아랄 해에 걸친 스텝, 혹은 중앙아시아의 다른 지역 출신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책이 쓰여지던 시점에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고향은 볼가 강 하류의 아바셰보 문화권과 우랄 산맥 남쪽의 신타슈타-아르카임 문화권이라고 생각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인도학 교수 아스코 파르폴라는 말의 사육과 인도아리아어는 기원전 1600년경에 남쪽으로 내려가 파키스탄 북부의 간다라 문화에 전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리그베다]를 만든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인도아리안의 기원에 대한 주장으로는, 또 한번 더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연구로는 리그베다에 나오는 천체의 변화를 연구한 결과 이 문헌의 연대가 전통적으로 알려진 기원전 1900~1200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한다. 앞선 주장과는 다르게 오히려 이들은 인도 북서부의 토착민이고 그곳에서 인도유럽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럽인들 주장으로는 인도아리아인은 유럽이 기원이고 인도 중심의 주장으로는 오히려 인도 북서부가 인도유럽어의 기원이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아마도 이 사안에 대해 각 나라에서 각자 지들 좋을 대로 학교 교육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아전인수가 민족의 기원에도 늘 존재해 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본서에서는 인도아리아인의 신체, 아수, 마나 이 세 가지 분류 중 아수라는 생명 원리를 그리스의 프시케(머릿속에 존재하는 생명 원리, 사후에 신체의 무형적 형태인 에이돌론이 된다)에 대응하고 마나라는 정신, 의지, 감정이 자리하는 곳을 그리스의 티모스(프레네 또는 심장에 존재하는 정신이나 의식)에 대응하고 있는데 영혼을 본질적 자아로 보는 생각과 어휘는 없는 듯하다고 단정하고 있다. 프라나와 에 대입되는 아수에 해당할 순우리말은 모르겠지만 마나는 분명 순우리말 마음과 동일한 의미이다.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말은 알타이어족으로 이전의 연구로는 우랄산맥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까지의 연구 발전으로는 오히려 중국 요하 지역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었다고 하지 않나? 인도유럽어족인 인도아리아어도 인도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앞선 두 주장 중 후자의 연구가 [리그베다] 속 천체 변화를 연구하여 나온 과학적 주장인 바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기존의 인류학 등은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기원했고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믿는 창조론자들은 중앙아시아에 에덴이 있었고 그곳이 인류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초고대 인류의 증거가 고고학적 발굴로 확인된다면 기존의 학문들은 총체적 전환점을 맞지 않을까 싶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리스 철학부터 들어서며 진정한 이 책의 본론인 생각의 역사들이 서술된다. 기원전 6세기가 지나면서 프시케가 본질적인 자아인 동시에 의식과 생명의 원리가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핀다로스는 프시케가 신에 근원을 두고 있어 불사라고 믿었다. 영혼 불멸이라는 생각을 핀다로스 외에도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와 그 시대에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서 활동했던 다른 그리스인들도 공유했다. (고대에는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가 마그나그라이키아라고 불리던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플라톤은 모두 환생과 윤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핀다로스처럼 영혼의 근원이 신에게 있다고 믿었고, 여기서 영혼이 몸보다 더 고귀하다는 관념이 싹텄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테네인들의 견해는 영혼이 산 사람에게 적대적인 불쾌한 것이라고 여겼단다. 그리스인들은 사후에 삶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스라엘 종교가 처음 히브리 성서에 등장할 때는 최소한 세 가지 주요한 숭배가 있었다고 한다. 테라핌 또는 드라빔(언급되는 문장이 있는데 문맥을 파악할 때 아마도 조상의 위패를 말하는 것 같다)이라는 가족신의 숭배, 신성한 돌의 숭배, 토착신과 외래신을 포함한 일부 신들의 숭배가 그것이다. 그랜트 앨런이라는 학자는 출애굽기의 광야에서 금송아지가 나오는 장면을 들어 야훼가 원래 젊은 황소의 형태로 숭배받았다고 단언한다. 성경에서 그 장면을 보아도 야훼를 믿으며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모세가 사라진 시간 동안 뜬금없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황소를 숭배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애초에 야훼가 황소로 숭배되었다고 하면 이해 못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던 것이 모세에 이르러 황소인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야훼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야훼가 성궤 속에 살고 있었다고 믿어졌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는데 출애굽 당시 모세가 이집트의 성궤를 훔쳐나온 것을 두고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이집트는 초고대 인류의 문화가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집트 벽화에는 아즈텍 벽화와 같이 UFO도 등장하고 있고, 기다란 전선에 연결된 전구도 명백하게 등장한다. 초고대 인류의 과학 문명이 전승되지 않았다면 그저 상상만으로 남긴 벽화로 보기 어렵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성궤는 이집트의 성궤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을 모세가 자신의 민족을 탈출시키며 절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애초에 미개한 유대인들이 성궤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이집트인들이 강탈했었는데 유대인들이 탈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궤를 나를 때는 특수한 제복을 착용했는데 그 제복을 착용하고도 성궤를 나르는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 상황은 즐비했다. 성궤 자체가 에너지를 응축하는 발전기체였으며 그 에너지가 방전될 때 그 반경 내에 있는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건 과거 읽었던 고대의 오파츠들을 다룬 저작에서 본 내용인데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라던가 대표적으로는 그레이엄 핸콕과 제카리아 시친을 위시한 이 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재 인류 문명 이전의 초고대 인류가 존재했으며 그들은 외계인의 문명 전달로 발전한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46억 년의 지구 역사로 볼 때 (현재의 인류와 달리) 초고대 인류가 자체적으로 그들 문명을 이룩한 이후 그들(외계인들)과 교류했다고 본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그들 경전인 [아베스타]의 찬송가인 [가티스]는 힌두교 베다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의 가장 오래된 형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마도 힌두교의 영향을 조로아스터교가 받았던 것으로 보이지 그 둘의 근원이 같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만약 근원이 같다면 경전 자체의 언어까지 같아야 할 텐데 왜 찬송가 내용만 같겠는가?

 

조로아스터교의 교조 자라투스트라는 영혼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 세 가지는 신체가 죽은 뒤 남는 개인의 일부분인 우르바니, 그들이 죽은 뒤부터 세상에 살아온 프라바시, 양심을 뜻하는 다에나를 말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 주요 종교들이 탄생하는 근본적인 이념 체계를 제공했다는데, 선과 악의 이원론과 그들의 충돌 그리고 종말론, 또 하나 구세주에 대한 관념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발견되고 일부는 사실 불교와 같은 진화한 종교에까지 있는 생각들이기는 하다. 원형이 같다고 아직까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는 앞선 시대의 것이니까 무조건적으로 오리진일 것이라는 단정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결론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자의 발명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장의 제목부터가 지혜의 도시이듯 도시 생활 이후에야 문자가 발명되었고 문자 발명 이후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가지는 종교 양식의 변화와 전쟁의 변화를 불러온 탈것의 개발과 법전의 등장이다.

 

학자들은 문자는 수를 기록하기 위한 수단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도기로 기록을 대신 삼던 것이 하나의 상징을 기록해 두던 것으로 발전했고 이것은 사원 등의 출납을 기록하다가 더욱 다양한 상징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자가 좀 더 체계적이기 전부터 기록은 잉여생산물의 유통을 기록하는 데 적용되었다. 문자가 보다 발전한 이후에는 종교의 심층화로 이어졌다. 종교 사원의 출납뿐 아니라 다양해진 상징체계의 발전으로 형이상학적 사고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 더욱 종교적 깊이가 더해졌다고 보여진다.

 

문자는 문자를 기록하는 자인 필경사들을 양성하게 했고 필경사(두브사르, 수메르어)라는 말은 곧 교양인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우르에서 필경사를 양성한 것은 적어도 기원전 2000년대 중반이다. 기원전 1900~1200년에는 공공도서관만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 서고가 있었고 줄잡아 4천 종의 문헌이 소장되었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학문으로 천문학*점성학, 예언문학, 주술을 들고 있다. 아슈르는 이런 학문으로 알네메키, 즉 지혜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도시화는 이런 문명 발전의 전환을 가져왔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보호 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도시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성벽이 없는 거대 도시가 발굴되고 성벽의 역사는 거주지가 형성된 이후에 생겼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화는 종교적 발상이 구체화 되어 현현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지구라트(정상 또는 산꼭대기를 뜻하는 초기 아카드어인 지구아라트가 어원) 같은 거대 구조물들은 거대 도시인구가 등장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바퀴의 발명도 거대 공동주거 이후 있었고 바퀴의 등장 이후 발전 양상은 탈것 특히나 전차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성벽과 전차는 초기 전쟁 양상을 바꾸었다. 최초의 탈것은 기원전 7000년 극지대에 가까운 북유럽의 수렵-어업 사회에서 만들었다(개가 끄는 썰매)고 보고되고 있다. 본격적인 탈것의 전조는 기원전 3000년대 후반 우르크의 그림문자에서 볼 수 있다. 바퀴와 축이 붙은 정식 탈것은 비슷한 연대에 속하는 스위스 취리히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2000년 이전 고고학 유적에서 나온 원반형 바퀴는 덴마크에서 페르시아까지 널리 퍼졌다.

 

후반에 법전 이야기가 있다.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 법전의 등장을 가장 먼저 들고 있으나 그 이전인 수메르 법전(기원전 1934~1924)과 우르남무(기원전 2100년경) 법전의 예도 언급되고 있다. 일상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법전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성서나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 보다 오히려 그 이전인 수메르 법전과 우르남무 법전에 이런 극단적인 보복형 조항이 없다.

 

당연한 불문법적 조항이라 기록할 필요도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흐를수록 피해자 우선주의가 더욱 보장되는 식으로 법률이 발전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문자의 발명과 도시화는 추상적 사고를 불러와 학문의 발전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종교 양식 또한 구조화, 체계화하게 되었고 사회 조직에서 필요한 법과 같은 제도의 발전까지 가져왔다. 수치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성벽과 같은 건설도 보다 정교화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탈것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것은 인간의 호전성이 문명에 어떠한 식으로 드러나는지는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자 구체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