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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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볼 줄 밖에 모르는 바보에게 선물을 주신 해피북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번 가봐야지”하고 마음먹은 게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중학생 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읽었다. 언젠가 책 속에 나온 문화유산을 꼭 두 눈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처럼 답사 코스 일정을 만들어서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중에 ‘역사 덕후’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열심히 읽었고, 좋아했다. 한 번은 친구는 대학생이 되면 나와 함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원래는 여름방학 중 1주일만 잡아서 여행 일정을 편성하려고 했다. 당시 우리의 패기는 대학생 신입생 못지않았다. 우리가 구상한 여행은 단순히 노는 휴가가 아니라 교실 밖으로 나가 몸으로 자유롭게 느끼는 공부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름방학 보충수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무조건 보충수업에 참여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방학 보충 수업을 피하고 싶은 학생들은 ‘가족 여행’, ‘아르바이트’ 등 각종 거짓말을 지어내었다. 몇몇 학생들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휴가철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서 학교에 당분간 못 나오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보충 수업을 빠지려고 하니 선생님들의 눈에는 그들의 거짓말이 뻔히 보였다. 선의의 거짓말이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정면 승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우리의 여행을 솔직하게 말했다. 책 속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딱 일주일만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청소년 추천도서인 유홍준 교수의 책을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기에 우리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여행의 목적을 들으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주면서도 끝내 허락해주지 않았다. 청소년이 단둘이서 일주일간 여행을 하다가 자칫 위험한 사고가 생길 수 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여행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타이르셨다. 결국, 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을 동반한 여행이라고 말할 걸 그랬다. 선생님에게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면서 말하고 보충 수업을 빠진 녀석들이 피시방에 눌러앉아 게임만 하거나 계곡에 가서 소주병 나발 불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억울했다.

 

휴가를 답사여행을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럴 만도 하다. 시원한 계곡 물에 ‘풍덩’ 빠져보거나 바닷가에 물놀이하는 여름 휴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문화유산답사를 지루한 여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답사의 의미가 공부와 비슷하게 연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답사를 학교 다녔을 때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감독 하에 정해진 곳에만 가야 하고, 답사를 마치고 나면 감상문 비슷한 글 한 편 써야 한다. 답사기를 짧게 쓰면 선생님은 다시 써오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교실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본 것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답사는 ‘교실 밖으로 나가 현장을 보고 느끼는 일’이 아니라,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아이들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채우려고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대신에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찾아서 열심히 메모한다. 이게 과연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되는 답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가득 채울 수는 있어도, 학생들의 만족감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대개 경치가 좋다.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곳은 자연히 알려지고 그 덕에 거기에는 사람이 모여들어 숨결이 남게 마련이다. 경치 좋은 곳을 찾고 싶다면 당연히 문화유산부터 찾는 편이 빠르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강원도 영월은 수려한 절경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절경 속에 단종의 슬픈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특별한 장소다.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 청렴포. 청렴포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게 된다면 다음부턴 영월 이야기가 나오면 단종애사가 떠오를 것이다.

 

임금님도 보고 싶어서 전속화가를 보내 그려오게 했던 단양 8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수백 년 후에 사는 우리는 단양 8경을 조금 우습게 본다. 이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로와 충주호 유람선 덕분에 마음껏 경치를 감상할 수 있지만, 예전엔 몇 날 며칠을 걸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단양 8경은 유람선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용 관광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양 8경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특히 단양 8경 중 하나인 사인암은 선비들의 안식처로 알려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고려 말 학자 우탁이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 휴양하기도 했다. 70m 높이에 이르는 기암절벽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고 떠난 선비들은 바위에 자신의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가면 수백 년 전 선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문화유산답사는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 ‘문화가 있는 휴가’가 된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실태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중에라도 문화재 파괴의 현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되고, 문화재를 훼손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많이 남아있는 폐사지에 가면 불교문화의 옛 정취와 기가 막힌 전망을 볼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마음이 울적하면 폐사지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더 울적할 것 같다. 수풀만 무성하게 남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폐사지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뒹구는 석불 일부가 빛을 보지 못한 채 방치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과거에 1만 평에 이를 정도로 대찰이었던 흥법사가 있던 곳은 논밭으로 변했다. 한쪽에서는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대로 방치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세계유산의 등재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존 관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 이 책에 눈여겨 볼 점이 신경림 시인이 쓴 시가 무려 네 편이나 소개된다. 그리고 시인은 유홍준 교수가 이끄는 문화유산답사단에 합류하여 책에 카메오로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답사코스 중에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배경인 ‘목계나루’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에 대한 유홍준 교수의 애정(?)은 각별하다. 중원 고구려비 답사를 하는 도중, 고구려비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생가를 보고 왔던 시절을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쓴 「다시 느티나무가」전문을 소개하고, 충주가 낳은 시인을 문화적으로 큰 복이라고 예찬한다. (319~321쪽 참조) 이 시는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에 수록되어 있다. 신경림 시인의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를 소개하면서까지 시인을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교수의 문장을 보면 자신들이 만든 책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출판사의 개입이 다분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을수록 ‘창비스러운’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342쪽에 교수는 폐사지를 언급하는 내용에서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를 부분 인용한다. 이 시의 출전은 《밥값》(창비, 2010)이다.

 

기가 막힌 우연일까, 아니면 저자와의 돈독한 (출판) 의리가 만들어 낸 출판사 PPL일까?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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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아가는 것...

내가 서 있는 곳을 모르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cyrus 2015-10-01 20:00   좋아요 0 | URL
가고 싶은 장소라고 해서 무턱대고 가는 것보다는 그 장소가 어떤지 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0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만에 Cyrus님 글 읽으니 왜 이리 반가운지... ^^ 추석 잘 보내셨죠? ^^

cyrus 2015-10-01 20:05   좋아요 0 | URL
다이제스터님도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이번 연휴는 집에서 혼자 보냈는데, 분위기가 조용해서 좋은 반면에 밤이 되니까 외롭더군요. 그래도 지낼만했습니다. 5일 동안 알라딘 접속을 멀리하니까 글 쓰는 것조차 귀찮아졌어요. 당분간 접속을 안해서 제 존재감이 잊힐 줄 알았는데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10-0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ppl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cyrus 2015-10-01 20:07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신 모 작가 표절 논란 때문에 창비를 안 좋게 보고 있어서 창비 책을 알리는 듯한 문장이 별로였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신경림, 정호승 시인의 글을 좋아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10-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소용없어요 ^^;;; 이 시리즈 제주편을 보고 제주도 여행갈때 그렇게 일정 짜야겠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막상 갈 때 되니.....죄다 아이들 위주로 일정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ㅠ 초딩 유딩 아이들에게 추사 유배지 가자는 말이 차마 안 나와요 ㅋㅋ

cyrus 2015-10-01 20:09   좋아요 0 | URL
1인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가족 여행 중에 그나마 제일 편한 게 혼자 가는 여행인 것 같아요.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으니까요. 결혼하기 전에 1인 여행을 자주 해야겠어요. ㅎㅎㅎ

돌궐 2015-10-0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홍준 선생이 답사기에 이런저런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긴 합니다. 시를 참 많이 읽은 분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유산답사기의 유려한 문체가 저자의 이런 독서이력에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허망한 글도 있어서 걸러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5-10-02 23:39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창비시집에서 나온 시가 언급되어서 제가 예민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ㅎㅎㅎ

AgalmA 2015-10-0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도 운문사 새벽 예불보다 책 속에 나온 ˝율무차˝에 더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지금도 그 율무차는 여전한지ㅎ

cyrus 2015-10-02 23:43   좋아요 0 | URL
`청도 운문사` 이야기라면 답사기 2권에 나오는 것 맞죠?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

페크pek0501 2015-10-0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3권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지적 흥미를 주죠.
그런데 8권까지 나왔다니...

cyrus 2015-10-07 18:53   좋아요 0 | URL
유 교수님이 벌써 다음 책 출간 준비를 염두하고 있더라고요. 잘 하면 10권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요. ^^
 

 

 

 

 

 

 

 

 

 

 

 

 

 

 

 

 

 

 

영월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지역이다. 그곳에 가면 어린 임금 단종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세조는 1457년 단종을 영월 청령포에 유배시켰다. 단종이 한양의 궁궐을 떠나 당도한 청령포는 뒤에 벼랑, 앞에 강줄기가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청령포에서 약 2개월가량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은 그곳이 홍수로 침수되는 바람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관풍헌에 머물 당시 단종은 자규시(子規詩)’자규사(子規詞)’라는 제목의 시 2수를 짓는다. 어린 임금이 지은 시에는 그의 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와

외로운 그림자로 푸른 숲에 깃들었다

밤마다 억지로 잠들려 하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마다 한스러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원한은 끝나지 않네

자규 울음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조각달만 밝은데

피를 뿌린 것 같은 골짜기에는 붉은 꽃이 지네

하늘은 귀머거린가 아직도 애끓는 나의 호소를 듣지 못하고

어이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게 했는가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眼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撓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問哀訴
胡乃愁人耳獨聰

 

(자규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80~81)

 

 

달 밝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더욱 구슬퍼
시름 못 잊어 누 머리 기대었노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으면 내 시름도 없었으리니
세상에 근심 많은 분들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月白夜蜀魂湫

含愁情依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苦榮人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자규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84)

 

    

 

자규는 두견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규사1행에 나오는 ‘촉혼 두견새의 또 다른 별칭이다. ‘촉혼이라는 이름은 고대 중국 촉나라에 유래되었다. 촉나라 왕 두우(杜宇, 또는 망제’(望帝)라고 부르기도 함)는 신하의 반란으로 폐위되었고, 한이 맺힌 채 비참하게 죽었다. 촉나라 왕의 원혼은 두견이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갈 수 없네)’를 울부짖으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촉혼불여귀는 두견새의 별칭이 되었다.

 

 

 

 

왼쪽이 두견새, 오른쪽이 소쩍새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런데 단종이 한밤중에 들은 구슬픈 울음소리의 주인은 두견새가 아니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두견새는 낮에 활동한다. 소쩍새와 두견새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올빼밋과에 속한 소쩍새는 두견새와 그 생김새가 전혀 다르고, 밤에만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소쩍소쩍하며 밤새 쉼 없이 애처롭게 울어대어 듣는 이의 심금을 자극하는 소쩍새. 이 점이 두견새와 헷갈리게 한다. 유홍준 교수는 자규사’ 1행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는 대신에 달 밝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더욱 구슬퍼로 고쳐서 해석했다.

 

두견새는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한국 고전문학의 소재로 등장한다. 정확하게 바로잡으면 소쩍새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좋아하는 김소월접동새또한 소쩍새 울음소리를 애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라나

먼 뒤쪽의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따라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은 어린 시절, 숙모가 자신에게 들려준 전설을 토대로 이 시를 썼다. 평안북도 박천에 있는 진두강 가의 마을에 살았던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다. ‘큰 누나라고 불리는 여인은 시집갈 준비를 하게 되는데 신랑 쪽 집안에서 여인에게 예물을 많이 보냈다. 욕심 많은 계모는 예물을 제 손으로 차지하려고 여인을 괴롭혔다. 강제로 예물을 빼앗은 계모는 여인을 잔인하게 매질했다. 여인은 자신의 친어머니가 남겨놓은 장롱에 갇혔고, 계모는 여인이 갇힌 장롱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여인은 아홉 명의 동생들을 남겨두고 계모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그녀의 원혼은 접동새가 된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이승에 있는 동생들이 걱정되고, 너무나 그리워서 어두운 밤에 이 선 저 산 옮기면서 구슬프게 운다. 이 시에 나오는 새가 접동새인지 소쩍새인지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큰 누나의 원혼이 깃든 새가 접동새라고 믿고 싶다. 큰 누나는 계모가 두려워서 밤에만 나타나 울 수밖에 없으니까. 사람들은 한밤중에 우는 새의 울음소리가 무섭다고 하지만, 큰 누나의 억울한 사연을 생각하면 밤에만 울어야 하는 접동새가 슬프게 느껴진다. 사소한 혼동이 있다고 해서 시의 애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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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25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마녀사냥>에 출연하는 허지웅은 자기 입으로 무성욕자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자신은 연애 의지가 없어서 스스로 무성욕자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허지웅의 무성욕자 발언 이후 그런 얘기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예전엔 무성욕을 쉬쉬했지만, 허지웅의 무성욕자 발언 이후 무성욕이란 단어를 말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평생 성욕의 유혹을 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세계 4대 무성욕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붓다, 사마천, 토마스 아퀴나스, 루이스 캐럴. 붓다는 악마 마라의 유혹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반을 준비해 나갔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을 쓰기 위해서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받았다. 아퀴나스는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희망에 못마땅했다. 그래서 아들을 강제로 감금시켜서, 방 안에 매춘부 두 명을 들여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매춘부의 유혹에 못 이겨 세속적인 욕망을 따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퀴나스는 벌거벗은 매춘부의 도발에도 몸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무성욕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캐럴은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말더듬이에 수줍은 성격 탓에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과 잘 어울렸다. 그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면 생전에 다방면으로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교수였고, 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책도 몇 권 발표했다. 비록 공식적으로 성직자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사제 서품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자신과 친분을 맺는 사람들의 모습을 멋지게 담는 사진가가 되었다. 그가 찍은 소녀들의 사진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만약에 캐럴이 연애 혹은 결혼을 했더라면, ‘아동 성애자라는 오명이 따라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벌거벗은 소녀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캐럴은 아동 성애자로 의심받았고,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은 그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실제 모델 앨리스 리델과의 관계를 주목했다. 연구가들은 캐럴이 앨리스 리델을 알고 지내는 소녀 이상으로 좋아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캐럴이 만난 사람 중에 여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캐럴은 이성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문화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답게 도덕적인 삶을 살아왔다. 당시 유행하는 패션에 무관심했다. 또한, 신체적 결함은 캐럴의 연애 감정을 싹 틔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말을 더듬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 귀가 질병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캐럴은 자신의 모습이 여성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밀리 거트루드 톰슨 (1850~1929)

 

 

 

이성과의 만남 횟수가 적은 사람일수록 연애 세포가 쉽게 죽고 만다. ‘연애 못 하는 남자캐럴은 반려자를 만나뻔할 운명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삽화가인 거트루드 톰슨이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캐럴은 그녀의 삽화 실력에 감탄하여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고, 두 사람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돈독해진다. 이때 톰슨의 나이는 스물아홉, 캐럴은 곧 지천명에 눈앞을 두고 있었다. 나이 차가 꽤 많이 나는데도, 톰슨은 캐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캐럴을 처음 만났던 당시 상황을 기록했는데, 그가 어린아이에게 상냥한 신사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함께 연극 공연을 보고, 전시회도 다녔다. 그러나 캐럴은 톰슨을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으로 생각했다. 캐럴의 지인으로부터 이 사실을 안 톰슨은 전혀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쿨한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 톰슨은 캐럴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톰슨이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한다고 해도 캐럴은 그녀의 애틋한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캐럴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능력을 펼쳤지만, 자신의 말 더듬는 버릇을 들춰내는 어른 사회가 불편했다. 반면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은 캐럴의 말 더듬는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 더듬는 횟수가 많아질까 봐 조바심을 냈던 캐럴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유난히 행복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야기나 재미있는 농담을 들려주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캐럴은 모든 아이를 사랑했다. 판매되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책들을 어린이 병원에 기부한 적이 있다. 캐럴은 어린이 환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 병이 빨리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캐럴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후에 어린이들은 캐럴의 따듯한 성품을 기억하기 위해서 직접 모은 돈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어린이 병원에 새로 마련되는 침대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 침대에 루이스 캐럴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런 멋진 일을 했는데도, 여전히 캐럴이 소녀 한 사람만 바라보는 특이한 어른으로 보이는가. 요즘 아동 성범죄가 지속해서 늘어날수록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아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껴안으면 의심받을 수 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나쁜 어른들 때문에 순수한 의도의 행위가 변질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선행을 펼치는, 캐럴 같은 착한 어른들이 오해를 받을까 봐 걱정된다.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런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루이스 캐럴 상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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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들이 짝짓기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좀 불편할때가 있습니다~
무성욕자라고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cyrus 2015-09-25 15:28   좋아요 0 | URL
남자들 사이에서 동정남이라고 고백하면 놀림 받습니다. 군 복무했을 때 제가 동정남이라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갈굼 먹기도 했어요. ‘혼전순결’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세실 2015-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지웅도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요.
루이스 캐럴상 좋은데요~~

cyrus 2015-09-25 15:3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는 방정환 선생이 유명하죠.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이 있어서 좋습니다. ^^

보슬비 2015-09-2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에밀리 거트루드 톰슨과 캐럴과 그런 만남이 있었군요. 알고 보니 엽서 그림이 더 마음에 드네요. ㅎㅎ

cyrus 2015-09-25 15:31   좋아요 0 | URL
구글에 ‘Gertrude Thomson’으로 검색하면 그녀가 그린 삽화 몇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잘 그렸습니다. ^^

초록장미 2015-09-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캐럴상 좋네요~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어른은 분명 전체에 비하면 소수일 텐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제 눈도 흐려져가는 것 같아 슬플 때가 있어요. 루이스 캐럴상 같은 것을 만들어서 널리 홍보하면 아이를 귀여워하는 어른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15-09-25 15:3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방정환 문학상’, ‘마해송 문학상’ 같은 아동문학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주는 상은 있는데, 방정환 선생처럼 아이들을 위해 선행을 베푼 사람들에게 주는 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새아의서재 2015-09-25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잘 몰라서 묻는건데요. 사마천처럼 궁형을 받았다해도 성적 욕망은 느낄수 있는건 아닌지.. 내시들끼리 성적인 결합들이 있었다고 하지않나요? ^^ 그냥 뜬금없는 댓글..

cyrus 2015-09-25 15:41   좋아요 0 | URL
부인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거세가 되어 남성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면 성적 욕망도 감소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거세된 남성은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는지 궁금하긴 해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실험해볼 수가 없고...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9-25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그 행위에 대한흥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용될 수 있겠네요.ㅎ 일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사실 무성욕이든, LGBT든 상관이 없지요. 다만 여기에 붙는 label이 문제이고 편견 때문에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게 이슈네요. 루이스 캐럴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습니다.

cyrus 2015-09-25 15:51   좋아요 1 | URL
캐럴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그 다음에 사진을 찍는 일인데 여기에 몰두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어요. 남들에게 크게 미운 털 한 번도 박힌 적이 없을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는데도, 캐럴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해피북 2015-09-2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손녀기다렸다가 데리고 가는 모습 참 훈훈했는데 요즘은 자꾸 의식하게 되는거같아요. 사회가 점점불안하니 불안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것들이 다 그렇게 비춰지는것만 같아요. 인식이 하루 빨리 바뀌면 좋겠어요. 루이스 캐럴상 깊은 공감한표 ㅋㅂㅋ!

cyrus 2015-09-25 15:58   좋아요 0 | URL
아동 성범죄가 많아지니까 예전에 가능했던 일들이 추억이 되고 말았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출입하려면 먼저 경비실에 가서 출입절차 확인을 받아야 해요. 예전에 집에 가는 지름길로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가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 가요. 뭣도 모르고 지나가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쫓겨난 적이 있어요. ^^

stella.K 2015-09-2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성욕자는 의외로 많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 사찰에도...
교회를 다니는 걸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성욕을 견디지 못해서란
말도 있던데 꼭 성욕은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성욕은 젊은 사람에게 왕성하게 있고, 노인은 없을 거란 식의 이분법적
사고도 문제지만, 사회가 성욕을 부추기기도 하잖아. 마치 그게 정상인 양.
그건 옳지 않은 것 같은데 반대로 성욕을 어떻게 해결하고 제어해 나갈거냐에
대해서도 논의는 있어야 한다고 봐.
무성욕자를 무슨 병이나 미성숙으로 바라보는 건 정말 문제가 있지.
이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끌리고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럼에도 우린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도 우호적으로 잘 지내기도 하고 반대로 싸우기도 하고.
그런 거지 뭐.ㅋ


cyrus 2015-09-25 21:56   좋아요 0 | URL
<마녀사냥>이 섹스 장려 프로그램이잖아요. 요즘은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낮이밤이’, ‘낮져밤이’가 유행했을 때 게스트에게 항상 먼저 이런 걸 물어봤잖아요. <마녀사냥>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좋았어요. 구성애 성교육 강의 이후로 성 담론을 소재로 한 방송이었으니까요. ^^
 
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시선 390
안주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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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써서 먹고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원고료라고 해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시집을 내봤자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시인을 시를 쓴다. 안주철도 마찬가지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모진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본능이 시에 배어 있다. 안주철의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은 쓸쓸한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마디로 그의 시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마치 그 시의 내용이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슬픔과 소외감은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노인이 되는 법」, 34~35쪽)

 

 

 

고독이라는 감정은 늘 우리를 지배한다. 고독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늘이 있어도 없는 척 능청스럽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정리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언제나 고독이다.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면서도 끝내 혼자가 되어버릴 때가 있다.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구절에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 외롭지 않으면 결코 길을 떠나지 않는다. 시인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끌려 안식처를 지나쳤지만, 결국 고독을 받아들여 맞서 싸우기로 한다.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다음 생에 할 일들」, 74~75쪽)

 

 


사람이 일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다. 그다음이 칭찬이다. 이는 관심과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심적 고통의 늪에 빠졌다가도 누군가가 위로와 칭찬의 손길을 내밀면 대부분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내게 어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순간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없다면? 있어도 내 말과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슬퍼진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줘야 하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주기보다 받으려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이때 단절로 인한 고통은 자신이 변해 살 수 있다는 내 안의 ‘경계경보’다. 사랑을 먼저 주고, 곁에 있어 주며,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바뀌어야 한다. 시인은 다음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가정하에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이름하며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게 살 것’. 가족은 시인을 위로한다. 시인은 그런 삶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같이 아프고 위로하는 가운데 정은 그 어떤 밧줄보다 튼튼해진다. 그 훈훈함도 산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봉지보다 가슴 울린다. 정이 희미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시인은 등 돌린 타자들끼리의 새로운 관계망을 언어로 형성해 보려는 여정에 관심을 가진다. 쓸쓸한 개인들이 힘겹게 친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 한 달만 지나면 난로보다 사람의 체온이 더 그리워질 것이다. 사람 사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에도 조그만 관심으로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따스함으로 삶이 지탱되는 존재임을 또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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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5-09-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헣....이 시집에서 <다음 생에 할 일들>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되네요. 덤덤하고 담담한 시에요, 참.

cyrus 2015-09-24 17:58   좋아요 0 | URL
이 시집 덕분에 안주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어요. 다음 시집이 기대됩니다. ^^

인디언밥 2015-09-24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닿네요..

나비종 2016-01-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롭지 않으면 결코 길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별도 어쩌면 외롭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떠남`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위로라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내 삶을 따스하게 지켜봐주는 관람자일까요? 나를 주인공으로 바라봐주는.
 

 

 

 

 

 

 

 

 

 

 

 

 

 

 

 

 

 

 

 

 

 

페이스북이나 북플을 이용하다 보면 종종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친구 관계를 맺은 분의 나쁜 소식을 접했을 때다. 사람들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이런 행위를 좋지 않게 생각한다. 마치 나쁜 소식에 좋은 감정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대신에 댓글에 위로의 말을 남긴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견해를 밝힌 글도 차마 ‘좋아요’를 누르지 못한다. 그 사람의 생각이 싫더라도 예의상 ‘좋아요’를 눌러줄 수는 있다.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모순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15일에 ‘싫어요’ 버튼 기능을 도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나쁜 소식에 대한 공감을 ‘좋아요’ 버튼을 눌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해 왔다. 주커버그는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좋아요’ 이외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방안을 제시했다. 이 기능이 나온다면 특정인의 부고 소식, 가슴 아픈 이야기,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기분 나쁜 사건 등을 알리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를 필요가 없어진다. 슬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면 ‘싫어요’를 누르면 된다.

 

그런데 ‘싫어요’ 버튼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상황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다. 다수의 사람이 특정인을 겨냥한 반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정인을 비하하려고 악의적으로 ‘싫어요’를 누르는 사람이 많아지면,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선량한 사람이 쓴 게시물에 남아있는 ‘싫어요’ 개수는 그 사람의 일생을 파괴해버리는 낙인이 될 우려가 있다. 그 사람은 천 개나 넘는 ‘싫어요’ 개수 때문에 한순간에 ‘마녀’가 된다. 그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싫어요’ 누르기만 바쁘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싫어요’를 누르는 디지털 마녀사냥을 보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올린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가 잘못 소개하여 공유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생각해보라. ‘싫어요’ 개수가 1분에 수십 개 이상 올라가고, 욕설이 담긴 메시지와 댓글에 시달려야 한다. 감정이 집단으로 분출되어 동일시하는 심리적 현상이 한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자신이 유리하게 만들도록 왜곡해서 쓴 잘못된 정보가 ‘좋아요’ 100개 넘어 받는다면, 누구나 그 사람의 정보를 믿는다. 그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서 남의 개인정보를 도용하여 자신이 직접 올리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친한 사람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런데 이제는 ‘좋아요’ 하나 누르는 일에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 누르는 내 모습이 마치 자동차 전면 유리창에 알을 낳으려는 잠자리와 같아 보인다. 투명한 유리창이 물인 줄 알고, 거기에 알을 낳는 잠자리처럼 말이다. SNS 이용자 대부분은 깨끗하고 투명한 척하는 거짓이 진실인 줄 알고 ‘좋아요’를 누른다.

 

한동안 페이스북 접속을 멀리하고, 책에 관한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알라딘 서재가 ‘북플’로 변신하면서 이곳도 페이스북을 닮아간다. 자신의 일상을 알리는 사진을 공개하는 이웃이 있고, 책 소개를 짧게 알리는 이웃도 있다. 예전에 비하면 A4 1장 넘는 분량의 서평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웃의 글은 ‘알라딘 서재’로 접속해서 읽는다. 하루에 읽는 이웃의 글은 보통 15~20편이다. 일부 글은 분량이 짧아서 정말 1초에 확인할 수 있고, 긴 내용의 글을 읽으면 3분 정도 걸린다. 진짜 꼼꼼하게 읽으면 5분 걸린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친구 관계’를 맺은 모든 분의 글을 일일이 다 읽는다거나, 꼼꼼하게 읽지 못한다. 나 또한 짧은 글과 사진이 주를 이루는 페이스북 환경에 오래 적응된 탓에 조금이라도 긴 내용의 글을 대충 읽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다 읽는다는 건 힘든 일이고, 관심 분야를 다룬 글 위주로 읽는다고 보면 된다. SNS 기능상 짧고 쓰는 글은 사람들이 읽기 편해서 좋긴 한데, 정작 책과 관련 없는 정보가 많아져서 아쉽다. 그래서 웬만하면 100자평, 일상을 공개한 사진이 있는 글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댓글도 달지 않는다. 글이 지나치게 긴 것도 읽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읽기 적당한 서평의 분량은 A4 용지 1장 반이다. 예전에 서평 한 편 쓰면 무조건 A4 용지 3장 정도 분량이 나왔다. 몇 년 전 모 언론사에 신문 칼럼을 쓰는 방법을 숙달하고 나면서부터 적당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새고 말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나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 애매한 글이라면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 이럴 때 필경사 바틀비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I would prefer not to)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행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소극적 거절이다.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와 그 개수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이 정직하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 다수가 열광하는 대상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사람을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좋아요’를 누르는 데에도 남의 시선에 의식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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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22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고장 소식에 ˝좋아요˝는 못누르겠더군요.ㄷㄷㄷ

cyrus 2015-09-23 18:07   좋아요 0 | URL
그런데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5-09-2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타인만을 위해 북플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Cyrus님께서도 그러실 듯...근데 바틀비가 무슨 뜻인지요?

cyrus 2015-09-23 18:11   좋아요 0 | URL
제가 소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군요. 허먼 멜빌이 쓴 소설 제목이 ‘필경사 바틀비’인데 ‘바틀비’가 주인공 이름입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9-2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떡해요~ ˝좋아요˝ 를 눌렀어요. ㅎㅎ 하지않을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할 권리보다 하지 않을 권리를 좀 더 존중해 줘야 한다고 현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cyrus 2015-09-23 18:15   좋아요 0 | URL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글에 항상 ‘좋아요’를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AgalmA 2015-09-25 0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스템과 상황은 계속 발생할테고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또 통제가 되니까요. cyrus님의 뜻도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또 살다보면 완벽히 자기 의지대로 못할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자기 의지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위축되고 좁은 관계망으로 안전성을 추구하게 되고 좁은 풀pool이 만들어지면서 [좋아요]의 끼리끼리 집단성은 또 강력해지죠. 결국 문제는 순환됩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건 침묵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상대와 주위에 대해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일 겁니다. cyrus님의 이 글도 그런 뜻이 담겨 있을 테고요. 다같이 사는 사회고, 어느 정도가 최선일 지는 각자의 역량에 달려 있겠지요....
책제목도 있듯이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뜻은 상대를 지적하는 데 쓰기보다 나나 상대의 실수, 부족함, 기대 미만도 감안하는 데 더 좋은 쓰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평가는 내 자의와 주관이 바탕이가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관계나 잘못을 바로 잡는 건 옳은 일이지만, 그 방식에 있어 상처까지 주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저도 반성하는 점이고요.
이런 여러 가지가 숙고된 글이라면 좋아요나 싫어요가 문제적이지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인간은 모든 걸 다 알고 말할 수 없으니 참....
한참 생각해 보고 이 댓글을 썼는데, 부족함이 있더라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cyrus 2015-09-23 18:36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위축되고 좁은 관계망’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아갈마님의 말씀처럼 저와 ‘친구’ 관계를 맺는 분들만 글을 보게 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겨요. 그런데 확고한 의지가 꼭 실천되는 건 아니에요. 가끔 짧은 글, 일상 관련 글에서도 ‘좋아요’를 누릅니다. 내가 당신의 글을 보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죠. 그래서 제 글에 ‘좋아요’을 눌러주는 분들이 짧은 글을 남겨도 감사의 보답으로 ‘좋아요’를 누릅니다. 이런 과정이 아갈마님이 말씀하신, `강력해지는 집단성`입니다. 저 또한 ‘좋아요’에 신경을 안 쓸려고 해도, 자꾸 그쪽으로 향합니다.

2015-09-22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리미 2015-09-22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고민하는 부분이네요. 저는 알라딘 서재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었고 책을 많이 읽게 된 것도 애들을 키우고 조금 한가해진 최근 몇년의 일이에요. 그동안 독서한 기록들을 수첩에 정리해 놓고 있다가 알라딘에서 북플 앱이 나와서 처음엔 나만의 기록으로 정리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SNS다 보니 자주 보이는 이웃분들과 교류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좋아요`나 `댓글`에 조금씩 신경도 쓰이고요. 그저 내 맘 가는 대로 해보자라고 편하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이긴 한 것 같아요. 저는 리뷰도 아직은 너무나 서툰데 거기에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댓글로 소통하는 이웃 분들이 계시니 힘이 나는 것만은 사실이고요^^
가끔씩 습관처럼 누르게 되는 것은 자제하려고 애쓰고도 있답니다^^

cyrus 2015-09-23 18:46   좋아요 0 | URL
제가 예전에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서 곤혹을 치른 적이 있어서, SNS에 오르는 글을 읽을 때 신중해져요. ^^;;

인디언밥 2015-09-24 14:55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ㅜㅠ 공감해요

오후즈음 2015-09-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글엔 좋아요를 누를거예요. ^^가끔 슬퍼요, 화나요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5-09-23 18: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카카오스토리처럼 븍플에 감정 표현 기능이 많이 생긴다면, 북플이 재미있어 것 같아요.

수이 2015-09-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글을 정말 좋아서 좋아요_를 누르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글이 정말 좋아서 좋아요_를 누르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봐, 나도 습관적으로 선호하는 글이나 좋아하는 사람의 글은 읽기도 전부터 먼저 좋아요_를 누르곤 하니까 좀 민망해하면서 이 글 읽고 있지만. 소극적 거절도 좋고_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쓰는 글이라서 좋아해. 북플 기능을 마음껏 활용해서 짧은 단상들이나 주절거림, 사진을 많이 올리는 사람으로서는 좀 많이 찔리네 ㅋ

cyrus 2015-09-23 18:57   좋아요 0 | URL
누님. 제 글 때문에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SNS에 망하지 않는 이상, 글을 짧게 쓰고, 사진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요. 그리고 누님은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정말 양호한 편이에요. 누님은 이렇게 ‘좋아요’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잖아요. 그런더 제가 페이스북에서 만난 어떤 분은 하루에 다섯 개 이상 타임라인을 도배해요. 읽어보면 정말 쓸데없는 소리들이에요. 북플에서 누님이 어떤 책 읽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

만병통치약 2015-09-2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버튼에 공감합니다 버튼, 익명으로 누를 수 있는 어쩌라고 버튼을 적용해야합니다.그러면 저처럼 허영가득한 글에는 어쩌라고가 가득할테지만요 ㅋㅋ 이글에는 공감과 좋아요를 누릅니다.^^

cyrus 2015-09-23 18: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익명일 때가 좋았어요. 저도 지적 허세 끼가 있는 글을 써서 ‘좋아요’ 수가 많지 않아도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요. ㅎㅎㅎ

맥거핀 2015-09-23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알라딘에서도 누군가를 비판, 비난하는 글에 붙은 `좋아요` 숫자를 볼 때 뭔가 조금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주장이 타당하고 안 타당하고의 문제와 전혀 별개로 말이죠.) 저는 `좋아요`가 있든 `싫어요`가 있든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도 결론적으로는 cyrus님 같이 누르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cyrus 2015-09-23 19:02   좋아요 1 | URL
저는 그게 `편가르기`로 보여서 제가 아는 분들이 논쟁에 휘말리면 그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요. 그냥 댓글만 달아요.

해피북 2015-09-24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누르는 ` 좋아요` 는 참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ㅎㅎ `힘내세요``고마워요``잘읽었어요` 등 누를때마다 마음을 다해서 누르게 됩니다. 책을 읽는다는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가끔은 외롭게도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지더라구요. 때론 이렇게 읽어서 뭐하나. 또 글은 적어서 뭐하지와 같은 지극히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할때면 힘들어지기도 하고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끈기있게 다잡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게 사실이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웃님들의 글을 읽을적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있어요. 이웃님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진 않으실까, 이 글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힘내세요, 잘읽었어요`라는 마음을 담아서 누르게 됩니다. 그 글들이 토양이되서 성장(?)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것도 이웃으로써 함께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죠.

그렇지만, 솔직히 `좋아요`보다 더 좋은건 `댓글`인거 같아요. 그래서 댓글로 소통을 많이 할 수 있또록 생각을 많이 적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튼 제가 누르는 `좋아요`는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오늘도 꾸욱 누르고 갑니다 ㅋㅁㅋ!!!


cyrus 2015-09-24 18:0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좋아요’만 누르는 것보다 ‘댓글’이 달린 게 더 좋아요. 왜냐하면 그 분은 확실히 제 글을 읽었으니까요. 해피북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이웃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책 선물 주신 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인증샷 겸 서평을 올리겠습니다. ^^

인디언밥 2015-09-2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urus님 글이 좋아요~~~ ^0^

cyrus 2015-09-24 18:0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 글의 입장이 불편하거나 글에 잘못된 것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

하양물감 2015-09-3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이스북을 주로 하는 터라... 그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솔직히 제 글에 좋아요가 그리 많이 달리지 않는 편이라 신경을 덜 쓰긴 하지만요..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좋아요 많은 글에 좋아요 클릭하지 않고
댓글 많이 달린 글에 댓글을 잘 안달아요..이건 무슨 심뽀인지..ㅋㅋㅋ


cyrus 2015-10-01 13:33   좋아요 1 | URL
솔직하시군요. ㅎㅎㅎ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건 각자 선택이니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페크pek0501 2015-10-0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저도 좋아요를 누를 땐 신중하겠습니다.^^

cyrus 2015-10-07 18:55   좋아요 0 | URL
너무 신중하면 SNS 접속하는 재미가 떨어질 수 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