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Sicko)는 ‘환자’ 라는 뜻의 속어다. 미국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마이클 무어는 <식코>에는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공공의료보험제도가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산업 국가다. 미국인 5000만 명은 의료보험에 들지 않았으며,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단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영보험회사에 가입한 2억 5000만명의 ‘행운아’들 역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응급 처치, 중증환자의 수술, 약 처방을 받기 전 보험사의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한다. 승인이 나지 않으면 환자들은 미국 내 어느 병원에서도 치료 받을 수 없다.
영화 속 한 어머니는 40도의 열이 펄펄 끓는 18개월 딸을 안고 허겁지겁 근처 병원에 가지만 그녀가 가입한 보험과 연계된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 당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는 몇 시간 뒤 끝내 숨지고 만다.
이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이 환자가 아니라 보험사의 이익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환자의 치료비 청구를 거부한다. 반면에 병원은 의료비 지출을 할 필요도 없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게 된다.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신이 스스로 수술을 하고 있는 애덤 씨
영화에는 미국 환자들의 온갖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진다.
작업하다 중지와 약지 끝이 잘려나간 남자가 있다. 중지 접합에는 6만달러, 약지 접합에는 1만2000달러가 든다. 돈이 부족했던 남자는 중지를 포기하고 약지 접합 수술만 받는다. 21세에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이 있다. 보험료 지급을 청구하자 보험회사의 대답이 가관이다. “젊은 여성은 자궁경부암에 걸릴 수 없다.”
보험사의 심사위원들은 보험 지급 거부율을 높일수록 보너스를 받는다. 보험사들은 수천 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가까스로 보험에 가입했다 해도 수만 가지 구실로 지급을 거부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힐러리 클린턴의 의료보험 체계 개혁은 보험사들의 강력한 로비로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니 극중 대사처럼 ' 안 아프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
<식코>는 사회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쳤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고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에 개봉 당시 외국의 사례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4월 24일 한국경제 칼럼에서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민영 의료보험이 의료보장의 근간이고 공적 보험이 보조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적 보험이 30년 동안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고 다만 재정 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략)
국민 누구나 사각지대 없이 최소한의 건강보장을 받을 권리 확보와 의료산업 선진화를 통한 양질의 서비스 확대 간에는 상충관계가 있다. 전국민 의무가입이라는 틀 안에서 민영보험의 보장공백 보완이라는 현행 틀은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공ㆍ사보험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의료부문에의 경쟁도입,의료기관 당연지정제 완화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의료산업 선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영화 '식코'를 둘러싸고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미국 사례를 우리 현실인양 호도하면서 세력 결집의 동인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다. 상당수 진보단체들은 '식코' 관람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 2008년 4월 24일자 한국경제 칼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보장 확대 추진 분위기 속에서도 불거지는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 앞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으며 미국 사례를 우리 현실인양 호도하면서 세력 결집의 동인으로 악용하려는 시도의 세력을 진보단체임을 겨냥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건강보험 축소와 민영 의료보험 확대가 바로 미국식 의료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낙후된 서비스보다는 당연히 질 높은 서비스가 좋은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미국처럼 1인당 월 100만 원씩 보험료를 내면 당연히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민영 의료보험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질 높은 서비스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식코> 속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처럼 말이다.
<식코>는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이 먼저인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 처음으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어서 진지하게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은 단순히 먼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곧 지금도 어디선가 불합리한 의료제도 때문에 병원의 문턱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름 없는 서민들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