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 뇌를 재설계하는 자기연민 수행
샤우나 샤피로 지음, 박미경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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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한국어 제목은 [뇌를 재설계하는 자기 연민 수행 마음 챙김]이지만 영문 제목은 직관적이게도 [Good Morning, I Love You]이다. 본서의 대미에 등장하는 말이기도 한데 한국어 제목이 지성적으로 접근하는 수행 전문서 같은 느낌이라며 영문 제목은 대중 교양 에세이풍의 여운을 준다. 국내 출판사가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못 제안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영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해서 [안녕, 사랑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면 국내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서는 언제가부터 위빳사나를 마음챙김 명상이란 이름으로 대중화한 서양인들의 태도마따나 수행을 주제로 하지만 하나의 명상이자 묵상 테라피적인 여운을 준다. 저자의 일화들이 많이 담겨있는 책이기도 하고 전문 수행서로서 보다는 대중적인 명상 에세이 느낌을 안겨주는 책이다.

 

저자는 마음챙김이 의도만큼이나 호의와 태도가 중요하다며 호의의 중요성과 태도를 갖춰가는 이야기를 전체적인 맥락의 줄기로 삼고 있다. ‘행복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만으로 뇌의 행복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근간의 뇌과학 연구를 들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호의와 삶에 대한 그리고 수행에 대한 태도의 중요성을 주목하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관건은 작은 습관이 자리 잡는 것이라는 데 공감하게도 된다. 과거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서는 행복하겠다는 심정은 오히려 행복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으니,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며 행복이 자연히 따라오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일상이 행복에 가깝거나 무난할 때 진리일 주장이고 빅터 프랭클의 주장은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 때 절대적으로 진리일 말이다. 주변 모든 것이 불운과 불행과 부당함일 때도 살아가다 보면 마주치게 된다. 그것도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말이다. 그런 순간에 무턱대고 행복하겠다는 선언은 오히려 그 선언이 좌절되며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이 시대의 일반적인 일상적인 삶의 고뇌들은 좌절의 시기가 길지 않다. 그런 무난한 역경의 시절에는 근간의 연구에 기반한 샤피로의 주장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책의 제목에서는 자기연민이라고 언급된 자기 자비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저자는 여러 연구를 근거로 자존감은 좌절의 시기에 절망하고 낙담하게 만드는 작용을 더 크게 만든다고 하며, 오히려 자기 자비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쉽게 다시 일어서고 회복하며 상황과 사태를 조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존감은 자기 가치를 입증하는 데 어떤 성과가 있어야 하지만 자기 자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것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성취하는 데서 그리고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자존감이고, 그 어느 순간에도 자신에 대한 사랑과 호의를 잊지 않는 것이 자기 자비이기 때문이다. 잘나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어느 때이건 사랑하는 것이 자기 자비라는 말이다. 잘하면 칭찬하고 낙담할 때는 힘을 북돋워 주고 자기 비판적인 상황일 때는 위로해 주는 것이 자비이다. 자비(慈悲)는 산스끄리뜨어 마이뜨리가 한자로 차용된 것으로 이건 타인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기쁨과 즐거움을 지켜주고자 하며 타인이 기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을 때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말한다. 카루나를 차용한 한자어로 타인이 슬퍼하고 괴로워할 때 그 슬픔과 괴로워함에 함께 안타까워하며 슬픔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는 마음과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행복지키미의 역할을 해주는 기능이 자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비는 타인에게만 기능해야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는 순간에 자신을 버려버리게 되고 타인에 대한 자비는 일어날 여지도 없게 된다. 이타적인 인간이라도 자기에 대한 자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서는 마음 챙김을 기반으로 묵상 같기도 한 다양한 수행체계들까지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고 의도와 호의와 태도를 조성하는 가벼운 수행체계들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이 무겁지 않고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 안정적인 수위이다. 무겁고 건조한 매일이라면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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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행복을 기억하지 않는다 - 뇌파 실험으로 밝힌 불편한 감정의 비밀
미츠쿠라 야스에 지음, 오시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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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 감성 분석기, 기분 폭력, (기분 나쁜) 뇌우라(+아우라)

 

* 저자: 미츠쿠라 야스에

게이오기주쿠 대학 이공학부 시스템디자인공학과 교수 겸 같은 대학의 의학부 정신신경과 담당 교수

 

.........

저자는 뇌파를 통해 감정을 분석해 기록하는 기계인 감성 분석기를 최초로 제작해 뇌파와 감정을 연구하는 학자로 본서에서 예로 든 그래프와 사례만으로도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 분석기의 원리를 저자는 뇌파의 변화와 뇌내 호르몬 분비의 상관성을 전제로 뇌파 변화로 각각의 호르몬 분비를 파악해 감정의 상태와 변화를 분석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연구로는 분노와 비호감,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거의 지속된다고 할 만큼 완만하게 변화되지만 기쁨, 호감, 집중력 등은 급격하게 변화하여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수행해 그래프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연구로는 한 사람의 부정적 기분은 타인에게 전파되고 이것이 서로에게 다시 악영향을 미치며 증폭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부정적 감정의 팬데믹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두 사람 사이의 부정적 감정은 다시 타자들에게 확산되며 전파되기에 팬데믹이란 표현도 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여기서 저자는 자칫 유사과학으로 분류될지도 모를 검증이 필요한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바로 약한 전기를 내보내는 뇌파 측정과 반대로 뇌에 약한 전기를 자극함으로써 정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이치와 같이 뇌에서 뇌로 뇌파가 공명하며 전파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근전도도를 내보내는 육체 전체도 그러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고 있기도 하다. -나로서는 중학 시절 서림문화사에서 출간한 초능력 관련 책을 읽으며, 자신의 오라장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감각한다던가 기를 운기하거나 외기발방 하는 경우처럼, 인체의 전기 또는 전파가 타자에게 영향을 주거나 타자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에 사람들이 인체를 격리된 물체로 받아들이지, 하나의 에너지장으로서 인식하지는 않기 때문에, 본서 저자의 주장을 유사과학으로 매도하고 말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유사과학 같겠지만 현대과학의 발견은 점점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것들 마저 실상은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증명해 가는 중이다.

 

어쨌든 저자는 약한 전기 중에서도 약한 전기인 긍정적 감정들은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지만, 뇌의 약한 전기 중 강한 축에 속하는 부정적 감정이란 것들은 바로 타인에게 전파되고 확산된다고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지만 동일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타인의 정서에 악영향을 자연히 미치는 이 경우를 기분 나쁜 뇌우라라고 명명하고 있다. 저자는 타인에게 감정적 악영향을 받지 않으며 또 타인에게 감정적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중요히 여기는데 그의 방법들은 간단히 말하고 있지만 동일한 공간에 있지 말라는 것 외에는 힐링 기법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향기로 기분을 전환하고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건 다른 뇌 과학서들에서도 주로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기치유라던가 마법계 힐링을 공부하는 분들이 가볍게 한 번 정도 읽어 보시기에 좋을 책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읽으면서 내용이 거의 공감되고 수긍이 가는 예시들이다 싶기도 했지만 하나의 학문 영역이나 독자적인 학설로 받아들이며 읽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기록해야 할 만한 내용인데 잊었다가 다시 기억나서 올린다.

 

저자의 연구로는 사람은 감사의 표현이나 칭찬의 말에도 전혀 기분이 동요하지 않는다. 물론 연구의 일환이구나 눈치를 채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 연구 결과로는 평소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있던 사람이 아니면 타인의 감사나 칭찬에는 정서적 동요가 아예 없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성의 고백에 설레일 때는 고백받는 당사자가 상대에게 호감이 있을 때 뿐인 듯하다.

 

이 연구를 근거하면 누군가를 통해 정서적 위로를 받겠다거나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기대를 품기보다 스스로 감정을 회복하거나 타인이 스스로 회복할 방법을 알려주는 정도의 조언이면 충분한 거다. 직접적 위로의 말보다는 회복할 방법을 알려줘서 당사자가 스스로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불가수행의 자력타력의 원리가 회색빛 영역에서 작용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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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 - 매일 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잠과 꿈에 관한 거의 모든 과학
라훌 잔디얼 지음, 조주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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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잠과 꿈의 명상]이란 책도 주목하며 읽었고 루시드 드림이나 유체이탈 그리고 적극적 명상 등에 대한 관심도 깊었었기에 꿈을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본서의 출간 소식에 선뜻 관심이 갔다. 아마도 명상과 뇌의 상관관계와 명상과 관련지을 수도 있을 최면과 적극적 명상 그리고 자각몽과 유체이탈 등에 관심이 깊은 대부분에 분들이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본서는 무엇보다 변성의식이랄 수 있을 잠든 상태의 의식, 꿈꾸는 단계의 의식은 일상 의식과 어떻게 다른가?’ 꿈꾸는 의식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한 단계로 꿈꾸는 의식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가?’라는 요소들에 주의해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꿈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뇌세포들의 전기적 활동이 만들어낸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꿈의 가장 큰 이점으로 꿈이 우리에게 자기 이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는 것이라고 제시하며 꿈을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자기의 경험을 이해하고 새롭고 심오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탐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나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신경생물학자이며 암이 뇌로 전이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뇌 전문가로서의 저자가 전하는 전문성을 띤 정보들은 솔깃할 정도로 주목하게 만드는 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꿈을 꾼다고 하지 않고 꿈을 본다고 했듯이 꿈은 시각적 경험으로서 기능이 특별한데 꿈을 생생한 시각 정보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몸을 마비시키는 작용이 중요하다. 이건 근육을 활성화시키는 척수 내 특수세포인 운동 뉴런을 차단하는 글리신과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이라는 두 가지 신경 물질의 분비로 이뤄진다. 둘째로 뇌의 수행 네트워크가 꺼지는 것이 중요한데 논리, 질서, 현실감각을 담당하는 이 수행 네트워크가 꺼지면 우리는 시간, 공간, 이성의 일반적인 규칙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셋째로 주의가 내면을 향해야 하는데 저자가 상상력 네트워크라고 이르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용해야 한다.

 

상상력 네트워크의 작용으로 내측 전전두피질(나와 타인의 관점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기능)이 해방되어 꿈속에서 자신만이 아닌 등장인물 모두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며 다른 이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 이론이 순기능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꿈이 순기능을 하는 과정을 더 보자면, 기계(인공지능)가 주어진 특정 상황이 너무 유사해서 제기능을 못하게 되는 과적합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머신러닝에서 일부러 노이즈를 더하여 데이터를 고의적으로 손상시키고 더 무작위적으로 만들 듯이, 꿈은 우리의 의식에 노이즈를 더하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에게 투쟁 도피 반응을 과도하게 가져와 더 예민하고 긴장되게 만드는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분비를 완화하는 작용을 꿈이라는 노이즈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몽은 우울증과 불안을 야기하고, 급격한 변화를 겪는 악몽의 변화는 치매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는데, 악몽 자체가 뇌 속 뉴런의 일부가 되어 끔찍한 장면이 대뇌피질에 깊이 뿌리내리며 악몽이 지속되기도 한다. 일부의 경우 렘 수면 단계에서 깨우거나 수면 자체를 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완화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 경우 다음 수면에서 미뤄둔 악몽을 급격하게 몰아 꾸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여러 근거로 보아 악몽의 부정적 영향을 심각하게 볼 만도 한데 저자는 PTSD의 경우 악몽이 완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PTSD가 치유되는 경우가 있다고 악몽을 피하기만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꿈은 우리에게 이렇게 노이즈로서 평정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악몽으로서 부조화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부조화를 이겨내는 것도 그 꿈을 통해서이다.

 

앞서 말한 수면 중 마비가 되는 일상적인 경우를 벗어나 꿈꾸면서 움직이는 꿈 행동 증상‘50남성이 보일 경우 몇 년 내에 시누클레인증이라는 뇌 질환으로 발전한다. 이는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항상 그렇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꿈 행동 증상의 원인이 불분명한 사람들의 경우 97%의 사람들이 14년 이내에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꿈 행동 증상을 보이고 전에 없던 유형의 악몽을 꾸는 건 파킨슨병의 임상적 전조 증상이라고 전문의로서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또 꿈을 오컬트적으로 해몽하는 것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저자임에도 꿈을 통해 질병이 예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질환을 예견하는 꿈을 지속적으로 꾸거나 꿈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 암 진단을 예측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사례가 있는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난 변성의식의 하나로 인식될 꿈이라는 것이 이와 같이 우리 일상의 균열을 예고해 주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대극의 한 측면만으로는 불완전하고 안정적일 수 없는 것이란 걸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일상 의식만으로는 인간은 온전할 수 없지 않을까? 일상 의식과 변성의식을 둘 다 경험하며 사는 삶이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싶다. 일상과 변성(명상 그리고 꿈)이 어우러진 의식이야 말로 인간의 온전한 의식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서에서는 단어를 외우며 맡았던 향을 잠자는 중에 맡게 하고 기억력을 향상 시켰다던가, 학습할 때의 향과 음악을 꿈꾸는 사이 들려주고 학습 능률이 향상된 경우들도 들고 있는데, 예상 가능했던 내용이면서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학습에 효율적이라니 학부모와 학생들이 솔깃할 정보가 아닐까 싶다.

 

후반부 내용은 루시드 드림에 대한 정의와 루시드 드림을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 그리고 루시드 드림을 일상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하는 법을 그리고 있다. 앞선 장에서 학습 능률과 창의력을 다루었기에 루시드 드림을 개인적인 고민 등의 문제 해결이나 다각도로 활용하는 법도 알아가는 유익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이 리뷰에서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상적이던 일부만을 다루고 있지만, 유명인이나 유명스타들 각 개인이 뇌세포의 하나가 따로 할애될 정도로 개인들의 무의식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던가 하는 소소하지만 인상 깊은 대목들도 있다. 꿈과 섹스, 꿈속 오르가즘의 실체에 대한 내용까지 등장한다. 관심 분야가 어디냐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이뤄질 책이 아닐까 싶다.

 

본서는 리뷰 서두에 언급했듯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여정에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예를 든 부부가 꿈 이야기를 공유하고 더욱 애정이 깊어지거나 환자나 수감자가 꿈에 대해 대화하며 내면의 문제들을 함께 해소해 나가는 과정은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꿈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상호 이해와 자기 이해의 여정을 위해 본서를 읽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잠든사이의뇌과학 #라훌잔디얼 #조주희 #웅진지식하우스 #도서협찬 #꿈 #뇌과학

이 리뷰는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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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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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치며 빠르게 읽은 후 밑줄 친 대목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은 대목 중 리뷰해 나가기 좋은 부분만 서술해 나가려 한다. 본서를 읽게 된 계기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자존감이란 정확히 무얼까?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라면 어떻게 자존감을 다시 구축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심정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저자분의 자존감에 대한 정의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달라서 잘 읽은 책인가 하는 마음도 남게 되긴 했지만 자존감을 저자가 말하는 대로 해석하니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강 감이 잡히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자기감은 생존을 위해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렸고, 자존감은 사회적 환경 곧 타인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생존에 유리하게 외부 환경 중 자연과 그에 가까운 것들을 바꾸는 능력이 안정된 것이 자기감이고, 생존에 우호적으로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우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알로스테시스라고 정의하며 뇌가 이 기능을 제대로 할 때 안정적이며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작용은 내외적 불균형을 이룬 상태로 정의한다. 결국 자존감이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기능을 하는 생태에 있을 때 느끼는 심정으로 알로스테시스가 안정적일 때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이 안정적인 패턴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자기 스스로도 타인에게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인정 중독 같이 남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역기능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인정 중독은 생존 우호적이거나 생존에 유리하기보다 내외적 불균형을 초래하기 쉽다. 이런 인정 중독을 끊기 위해 자기 인식이 필요한데 외부의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정보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 뇌의 기능적 진화와 발달을 역행하는 것으로 쉽지 않은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만 향해서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즉 내외적 불균형을 갖게 되었을 때는 상당히 적절하고 유효한 것이 내면 정보로의 몰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민감하게 타고났으나 그에만 몰두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질 수 있으니까 명상이나 선무도, 태극권, 기공, 요가, 자율훈련법, 자기 최면 등등이 주는 유익을 누릴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진정으로 자존감이라는 생존을 위한 순기능을 하도록 하는 팁이다라고 해석되는 내용의 저작이다.

 

뻔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그 뻔한 답에 이르기까지 뇌과학을 바탕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인간과 자신의 뇌와 생리 기능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어떤 일상을 살아갈지 사려해 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본 리뷰에서의 요약은 최대한 핵심만 맥락을 짓기 위해 최소한으로 압축하고 가지를 쳐낸 요약이지 저자분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과 그 기능에 관해 이보다는 상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뇌와 자신이 궁금하다는 분들께서는 한 번쯤 읽어보실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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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마음의 치유 - 니체, 심층심리학, 철학상담치료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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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 이전의 어떤 철학자가 심리학자였던가? 오히려 그들은 심리학자의 반대인 고등사기꾼’, ‘이상주의자이지 않았던가? 나 이전에는 심리학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런 때에 최초의 심리학자라는 것은 하나의 저주일 수 있다.-

 

위에 문장은 니체의 자평으로 그는 스스로를 심리학자로 생각했으며 심리학이란 용어가 생긴 이래 최초의 심리학자는 그인 것도 분명하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프로이트보다 앞서 심리학적 관점과 체계로 자신의 철학을 세운 것이 니체였다고 한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심리치료로서 철학의 역할과 기능을 정의한 것은 생각보다 깊은 역사를 지니며 이어져 왔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고, 플라톤은 신체와 영혼의 연관성 위에서 의학적 철학적 교육적 관계를 논의하며 철학자가 영혼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키케로는 영혼의 훈련혹은 영혼의 의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인간의 정서적 내면적 능력과 방법으로 하느님의 교육학 혹은 종교적 의학에 대해 논의했고, 아퀴나스 역시 의학이 신체의 치유와 관계하듯이 철학은 영혼의 치유와 관계해야 한다고 보았다고 한다.

 

본서는 이러한 철학의 심리학적 심리치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그 기능과 역할의 부분들을 배움으로써 얼마간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같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감상을 갖게 되었다. 본서에서는 니체 철학을 근간으로 철학의 마음 치료의 기능을 돌아보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의식과 충동의 관계를 문제시 했으며, ‘의식이란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주석적 체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분명히 제시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리 보면 프로이트보다도 앞서서 무의식을 논한 최초의 심리학자였지 않은가 싶다.

 

이쯤에서 니체가 다른 심리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나 다른 심리학자와의 차이점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몇몇 심리학자와 연결지어 보자.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개념을 들어 이를 질병을 설명하는 중심으로 가져갔으나 니체는 허무주의의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보았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과거(과거에 일어난 사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혹은 트라우마를 중시했으나 니체는 현재의 삶이나 미래를 향한 의지, 삶의 의미의 발견을 중시했다고 한다.

 

칼 융은 니체의 열렬한 탐독자였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분석심리학 이론의 근간인 개성화, 자기화, 자기실현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니체의 상징주의적 예시들에서 융이 이끌어낸 개념들은 그 외에도 적지 않았다.

 

아들러는 니체의 극복인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인간 행위의 동인을 열등감으로 보았으며, 니체가 개인 스스로의 완성을 중시한데 비해 아들러는 사회에 소속되는 것을 중시했다.

 

오토 랑크 또한 니체의 극복인을 통해 예술적 치료의 효과를 깨우쳤고,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통해 의지 심리학과 의지 치료의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랑크의 심리학은 이후 로저스와 굿맨을 통해 인본주의 심리치료와 게슈탈트 치료로, 페촐트를 통해 게슈탈트 치료와 인본주의 통합치료로 발전해 갔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역시 니체의 의지와 극복인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모르파티의 개념까지도 깃들어 있는 심리치료 체계로 생각된다.

   

니체 철학이 근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철학을 치료의 여정으로 본 것은 고대 철학자들부터 이제까지 이어져 온 과정으로, 칸트 역시 철학은 (치료적으로) 치료제로 작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철학의 치유 효과를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철학 치료의 최초의 실제 사례를 보면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자신의 내담자인 중년의 심각한 정신분열 여성 환자에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 철저히 파고들라고 해서 그 여성이 그 처방을 따르자 거의 완치되었다는 실화가 있다. 이상심리의 치료 방식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각자에 따른 처방이 다르겠지만 이 책은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니체의 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니체에게 의식의 일깨움을 가져다주고 쇼펜하우어 사상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까지 일게 해 니체 철학이 성립되기 시작하는 효시로 작용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철학이 치료 효과를 갖는 이유는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삶과 대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살아가면서 반응할지를 깨우쳐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감각하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수용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자체가 이미 치유를 불러오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우르소스의 말이 떠올랐다. 다만 상처 입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 나아가기에 가능할 일이니 말이다.

 

"철인이 되어라. 지혜롭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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