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의 정석 -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장서가는 책만 보면 호구(虎口)가 된다.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일단 사고 본다. 새 책을 집에 데려올 때 장서가는 행복하다. 그러나 책장의 터줏대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새 책의 향기를 맡자마자 인상을 찡그린다. 비좁은 자리 때문에 터줏대감들은 답답해 죽을 노릇인데 주인은 그 마음을 모른다. 장서가의 눈에는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귀여운 자식처럼 보인다. 터줏대감들은 주인에게 항의한다. “거 주인장, 욕심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들의 볼멘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애서가는 읽지도 않는 책을 사들인다.

 

일본의 다독가 겸 서평가인 나루케 마코토는 책만 열심히 읽은 게 아니라 일찌감치 책장의 터줏대감들의 마음마저 읽어냈다. 그는 불필요하게 많은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을 관리하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유로운 독서를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마코토는 《책장의 정석》에 효율적으로 책장을 관리하는 비결을 알려준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 베스트셀러는 피해야 한다. 너무 평범한 책장이 된다. 보기 편하도록 책장의 20% 여백을 남긴다. 공간이 없을 정도로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책장은 답답해 보인다. 책장에 여유 공간이 있어야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오래된 정보가 된 책은 책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 나이가 많은 터줏대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그들의 빈자리에 최신 정보의 신간을 맞아들인다. 이로써 장서가는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무장하여 한 단계 성장한다. 책장은 그저 뽐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받아들여야 할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를 구분하는 외장형 두뇌처럼 활용되어야 한다. 과학, 경제 같은 사회인이라면 알아야 할 분야의 책은 ‘메인 책장’에 보관하면 좋다.

 

책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책장에 보관할만한 책을 잘 찾아내야 한다. 저자는 상대방에게 좋은 책을 추천받을 때, 무조건 ‘좋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은 큰 차이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를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그럴 때 서평을 작성하면 된다. 저자는 독자가 이 책의 재미를 느끼게끔 서평을 쓴다. 감상 위주로 쓰면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이 되고 만다. 그리고 글의 분량이 길어질 수 있다.

 

정석은 ‘정해져 있는 일정한 방식’을 의미한다. 《책장의 정석》 뒤표지에 ‘책장에도 룰이 있다’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책을 보관한 자리가 없어서 고민이 많은 장서가는 이 책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100% 해결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장서가에게 책장 관리는 숙명이다. 저자처럼 책장을 정리하려면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저자는 픽션은 전자책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문학을 무시해서 픽션을 책장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픽션이나 문학 에세이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책장의 정석》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 문학을 책장에서 제외하는 저자의 태도를 생각하면, 고전을 ‘나중에 읽을 책’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고전을 당장 읽지 않더라도 보관해두면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전에는 ‘문학’이 다수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책장의 정석》은 분명 장서가로 자처하는 독자들을 겨냥해서 만든 책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장 관리법이 장서가의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 평점을 좋게 매긴 서평들을 이해할 수 없다. 책장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강조하는 책의 홍보 카피에 속지 마시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는 데 치중하면, 자칫 책을 진열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저자는 책을 외출복처럼 비유한다. 그런데 내가 입어야 가치가 있는 외출복을 한 번도 입지 않고 보관만 한다면 문제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성장에 유용한 오락처럼 책을 즐겨야 한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책장을 꾸미는 일은 오락이 아니라 오만이다. 독자는 《책장의 정석》에서 새겨들을만한 내용만 가려내서 읽으면 된다. 특히 책장 관리를 꾸준히 할 자신이 없는 독자라면 서평을 작성하는 방식을 소개한 4장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책장의 정석》은 특별히 돈 주고 사야 할 책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아, 안 그래도 책장에 자리가 없는데 이 책을 산 것이 조금 후회된다. 팔 것인가, 보관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역시 나는 책만 보면 호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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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1-19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책장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cyrus 2016-01-19 10:13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읽으면 책장 정리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책을 사놓고 실천을 하지 못하면 책값 낭비, 책장 자리 낭비입니다.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 이 책을 살지 안 살지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yureka01 2016-01-19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다행입니다.ㅎㅎㅎ거의가 사진 관련 책들만 가집니다.나머지 책들은 줘버리거나 중고로 팔거나....그런데 또 사진책은 출간되는 량이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적다는거....어차피, 세상에 나온 책..나올 책들..다 못보고 죽으니까요.ㅎㅎㅎㅎ

cyrus 2016-01-19 10:14   좋아요 2 | URL
사진 책은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 귀한 편이라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어요. ^^

글월마야 2016-01-19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삐뚤빼뚤 쌓이고 꽉꽉 채워진 책장이 그득한 쌀통보다 그득한 옷당보다 더 좋더라구요. 행복한 책바보 21세 간서치이고 싶습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6-01-19 10:15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책을 좋아하려면 사소한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야죠. 글월마야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 날씨가 상당히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

표맥(漂麥) 2016-01-19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온 방에 책. 책. 책...
한번 모두 기증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아직 자기들 안읽었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집구석이 엉망(?)입니다.
정작 말한 그들은 읽지도 않으면서...^^

cyrus 2016-01-19 10:18   좋아요 2 | URL
인정하기 싫지만 제가 안 읽는 책에 미련이 남아서 못 버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1-1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주문했는데 조금 후회할 수도 있겠습니다 좀 낚인 것 같네요

cyrus 2016-01-19 21:31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서니데이 2016-01-19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책장정리도 자주 해야할텐데, 괜히 하기 싫어요.^^;
cyrus님, 좋은밤되세요.^^

cyrus 2016-01-19 22: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방이 따뜻하니까 움직이기 싫어져요. ㅎㅎㅎ

심성 2016-01-2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서평을 보고 관심이 생겨 방금 구매했습니다. 읽어보고 저도 제 생각을 적어 봐야겠습니다 ^^

cyrus 2016-01-23 15:51   좋아요 0 | URL
심성님이라면 책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드러낼 거라 믿습니다. 기대됩니다. ^^