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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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더 살고,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성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와 빈자가 구분되는 세상이 되면서 부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단어’를 만든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귀족이 되는 부자들은 자신만의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드러내고 싶었다. 혈연관계 중심으로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특별한 단어’가 바로 ‘군자(君子)’다. ‘군자’의 반대말은 ‘소인(小人)’이다. 소인은 육체노동을 하는 백성이다. 그러면 군자는 정신노동, 학문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군자와 소인을 정의했다. 계급 사회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철기 시대부터 봉건적 계급의식은 공고해진다.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생산력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비교적 윤택하게 살 수 있게 된 소인들이 군자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계급 갈등이 일어난다.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위한 갈등과 분쟁이 극에 달할수록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공자(孔子), 맹자, 한비자(韓非子)제자백가(諸子百家)로 알려진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노자(老子)가 빠지면 섭섭하다. 노자는 동시대 사상가인 공자처럼 분열과 반목이 이어지는 난세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노자는 공자와 사뭇 다른 사상적 노선을 취했다. 공자는 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인(仁), 즉 군자의 덕목을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반면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히려 인위적인 법과 도덕에 얽매여서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자는 공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을 일찌감치 우려했다. 그는 인위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가치론적 판단’을 부정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 무위(無爲)의 경지를 지향한다. 무위의 경지는 모든 가치 판단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의 단계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원래 자연 그대로의 순리에 따르는 것은 인간 본연의 회복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다. 유가 사상가들은 도가사상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자들이 좋아하는 초월적인 사상’이라고 비난한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사람들에 접근해 귀찮게 하는 수상한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난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났던 찜찜한 기억 때문인지 도(道)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도를 현실성이 떨어지는 관념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원문 풀이가 제대로 된 《도덕경》을 읽어도 도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에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실전 감각이 깃들어 있다. 건명원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는 노자를 ‘시대가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성세대로 상징하는 아버지에 반항한다. 노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인위적인 기성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신에게 빌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개인의 자유’라고 봤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최진석 교수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함축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인 단어인 ‘관계’와 함께 설명했다. 유무상생. 이 말은 ‘있음(有)’과 ‘없음(無)’이 새끼줄로 꼬여 있는 형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유무상생의 세계는 ‘대림면의 꼬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대립하는 사물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수양을 권한다. ‘군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일반 명사다. 그러나 노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공자가 만들어낸 일반 명사를 거부했다. 그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원했다.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을 비교하는 순간,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우리의 눈과 정신을 가리는 인위적인 거미줄과 같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 틈 사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좁은 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나와 정반대인 대상을 만나면 무조건 나빠 보이고, 해롭다고 믿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까 ‘편견’의 거미줄에 걸린 ‘자기 자신’을 구출해낼 능력도 없다. 거미줄에 빠져나오려면 남의 시선, 남의 눈치, 남의 생각 등 인위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가짜 ‘나’를 비워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운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노자를 공부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은 현실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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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리뷰 감사합니다. 군자의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 한것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곁에 두고 틈나는대로 읽어야 할것 같아요.

cyrus 2017-10-11 22:04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제가 책을 오독했거나 내용 전달이 잘못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도덕경은 오독율이 높은 책입니다. 최진석씨 책 덕분에 오랜만에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역시 도덕경은 심오한 책입니다.

sprenown 2017-10-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 ‘나‘를 비워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긴 할거 같네요.

cyrus 2017-10-12 12:2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가치 판단을 부정했지만, 집착만 하지 않으면 적당한 수준의 인위적 노력도 좋다고 봅니다. ^^

2017-10-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29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장자를 읽으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말씀한 적이 있어요. 정말로 장자를 읽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

2017-10-11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31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행태 때문에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관련 기사들은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

qualia 2017-10-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끄럽게 잘 읽힙니다. 공자와 노자의 사상 핵심도 명료하게 전달돼 옵니다. 이렇게 탁월한 cyrus 님의 글을 읽고 직간접으로 많은 걸 내심 깨닫습니다. 한데 저는 요즘 현대 중국인들에겐 전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솔까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들한테는 인종주의자적 태도와 편견을 내보이는 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겠더군요. 궁극적으로 이런 태도와 편견은 자가당착적인 것이고 자업자득적 손실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 필연적인 것인데요. 그럼에도 현실론적 혹은 실용론적 혹은 민족론적 견지에서는 현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자적인 심리 구조와 심리 경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생존을 위해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서 저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호감, 찬양, 숭배,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우리가 저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는 있지만, 경계심 결여된 호감, 찬양, 숭배 등등은 저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적인 심리 구조/경향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고대로부터 근대, 21세기 지금 현대까지 한국과 일본/중국과의 역학적 관계는 나쁜 쪽으로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저는 삼국지나 대망 따위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는 사실에 무척 개탄스러운 마음입니다.

cyrus 2017-10-12 12:35   좋아요 0 | URL
최진석 씨가 쉬운 언어를 써가면서 공자와 노자 사상을 잘 비교했습니다. 저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10-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사회적인 규범과 법체계는 유가를 개인의 삶은 도가를 바탕으로 잡아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쓰고 나니 모씨의 극중주의가 떠오르면서 이건 현실적이지 못한 가운데놀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ㅎ

cyrus 2017-10-12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유가와 도가의 장점만 골라서 뭔가 연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죽을 때까지 동양철학을 공부해야합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10-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좋았었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좋다고 설레발을 쳤었는데, ㅋ~.
어느 부분부터 맥이 빠지더라구요.

암튼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cyrus 2017-10-12 19: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진석씨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움이 부족해서 저자의 설명에 설득당했습니다.. ㅎㅎㅎ

임모르텔 2017-10-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읽습니다.... 평소 상선약수 무위자연,,, 이 단어만 남발하며 살던 게름뱅이가 ,,,,
... 요즘들어 노자의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자해서 방황(?)하며 도서관을 헤매었었는데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이 책! ...

cyrus 2017-10-14 16:11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도덕경을 펼치면, 봐도 봐도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