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른에 접어든 어른이라면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들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가 되면 눈이 번쩍 떠지는 꼬마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시간에 <디즈니 만화 동산>이 시작하면, 잠을 자고 있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 만화를 보려면 달콤한 늦잠을 포기해야 한다.

 

창고로 사용하는 방에 오래된 책들이 누워 있다. 어두컴컴한 암흑을 이불 삼아 외로운 방 한구석에 잠을 잔다. 이 친구들을 안 깨운 지 좀 오래됐다. 잠들고 있는 책 중에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바로 <계몽사 애니메이션 디즈니 명작>이다. 디즈니 만화영화 속 장면을 그림 동화 형태로 편집한 책이다. 출판사는 계몽사. 1980년에 계몽사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과 정식으로 계약하여 디즈니 관련 도서를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계몽사 디즈니 명작>은 총 16권으로 구성되었는데, 곰돌이 푸’, ‘아기 코끼리 덤보 등이 포함되었다. 이 시리즈의 아쉬운 점이라면 명작이라고 하기에 2% 부족한 작품 선정이다. 디즈니를 먹여 살린 백설 공주’, ‘신데렐라’, ‘피터 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유명한 작품이 포함되지 않았다. 도널드 덕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고작 두 편뿐이다.

 

 

 

 

 

 

<계몽사 디즈니 명작> 시리즈에 포함된 타란과 마술단지’(원제는 ‘The Black Caudron’, 1985년에 개봉)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만든 만화영화 중 쓰레기로 취급 받는다. 이 만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개봉 당시 혹평을 받았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힌 망작이다.

 

 

 

 

 

 

바질 탐정(The Great Mouse Detective)’이라는 제목의 디즈니 만화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타란과 마술단지의 흥행 실패로 암흑기를 걷고 있던 디즈니 컴퍼니가 내놓은 다음 작품이 바로 바질 탐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다. 전미 극장에 개봉한 지 8년 만에 바질 탐정이 비디오로 출시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원작인 만화영화를 가위질해서 조악하게 편집한 것이 <계몽사 바질 탐정>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바질 탐정을 국내에 처음으로 알린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만화영화 <바질 탐정>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동물을 의인화한 것이다. 주인공 바질은 생쥐를 의인화한 캐릭터다. 바질의 친구는 의사인 도슨 박사. 도슨 박사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는 꼬마 올리비아를 우연히 만난다. 박사는 올리비아를 돕기 위해 바질에게 꼬마의 사정을 알린다. 바질과 도슨 일행은 꼬마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사를 펼치는데, 아버지를 납치한 범인이 범죄의 제왕으로 알려진 래티건 교수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 네 사람의 서명(황금가지, 2002)

* 주홍색 연구, 네 명의 기호(시간과공간사, 2002)

* 네 개의 서명(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현대문학, 2013)

* 네 사람의 서명(코너스톤, 2016)

* 네 사람의 서명(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회상록(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록(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셜록 홈즈 회고록(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회고록(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스의 회상록(엘릭시르, 2016)

 

 

 

 

만화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신 분은 ?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질 탐정>셜록 홈즈 시리즈를 모티프로 한 만화영화다. 바질은 셜록 홈즈, 도슨 박사는 존 왓슨, 그리고 래티건 박사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다.

 

 

 

 

 

 

바질은 레티건을 잡기 위해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 토비를 데려온다. 네 개의 서명에 홈즈는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왓슨에게 늙은 사냥개를 데려오라고 부탁한다. 소설에 나오는 개의 이름이 토비.

 

 

 

 

 

   

 

래티건의 부하 피젯은 ‘절름발이’ 박쥐다. 래티건이 시키는 대로 일을 잘 처리하며 바질 일행을 골탕 먹일 정도로 악당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모리아티 교수와의 결전 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홈즈를 죽이려는 시배스천 모런 대령과 유사한 캐릭터다. 모런 대령은 모리아티의 오른팔이다. 홈즈의 말에 따르면 모런 대령은 ‘런던에서 가장 위험한 두 번째 인물’이다. 그런데 의족을 하고 있는 피젯의 모습을 봐서는 외모는 《네 개의 서명》에 나오는 악당 조너선 스몰을 닮았다. 악당 피젯(Piget)의 이름에 있는 철자 ‘i’를 ‘a’로 바꾸면 파젯(Paget)이 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 시드니 파젯(Sidney Paget)이다.

 

 

 

 

 

 

 

 

 

 

 

 

 

 

 

 

 

 

 

 

 

 

 

 

 

 

 

 

 

 

 

 

 

* 셜록 홈즈의 귀환(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의 귀환(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귀환(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3 : 돌아온 셜록 홈즈(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귀환(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스의 귀환(엘릭시르, 2016)

 

 

 

 

주인공 이름인 바질이 셜록 홈즈 연기로 유명한 배우 바질 래스본(Basil Rathbone)에서 따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질은 홈즈가 사용한 가명이기도 하다. 단편집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블랙 피터(Black Peter)에 홈즈는 바질이라는 가명으로 전보를 보내는 장면이 있다.

 

 

 

* 원문

“Excellent, Watson! The alternative develops. Have you telegraph forms? Just write a couple of messages for me: ‘Sumner, Shipping Agent, Ratcliff Highway. Send three men on, to arrive ten to-morrow morning.Basil.’ That's my name in those parts.”

 

* 시간과 공간사 (2, 252)

아주 훌륭해, 왓슨. 진행 중인 다른 수사에 소득이 있는 걸. 전보용지 갖고 있나? 몇 줄 써주게. ‘섬너, 선박 대리인, 랫클리프 하이웨이, 뱃사람 세 명 부탁. 내일 아침까지-배질거기서는 이게 내 이름일세.”

 

 

 

 

황금가지(2), 문예춘추사 판본에서는 바질’, 시간과공간사(개정판), 현대문학(주석판), 코너스톤(개정판)에는 배질로 표기되어 있다. 홈즈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변장한다. 바질은 홈즈가 선박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변장했을 때 사용하는 가명이다.

 

셜록 홈즈의 귀환을 읽고 있다가 바질이라는 이름에 눈길을 줬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 기억 속에 잊힌 만화영화 속 탐정이 되살아났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방 안에 잠든 친구를 깨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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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0-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억이 아련하기만한데 이런 만화들이 했었군요 왜 하필 이른 이침에 했던건지 방송사가 밉상이네요^^

cyrus 2017-10-12 16:24   좋아요 1 | URL
<디즈니 만화동산>가 처음으로 방영된 해가 1992년입니다. 이때 제가 뭐했는지 1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ㅎㅎㅎ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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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더 살고,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성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와 빈자가 구분되는 세상이 되면서 부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단어’를 만든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귀족이 되는 부자들은 자신만의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드러내고 싶었다. 혈연관계 중심으로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특별한 단어’가 바로 ‘군자(君子)’다. ‘군자’의 반대말은 ‘소인(小人)’이다. 소인은 육체노동을 하는 백성이다. 그러면 군자는 정신노동, 학문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군자와 소인을 정의했다. 계급 사회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철기 시대부터 봉건적 계급의식은 공고해진다.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생산력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비교적 윤택하게 살 수 있게 된 소인들이 군자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계급 갈등이 일어난다.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위한 갈등과 분쟁이 극에 달할수록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공자(孔子), 맹자, 한비자(韓非子)제자백가(諸子百家)로 알려진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노자(老子)가 빠지면 섭섭하다. 노자는 동시대 사상가인 공자처럼 분열과 반목이 이어지는 난세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노자는 공자와 사뭇 다른 사상적 노선을 취했다. 공자는 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인(仁), 즉 군자의 덕목을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반면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히려 인위적인 법과 도덕에 얽매여서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자는 공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을 일찌감치 우려했다. 그는 인위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가치론적 판단’을 부정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 무위(無爲)의 경지를 지향한다. 무위의 경지는 모든 가치 판단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의 단계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원래 자연 그대로의 순리에 따르는 것은 인간 본연의 회복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다. 유가 사상가들은 도가사상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자들이 좋아하는 초월적인 사상’이라고 비난한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사람들에 접근해 귀찮게 하는 수상한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난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났던 찜찜한 기억 때문인지 도(道)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도를 현실성이 떨어지는 관념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원문 풀이가 제대로 된 《도덕경》을 읽어도 도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에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실전 감각이 깃들어 있다. 건명원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는 노자를 ‘시대가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성세대로 상징하는 아버지에 반항한다. 노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인위적인 기성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신에게 빌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개인의 자유’라고 봤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최진석 교수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함축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인 단어인 ‘관계’와 함께 설명했다. 유무상생. 이 말은 ‘있음(有)’과 ‘없음(無)’이 새끼줄로 꼬여 있는 형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유무상생의 세계는 ‘대림면의 꼬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대립하는 사물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수양을 권한다. ‘군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일반 명사다. 그러나 노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공자가 만들어낸 일반 명사를 거부했다. 그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원했다.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을 비교하는 순간,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우리의 눈과 정신을 가리는 인위적인 거미줄과 같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 틈 사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좁은 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나와 정반대인 대상을 만나면 무조건 나빠 보이고, 해롭다고 믿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까 ‘편견’의 거미줄에 걸린 ‘자기 자신’을 구출해낼 능력도 없다. 거미줄에 빠져나오려면 남의 시선, 남의 눈치, 남의 생각 등 인위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가짜 ‘나’를 비워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운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노자를 공부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은 현실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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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리뷰 감사합니다. 군자의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 한것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곁에 두고 틈나는대로 읽어야 할것 같아요.

cyrus 2017-10-11 22:04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제가 책을 오독했거나 내용 전달이 잘못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도덕경은 오독율이 높은 책입니다. 최진석씨 책 덕분에 오랜만에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역시 도덕경은 심오한 책입니다.

sprenown 2017-10-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 ‘나‘를 비워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긴 할거 같네요.

cyrus 2017-10-12 12:2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가치 판단을 부정했지만, 집착만 하지 않으면 적당한 수준의 인위적 노력도 좋다고 봅니다. ^^

2017-10-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29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장자를 읽으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말씀한 적이 있어요. 정말로 장자를 읽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

2017-10-11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31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행태 때문에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관련 기사들은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

qualia 2017-10-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끄럽게 잘 읽힙니다. 공자와 노자의 사상 핵심도 명료하게 전달돼 옵니다. 이렇게 탁월한 cyrus 님의 글을 읽고 직간접으로 많은 걸 내심 깨닫습니다. 한데 저는 요즘 현대 중국인들에겐 전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솔까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들한테는 인종주의자적 태도와 편견을 내보이는 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겠더군요. 궁극적으로 이런 태도와 편견은 자가당착적인 것이고 자업자득적 손실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 필연적인 것인데요. 그럼에도 현실론적 혹은 실용론적 혹은 민족론적 견지에서는 현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자적인 심리 구조와 심리 경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생존을 위해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서 저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호감, 찬양, 숭배,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우리가 저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는 있지만, 경계심 결여된 호감, 찬양, 숭배 등등은 저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적인 심리 구조/경향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고대로부터 근대, 21세기 지금 현대까지 한국과 일본/중국과의 역학적 관계는 나쁜 쪽으로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저는 삼국지나 대망 따위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는 사실에 무척 개탄스러운 마음입니다.

cyrus 2017-10-12 12:35   좋아요 0 | URL
최진석 씨가 쉬운 언어를 써가면서 공자와 노자 사상을 잘 비교했습니다. 저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10-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사회적인 규범과 법체계는 유가를 개인의 삶은 도가를 바탕으로 잡아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쓰고 나니 모씨의 극중주의가 떠오르면서 이건 현실적이지 못한 가운데놀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ㅎ

cyrus 2017-10-12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유가와 도가의 장점만 골라서 뭔가 연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죽을 때까지 동양철학을 공부해야합니다.. ㅎㅎㅎ

sslmo 2017-10-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좋았었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좋다고 설레발을 쳤었는데, ㅋ~.
어느 부분부터 맥이 빠지더라구요.

암튼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cyrus 2017-10-12 19: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진석씨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움이 부족해서 저자의 설명에 설득당했습니다.. ㅎㅎㅎ

임모르텔 2017-10-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읽습니다.... 평소 상선약수 무위자연,,, 이 단어만 남발하며 살던 게름뱅이가 ,,,,
... 요즘들어 노자의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자해서 방황(?)하며 도서관을 헤매었었는데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이 책! ...

cyrus 2017-10-14 16:11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도덕경을 펼치면, 봐도 봐도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

 

 

 

미국의 인기 만화 <The Simpsons>는 온갖 개그와 패러디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한두 번 보아서는 그냥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매 편마다 원형이 조금씩 달라지는 수많은 오프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오프닝만 따로 모아서 편집한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도 <The Simpsons> 오프닝 연출을 딱 한 번 담당한 적이 있다. <The Simpsons> 제작진은 매년 핼러윈 시즌에 ‘Treehouse of Horror’라는 이름으로 공포특집 에피소드를 내놓는다. 기예르모는 2013년에 방영된 공포특집 오프닝 연출을 맡았다. 판타지 및 호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답게 그가 만든 오프닝 영상 속에는 ‘공포와 환상’과 관련된 가상의 존재 또는 관련 인물들이 순식간에 등장한다. 예전에도 이 오프닝 영상을 소개한 적이 있다.

 

 

 

 

 

 

 

 

 

※ Colla[book]ration #6 미국 공포문학의 아버지 : 포 X 러브크래프트

(2015년 2월 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7363627

 

 

 

 

약을 빤 듯한 영상에 기예르모 감독의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이 나오고,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러브크래프트(Lovecraft)도 ‘심슨형 인간’이 되어 잠깐 출연한다. 여기에 ‘까마귀(The Raven)’‘크툴루(Cthulhu)’가 깨알같이 나온다. 이 녀석들은 각각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포 옆에 덩치 큰 사나이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노인이 있다. 그는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신을 새기고 있다. ‘문신을 새긴 사나이’는 브래드버리의 대표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The Illustrated Man)에 나온다. 이 소설은 1968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빵모자를 쓴 흰 수염의 노인은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이다. 매드슨 옆에 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이 서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이다. 변종 인간은 빛을 피하려고 선글라스와 수도승 옷을 착용하며 주로 밤에 돌아다닌다. 이 가공의 존재는 1971년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 주연의 영화 <오메가 맨(The Omega man>에 등장한다. 매드슨의 대표작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 2005)는 이 영화의 원작이다.

 

브래드버리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고, 기예르모가 만든 심슨 오프닝 영상은 이듬해에 공개되었다. 브래드버리가 이 영상을 봤다면, 대단히 흡족해했을 것이다. 공포 문학의 거장과 같이 있다는 것은 브래드버리 본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꾸준히 해온 브래드버리가 포의 소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포가 창조한 어둡고 음침한 상상력이 브래드버리를 포함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래드버리는 포의 소설을 오마주(hommage)한 작품을 두 편 썼다.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The Mad Wizards of Mars,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수록) 또는 『추방자들』(The Exiles,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수록)이라는 두 개의 제목으로 알려진 소설과 《화성 연대기》(샘터사, 2010)에 수록된 『2005년 4월 어셔2』(April 2005: Usher II)다.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은 상상력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이 이야기의 연도는 서기 2120년. 이 시기로부터 100년 전에 지구인들은 공포 소설 또는 환상 소설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불태웠다. 화성에는 작가의 영혼들이 거주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쓴 창작물을 불태우려는 지구인들을 막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이 책을 불태우면, 그 책을 쓴 작가의 영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쟁을 지휘하는 수장이 에드거 앨런 포다.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의 영혼이 포를 보좌해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포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영혼에게 직접 찾아가서 전쟁에 협조하도록 요청하지만, 디킨스는 거부한다. 포의 요청을 거부하는 디킨스의 변명이 압권이다.

 

 

 “포 씨, 난 귀신 따위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공포 소설가도 아니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당신들과 달라요. 당신들 따위 인정하지도 않소! 난 마녀니 흡혈귀 따위 음산한 것들은 쓴 적이 없단 말이오!”

“그럼 『크리스마스 캐럴』은 뭡니까?”

“웃기고 있네! 달랑 그거 한 편이오. 그러고 보니 유령 나오는 이야기를 몇 편 쓴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난 기본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안 쓰는 사람이오!” [1]

 

 

디킨스의 영혼은 자신이 ‘공포 소설가’가 아니라면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디킨스는 1843년부터 1847년까지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짧은 소설을 발표했다.

 

 

 

 

 

 

 

 

 

 

 

 

 

 

 

 

 

 

 

 

※ ‘signalman’이 수록된 국내 번역본

 

 

 

 

 

 

 

 

 

 

 

 

 

 

 

 

 

 

 

 

 

 

 

 

 

 

 

 

 

 

 

 

 

 

 

 

* 제목명: 신호원,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3》 (자유문학사, 2004)

* 제목명: 신호원, 《빨간 구두》 (생각의나무, 2007)

* 제목명: 신호수, 《가든 파티》 (창비, 2010)

* 제목명: 신호수, 《세계의 환상소설》 (민음사, 2010)

* 제목명: 신호수,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제목명: 신호원, 《북극성호의 선장》 (지식여행, 2017)

 

 

 

이때 나온 작품 중 한 편이 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유령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몇 편 썼다.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디킨스를 ‘공포문학의 거장’으로 평가하기에 근거가 불충분해 보인다. 그렇지만 고전 공포문학 단편 앤솔로지에 자주 수록되는 『신호수』(signalman)는 ‘설명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공포감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다. 디킨스를 ‘근대적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소개한 《환상문학의 거장들》(자음과모음, 2001)에 보면 『신호수』를 ‘포를 흉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2]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나온다.

 

브래드버리는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을 통해 ‘환상문학 덕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에 환상문학으로 분류되는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된다.

 

 

  스미스는 몸을 숙여 먼지 낀 책들의 제목을 읽어 보았다.

“『신비와 몽상에 관한 이야기들』, 에드거 앨런 포.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워싱턴 어빙. 『라파치니의 딸』, 너대니얼 호손. 『아울 크리크 다리 사건』, 앰브로즈 비어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버드나무 숲』, 앨저넌 블랙우드. 『오즈의 마법사』, 라이먼 프랭크 바움. 『인스머스의 기이한 그림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더 있군요. 월터 델라메어, 웨이크필드, 하비, 웰스, 애스퀴스, 헉슬리…‥ 다 금서 작가 아닙니까? 핼러윈이 불법 판정을 받고 크리스마스가 금지되던 해에 불태운 책들인데!” [3]

 

 

 

월터 델라메어(월터 데라메어, Walter John De la Mare, 1873~1956)는 영국의 시인 겸 소설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잊힌 이름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는 비평문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에서 델라메어의 시와 소설들을 높이 평가한다. 델라메어는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계’[4]를 소재로 글을 썼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시튼의 이모』《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2006)에 수록되어 있다.

 

 

 

 

※ ‘August Heat’가 수록된 국내 번역본

 

 

 

 

 

 

 

 

 

 

 

 

 

 

* 제목명: 염천,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자유문학사, 2004)

* 제목명: 팔월의 열기,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제목명: 8월의 무더위, 《세계 호러 걸작 베스트》 (북타임, 2010)

 

 

 

※ 『다섯 손가락을 지닌 짐승』이 수록된 국내 번역본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 고전 편》 (황금가지, 2003)

 

 

 

‘하비’는 윌리엄 프라이어 하비(William Fryer Harvey, 1885~1937)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대표작은 『팔월의 열기』(August Heat)와 『다섯 손가락을 지닌 짐승』(The Beast with Five Fingers) 등이 있다.

 

 

 

 

 

 

 

 

 

 

 

 

 

 

 

 

‘웰스’는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헉슬리’는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를 의미한다. ‘웨이크필드’와 ‘애스퀴스’는 정확히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부하들이 그(에드거 앨런 포-글 작성자 주)를 뒤쫓아 달렸다. 앨프리드 에드거 코파드 씨와 아서 매켄 씨도 합류했다. [5]

 

 

브래드버리가 영국 환상문학 쪽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앨프리드 에드거 코파드(Alfred Edgar Coppard, 1878~1957) 역시 월터 델라메어와 비슷한 작가(생전에 명성을 얻었으나 지금은 존재감이 투명해진 작가)로 분류된다. 영문판 위키피디아(Wikipedia)에 그의 생애를 소개한 내용이 있으나 특기할 만한 정보가 없다. 코파드가 생전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작품을 싫어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눈여겨 볼만한 정보이다.

 

 

 

 

 

 

 

 

 

 

 

 

 

 

 

 

에로틱 공포 단편을 모은 《호러 사일런스》(고려문화사, 1994)『실버 서커스』(Silver Circus)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된 코퍼드의 소설이다.

 

 

 

 

 

 

코퍼드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다. 미국의 작가 조 힐(Joe Hill)<Better Than Home>(국내 미번역)으로 코퍼드 상을 수상했다. ‘조 힐’은 필명이고, 본명은 조셉 힐스트롬 킹(Joseph Hillstrom King)이다. 그의 아버지가 ‘호러 킹’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아서 매켄(Arthur Machen)은 웨일스 출신의 소설가다. 켈트 신화의 영향을 받은 환상 소설을 썼다. 매켄의 작품 선집을 리뷰한 적이 있다. 이 졸문에 매켄의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소개가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도 된다.

 

 

※ [이야기가 끝나도 지속되는 악몽의 여운]

(《불타는 피라미드》 리뷰, 2015년 2월 24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7395283

 

 

 

사실 이 글에 앨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를 소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길어져서 더 쓸 수 없다.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었지만 자제했다. 블랙우드에 대한 글은 따로 작성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연휴 동안 참았던 나의 덕력이 폭발해서 작가들에 향한 ‘팬부심’을 부려봤더니 글의 전개가 산만하고, 글의 분량이 늘어났다. 북플에서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보는 사람보다 긴 글이라서 쳐다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cyrus가 쓴 글은 믿고 거르면 된다.

 

 

 

 

 

[1]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85, 186~187쪽

[2]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64쪽

[3]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79쪽

[4] 러브크래프트《공포문학의 매혹》 107쪽

[5]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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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10-1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백스토리를 알고 보니 왠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TV쇼 심슨의 오프닝을 담당하다니요. 당장 유투브라도 찾아 봐야 겠습니다.

cyrus 2017-10-11 16:24   좋아요 1 | URL
‘기예르모 델 토로 심슨‘으로 입력하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오프닝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알려주는 영상도 있어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

syo 2017-10-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cyrus님 무서울 때 있어요.

이럴 때요.

cyrus 2017-10-11 18:44   좋아요 0 | URL
syo님이 더 무서워요. 일주일에 읽는 책의 앙을 보면 저도 열심히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 곳에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0-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모든 인간이 총충동했네요. 러브크래프트 은근 닮았군요. 저도 이 심슨 에피소드를 무척 좋아합니다. 최고였죠. 킹 부자도 반갑네요.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cyrus 2017-10-11 18:46   좋아요 0 | URL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라면 오프닝에 나오는 캐릭터들 절반은 아실 것 같습니다. ^^

2017-10-11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1 21:26   좋아요 0 | URL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TV 보면서 먹기만 했습니다. 심심하면 밖에 나가서 먹고 오구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7-10-1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라와 SF 그리고 판타지가 없었다면 책읽는 재미가 상당부분 덜 했을 것 같습니다.ㅎ 그런데 절판된 책이 많아서 아쉽네요.

cyrus 2017-10-12 12:44   좋아요 0 | URL
절판본에 숨어 있는 걸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판된 장르문학 단편 선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0-1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저 긴 글을 다 읽었어요^^ 제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다수 나와서 더 좋았어요

cyrus 2017-10-12 12:44   좋아요 0 | URL
말씀으로 해주시는 것만으로 고맙습니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Eros, 로마식 이름은 쿠피도(Cupido))의 연인 프시케(Psyche)‘영혼’‘나비’를 의미한다. 그녀가 그림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그녀 옆엔 나비가 날아다닌다.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7)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청소년을 위한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8)

* 오비디우스, 이윤기 역 《변신 이야기 1》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천병희 역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웅진지식하우스, 2000)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미움을 받고도 갖은 고초 속에 에로스와의 사랑을 이룬 프시케는 순수한 영혼의 힘으로 천상의 사랑을 쟁취한다. ‘육체적 사랑’을 상징하는 쿠피도를 만나려는 프시케의 험난한 여정은 육체와 정신이 합일하는 ‘완전한 사랑’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 샤먼 앱트 러셀 《나비에 사로잡히다》 (북폴리오, 2005)

* 미야시타 기쿠로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 2015)

 

 

 

나비는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 곤충이다. 모든 대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곤충을 ‘익충’과 ‘해충’으로 나뉜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익충이 바로 나비가 아닐까 싶다. 나비는 ‘봄의 전령사’다. 겨울 동안 보이지 않던 나비가 따뜻한 봄과 함께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면 누구나 반가움이 앞선다. 그래서 나비는 생명의 새로운 부활이 시작되는 봄과 잘 어울리는 곤충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묘지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망자의 영혼으로 생각했다.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가 되어 동작을 멈춘 모습은 사람이 관(棺) 속에서 지내는 것과 같다. 딱딱한 껍데기를 뚫고 나비로 변신해 날아다니는 모습은 육신에 갇혀있던 인간의 영혼이 해방돼 자유로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요괴 및 요정이 등장하는 전설이 많다.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접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죽은 아이의 영혼이 있는 곤충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건물에 가보면 벽에 그려진 나비 그림이 있다. 그곳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유대인 포로들이 부활을 염원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비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 김영하 《아랑은 왜》 (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에서는 나비를 ‘한이 맺힌 영혼’이 깃든 영물로 취급해 왔다. 경남 밀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아랑 전설’에 나비가 등장한다. 이조 명종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인 아랑(阿娘, 본명은 윤동옥)은 자신을 탐하는 관노에게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귀신이 된 아랑은 새로 부임하는 밀양부사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신임 밀양부사인 이상사는 그녀의 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했고, 아랑의 혼은 이상사에게 범인을 알려주기 위해 ‘흰나비’로 변신한다. 나비가 된 아랑의 혼은 자신을 죽인 관노의 갓 위에 앉았고, 그것을 확인한 이상사는 관노에게 벌을 내린다.

 

일본인들도 나비를 망자의 혼이 변한 곤충이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밤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저작권을 무시하고, 일본의 요괴 모음집을 참고하여 만든 《세계의 요괴 도감》(사과나무, 1992)에 나비에 관한 일본 전설이 나온다.

 

 

 

야마가타 지방의 자오 산 기슭을 걷던 한 여행자가 한 채의 초가집을 발견했다. 몹시 지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여행자는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는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여행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초가집 안은 몇 천 마리나 되는 나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은 여행자는 이 나비 떼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들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비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마치 무지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 나비들이 다 사라지고나자,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만 남아 있는 백골이 나타났다.

 

여행자는 무서운 나머지 여행의 피로도 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달려갔다.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자, 마을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집에 살던 여자는 살아 있을 때 나비를 무척 좋아해서 언제나 나비를 따라다니며 살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어느 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 방치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몸 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 그것이 나비가 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는 여자가 죽어서 나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세계의 요괴도감》에서 발췌함.

 

 

 

 

 

 

 

 

 

 

 

 

 

 

 

 

 

 

 

 

※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가 수록된 번역본

 

* 정태원 역 《공포특급 6 : 일본 편》 (한뜻, 1996)

* 이진의, 임상민 역 《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시간여행, 2010)

* 엄진 역 《그림자 없는 범인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페가나북스, 2012, e-Book)

 

 

 

일본의 소설가 히사오 주란(久生十蘭)의 『곤충도』는 ‘망자의 혼=나비’ 모티프를 소재로 한 쓴 짤막한 분량의 소설이다. 추운 11월인데도 어느 화가의 집에 있는 다다미방 안에 파리 떼가 날아다닌다. 일주일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나비 떼가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나비는 비밀에 가려진 소름 끼치는 진실을 알려주는 자연적인 신호다. 그러나 화가 부부는 다다미방 안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나방』은 나방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해플리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혼이 나방을 변한 것이라고 믿게 되고, 나방을 볼 때마다 무서움에 벌벌 떤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 (들녘, 2001)

 

 

 

나방도 나비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인간의 지나친 상상력 때문에 사악한 존재가 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나방 형체의 괴생명체 ‘모스맨(Mothman, 나방 인간)’을 목격했다고 사람들의 증언과 모스맨으로 추정되는 동영상들이 나왔다. 도시 전설에 따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모스맨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모스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스맨이 재앙을 예고하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팔랑거리는 나비를 뒤 따라가 보았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진 날갯짓을 팔랑거리며 너울너울 허공을 나는 나비를 볼 수 없다. 아니다. 봄이 와도 나비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푸르른 들판 위에는 칙칙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얹혀있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이 우뚝 솟아 자란다. 나비를 볼 수 없는 도시의 봄은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도 도시에서 나비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인간에게 경고하는 자연의 위험 신호다. 나비가 없는 도시는 ‘영혼이 없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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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27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나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이없는 이야기 하나. 제가 4살 때 노란 나비와 흰 나비를 보고 노란 오줌을 누면 노란 나비가, 하얀 오줌을 누면 하얀 나비가 날아온다고 생각했었던 기억나네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란 나비 흰 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이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멋대로 연관지었나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0:56   좋아요 1 | URL
그러면 검은 나비는... 응..ㄱ... 아닙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7 20:58   좋아요 0 | URL
^^: 검은 나비는 건강이 좋지 않은 응가인가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1:01   좋아요 1 | URL
네. 공장 연기에 찌든 나비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09-2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프시케월드가면
나비 꽉~있어요ㅎㅎㅎ

cyrus 2017-09-27 21:20   좋아요 1 | URL
제주도에 그런 곳이 있군요. <알쓸신잡> 시즌 2 제주도 편이 제작되면 어느 출연자가 프시케월드에 가게 될까요? 저는 김영하 작가 아니면 정재승 교수라고 생각해요. ^^

transient-guest 2017-09-28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어요.ㅎ

cyrus 2017-09-28 12:36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잠자리는 잡다가 손가락을 물린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잠자리를 못 잡았어요.. ^^

이하라 2017-10-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느 산사를 오르는 길에서 뱀이 자동차 타이어에 터져 죽은 시체위에 나비가 흡입관을 꽂고 있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나비가 뱀시체의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기이함으로 제 기억 속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행복한 추석되시라고 인사 여쭈러 와서는 이상한 글을 남기고 있군요 ㅋ
cyrus님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cyrus 2017-10-02 10:24   좋아요 1 | URL
정말 독특한 장면을 보셨군요. 나비들도 썩어가는 사체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지 싶습니다.

일부러 연휴 인사말을 남기지도, 받지 않으려고 며칠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직접 인사말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하라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좋은 글로 다시 만나요. ^^

2017-10-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맥(漂麥) 2017-10-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길을 가다가 손바닥만한 긴꼬리제비나비를 봤습니다.(음... 내 손이 조막손?) 그 자유로움에 한참을 바라봤죠... 여유로운 연휴 되시길...^^

cyrus 2017-10-03 13:57   좋아요 0 | URL
표맥님은 나비 이름을 정확히 아시는군요. 가만히 있는 나비를 몇 분간 관찰하는 일이 어려워요. 우리 인간이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걸까요, 아니면 나비에게 여유가 없는 걸까요? ㅎㅎㅎ

직접 서재에 접속해서 연휴 인사말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표맥님도 연휴 잘 보내세요. ^^

나비종 2017-10-0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와 나방을 앉은 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비는 두 장의 날개를 겹치듯이 세워서 앉고, 나방은 양쪽으로 납작하게 펼쳐서 앉는다구요. 앉는 방식마저 ‘참 나비스럽다‘ 생각했죠.
벌레를 매우 무서워하지만, 곤충 중에서 비교적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나비입니다.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지만요.^^; 부들부들한 느낌이겠죠?

cyrus 2017-10-10 08:04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나비가 날개를 납작하게 펼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나비종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역시 이름값 하시는군요. ^^

페크pek0501 2017-10-1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보여 반갑군요.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지금 갑자기 창문을 통해 빗소리가 들립니다. 비오기 시작인가 봐요.
굿밤 되세요...


cyrus 2017-10-10 23:17   좋아요 0 | URL
정말 행복했던 열흘이었습니다. 이런 황금연휴는 언제 올까요? ^^;;

여기 대구는 비 소식이 없습니다. 8월에 비하면 약해졌지만, 아직은 날씨가 따뜻해요.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좋은 소설을 읽으면 잠시 책을 덮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피가 솟아오르는 흥분을 멈추고 나면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문학이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언어 텍스트가 주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영상 텍스트가 주는 감동이 문학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문학이 마음속에 단단한 무엇이 자리 잡게 해준다면 영화는 우리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슬쩍 쓰다듬고 간다. ‘미디어는 마시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고 미디어는 인간 오감을 어루만지면서 애무한다고 말했다.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란 신문이나 TV와 같은 언어와 이미지적인 소통뿐 아니라 광고까지 포함한다.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언어적 소통 명제에서 나아가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신체적 소통 명제로 의미를 확장한다. 미디어가 특정 감각 기관을 연장해주고 강화한다. 그 감각기관의 기능을 관장하는 두뇌에 마사지를 가하게 되며 결국 사고방식,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감각기관)의 확장’이라고 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는 인간의 눈, 입, 귀의 역할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미디어는 손을 뻗어 인간의 촉각을 자극한다. 매클루언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미디어의 위력을 일찍 먼저 감지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다. 매클루언의 명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시기가 1960년대 초반이다. 브래드버리는 1950년대에 미디어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인간의 생활상을 묘사한 단편소설을 썼다. 1951년에 발표된 연작 소설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The Illustrated Man)》에 수록된 『여는 글: 일러스트레이티드 맨』『대초원에 놀러오세요(The Veldt)』는 상상 이상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위력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문신을 새긴 사나이’다. ‘사나이’는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문신 남자’가 젊다고 보기 어렵다. 문신 남자의 말에 따르면 스무 살이었던 1900년에 서커스단에서 일했으며 불행하게도 일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사십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의 나이는 대략 60대로 추정된다. 문신 남자의 몸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문신이 남아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는 이 불가사의한 문신 남자를 만나면서 몸속에 새겨진 열여덟 편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누운 채로 문신 남자의 몸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감 있는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본 첫 번째 문신에 담긴 이야기가 『대초원에 놀러오세요』다. 이 이야기는 벽에 아프리카 대초원의 풍경이 그려진 아이들의 놀이방이 나온다. 아이들의 부모는 놀이방을 만든 것에 후회한다. 특히 입체 스크린 속에 입을 활짝 벌리면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다. 부모는 놀이방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놀이방을 폐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마사지에 푹 빠져버린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반대한다.

 

『콘크리트 믹서(The Concrete Mixer)』는 미디어 시대의 병적인 중독 현상을 풍자한다. 소설의 제목은 영상에 지배되는 현대인의 의식을 상징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지구인들은 영화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에 지배당한 상태다. 이 기계의 창조주인 지구인은 소유물의 노예가 되어 영화를 생산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영상 매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가이다. 이 작품은 미디어 영상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나 TV 드라마로 재탄생되었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문자 텍스트가 영상 텍스트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작가는 영상 미디어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세상을 순순히 인정할 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일상성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듯 지배하는 미디어의 힘을 경계한다. 미디어의 마사지에 익숙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를 주지 않고, 몰입하게 만든다. 심지어 미디어가 주는 쾌락을 독차지하기 위해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문객(The Visitor)』의 최면술사 레너드 마크는 상대방이 보고 싶은 세상을 눈앞에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최면술을 경험한 솔 윌리엄스는 최면술사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느낀다. 레너드 마크는 최면술사가 아니라 ‘영상 전달자’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을 즐겁게 해주는 최면술사다. 지금 그것은 우리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감각적 자극을 잊지 못한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나오는 영상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언어의 시대 최후의 이야기꾼’이다. 지금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의 재주에 홀딱 넘어가 마치 영화가 눈앞에서 상영되는 것 같은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미디어 영상이 언어 대신 현실을 재구성하고, 이제는 미디어 영상이 우리를 매일 즐겁게 해준다. 이야기의 재미가 외면받는 시대 속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문학의 설 자리를 다시 마련하기 위해 창작욕을 불태웠다. 영상에 밀려 종이책을 외면하는 이 시대에 미래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풍경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레이 브래드버리와 같은 이야기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재능을 반만 닮은 이야기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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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2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좋은 책인가 보다. 세계 어떤 영화 감독도 다 책에서 영감을 받았고, 엄청난 독서광이라잖아. 그런 걸 보면 책의 위력은 약화될 수는 있어도 소멸되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이렇게 쓰니 이 책 읽고 싶어진다.^^

cyrus 2017-09-27 18:26   좋아요 0 | URL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프로그램도 있어요. 영어 실력은 안 되지만, 유튜브로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브래드버리의 단편을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어떤 이야기는 허를 찌르는 결말이 나오고, 또 어떤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도 해요. ^^

북프리쿠키 2017-09-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사실 미디어 그 자체로서 순기능도 많을건데요. 만약 우리 시대가 미디어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면
부정적인 담론만 확대 재생산하여 피하려고만 하는게 좋은 방법일지,
아님 잘 활용하는 방안으로 갈지..
또 다른 길이 있는지...고민해 볼일인거 같네요.
다방면으로 좋은 글 쓰시는 싸이러스님 감사합니다^^;

cyrus 2017-09-27 18:29   좋아요 1 | URL
미디어의 부정적인 문제점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세우되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죠. 이미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져서 문제점을 막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미디어의 문제점을 해결한다고해서 미디어 활용을 규제하고 제한하면 역효과가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