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다시 만나다      

이번 달만해도 <햄릿>을 4번 읽었다. 독서모임 때문에 펭귄클래식판 2번, 이미 소장하고 있었던 민음사판 2번씩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어제 독서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2주 연속 불참이다.  어제 모임이 1기 독서모임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지금도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온갖 사정으로 인한 잦은 불참에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셨던 같은 독서모임 조원분들께 죄송스럽다.   

햄릿이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로 고민했다면 나는 며칠 전부터 모임에 참석할까 말까 고민했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한 교통 경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손에 쥐고 있던 용돈을 아껴썼지만 서울을 왕래하는데 비용이 조금은 부족했다.  목요일에 헌책방에서 만 원을 썼던게 화근이었다.  서울을 왕래하는 기차를 탑승할 때 드는 비용은 그렇다치더라도 12시가 넘는 심야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드는 택시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기본 요금 2200원에 심야 할증까지 붙게 되면 5천원 정도 잡아야한다.   결국 택시비가 발목을 잡았다.  역시 돈이 없으면 뭐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각설하고 다시 <햄릿>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새롭다.  특히 복수를 하자니 겁도 나고, 부조리를 알게 되면서 분노하는 한편으로는 생의 무의미함에 시달리기도 하는 햄릿이라는 사내의 내면 묘사는 흥미진진하다.  

햄릿은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이름만 대면 다 알고 있는 괴테가 창조해낸 베르테르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문학작품 속 주인공이다.  비록 햄릿은 우유부단한 사람, 베르테르는 자살 모방자의 대명사로서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의미로 왜곡된 채 대중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흠이지만.     

  

 

  작년에 썼던 리뷰 속 오류 지적

<햄릿>을 다시 읽다보니 작년에 작성한 리뷰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예전에 썼던 리뷰를 읽게 되면 부끄럽고 민망하다.  꼭 앨범 사진첩에 보관된 벌거벗은 채 찍은 신생아 시절의 모습이 담긴 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하고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지만 대부분 다시 읽어보면 헛점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민망한 내용이 많다.  

작년 여름 이맘때 쯤에 민음사판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햄릿과 그의 어머니 거트루트의 성격에 대한 주관적인 분석와 감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잘못 소개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햄릿 이외에도 그의 어머니인 거르루트에도 흥미로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
거트루트는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아들 햄릿에게
‘곱고 애정어린 말’ (제1막 제2장 121행)을 언급하면서
과거에 선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햄릿을 설득한다.

  

최종철 연세대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판 <햄릿>의 제1막 2장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햄릿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삼촌과 그와 결혼한 햄릿의 어머니 거르루트는 과거처럼 함께 살기를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작년에 쓴 리뷰에서는 1막 2장 121행인 ' 곱고 애정어린 말 ' 을 햄릿을 가리키는 거트루트의 대사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내용이다.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121행의 대사는 거트루트가 아니라 삼촌인 왕의 대사 였던 것이다. 그리고 ' 곱고 애정어린 말 ' 이 아니라 ' 곱고 애정어린 답 ' 이었다.  거트루트의 성격에 대한 감상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다보니 내용상 착오가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거트루트가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아들을 설득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대사 속에서 ' 곱고 애정어린 말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을 글을 쓴 당사자 본인이 직접 지적하는 꼴이 우습지만 나뿐만 아니라 이름 모르는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 새로 작성하게 된 페이퍼에서나마 리뷰 속 내용의 오류를 언급하게 되었다.  만약에 독서모임을 위해서 <햄릿>을 읽지 않았더라면 잘못된 실수를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햄릿은 진짜 미쳐버렸는가?    

 

 

 

 

  

  

  

 

 

<햄릿>은 세계문학사에서 창조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심리적 반응과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도 셰익스피어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햄릿의 심리나 성격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에는 햄릿과 관련된 도서를 다루고 있는 페이퍼가 있다. 페이퍼 내용에 의하면 일본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가와이 쇼이치로<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시그마북스, 2009)라는 책에서 햄릿을 헤라클레스 신화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쇼이치로는 이 책에서 햄릿이 삼촌의 범죄를 알게 된 이후부터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했으나 자신의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헤라클레스로서의 변신을 포기하고 세상의 섭리대로 '인간' 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햄릿>을 읽게 되면 선왕을 위한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힌 덴마크 왕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삼촌의 음모로 인한 선왕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삼촌과 재혼하게 됨으로써 형성하게 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에 맞물리면서 자신의 절친한 벗인 호레이쇼 이외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며 평소에 사랑했던 오필리아에게도 냉정하게 대한다.  이런 반감의 골이 깊어가면 갈수록 햄릿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이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햄릿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지켜보는 클로니어스와 왕비 거트루트 그리고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재상 폴로니어스는 햄릿이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미쳐버렸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에게 닥쳐온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미쳐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삼촌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 한 것뿐이다.   

1막 5장에서 햄릿은 수소문 끝에 드디어 선왕의 유령을 목격한다. 그리고 선왕의 유령을 통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삼촌의 음모도 알게 된다.  햄릿은 자신의 절친한 충신인 호레이쇼에게 선왕과의 만남을 비밀로 유지할 것을 당부하게 되는데 여기서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위해서 이미 미친 척하기로 염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을 손님으로 환영해 주게나.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학문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있다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아까처럼, 결코 발설하지 말게.  그럼 하느님이 자비를 내릴 걸세.  내가 아무리 이상야릇하게 행동해도 - 혹시 내가 이제부터 필요에 따라 어릿광대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  

 - 셰익스피어 <햄릿> 제1막 5장 중 햄릿의 대사, 펭귄클래식코리아, pp 132 -   

 

이 대사 이후로 다음 막에서 햄릿이 본격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조울증에 가까운 증세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 햄릿의 행동에 대해서 호레이쇼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클로디어스, 거트루트, 폴로니어스, 오필리아 등)은 왕자가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햄릿의 '어릿광대 짓' 에 속아넘어간 클로디어스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삼아 햄릿를 제거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파견 일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햄릿은 이미 삼촌의 계략를 이미 알아차린 터.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려는 클로디어스의 조치는 복수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던 햄릿의 심장에 도리어 기름질을 부은 셈이 되었다.  

  

 

  불안에 시달린 햄릿 

햄릿이 충동적인 모습에다가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은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생긴 심리적인 갈등을 하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도 불안감에 시달린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 ’ 으로 분류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현실적 불안은 자신을 위협하게 만드는 상황 속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게 된 클로디어스의 계략을 선왕의 유령으로부터 알게 된 햄릿은 자신도 언젠가는 삼촌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현실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머지 두 가지 불안은 앞에서 언급했던 현실적 불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신경증적 불안은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을 때 올 수 있는 위험을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는 불안이다.  

햄릿이 왕비 거트루트와의 대화 도중에 휘장 뒤에 숨어있는 폴로니어스를 삼촌인줄 알고 충동적인 성격을 억누르지 못한 채 죽이게 되는데 그가 찌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였다. (제3막 2장)     

결국 폴로니어스의 살해는 오필리아는 미쳐버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만다.  햄릿은 자신의 행동이 오필리아를 미쳐버리게 될 줄은 예상은 못했더라도 자신이 삼촌을 죽이게 도면 괜히 죄 없는 어머니까지 미쳐버릴지 않을지 자신의 복수로 인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파국국을 위시하여 신경증적 불안감을 한 번쯤은 가질 법하다.  이로 인해서 햄릿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또 한번 혼자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매사가 나를 고발하며 내 무딘 복수심을 채찍질하는구나!  (중략) 

생각이란 걸 사등분하면 그중 하나만 지혜롭고 나머지 셋은 비겁함에 불과해.  난 왜 ' 이 일을 해야 한다. ' 고 뇌까리고만 있는 거지?  그럴 만한 명분, 의지, 힘, 수단을 다 갖췄으면서도 말이야,  

 - 같은 책, 제4막 4장 중 햄릿의 대사, pp 236 -  
 

 

도덕적 불안은 자신의 욕구나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경험하는 불안이다.  쉽게 말하면, 양심이라는 도덕 기준에 의해 생기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불안이다.
햄릿은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만 삼촌 클로디어스가 어머니와의 결혼이 성립됨으로써 법적으로는 자신의 아버지이며 덴마크의 국왕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패륜아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주위의 신하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햄릿은 삼촌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지만 그와 결혼한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복수가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한 도덕적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어떤 종류이든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으며 불안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현실을 파악하는 자아의 기능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억제하려고 한다.  햄릿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은 햄릿의 자아 기능을 조금씩 갉아먹게 되며 그가 꾸민 선왕을 위한 복수는 햄릿이 고민하면 할수록 지체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햄릿은 판단력이 저하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되고자 했던 '인간' 햄릿

불안의 개념을 통해서 본 햄릿의 심리적인 반응에 대한 설명은 사실 작년에 쓴 리뷰에 이미 기록했던 내용이다.    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감상을 덧붙여 다시 한 번 페이퍼로 정리해봤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분석대로라면 햄릿은 선왕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덴마크의 위대한 왕 아니 헤라클레스가 되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되기에는 햄릿은 야망은 품고 있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부족했다.  하지만 의지가 부족한 햄릿을 어리석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 하느님, 나는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도 스스로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자처할 수 있어. 다만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 같은 책, 제2막 2장 중 햄릿의 대사, pp 155 -

 

햄릿의 저 대사처럼 예상치 못한 비극을 낳게 된 복잡한 상황이 악몽처럼 닥쳐오지 않았다면 햄릿의 복수는 조금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피하고자 했던 악몽은 왕비가 보는 앞에서 폴로니어스를 살해함으로써 끝내 이루어지고 말았다.  폴로니어스가 살해되지 않았더라면 햄릿은 주위 사람들부터 더 이상 미친 척 할 필요도 없었고 자신의 연인 오필리아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폴로니아스와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인해 레어티스마저 자신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이렇듯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햄릿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정신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절친한 충신 호레이쇼가 곁에 있다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표현한대로 햄릿에게는 덴마크, 즉 세상은 외부와 단절된 '감옥' 이었다.    

어쩌면 '감옥' 같은 세상이 덴마크의 '외톨이' 왕자 햄릿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이다. 불안감에 집착한 나머지 헤라클레스가 되고자 했던 햄릿은 삶에 대한 허무주의로 가득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야망을 힘껏 펼치지 못한 채 햄릿은 그렇게 덴마크라는 감옥 안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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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년 전쯤에 박근형이란 연극계에선 알아주는 연출가의
햄릿을 본적이 있어요. 무대를 최대한 간소화해서,
관객들이 배우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어려운 부분은 과감하게 뺏다고 합니다. 근데 뭘 뺐는지 잘 모르겠더만요.
뭐 그만큼 집중도를 높였다는 뜻이겠죠.
나름 몰입도도 좋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언제, 어디선가 계속
공연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해요.
그 할배는 천국에서도 아, 이 놈의 인기...!하며 행복한 한숨을 쉴 것 같습니다.ㅋㅋ

cyrus 2011-07-25 17:00   좋아요 0 | URL
햄릿을 연극으로도 보고 싶어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작픔 중에서
가장 많이 연극으로 상연되는 것이 햄릿과 로미오 & 줄리엣일거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7-2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드 레벤펠드가 쓴 '살인의 해석'이 맞나?
그 책을 보면 햄릿의 명대사를 프로이트와 융의 입장해서 해석한 게 나왔었어요.
New Trolls도 생각나고 말이죠~^^

cyrus 2011-07-25 17:02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 때 그 책 나왔을 때 한 번 읽어봤는데 분량이 두껍고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도중에 읽다 포기했어요.
나무꾼님 말씀 듣고보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New Trolls를 몰라서 방금 검색해보니, 가수였군요 ^^;;

2011-07-25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