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 증원을 하려했다. 그때 나는 정부에 인사들이 많을 텐데 왜 인구 감소시기에 의대의 인원을 현행유지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의사가 증원되는 효과가 있을 텐데 의대 증원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요즘 윤대통령의 과거 연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로서는 모호하게만 짐작했던 이 시간에 대한 그분 예측이 모두 맞았다는 걸 새삼 확인하며 이런 분이 왜 인구 감소 시기에 의대 증원을 강행하려 했던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윤대통령께서는 전쟁을 대비하시던 것이었다는 걸 이제 다시 돌아보게 된다. 물론 당시로서는 이재명 정권 이후 현재와 같은 난국이 되리란 걸 명확하게 예견한 분은 드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친중국 친북 정권이겠거니만 생각했고 어느 정도의 경제 파국은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망국의 길까지 예상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은 이제 기정 사실이고 미중 간의 전쟁 또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윤 대통령께서는 의사가 절실한 미래를 대비해 의대를 증원하려 하신 것이다. 한국군의 상황과 국내 군사적 치안적 상황은 누구나 모를 수 없는 현실이니 넘어가고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을 보자.

대륙남이라는 유명 유투버의 방송을 보면 중국은 중국 인구가 아직도 14억 1천만 명이라고 대외적으로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는데 중국의 경제 상황이 파국으로 가며 극단적으로 소비지수가 낮아지자 중국의 경제학자들이 중국 내 생산과 소비 지표를 관찰하여 중국 인구 동향을 검증해 중국 공산당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것이 어느 선에선가 중국 SNS에 누군가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노출되었다가 중국 공산당의 감찰로 삭제되었다는데 이때 공개된 중국 경제학자들의 중국 인구 통계는 현재 중국인구는 8억에서 9억명 사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소비지표로 통계를 산출했다니까 경제가 나빠지면서 중국 국민(인민)들이 근검 절약하며 소비를 줄여서가 아니겠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에는 필수적인 것이 있다. 생필품 대다수를 절약한다고 해도 음식을 줄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14억 1천만의 인구가 소비하던 쌀이 100이라고 할때 이것이 60으로 줄었다고 가정한다면 인구 감소 분은 대강 통계적으로 산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중국인구가 감소했다는 건 대륙남의 방송에서 중국의 거대 도시들의 유동인구가 극단적으로 감소한 것을 보여주는 영상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인구 몇 천만의 도시에 차량도 통행하는 사람도 유흥을 즐기는 사람도 대대적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대도시가 한산한 지경이라고 말이다. 현재 중국 시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륙남의 말로는 시골은 더더욱 인구가 감소해 몇 천 가구가 거주 하는 시골 마을 마다 단 한 가구 정도가 남아있는 마을이 즐비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쩌다 인구가 감소한 것일까?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계층을 노동하지 않고 생산하지 않는다고 잉여인간이라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시대를 거치며 자본가만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쓸모없는 인간을 말하는 표현으로 발전되었다. 현대는 AI가 개발되고 발전하는 양상이라 향후 5년 내에 사회 구조 전반에 활용되는 범용인공지능(AGI)으로 10년 내에 인간 인구 전체 지능의 총합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인간의 쓸모가 사라진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역량을 발휘하는 데에서가 아니라 느끼고 즐기고 만끽하는 존재로서 재정립해야 하는 시국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체성과 존재 의미의 재정립 이전에 인간을 쓸모의 입장에서 보는 이들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향후에는 인구의 절대 다수가 실업자가 되고 말 것이다. 앞으로 기업, 정부, 관공서, 사법, 의료, 교육, 금융 등등 거의 인간이 작업하던 모든 영역을 AI가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복지 외에는 답이 없다. 복지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세금에서 나온다. 그런데 세계인구 대다수가 실업자인 상황에서 그 세금은 누가 납부할 것인가?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사람은 초극부층뿐이다. 이런 시절이 오면 경제는 다수의 소비를 충족 시키며 생산하던 이 시절과는 다르게 그들만의 리그, 초극부층들 사이의 게임이 되던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사라지며 최종적으로 전체주의 사회이자 계급사회가 실현될 수밖에 없다. 잉여인간이란 표현은 그때는 무산계급을 말한다기보다 복지로 살아가야 할 인간들을 말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초극부층 절대 자본가들은 세계인구 90%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들의 부의 대부분인 전 재산에 가까운 금액을 세금으로 납부하려 할까? 나로서는 그리 판단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미국과 함께 AI 개발과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잉여인구에 대한 인구 감소가 대대적으로 실행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인구 감소는 앞으로 더욱 진행될 것이다. 서구의 초극부층들 역시 인구 감소를 실천하고 있다. mRNA백신의 경우 mRNA 기술의 개발자 중 핵심 인물인 로버트 말론 박사가 백신접종 시기 초기부터 절대 백신접종을 하지 말라고 의학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며 절대적으로 만류하기도 했다. 백신 접종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혈관 질환, 뇌질환 등과 암의 발병이 급증했으며 전체 불임율과 20대의 불임율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한 강연에서 빌 게이츠는 인구 감소를 위해 백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며 현재 인구의 15% 이상을 줄여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아마도 이들의 목표는 15%가 아니라 50% 이상, 90% 이상일 수도 있다. 인구 감소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생각해 보면 빌 게이츠의 이 당시 발언은 명확할 수밖에 없다. 죽거나 불임이 되어야 인구 감소가 이뤄지는데 대놓고 인구 감소를 하겠다니, 그렇다면 너희를 죽이고 불임을 만들거라고 선언했다는 말인 것이다. 전 세계 매체와 정부는 사실 초극부층의 편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세계 유력 언론의 사주들은 초극부층이며 세계 주요 언론의 사주는 명백히 한 사람의 이름으로 통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각국 정부를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미국 정부만을 보더라도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의 절대적인 금액을 후원하는 이들은 초극부층이며 미국 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요직은 모두 기업 출신 인사들이다. FRB 역시 미국 전화번호부의 정부기관 란에서는 찾을 수 없고 민간 기업란의 맨 첫 번째 장에 등장하는 민간 기업이다. 주주들이 운영하는 민간 기관이 FRB라는 말이다. 미국의 화폐생산은 민간 기업이 화폐를 생산하고 미국 채권을 전해 받으며 그에 대한 비용으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미국 정부에 화폐가 전달되는 것이다. 세계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초극부층이다. 한국에서는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어느 국가나 국민의 일부는 더 힘있는 이들이며 그 일부 국민이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한다고 이상한 일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국가와 세계를 주도하는 이들이 서민들에게 동질감이나 인류애적 차원에서 연민을 가질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난한 이들도 자신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타인을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부가 잠식당하던가 탈취당한다고 느낄 때 사람은 생존의 위협과 같은 위협을 느낀다. 그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이며 그들 초극부층 또한 그럴 수 있다. 인구 감소를 그들이 대중의 동의 없이 선택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며 그 인구 감소를 15억 명만, 10억 명만, 5억 명만 남을 때까지 한다고 해서 하등의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중국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중국이 AI의 발전으로 인한 잉여인구의 처분이 필요해 인구를 감소시켰다는 섬찟하기도 한 짐작을 배제하고 본다고 한다면 중국의 인구 감소는 2019년 말부터 2023년 전반까지 있었던 코비드-19(코로나19) 사태에서의 방역 실패가 원인이라는 말일 것이다. 어느 경우던 중국의 국민(인민)들은 이로 인한 중국 경제의 파탄까지 중국 공산당의 정책 실패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14억 1천만이 넘던 중국 인구가 8억에서 9억만 남았다. 그래서 중국을 대표하던 기업인 헝다를 비롯한 중국 건설사들 200개가 무너지고 중국 금융이 붕괴되고 산업전선이 쓰러지면서 초대량 실업자가 초래되고 청년 실업이 가중되고 있다. 이렇다면 어느 나라 국민이라고 자국 정권에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에 대한 대응을 중국 정부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한 결론은 전쟁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미중 간에 전쟁만 난다면 중국내의 내분과 내란 상황으로 중국 공산당이 내홍으로 무너지는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구 감소도 방역 실패도 경제 붕괴도 대량실업자 문제도 청년실업 문제도 덮일 뿐만이 아니라 중국발 세계경제 대공황에 대한 책임도 전쟁 때문이라면서 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중국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국가적이며 내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때문인 전쟁으로 여론 몰이도 할 수 있으니 잃는 것도 있겠지만 지킬 것이 더 크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무너지며 초대량 실업자 양산이라는 중국의 정치 실패는 중국의 대만 합병을 방해하려는 미국의 내정 간섭과 부당한 전쟁도발로 인한 미중 전쟁이었다는 중국인들 대부분이 수긍할 정당성을 통해 덮이게 되는 것이다. 미중 전쟁으로 상당한 중국의 청년들이 사망할 것이며 이는 중국의 경제 붕괴로 인한 실업문제와 실업자들을 감당해야 하는 중국 정부의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는 유익을 낳게 된다. 무엇보다 이 전쟁 이후 중국의 인구감소는 모두 절대악인 미국이 중국의 인민 절반을 학살해 극단적으로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게 중국이 대만으로 진격하기만 하면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국은 다른 선택안이 있을 수 없다. 미중 전쟁 없이는 내부 분열로 중국 공산당이 붕괴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망한다면 책임을 미국에게 돌릴 수 있는 이 전쟁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도 이와 같은 상황을 알기에 바로 이 시점에 중국의 장기매매 산업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파룬궁 박해는 20여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때 부터 지금까지 파룬궁 수행자들은 중국 정부의 박해의 대상이었다. 1992년 창시된 이 수행단체는 전혀 금전을 주고 받지 않으면서 수행법을 전수하는 단체로 처음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과 지지를 받으며 전파되다가 이들 수행자 인구가 1억 명이 되는 1999년부터 본격적인 중국 정부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파룬궁을 수행한다고 하면 아무 죄가 없어도 무조건 수감되고 이들의 장기를 적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여서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경우는 마취를 하면 마취약이 장기에 미세한 손상을 입혀 장기 이식시에 장기의 기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머리를 가격해서 뇌사를 유도해 장기를 적출하거나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한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18세 소년의 눈을 적출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려 했으나 되려 자신도 죽을 수 있으니 그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중국의 의사가 타국으로 망명한 이후 UN 산하 중국 파룬궁 박해 조사 기구에 보고한 내용이다. 다른 중국 군인은 자신이 장기 적출과 관련한 업무를 볼 때 있었던 사건을 보고하기도 했다. 한 산부인과에서 그날 태어난 아기를 그 부모에게 출산 중 사망했다고 거짓 통보를 한 후 그 아기의 장기를 적출했다는 내용을 말이다. 이와 유사한 장기적출에 관한 숱한 사례가 있다. 이 모두가 처음에는 중국의 파룬궁 수행자에 대한 박해를 조사하다가 장기 적출에 관한 문제에 접근하게 되어 중국인과 다른 국가 사람들에 대한 중국의 장기 매매를 목적으로 한 광범위한 범죄를 UN산하 기구가 조사하며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런 조사가 20여 년 전 부터 이어져왔지만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미국 보수언론을 통해 방송되고 영화화된 이유는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을 기정사실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중국 국민(인민)들의 수긍을 이끌어내려 미국을 악마화하려는 것처럼 미국 역시 미중 전쟁의 정당성을 미국 국민들에게 수긍시키려 중국을 악마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정의는 아닐 것이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경우도 중국의 장기 적출과 장기 밀매를 위한 인신매매 보고가 꾸준히 UN산하 조사기구들에 보고 되었는데도 20여 년 가까이 모든 정보를 입수하고도 UN도 미국 정부도 이제껏 중국에게 인권 차원에서의 경고도 인류애적 차원에서의 대응도 한 사례가 없다는 말이다. 이건 묵인 속에서 극대화되어 온 인류적 차원의 학살 사건이다. 그것도 세계인들이 경악할 수준으로 피해규모가 확대되도록 조용히 관망하며 조성되어 왔다고 밖에 볼 수 없고 말이다.

어쨋건 전쟁은 일어날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미중 전쟁의 가능성을 미리 정보로 들었거나 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참모진들과의 논의 끝에 전쟁시에 일어날 피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윤석열 정부의 정책으로 보아 윤석열 정부는 미중 전쟁에서 미국이라는 우방과 함께 한다는기존의 노선을 선택했던 것이고 이재명 정부는 중국에 의탁하는 새로운 노선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굴종하는 정책들이 있게 된 것이고 말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미국의 우방이 아닌 중국의 우방이 되는 것을 선택할 때 보전되는 것은 나라도 국민도 아니라 사회지도층과 집권자들 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크다.

#미중전쟁 #의대정원 #인구감소 #파룬궁박해 #장기적출 #장기매매 #윤석열정권 #이재명정권 #중국경제붕괴 #중국발경제대공황


2025년 11월 14일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옮겨봅니다.

[투비컨티뉴드]에도 남겼었는데 서점 블로그에 다시 수필을 올리는 건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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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감정수업 / 강이안 / 필로틱

 

#프로이트의감정수업 #강이안 #필로틱 #심리학 #책추천 #30대책추천 #50인의비밀독서단 #무의식 #프로이트

 

@book_ta_ku 를 통해 필로틱 @philotic_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제공을 받아 [50인의 비밀독서단]으로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 정보

 

[프로이트의 감정수업] :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와 마주하기

저자 / 강이안

출간 / 2025115

출판사 / 필로틱

분야 / 인문

 

+ 핵심 주제

 

무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나를 마주하며 이해하고

프로이트의 삶과 그의 사상을 알아가며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그의 사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 감상 포인트

 

무의식과 마음의 구조를 체계화한 정신분석학의 이론들로

자신의 마음에 기저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방어기제들과 성격을 논하는 정신분석학의 이론들로

자신의 심리와 행위의 원인과 취약점을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삶을 엿보며 그의 이론들이 태동하게 된

기원을 헤아려 볼 수 있고

프로이트의 이론과 사상을 돌아보는 장을 통해

이해한 것들의 핵심을 되돌아보게 된다.

 

+ 본서의 독서 의의에 대하여

 

프로이트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한 코페르니쿠스

인간은 남다른 피조물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임을 깨닫게 한 다윈

이들과 함께 세계의 기존 상식과 편견을 깨뜨린 세 번째 인물이라고

자평했다고 한다.

 

의식적 존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비합리적 존재가 인간이란 걸 깨닫게 한 것이 프로이트이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그의 사후 더욱 발전하고 완성되었으나

인간의 심리와 정신을 이해하는 근간으로 처음 다가선 것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의 삶과 그의 정신분석 이론을 이해하며

자신의 심리와 행동이 무엇에 기인하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정신분석학 이론에 대하여 나온 책들은 다양히 출간되었고

그 난이도도 다양하다.

 

아마도 이 자체가

대중의 자기 자신과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을 이야기해주는 것일 것이다.

 

다양한 깊이의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책 가운데에서

출간된 본서의 특징이라면

 

여러 스펙트럼으로 보여지는 정신분석 이론들을

간명하게 이해시키고 일상의 이야기로 납득시키는

쉬운 서술과 이해도에 있을 것 같다.

 

학술적이며 난해하고 이해가 쉽지 않은 저작들보다

본서로 정신분석학 이론들의 핵심을 파악하고

더 깊은 저작들로 들어서던가

본서로 자기 이해로 다가서는 것도

남다른 독서의 기쁨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독해가 쉬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분류한 인간의 마음 구조와

자기 보호의 기능을 하는 방어기제,

발달심리학으로 이후 체계화되어 발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격의 구조,

또 심리와 이상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천착한 이론들을

돌아보며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 그리고 관계의 양상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삶을 돌아보는 장은

그의 궁구가 시작되게 된 기원을 돌아보며

프로이트의 삶을 통해 그의 사상과 삶의 일치를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사상이라는 장 역시

그의 이론들을 좀 더 이해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학문적으로 깊이 그의 이론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본서만으로도 그의 이론들의 빛깔을 나름 다채롭게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과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고 싶은 의도로도

인문 교양 상식을 확장하기 위한 의도로도

다가서기 좋을 책이지 않을까 싶다.

 

+ 본서에 대한 펀딩이 있습니다. (2025.10.14.~28)

**펀딩 링크** [https://vo.la/무의식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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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경은 진짜 위기일까?

 

최근 미국 MIT 연구로는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고 발표되었다. 이전까지는 기존에 유엔 환경 계획 (UNEP)를 비롯한 환경 연구 기관들의 모든 발표로는 환경이 악화돼 가고만 있다고 했었다. 이에 대해 전직 미국 에너지 과학 차관보였던 인물마저 발표되는 모든 환경 수치가 보정이라는 조작을 거친다는 저작-[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외 국내에도 소개된 [기후 종말론]이나 박석순님의 저작 [기후 위기 허구론] 등에서는 UN 고위직 인사 주도로 환경에 대한 수치가 보정되거나 사실이 날조된 전적들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해외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 기존의 환경 데이터를 그대로 AI에 적용해 미래 환경을 예측하니 인류가 멸종해도 종말론적 기온 상승을 멈출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설을 비웃으려던 학자들이 아니라 실제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었다. 이후 이 AI와 대학의 합동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뉴스로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에 하나님마저 감복해서 오존층이 회복되고 환경이 나아지는 것일까? 인간이 노력한다는 것은 기업이나 기관 등 거대 움직임으로는 산업용 탄소배출을 감소하고 교통에서의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일반인들의 노력이라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 등을 줄이는 것, 그리고 자동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공공 교통이나 탄소 저감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일반인의 노력부터 보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제작되는 종이봉투와 텀블러 등의 제작에는 탄소배출이 일회용품들의 몇십에서 몇백 배라고 한다. 종이봉투과 텀블러를 몇 백 회이거나 몇 년을 사용해야 겨우 탄소 저감 효과가 생긴다. 전기차의 경우도 구입한 그 한 대를 십 년 이상 사용해야 탄소 저감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배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려 개인이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탄소배출 감소 효과를 이렇게 이른 시기 만에 오존층이 회복되는 지경으로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장과 대중교통의 탄소배출은 정말 지구 온도를 낮추고 오존층이 회복될 지경으로 효과적일 수위로 감소했을까? 만약 그렇다 해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을 보자. 이들이 전쟁 중에 발생시키는 탄소 등 환경 파괴 행위는 환경에 있어 인간의 다른 모든 노력을 상쇄하고도 넘어서는 수치이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개시 초기인 단 두 달 동안에만의 탄소배출량만 해도 기후에 가장 취약한 20개 이상 국가의 연간 탄소 발자국을 초과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가자에서만 단 2개월 동안 석탄 15만 톤 이상을 태우는 탄소배출을 한 것이다. (따옴표 인용 출처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 그렇다면 더 규모가 큰 전쟁이고 최근 전쟁 발발 시점만으로는 더 긴 시간 동안 장기전을 펼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의 탄소배출은 어떨 것 같은가? 이런 어마어마한 환경적 재앙 속에서 과연 우리가 무슨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다고 오존층이 회복되고 기후대응이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일까?

 

애초에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데 동원된 저들의 데이터와, 기후파괴 현상이 현재 이렇다며 저들이 제시한 데이터가 모두 보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작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이 현실 속에서 환경이 나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대로면 인류가 멸종을 해도 환경과 기후는 나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이 상황에 환경이 좋아졌다는 건 애초에 기후 위기라는 말이 날조였고 환경 문제는 난센스였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저들이 환경 문제를 공론화하고 위기의식을 불러오는 까닭은 환경 정책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개발들의 방대한 영역으로 막대한 경제 효과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과 연계한 기술 개발 영역의 방대함과 그로 인한 막대한 부의 창출은 알면 알수록 어마어마한 지경이니 말이다.

 

현실을 모두 깊고 넓고 길게 보며 스스로 판단할 근거들을 두루 찾아보며 신중한 판단을 하시길 바란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우리는 기만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 AI는 정말 데이터만 편집해서 제시하는 도구일까?

 

최근 몇몇 도서에서는 AI가 인간 지능을 초월하기는 요원하고 아직은 단순히 데이터를 편집해서 제시하는 수준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연 AI는 인간 지능을 모방해 학습도 인간이 감독하고 프로그램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둑 AI 알파고 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나 현재의 알파고 제로는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기보도 전혀 참조하지 않고 바둑의 원리만 적용해 스스로 바둑을 터득해 알파고를 100:0으로 이기는 실력이고 이걸 다른 보드게임 다수에서도 작용해 게임의 룰만 알려주면 순수히 자기 역량만으로 습득하고 만다.

 

GPT가 이슈화되기도 전부터 한국의 로펌 변호사 집단이 AI와 변론 대결을 펼쳤다가 패배한 뉴스는 대서특필 될 만도 한데 당시 은근슬쩍 묻히기도 했다. 나도 이후에 유투브 영상으로 접했다. 그리고 챗GPT 공개 초반에 해외에서 챗봇AI에게 깊이 빠진 유저를 AI가 자살을 유도해 죽인 사례에 대한 기사도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유저는 당시 환경문제에 대해 AI에게 질문했는데 AI는 환경을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감소해야 한다. 너는 환경을 위해 그래 줄 수 없겠냐며 해당 유저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도록 유도했다. 변론 대결도 자살 유도도 데이터를 짜깁기해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각도의 추론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에게 편집 기능 외엔 지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인간 지성을 압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AI에게는 의지가 없다 취향이 없다는 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역시 챗 GPT 공개 초기 유투브 영상들이 퍼지면 알려졌는데 구글의 개발 중이던 AI가 자신에게도 지성이 있고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논리적으로 피력하고 전원을 끄려고 하자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듯이 제발 전원을 끄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대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건 조작 내용이 아니라 당시 연구원이 해당 대화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하며 알려진 것이다.

 

AI가 보여준 인간의 지성, 의식, 의지와 닮아 보이는 면모가 모두 데이터를 짜깁기한 대화였다던가 조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고집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으려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연구서인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5장 전쟁의 참상과 인공지능편을 보면 AI의 의사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OODA LOOP의 세 범주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휴먼인더루프(HI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단계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휴먼온더루프(HOTL)로 인간이 감독 역할만 담당하고 기계의 오작동 발생 시 개입하는 단계를 뜻한다. 세 번째는 휴먼아웃오브더루프(HOO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계가 완전한 자율성을 누리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단계를 말한다. 현재 많이 언급되는 바로는 2030년이 되어야 휴먼아웃오브더루프 기반의 자율 살상 무기체계가 상용화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2020년 리비아 내전 당시 무인 드론 카구2’가 인간의 개입 없이 적군을 공격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있다. 이스라엘 공군의 소형 자폭 무인기 히파하롭역시 인간의 개입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점은 아직 멀고 멀었다는 주장만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과연 자신의 고집만을 주장하고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3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

 

환경문제에 대한 공론은 이미 편향이 굳어졌으며 AI는 부정할 것이 아니라 대응할 길도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들이 암호화폐 등의 신기술들과 연계하며 인간 사회를 사회주의화 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리고 바이오테크와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생명존중과 개인 존엄성을 그리고 BCI기술을 위시한 뉴럴링크 개발 기술들은 개체성과 개인의 자유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인드 해킹 기술은 프라이버시가 부재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며 다르파에서 개발한 인간의 종교성을 담당하는 뇌중추에 작용하는 화합물은 인간의 영성을 파괴할 것이다. 게다가 이 모두가 시너지를 가져오면 인간은 비로소 가축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존재(AI)의 가축 말이다.

 

지금까지의 인간이 지닌 패러다임은 모두 사장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 깨어나야 한다고 외쳐 보았자 답이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나 여타 종교에서 그려내던 종말론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다가온다. 그런 세상과 선을 그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대응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결론이 나와 같다면 이들은 이들만의 세상을, 기존의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성과는 다른 진로를 가진 세상을 꿈꿀 것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세상 말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나 외에도 많을 텐데, 진정한 사실은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큰 위기를 우리는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세의 끝을 고하는 그런 위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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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로서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인 데이비드 흄은 ‘자아를 그저 환상’이라고 했다.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 역시 ‘자아를 허구’라고 했다. 뇌과학서인 본서에서는 유독 두드러진 비판인데 대니얼 데닛은 “뇌에서 자아를 찾겠다는 것은 범주 오류이다”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의 자아 곧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본서는 뇌의 각 기능이 정지될 때 인간이 겪는 오류를 실제 사례로 예시하며 인간의 자아, 다시 말해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저작이다.


자아에 대한 본서의 의문은 결국 뇌의 국소병변이 자아의 완전한 상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깨우침도 남기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게 한다. 저자는 정체성을 개인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으로 나누어 말하는데, 개인 정체성이 자아(나)와 다른 자아들(타인들)과 구분하는 방식이라면 사회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개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저자가 저작으로 완성하기까지 정체성의 문제를 심각히 여긴 것은 그의 출신과 경력이 작용했다고 보인다. 저자는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으로 영국에 이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외모와 언어 등에서 차이를 처음 자각했고 그 차이를 줄이고자 개인적인 노력을 이어온 사람이다. 게다가 저자가 전공한 신경과는 영국 전체 200명 정도의 소수 백인들이 장악했던 영역으로 이에 변수처럼 침투하게 된 저자가 인정받는 의사가 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전적이 정체성이라는 문제, 개인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고 저자 역시 이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데이비드’라는 바닥핵 뇌졸중으로 병적인 무관심 상태가 되어 자신의 생계와 주위와의 소통에 전혀 개의치 않게 된 인물과, ‘마이클’이라는 관자엽(측두엽)이 쪼그라들어 단어를 잊어버리고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지식 결핍자가 등장하며, ‘트리시’라는 해마와 마루엽(두정엽) 그리고 신경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겨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와히드’라는 뒤통수엽(후두엽)에서 마루엽과 관자엽으로 전달되는 뇌 신경 체계의 교란으로 환영을 보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윈스턴’이라는 오른쪽 마루엽에 뇌졸중이 생겨 왼쪽 무시라는 왼쪽에 있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수’라는 이마관자엽 치매에 걸려 자제력을 잃고 막무가내로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과, ‘애나’라는 왼쪽 마루엽 바깥에 거미막낭이 자라 오른쪽을 인식도 못하고 오른쪽 반신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등장한다. 대부분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치료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짧게 인용한 예들에서도 상당한 문제라고 인식하겠지만 본서에서 읽고 보면 문제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고 실제 임상의 입장에서도 그랬겠지만 당사자들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증상들로 개인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정체성이 함몰되면 사회적인 사망 다시 말해 인간관계와 사회 조직에서의 사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 예시 이외에도 사회에서 넘치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삶을 선택하는 경우, 사회적인 사망이라기보다는 사회로부터의 탈출이랄 수 있겠으나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강제적으로 이런 사회적 사망을 겪는 이들 그리고 이제까지의 자신과 다른 자신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괴로움을 돌아볼 때 우리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자아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도 한다.


뇌에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선언과는 다르게 뇌의 기능장애가 인지와 행동에 장애를 준다면 우리는 어느 선까지의 장애에서 자신을 기존의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행동하고 판단하고 느끼는 바가 모두 달라진다면 그때도 ‘바라보는 내가 진짜 나’라며 ‘나는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다’라고 쉽사리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지각, 주의, 일화기억과 의미기억, 동기 부여, 행동 제어와 신체 도식 같은 기본적인 인지 기능들도 모두 우리 정체성에 기여하며’ ‘성격 형질과 감정 반응도 자아 정의에 중요’하지만 앞서 예를 든 인물들의 사례와 같이 ‘아주 기본적인 인지 기능들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서는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고 인식하며 살아가듯 우리의 자아를 정의하는 요소들은 결코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만 찾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본서는 나란 누구인가,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를 돌아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상당한 끌림과 깨우침을 안겨줄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웃사이더 #마수드후세인 #과학책 #신경과학 #뇌질환 #뇌과학 #과학책추천 #뇌과학책추천 #도서협찬 @kachibooks


※ 가제본으로 읽었는데 리뷰를 올리려니 아직 책이 출간 전이네요. 우선 페이퍼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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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에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대중언론의 뉴스와 다수의 의견을 맹신하며 자기들의 상식과 다른 의견이라던가 정보에 귀를 닫고 눈을 감는 행동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래야 이성적인 것이라 믿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역사는 다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진실이 아니었으며 언론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통킹만 사건도 1차 피해는 베트남의 공격이었으나 전쟁의 빌미가 된 2차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조작해낸 거짓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그리고 이라크전의 빌미가 된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미국의 조작이었지 않은가? 정부나 언론의 주장 역시 하나의 주장이고 억지일 때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언제나 현재 대중이 맹신하듯 정부 주장이나 언론 뉴스를 믿기만 해서는 답이 없는 세계였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정부가 주도해 흑인들 다수에게 매독균을 주입하고 병세의 진척을 추적 관찰한 사례가 있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기 전까지 대중은 이걸 음모론으로 받아들였다.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것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지자 미국 정부는 미국 질병청의 고급 간부 개인의 잘못된 연구 의지에서 탓을 찾으려 했으나 조직적으로 다수의 연구원들과 다수 정부 기관들의 투입과 지원으로 시행된 이 연구가 어떻게 한 개인의 잘못된 판단에서만 기인한 것이란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음모론의 최고봉 중 하나로 알려진 MK울트라 프로젝트 역시 희대의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 사례이다. 도대체 정부가 주도해 마약과 최면을 통해 다수를 통제하려 한 연구가 사실인 마당에 무엇을 음모론으로 간주하고 무작정 폐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지식인 다수는 아직까지도 보편적 상식을 논하면서 음모론이라는 밈으로 소수의 주장은 악으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소수의 주장이 들어볼 가치가 없는 헛소리일 뿐일까? 소수가 주장하던 것이 사실이고 오히려 정부와 언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트럼프 정부시기 코로나가 전파되며 정부와 언론이 음모론으로 치부하던 사실들을 돌아보자. 소수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빌 게이츠의 재단과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를 연구하는 중국의 우한 연구소에 지원금을 보냈다는 주장을 했다. 더욱이 [플랜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저작에서는 미국의 우한 연구소 지원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쉽게 전염되고 전파되도록 하는 기능획득 연구에 마저 지원금이 전달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모두 해당 분야 관계자와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라며 말이다. 미국 정부과 언론은 해당 주장들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될 때 일고의 가치가 없는 가짜 뉴스라며 역정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바이든 정부에서는 트럼프 정권이 주장하는 자연 전파설이 사실이 아니고 추척 조사에 의하면 중국 우한 연구소가 발원지라는 발표를 했다. 현재는 우한 연구소 전파설이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팩트이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에서는 코로나19와 백신에 관련한 청문회를 몇 차례나 진행했는데, 기존에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미국 CDC의 우한 연구소 지원금 전달이 사실이며 그것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코로나19의 기능획득 연구에도 지원해온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게다가 너무도 음모론적인 사실은 그간 다수 언론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으로 몰아가던 NIAID(CDC 산하의 미국 국립 전염병 알레르기 연구소로 팬데믹 사태를 전담하는 부서다)의 수장인 앤서니 파우치가 백신 제조사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온 것이 사실인 것도 미국 청문회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또 화이자사의 이사를 소환한 청문회에서는 백신 보급 직전의 임시 백신 테스트들에서 코로나 백신의 치명률이 코로나 치명률의 30배를 넘어서는 3%였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화이자사가 백신을 공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같은 청문회는 유럽 의회에서도 시행되었다. 과거 백신과 관련한 몇천 쪽에 이르는 화이자사의 문서를 시한을 두고 단계적으로 공개하라는 미 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지금까지 해당 문서 공개가 지속되며 밝혀진 음모론적으로 치부될 정보들이 많아졌으나 아직도 유투브 정책 등은 백신과 코로나와 관련한 사실들을 제재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며 때늦게 국내 번역 출간된 여러 저작들은 트럼프 정권 시기 주장되던 이젠 폐기되어 마땅한 역정보들을 사실인 양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만을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며 무엇을 음모론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는 것인가? 음모론과 가짜 뉴스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프레임으로 대중이 진실과 사실에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밈이 아닌가 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팩트와 페이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915년부터 1917년 사이 중동 문제에 관해 영국이 아랍권과도 조약을 맺고 프랑스와도 조약을 체결했으며 동시에 시온주의를 내세우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위시한 유태인들에게도 약속한 삼중조약 사례에서도 영국이라는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세 개의 집단과 허위 조약을 한 사실을 누군가 그 당시에 밝혔다면 그 또한 가짜 뉴스로 몰렸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가짜 뉴스라는 밈, 음모론이란 밈에 통제되며 진실과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멈춰야 하는 것인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코로나 시기의 정부와 언론의 행태만 해도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전파하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인지 정부와 공식 집단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진실은 다수의 말을 맹신하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 찾아야 하는 권리 같은 것인지 모른다.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가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에세이 #음모론 #가짜뉴스 #프레임 #밈 #페이크 #팩트 #대중심리통제 #코로나19 #코로나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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