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수강신청의 중요성

오늘부터 내일 모레까지 2학기 수강신청 기간이다.  수강신청 기간만 되면 수많은 대학생들은 컴퓨터 앞에 모여 앉아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하게 된다.  최근에 간혹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대학교 이름이 랭크되어 있다면 그 날은 그 대학교의 수강 신청 기간이라고 보시면 된다.    

신청 방법은 간단하다.  각 대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침 9시부터 수강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본인의 학번과 비밀번호를 통해 수강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골라서 마우스로 클릭 몇 번 하면 끝이다.   신청은 했는데 마음이 바뀌면 신청했던 강의를 취소하고 다른 강의를 골라서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강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단 3일. (대학들마다 기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3일이며 짧게 2일도 있음)    하룻동안 강의를 신청하고 다시 취소할 수 있는 주어지는 시간은 11시간, 신청 기간인 3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총 33시간.   따지고 보면 학생이 자신이 만족할만한 시간표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하루 반 나절인 셈이다.  (* 여기서 언급되는 수치들은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기준으로 하고 있음) 

수강 신청 기간은 그 학교 대학생들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기도 하다.  매년마다 많은 수강생들이 몰리는 특정 인기 과목(대학교 내에서 말하는 인기 과목은 대체로 공부하기가 편하면서도 학점을 후하게 주는 과목을 말한다)을 수강하려면 아침부터 미리 컴퓨터에 앉아서 로그인하는 동시에 바로 신청해야 한다.  고작 인기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컴퓨터 모니터에 대기하고 있지만 정말 운 좋으면 수강 신청에 성공할 수 있다.  그야말로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다.    1분 1초라도 늦어서는 안 된다.  수강 신청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어 그 인기 과목은 강의 수용 인원 정원 다 차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어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로 '광클' 해야 한다.  

수강 신청을 어떻게 편성하느냐에 따라서 그 학기의 성적 그리고 장학금 획득의 여부가 달라진다.   수강 신청하는 과정과 방법은 중, 고등학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을 수강하는 2, 3, 4학년이 되어서도 수강 신청을 가볍게 본다거나 또는 어떤 강의를 신청해야할지 모르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올해 2학년 1학기를 복학을 하면서 주변 동기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전역한 대한남아도 수강 신청 기간만 되면 쩔쩔맨다.  특히 입대 전에 공부와 담을 쌓았던 복학생들에게는.  복학하게 되면 캠퍼스에는 이들에게 대학교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학과 선배들은 졸업하고 다 없다.   

학칙 규정상에는 수강 신청할 때는 본인이 속한 학과의 지도교수를 통해서 수강 신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한 학년에 4~50명 넘는 학생들을 일일히 도와줄 수 없다.  규정 속 내용일뿐 현실상 학생 본인 스스로 신청해야 한다.  더욱이 대학생은 중, 고등학생과는 다르게 자신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탐색할 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수강 신청은 간단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대학생활의 결과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Scene #2  수강신청의 어려움  

나 같은 경우에는 수강신청 기간 전에 미리 관심 있는 강의에 대한 수업계획서를 꼭 읽어본다.  수업계획서는 학생들이 수강신청하는데 판단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래서 수강신청 기간 전에 미리 학교 내 종합시스템을 통해서 모든 과목의 교수님들이 수업계획서들이 게시하게 되는데 꼭 모든 교수님들이 게시하는 것이 아니다.   몇 몇 과목은 아예 게시를 안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과목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공지되지 않게 된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수업계획서를 꼼꼼이 확인한 후, 대략 신청하기를 원하는 과목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시간표를 직접 짜본다.   혹여나 본인이 신청한 과목들 중에는 수업 시간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좀 더 편하게 수강 신청하기 위해서는 모의 시간표를 한 번 만들어봐야 한다.    모의 시간표를 만듦으로서 유용한 점은 나중에 수강 신청하고 난 뒤에 겪게 될 수 있는 시행착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굳이 수차례 로그인해서 다시 취소해야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해서 수강신청이 본인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수강신청하면서 경험하게 되었는데 본인이 신청했던 과목의 수강 인원이 미달일 경우에는 신속하게 취소한다거나 대신 다른 과목으로 신청해야 한다.    전공과목 같은 경우 10명 미만의 인원일 경우에는 폐강된다.     

지금 내가 신청하고자 했던 한 과목이 현재 수강 인원이 4명이라... -_-;;    내일 모레까지 쭉 지켜봐야하겠지만,,,   아무래도 폐강될 거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과목을 신청하기로 하였다.  

이외에도 수강 신청기간 중에도 간혹 수업 시간 또는 담당교수가 바뀔 수 있으니 항상 학교 홈페이지의 학사공지 관련 게시판을 꼭 확인해야 한다.

 

 

  Scene #3   2학기 때 공부하고 싶은 과목

수강신청에 대한 어려움을 풀어 쓰다보니 그만 수강신청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엉뚱한 글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가끔 이런 잡담을 쓰는게 편하긴 하다. ^^;;  

 

 

 

 

 

 

 

 

1학기 때는 사회학과 법학 관련 과목을 배웠다면 2학기에는 정치학을 공부해보려고 한다.  정치학 과목은 행정학과 전공과목 중의 하나인데 4학년 학생이 신청하는 과목이다.  4학년 전공과목이라고 해서 2학년이 듣지 말라는 법은 없다.   본인이 속한 학년보다 높은 과목이라해서 겁 먹을 필요도 없고 내가 정말로 듣고 싶은 마음만 강하다면 공부하는게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1학기 때 3학년 전공과목을 신청했는데 2학년 전공이랑 별반 다를게 없었다.  이번에도 3학년 전공과목 한 과목도 신청하려고 한다.  

 

2학기 때 듣게 될 과목으로는 <한국정부론><관료제론><인사행정론><행정통제와 개혁><정치학>이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총 18학점을 이수해야하는데 나머지 한 과목은 미정이다.  <정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2학년 전공과목이다.   

2학기 과목 중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과목은 <정치학><한국정부론><관료제론>이다. 

아무래도 행정학 전공이다보니 <정치학> 과목은 정치학과 본연의 내용 그래도 배울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치학에 대한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내용을 숙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정부론>은 딱히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수업계획서에 게시된 수강내용으로 봐서는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공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지금의 MB 정부에 대해서도 배운다.   <관료제론>은 제목만 봐서는 지루하면서도 별 중요하지 않은 과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도 공무원 또는 정계, 경영 조직의 절반이 관료제 사회임을 감안하면 <관료제론>은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과목이다.  (특히 나에게는...) 

  

 

 

 

 

 

 

 

 

 

  

 

 

 

 

  

 

어제, 어느 서재 이웃분님이 댓글로 행정학과 학생인 나에게 찰스 T. 굿셀의 <공무원을 위한 변론>을 추천해주셨다.    1학기 때 잠깐 강의 시간에 배웠는데 굿셀은 그 전에 학계에서 줄기자차게 주장해온 관료제의 비판에 반박한 행정학자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책의 원제는 실제로 The Case for Bureaucracy, 즉 '관료제를 위한 변론' 인 것이다.   

관료제의 패해에 대해서 비판적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인데 이번 기회에 굿셀의 관료제 옹호론과 비교해서 개인적으로 공부 겸 정리하고 싶다.  이외에도 관료제를 연구한 사람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의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있다.  

강의 내용과 부합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미리 이런 책을 읽어봄으로써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하는데 도움이 될거 같다.   훗날 과제하는데 작은 도움만 된다면 독서 행위의 만족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에 잡문을 쓴 김에 마지막으로 목표가 있다면 이번 학기에는 꼭 4.20을 넘는 것이다.  예전에는 학점에 얽매이지 말라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었지만,,,  역시 별 것도 아닌 수치가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학기 때 열심히 했는데도 4.20에 못 미친 학점을 받았더니, 혼자서 속으로 적잖이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나폴레온 힐은 자신의 목표를 종이에 기록해서 항상 지갑에 보관하여 하루종일 눈으로 확인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이 글이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작지만 큰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제가 정치학이라는 과목을 처음 배워서 아직 생소한데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도움이 되는 자료나 도서를 어떤게 있는지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치학이 아니더라도 한국 정부와 관련된 유용한 자료도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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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1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2학기 준비를 하시는군요~
저도 지난 주에 가열차게 강의 계획서 입력을 했었는데...
과연 올 해 제 강의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들어올지..ㅎㅎ

제게는 생소한 분야예요. 정치학. 물론 행정학두요..
꼭 4.2 넘으시기 바랄께요. 넘으실 것 같아요. 충분히!!

cyrus 2011-08-18 23:40   좋아요 0 | URL
꼭 현맘님 강의에 많은 학생들이 신청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현맘님이 담당하시는 강의가 어떤건지 궁금하네요 ^^;;

저는 아직도 행정학이라는 전공이 생소하게만 느껴져요,
이 과목을 정작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가끔은 고민할 때도 있답니다. ㅎㅎ;;

2011-08-19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완전 생소한 분야네요. 거의 접할 가능성이 없는 분야구요.
으아.... 시루스님이 새삼 대단해보이신다눈. ^^

이제 방학 얼마 안 남았어요. 2학기는 정신없을건데, 아흑, 슬퍼랑.

cyrus 2011-08-18 23:43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수강 신청하셨겠네요. 이제 슬슬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시는 마고님이 더 대단해요 ㅎㅎ
마고님 서재에 들리게 된 이후부터
심리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saint236 2011-08-1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소신을 가지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공부는 빡쎄게, 학점은 짜게 주시는 분 수업을 들었는데(사실 그 분 밑에서 대학원 논문을 쓰고 싶었으나...) 10명이 채 안되는 수업인지라(수강신청생은 10명인데 중간에 떨어져 나가서 결석을...) 의무적으로 한 학기에 2번의 발제를 해야했지요. 힘들기는 했지만 대학 때 세미나 형식의 수업은 그 분의 수업 몇 개가 유일했습니다. 학점에 목을 매기보다는 듣고 싶은 과목을 듣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은 진리더군요.

cyrus 2011-08-18 23:4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처음에는 편한 교수님 수업 위주로 편성하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1학기 때 성적이 예상보다 잘 나와서 2학기 때는 학점을 짜게
주시는 교수님 수업을 듣고 싶더군요. 오히려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

이번에 신청하는 수업 중에 절반은 토론 수업에다가 교수님 몇 분은
정말 학점 짜게 주기로 악명 높은 분들이에요.
세인트님 말씀처럼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확실히 강의 내용을 배울 수 있는 동시에 학점도 잘 나올 수 있을거라
기대를 해봅니다. ^^

아이리시스 2011-08-1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 학기 빼고는 항상 듣고픈 과목을 들었지만 학점이 나쁘면 요즘은 후회도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학점을 이유로 싫은 과목보다 쉬운 과목을 억지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정치학 재밌을 것 같아요. ^^

cyrus 2011-08-18 23:49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말씀대로 재미있는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수업이란 제가 평소에 알고 싶었고
관심 있는 내용을 배우는 수업이에요. 아무래도 정치학 과목은
아직 저에게는 생소해서 처음에는 좀 지루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좋아지게 되겠죠,,? ^^;;

pjy 2011-08-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가 생기는 분야에 도전하는것도 좋았지만 교수님의 지도방법이나 성향과도 어느 정도는 맞아야 더 공부가 재밌어지는 건 사실입니다.재미가 있어야 학점도 잘받게 되던데요^^;
뭐, 중학교때 영어선생님이 장국영판박이라서 그때는 영어를 잘했다던가~ 고등학교때 물리선생님이 멋져서 국영수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던가 이런 과거는 이제는 추억인거죠ㅋㅋ 대학때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이 교양으로 미학개론을 들었는데 전 제가 그렇게 칸트에 심취할줄 몰랐습니다..안타깝게 그때뿐이었지만요ㅋㅋ

cyrus 2011-08-18 23: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1학기 때 그런 경우가 있었거든요, 분명 강의 내용은
흥미로웠는데 그저 주입식으로 하는 교수님 지도 스타일 때문에
학생들에게 역효과를 주게 되더라고요.

pjy님 말씀처럼 정말 중고딩 때, 저 같은 남학생 경우에는
교과서 대신에 재미난 사회 생활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이쁘고 젊은 여선생님이라면 환영했었는데,, 갑자기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네요. ^^

stella.K 2011-08-1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려운 공부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이드니 정말 못하겠더군요.
벌써 수강신청 기간이 됐군요.
2,3일 전만해도 습기 때문에 땀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왠지 한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는 모처럼 이불을 덥고 잤으니.ㅋ
2학기도 열심히 공부하세요.^^

cyrus 2011-08-18 23:54   좋아요 0 | URL
대구는 열대야가 있어서 저 같은 경우에는 1층 집인데도 불구하고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잔답니다. 그래서 간혹 추울 때도 있는데
대부분 날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정도로 더워요 ^^;;


비로그인 2011-08-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 저는 며칠 전에 수강신청날이었는데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ㅎㅎ 시간표도 제멋대로, 듣고 싶은 과목도 제멋대로 했는데 과연 성적은 어떨지... 기대는 안 해요 ( '')~ 저는 물리학과 사회학과 국문학을 동시에 배우게 되어서 아주 흥미진진하답니다! cyrus님도 관심 있는 과목 신청 모두 성공하시고 즐겁게 공부하시길 ^^

cyrus 2011-08-18 23: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수다쟁이님, 닉네임이 역설적이네요 ^^

인문계열과 이과계열 동시에 공부하시는군요, 대단하세요.
서로 다른 계열의 과목을 동시에 공부하는게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수다쟁이님께서 흥미 있어하시는 과목이라니
수다쟁이님도 열심히 노력하시면 좋은 결과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

2011-08-19 0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08-1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학 수업을 들으시는 군요!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모리스 뒤베르제의 <정치란 무엇인가>를 추천드립니다. 일독해 보세요~

cyrus 2011-08-19 23:39   좋아요 0 | URL
사실 2학기 수업 중에서 제일 기대가 되면서도 염려되는 과목입니다.
정치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래서 교재로만 공부하는 것보다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심화적으로
공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도 읽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천하신 책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독자를 향한 번역자의 충고(?) 

 

 

 

마야꼬프스끼의 시는 확실히 차 한 잔 마시듯 읽을 수 있는 시가 아니다. 

그의 시집은 마음이 울적할 때, 혹은 잠 안 오는 밤에 뒤적거려보는 그런 책은 아니다.  

 - <나는 사랑한다> 머리말 [마야꼬프스끼의 시를 옮기며]  석영중, pp 6~7 -

   

책의 서문을 읽어가면서 이 문구를 보자마자 괜히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독자에게 향하는 번역자의 충고처럼 느껴졌다.      

 

 

 

 

 

 

 

   

 

 

마야꼬프스끼라면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구 소련에 활동했던 시인인데 1993년에 열린책들에서 세 권으로 그의 전집이 출간되기도 했었는데 오늘날에는 선집 형태로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  

으레 시라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읽혀지는 고상함을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또는 마음이 울적할 때나 불면증에 시달릴 때 이를 달래주기 위해서 시를 읽기도 한다.  그런데 차 한 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읽을 시가 아니라니.   마야꼬프스끼가 쓴 시의 내용이 어떻길래 그런 것일까?

  

   

  젊은 시인의 죽음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1893~1930)

 

   

 

 

 

 

  

   

 

마야꼬프스끼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게 되면 그 당시 소련이 소비에트 체제 전환으로 물꼬를 트고 있었던 시기다.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을 때, 1917년에 레닌과 볼셰비키 당이 주도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다.  수많은 러시아의 지신인들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뛰어들었듯이 마야꼬프스끼도 소련에 밀어닥친 사회주의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릴리 브릭과 마야꼬프스끼

 

한창 피 끊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는 젊은이였던 마야꼬프스끼는 심장 속에 품고 있었던 혁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무기 대신에 펜으로 표출한다.  실제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듯이 불같고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당시 소련 문학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보수적 소비에트 문학가들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불행한 연애도 마야꼬프스끼를 더욱 더 고립하게 만들었다.  릴리 브릭과 그녀의 남편 오십 브릭과의 삼각관계적 동거는 연애 스캔들 사상 유명한 일이다.   결국, 현실과 사랑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마야꼬프스끼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고 만다.   젊은 시인에게는 실패한 연애 그리고 혁명의 현실이라는 삶의 무게감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한창 사회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고 있는 소련 초창기 때에는 마야꼬프스끼의 선동시가 많이 읽혀졌을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 체제를 우의적으로 비판했던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에 보면 시를 쓰는 돼지 미니무스가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미니무스는 동물농장의 독재자 나폴레옹(스탈린을 상징)을 칭송하는 시를 쓰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를 마야꼬프스끼로 상징하고 있는 쪽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민음사, 도정일 '동물농장' 의 해설 편)

그러나 마야꼬프스끼는 문학을 통해서 소비에트 체제를 맹목적으로 찬양했던 것만은 아니다. 

문학의 성숙기에 이르게 될수록 소련의 행보는 본인이 원했던 세상이 아니었다.  레닌 사후, 세월이 지날수록 혁명으로서 순수성의 의미가 상실되어가는 소련 정부의 태도에 시인은 실망했던 것이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정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소련이 무너진 오늘날 마야꼬프스끼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엇갈려진다. 소비에트 시대의 두 시인 말고도 러시아 문학사에 언급이 되는 유명한 시인에는 뿌쉬낀과 네끄라소프, 레르몬또프가 있다. 이 3인방들과 함께 견주어 보면 마야꼬프스끼의 인지도와 문학적 평가에서 제일 뒤쳐진다.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러시아 사람들도 선동적인 정서가 강렬한 마야꼬프스끼의 시를 즐겨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독자들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한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조직한 일제 강점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의 문학을 즐겨 읽지 않듯이 말이다.  러시아 인들이 시를 읽는다면 차라리 차 한 잔 마시면 여유롭게 뿌쉬낀을 읽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야꼬프스끼가 자살한 지 62년이 지난 뒤, 그가 사랑하고 칭송했던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무너짐과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평가도 이제 한낱 돌덩어리에 불과한 레닌 동상의 파편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마야꼬프스끼가 꿈꿔왔던 이상적 사회주의 세계는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함께 사라졌지만 활자로만 남아있는 시집은 지금도 생전에 그가 혐오했던 자본주의 시대의 도서관 서가에 자리 잡고 있으니 그의 기구한 인생만큼이나 문학의 운명도 기구하기만 하다.  

     

 

  강렬한 파도와 같았던 그의 삶 그리고 시


마야꼬프스끼 전집 1권에는 초창기 때 쓰여진 장시 6편, 단시 38편, 가족들에게 쓴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단시라고 명한다고해서 단순히 내용이 짧은 시가 아니다. 단시치고는 내용이 조금 길다. 편지는 대체로 가족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그나마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그러나 마야꼬프스끼의 시가 생소한 독자들에게는 읽기가 무척 불편할 수 있겠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였으며 전투적인 시는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마야꼬프스끼의 시에는 혁명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소련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간혹 쇼비니즘적인 경향도 보이게 된다. [우리는 믿지 않는다!]라는 시에는 노골적으로 레닌을 찬양한다. [브룩클린 다리] [브로드웨이] [마천루 해부도]라는 시에서는 당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1권에서 소개되는 마야꼬프스끼의 초창기 시들은 1922년 발표 기준으로 표현 방식이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1922년 이전에 마야꼬프스끼는 당시에 유행하던 미래주의에 심취하고 있었다.   

 

 

움베르토 보초니 <창기병들의 돌진> 1915년 

 

미래주의의 모토는 과거의 전통을 파괴하고 역동성의 미(美)를 강조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마야의 초창기 시에서는 기존 문학에서 볼 수 없는 난해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정형화된 행과 열을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아직까지는 문학의 전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925년에 발표한 [우리는 믿지 않는다!]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해지고 보다 파격적인 형식의 시작(詩作)을 시도하고 있다.     

 

 

                             비처럼 퍼붓는다. 

그리고 파도는  

                             전해상의 중앙 집행 위원회에게   

승리의 순간까지  

                             폭풍의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노라.    

(항해)한다.

이제 승리의 순간이 찾아왔다ㅡ 

                                          물방울 소비에트 전권(全權)이 

(적도)를 에워싼다.

마지막 파도의 소규모 집회가

무언가에 관해
                             고상한 어조로  

                                                           토론을 벌인다. 

이제

                             깨끗이 찢겨진 대양이

                                                           미소를 지었고  

당분간  

                             고요와 평화 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난관 너머를 바라본다.

                                         동지들이여, 전진하라!  

 

-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대서양> -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마야꼬프스끼의 시 전문 내용이다.  노어문학 전공이 아니다보니 실제로 원문에도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우리가 많이 봐온 시의 형식이 아닌 들쭉날쭉한 형태이다.   

하나의 연에는 문장은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였으며 연과 연 사이의 행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애매모호한 상징주의적 표현을 배제하는 대신에 작가의 주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감정 진술의 노출이 잦아지고, 영탄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강렬한 시의 내용만큼이나 표현 형식도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시를 통해서 거대한 파도와 같은 마야꼬프스끼의 강인한 성격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시는 뿌쉬낀과 비교하면 문학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표현 형식의 시도에 대한 평가는 마땅히 받아야한다. 마야꼬프스끼 본인의 초창기 시와 그가 활동하던 동시대의 소비에트 문학이 사회주의적 구호 나열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과 비교해본다면 1922년 이후에 발표된 마야의 시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고무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기존 문학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행간의 파괴법은 정치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도록 하고 있다.

   

 

  강철 언어의 연금술사
 

그의 시구에는 유난히 ‘철’ 과 연관된 단어가 많이 발견된다. 마야꼬프스끼는 강철의 파도와 같은 자신의 시를 통해서 앞으로 펼쳐질 사회주의 사회의 무한한 영화를 노래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도 ‘힘겹게 시간의 암석을 뚫고 묵직하게, 거칠게,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  이라고 자신감에 가득 찬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역사는 원대한 포부가 담긴 젊은 시인의 기대감을 저버렸으며 그의 시 역시 급변하는 시간의 암석을 뚫지 못했다. 

고대 연금술사들은 구리, 납과 같은 비금속으로 금과 같은 귀금속과 영원히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방식은 과학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마야꼬프스끼가 꿈꿔왔던 사회주의 세계도 역사상 발전할 수 없는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하게 마야의 문학적 평가에 걸맞은 별칭을 붙여준다면 영원히 번영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었던 ‘강철 언어의 연금술사’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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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1-08-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읽고 '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야꼬프스키는 '철'인가 보네요.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1-08-15 16: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dreamout님 ^^

마아꼬프스끼의 시가 선동적인 어조에다가 시를 읽을 때마다 강렬한
여운이 있어서 강철 같은 분위기가 났었어요. 저는 프리모 레비의 책은
아직 안 읽어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1-08-2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전에 종종 끄적이던
블로그 제목이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였어요.
시루스님 서재에서 마야꼬프스끼를 만나서 아주 반갑네요!
오늘은 집에가서 그의 시를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cyrus 2011-08-25 19:49   좋아요 0 | URL
마야꼬프스끼의 시가 전투적이면서도 읽으면 읽으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생긴다고 해야될까요..? ^^;;
시도 좋지만 생전에 그가 가족에 보낸 편지글도 좋았어요 ^^
 

 

 

 

  

 

 

 

 

 

 

 

 

 

  고백

'리뷰' 의 정의가 무엇일까?   지금도 리뷰 또는 서평의 정의와 그 기준에 대해서 담론이 오고가고 있지만 확실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원래 리뷰라고 하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할 수 있게끔 정확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항상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책의 줄거리만 간단하게 요약약해서 소개만 하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로써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 또는 생각 역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작성하고 있는 리뷰나 페이퍼는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형식은 없지만,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 감상문이며 감상보다는 줄거리 중심으로 쓰게 된다면 그저 책의 내용만 소개하는 기록문일 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봄으로써 오히려 책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저 독서 경험의 흔적을 오랫동안 잊지 않기 위한 '독서 앨범' 이다.   

문득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감상이 언급되는 부분을 기록하는데 적잖이 고심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 때문에 오히려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더러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를 초월하면서 모든 독자들이 공통된 공감을 주는 책이 있다고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재미있다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100% 재미있게 느끼는 독자는 없다. 책 읽는 기호와 취향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입소문과 홍보에 혹해 책을 골랐는데 막상 읽어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보통이거나 또 광고나 서평자가 소개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스럽게 된다.  

그래서 항상 책을 소개하는 리뷰나 페이퍼를 소개하게 되면 왠만하면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나 내용은 좋으나 아무도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잊혀져가고 있는 저주받은(?) 책의 경우에는 되도록 신중하게 쓰려고 하는 편이다.  

   

 

  반전의 독서    

 

 

 

어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리뷰를 작성하면서 <사물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소비사회의 속박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뷰에 기록된 주관적인 감상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뒤에 소개된 작품해설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적인 풍요로움 가운데 그랑 부르주아가 누리던 사치와 호사를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되자 마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기만 한 사물들에 대한 갈증 또는 지독한 시기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해서 이 작품을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만 해석한다면 페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페렉 또한 자신의 작품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좌파 성향의 글쓰기로 단정 짓는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 작품해설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다] 김명숙, <사물들> 펭귄클래식코리아 pp143 -

   

어제 글을 작성하면서 작품해설의 저 구절이 자꾸만 마음에 밝혀서 결론 부분에는 결국 페렉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에 대한 욕망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어설프게 마무리지었다.      사실 <사물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의 모습을 통해서 페렉이 소비의 욕망으로 가득한 1960년대 프랑스 자본주의 사회 속 절망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제대로 뒷통수 맞아버렸다.   페렉이 원하지 않는 소설에 대한 반응이라니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게 바로 반전의 독서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페렉의 문학적 유희에 당한 것인가? 

 

 

  창조적 글쓰기의 윤리적 의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이 작가가 원했던 의도와는 완전 정반대로거나 심하게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작가에 대한 무례한 결례일 수 있겠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과 같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창조적인 작가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에 빗나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젋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해석에 대해서 아주 멋드러지게 정의내리고 있다.    

 

창조적 작가는 자기 작품의 합리적 독자가 되어 억지스러운 해석에 반박할 권리는 갖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이미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중에서, pp 16, <젊은 소설가의 고백> 움베르토 에코, 레드북스 -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쓴 소설들에 대해서 독자들의 해석에 반론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의도했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윤리적 의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과학적 글쓰기가 아닌 이상 시나 소설과 같은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텍스트 해석을 위한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같은 책, pp 17) 

     

 

  움베르토 에코의 윙크

그리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황당했던 점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은 예민한 독자라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 떠올렸을 거라고 설명한 부분이었다.  작년에 <감정교육>을 읽은 나로써는 (페렉이 실제로 이를 차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읽은지 꽤 오래 된 것도 있고 아니면 내가 교모하게 숨긴 페렉의 문학적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에코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소설 속에 숨겨진 암시를 '윙크'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처녀작이면서도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중코드 기법' 을 예로 들면서 이를 알아차린 독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자들이 <장미의 이름>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방대한 중세의 지식에 비롯된 난해함에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의 결론부에서는 문학은 독자들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도록 도발하고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pp 50)    

 

지금도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마르크스의 격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60년대의 소비 사회 비판에 대한 좌파적 시선의 알레고리인 것일까?   시간만 된다면 또 한 번 읽어봐야겠다.  독자들에게 도발하는 문학적 유희라고 할 수 있는 페렉의 윙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P.S>

 

 

  

 

 

 

 

 

<젊은 소설가의 고백>에 네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 [궁극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책에서는 글에 대한 정확한 출처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 국내에 출간되었던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2010) 출간 전에 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니면 출간 후 책의 내용에 간력하게 요약한 에세이일 수도 있다, 인용문과 설명하는 내용이 중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목록이 소개된 <궁극의 리스트>를 읽기 전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 속 [궁극의 리스트]를 먼저 읽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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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좀 잘 써봤으면 좋겠어요.
리뷰는 아니 시루스님 말하는 독후감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게 리뷰가 아니고 독후감이라면 진짜 잘 쓴 리뷰는 뭔지
그 뒤태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ㅜ
에코의 책은 넘 어려워 늘 열외죠.

cyrus 2011-08-11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딱히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명확한 것은 없지만 저는 항상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해요, 간단하게 초등학교 때 정기적으로
책 읽고 독서기록장 노트에 감상문 쓰는 것처럼요. 어떤 책은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남는게 없다거나 도저히 쓸 거 없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에요.

<고백>은 에세이 형식이라 어렵지 않아요. 에코 본인의 소설에 대한
창작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소설에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

2011-08-11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2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저는 책을 발간했다는 자체로, 작가의 손을 떠난게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도 있을테지만,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 한 무의식적 부분 역시 반영되었을테고.. 그것을 작가 자신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건 저희가 쓰는 페이퍼도 마찬가지일테죠. 물론,, 지나친 곡해는 곤란하고 글에 대한 해석 역시 예의를 잊어버리면 곤란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두어야겠지만요.

그나저나, 제 글은 리뷰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제 푸념? 아하하.

cyrus 2011-08-16 22:12   좋아요 0 | URL
와~~ 이번 마고님 댓글은 저를 공감하게 만드네요 ^^
작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 부분이라,, 그 점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어요.

위의 이웃분들 댓글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글 (알라딘 서재에서 쓰고 있는 글까지 포함)들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거 같아요. ^^
 

 

 

 

  

 

 냄비받침 No! 베개대용 No!  1000페이지 클럽 이벤트 
 

   

 

  '언터쳐블' 이라 불리우는 책들

주말에 알라딘 이벤트 게시판을 확인하다가 재미있는 내용의 구매 이벤트를 발견했다.  정해진 가격 이상에 구입하게 되면 적립금을 주는 일반적인 구매 이벤트였지만 이벤트 대상도서들이 평범하지가 않다.   

책 한 권 분량이 적어야 700페이지 정도에서 많으면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책들이다.    

야구에서 경기 운영 능력이 특출한 선수에게 붙이는 수식어 중에 '언터처블'(Untouchable)' 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타율 성적이 좋은 타자라도 시속 150Km에 가까운 투구를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투수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빠른 공에 안타라도 쳐내지 못하는, 공 끝 하나라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해서 붙여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언터쳐블형 투수라면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오승환 정도면 되겠다. 최소 경기 30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겼고 돌이라고 부를 정도로 묵직하면서 유일하게 빠른 직구를 홈런으로 쳐낼 수 있는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거포 이대호뿐이니 과히 언터쳐블이라고 불릴만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에도 '언터처블' 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완독은커녕 몇 페이지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큰 돈 들여서 구입해도 두꺼운 분량의 책들은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표지도 펼쳐내지 못한 채 서가에 그대로 방치되기도 한다.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단지 두껍게 보이는 시각적인 인식에다가 어마어마한 쪽수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발휘하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가격은 일반적인 책 한 권 가격보다 2배 정도 비싸다보니 구입하는 독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다.  

 

사실 나도 500페이지 넘는 분량의 책을 못 읽는다.  아니, 방대한 분량에 겁먹어 안 읽는다고하는게 낫겠다.   정말로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내용이 아닌 이상 2권 이상 시리즈로 구성된 책들 역시 끝까지 못 읽는 편이다.   독서 습관이 한꺼번에 세 네 권 정도 같이 읽어야 속이 편하는 독특한 성미라서 한 번 읽은 시리즈나 두꺼운 책은 중도에 읽다가 포기해서 끝장을 보지 못한다.   

 

  

  군인들에게 좀 인기가 있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나마 일주일 잡아서 끝장까지 본 책이라면 모두 5권으로 이루어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6권으로 이루어진 <신> 뿐이다.   <개미>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게 되었는데 10분 밖에 안 되는 학교 쉬는 시간에도 <개미>를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에 <개미>를 다시 읽으라면 또 읽을 수 있다.     <신>은 군병원에서 입원했던 시절에 읽어서 그런지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평소에 사회에서는 책을 안 읽던 사람도 군인이 되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인기 많은 작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게 만드는 '맥심' , 'GQ' 같은 시각적으로 즐겁게 만드는 잡지를 제외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책을 집으면 지나가는 군인들은 몇 마디 건넨다.  자신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었다는 등 이 소설의 내용이 재미있다는 등 생각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관심이 많은(?) 군인들이 꽤 있었다.   비록 개인적인 체험을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국내에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보유한 외국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독서와는 거리가 멀듯한 군인들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사족: 참고로 군인들은 장르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주로 판타지를 많이 읽고 내 주변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외에도 군인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장르소설 작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과학 독후감 덕분에 읽게 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내가 읽었던 책들, 그러니까 완독한 책들 하에 정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쪽수의 책이었지만 끝까지 읽은 유일한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뿐이다.   

<코스모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유명한 과학의 고전이라서 인문계열에 속한 독자들도 많이 읽는 과학 도서일 것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느 <코스모스>는 보급판인데 맨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까지 포함하면 총 719페이지다.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코스모스>가 화려한 올컬러 도판으로 이루어진 특별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특별판도 보급판과 판매되고 있는 중인데 정가가 45000원에 특별판답게 책의 크기가 대형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라도 비싼 가격에 편안하게 읽기에는 힘든 무거운 판형이라면 독자들이 외면하기에 충분하다.  특별판이 나온지 2년 뒤에 줄어든 가격에 편안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형으로 보급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보급판이라고해도 600페이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압박은 여전하며 보급판 속의 도판이 흑백인데다가 특별판에서 볼 수 있는 몇 몇 도판이 삭제된 게 아쉽다.   

읽기 어려운 특별판이라고 해도 나에게 특별판은 화려한 올컬러 화보 때문에 그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책으로 교내 과학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다.  나름 유명한 과학 고전인 것도 있었고 그 때 마침 과학 독후감 대회가 있어서 정말 밤을 새면서까지 대형 특별판을 읽고 열심히 10장 분량의 독후감 한 편을 써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최우수상은커녕 입선에도 뽑히지 못하고 마는 비극을 맛봐야했다. 그래서 지금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만큼은 왠만한 일반 독자들도 잘 읽지 않는 과학 분야 도서지만 지금까지 읽거나 내 손에 거쳐간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는 책들 중의 하나다. 유년시절의 독서 경험 덕분에 보급판을 구입해서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완독을 하지 못한, 지금도 조금씩 읽고 있는 '현재진행형' 독서의 책들     

   

 

 

 

 

 

 

   

 

최근에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책장에 방치되었던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7월에 있었던 리뷰 대회 때문에 읽게 된 것이지만 만약에 김태권 도서 리뷰 대회가 없었더라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만화로 구성되어서 방대한 분량의 <사기열전> 속 내용을 재미있게 읽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그래도 사마천 특유의 역사적인 관점이 묻어있는 원전 <사기열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름 입체적인 독서를 한답시고 김태권의 만화와 <사기열전>을 동시에 번갈아 읽어봤는데 사실은 <열전>만 읽기에는 충분치가 않다.   

사기는 <열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대 제왕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본기>와 광활한 중국 대륙의 각각 지방을 다스리던 제후들의 기록을 담아낸 <세가>로 구성되어 있어서 간혹 <열전>에 있는 내용이 <본기>에도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본기><세가>까지 완벽하게 구비한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각 한 권의 방대한 분량 무시 못한다.   

지금 두 권으로 된 <열전>만 소장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 <본기>와 <세가>를 구입하고 싶지만 절제 중이다.    일단 <열전>을 절반 정도, 아니 1권이라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우선인듯싶다. 

 

 

  

 

 

 

 

 

 

 

  

평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일명 줄여서 '상절지백' 이라고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만의 잡다한 지식들이 총망라한 책을 더 좋아한다.   제목만으로는 백과사전일뿐이지 실상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백과사전답게 너무 진지하지도 않으면서도 굳이 살아가는데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평상시 우리가 지나치고 있거나 무관심하고 있었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백과사전의 큰 장점인거 같다.   <상절지백>에 있던 내용에다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한 <상상력 사전>은 자투리 시간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항목을 틈틈이 읽기에 좋다.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철칙들 중에는 정말 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책은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질리게 되고 미각의 쾌락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되듯이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고 다 읽다보면 정작 찾아오는 것은 알 수 없는 허무감이 오며 읽고 난 뒤에 머릿속에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한 채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디트리히의 슈바니츠의 <교양>은 서양의 인문, 교양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읽으면 좋은 책인것은 분명하다.  이 책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출간되었는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중학교 2학년, 이제 막 인문, 교양이라는 것에 눈 뜨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읽다가 도중에 잠든 기억만 날 뿐이다.   그 당시에는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중학교 2학년, 15세가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자주 들리는 헌책방에서 완전 반값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 책은 나에게 '교양' 이라는 멋진 이름을 단 수면제다.   <상상려 사전>은 내용이 재미있어서 조금씩 읽고 있지만 반대로 <교양>은 내용 자체가 진지하고 쉽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서 천천히 읽는 편이다.  

 

 

 

 

 

 

 

  

  

 

 

이 세 권 다 내가 순전히 읽고 싶다는 마음에 구입한 책이면서도 과연 죽을 때까지 완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책들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인명사전까지 포함하면 총 1330페이지다.   몽테뉴는 죽을 때까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수상록>를 남겼는데 분량도 10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글 속에 묻어 있는 몽테뉴의 사유 방식 역시 분량 못지 않게 깊으면서도 방대한 범위를 자랑한다.   

죽음, 잠, 종교, 우정 등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행위들에 대해서 몽테뉴만의 진실되고 솔직한 성찰과 감정이 담겨져 있다.  꾸밈 없는 그야말로 솔직하게 쓰여진 기록이다보니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 때만 가능했던 제한적이면서도 구시대적인 관점도 있지만 몇 몇 수필과 문장 중에도 삶의 진리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내용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필 중간에 호메로스나 세네카와 같은 고대 문장가들의 격언까지 인용되어 있어서 현대인의 정신을 살 찌우게만드는 좋은 명문들이 수필 곳곳에 박혀 있다.  

 

<광기의 역사>는 단지 미셀 푸코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선뜻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앞쪽의 해제만 여러 번 읽었을 뿐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제일 심각한 책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 중에서 산 지 얼마 안 된 책이다.  이 책을 구입한 동기 역시 단순히 서양미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미술학과 전공도서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읽어내기가 순탄하지가 않다.  게다가 책의 활자가 깨알 같아서 덕분에 <교양>과 더불어 대구의 열대야를 이겨내는 좋은 수면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 전에는 대중의 기호에 맞춘 편안하고 읽기에 무던한 미술사 관련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대학전공 수업 내용에 맞먹는 정말 '제대로 된' 미술사 도서를 만났으니 이 책을 읽기만 하면 부담스러우면서도 고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역사적 순서대로 한 챕터씩 읽으려고 했지만 독서 패턴이 단순해서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인상주의를 소개하고 있는 챕터를 읽어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를 시도해봤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읽을 정도의 책은 아닌거 같다.    관련 미술화파를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유행했던 미술화파 역시 알고 있어야하기에 미술사에 대한 순차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술 비전공이다보니 이 책이 미술사와 관련해서 책들 중에서 명불허전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미술 비전공자들에게는 깨알 같은 활자는 읽기 불편하다는 것.   그래도 시험을 위해서라면 전공책을 통독한 나로써는 활자는 수면을 부르게 할 뿐 불편을 감수하면서 읽고 있는 중이다.  광범위한 미술의 역사를 딱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게 어디인가.  

 

  

  분량이 두꺼워서 슬픈 언터처블 책들이여

무더움과 장마가 찾아오는 여름날에 어떻게 보면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더위와 짜증 그리고 수면만 늘어나게 만들 수 있다.   간혹 정계 인사나 CEO들이 휴가철에 읽는 도서들을 보면 조금은 두꺼운 분량의 고전 몇 권이 끼여있기 마련인데 여름철 무더위와 일상의 피곤함을 벗어나기 위한 휴가에 정말 제대로 읽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특별한(?) 사고방식을 가진 몇 몇 사람만 제외하고는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은 꼭 휴가철에만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꾸준히 읽어야 할 정신적인 영양소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을 즐겁게만 해주는 우리들의 기호에 맞춰주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요즘에는 읽기 어려워하는 고전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대중들의 독서를 위한 집필의 취지는 좋지만 정작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렵고 분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지널은 외면받고 있다.  비단 고전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내용들이 할애되는 철학이나 과학 분야의 도서들의 외면은 더하다.  가격도 비싸서 서러운 판에 단지 분량이 많다고해서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알맹이를 먼저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형식상 겉모습만 보고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나마 자신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구매서평마저 없는 책도 있다.   

노천명의 시에 등장하는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다고 하는데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일명 '언터쳐블' 책들은 판형이 크고 두꺼워서 슬프다.  독자들의 손에 쥐어쥔다고 해도 자신보다 가벼운 분량의 책처럼 바로 읽혀지기보다는 항상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뜨거운 라면이 담긴 냄비받침이나 목침 못지 않은 딱딱한 베개가 되기도 한다.   

주인 잘못 만나 서러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언터쳐블' 책들은 화려한 홍보가 아닌 언제나 점잖게, 서점 책장 어디선가 자신을 선택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독자를 기다리면서...

   

 

 

 P.S>

 

                                                 

 

 

 

 

 

 

 

두꺼운 책이라고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들뢰즈 &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빠질 수가 없다.  평소에 이 두 권의 책에 그저 눈빛만 보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망해버려서 알라딘에 판매되고 있던 <율리시스>가 품절되고 말았다.  진작에 구입하지 못한 아쉬움만 자꾸 든다.  

반면에 들뢰즈라는 악명 높은(?) 철학자가 쓴 <천 개의 고원>은 출간된 지 꽤 되었고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중인데,,,   이 책 역시 언젠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품절 혹은 절판될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   <천 개의 고원> 역시 편안하게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지만... 재정적 여건만 된다면 빠른 시일내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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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에서 놓친 진정한 의미의 1000페이지 클럽 책들은 여기에도 있당^^
    from 퀸의 정원 2011-08-11 12:04 
    즐찾에서 cyrus님의 글을 읽다보니 냄비받침 No! 베개대용 No! 1000페이지 클럽 이벤트란 행사을 알게 되었네요. 가벼든,가볍지 않든 교양서적은 좀 무식한(?)사람 입장에서 페이지 수가 작아도 읽기 힘든편인데 권당 페이지수가 최소 7백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되어 읽을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ㅜ.ㅜ 그런데 문학서적분야에도 인문 교양서적 못지않게 무자비히게 페이지 수가 많은 책들이 있는데 정말 장식장용으로 딱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는 페이퍼예요! 갑자기 정말정말 두꺼운 책을 책상 한가득 펴놓고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네요..ㅎㅎ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꺼운 책은 <나니아 연대기>예요^^;; 1080쪽이네요.
그 다음이 <오디세이아> 이건 672쪽이네요.

<교양>에 대해 쓰신 부분이 제일 공감가요. 저도 제목과 책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었는데 정말 교양인답지 못한 꼴로 결론이 나요. 책을 베고 잠이 든다던지, 읽던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던지요..ㅎㅎ

대학때 미술사를 배울 때는 책도 별로 없었어서 <미술의 역사>라는 정말정말 두껍고 무거운 양장 책을 교재로 썼어요. 미술사 들은 날은 정말 어깨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래도 비싼 책이라 학교에도 두고 다니지 못했다지요..ㅎㅎ

cyrus 2011-08-09 19:45   좋아요 0 | URL
저도 왠지 두꺼운 책만 보면 끝까지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드는데,,
막상 읽고나면 중도에 포기할 때가 많았어요. 그러고보니
두꺼운 책이라면 <나니아 연대기>도 있었네요, 학창시절에 한창
<나니아 연대기>가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 판타지를 좋아하는 제 친구가
그 두꺼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무거워도 함부로 보관할 수 없는게 전공책의 아이러니인거 같아요.
무겁다고 해서 학과 사무실이나 사물함에 따로 보관하게 되면
누군가가 훔쳐가거든요,, ^^;;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본인이 직접 챙기는 수밖에요 ㅎㅎ

stella.K 2011-08-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두꺼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허영인 경우가 많구요, 한 320페이지 내외면 딱 좋은 거 같아요.
저 상상력 사전은 알사탕 안 붙었으면 안 샀을텐데 사 놓고 모셔만 두고 있다능.ㅜ

cyrus 2011-08-09 19: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완독할 수 있고 적당한 최적의 분량이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을 멀리하는 이들에게는 300페이지도 두껍게
보인다는 사실이에요 ^^;;

아이리시스 2011-08-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광기의 역사]보다 얇아서 푸코 책을 한 권 소유중인데 제목이 뭐더라. 흐아, 까먹었네요. 저건 다 가지고 계신 거죠? 저도 [서양 미술사] 있는데..^^

cyrus 2011-08-10 21:21   좋아요 0 | URL
푸코의 책 중에 얇은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닌가요?
저는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해서 도록이랑 그 책도 구입했는데,,
역시,,, 푸코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

사진에 있는거 다 읽으려고 구입한 거에요. 과연 다 읽을 날이 오게 될까요?
^^;;

마녀고양이 2011-08-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책 욕심이 많아서, 저렇게 두꺼운 책이 한벽 가득하다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읽었냐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난번에 800 페이지 넘는 아인슈타인 자서전 읽다 죽을뻔했죠~ ^^
아하, 율리시즈는 저기서 저를 보는군요. 나니아는 저도 읽었어요. 참 길죠~
뒤에 꽂힌 책을 보니, 도둑 들어오면 저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들 냅다 던지면 될듯.

cyrus 2011-08-10 21:2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사진에 있는 책들은 한번도 끝페이지를 보지 못했어요 ^^;;
두꺼워서 읽지 못하는 책도 나름 쓸만한 용도가 있었군요 ㅎㅎ


콜로서스 2011-09-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율리시스 품절된 거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워지는....

cyrus 2011-09-02 2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콜로서스님 ^^

예전부터 구입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미루다보니 그만.. 결국에느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

북깨비 2015-10-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의 역사에 대한 코멘트가 재밌어서 좋아요를 꾹 누르고 갑니다. ˝진도가 안나가는 제일 심각한 책˝은 내용이 제일 심각한 책인가요 심각하게 진도가 안나가서 제일 곤란한 책인가요. ㅎㅎㅎ 저도 `책이 좀 많습니다`에서 추천글을 보고 급 땡겼는데 cyrus님 올리신 사진보고 그 생각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5-10-12 18:11   좋아요 0 | URL
북깨비님 덧글 덕분에 예전에 썼던 글을 오랜만에 보게 됩니다. 다시 봐도 정말 부끄럽군요. ㅎㅎㅎ 분량이 엄청 많으면서도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만난다면 곤란해요. 여러 번 도전했는데 완독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요. 그래서 심각한 책이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Dora 2015-11-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개의 고원 내년에 도전하고 싶은데 ..혹시 비법을 전수해주실 수 있으신지요(사셨을 거라 믿고) 구입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cyrus 2015-11-30 17:51   좋아요 1 | URL
답글을 재스민님의 서재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확인해주세요. :)
 

  

 

 

 

 

 

 

 

  

 

 

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을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감히 하니까요.  그러므로 그대 친척 나를 막진 못합니다.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 로미오의 대사, 민음사 pp 54 -

 

 

누구나 한번쯤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향기를 담고 있다. 400여 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사랑의 향기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흔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에 있었던 전설을 토대로 만든 비극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의 전설과 오디비우스의 신화를 함께 인용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비극적 사랑의 대명사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 커플의 이야기에 모티브가 된 설화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전해내려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시리아라는 지역에 퓌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총각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서로 이웃지간으로 살고 있었는데 정이 들다보니 서로 눈 맞아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양가 어른의 반대로 서로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고 있는 앞집 뒷집 사이에는 아주 높은 벽이 세워져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티스베> 1909년

 

 

그러나 높은 성벽이라도 연인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벽 사이에 갈라진 틈을 이용하여 목소리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자신들을 가로막는 사랑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퓌라모스와 티스베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야밤에 사랑의 도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주하기 위해서 어두컴컴한 밤에 뽕나무가 있는 샘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티스베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한 마리 사자가 입에 피를 묻힌 채 나타났다. 티스베가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쓰고 있던 베일이 땅에 떨어졌고, 사자는 베일을 피 묻은 입으로 찢어버렸다.  한발 늦게 도착한 퓌라모스가 땅에 남겨진 사자의 발자국과 찢어진 티스베의 베일을 발견하고는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잠시 후 조심스레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온 티스베는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퓌라모스를 발견하고 놀람과 슬픔에 오열하다가 그를 따라 자결하였다.  두 남녀의 죽음을 알게 된 양가 집안은 이들의 소원대로 두 사람의 주검을 한 무덤에 묻어주기로 하였다.

퓌라모스가 자결하면서 흘러나온 선혈이 약속 장소에 있었던 뽕나무 가지에 묻게 되었는데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가 익으면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퓌라모스의 티스베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증거로 신화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 <로미오와 줄리엣> 1823년


 

두 사람의 가슴을 태운 사랑의 불꽃은 그 뜨겁기가 같았을까, 달랐을까?  아마 같았겠지.  하지만 양가의 부모들밖에는, 아무도 이 비밀을 몰랐어.  고갯짓, 눈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었으니까.  감추면 감출수록 깊어가는 게 사랑이잖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는 섶 속의 불씨 같은 게 사랑이잖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 '퓌라모스와 티스베' 편, 민음사 pp 156~157 -  


오비디우스의 저 표현대로라면 사랑이라는 불씨는 사랑하는 당사자 이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들수록 더욱 활활 불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누군가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른다.  어떤 힘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부모든, 다른 어느 누구든 자신들의 만남을 가로막으면, 심지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도록 만드는 커다란 힘이 조그마한 사랑의 불씨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반대가 너무 강력하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려고 했듯이 말이다.  이렇듯 사랑을 가로막을 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모도, 국가도, 총으로도 포탄으로도 막지 못한다. 결국 양가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쓸데없는 적개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었다는 후회와 통절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희생을 통해서 양가는 서로 화해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 중에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외부 압력이 거세질수록 남녀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일종의 청개구리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는 세기의 문학사적 커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에전해져 내려오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가 그 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기에 오히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두 주체가 서로 매혹되는 일. 매혹이 일생 동안 한 치의 변함없이 유지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시련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떠한 것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대수로워지지 않는 담력을 이끌어낸다.   

누구든 사랑에 빠지면, 이런 외적 요인들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외적 요인들이 사랑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것들에 맞서서 저항하고 투쟁하도록 사람을 바꾸어 놓는 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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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0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의 밤에 셰익스피어를 읽는 건 너무 멋지잖아요, 시루스님. 너무 더워서 죽겠어요. 저는 공부는커녕 책읽기도 귀찮아요. 시간을 계속 뒹굴거리며 흘러보내고 있어요. 이러다 정신차리면 10월이 와있을 것 같아요. 얼른 정신 차려야지. 대학생은 방학이라 푹 쉬어도 또 학교가지만 저는 뭔가 좀.. 흑흑. 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읽기 해야겠네요, 저도. 너무 멋있어요!!!^^

cyrus 2011-08-07 00:38   좋아요 0 | URL
저 방금 아이리시스님 서재에 댓글 달고 왔어요 ㅎㅎ
대구는 요즘 열대야라 잠이 안 오네요. 그래서 지금 이렇고 있어요 ^^;;

저는 민음사판으로 처음 읽어봤는데,, 고전이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원문의 운문 형식 그대로 따르다보니
뭔가 어색한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윤기 님의 번역도 읽어보려고 해요.^^

비로그인 2011-08-0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얼마전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어 뭔가 찾아보곤 했는데, 이렇게 또 마주하니 재밌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림과 문학작품에 대해서 소개를 하더라고요. 올려주신 글과 그림 읽으니 갑자기 그 부분이 막 생각납니다.

갑자기 비가 막 오고 갔는데, 뭔가 어수선한 밤입니다. 이 더위가 끝나면 cyrus님 개강이겠지만, 더위는 얼른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

cyrus 2011-08-08 23:51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대사를 읽어보면 신화 속 대사나 인물, 격언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셰익스피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더군요.

어제 태풍이 지나간다고해서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바람 때문에
덥지는 않았는데.. 태풍이 지나간 지금 너무 더워요. ^^;;
벌서 방학도 3주 남았네요, 슬슬 개강 준비를 해야되갰네요.


stella.K 2011-08-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인기리에 방영중인 <공주의 남자>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데
괜찮은 것 같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자식들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가정 충분히 가능
가능할 수 있죠. 이야기가 너무 현대적여서 그렇긴 하지만 사극에 현대성이 빠지면
재미없잖아요. 극본을 잘 쓴 거 같아요.ㅋ

cyrus 2011-08-09 19: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드라마 시청하고 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했다는 광고에 혹해서 보고 있어요. 내용 전개는 뭐라 흠잡을데는
없는거 같은데 배우의 연기력 논란 때문에 말이 많은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