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
피터 디어 지음, 정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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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혁명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죽기 직전에 발간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중세 가톨릭 교회의 지지를 받으며 오랜 세월을 지배해왔던 천동설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사유방식에서 혁명적인 대전환을 이룰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라고 부른다. 코페르니쿠스는 처음엔 의학을 공부한 폴란드의 천문학자였다.  그는 당시의 주류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꿔서 '천문학의 대전환' 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그것은 '사고의 혁명'을 가져왔다.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고, 혹성의 하나인 지구도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지구 중심적인 견지를 태양 중심적인 견지로 바꿔 놓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신이 만든 천체는 완전한 원의 궤도를 돈다고 말하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케플러 는 혹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궤도를 돈다는 케플러의 법칙을 발표한다. 이 법칙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으로 이어지고, 갈릴레이의 법칙으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으로 이어지는 근대과학의 확립과 그에 따른 자연상. 세계상의 변혁의 성립이 이루어졌던 17세기 유럽의 시대를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라고 불리우고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마스 S. 쿤<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서 과학 지식의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   쿤은 과학의 발전은 과학이 이상 현상의 출현으로 위기에 부딪혀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그 결과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때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천체현상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학설이었다. 이처럼 상당기간 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단계를 정상과학 단계라고 한다.  이렇게 연구를 진행하다가 정상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정상과학은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근대가 시작될 즈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설명이 너무 복잡한 천체현상을 상당수 과학자들은 발견하게 되면서 천동설은 학문적 당위성으러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이를 위기 단계라고 한다.  

이 위기 단계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설명체계를 모색하게 되면서 많은 가설이 등장하고, 그 가설들 중에서 보다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는 가설이나 모형이 타당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천동설의 대안으로 많은 지지를 받은 가설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었고, 또 다른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이 지동설이 실제로 맞는지를 확인하고자 30여년 동안이나 실험과 관측을 하기 시작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브라헤의 천문학 연구를 이어 받은 케플러에 의해 그 오류가 지적되었지만 지구중심설을 태양중심설로 전환시켰으며 이러한 지배학설의 전환을 과학혁명 단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혁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 속에서 ‘과학 혁명’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질문의 밑바탕에 있는 것은 우리가 ‘과학’ 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추상적인가 아니면 단일한 실재인가라는 것이다.  도리어 여러 개의 구체적인 ‘과학들’이 있으며, 이것들은 자연이라는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가들은 기존의 역사관이 오늘날의 시각에서 과거를 보는 현재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당대인들의 경험과 시각 속에서 역사를 볼 것을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 혁명을 볼 때 필요한 질문은 과학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과연 혁명적인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어떻게 생각했는가이다. 

피터 디어가 쓴 <과학혁명 :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은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과학 혁명’ 이라고 부르는 시대를 통해 근대 과학의 발달 과정뿐만 아니라 그 당시 과학자들이 '과학' 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바라보고 탐구하였는지 묘사하고 있다.  

 

 


   1500년 :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 스콜라주의적 아리스텔레스주의?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스콜라 철학을 탄생시킴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적인 사유를 통하여 논증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다.  스콜라 철학의 목표는 중세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기독교 신앙에 철학을 이용하여 이성적인 근거를 부여하는 것인데 그 당시 오랫동안 중세 학문을 지배하고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을 반영하였다.  

그 당시만해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던 학문의 내용은 스콜라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따르고 있었다. 이 때부터 자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이 유행하였는데 중세의 자연철학은 과학적. 실용적 가치보다는 신학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 로 격하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신학적 교리를 설명하는데 이용하였다.  오직 신이 조물주를 어떻게 창조하였는가를 이해하는 학문이 자연철학이었던 것이다.    

한 때 몇 몇 학자들 사이에서는 12세기 아랍 철학자였던 아베로에스(1126~1198)의 사상을 받아들여 철학을 종교로부터 분리하여 철학의 독립적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대해 논의를 점화시켰지만 자연철학과 종교와의 불가분적 관계가 지배하고 있던 중세 스콜라 철학의 영향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16세기 인문주의 :  '과학적 르네상스' , 공존의 시대

 

 

 

  

(위) 코페르니쿠스의 <천제의 회전에 관하여>에 실린 지동설 체계도  

(아래) 베살리우스의 <인체 해부에 대하여>에 실린 도판    

  

14세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인문주의자들은 고대문화의 부흥을 통하여 인간의 지적. 창조적 힘 역시 재흥시키려고 하였다.  특히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와 베살리우스의 <인체 해부에 대하여>의 동시 출간은 ' 과학적 르네상스 ' 가 등장하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Renaissance)' 라는 단어에는 '부활, 부흥, 재생'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문화의 부흥을 부르짖는 당시 인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코페르니쿠스 역시 오랫동안 지배해오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도 고대의 권위적인 학문의 영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이전에 유지되어온 기존의 학설을 폐기하려는 의지보다는 선대 학자들의 이론을 전수받아 복원하겠다는 인문주의적 의지가 더 강했다.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인 베살리우스 역시 인문주의적 감수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중세의 천문학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지배했다면 의학에서는 갈레노스(131?~201?)의 해부학 이론은 오랫동안 학문적 권위를 누렸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해부학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모방해야 할 모델로 삼았으며 자신이 주장한 원칙들은 어느 정도 갈레노스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 르네상스' 에는 고대인의 지식을 뛰어넘는 창조성과 함께 그들의 지식을 모방하고 복원이 강조되었던 공존의 시대였다.   

  

 

  17세기  :  혼합된 잡종의 과학

   

  

' 아는 것이 힘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1561~1626)  

 

이전의 과학이 자연에 대한 철학적 탐구였다면 16~17세기에는 자연을 통제하려는 실용적인 노력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섭정 시대 때 궁정 행정인으로 활동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국가의 역할에 요구되는 자연철학을 강조하였다.  그는 관조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여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베이컨의 등장으로 학문에서의 '실험' 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의 자연철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답게 베이컨은 자연을 이해하는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지식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식은 중세 스콜라주의 철학자들의 특징과 비슷하다.  베이컨에게 '실험' 이란 자신이 이미 경험한 결과를 다시 한 번 검증하는 행위일뿐이었다. 

 

 

 토머스 홉스 (1588~1679)

 

후에 파스칼, 보일 등이 과학적인 검증 과정으로 이루어진 '실험철학' 이 성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때부터 이어져 온 '자연철학' 의 영향력은 여전하였다.   <리바이어던>의 저자인 철학자 토머스 홉스마저 보일의 실험이 전혀 '자연철학' 적이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자연현상을 기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와  

자연현상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뉴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애초부터 고수하려는 의도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영국 경험론자들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데 귀납적인 방식과 경험을 강조하였으며 훗날 '뉴턴주의' 라는 과학철학 스타일을 형성하게 된다.    

뉴턴은 가설을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설명이라 하여, 이를 배격했다. 따라서 자연과학에 있어서 그저 현상을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미시적 차원의 현상에 대한 관념적, 이성적 고찰보다는 거시적 차원의 현상에 대한 경험적 기술에 치중했다.  뉴턴은 <광학>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빛을 입자라고 설명하면서도 빛 입자의 구체적 운동과 작용에 대해서는 어떤 실험적 증명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뉴턴주의와는 반대로 데카르트주의는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 과학관을 강조하였다.  세계와 자연의 모든 과정이 필연적이고도 자연적인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그 기계적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자연의 생물학적 현상들을 물리적, 화학적 과정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책의 저자 피터 디어의 표현대로 베이컨에서부터 데카르트주의와 뉴턴주의 간의 논쟁의 시대동안 과학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실증적인 면이 혼합된 잡종의 학문이었다.  

 

 

  과학혁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서 과학 혁명이라고 불리고 있는 시대에는 자연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관점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터 디어의 <과학혁명>은 자신의 책이 발간하기 5년 전에 쓰여진 동명 제목인 스티븐 샤핀<과학혁명>(영림카디널, 2002)에 응수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스티븐 샤핀은 '과학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학계의 주장에 맞서 도발하였지만 피터 디어는 샤핀의 주장을 정면에 반박하기보다는 샤핀의 관점대로 기존의 과학혁명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전 전회' 라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의 선천적 형식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다고 설명하였다. 즉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시, 구질서의 파괴를 동반한 사고방식의 변혁을 강조하고 있다.  니체는 커다란 사유의 망치로 낡은 구 이론들을 파괴함으로써 '망치로 철학하기' 가 가능했겠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는 코페르니쿠스는 니체처럼 '망치로 과학하기' 가 불가능했다.  아니, 아예 망치를 집어 들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17세기까지 자연 철학은 여전히 중세적인 사고 방식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근대 과학의 주요한 분야인 화학이나 생물학은 18세기에 와서야 ‘과학 혁명’에 해당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신구의 과학 학문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구성요소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는 있을지라도 통일성을 내포하면서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양식의 과학으로 발전하였다.  로마 제국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과학혁명 역시 하루 아침에 근대사회로 전환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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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정말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읽으시네요.
만화만 빼고 다 읽으시는것 같아요, 아, 판타지도 안 읽으시지.. ^^

저는 맹목적인 진리를 추구하던 때가 차라리 속편하구나 싶기도 해요.
칸트처럼 주관적인 현상학의 관념은 정말 피곤하거든요.
대체! 무엇인 진리인지 알 수도 없을 뿐더라,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으니까요. ㅎㅎ

cyrus 2011-07-28 19:36   좋아요 0 | URL
만화도 좋아해요. 판타지나 SF도 읽어보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독서 습관에 변화를 준다는게 쉽지 않네요. ^^;;
현상학이라는 학문이 좀 그런 면이 있죠, 전 학기 때
현상학을 공부했었는데,, 추상적인 내용이라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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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벽광나치오

조선의 18세기는 참으로 묘한 시대였다. 동양과 서양, 중세와 근대, 재래와 신문물이 도입되고 뒤섞이고 대립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정체성과 가치관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수백 년간 정체됐던 문화는 젊은이의 혈관처럼 팔팔한 활기가 돌았다.  오늘날에도 18세기를 ' 조선의 르네상스 ' 라고 평가할 정도로 14~15세기에 서양에 수많은 천재를 배출했듯이 조선에도 셀 수 없는 인재들이 나왔다.   

조선 르네상스의 인재들의 업적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들과 견줄만한 독보적인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알려지지 않고 뜬소문처럼 사라져버린 이름 모를 인재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 소개한 11인의 벽광나치오들이 바로 역사의 기록에 사라져 ' 이름 모를 인재 ' 가 될뻔한 인물들이다.  벽광나치오(癖狂懶痴傲)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고질적인 버릇을 못 고치며 어딘가에 미쳐 있고, 게으르고 바보 같고, 오만한 사람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 벽광나치오들이란  여행가, 프로 기사, 춤꾼, 만능 조각가, 책장수, 원예가, 천민 시인, 기술자 등 한 가지 일에 능통한 '전문가' 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들은 '전문가' 로 인정받았기 보다는 한마디로 ‘괴짜’ 라고 할 수 있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은 그들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했고 범상치 않고 기행을 일삼는 괴팍하게 여겼다.


 

  벽(癖) : 몰입의 대가들    

벽광나치오들은 사람들이 '미쳤다' 라고 할 정도로 자기 전공과 재능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의 유서 깊은 사대부 집안 출신인 정란(1725~1791)은 전문 여행가였다. 그는 세속적인 부귀영화의 명예를 이어가는 것보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조선의 모든 명산을 등반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당대 사대부들은 정란의 여행길을  ‘ 현실 도피’ 라고 손가락질하였으나 그는 “허황된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궁리하느니 실제 존재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 낫다” 면서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둑기사 정운창(생몰년 미상, 18세기 후반에 활동)은 10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바둑만 공부한 끝에 조선 팔도 바둑 '명인' 으로 우뚝 솟을 수 있었으며 천민으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이단전(1755~1790)은 10년 동안 독학으로 주경야독했다. 독학 끝에 쓴 시 한 편으로 문단을 휘어잡고 있었던 대문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광(狂) : ' 조선의 반 고흐 ' 최 북     

 

 

 


애꾸눈 화가, 최북

 

최북(생몰년 미상, 18세기에 활동)은 출신 성분이 낮은 직업 화가였다. 그림 한 점 그려서 팔아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돈이 생기면 술과 기행으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말년의 생활은 곤궁했고 비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비참한 일생 속에서도 호를 호생관(豪生館: 붓에 의지해 살아가는 자)으로 짓고 오로지 자기만의 예술에 도취되어 살았다.

그는 각박한 현실에 대한 저항적 기질을 기행과 취벽 등 다양한 일화로 남겼다. 최북과 함께 동시대에 살았던 시인 신광하가 묘사한 최북의 모습은 그의 사나운 기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북은 사람됨이 몹시도 다부지고 사나운데 

자칭 화사(畵辭) 호생관이라 했지. 

체구는 단소한데 한쪽 눈은 멀었고 

술 석 잔을 기울이면 꺼리는 게 없네.   

 

- 신광하 <진택문집> 중에서,  안대회 <벽광나치오> pp 68 -

  

부자가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도 거드름 피우는 태도가 왠지 거슬리면 그는 그림을 팔지 않았으며 자신을 낮춰 부르는 양반 서열의 사람들 앞에서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객기로 자신의 눈을 찔러 외눈이 된 최북 주변에는 그 어느 누구도 지긋이 붙어 있을 사람이 없었고, 세상을 뜨는 최후까지도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절친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뜸했으며 그나마 절친한 동료 화가였던 폴 고갱과 심하게 다투고 난 뒤 홧김에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처럼.   최북의 최후 역시 정신병원에서 홀로 쓸쓸히 입원 생활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권총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운을 달리한 고흐의 비극적 최후와 유사하다.   열흘을 굶다가 그림을 한 점 팔아 빈 속에 흥건하게 대취한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성 귀퉁이에서 쓰러져 얼어 죽고 말았다.

    

 

  치(痴) : 벼루에 미친 바보, 정철조  

정철조(1730~1781)의 호는 석치()다. 석치란 ‘돌에 미친 바보’ 란 뜻이다. 여기서 돌은 먹을 가는데 사용하는 벼루를 말한다. 그러니 벼루를 깎는 데 미친 바보다. 정철조는 벼루 깎는 것을 취미와 예술로 삼았다. 그의 별명에는 벼루 깎는 취미를 폄하하는 의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생전에는 말할 나위가 없고,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벼루를 잘 깎는 명사로서 그의 호는 인구에 회자되었다.  

벼루는 글을 쓰는데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이다.  18세기에는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멋진 벼루를 수집하는 풍조가 유행하였는데 그 유행의 선두주자는 단언 정철조였다. 수많은 문인과 선비들은 그가 만든 벼루를 소장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그의 솜씨는 예술적으로 인정받았다.   

정철조는 벼루를 먹을 가는데 사용하는 도구라는 일반적인 용도의 인식을 넘어서 멋진 장식과 문양이 있는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그는 벼루를 만드는데 돌의 재질을 따지지 않고 칼과 끌을 잡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벼루로 완성시키는 재능을 가질 정도로 동시대의 문인들과 절친한 교우들은 그의 벼루 만드는 능력을 손꼽았다.  

하지만 정철조는 단순히 벼루 잘 깎는 선비로 불리기에는 그가 생전에 펼쳤던 활동들은 다재다능했다.   기계, 지도 제작에 조예가 있었고, 천문지리에도 관심을 가져 해시계도 제작할 정도로 만능 지식인이었다.  

  

 

  오(傲) :  나는 나다!   

벽광나치오에서 '오(傲)' 에는 '거만하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천성이 사나웠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대부가 그림에 대해서 무지하면 거리낌없이 독설을 날렸던 최북의 오만한 기질은 그렇다치더라도 이 책에 소개된 나머지 벽광나치오는 동시대인들로부터 특별히 당대 사람들 눈에 거슬릴 정도의 오만함을 떨지 않고도 재능을 널리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재능과 기술을 가졌음에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갈고 닦은 노력 역시 그들이 활동하게끔 만드는 원동력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벽광나치오들이 남들과 다른 독특한 재능과 기술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은 아무래도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북은 호생관이라는 호를 스스로 붙임으로써 붓 하나만으로 온 세상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자신만의 예술적인 긍지를 표현하였으며  시작(詩作) 활동으로 당대로부터 널리 이름을 떨치게 했던 사대부 집안의 노비(종) 출신의 시인 이단전은 자신의 신분을 호와 이름에 사용하였다.   그의 이름 단전(亶佃)은 ‘진실로 밭가는 놈'종놈, 소작농을 뜻한다.   자신의 호를 ' 필재(疋齋) ' 라고 삼았는데 필(疋)을 파자하면 하인(下人)이 된다. 그는 스스로 진짜 종놈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신분사회에 대한 조롱을 퍼 부은 것이다.   그리고 정철조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대부임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집대성한 저서를 단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당대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의 신분적 위치도 모른 채 불손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건방진 태도로 비춰질 뿐이었다.

하지만 당대로부터 벽광나치오라고 불리던 인물들은 자신의 재능을 겸손히 여길 줄 아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며 부끄럽고 천하게 여기기는커녕 떳떳하게 자신의 재능을 어필 할 줄 알았던 전문가들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에는 신분이 미천했던 벽광나치오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 자기PR ' 과 유사한 자신만의 홍보 방식인 것이다. 

   

 

  벽광나치오가 아니라, 벽광 '근'(勤) 치오!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조선의 '폐인' 들은 공통적으로 세속과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신분사회임을 감안하면 벽광나치오들은 한 가지 우물에만 파려고 하는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취미와 재능을 알아주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묵묵히 열심히 노력하였으며 오랜 노력 끝에 신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둑의 명인 정운창과 시인 이단전 그리고 벼루 깎는 것이 좋아서 그저 오랜 세월동안 벼루를 깎다보니 예술작품에 비견될만한 벼루를 제작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정철조까지, 벽광나치오들은 남들 모르게 부단히 노력하였다.  

사납고 술주정뱅이 최북 역시 가만히 집 안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지 않았다.  최북의 화풍 스타일은 초기 남종화풍에서 후기 조선의 고유색인 진경산수화로 변하게 되는데 그 변화의 시점이 금강산, 가야산, 단양 등은 물론 일본과 중국까지 다니게 되면서 비롯된다.  최북은 당시 조선 화풍을 지배하고 있었던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숭상하는 경향을 비판하고 조선의 산천을 찾아 직접 화폭에 담는 진경산수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벽광나치오, 그들이 찾으려고 했던 것


이 책에 소개된 11인의 벽광나치오들 중에 최북과 이단전과 같은 재주 있는 자를 세상은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던 경계인의 생은 끝내 불행했다. 이들은 시대와의 불화를 비켜가기 어려웠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이들의 열정이 인정받기에는 당시의 사회 관념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둑기사 정운창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평양의 또 다른 바둑의 명인 김종귀와의 대국을 위해서 직접 평양까지 찾아가 청을 하였지만 상대로부터 묵살을 당하게 된다. 그러자 그가 내뱉은 탄식은 재능이 있음에도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벽광나치오들의 불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재능을 지닌 선비가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이, 그래 이런 정도란 말인가?  내 차마 걸음을 되돌릴 수 없구나!  내가 떠나온 고향 땅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얼추 수천 리다. 고갯길의 험준함과 나그네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바둑이라는 기예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자웅을 겨뤄서 잠깐 사이의 기분을 맛보자는 것뿐이다. 허나 끝끝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갈 모양이니 어찌 기구하지 않은가? ” (같은 책, pp 269)  
   

  

정운창의 탄식에는 단순히 바둑 대결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소개된 11명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역사의 시간 속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수많은 이름 모를 벽광나치오들의 고뇌도 느껴진다.  

결국 그들이 그들이 미친 사람 소리 들어가면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은 전문가로서의 인정이 아닌 좋아하는 일에서 얻을 수 있는 몰입의 즐거움이었다. 그들에게 ‘즐거움’ 이란 최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동시에 사회와의 불화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용기와 집념을 지닌 조선시대의 전문가들은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 일에 즐기면서 몰두함으로써 최고의 능력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승자독식의 사회, 거짓과 부패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운명처럼 정해진 틀을 박차고 나갔던 그들의 열정과 중심 세력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섰던 벽광나치오의 패기와 열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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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2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소개를 보니까 생각나는 책이 있는데요,
허경진교수가 쓴 <악인열전樂人列傳>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악기, 노래, 가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예술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기이한 예술인들의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 놓았어요. 같이 읽어보셔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cyrus 2011-07-26 16:39   좋아요 0 | URL
허경진 교수라면 예전에 <홍길동전> 읽을 때 그 분이 쓰신
<허균 평전>을 조금 읽어본 적이 있어요, 그 분이 그런 책을 쓰셨군요.
작년에 나온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이라고 안대회 교수가 쓰신 책이
<벽광나치오>랑 비슷해요, 역시 역사의 기록 속에 사라진 예술인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굿바이님이 추천하신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
 

 

 

 

 

 

 

 

 

 

  

  햄릿을 다시 만나다      

이번 달만해도 <햄릿>을 4번 읽었다. 독서모임 때문에 펭귄클래식판 2번, 이미 소장하고 있었던 민음사판 2번씩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어제 독서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2주 연속 불참이다.  어제 모임이 1기 독서모임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지금도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온갖 사정으로 인한 잦은 불참에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셨던 같은 독서모임 조원분들께 죄송스럽다.   

햄릿이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로 고민했다면 나는 며칠 전부터 모임에 참석할까 말까 고민했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한 교통 경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손에 쥐고 있던 용돈을 아껴썼지만 서울을 왕래하는데 비용이 조금은 부족했다.  목요일에 헌책방에서 만 원을 썼던게 화근이었다.  서울을 왕래하는 기차를 탑승할 때 드는 비용은 그렇다치더라도 12시가 넘는 심야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드는 택시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기본 요금 2200원에 심야 할증까지 붙게 되면 5천원 정도 잡아야한다.   결국 택시비가 발목을 잡았다.  역시 돈이 없으면 뭐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각설하고 다시 <햄릿>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새롭다.  특히 복수를 하자니 겁도 나고, 부조리를 알게 되면서 분노하는 한편으로는 생의 무의미함에 시달리기도 하는 햄릿이라는 사내의 내면 묘사는 흥미진진하다.  

햄릿은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이름만 대면 다 알고 있는 괴테가 창조해낸 베르테르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문학작품 속 주인공이다.  비록 햄릿은 우유부단한 사람, 베르테르는 자살 모방자의 대명사로서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의미로 왜곡된 채 대중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흠이지만.     

  

 

  작년에 썼던 리뷰 속 오류 지적

<햄릿>을 다시 읽다보니 작년에 작성한 리뷰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예전에 썼던 리뷰를 읽게 되면 부끄럽고 민망하다.  꼭 앨범 사진첩에 보관된 벌거벗은 채 찍은 신생아 시절의 모습이 담긴 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하고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지만 대부분 다시 읽어보면 헛점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민망한 내용이 많다.  

작년 여름 이맘때 쯤에 민음사판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햄릿과 그의 어머니 거트루트의 성격에 대한 주관적인 분석와 감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잘못 소개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햄릿 이외에도 그의 어머니인 거르루트에도 흥미로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
거트루트는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아들 햄릿에게
‘곱고 애정어린 말’ (제1막 제2장 121행)을 언급하면서
과거에 선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햄릿을 설득한다.

  

최종철 연세대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판 <햄릿>의 제1막 2장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햄릿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삼촌과 그와 결혼한 햄릿의 어머니 거르루트는 과거처럼 함께 살기를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작년에 쓴 리뷰에서는 1막 2장 121행인 ' 곱고 애정어린 말 ' 을 햄릿을 가리키는 거트루트의 대사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내용이다.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121행의 대사는 거트루트가 아니라 삼촌인 왕의 대사 였던 것이다. 그리고 ' 곱고 애정어린 말 ' 이 아니라 ' 곱고 애정어린 답 ' 이었다.  거트루트의 성격에 대한 감상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다보니 내용상 착오가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거트루트가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아들을 설득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대사 속에서 ' 곱고 애정어린 말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을 글을 쓴 당사자 본인이 직접 지적하는 꼴이 우습지만 나뿐만 아니라 이름 모르는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 새로 작성하게 된 페이퍼에서나마 리뷰 속 내용의 오류를 언급하게 되었다.  만약에 독서모임을 위해서 <햄릿>을 읽지 않았더라면 잘못된 실수를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햄릿은 진짜 미쳐버렸는가?    

 

 

 

 

  

  

  

 

 

<햄릿>은 세계문학사에서 창조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심리적 반응과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도 셰익스피어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햄릿의 심리나 성격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에는 햄릿과 관련된 도서를 다루고 있는 페이퍼가 있다. 페이퍼 내용에 의하면 일본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가와이 쇼이치로<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시그마북스, 2009)라는 책에서 햄릿을 헤라클레스 신화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쇼이치로는 이 책에서 햄릿이 삼촌의 범죄를 알게 된 이후부터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했으나 자신의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헤라클레스로서의 변신을 포기하고 세상의 섭리대로 '인간' 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햄릿>을 읽게 되면 선왕을 위한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힌 덴마크 왕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삼촌의 음모로 인한 선왕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삼촌과 재혼하게 됨으로써 형성하게 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에 맞물리면서 자신의 절친한 벗인 호레이쇼 이외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며 평소에 사랑했던 오필리아에게도 냉정하게 대한다.  이런 반감의 골이 깊어가면 갈수록 햄릿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이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햄릿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지켜보는 클로니어스와 왕비 거트루트 그리고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재상 폴로니어스는 햄릿이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미쳐버렸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에게 닥쳐온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미쳐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삼촌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 한 것뿐이다.   

1막 5장에서 햄릿은 수소문 끝에 드디어 선왕의 유령을 목격한다. 그리고 선왕의 유령을 통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삼촌의 음모도 알게 된다.  햄릿은 자신의 절친한 충신인 호레이쇼에게 선왕과의 만남을 비밀로 유지할 것을 당부하게 되는데 여기서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위해서 이미 미친 척하기로 염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을 손님으로 환영해 주게나.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학문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있다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아까처럼, 결코 발설하지 말게.  그럼 하느님이 자비를 내릴 걸세.  내가 아무리 이상야릇하게 행동해도 - 혹시 내가 이제부터 필요에 따라 어릿광대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  

 - 셰익스피어 <햄릿> 제1막 5장 중 햄릿의 대사, 펭귄클래식코리아, pp 132 -   

 

이 대사 이후로 다음 막에서 햄릿이 본격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조울증에 가까운 증세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 햄릿의 행동에 대해서 호레이쇼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클로디어스, 거트루트, 폴로니어스, 오필리아 등)은 왕자가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햄릿의 '어릿광대 짓' 에 속아넘어간 클로디어스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삼아 햄릿를 제거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파견 일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햄릿은 이미 삼촌의 계략를 이미 알아차린 터.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려는 클로디어스의 조치는 복수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던 햄릿의 심장에 도리어 기름질을 부은 셈이 되었다.  

  

 

  불안에 시달린 햄릿 

햄릿이 충동적인 모습에다가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은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생긴 심리적인 갈등을 하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도 불안감에 시달린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 ’ 으로 분류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현실적 불안은 자신을 위협하게 만드는 상황 속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게 된 클로디어스의 계략을 선왕의 유령으로부터 알게 된 햄릿은 자신도 언젠가는 삼촌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현실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머지 두 가지 불안은 앞에서 언급했던 현실적 불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신경증적 불안은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을 때 올 수 있는 위험을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는 불안이다.  

햄릿이 왕비 거트루트와의 대화 도중에 휘장 뒤에 숨어있는 폴로니어스를 삼촌인줄 알고 충동적인 성격을 억누르지 못한 채 죽이게 되는데 그가 찌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였다. (제3막 2장)     

결국 폴로니어스의 살해는 오필리아는 미쳐버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만다.  햄릿은 자신의 행동이 오필리아를 미쳐버리게 될 줄은 예상은 못했더라도 자신이 삼촌을 죽이게 도면 괜히 죄 없는 어머니까지 미쳐버릴지 않을지 자신의 복수로 인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파국국을 위시하여 신경증적 불안감을 한 번쯤은 가질 법하다.  이로 인해서 햄릿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또 한번 혼자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매사가 나를 고발하며 내 무딘 복수심을 채찍질하는구나!  (중략) 

생각이란 걸 사등분하면 그중 하나만 지혜롭고 나머지 셋은 비겁함에 불과해.  난 왜 ' 이 일을 해야 한다. ' 고 뇌까리고만 있는 거지?  그럴 만한 명분, 의지, 힘, 수단을 다 갖췄으면서도 말이야,  

 - 같은 책, 제4막 4장 중 햄릿의 대사, pp 236 -  
 

 

도덕적 불안은 자신의 욕구나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경험하는 불안이다.  쉽게 말하면, 양심이라는 도덕 기준에 의해 생기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불안이다.
햄릿은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만 삼촌 클로디어스가 어머니와의 결혼이 성립됨으로써 법적으로는 자신의 아버지이며 덴마크의 국왕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패륜아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주위의 신하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햄릿은 삼촌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지만 그와 결혼한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복수가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한 도덕적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어떤 종류이든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으며 불안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현실을 파악하는 자아의 기능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억제하려고 한다.  햄릿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은 햄릿의 자아 기능을 조금씩 갉아먹게 되며 그가 꾸민 선왕을 위한 복수는 햄릿이 고민하면 할수록 지체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햄릿은 판단력이 저하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되고자 했던 '인간' 햄릿

불안의 개념을 통해서 본 햄릿의 심리적인 반응에 대한 설명은 사실 작년에 쓴 리뷰에 이미 기록했던 내용이다.    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감상을 덧붙여 다시 한 번 페이퍼로 정리해봤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분석대로라면 햄릿은 선왕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덴마크의 위대한 왕 아니 헤라클레스가 되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되기에는 햄릿은 야망은 품고 있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부족했다.  하지만 의지가 부족한 햄릿을 어리석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 하느님, 나는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도 스스로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자처할 수 있어. 다만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 같은 책, 제2막 2장 중 햄릿의 대사, pp 155 -

 

햄릿의 저 대사처럼 예상치 못한 비극을 낳게 된 복잡한 상황이 악몽처럼 닥쳐오지 않았다면 햄릿의 복수는 조금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피하고자 했던 악몽은 왕비가 보는 앞에서 폴로니어스를 살해함으로써 끝내 이루어지고 말았다.  폴로니어스가 살해되지 않았더라면 햄릿은 주위 사람들부터 더 이상 미친 척 할 필요도 없었고 자신의 연인 오필리아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폴로니아스와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인해 레어티스마저 자신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이렇듯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햄릿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정신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절친한 충신 호레이쇼가 곁에 있다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표현한대로 햄릿에게는 덴마크, 즉 세상은 외부와 단절된 '감옥' 이었다.    

어쩌면 '감옥' 같은 세상이 덴마크의 '외톨이' 왕자 햄릿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이다. 불안감에 집착한 나머지 헤라클레스가 되고자 했던 햄릿은 삶에 대한 허무주의로 가득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야망을 힘껏 펼치지 못한 채 햄릿은 그렇게 덴마크라는 감옥 안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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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년 전쯤에 박근형이란 연극계에선 알아주는 연출가의
햄릿을 본적이 있어요. 무대를 최대한 간소화해서,
관객들이 배우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어려운 부분은 과감하게 뺏다고 합니다. 근데 뭘 뺐는지 잘 모르겠더만요.
뭐 그만큼 집중도를 높였다는 뜻이겠죠.
나름 몰입도도 좋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언제, 어디선가 계속
공연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해요.
그 할배는 천국에서도 아, 이 놈의 인기...!하며 행복한 한숨을 쉴 것 같습니다.ㅋㅋ

cyrus 2011-07-25 17:00   좋아요 0 | URL
햄릿을 연극으로도 보고 싶어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작픔 중에서
가장 많이 연극으로 상연되는 것이 햄릿과 로미오 & 줄리엣일거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7-2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드 레벤펠드가 쓴 '살인의 해석'이 맞나?
그 책을 보면 햄릿의 명대사를 프로이트와 융의 입장해서 해석한 게 나왔었어요.
New Trolls도 생각나고 말이죠~^^

cyrus 2011-07-25 17:02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 때 그 책 나왔을 때 한 번 읽어봤는데 분량이 두껍고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도중에 읽다 포기했어요.
나무꾼님 말씀 듣고보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New Trolls를 몰라서 방금 검색해보니, 가수였군요 ^^;;

2011-07-25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퇴근하는 길 도중에 버스를 갈아타고 오랜만에 헌책방에 들리게 되었다.  

지갑 안에 10000짜리 지폐 한 장과 5000원짜리 지폐 한 장,  집계 15000원이 있었다. 이 돈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시험한 아이스크림과 맛있는 과자를 살 것인가 아니면 헌책방에 가서 책을 구입할 것인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고민했다.    헌책방에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내리고 다른 버스로 갈아 타야한다.   퇴근하는 시간대가 햇빛이 강력히 내리찌는 시점이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귀찮다.  헌책방에 가지 않는다면 버스에서 중간에 내릴 필요 없다.    

헌책방에 가기 전에 미리 구입할 책들을 따로 메모를 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판매하는 헌책방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곳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동시에 책을 판매하는 곳이다. 나름 헌책방 매니아들 사이에서 좀 알아주는 헌책방이다.   

오늘따라 10000원짜리 한 장만으로 충분히 헌책 몇 권 살 수 있다는 직감이 왔다.  헌책방에 들리면서 많아야 5권까지 구입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책을 구입하는데 썼던 비용이 15000원였을 것이다.  정말 읽고 싶었던 신간도서 한 권을 발견하면 대략 5000원에서 7000원 선에서 잡아야한다. 그래서 헌책방에 가기 전에 미리 염두해야할 점은 내가 원하는 신간도서가 헌책방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을 넉넉히 준비할 수 있다.    일단 지갑에 이를 대비할 수 있는 비상금(?) 5000원이 있으니 비용 부담 없이 헌책방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뒤로한 채 중간에 내리고 다시 헌책방에 위치하는 곳을 지나가는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헌책방에 거의 1년 만에 오게 되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을 반겨주는 어마어마한 양의 헌책들은 여전했다.  이상하게 입구에 가득 쌓인 헌책들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헌책으로 이루어진 미로 속 동굴을 탐사하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헌책방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정말 사람 한 명도 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헌책이 가득하다.    

헌책방에 처음 오게 되면 성인의 키에 맞먹는 헌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아무대나 정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다.  헌책방 주인은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자신만의 분류 방식으로 수만권이나 되는 헌책들을 보관한다. 그래서 헌책방을 자주 찾는 손님은 자신이 즐겨 읽는 분야의 책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매일 자주 찾는 손님이 아니라서 항상 헌책방에 들리게 되면 헌책의 미로 속에서 헤맨다.  그래서 가끔 헌책방에 오면 주인 어르신이 나에게 항상 건네는 말이 있다.  

 

 " 손님, 무슨 책 찾으십니까? " 

 

나는 1년에 두 세 정도는 헌책방에 드리는 편인데도 여전히 헌책방의 분류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주인 어르신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문학,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의 책들을 다 한번씩 훑어보지만 그 중에서 많이 구입한 분야의 책이 문학 특히 소설이 제일 많고 그 다음에 사회과학, 인문학 순이다.   소설은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구입하는 편이며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도서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책이 있다하더라도 독서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로 지저분하게 낙서가 많으면 구입을 안 하는 편이다.   

그래서 헌책방에서 책 한 권 고르는데 대형서점 책 한 권 사듯이 족히 30분 이상은 잡아먹는 편이다.  이렇다보니 주인 어르신 입장에서는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  한 시간동안 책 고르다가 그냥 나가는 손님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읽을만한 책 한 권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있는 편이다.  절대로 빈 손으로 서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독서와 관련된 나의 철칙 중 하나다.   

결국 이리저래 주인 어르신의 눈치 보면서 한 시간 끝에 책 네 권을 골랐다.   구입한 책 네 권의 총 가격은 9000원.   저렴한 가격에다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책들 골랐으니 이번 헌책방 구입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1.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이학사, 2007년 초판 1쇄)

 

 

 

 

 

 

 

 

  

4년 전에 나온 책도 헌책방에서는 신간도서나 다름없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상태가 완전 최상급이었다.   정가로는 8000원, 알라딘 판매 가격에는 6800원.  헌책방에서는 2500원에 구입했다.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면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내가 구입한 책이 초판인지를 서지정보를 보는 것이다.  별 중요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구입한 책이 초판 1쇄로 발행된 것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구하기 힘든 책을 구입한듯한 성취감이 든다.    이 책은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이 책이 초판 1쇄라니,,,   

 

 

 2.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범우사, 1986년 초판 1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을 보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소설 내용이 독특하다.  카스터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에서 2400년경에 쓰여졌다는 설정을 해놓고, 이보다 약 2400년 전에 존재하였던 미래의 이상향 카스터리엔에 살고 있는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 유리알 유희 ' 는  수십 가닥의 철사줄에 갖가지 크기와 빛깔과 모양의 유리알을 늘어 놓는 놀이를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철사줄에 구슬을 늘어 놓는 간단한 놀이는 아니다.   

철사줄은 오선보에, 유리알은 음표로 인식한 채 음악상의 인용이나 착상한 주제를 유리알로 구성하고, 바꿔 놓고, 변조시키고, 발전시킨다.  기술적으로는 독특한 유희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무한반복함으로써 하나의 음악처럼 정립과 반립으로부터 가능한 한 하나의 종합적인 체계를 만들게 된다.   

아직 이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유리알 유희에 대한 설명이 미약한데 <유리알 유희>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에서 마지막으로 발표된 동시에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소설에는 음악, 고대 철학, 예술, 명상 등 다양한 사상의 주제들이 축약되어 있어서  헤세 최고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전작인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보다는 대중적인 인기가 낮은 편이다.   

알라딘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리알 유희>는 1999년에 출간된 것이며 내가 구입한 책은 13년 전인 1986년에 출간되었다.  그래서 표지가 다르다.    가끔 도서관이나 헌책방에 가면 범우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시리즈를 종종 보곤 하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간된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3. 살인의 철학 (콜린 윌슨, 선영사, 1991년 초판 1쇄)   

 

 

 

 

 

 

 

 

  

  

내가 가입한 공식 출판사 카페 회원분들 중에 헌책방을 자주 애용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 덕분에 콜린 윌슨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분은 지금까지 헌책방을 여러군데 다니면서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콜린 윌슨의 책을 모은 헌책방 매니아다.   

콜린 윌슨은 24세(헉,,, 나랑 같은 나이다 -_-;;)<아웃사이더>라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하루 아침에 '천재' 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문단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문학 평론가다.  직업은 문학 평론가이지만 콜린 윌슨은 문학 이외에도 과학, 초능력, 살인, 미스테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저작을 남긴 다재다능한 저술가로 활동했다.   '콜린 윌슨 매니아' 인 그 분이 언젠가 카페에 국내에 번역된 콜린 윌슨의 책들을 목록으로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쓴 책의 분야과 수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살인' 이라는 주제에 대한 책을 저술했는데 최근에 <현대살인백과>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콜린 윌슨의 책이 제목만 바꾼채 같은 내용으로 번역된 책이 많다보니 <살인의 철학>이 <현대살인백과>의 내용과 같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살인의 철학>이 나온 뒤 8년 뒤에 같은 출판사에서 <살인의 심리>로 이름이 바뀐 채 알라딘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살인사건 사례들만 나열한 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단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볼 수 밖에. 

 

 

 

 4. 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 & 페터 한트케, 모아, 1993년 초판)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 중에서 고작 읽은 건 <어느 작가의 오후>뿐이지만 이 한 권으로 페터 한트케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이 한 권만으로 작가의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섣부른 판단이지만 페터 한트케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베를린 천사의 시>가 페터 한트케가 쓴 작품들 중에서 훌륭하다고 칭찬의 평가를 주워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책을 보자마자 덥석 집어들었는데,,,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책이었다. 

알라딘에 ' 베를린 천사의 시 ' 로 검색을 하면 책 대신에 영화가 검색된다.  소설보다는 페터 한트케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창작한 빔 벤더스 감독 의 영화가 잘 알려져 있다. 1993년에 영화가 국내에 처음 개봉되었으며 이 책 역시 1993년에 발간된 걸로 보면 이 책은 영화가 국내에 처음 개봉 당시에 맞춰 출간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이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책인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특별한 것은 책 속에 영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더 이상 부연적으로 설명할 내용은 없지만 오늘 산 책들 중에서 구입하기 잘 된 책인 것은 확실하다.   

 

요즘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간도서들 틈 속에서 오늘 구입한 헌책들 역시 읽혀지지 않은 채 책장에서 장시간 대기해야할거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적은 돈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살 수 있어서 기분은 좋다.   구입한 책을 포장한 종이가방을 한 손에, 또 다른 손에는 책 사다 남은 거스름돈 1000원으로 산 편의점에 파는 아이스 커피를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달달한 과자보다는 약하지만 먹으면 금방 뱃속으로 사라지는 음식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한 오늘의 소비만큼은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 비용으로 생각된다.  

또 언제 헌책방에 가게 될지 기약은 알 수 없지만 다음에도 오늘처럼 좋은 책을 만날 수 있기를 ' 만원의 행복 ' 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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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7-2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참 멋지시네요~ 이 더운 날 그런 수고를 마다않는 열정이 있으시네요. 그리고 저 <유리알 유희>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중학교때 헤르만헤세를 좋아해서 저 책을 골라 들었다가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제가 읽었던 바로 그 표지네요!!! 그 나이에 사실 <데미안>도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 <유리알 유희> 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웠어요 ㅋㅋ 책을 덮으며 그저 헤세의 문장을 포기하지 않고 읽었다는 뿌듯함을 즐겼었다죠~그 이후로 다시 읽지 못했어요. 조만간 도전해야겠어요.. 고마워요~옛 기억에 잠시 즐거워졌네요^^

cyrus 2011-07-23 12:57   좋아요 0 | URL
저는 헤세의 에세이는 읽어봤는데 소설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집에 얇은 분량의 민음사판 <데미안>이 있는데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맥거핀 2011-07-2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보아도 손때가 묻어있는 헌책들이네요. 왠지 뭔가 나름 사연을 가지고 있을 법한 책들입니다. 오래된 책은 책의 내용과 별개로 나름의 사연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오래된 헌책방에 가면, 주인장 분들이 거의 내공이 있는 분들이 많으셔서, 저는 책도 책이지만, 이 분들은 예전에 뭘 공부하시던 분들일까..그런 생각들을 하기도 합니다. 저 책을 보니 <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가 보고 싶어지네요.

cyrus 2011-07-23 13:0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맥거핀님. 잘 지내고 계시죠? ^^

헌책방에 구입한 책들을 보면 꼭 보는 것이 예전 책의 주인들이 남겼던
흔적들을 보는거에요. 몇 년도 몇월 며칠에 어느 서점에 구입했다는
짤막한 기록이 남긴 책도 있고요. 저는 수많은 헌책더미에서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찾는게 대단한거 같아요. 정말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내공이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이겠죠? ^^

stella.K 2011-07-2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유리알 유희는 예전에 저도 갖고 있던 책인데!ㅋ
정말 오래된 책이군요. 요즘 알바 하시나봐요. 더운데...ㅠ

cyrus 2011-07-23 13:06   좋아요 0 | URL
지금도 새 표지로 범우사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소설 내용도
어렵고 헤세의 다른 소설보다 인지도가 낫다보니
요즘 세계문학 전집 리스트에도 잘 안나오는거 같아요.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어요, 기말시험 쳤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도 1주일 밖에 안 남았네요. ^^;;

마녀고양이 2011-07-2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 괜찮은데 기회되시면 보세요.

헌책방에서 9000원에 건진 책들이라니, 너무 좋네요.
그리고 얼마 전에 엄청 지름신을 몰고온 제가 창피하구요....

cyrus 2011-07-23 13:10   좋아요 0 | URL
잠깐 책 속 영화 영상을 훑어봤는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구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나온지 좀 오래 되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책 지름신하는게 창피하긴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저없이
사는게 좋아요, 저는 항상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는 이상 눈도장을 찍는 편이에요, 그래서 눈여겨봤던 책이
갑자기 품절되거나 절판되면 진작에 책을 구입하지 못해서
후회해요, 최근에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도산되어서
정말 아쉬워요, 그곳에서 나온 책들 중에서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거든요 ^^;;

blanca 2011-07-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좋아요. 유리알 유희 저 중학교 대 수학샘이 하도 강권하셔서 울며 자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헤세를 좋아해서 꼭 읽으려 하긴 했지만 지금 읽으면 또 다르게 다가오겠지요. 천 원의 아이스 커피, 또 책이 든 가방을 들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

cyrus 2011-07-24 13:21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유리알 유희>를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시군요 ^^
수학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라,, ㅎㅎ 원래 수학 선생님들은
수학자들의 평전이나 수학의 내용을 쉽게 소개한 책들을 많이
추천하는 편인데 왜 하필이면 소설 중에 <유리알 유희>를 추천하셨는지
이해할만하네요. 유리알 유희라는 게임이 아무래도 수리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라서 그런거 같아요, 역시 수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거 같아요 ^^;;

산방산자락 2011-09-0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글 남깁니다..헌책방을 가끔 다니거나 이렇게 헌책방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 이사를 다니며 엄마의 완강함에 눈물을 뿌리고 정리해 버린 많은 책들이 생각납니다. 지난 달에도 이사를 해서 거의 200권가량 버렸는데..물론 전공책이 대부분이지만...날긍ㄴ 책이니 헌책방 가져가봐야 민폐일뿐일거야..라고 생각한 게 부끄럽습니다..초판 참 많이 있었는데 다 버렸으니..요즘은 어릴 적 읽던 동화전집들이 어찌나 생각나는지..^^ 사촌들에게 다 나누어줘버리신 어머니가 항상 원망스럽군요..ㅎㅎ
 
식코 - Sick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식코(Sicko)‘환자’ 라는 뜻의 속어다. 미국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마이클 무어는 <식코>에는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공공의료보험제도가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산업 국가다.  미국인 5000만 명은 의료보험에 들지 않았으며,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단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영보험회사에 가입한 2억 5000만명의 ‘행운아’들 역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응급 처치, 중증환자의 수술, 약 처방을 받기 전 보험사의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한다. 승인이 나지 않으면 환자들은 미국 내 어느 병원에서도 치료 받을 수 없다.

영화 속 한 어머니는 40도의 열이 펄펄 끓는 18개월 딸을 안고 허겁지겁 근처 병원에 가지만 그녀가 가입한 보험과 연계된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 당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는 몇 시간 뒤 끝내 숨지고 만다. 

이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이 환자가 아니라 보험사의 이익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환자의 치료비 청구를 거부한다. 반면에 병원은 의료비 지출을 할 필요도 없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게 된다.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신이 스스로 수술을 하고 있는 애덤 씨

 

영화에는 미국 환자들의 온갖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진다.   

작업하다 중지와 약지 끝이 잘려나간 남자가 있다. 중지 접합에는 6만달러, 약지 접합에는 1만2000달러가 든다. 돈이 부족했던 남자는 중지를 포기하고 약지 접합 수술만 받는다. 21세에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이 있다. 보험료 지급을 청구하자 보험회사의 대답이 가관이다. “젊은 여성은 자궁경부암에 걸릴 수 없다.”  

보험사의 심사위원들은 보험 지급 거부율을 높일수록 보너스를 받는다. 보험사들은 수천 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가까스로 보험에 가입했다 해도 수만 가지 구실로 지급을 거부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힐러리 클린턴의 의료보험 체계 개혁은 보험사들의 강력한 로비로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니 극중 대사처럼 ' 안 아프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 
  

<식코>는 사회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쳤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고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에 개봉 당시 외국의 사례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4월 24일 한국경제 칼럼에서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민영 의료보험이 의료보장의 근간이고 공적 보험이 보조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적 보험이 30년 동안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고 다만 재정 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략) 

국민 누구나 사각지대 없이 최소한의 건강보장을 받을 권리 확보와 의료산업 선진화를 통한 양질의 서비스 확대 간에는 상충관계가 있다.  전국민 의무가입이라는 틀 안에서 민영보험의 보장공백 보완이라는 현행 틀은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공ㆍ사보험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의료부문에의 경쟁도입,의료기관 당연지정제 완화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의료산업 선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영화 '식코'를 둘러싸고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미국 사례를 우리 현실인양 호도하면서 세력 결집의 동인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다. 상당수 진보단체들은 '식코' 관람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 2008년 4월 24일자 한국경제 칼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보장 확대 추진 분위기 속에서도 불거지는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 앞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으며  미국 사례를 우리 현실인양 호도하면서 세력 결집의 동인으로 악용하려는 시도의 세력을 진보단체임을 겨냥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건강보험 축소와 민영 의료보험 확대가 바로 미국식 의료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낙후된 서비스보다는 당연히 질 높은 서비스가 좋은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미국처럼 1인당 월 100만 원씩 보험료를 내면 당연히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민영 의료보험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질 높은 서비스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식코> 속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처럼 말이다. 

 

<식코>는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이 먼저인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 처음으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어서 진지하게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은 단순히 먼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곧 지금도 어디선가 불합리한 의료제도 때문에 병원의 문턱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름 없는 서민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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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0 13:17   좋아요 0 | URL
제가 시루스님 알고 처음 보는 영화평 같습니다.
역시 시루스님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마이킁 무어 감독은 위트있게 사회적 문제를 잘 꼬집어 내는 것 같아요.
전 예전에 수퍼 사이즈 미던가? 햄버거 먹던...
그 영화 재밌게 봤고, 고등학교내 총기 사용문제를 다룬 것도
무어 작품인 줄 알고 있어요. 제목은 잊어 먹었당...ㅠ

cyrus 2011-07-21 20:31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절반 정도 보다가 나머지 못본 결말은
시간 있을 때 보게 되었어요. 남의 나라의 일이지만 의료제도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연을 보니 안타까웠어요.
저도 <슈퍼 사이즈 미> 보고 싶어요, 님이 말씀하신
총기 사용문제를 다룬 작품이 <볼링 포 콜럽바인>이에요 ^^

마녀고양이 2011-07-20 16:19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미국의 건강 보험 제도 때문에 심리 치료 방식이 변화된다고 합니다.
기간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길고 긴 정신 분석 측면의 치료는 완전 도태되고
단기 치료 중심으로 방향이 바뀌는거죠. 그리고 치료가 되지 않아도
건강 보험으로 인해 치료 중단도 하게 되구요. 아마 다른 치료는 더 심하지 않겠습니까?

교육이나 의료, 음식...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
장난하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쵸?

cyrus 2011-07-21 20:33   좋아요 0 | URL
저는 잘 사는 미국에도 저런 심각한 사회문제가 있는줄 몰랐어요.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라서 자세히 몰랐을 수도 있지만,,
무어 감독이 있기에 미국의 실체를 알 수 있는거 같아요.
만약에 우리나라도 한국판 삭코 찍으면 미국보다 더한 피해사례들이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꽃도둑 2011-07-21 15:01   좋아요 0 | URL
의료보험 민영화?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거죠!...
옛 속담에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게 있잖아요, 딱 그짝일 것 같네요,,
있으신 분들, 특히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긁어 태산 만드신 분들, 수억대의 재산가이면서도 직장다니는 자식들에 이름 석자 얹어 놓고 의료보험 안 내시는 분들 주머니를 털 일이지..
그러면 적자적자 하는 소리도 줄어들텐데...
돈많은 사람들은 어쨌거나 국내 특급병원 특실에서 특급명의에게 진료를 받든(특급으로 구별되는!)미국을 가든 영국을 가든 가서 의료서비스 받으시면 되는거고...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제인거죠..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랄 수밖에요, 따라할 걸 따라해야지..
경쟁의식을 아무대나 들이대는 전형적인 새머리들!! 정말 싫어요~~~

cyrus 2011-07-21 20: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좀 더 환자들의 경제적 입장을 고려해서 이에 걸맞은
의료제도로 구성되면 좋을텐데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1-07-21 15:31   좋아요 0 | URL
전 식코는 옛날에 봤었고,
얼마전에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를 보면서 복기했었어요.

cyrus 2011-07-21 20: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나무꾼님 페이퍼에서 그 책 언급하신거 블로그에서 본 적 있는거
같아요. 제가 이 영화를 1학기 수업시간 때 보게 되었어요.
원래 그 수업이 행정학 관련된 과목인데,,
교수님이 독특하신 분이라서 수업과는 관련 없는 영화인데,,^^;;
사회문제의 고발하고 있는 내용을 다룬 다큐라서 인상깊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